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게임업계에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때 개발자들 사이에서 상식처럼 오가던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게임회사는 팀장급 베테랑 한 명에 나머지는 신입만 있어도 문제없이 돌아간다. 이 말의 연장이 개발자가 되려면 서른 넘어서 먹고 살 방책은 준비해 두고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다른 IT업계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임개발 역시 다른 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요하는 고도의 작업이란 전체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말 그대로 시키는대로만 하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단순작업들이다. 한 마디로 그저 주어진 툴만 제대로 쓸 줄 알아도 시키는대로만 할 줄 아는 머리만 있으면 아무나 데려다 놓고 시켜도 심각한 상황까지는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그런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춘 베테랑이 한 명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또 떠도는 이야기가 신입사원 뽑아서 최저연봉만 주다가 연봉 올려줄 때 쯤 되면 해고하고 다시 신입사원으로 그 자리를 채워 넣는다는 것이었다. 1년차든 2년차든 어차피 결과에는 크게 차이가 없다. 2년차 3년차까지도 팀장급에서 제대로 지시를 하고 관리만 해주면 결과에서 크게 유의미한 차이가 나거나 하지 않는다. 심지어 당시에는 갈수록 개발자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노하우가 좋아지면서 신입이 오히려 기존의 직원보다 더 나은 경우마저 적지 않았다. 그저 현장에서 구르며 시간만 보내던 기존직원에 비해 신입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이나 트랜드에 더 익숙하기도 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그것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팀장급 베테랑들인 것이고.

 

서른 넘으면 먹고 살 방편을 준비하고 뛰어들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1년 남짓 다니다 잘리고 또 잘리고 잘리고 하다 보면 그저 거쳐간 회사들만 많을 뿐 제대로 된 경력이나 경험을 쌓기란 어려운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중에는 오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다른 먹고 살 길을 찾아 나서야만 한다. 기술도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서 따라가기 버거운데 엉덩이 붙이고 일할 안정적인 자리 하나 없이 떠도느라 시간만 허비하고 나이만 먹고 나면 다루기 힘들다고 회사에서 오히려 꺼리게 된다. 신입도 아니고 경력직도 아니고, 아마 지금 계약직 가운데 이 말에 공감하는 이가 없지 안을 것이다. 그리고 끝이다.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 해 본 적 없는 일을.

 

사용자 입장에서 오히려 회사에서 오래 일한 관리자급 인사들은 매우 요긴한 자원일 수 있는 것이다. 실무에서 오래도록 경험을 쌓아 왔고, 따라서 실무에서의 역량 역시 이미 검증된 이들이란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능력 또한 신입들과 차별되는 지점이다. 더구나 그 때 쯤 되면 여기저기 인맥까지 상당하다. 차라리 그 나이가 되어서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짐덩어리로 남아 있다면 이전에 잘라야 할 때 잘라내지 못한 찌꺼기들일 수 있다. 누구이겠는가? 돈은 신입사원보다도 더 받으면서 아직 베테랑이라 부를 만큼 실력도 경험도 쌓지 못한 애매한 공간에 있는 이들이다. 아마 나이로 치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가 나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내가 사용자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원을 일부 해고해야 한다. 해고해도 좋을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면 이미 실력과 실적으로 검증된 관리자급과 괜히 연차만 오래되어 돈만 더 많이 받는 5년차 이하 가운데 누구를 먼저 자르겠는가? 무엇보다 5년 정도 연차는 금방 대체가 가능하다. 거의 대부분 아무나 데려다 놓고 관리자급에서 관리만 제대로 해주면 업무를 수행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다. 그래서 해고를 자유롭게 하면 누구를 먼저 자르겠는가.

 

지금 내가 다니는 곳도 그렇다. 단순노동인데 그마저도 연차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일하는 것이 다르다. 일정 연차 이상 되면 거의 혼자서 신입 몇 사람 분을 해내는 경우마저 있을 정도다. 반면 들어온지 몇 달 안 된 정도라면 아무나 데려다 놓고 시켜도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일이 바쁠 때는 기간제로 잔뜩 뽑았다가 그냥 잘라버린다. 그 가운데 일 좀 잘하겠다는 몇 명 만 남겨서 무기직으로 전환시켜 계속 같이 간다. 그나마 최저임금 받는 곳이라 급여에 차이가 없는데도 이렇다. 

