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확인하는 사실이다. 자칭 진보는 가짜다. 자칭 여성주의는 거짓말이다.

 

김학의가 최종적으로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자칭 진보나 자칭 여성주의자 가운데 이 부분을 문제삼는 놈들이 하나라도 있던가.

 

정의당은 이미 김학의를 출국금지시킨 절차가 부당했다며 국정감사에서 시비건 적이 있었다. 한겨레는 역시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냈는데 억지로 수사하고 출국금지시켰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하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경고한 바 있었다.

 

이성윤은 김학의를 수사했으므로 중앙고검장 자격이 없다. 정의당의 공식입장이었다. 이성윤이 김학의를 수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는데 기소된 내용이 아닌 기소사실만 집중한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MBC  단 하나였다. 그토록 진보와 여성주의를 주장하던 지식인, 언론 어느 것 하나 김학의의 무혐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김학의가 저지른 범죄는 명확하다. 그런데 자칭 진보와 자칭 여성주의가 오히려 김학의의 편에서 수사한 검사와 지시한 정부를 공격하는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여성이란 남성의 도구다. 남성의 트로피다. 그러므로 여성의 지위란 남성을 따라가는 것이다. 아버지이거나, 배우자이거나, 혹은 자식이거나. 그러므로 여성이 남성의 사회적 지위에 맞게 대우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전근대사회에서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기사들에게 중요한 것은 귀부인의 명예였지 하층민 여성의 명예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기사도, 신사도란 귀부인을 향한 서구 상류층의 상식이었다.

 

법과 정의와 상식과 윤리는 오로지 그럴 자격을 가진 자들만을 보호한다. 오래전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몸을 팔기도 했었다. 자신의 정조마저 내놓은 채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혹사해야 했었다. 그러면 지금 여성주의는 누구를 위한 여성주의인가? 지금 진보가 추구하는 여성주의란 무엇을 위한 여성주의인가?

 

김학의의 피해자가 불쌍한 이유인 것이다. 하다못해 김학의가 감히 기득권을 위협하는 민주당 나부랭이였다면 이런 취급은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피해자가 있는 집 자식이거나 마누라거나 어머니였다면 어땠을까?

 

검찰이 그렇다고 했으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법원이 판결했으니 그 자체로 사실이고 진실이 된다. 그래서 여성주의자들은 조동연씨로 하여금 성폭행 사실을 자백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다시 말한다. 여성주의는 가짜다. 자칭 진보는 거짓말이다. 윤석열이 입증해 준다. 김건희가 증명해 보여준다. 저들은 단지 유희로써 진보와 여성주의를 말할 뿐.

 

벌써 한참전에 말한 바 있을 것이다. 자칭 진보가 상대의 학력을 문제삼았다. 학벌을 비웃었다. 경제상태를 조롱했다. 자기는 삼치 먹는데 그마저도 못먹는 버러지들이다. 지금도 자칭 진보 가운데 이름이 거론되는 네임드가 올린 포스트의 내용이었다.

 

오래전 진보란 지식인들의 유희였다. 지식인이란 곧 교육의 기회를 독점한 기득권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다르지 않다. 진중권과 심상정이 손잡은 이유다. 그냥 웃게 된다. 버러지는 버러지다. 단 하나 진실이다.

내가 전부터 말했었다. 송영길 잘하고 있다고. 송영길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소소하다. 소소하게 속물이고 소소하게 사명감있고, 소소하게 사익을 챙기면서 소소하게 권력의지가 강하다.

 

한 마디로 상식적인 선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알면 한다.

 

중요한 한 마디였다. 자기부터 불출마하겠다. 기성 중진들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

 

물론 불출마가 정계은퇴는 아닐 것이다. 정치를 국회의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꿈을 꾸려면 국회의원도 밟고 지나갈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확실해졌다. 송영길은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그를 위해서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 필요를 느끼고 있다. 우상호야 전부터 그런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을 테고.

 

국민의힘이 질색하는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이건 좀 크게 먹힐 것 같다.

 

아무튼 결국 메시지는 하나다. 우리 이렇게 내려놓고 바꿀테니 지지자들은 돌아와 달라. 이재명을 중심으로 뭉쳐달라.

 

더불어 지금까지 손놓고 있던 이낙연계에 대한 압박이기도 하다. 이런데도 뒤로 빠져만 있을 것인가.

 

어째서 민주주의는 평범한 다중의 정치체제인가. 때로 송영길이 문재인보다도 더 대중에겐 유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낙연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더 잘하라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 당연하게. 잘하고 있다.

확실히 자칭진보는 나에게 물어야 한다. 그동안 계속해서 말해 왔었다. 진중권은 변절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전향한 것도 아니다. 진중권은 아직 자칭진보와 행보를 같이하는 그들에 속한 인물이다.

 

그래서 과연 진중권이 하는 말과 보이는 행동들이 다른 자칭진보들과 얼마나 다른가. 드러난 모습만으로 보았을 때 나머지 자칭 진보들과 차별성이 있는가. 그리고 결국 진중권이 다시 정의당으로 돌아가고 심상정이 받아주며 나의 그런 추측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거의 불가능한 대선을 앞두고 그들에게 손을 잡아야 할 필요성이 새삼 생겼다. 무엇이겠는가.

