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실패한 정부인가? 맞다. 정권재창출에 실패했으니. 국민이 판단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실패했고 그러므로 새로운, 정반대의 정부가 필요하다. 그래서 윤석열이 당선되었다.

 

윤석열이 대통령후보가 되고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다. 문재인을 때려잡겠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어떠했는가? 당장 대통령부터가 민주당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당장 자영업자들이 죽어나가는데 그들을 위한 재정집행도 거부하며, 윤석열과 그 가족에 대한 검증까지 행정부 차원에서 거부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 그 전부터도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하고, 전횡을 일삼는 것을 또한 역시 방관화다시피 하고 있었다. 윤석열을 지금과 같이 키워 준 것은 과연 어디의 누구인가?

 

고비가 있었다. 그때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선택지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민주당에 도움이 되었는가? 문재인 정부에서 잘 한 것이란 고작 방역 하나 뿐인 것이다. 그것 말고 뭘 한 것이 있는가? 소득주도성장은 온데간데 없고, 당연히 뒤따라야 할 재정정책을 소홀히 한 결과 혼란만 부추기고 말았다. 부동산 정책 역시 전문성이라고는 없는 김현미에게 오로지 여성배려 한 가지만을 이유로 맡긴 결과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 결과가 이번 선거인 것이다. 사실상 대통령의 방임 아래 이재명 혼자 싸워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사실 전부터도 그 때문에 불편함을 느꼈었고 그래서 비판도 제법 심하게 했었다. 이제 와서는 될 대로 되라다. 대통령 자신부터 정권 재창출따위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행동하는데.

 

일주일 뒤 이 블로그도 폭파할 예정이다. 아예 뉴스 자체를 보지 않겠다. 민주당은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이 제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뿐. 정의당 욕할 게 아니다. 정부가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 화가 날 뿐이다.

그러고보니 벌써 오래전 일이다. 아마 내가 중학생 때일 것이다. 기억나는 배경이 그렇다. 좁고 낮은 다락방, 쓰레기통에서 주워 온 고물라디오가. 내 다음블로그 아는 사람이면 익숙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때 공부하며 라디오를 듣다가 어느 여자아이의 인터뷰에 울컥 분노가 치밀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 돼서 불우한 이웃들을 도울 거에요."

 

대충 이런 맥락이었는데, 물론 말뜻은 좋다. 그러니까 힘들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그런데 그 말을 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그들은 타인이다. 그들은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월한 자신이 돕겠다.

 

자격지심이었는지 모른다. 나 역시 그 여자아이가 말하던 불우한 이웃 중 하나였으므로. 아마 당시까지도 동사무소에서 쌀을 받아먹고 있었을 것이다. 의료보험증 역시 생활보호대상자라고 선명히 찍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병원도 생활보호대상자들 잘 받아주는 특정 병원만 다녀야 했었다. 아주 나이많고 인심 더러운 할아버지였는데.

 

물론 그 여자아이는 선의로 그런 말을 한 것일 게다. 그렇게 배웠을 테니까. 엄마는 말했을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나중에 자라서 저렇게 된다. 선생님도 말했을 것이다. 지금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저런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은 저렇게 되어서는 안되겠다. 그것을 넘어 저들은 열심히 하지 않은 탓에 낙오한 실패자들이다. 그런 우월감에서 저들은 자신이 도와야 할 대상이 되는 것이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아마 오래전 이야기한 적 있을 것이다. 어려운 사람들 돕겠다고 사회복지사가 되고 공무원이 된 지인의 아내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작 학을 떼더라고. 그렇게 욕심이 많단다. 그렇게 사납고 거칠더란다. 입에는 욕을 달고 살고, 행동은 무례하고. 그래서 말해주었다. 원래 그 사람들이 그렇다. 아니 사람이란 존재 자체가 그렇다.

 

가난하고 선량한 사람이란 없다. 사람이 가난한데 마냥 선량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돈 한 푼이 아쉬운데 그 한 푼을 위해서라도 더 악착같아야 하는 것이 가난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만큼 마음도 급하고 말과 행동에도 중간이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도 그런 사납고 거친 모습에서 서로를 향한 선의와 인정을 읽을 수 있는 것이 또한 그들인 것이다. 그게 계급이다.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도 다 다르다. 도덕도 윤리도 모든 가치와 규범이 다르다.

