기독교의 원죄설이 가지는 긍정적인 의미는 인간의 선의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죄를 짊어지고 사는 존재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신을 거역한 죄악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의란 동기보다 그 결과를 봐야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법치가 발전했다. 공적인 규범에 의해 인간은 선한 행동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북송 이전 유학에서 순자가 맹자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 이유였다. 개인의 선의보다 강제된 교육과 제도만이 인간의 행동과 결과를 선하게 만들 수 있다. 인의란 인간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선의 안에 존재한다. 법이 무서워서 선해지고, 교육으로 강제되었기에 선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해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정치인에게서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선을 기대한다. 그는 원래 좋은 사람이라서. 오로지 선한 동기에 의해. 선한 의지를 쫓아서. 그래서 내로남불이란 말도 나온다. 위선이란 말도 나온다. 까놓고 말해보자. 그렇게 선하고 욕심도 없는 사람이 굳이 그 수고와 노력과 비용을 들여가며 정치를 하려 하겠는가. 정치인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 이해에 기반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 지지를 받기 위해서, 그러므로 자기가 좋은 정치인이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소상공인을 위해 지원하고자 추경을 통과시켰다. 무려 14조다. 적은 돈이 아니다. 야당이 동의해주지 않는다고 단독으로 처리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물론 정치적인 이해가 아주 없지 않다. 당장 불리한 선거국면을 뒤집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지원할 재원이 생겨났다.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기에 지원을 강행한 정치인과 순수한 의도로 지원에 반대한 정치인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누가 더 우월한가?

 

한국사람들은 이상하다. 분명 교육의 문제일 것이다. 건물주다. 얼마든지 세를 올려받아도 좋을 갑의 위치다. 그런데 법안을 발의한다. 마음대로 일정 이상 임대료를 못받도록 강제하자. 그래서 법이 통과되지 않아 그냥 하던대로 했다. 욕한다. 반대했던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고 발의한 사람만 욕한다. 위선이다. 그러니까 법이 통과됐을 경우 자기도 손해보는데 그런 법을 발의했다는 거다.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데 더 비난한다.

 

건물주는 감히 건물주의 이익에 반하는 법을 발의해서는 안된다. 갑은 을의 사정을 봐주는 법을 발의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순수한 악이 위선보다 낫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기 위해서 솔직하게 자신들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어느 자영업자가 손님 오는 줄도 모르고 떠들던 말이다. 그래서 돈을 주겠다는 정당이 돈을 안주겠다는 정당보다 자기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인가. 자기들에게 더 좋다는 것인가.

 

순수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어떤 결과도 내놓지 못한다. 지방대 출신의 서울대 폐지론자의 존재와 같은 것이다. 일반고 출신이 자사고 폐지를 주장해봐야 배아파 그런다는 소리나 듣고 자사고 출신이면 자기 혼자 꿀빨려 그런다는 욕만 듣는다. 동기의 선이 가지는 함정이다.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일지도. 하찮다는 이유다.

"내가 당선되면 3월 10일 연장영업으로 처벌받은 업주들을 모두 사면해주겠다."

 

당연히 현행법에도 맞지 않고, 더구나 당선자 신분으로서 할 수 없는 월권행위일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청와대와 여당과 협의하지 않은 독단적 발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진심이 느껴진다. 이렇게까지 자신은 절박하게 느끼고 있다.

 

내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최근 느끼고 있는 불만을 그래서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한 마디일 것이다. 차라리 법을 어겨서라도, 원칙과 도의를 저버려서라도 내 편을 들어주려는 이가 진짜 내 편인 것이다.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데, 급하고 아쉬운데, 그러나 그런 앞에서조차 자신만의 원칙과 신념을 주장하면 그냥 너 잘났다 한 마디 하고 마는 것이다. 너랑 나랑 그래서 뭔 상관이겠느냐.

 

정치적으로 손해일 것을 알면서도, 당연히 뻔히 안될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이가 있는 것이다. 안되면 그러고 싶다. 모두가 반대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그러고 싶다.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선대위 입장에서야 어느 정도 해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영업자만 유권자가 아닐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저런 말을 해야 했던 진심 만큼은 아마 많은 이들이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은 문재인과 다르다.

 

문재인에게는 저런 절박함이 없었다. 저같은 치열함이 느껴지지 않았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품격이라 불렀다. 하지만 정치란 고고한 성인의 놀음이 아니다. 평범한 소인배들의 투쟁이다. 누가 내 편이 되어 줄 것인가. 문재인은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국민의 편이었지만 약자의 편도 소수자의 편도 청년의 편도 여성의 편도 누구의 편도 아니었다. 그것이 소외된 이들의 분노로 돌아오고 있는 중이고.