 

그러니까 웃기는 것이다. 정규직 해고 자유롭게 해주면 그만큼 일자리가 생겨서 청년들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것이다. 과연 진짜 그렇겠는가. 해고가 자유로워지면 그 해고를 결정하는 이들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만일 진짜 무능하고 인성도 개같은 인사가 자기 윗자리에 있다면 그는 어떻게 그 자리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런데도 과연 그 자유로운 해고가 그 무능하고 인성 더러운 윗사람부터 자르겠는가. 괜히 연차 쌓여서 비용만 더 들어가는 젊은 자신일 것인가.

 

오래 다닌 만큼 여기저기 인맥도 있고 우호적인 이들도 있어서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는 기성세대들과 달리 신입들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자기자신만으로 선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노조의 도움을 받기에는 젊은 그들 스스로가 노조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부정하면서 노조의 도움을 받아 연명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치졸하고 비루한 짓거리인가. 공정을 사랑하는 20대 남성들이 그런 짓거리는 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고 싶다.

 

아무튼 그래서 웃기는 것이다. 최저임금제가 폐지되면 과연 누가 더 영향을 받겠는가? 20대 남성과 4050 남성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비율이 높을지 한 번 생각해 보라. 더구나 지금 최저임금 받으며 일하고 있을 20대 남성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어느 나이대의 사람들일까? 무엇보다 매일 돈없다 지랄하는 나도 그동안 저금해 놓은 돈이 있고, 내 명의의 아파트도 있다. 그게 기성세대란 것이다. 법이 좆같이 바뀌더라도 그냥 한 10년 버티면 어찌되었거나 연금 받으면서 놀고 먹을 수 있는 신분이란 것이다. 하지만 20대 남성들은 앞으로 수십년을 그런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

 

내가 지금 이번 선거의 결과를 벼르고 있는 이유다. 20대 남성들은 말한다. 윤석열이 좆같이 하면 자기들이 촛불들고 쫓아내겠다. 과연 가능할까? 늬들이 뽑아준 오세훈이 과연 광화문 광장에서 편하게 촛불이나 들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언론은 또 어떤가? 지금 언론 가운데 윤석열을 상대로 그나마 비판적인 기사를 내는 곳이 MBC 정도인데 윤석열이 공언한대로 선거결과에 따라 더이상 그같은 입장을 견지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언론에 있는대로 휘둘리는 20대 남성들이 언론의 지원 없이 과연 끝까지 정권과 싸울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말한 것처럼 어차피 내 일이 아니므로 굳이 나와 같은 이들이 그들을 지지할 일따위 없을 것이다.

 

정치보복하라고 했다. 아예 민주당의 씨를 말리라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이미 정치권은 학습했다. 20대 남성들은 월급을 올려주는 것도, 일하는 시간을 줄여주는 것도, 일자리가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될수 있도록 하는 것도 모두 바라지 않는다. 최저임금을 없애고 근로시간을 늘리고 해고를 쉽게 하도록 해주는 후보에 표를 몰아준다. 그게 바로 선거라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도 정치권에서 자기들 목소리를 들어 줄 것이다. 여가부 해체한다고 해놓고 이수정 입을 빌어 성범죄 전담부서를 새로 만들겠다는 수작을 부려도 넘어가는 머저리들을 위해 과연 누가 무엇을 해 줄 것인가.

 

그래서 윤석열이 당선되서 다 망하면 기성세대가 더 피해를 입을 것이다? 나는 10년만 더 버티면 된다니까? 모아 놓은 돈도 있고, 어쨌든 집도 있다. 연금 좀 줄어들어도 어차피 혼자라 크게 어려울 것도 없다. 자식 있는 집은 바로 직격탄 맞는 것이 그 자식세대인 20대 남성들일 것이다. 한 번 두고보자. 더이상 설득은 포기했다. 이해도 그만두기로 했다. 어떻게 해도 윤석열에 대한 지지만은 포기하지 못하겠다. 다른 무엇도 아닌 복수를 위해서. 한 번 두고보자.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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