 

그때 내 또래 아이들에게 개새끼 시팔놈 쌍년은 욕이라보다 그냥 수사였다. 오히려 친해서 이새끼 저새끼 하고, 오히려 더 친하기 때문에 죽일놈 빌어먹을 놈 욕하고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오래전 말에 욕이 섞였다는 이유로 그 의도를 무시하려는 자칭 진보들에게 분노하기도 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이 쓰는 언어는 곧 내가 쓰던 언어였다. 하지만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들이 쓰는 언어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

 

부르주아가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던 방식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 같은 곳에서는 아예 서로 소통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부르주아는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다. 그러니까 늬들도 우리 사는 곳을 넘보지 말라. 양반들도 그렇게 상놈들을 멸시했었다. 자신들이 쓰는 예와 문화를 저들은 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자칭 진보들의 선의에 대해 의심하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 더욱 자칭 진보 가운데서도 오직 노회찬 만큼은 특별하게 여겼던 것이었다. 고상한 언어를 쓰지 않는다. 있어 보이는 언어에 굳이 기대려 하지 않는다. 그의 언어는 순수하고 그만큼 질박해서 직관적으로 사람의 가슴에 바로 와 닿는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어떨까?

 

심상정이 약자들을 위해 싸워 왔다는 말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바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 안다. 심상정은 처음부터 가진 사람이었다. 있는 사람에 속해 있었다. 그 말과 행동은 거만하고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깔아보고 있었다. 심상정이 노무현을 어찌 대했는지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당시 자칭 진보 가운데서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고작 고졸, 고작 상고, 더구나 민주화운동도 저 멀리 지방인 부산에서, 그래서 말했던 것이다. 저들이 노빠들을 혐오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들은 엘리트인 것이다. 서울대 학벌에, 최소한 연고대에, 그에 준하는 대학들에, 더구나 학생회 임원에, 운동도 서울에서 안기부와 직접 맞닥뜨리며 했었다. 노회찬도 고려대라고 무시당했는데 하물며 노무현이야. 노회찬도 김대중에게 공천받은 것이 평생 멍에가 되었는데 하물며 노무현 따위야.

 

어째서 정의당은 지금 민주당에 이토록 적대적인가. 몇 번이나 말했을 것이다. 저들의 계급의식에 따르면 문재인은 그나마 노무현보다는 나은 수드라에 가깝다. 자신들은 그래도 크샤트리아는 된다. 브라만은 당연히 오랫동안 정권을 잡아 온 수구정당이다. 그런 정의당이 말하는 약자를 위한 정의란 무엇인가?

 

노동자가 노동자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과연 정의당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 가운데 지금도 여전히 노동자이려, 소수자이고 약자이려 하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그런 사람이 과연 있기는 한가? 그래서 그들의 말과 행동은 항상 거만하고, 그래서 자신들이 위한다는 이들을 위에서 굽어보며 가르치려 드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진짜 약자들은,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고스란히 겪었던 이들은 자격지심에라도 그런 의도를 더욱 선명하게 느낀다.

 

어째서 가난한 이들이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는가. 어렵고 힘든 처지에 놓인 약자들, 소수자들이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인가? 차라리 민주당을 찾아간다. 그보다는 보수정당을 찾아간다. 민주당도 사실 그런 것이 없지 않다. 정의당보다는 못해도 저들도 가진 자들인 때문이다. 그런데 보수정당은 그보다도 더 천박하다. 나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저열하고 추악하다. 그래서 더 친근감이 든다. 민주당은 너무 있는 척 아는 척 고상한 척 해대서 재수가 없다. 강준만이 말하는 싸가지없는 진보다. 정확히 보수가 품위가 없는 것이다. 뿌리없는 사회의 한계다. 유럽사회에서 보수란 그만큼 더 엄격한 품위와 예의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행동이 나에게 너무 불리하니까.

 

본능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새끼가 진짜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 나를 이용하려는 것인가 아닌가. 그래서 내게 실제 이익이 되는가 아닌가. 하루하루가 전쟁인 이들에게 그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수단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싫은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사회적 경제적 약자와 소수자들이란 결국 타인이며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다. 그러니까 윤석열 당선된다고 좋아서 심상정 찍으라 운동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 당선되면 월급 줄고, 일하는 시간도 늘어날 수 있다. 최근 그래도 주 52시간 지키려 노력하느라 조금 몸이 편해졌는데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겨우 무기직 되었는데 이마저 쉽게 잘릴 수 있다. 최근엔 노사합의로 정년까지 연장되었다. 그래서 모두가 마음이 불안한데 정의당만 신나 있다. 어째서 그런가?

 

아무튼 그래서 더욱 스스럼없이 글에 욕설을 섞어 쓰는 것이기도 하다. 나 자신의 계급에 대한 자각이다. 내가 속한 계급이 어디인가. 내가 저들을 용납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버러지년놈들. 증오에는 뿌리가 있다. 이유는 없어도. 

 

확실히 일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윤석열이 될까봐 불안한 사람이 적지 않다. 아니 윤석열 찍겠다는 사람들조차 설마 최저임금 낮추고 노동시간 늘리겠는가 막연하게 기대할 뿐이다. 진짜 임금 낮아지고 일하는 시간 늘어나면 어떻게 하는가? 그런데 지금 정의당 분위기 어떤가? 윤석열 된다고 좋아하지 않는가?