 

누군가의 편이 되어 준다. 내가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설사 안될 것을 알더라도 그러나 편이 되어 주려 한다. 적극 알려야 하는 이유다. 뒤늦게서야 보았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운동은 이재명 혼자 다 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이다.

김완 기레기 삐졌네. 

 

코링크 관련해서 익성주체설을 가장 먼저 들고 나온 것이 바로 한겨레 김완이었다.

 

하지만 묻었다. 씹었다. 익성이란 말은 이후 한겨레에서 한 마디도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김완은 말했다.

 

검언유착을 폭로한 유시민은 너무 악의적이다.

 

검언유착을 비판하는 김어준은 뭘 모르고 떠드는 것이다.

 

검찰을 받아쓰는 한겨레의 입장을 적극 옹호한 것이다.

 

옹호한 것을 넘어 청와대를 공격하기 위해 관행적인 수의계약을 공격하는 허위날조기사까지 썼었다.

 

그런데 그래도 한겨레라고 누가 제보를 한 모양이다. 내가 받은 제보를 안 받아? 씨발.

 

허재현도 그렇고 저런 놈들이 모인 곳이 바로 지금 한겨레란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의도를 위해 가짜뉴스도 서슴지 않는다.

 

하어영이 그런 식으로 유시민의 검언유착폭로를 오보로 묻었었고,

 

오세훈의 의혹에 대해서도 한겨레는 의도된 오보로 사실을 호도하고 있었다.

 

한겨레가 진보면 조선일보는 아나키스트다.

 

그냥 삐진 거다. 자기 기사 안 받아 줬다고. 김완에게 기자로서의 사명감이라는 게 있을까?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는 게 아니다. 사실을 만드는 거다. 과연 김완은 어떤 사실을 만들고 싶었을까?

 

한겨레는 그냥 똥물이다. 잠시 몸만 담갔다 나와도 어느새 썩고 마는.

 

아직 폐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똥냄새난다. 윤석열 똥일 것이다.

오래전 내가 게임업계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때 개발자들 사이에서 상식처럼 오가던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게임회사는 팀장급 베테랑 한 명에 나머지는 신입만 있어도 문제없이 돌아간다. 이 말의 연장이 개발자가 되려면 서른 넘어서 먹고 살 방책은 준비해 두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IT업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임개발 역시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요하는 고도의 작업이란 전체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말 그대로 시키는대로만 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단순작업들이다. 한 마디로 그저 주어진 툴만 제대로 쓸 줄 알아도 시키는대로만 할 줄 아는 머리만 있으면 아무나 데려다 놓고 시켜도 심각한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춘 베테랑이 한 명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또 떠도는 이야기가 신입사원 뽑아서 최저연봉만 주다가 연봉 올려줄 때 쯤 되면 해고하고 다시 신입사원으로 그 자리를 채워 넣는다는 것이었다. 1년차든 2년차든 어차피 결과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2년차 3년차까지도 팀장급에서 제대로 지시를 하고 관리만 해주면 결과에서 크게 유의미한 차이가 나거나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당시에는 갈수록 개발자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노하우가 좋아지면서 신입이 오히려 기존의 직원보다 더 나은 경우마저 적지 않았다. 그저 현장에서 구르며 시간만 보내던 기존직원에 비해 신입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트랜드에 더 익숙하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그것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팀장급 베테랑들인 것이고.

 

서른 넘으면 먹고 살 방편을 준비하고 뛰어들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1년 남짓 다니다 잘리고 또 잘리고 잘리고 하다 보면 그저 거쳐간 회사들만 많을 뿐 제대로 된 경력이나 경험을 쌓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다른 먹고 살 길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서 따라가기 버거운데 엉덩이 붙이고 일할 안정적인 자리 하나 없이 떠도느라 시간만 허비하고 나이만 먹고 나면 다루기 힘들다고 회사에서 오히려 꺼리게 된다. 신입도 아니고 경력직도 아니고, 아마 지금 계약직 가운데 이 말에 공감하는 이가 없지 안을 것이다. 그리고 끝이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 해 본 적 없는 일을.

 

사용자 입장에서 오히려 회사에서 오래 일한 관리자급 인사들은 매우 요긴한 자원일 수 있는 것이다. 실무에서 오래도록 경험을 쌓아 왔고, 따라서 실무에서의 역량 역시 이미 검증된 이들이란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신입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더구나 그 때 쯤 되면 여기저기 인맥까지 상당하다. 차라리 그 나이가 되어서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덩어리로 남아 있다면 이전에 잘라야 할 때 잘라내지 못한 찌꺼기들일 수 있다. 누구이겠는가? 돈은 신입사원보다도 더 받으면서 아직 베테랑이라 부를 만큼 실력도 경험도 쌓지 못한 애매한 공간에 있는 이들이다. 아마 나이로 치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가 나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내가 사용자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을 일부 해고해야 한다. 해고해도 좋을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면 이미 실력과 실적으로 검증된 관리자급과 괜히 연차만 오래되어 돈만 더 많이 받는 5년차 이하 가운데 누구를 먼저 자르겠는가? 무엇보다 5년 정도 연차는 금방 대체가 가능하다. 거의 대부분 아무나 데려다 놓고 관리자급에서 관리만 제대로 해주면 업무를 수행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 그래서 해고를 자유롭게 하면 누구를 먼저 자르겠는가.

