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벌써 오래전 일이다. 아마 내가 중학생 때일 것이다. 기억나는 배경이 그렇다. 좁고 낮은 다락방,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고물라디오가. 내 다음블로그 아는 사람이면 익숙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공부하며 라디오를 듣다가 어느 여자아이의 인터뷰에 울컥 분노가 치밀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 돼서 불우한 이웃들을 도울 거에요."
대충 이런 맥락이었는데, 물론 말뜻은 좋다. 그러니까 힘들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그들은 타인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월한 자신이 돕겠다.
자격지심이었는지 모른다. 나 역시 그 여자아이가 말하던 불우한 이웃 중 하나였으므로. 아마 당시까지도 동사무소에서 쌀을 받아먹고 있었을 것이다. 의료보험증 역시 생활보호대상자라고 선명히 찍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병원도 생활보호대상자들 잘 받아주는 특정 병원만 다녀야 했었다. 아주 나이많고 인심 더러운 할아버지였는데.
물론 그 여자아이는 선의로 그런 말을 한 것일 게다. 그렇게 배웠을 테니까. 엄마는 말했을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자라서 저렇게 된다. 선생님도 말했을 것이다.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런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저렇게 되어서는 안되겠다. 그것을 넘어 저들은 열심히 하지 않은 탓에 낙오한 실패자들이다. 그런 우월감에서 저들은 자신이 도와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마 오래전 이야기한 적 있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 돕겠다고 사회복지사가 되고 공무원이 된 지인의 아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작 학을 떼더라고. 그렇게 욕심이 많단다. 그렇게 사납고 거칠더란다. 입에는 욕을 달고 살고, 행동은 무례하고. 그래서 말해주었다. 원래 그 사람들이 그렇다. 아니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그렇다.
가난하고 선량한 사람이란 없다. 사람이 가난한데 마냥 선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돈 한 푼이 아쉬운데 그 한 푼을 위해서라도 더 악착같아야 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만큼 마음도 급하고 말과 행동에도 중간이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런 사납고 거친 모습에서 서로를 향한 선의와 인정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그들인 것이다. 그게 계급이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 도덕도 윤리도 모든 가치와 규범이 다르다.
그때 내 또래 아이들에게 개새끼 시팔놈 쌍년은 욕이라보다 그냥 수사였다. 오히려 친해서 이새끼 저새끼 하고, 오히려 더 친하기 때문에 죽일놈 빌어먹을 놈 욕하고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오래전 말에 욕이 섞였다는 이유로 그 의도를 무시하려는 자칭 진보들에게 분노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는 곧 내가 쓰던 언어였다. 하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이 쓰는 언어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던 방식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 같은 곳에서는 아예 서로 소통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부르주아는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다. 그러니까 늬들도 우리 사는 곳을 넘보지 말라. 양반들도 그렇게 상놈들을 멸시했었다. 자신들이 쓰는 예와 문화를 저들은 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자칭 진보들의 선의에 대해 의심하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 더욱 자칭 진보 가운데서도 오직 노회찬 만큼은 특별하게 여겼던 것이었다. 고상한 언어를 쓰지 않는다. 있어 보이는 언어에 굳이 기대려 하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순수하고 그만큼 질박해서 직관적으로 사람의 가슴에 바로 와 닿는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어떨까?
심상정이 약자들을 위해 싸워 왔다는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바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안다. 심상정은 처음부터 가진 사람이었다. 있는 사람에 속해 있었다. 그 말과 행동은 거만하고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깔아보고 있었다. 심상정이 노무현을 어찌 대했는지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당시 자칭 진보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고작 고졸, 고작 상고, 더구나 민주화운동도 저 멀리 지방인 부산에서, 그래서 말했던 것이다. 저들이 노빠들을 혐오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들은 엘리트인 것이다. 서울대 학벌에, 최소한 연고대에, 그에 준하는 대학들에, 더구나 학생회 임원에, 운동도 서울에서 안기부와 직접 맞닥뜨리며 했었다. 노회찬도 고려대라고 무시당했는데 하물며 노무현이야. 노회찬도 김대중에게 공천받은 것이 평생 멍에가 되었는데 하물며 노무현 따위야.
어째서 정의당은 지금 민주당에 이토록 적대적인가. 몇 번이나 말했을 것이다. 저들의 계급의식에 따르면 문재인은 그나마 노무현보다는 나은 수드라에 가깝다. 자신들은 그래도 크샤트리아는 된다. 브라만은 당연히 오랫동안 정권을 잡아 온 수구정당이다. 그런 정의당이 말하는 약자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노동자가 노동자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과연 정의당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 가운데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이려, 소수자이고 약자이려 하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그런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한가? 그래서 그들의 말과 행동은 항상 거만하고, 그래서 자신들이 위한다는 이들을 위에서 굽어보며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진짜 약자들은,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고스란히 겪었던 이들은 자격지심에라도 그런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느낀다.
어째서 가난한 이들이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는가.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인 약자들, 소수자들이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인가? 차라리 민주당을 찾아간다. 그보다는 보수정당을 찾아간다. 민주당도 사실 그런 것이 없지 않다. 정의당보다는 못해도 저들도 가진 자들인 때문이다. 그런데 보수정당은 그보다도 더 천박하다. 나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저열하고 추악하다. 그래서 더 친근감이 든다. 민주당은 너무 있는 척 아는 척 고상한 척 해대서 재수가 없다. 강준만이 말하는 싸가지없는 진보다. 정확히 보수가 품위가 없는 것이다. 뿌리없는 사회의 한계다. 유럽사회에서 보수란 그만큼 더 엄격한 품위와 예의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행동이 나에게 너무 불리하니까.
본능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끼가 진짜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 나를 이용하려는 것인가 아닌가. 그래서 내게 실제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 하루하루가 전쟁인 이들에게 그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수단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싫은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들이란 결국 타인이며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까 윤석열 당선된다고 좋아서 심상정 찍으라 운동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되면 월급 줄고, 일하는 시간도 늘어날 수 있다. 최근 그래도 주 52시간 지키려 노력하느라 조금 몸이 편해졌는데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겨우 무기직 되었는데 이마저 쉽게 잘릴 수 있다. 최근엔 노사합의로 정년까지 연장되었다. 그래서 모두가 마음이 불안한데 정의당만 신나 있다. 어째서 그런가?
아무튼 그래서 더욱 스스럼없이 글에 욕설을 섞어 쓰는 것이기도 하다. 나 자신의 계급에 대한 자각이다. 내가 속한 계급이 어디인가. 내가 저들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버러지년놈들. 증오에는 뿌리가 있다. 이유는 없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