 

벌써 오래전에 정의당이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기대 자체를 접었었다. 정의당에 있는 놈들 가운데 진짜 노동자가 몇이나 되는가? 전임노조집행부면 그냥 노조관계자지 노동자가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류호정도 자백했다. 정의당은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 아니다.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건 가짜뉴스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차피 윤석열 될 테니 그냥 심상정이나 찍으라는게 말이 되는가?

 

노동자를 위해서 윤석열의 당선을 막는 것과 심상정이 한 표를 더 얻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은 선택일 것인가. 그렇다고 정의당더러 양보하라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굳이 사퇴할 이유도 없고 단일화할 필요도 없다. 그래봐야 사실 민주당 지지율에 0.000001도 도움이 안된다. 그렇더라도 윤석열이라는 괴물에 대한 경각심 정도는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긴 그래서 홍준표도 말한 것일 게다. 보수가 진보를 지지하고 진보가 보수를 지지하는 희한한 선거다. 여기서 보수가 박사모나 홍카였다면 진보는 누구였을까? 보수를 지지하는 진보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그동안 보수정당에서 출마한 어떤 대선후보들보다도 더 극단적인, 아예 중도에 대한 배려나 고려가 없는 극단적인 후보에 대해 어째서 자칭 진보에서는 한 마디 비판도 나오지 않는 것일까? 오히려 기뻐한다. 이재명은 망했고 윤석열이 대통령 되니 우리 세상이다. 한겨레의 태도부터도 분명하다. 

 

정의당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다. 내가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사람 헷갈리게 만든다. 직장에도 정의당 찍어야 노동자 좋아지지 않느냐는 헛소리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래서 정의당이 노동자를 위해 뭘 해 줬는데? 정작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누가 나를 도와줬었는데? 정의당은 아니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물론 앞으로도. 씨발것들이다.

새삼 느끼는 것은 저쪽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의 부정이나 비리에는 무척 관대하다는 것이다. 원래 그런 정당이었으니까. 정의로운 척 도덕적인 척 선한 척 하지 않는 정당이니 그래도 된다. 반면 민주당은 아니었으니 조금이라도 흠결이 발견되면 위선이 된다.

 

그래서 저쪽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후보의 공약에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어차피 안 지킬 걸 아니까. 주 120시간 근로도, 최저임금제 폐지도, 정규직 해고자유화도 결국은 안 지킬 것이니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해주었다. MB가 대운하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설마 하겠냐며 의문을 표했었다. 그런데 어떠했는가? 그래도 안 통한다.

 

불리한 공약은 설마 안 지킬 것이기 때문에, 불리한 이슈들은 원래 그런 정당이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정당이 정권을 잡아야만 나에게 좋다. 뭐가? 일 못해서 원래 있던 보직에서 잘리고 온 주제가 말이다. 정규직 해고 자유화하면 제일 먼저 잘릴 두 사람이 그러고 있다.

 

아무튼 편하게 정치하는 정당이란 것이다. 그래서 지지율이 높구나.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할 수 있는 말이란 '정권교체' 한 마디 밖에 없다. 그래서 이야기하면 거의 내가 주도권을 잡는다. 누가 더 많은 무기를 쥐고 있는가. 결국 정치인의 역량이 결정하는 것이다. 개표방송은 보지 않으련다. 심장에 안 좋다.

바로 언어의 힘인 것이다. 혼돈에 눈코귀입을 만들어주자 온통 피를 흘리며 죽어 버렸다. 하늘이라 부르니 하늘이 생기고, 땅이라 부르니 땅이 생겨나고, 코끼리라 부르니 코끼리가 되고, 개구리라 부르니 개구리가 된다. 언어가 인지를 만든다. 인지가 존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 아주 오래전 그리스인들은 제우스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어떤 기독교인들은 야훼의 존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언어가 그리 정의했으니까.

 

그래서 이대남이었던 것이다. 저들이 곧 20대 남성이다. 20대 남성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저들의 여론이 바로 20대 남성의 여론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보안원으로 일하던 20대 남성들은 저들이 말하는 20대 남성에 포함되지 않는다. 여성을 배려하고 소수자에게 양보하는 남성은 저들 사이에서도 철저히 배제된다. 저들이 말하는 무한경쟁의 공정이 아닌 보편적인 정의를 주장하는 이들 역시 저들로부터 철저히 배격된다. 그러고 남은 20대 남성이다. 그렇다면 저들을 정의할 다른 단어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아마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2번남이라는 말을 만들어 쓰기 시작하자 순식간에 거의 모든 커뮤니티로 퍼져나가고 모습을 보면. 특히 20대 남성들 자신이나 그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더욱 그러한 감정들을 느꼈을 것이다. 저 새끼들이랑 같이 엮이기 싫다. 내가 사랑하는, 혹은 좋아하는, 혹은 아끼는 누군가를 저들과 한 데 묶기는 너무 싫다. 그런데 달리 쓸 용어가 없었다. 그런 가운데 언론은 저들이야 말로 20대 남성 전부라며 갈라치고 있는 중이고. 그런데 드디어 만들어진 것이다. 저들을 정의할 언어가.