 

지금 내가 다니는 곳도 그렇다. 단순노동인데 그마저도 연차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일하는 것이 다르다. 일정 연차 이상 되면 거의 혼자서 신입 몇 사람 분을 해내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다. 반면 들어온지 몇 달 안 된 정도라면 아무나 데려다 놓고 시켜도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일이 바쁠 때는 기간제로 잔뜩 뽑았다가 그냥 잘라버린다. 그 가운데 일 좀 잘하겠다는 몇 명 만 남겨서 무기직으로 전환시켜 계속 같이 간다. 그나마 최저임금 받는 곳이라 급여에 차이가 없는데도 이렇다. 

 

그러니까 웃기는 것이다. 정규직 해고 자유롭게 해주면 그만큼 일자리가 생겨서 청년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과연 진짜 그렇겠는가. 해고가 자유로워지면 그 해고를 결정하는 이들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만일 진짜 무능하고 인성도 개같은 인사가 자기 윗자리에 있다면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런데도 과연 그 자유로운 해고가 그 무능하고 인성 더러운 윗사람부터 자르겠는가. 괜히 연차 쌓여서 비용만 더 들어가는 젊은 자신일 것인가.

 

오래 다닌 만큼 여기저기 인맥도 있고 우호적인 이들도 있어서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기성세대들과 달리 신입들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자기자신만으로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조의 도움을 받기에는 젊은 그들 스스로가 노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부정하면서 노조의 도움을 받아 연명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치졸하고 비루한 짓거리인가. 공정을 사랑하는 20대 남성들이 그런 짓거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싶다.

 

아무튼 그래서 웃기는 것이다. 최저임금제가 폐지되면 과연 누가 더 영향을 받겠는가? 20대 남성과 4050 남성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비율이 높을지 한 번 생각해 보라. 더구나 지금 최저임금 받으며 일하고 있을 20대 남성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어느 나이대의 사람들일까? 무엇보다 매일 돈없다 지랄하는 나도 그동안 저금해 놓은 돈이 있고, 내 명의의 아파트도 있다. 그게 기성세대란 것이다. 법이 좆같이 바뀌더라도 그냥 한 10년 버티면 어찌되었거나 연금 받으면서 놀고 먹을 수 있는 신분이란 것이다. 하지만 20대 남성들은 앞으로 수십년을 그런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번 선거의 결과를 벼르고 있는 이유다. 20대 남성들은 말한다. 윤석열이 좆같이 하면 자기들이 촛불들고 쫓아내겠다. 과연 가능할까? 늬들이 뽑아준 오세훈이 과연 광화문 광장에서 편하게 촛불이나 들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언론은 또 어떤가? 지금 언론 가운데 윤석열을 상대로 그나마 비판적인 기사를 내는 곳이 MBC 정도인데 윤석열이 공언한대로 선거결과에 따라 더이상 그같은 입장을 견지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언론에 있는대로 휘둘리는 20대 남성들이 언론의 지원 없이 과연 끝까지 정권과 싸울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말한 것처럼 어차피 내 일이 아니므로 굳이 나와 같은 이들이 그들을 지지할 일따위 없을 것이다.

 

정치보복하라고 했다. 아예 민주당의 씨를 말리라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이미 정치권은 학습했다. 20대 남성들은 월급을 올려주는 것도, 일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도, 일자리가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될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모두 바라지 않는다. 최저임금을 없애고 근로시간을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도록 해주는 후보에 표를 몰아준다. 그게 바로 선거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정치권에서 자기들 목소리를 들어 줄 것이다. 여가부 해체한다고 해놓고 이수정 입을 빌어 성범죄 전담부서를 새로 만들겠다는 수작을 부려도 넘어가는 머저리들을 위해 과연 누가 무엇을 해 줄 것인가.

 

그래서 윤석열이 당선되서 다 망하면 기성세대가 더 피해를 입을 것이다? 나는 10년만 더 버티면 된다니까? 모아 놓은 돈도 있고, 어쨌든 집도 있다. 연금 좀 줄어들어도 어차피 혼자라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 자식 있는 집은 바로 직격탄 맞는 것이 그 자식세대인 20대 남성들일 것이다. 한 번 두고보자. 더이상 설득은 포기했다. 이해도 그만두기로 했다. 어떻게 해도 윤석열에 대한 지지만은 포기하지 못하겠다. 다른 무엇도 아닌 복수를 위해서. 한 번 두고보자. 재미있을 것이다.

너무나 선한 사람이 있다. 너무 선해서 어떤 나쁜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작 결과는 선하지 못하다. 행동도 선하지 못하다. 그러면 그는 진정 선한 사람인가?

 

개인적으로 북한과의 종전선언 역시 대선에 영향을 줄까봐 뒤로 미루고 있을 것이란 의심을 가지고 있다. 소상공인을 위한 지원이 시급하다. 이미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그리 부총리에게 지시한 바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여당인 민주당이 강하게 요구하는데도 추경은 물론 자영업의 24시 영업허용까지도 아직껏 감감무소식이다. 어째서? 바로 대선을 앞두고 있으니까.

 

윤석열의 정치보복 발언에만 분노했을 뿐 역시 행동은 없었다. 심지어 청와대 관계자들의 입단속까지 시킨 모양이다. 윤석열의 정치보복에 대해서는 분노하는데 그를 막기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아니 혹시라도 선거개입이라는 의혹을 살까봐 사리는 건 이해하겠는데 그를 위해 정작 필요한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마저 뒤로 미루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겠다. 진짜 사람새끼 맞는가?

 

스스로도 인정했다. 코로나19로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것은 중소자영업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한 실효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그런데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살까봐 지원을 미루고 있다. 여당은 요구하는데 오로지 반대만 하고 있다. 선한 것 맞는가? 좋은 대통령인 것 맞는 것인가? 홍남기에게만 책임을 미룰 문제가 아니다. 홍남기를 임명한 것은 누구이고 지금껏 홍남기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이가 누구였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 없이 홍남기가 저토록 여당과 여당 대선후보의 요구에 대해 무시로 일관할 수 있는 것인가?

 

살인범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한다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이미 공범이나 다름없다. 도둑놈이고 사기꾼인 걸 알몀서도 그들로부터 호감을 사려 한다면 비슷한 부류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윤석열에게도 국민의힘에게도 좋은 사람이고 싶다면 결국 그런 수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정작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지지자들은 이렇게 마음이 급한데 대통령 혼자서만 오로지 고고하며 순결하다. 어째서 자영업자들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등돌리는지 알 것 같은 심정이다. 정작 필요한 것들을 해주지 않는데 혼자 고결한 척 해봐야 열만 받을 뿐이다.

 

지금과 같은 첨예한 순간에 중립이란 결국 누군가의 편인 것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바람을 저버린 순간 대통령의 정체성은 정해진 것이다. 지지율에 취한 것일까? 자기 지지율 높으니 정권재창출따위 상관없다는 것일까? 국민의힘도 괜찮다면 대통령은 왜 되고자 한 것일까? 자기 혼자 대통령 되었으니 그것으로 끝이다?

 

주위의 문제라는 말도 다 개소리다. 그런 소리들 걸러들으라는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란 자리이기 때문이다. 실망을 넘어 분노가 일고 혐오가 커져간다. 이래서 좋은 사람은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일까?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고 싶었으면 정치따위 하지 말았어야 한다. 대통령에 출마도 하지 말았어야 한다. 아니면 윤석열에게 목숨을 구걸하고 싶은 것인가. 더 심한 욕은 일단 참아보련다. 선을 넘어간다.

사실 20대 남성들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혐오하게 된 계기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여자도 군대 가게 해달라고 청원을 올렸더니 대통령이 웃어넘겼다. 왜 안되는지, 어째서 들어줄 수 없는지 차근히 이유를 논리적으로 풀어 설명했다면 아마 불만은 있더라도 어쨌든 그렇구나 넘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 대꾸도 없이 그냥 웃어 넘겨 버리니 무시당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조롱당했다는 분노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새끼는 그냥 내 적이다.

 

우연히 사장에게 윤석열 뽑겠다고 했다가 최저임금 없애고 근로시간 늘리면 늬들 월급도 깎고 일하는 시간도 늘리겠다는 대답이 돌아오자 어찌 그럴 수 있느냐 항변하더라는 젊은 직원들 이야기를 보았다. 참 유치하구나. 그냥 어리구나. 그러고보니 윤서인이 최저임금과 관련해서 한 발언도 그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에 대한 젊은 세대들의 반발논리도 그것이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사용자도 인정해서 월급도 알아서 올려 줄 텐데, 그러면 더 많은 시간 일해서 돈도 더 벌 수 있을 텐데 정부가 최저임금 올려서 그럴 기회 자체를 빼앗겨 버렸다.