 

2번남이란 혐오의 표현이 아니다. 정확히 대상에 대한 구분과 분리의 표현이다. 저들은 이래서 우리와 다르다. 우리와 다른 존재다. 만일 2번남이 혐오의 표현이라면 그 구분의 기준이 저들이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혐오의 언어들에서 비롯될 것이다. 혐오는 관용의 대상이 아니다. 혐오는 배격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이 보이는 혐오를 보편적인 인간들로부터 분리하여 배제한다. 혐오는 혐오함으로써만 혐오를 배제할 수 있다.

 

2번남이란 한 마디로 혐오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미천한 자존감을 충족할 수 없는 한심한 존재들인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래서 그 누군가에게 탓을 돌리고 그를 폭력으로써 대신 분출하려 한다. 역사상 그런 한심한 젊은 세대는 수도 없이 있어 왔었다. 그런 한심한 젊은 이들에게 힘과 명분과 정체성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젊은 세대의 대표로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누가? 언론과 정치권이.

 

재미있는 것은 평소 불관용에 관용은 없다며 떠들어대던 자칭 진보가 정작 저들 이대남의 혐오표현에 대해서는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준석의 혐오에 편승하는 정치에 오히려 잘한다며 박수까지 치고 있다. 어째서 민주당에는 이준석과 같은 인재가 없느냐 탄식하는 것이 지금 한겨레의 수준이다. 그 잘난 자칭 진보 가운데 이준석의 혐오정치를 대놓고 비판하는 이를 단 한 사람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아무튼 이로써 정리가 되었다. 맞다. 20대 남성 전부가 아니다. 내가 그동안 비판해 온 것도 모든 20대 남성을 싸잡은 것이 아니었다. 오래전에도 그런 놈들이 있었다. 말했었지만 지금 40대가 된 놈들 가운데도 20대 때는 비슷한 주장을 하던 놈들이 적지 않았었다. 노빠들 가운데도 있었다. 아마 지금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도 그런 한심한 병신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주 적절한 단어는 아니라 보지만... 아무튼 유용하다. 잘 쓰겠다. 2번남이라... 매우 적절하다.

과거 많은 선거에서 대부분 명분은 민주진영에 있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믿었었다. 반면 보수진영은 실리를 가졌다. 당장 선거를 치르더라도 자신들은 절대 지지 않는다. 오히려 무조건 선거만 치르면 자신들이 이길 것이다. 그래서 민주진영에서는 상대적으로 정치적인 의지를 드러내는데 적극적이었고 보수진영은 소극적이었다. 굳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말로써 드러내기보다 행동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박근혜 탄핵과 그 전부터 시작된 몇 차례의 선거에서의 일방적인 패배는 저들의 그런 여유를 빼앗아 버렸다. 지난 5년 동안의 일방적인 언론지형은 더구나 자신들에 명분이 있다는 확신마저 가지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자신들의 편을 들어 일방적으로 정부와 민주당만을 공격해대니 자신들이 무조건 정의롭고 정당하다. 그렇다면 정의실현을 위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내는데 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그런 보수층들의 조기결집에 비해 민주진영의 자기결벽적인 성향은 그런 집요한 공격에 확신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적극지지층이 아닌 이상에는 막연한 감정에 기대는 경우가 많아서 과연 지지해도 좋은가 회의에 빠지곤 한다. 막연하게 윤석열은 아닌데 막연하게 그렇다고 이재명도 아직은 마뜩지 않다. 변희재도 제대로 보고 있더만. 이재명 선대위에서도 이 부분을 주목하고 있었다. 과거 민주당에 투표했던 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투표율이 높아질 경우 이들 또한 투표장으로 향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정치적 성향이란 과연 어떠할까?

 

이동형이나 유시민이 현재의 판세를 낙관하는 이유인 것이다. 더불어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으면서도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인 것이다. 그동안 샤이보수가 선거의 결과를 뒤집어 왔다면 이제는 샤이민주당이 선거의 결과를 결정할지 모른다. 그만큼 경선이 치열하기도 했었다. 그동안의 언론의 공격으로 인한 피해의 누적이 상당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망설이던 이들에게 결심할 계기가 주어진다. 그동안의 tv토론이고 이번 안철수의 단일화다. 윤석열은 아니라고 하는 대명제 아래, 이러다 자칫 윤석열이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그동안 망설이던 이들의 결단을 이끌어냈다. 그래도 차라리 이재명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런 결정을 재촉한 것이 이른바 지지자들의 밭갈기다.