 

임대차보호법에 대한 반발논리도 비슷하다. 이런 법 없이도 집주인과 관계만 잘 형성하면 적당히 전세 올려주면서 계속 살 수 있을 텐데 법 때문에 전세인상률이 제한되면서 오히려 내쫓길 상황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뭔 말이냐면 가진 자의 선의, 즉 기득권을 가진 어른의 선의에 막연하게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잘만 하면. 내가 열심히만 하면. 그러면 돌아봐 주지 않을까. 인정해 주지 않을까. 배려도 해 주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걸 법으로 강제하려 한다. 그러니 상대의 인정도 배려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용서할 수 없다.

 

비슷한 심리였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자신들이 지지해서 청와대로 보냈으니 자기들이 뭐라 하면 들어주겠거니. 그런데 아니었다. 아예 생까고 무시해 버렸다. 복수하겠다. 그것이 지금 20대 남성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윤석열이 되더라도 상관없다. 자기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면 윤석열도 어쩔 수 없이 자기들 말을 들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들이 문재인과 민주당을 조져 버리지 않았는가. 오히려 윤석열의 정치보복 발언에 고무되어 있는 이유인 것이다. 윤석열이 문재인이고 이재명이고 민주당을 싸그리 다 조져서 없애 버리면 정치권에서도 20대 남성들의 무서움을 알 것이다. 그러니 자기들 말을 들으려 할 것이다. 이 얼마나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이같은 사고인가.

 

2007년에도 그런 병신들이 있었다. 바로 지금 40대 초반이 되었을 멍청이들이다. 이명박의 공약을 하나하나 이야기하며 어떻게 이런 인간을 지지할 수 있는가 물었었다. 이런 공약들에도 진정 이명박을 지지하려는 것인가. 그때도 비슷한 대답이 돌아왔었다. 일단 찍어주고 반대하면 된다. 국민이 반대하는데 과연 대통령이 마음대로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그런 소리 지껄이는 놈들치고 최루탄이든 물대포든 무릅써가며 시위에 나설 용기를 가진 인간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반대해서 거리로 나선 사람들조차 조롱하는 것으로 끝났다. 실력을 쌓아서 해결해야지 떼를 써서야 되겠는가. 그러고 보니 닮았지?

 

이명박이 하고자 해서 못한 것이 없었다. 박근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2016년 겨울 서울시장이 박원순이었다는 것이다. 저쪽에서 박원순을 아예 부관참시해버린 이유다. 자칭 진보가 박원순이란 이름을 아예 지워 버리려 한 이유였다. 진보란 여성주의다. 그리고 그 여성주의와 가장 강하게 결탁한 대통령이 박근혜였다. 그 원한을 잊지 않은 것이다. 만일 2016년 당시 서울시장이 오세훈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정부에서 시위를 차단하라 진압하라 요구하거나 아니면 스스로 그럴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당시 촛불시위가 그렇게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까?

 

광우병시위 역시 시작은 평화시위였었다. 하지만 서울시가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가운데 경찰병력이 시위대를 계속해서 자극하면서 결국 충돌로까지 이어졌던 것이었다. 그때 과연 저따위 주장 하는 20대 가운데 거리에서 버틸 수 있는 인간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하긴 20대 남성들이 민주당에 삐진 이유부터가 그것이다. 그나마 민주당은 자기들이 말하면 들어주는 시늉이라도 했다. 그런데 여성주의에 대해서만큼은 아니었다. 배신감인 것이다. 20대 남성들이 오로지 여성주의 이슈에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이슈에 대해서는 민주당도, 아니 민주당이야 말로 적극적으로 20대 남성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이슈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준석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준석만이 자기들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으니까.

 

도취감일 것이다. 자기들의 지지에 힘입어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까지 되었다. 윤석열이 지지율 1위로 대통령 당선에 유력하다. 언제 자기들이 이런 중요한 위치에 있어 본 적이 있는가. 그래서 복수심에, 지금의 고양감을 지키고자 저들은 윤석열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정이니 정의니 하는 것은 이미 저들의 머릿속에 없다. 윤석열이 설사 거리 한복판에서 연쇄살인을 저질러도 저들은 지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길잃은 고아의 심리와 같다. 아니면 자기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서 가엾다는 것이다. 돌아보라는 것이다. 지금 너를 고용하고 있는 그 사람, 혹은 위에서 지시를 내리고 있는 그 사람이 과연 몇 살 쯤 되었는가. 윤석열이 진짜 당선되어 근로시간 늘어나고 최저임금 없어지고 해고도 자유로워지면 가장 먼저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어디의 누구인가. 그런데도 오로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는 정치인이 있으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잘못도 없지 않다. 당시도 보고 있던 나마저 어이가 없어 잠시 멍하니 있었다. 이후로도 과연 국민청원 가운데 그렇게 성의없이 상대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아무튼 그러므로 결론은 20대 남성 잡겠다고 헛짓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저버릴 수 있는가. 아직 부모에 의지해야 할 자식이 부모를 버린다는 것을 과연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이수정에도 신지예에도 저들이 흔들리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자기들의 말을 들어 줄 것이다. 이재명과 문재인만 죽이면 민주당도 자기들 말을 들어 줄 것이다. 과연 그럴까는... 거기까지 생각할 머리라면 이런 상황까지 안 왔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한통운 파업 때문에 덩달아 바빠져서 뉴스를 제대로 챙겨보지 못했더니 그새 심상정 이 씨발년이 또 커밍아웃을 했네? 한일관계 안좋아진 게 다 한국 정부 때문이라고? 강제징용과 위안부와 관련한 정부의 태도가 원인이 되었단다. 그러니까 자기는 반일감정 이용하지 않겠다. 어이없어 하는 사람이 적지 않더라. 하지만 나는 당연하다 여겼다. 벌써 20년이 넘었다. 자칭 진보들로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거의 주입당하듯 들었던 것이다.

 

자칭 진보 하나는 그러더라. 국가간 조약에 의해 합병되었으니 조선총독부야 말로 유일한 합법정부가 아니었겠는가. 임시정부는 그저 정부를 참칭하는 괴뢰집단이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정부는 조선총독부를 계승하고, 나아가 만일 당시 독립운동가들만 아니었다면 자신들 역시 일본인으로서 경제대국 일본에서 풍요와 자유를 누리면서 살 수 있지 않았겠는가. 거짓말 같지만 진짜다. 오키나와를 예로 들면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하겠다 난리만 피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잘살고 저 자유롭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었다. 당연히 한국민족이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일본민족이 한국민족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은 것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국가가 한국이라는 국가를 상대로 외교를 통해 병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경술강제병탄은 일본민족과 한국민족의 문제가 아닌 단지 당시 일본정부와 대한제국 정부의와 관계에서 일어난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 책임을 일본민족에게 묻는 것은 옳지 못하고, 태평양전쟁으로 단절된 현재의 일본정부에 묻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따라서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한 모든 착취와 약탈과 유린은 그것을 행한 당사자 개인의 문제일 뿐 일본정부와 일본국민들에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래서 말했을 것이다. 재작년 정의연 논란 당시 어째서 자칭진보가 정의연 공격에 오히려 앞장서며 박근혜의 위안부협상마저 옹호할 수 있는 것인가. 그렇기 때문이다. 사실 자칭 진보는 정의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다. 피해자들을 민족의 꽃으로 만들려 한다 그랬었다. 피해자들은 단지 개인인데 그 피해자들에게 민족이라는 굴레를 씌우려 한다며 비난하고 있었다. 개인 대 개인이어야 한다. 그래서 위안부문제에서 일본정부의 책임은 뒤로 빠지는 것이다. 군대에서 매춘부를 필요로 했고, 그래서 정부에서 매춘부를 조달하려 했으며, 중간에서 매춘부를 조달하고 관리한 당사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사수는 조선인 남성이었다. 그러니 이는 조선인 남성들이 책임질 남녀간의 문제이지 국가나 민족간의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 개인과 그에 부역한 가해자 개인의 문제지 국가나 민족이 개입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여성주의자들과 가까웠다. 모두가 박근혜를 버렸을 때도 오로지 여성주의자들만은 박근혜를 지키려 했었다. 그런데 위안부협상이 여성주의자들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었겠는가. 실제 위안부협상이 발표되고 재단의 구성원으로 임명된 대부분이 유력한 여성주의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젠더의 문제이지 민족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문제이지 국가간의 문제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면 자칫 위압부동원에 협력했던 일제강점기 여성주의 선배들에게도 책임이 돌아가거든. 김활란이 자기 제자들 정신대로 등떠밀어 보낸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위안부로 끌려간 이가 있어도 그리 보낸 놈들이 잘못이지 일제에 협력한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다.

 

친일은 죄악이 아니다. 친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당시로서는 최선이었고 정의였다. 거기에 경제대국 일본을 동경하는 비루함이 탈민족주의를 잘못 받아들인 결과가 바로 친일여성주의라는 진보의 괴물인 것이다. 괴물도 아니다. 그 뿌리가 너무 깊으니. 의외로 러시아에서 귀화한 박노자는 민족을 부정하면서도 일제강점기의 착취와 약탈에 대해 적확한 비판을 하던데 그런 정도 지능도 안되는 물건들이었다는 뜻일 게다. 그러므로 민족이 없었으므로 일제강점기와 관련한 일본인과 한국인 사이에 민족문제는 없는 것이고 국가간의 문제도 없는 것이고 개인만이 있을 뿐이다.