 

내 역시 열심히 주위에 약을 팔아댔었다. 윤석열의 120시간 발언은 가장 효과적인 재료였었다. 지금도 주 55시간 일할 때가 적지 않은 일이라 주 52시간을 확대해도 시원찮을 상황에 120시간 어쩌고 하니 열이 받을 수밖에 없다. 어머니께는 나 월급 줄어들고 그나마 정규직 된 거 잘릴 수 있고, 연금마저 깎일 수 있다 말하니 더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더 적은 최저시급으로 더 많은 시간 일해서 더 많은 돈 벌 수 있게 될 것이라 하니 바로 질색하고 만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늘려가면 결국 이재명이 승리하는 것이다. 

 

만일 이번 선거에서 이재명이 승리한다면 그런 점에서 최고 수훈갑은 언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의 지랄이 유권자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판세를 오판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잘못된 전략을 수립하게 만들었다. 안철수와의 단일화가 그 한 예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왜 하필 그딴 방식으로? 그런데 그래도 된다고 생각한다. 여성을 무시해도 된다고, 여성을 배제해도 된다고, 수구 일변도여도 상관없다고. 자칭 진보들마저 나서서 괜찬하 해대는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막연한 이들에게 누가 더 선명한 무언가를 보여 줄 것인가. 더 선명한 공포와 더 선명한 기대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이 잘하고 있다. 김동연과의 단일화 역시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 김동연 또한 그 막연함의 대상이다. 막연하게 이 사람 능력있고 괜찮을 것 같은데, 막연하게 그러나 그다지 당선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게 중도층이다. 그 막연함을 우습게 봐서는 안된다. 직관이 때로 가장 정확할 때가 있다. 기대하는 이유다. 부디.

말이 갈라치기지 결국 유권자를 나누어 어느 한 쪽에 올인한다는 것은 다른 한 쪽의 반감을 살 위험을 수반하게 된다. 그래서 역대 보수정당의 정치인들도 감히 특정 계층, 특정 정체성만을 위한 정책을 주장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노동자의 권익따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으면서도 정작 공약만큼은 노동자를 위하는 척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국민의힘은 그게 가능했을까?

 

물론 민주당으로부터 여성과 청년유권자들을 분리하기 위한 시도들이 꾸준히 이루어져 온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김건희가 자백했다. 안희정은 억울하게 당한 것이다. 다 정보소스가 있으니 그리 주장한 것일 게다. 박원순 역시 정황은 비슷하다. 하지만 여기에 한 가지가 더해져야 한다. 그렇더라도 국민의힘이 지금처럼 여성혐오적인 행보를 계속 보이더라도 그에 반발하는 여성유권자들이 민주당으로 결집하는 것을 막을 방파제와 같은 존재다. 이들이 다른 한 쪽에서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흡수해 주어야 마음놓고 여성혐오적인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실제 그동안 민주당이 뭐만 하면 페미니즘을 들먹이던 정의당이 정작 이준석이 주도한 여성혐오적인 선거전략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비판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토록 페미니즘을 주장하던 한겨레조차 오히려 이준석이 전략적으로 옳았다며 그처럼 하지 못한 민주당의 무능을 비판하는 듯한 논조의 기사마저 내고 있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준석의 반여성적인, 심지어 여성혐오적인 선거전략은 자칭 진보의 양해 아래 추진되고 있었다는 뜻인 것이다. 물론 정의당과 한겨레의 제한적인 보여주기식 비판 역시 그같은 양해 아래 이루어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여성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자칭 진보가 여성의 지지율을 일부 확보함으로써 여성의 반발과 반감이 국민의힘의 선거승리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

 

하긴 그동안 정의당이 그 존재를 허락받아 온 이유이기도 했었다. 그동안은 노동자와 소수자였다. 국민의힘이 반노동자 반소수자 정책을 펴더라도 민주당에 그 혐의를 덮어 씌움으로써 국민의힘에 대한 반발표가 민주당으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해 온 것이었다. 정작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아예 공공연히 드러내는 홍준표가 아닌 문재인에 대해 더 공격적이었던 자칭 진보들의 행태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국민의힘의 필승전략을 위해서 정의당에게 다시 주어진 역할이 바로 여성지지율의 흡수였던 것이다. 어느때보다 심상정과 정의당이 여성주의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당이 있음으로써 국민의힘은 여성표의 민주당 집중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반여성주의를 펼칠 수 있다. 