 

그 연장이다. 심상정의 말은 따라서 그동안 감춰온 속내에 대한 솔직한 토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이 이길 것이라 자신하는 탓이다. 윤석열이 이기면 다시는 친일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 첫 타겟이 정의연이 그랬던 것처럼 민족문제연구소가 되지 않을까. 수요집회는 당연히 폐지되는 것이고. 이미 명분은 충분히 쌓였다. 자칭 진보와 자칭 여성주의가 이용수씨를 앞장세워 수요집회를 끝낼 모든 명분을 마련해 주었다. 교과서도 바뀌지 않을까. 독립운동가들이 잘못해서 우리는 지금 일본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

 

얼마전 이용수씨가 여가부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을 국민의힘 관계자들에 전했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솔직히 이제는 그다지 아무 생각이 없다. 이용수씨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정의연의 방식에 반대해 온 여성주의자들과 수구세력과 손잡고 정의연과 윤미향을 공격하는데 앞장섰다. 그럼으로써 대신 추진하려 했던 자신의 방식이 무엇이든 정의연이 사라진 자리를 대신하는 건 그동안 수구와 여성주의자들이 추구해 왔던 위안부역사의 삭제다. 누가 과연 앞장서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전력을 기울여 왔는가. 

 

한겨레마저 정의연을 외면하고 위안부문제를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으로 갈음하려 한 이유인 것이다. 한겨레의 정체성이란, 아니 한국 진보의 정체성이란 바로 그것이었으므로. 시사기획 '창' 당시에도 일본 기자와 쿵짝을 맞추며 한국 정부의 입장을 폄훼하는데 앞장섰던 것이 바로 한겨레 기자놈이었다. 한국민족은 없다. 한국인은 없다. 한국도 없었으면 좋겠다. 솔직한 속내일지 모르겠다. 과연 지금 일본이 그리 좋기만 한 지는 모르겠다만. 솔직해졌다.

결국 한국 개신교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다. 신천지가 이단인 이유는 추수라는 행위를 통해 교회라고 하는 이권을 빼앗기 때문이지 교리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물론 무당이 미신이고 우상숭배인 이유도 다르지 않다.

 

오래전 개신교에서 한다는 안수기도라는 걸 영상으로 본 적이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거랑 무당 굿이랑 도대체 뭐가 다른가? 방언이란 빙의다. 설마 유일신 여호와가 사람에게 깃들어 대신 말하게 했을까? 성경 어디에 그런 귀절이 있을까? 사람은 단지 신의 말씀을 전할 뿐 사람이 신을 대신할 수는 없다. 신성모독이다.

 

그러니 문제라는 것이다. 무당에게 굿을 하면 목사에게 굿하는 사람이 줄어든다. 무당에게 점을 치면 목사에게 점을 치는 사람도 줄어든다. 그러니 무당에게 줄 복채를 나에게 달라. 그게 무당이 미신이고 우상숭배였던 이유다. 마찬가지로 신천지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단지 추수가 문제일 뿐이다. 진짜 신천지가 한국 주류교회에 의해 주류교단으로 인정받는 날이 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김장환이라면 개신교 쪽에서 지분이 꽤 되는 인물인 모양이다. 신천지로 욕해도 김장환으로 받는다는 이야기가 벌써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김장환이 인정했으면 무당도 신천지도 상관없다. 그러니 목사끼리 합의 봤으면 산 소의 껍질을 벗기든 어쨌든 그건 문제없는 정상행동이 된다. 그래서 재작년 신천지 파동 때도 많은 이들이 지적했을 것이다. 도대체 개신교랑 신천지의 차이가 무엇이냐? 개신교 스스로가 보여준다. 신천지도 무당도 전혀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앞으로 우상숭배 어쩌고 지랄하는 개독 보면 할 말이 생겨서 요즘 아주 기분이 좋다. 단군상도 용납 못하겠다던 개신교 버러지들이 무당도 괜찮다고 허허거리는 꼬라지라니. 장승이고 불상이고 죄다 목자르고 불사르던 놈들이 신천지는 상관없다고 좋아라 하는 중이다. 그놈들의 이단은 어째 저리 선택적인 것일까.

 

교리의 엄밀함조차 없다. 종교로서 지켜야 할 가이드가 이리 허술하다. 추구하는 바 지향이 모호하다. 그래서 개신교에 지금 남은 게 무얼까? 목사? 목사를 섬기는 종교였던가? 기독교가 한국 와서 고생 많이 한다. 버러지새끼들.

주 120시간 노동을 주장해도, 최저임금제 폐지를 주장해도 절대 자칭진보는 분노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노동자와 약자들을 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들은 노동자이고 사회적인 약자일 것인가.