 

그래서 류호정이며 장혜영이 저토록 절박하게 민주당을 찍겠다는 여성유권자들을 붙잡느라 난리린 것이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모습이었다. 참여계가 당을 나간다 했을 때도, 노동자를 비롯한 다수 당원과 지지자들이 당을 떠난다 했을 때도 오히려 잘가라며 등떠밀어 보내던 것이 바로 정의당이었다. 가장 많은 당비를 내던 참여계가 나간다는데 전혀 걱정따위 없다는 태도였었다. 이제 비로소 이해가 된다. 오히려 방해물이었던 것이다. 참여계가 당비를 얼마를 내든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입원이 전부터 자칭진보에게는 알음알음으로 전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나간다는 사람 붙잡은 적이라고는 한 번도 없던 정의당이 저렇게 발벗고 나서고 있다.

 

여성표마저 잡아두지 못하면 정의당은 그 존재이유를 잃게 된다. 더이상 보수진영에서 정의당을 용납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정의당이란 보수진영의 필요에 희애 그 존재를 용인받아 온 정당인 때문이다. 그래서 자칭 진보들도 필사적으로 민주당을 공격하면서 보수진영에 눈도장을 찍으려 들었던 것이었고. 그동안 그렇게 민주당을 비판하던 홍세화, 김규항 등 나부랭이들 가운데 과연 그동안 윤석열의 반민주, 반노동, 반여성, 반소수자, 반평화적인 행보에 대해 한 마디 비판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기는 한가. 그마저도 진보를 위한 것이다. 수구의 집권을 돕는 것이 진보를 위하는 것이다. 당연하게 저들은 그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마디로 안철수의 사퇴가 정의당의 종말을 앞당기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안철수의 사퇴쇼로 말미암아 윤석열을 당선시킬 수 없다는, 이준석을 킹메이커로 만들 수 없다는 여성들의 절박함이 그들의 표심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너무 방심했다. 너무 정의당을 믿었다. 여성유권자들을 펨코 수준으로 여겼던 것이다. 정의당과 심상정만 있으면, 안희정과 오거돈과 박원순의 전력만으로도 얼마든지 민주당으로의 결집을 방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선을 너무 넘은 나머지 여성들에게 윤석열과 이준석에 대한 거부야 말로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도록 만들었다.

 

심상정이 지금 얼마나 속이 타겠는가. 이대로는 심상정 자신의 치부마저 까발려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들은 이야기들이 사실이면 심상정 역시 정치는 커녕 얼굴 들고 다니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정의당의 존재이유를 지켜야 한다. 민주당의 왼쪽에서 민주당의 표를 갉아먹는 것이 정의당이 존재해 온 이유였다. 그래서 진중권까지 다시 정의당으로 돌아갔던 것이었는데. 안철수가 큰 일을 해 주었다. 류호정은 아직 많이 순수하다. 너무 깊이 이해해 버렸다.

드디어 류호정이 자백했다. 정의당은 여성을 위한 정당이다.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는 건 가짜뉴스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이 노동자이기에 더욱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정의당 이 새끼들은 노동자인 나에게 전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새끼들을 노동자를 위한 진보정당이라 불러도 좋은 것인가? 그런데 류호정이 그러네? 그런 건 가짜 뉴스고, 자기들은 여성만을 위한 정당이라고.

 

그런데 가만 류호정이 써놓은 글을 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었다. 여긴 내거다. 이건 내 거야. 그러니 절대 손대면 안된다. 절대 손대려 해서는 안된다. 도대체 뭐가 그리 절박했기에 저리 다급하게 자신들의 오랜 정체성마저 부정하며 글을 써야 했던 것일까? 여성표가 민주당으로 가서는 안되는 무언가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러다가 문득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고 말았다. 특정 드라마를 언급할 것도 없다. 아들이 아버지 재산 믿고 돈을 열심히 빌려 썼는데 아버지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니 패닉에 빠진다.

 

"이건 내 거야! 내 재산이라구요! 내가 물려받아야 할 내 재산이에요! 건드리면 안되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심상정이 대선후보가 되고 선거운동 도중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진중권이 합류한 이유에 대해 모두가 그 내막을 유추해 짐작하고 있었다. 하긴 진보정당에서 대선후보를 내놨는데 새로운 진보의 아젠다는 아무것도 내보이지 못하고 있다. 진보정치란 무엇인지에 대해 대중이 알 만한 어떤 메시지도 제대로 내놓은 것이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반민주당, 반이재명이었다. 차라리 차기를 대비한 새로운 인물도 아닌 이제는 얼굴 보기도 지겨운 심상정을 다시 전면에 내새웠다. 진보정당의 미래를 위한 투자 역시 당연히 아닌 것이다. 그러면 굳이 심상정이 빚도 많은데 돈까지 써가며 대선을 완주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최근 내가 본 게시물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펨코와 엠팍에서 여초 커뮤니티 등에서 심상정 찍으라고 밭을 갈고 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이준석이 심상정이야 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이니 여성유권자들은 그를 찍어야 한다고 글을 올렸다는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준석의 이대남우선하는 전략을 계속 고수할 경우 여성지지자들이 국민의힘에 등돌리는 것이 당연하다 했을 때 이들이 민주당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자기들은 20대 남성들을 잡기 위해 오만 혐오정치를 다 할 테지만 그렇더라도 여성들의 표가 민주당으로 가지 못하게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어야겠다. 류호정이 갑자기 솔직해진 이유인 것이다.

 

아마 지난 총선에서도 비슷한 약속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정의당은 빚더미인가? 그 돈이 반드시 당으로 가야 할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조막만한 정당에서 당권을 가지고 서로 죽어라 싸우고, 그러면서 굳이 하나같이 민주당을 걸고 넘어지는 모습에서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공유되고 있는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약속한 대가를 받기 위해서는 정의당이 그래도 일정 이상 여성지지율을 지켜낼 필요가 있다. 여성지지율을 내놓는다는 것은 돈줄을 잃는 것이다.

 

정의당이 윤석열을 지원하기 위해 대선에 뛰어든 것은 알았는데 그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제서야 비로소 확실해진 것이다. 하필 심상정이 윤석열도 아닌 이재명에게 페미니즘 대통령을 선언하라 지랄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래야 20대 남성들이 더 이재명에게서 이탈할 것이다. 

 

확실히 돈은 좋은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더이상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 아닌 것이다. 보좌관을 그따위로 학대하고 내쫓은 정당이 바로 정의당이었을 텐데. 권영길이 그리워지려 한다. 부유세 참 좋았었는데. 

역시 삼국지를 예로 들어 보겠다. 어느날 관우, 장비, 조운을 불러 유비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번에 조조한테 약점 잡힌 게 있어서 아무래도 항복해야 할 것 같다. 너희도 따라 항복하자."

 

관우는 조조 밑에서 관직까지 받고 더 큰 영달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끝내 유비를 찾아 온 인물이다. 장비 역시 서주에서 유비가 도망치고 패주하여 떠돌다가 유비가 돌아왔다는 말에 바로 달려왔고, 조운 또한 원소 밑에서 객장생활을 하고 있을 때 그를 찾아와 휘하에 든 인물이다. 자기 전재산과 동생까지 내주었던 미축은 어떨까? 천하를 발로 뛰며 유비를 위한 협상을 도맡았던 손건은? 그야말로 처음 거병했을 때부터 함께했던 간옹이라면 더 그렇다. 유비가 한 번 싸움에 크게 질 때마다 거지꼴이 되어 천하를 떠돌면서도 유비를 떠나지 않고 항상 그의 곁으로 돌아왔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나중에 유비가 성공하면 한 자리 하려고? 그럴 거면 지금 당장 조조 밑으로 가는 게 더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진군이 그렇게 유비를 떠나 조조 밑에서 크게 영화를 누렸었다.

 

조조가 손오에게 항복을 권유했을 때 주유는 말한 바 있었다. 신하들은 그저 조조 밑으로 가서도 영화만 누릴 수 있으면 그만이지만 주군은 아니다. 저들은 주군은 생각지 않고 자신들 일신상의 안위와 영화만을 쫓고 있는 것이다. 일견 맞지만 한 편으로 틀린 말이다. 유종이나 장수의 예를 보더라도 조조가 항복했다고 다 죽이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능력만 있으면 조조의 휘하에서 더 크게 중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관직도 오르고 부와 권세도 덩달아 더 커졌다고 과연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을 것인가. 특히 손견 때부터 손가에 충성을 바쳐 온 황개, 한당이나 손책과 함께 동오의 기반을 닦은 주유라면 더 그렇다. 자신들은 어째서 그토록 죽을 고생을 해가며 지금 손가의 기업을 일으켰던 것인가.

 

안철수 지지자들과는 오래전부터 많이 부딪혔었다. 서로 쌍욕도 많이 했고, 인신공격은 기본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감정이 그리 좋지는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인정하는 것이 있다면 안철수가 민주당과 합당했다가 다시 신당을 차렸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서 그를 지지해 준 이들이 바로 그들이란 것이다. 안철수가 정치적으로 실패하고 좌절할 때마다 그를 지지하며 그가 정치생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안철수는 끝났다는 사람들이 무색하게 여전히 대선후보로 여겨지도록 할 수 있었던 그 근거가 바로 그들 지지자들인 것이다. 안철수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들 지지자들이 어떤 경우에도 한결같이 일정 이상의 지지율을 보이며 뒤를 받쳐 주었기에 안철수는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 결과가 이번 대선에서 정치인으로서 한결 성장한 모습이었고. 그렇다면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지지자들에 대해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 것 아닌가.