 

소고기가 아닌 삼치를 먹는다고 한탄한다. 나는 이렇게 가난하다. 그러므로 나는 사회적 하층에 속한 구성원이다.

 

가난하니까 120시간 노동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시급 3천원에도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다 뒈지면? 자칭 진보를 찾겠지. 그러면 자기들에게 힘이 된다.

 

윤석열이 저따위 주장을 했어도 분노하는 자칭 진보를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그토록 노동자를 위하는 척 하던 한겨레도 정의당도 윤석열의 저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그나마 최선이 침묵하거나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그래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래도 되고 아니더라도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노동자와 약자들을 위한 진보라?

 

오래전부터 주장해 온 바가 있었다. 둘 중 하나다. 윤석열이 서울대라는 사실에 이끌렸거나, 진보라는 사치를 즐기는 자신들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거나. 

 

그나마 지면에 비해 진보적이라는 한겨레tv도 다르지 않았다. 정의당의 논평 또한 예상 안에 있었다.

 

매일 11시간 12시간씩 일한다. 뒈질 것 같다. 하지만 저들의 눈에 나란 인간은 더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당한 약자일 뿐이다. 120시간 일하고 나면 과연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돈이 있어야 진보도 한다. 노동자는 진보도 못된다. 내가 오래전 깨달은 사실일 것이다.

 

심상정이 노동자를 위한다? 씨발년, 너는 그냥 운동하려 노동한 거고. 쌍년은 말할 필요가 없다. 개씨부랄년.

그래도 한때는 자칭 진보의 페미니즘에 대해 그 진정성 만큼은 인정하고 있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야 어쨌든 방향성 만큼은 그들이 추구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페미니즘이 원래 추구하던 바도 그리 나쁜 쪽은 아니었다.

 

그런데 김학의로 바뀌었다. 김학의의 범죄혐의는 너무 명확하다. 그 가운데서도 여성과 관련해서 그 범죄사실들은 분노를 넘어 참혹과 참담의 영역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어찌 인간이 이와 같은 추악한 범죄를 같은 인간을 상대로 저지를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자칭 진보는 아니었다. 정의당과 한겨레의 입장은 달랐다. 그럼에도 검찰이 무혐의라 했으니 김학의는 무고하다. 김학의에 대한 재수사는 정권차원의 범죄이며 문재인 대통령을 감옥에서 죽게 만들 충분한 혐의가 된다.

 

아무리 한겨레를 비웃고 욕했어도 설마 이렇게까지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정의당에 쌍욕을 하고 조롱과 비아냥을 퍼부었어도 설마 김학의의 편에서 그를 수사한 검사와 지시한 청와대를 적대할 것을 감히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실제 그러고 있었다. 김학의를 출국금지시켰으니 문재인을 죽여야 한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물론 수사한 검사들까지 아예 싸그리 씨를 말려야 한다. 그래서 이성윤 고검장의 승진도 자칭진보는 반대했을 것이다. 검사가 기소했는데 승진이 웬 말인가? 박범계 인사청문회에서도 그 사실을 캐묻고 있었다. 김학의가 무사히 도피할 수 있도록 법무부는 문을 열어주어야 했었다.

 

김지은에 대해 막말을 했어도 감히 누구도 김건희를 비판하지 못한다. 그러나 박원순에 대해서는 실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2차가해라며 같은 여성인 계약직 방송인을 내쫓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여성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조동연씨의 성폭행 피해사실은 있는대로 파헤치며 김건희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다물어야 하는 저들의 여성주의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자칭 진보의 여성주의가 가짜라는 이유인 것이다. 거짓이고 기만이다. 저들의 여성주의가 진짜였다면 김학의의 피해자들은 보호받았어야 했고, 김학의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정당했어야 했다. 안희정에게 성폭행당했다는 김지은씨에 대한 김건희의 비난과 조롱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어야 마땅했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1980년대 여성주의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여자와 여성은 다르다.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할 여성은 일반의 여자와 다른 존재들은 것이다. 권인숙도 처음에는 보호받을 가치가 없는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권인숙이 박원순을 배신한 이유다. 그래야 그녀는 여성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째서 이수정인 것인가. 그래서 이수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민의힘의 여성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대한민국에 진보는 없다. 자칭 진보만 있을 뿐. 인간의 인권이 모두 같지는 않다. 그게 자칭 진보라는 현실이다.

 

정의당이 진보? 한겨레가 진보? 경향일보가 나은 점은 그나마 진보를 자처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녹색당도 다르지 않다. 계급적으로 오히려 저들은 옳다. 국민의힘에 더 가까운 저들의 현실을 반영한다. 버러지들인 것이다. 한 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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