 

단일화에 대해 단 한 번도 지지자들에게 의견을 물은 적이 없다. 하다못해 어떻게 진행되는가 정보를 공유했던 적도 없다. 그러므로 과연 지지자들은 단일화를 원하는가. 지지자들에게 단일화의 필요성을 설득하려면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가. 그런 것 없이 그냥 대뜸 선포부터 했다. 더구나 그 과정에서 안철수는 물론 당과 지지자들에 대해서까지 가해졌던 모욕에 대해서는 한 마디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안철수 혼자 굴욕을 당하는 건 좋은데 그러자고 지지자들은 그 풍찬노숙을 마다않으며 안철수를 지금껏 지지해 왔던 것인가.

 

아마 진짜 삼국지 시대였다면 성루에 자기 몸을 매달고 죽겠다며 단일화는 안된다고 간언하는 지지자도 나왔을 법하다. 아예 더이상 욕을 당하게는 할 수 없다면서 안철수와 같이 죽자고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패닉이란 것이다. 안철수의 새정치라는 것이 구태 중의 구태인 국민의힘과의 합당이었던 것인가. 아무 조건없이 흡수되어 들어가는 것이었단 말인가. 그러자고 10년 넘게 안철수를 지지해 온 것은 아닐 터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대연정 한 마디 했다가 다수 지지자를 잃었던 교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개혁당의 해체에 끝내 분노해서 반노무현 반유시민으로 돌아선 지인도 한 명 알고 있다. 절차라는 것이다. 과정이란 것이다. 예의며 존중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지지자들을 동정하는 중이다. 나 역시 대연정 제안에 어떻게 한나라당과 그러느냐며 분노하고 고개를 돌렸던 기억이 있다. 대연정 정도가 아니다. 그 심정을 어찌 말로 설명해야 할까.

 

안타까운 것이다. 그래서 더 화나는 것이다. 더 화나는 건 그런 단일화를 하는 동안에조차 여전히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보여주지 않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무도함이다. 그것을 참아야 하는 안철수의 처참함이고. 한숨만 나온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안철수가 민주당과 합당하여 새정치국민연합을 만들었을 때 다수 안철수 지지자가 이탈한 적이 있었다. 안철수가 대표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내내 안철수 지지자들은 민주당에 대한 저주를 그치지 않았었다. 민주당 또한 구태의 하나다. 그런 민주당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안철수가 원래 지지자를 회복한 것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치가 떨리는 탈당과 국민의힘 창당 과정이었다. 안철수의 새정치란 기성정치권을 벗어난 그만의 공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이후 안철수의 정치적 지분 역시 그 공간 안에서 계속해서 존재해 왔었다. 차라리 윤석열을 지지해서라도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는 이들은 벌써 윤석열 지지율로 흡수된 지 오래다. 그동안 윤석열의 지지율이 무엇으로 오르고 있었다 생각하는가? 안철수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마다 윤석열은 그 지지율을 받아 지지율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서로 주고받는 정치적 거래도 아닌 일방적인 항복과 굴복으로 합당을 받아들여 단일화하는 지금 상황을 지지자들은 어찌 받아들일 것인가?

 

더구나 또 문제가 원래 단일화는 2등과 3등이 1등 잡으려고 하는 것이란 점이다. 1등을 그냥은 이길 수 없으니 단일화로 어떻게든 지지율을 끌어올려 보겠다는 절박한 선택이다. 그동안 윤석열의 지지율이 여러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을 이재명에 더하더라도 이기는 정도로 압도적으로 나타났었다. 그런데 굳이 안철수와 단일화를 서두를 이유가 있을까? 저렇게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동안 저쪽에서 설문문항을 이용해서 윤석열의 지지율이 이재명을 앞서는 것처럼 보이게 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바로 대세론이다. 윤석열이 이기고 있으니 그 대세를 쫓아 투표하거나 혹은 투표를 포기하라. 그런데 이번 단일화로 얼마전 김어준이 던져 놓은 ARS와 전화면접조사의 차이가 대중들에 각인될 계기가 되었다. 실제로는 여론조사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는 거 아냐?

 

첫째는 그동안 애써 만들어 놓은 윤석열의 대세론이 의심받게 되었고, 둘째는 안철수의 야합에 가까운, 그것도 굴복과 항복이라는 형식의 단일화가 안철수는 물론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자들의 반발을 불러올 여지를 만들었다. 기자회견장에서도 안철수는 다시 한 번 윤석열에게 굴욕을 당하고 있었다. 그래서 단일화는 얼마나 효과가 있을 것인가.

 

유시민의 말이 옳다. 광은 팔았는데 비광을 팔았다. 지금 안철수에게 남은 지지자는 대부분 반윤석열 지지자들인 것이다. 새삼 안철수가 윤석열과 단일화했다고 따라갈 지지자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반씩만 나누어도 벌써 NBS조사는 골든크로스를 이루었다. 어떻게 하면 된다? 밭을 갈면 된다. 악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저쪽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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