 

정의당이 존재하는 이유였다. 정의당의 존재를 저들이 용납해 왔던 이유였다. 조선일보가 정의당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국민의힘이 정의당의 주장이나 정책들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을 본 적이 있기는 한가. 아니면 정의당이 국민의힘이나 조선일보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아주 잠시는 있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정의당은 대가를 치러야 했었다. 국민의힘이 정의당의 어떤 약점을 쥐고 있는지 그쪽을 통해 들은 바가 있다. 어째서 정의당은 오랜 지지기반이었던 노동계를 저버리고 박근혜를 추종하던 메갈과 손잡아야 했는가.

 

그냥 제자리로 돌아간 것 뿐이다. 거짓으로 꾸미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진 것 뿐이다. 도대체 어떤 약속을 받아냈기에 심상정은 돈도 없다면서 다시 선거운동에 나섰을까? 자칭 진보가 망해야 진짜 진보가 설 자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진중권도 고생 많았다. 전향도 변절도 안했는데 정의당을 뛰쳐나갔다는 이유로 모두의 오해를 사고야 말았다. 의도한 것이기도 할 테지만. 축하한다. 원래 자리를 찾았다. 자신의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남편 윤석열을 당선시켜 영부인이 되겠다는 김건희에 대한 의혹이 이 지경인데도 오히려 지지하는 20대가 늘고 있다면 이유는 둘일 것이다. 하나는 그만큼 현정부에 대한 분노가 크다. 하나는 그마저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과 정의에 포함되어 있다. 즉 전혀 문제라 여기지 않고 있다.

 

전자라면 결국 지금의 20대 지지율이란 그냥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을 혼내고 이재명에게 경고하기 위해 윤석열에 대한 지지를 천명하고 있을 뿐 투표라는 행위로까지 이어갈 생각은 없는 것이다. 당연하다. 현정부의 불공정과 부정에 분노해서 정권교체를 바라게 되었는데 그보다 더 심각한 윤석열 자신과 처가의 문제들을 외면한다면 그들의 공정과 정의란 스스로 부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윤석열은 지지하면서 현정부에만 분노한다면 과연 그것을 공정이라 정의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다. 곽상도의 아들이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았다 했을 때 많은 20대들이 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떠들고 있었다. 곽상도가 검사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렵게 시험봐서 검사가 되었고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올라갔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이 50억 정도 뒷돈으로 받는 것은 정당한 권리에 해당한다. 검찰총장의 아내인 김건희가 무수한 의혹에 휩싸였어도 오히려 당당해서 멋지다며 찬양하는 인간들이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총장의 부인 쯤 되면 그 정도 하는 것이 옳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느껴왔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주로 소비하는 장르소설을 통해서도 수도 없이 확인한 사실이었다. 저들의 공정이란 징벌하는 공정이다. 포상하는 공정이다. 약자는 도태되어야 하고 패배한 댓가로 징벌을 받아야 한다. 강자는 승리한 대가로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새 무협소설에서 일대제자와 이대제자를 나누는 기준이란 시험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는 것이 되었다. 시험을 통해 신분이 상승하면 낮은 신분의 상대를 업신여기고 차별해도 당연한 권리가 된다. 비판하는 것 같지만 은연중 그런 사회를 바라는 것이다. 엘프를 노예로 설정하고 비판하는 것이 노예제를 비판하기 위한 것이 아닌 엘프를 노예로 삼는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노예제를 비판하기 위해 굳이 엘프를 노예로 설정할 이유가 무엇인가.

 

경희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검정고시로 중앙대에 들어갔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재인도 이재명도 저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인정하지 못한다. 조국은 서울대 출신으로 검찰에 한 번 썪이고 상처입었기에 마저 짓밟는 것이고. 그것이 진보고 정의다. 그래서 심상정이 선거운동을 다시 시작하며 조국부터 밟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대 출신 검찰총장의 부인이 무얼 어떻게 하든 그게 새삼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이 뭔 짓을 하든 저들에게 아무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고보니 기억난다. 노무현 대통령 임기말에 유학파 출신의 진퉁진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전여옥과 다르지 않았다. 고졸출신이라고 멸시하는 것이 바로 느껴졌다. 그러니까 내가 자칭이라며 진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의 대통령당선은 바로잡아야 할 불의이고 불합리였다. 다르지 않다. 그래서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자칭 진보가 한 목소리로 나서는 이유일 터다. 심상정을 중심으로 뭉치는 것은 이준석이 주장한 민주당포위론의 한 방편이다. 오랜 전략이었다. 민주당을 왼쪽에서 포위하는 것이 바로 정의당이 존재하는 이유다.

 

30대가 20대와 분리되고 있는 실제 이유인 것이다. 20대의 공정과 30대의 정의가 다르다. 최소한 용납할 수 있는 선이란 것이 그만큼의 경험으로 합리적으로 재설정된다. 이재명의 역량과 윤석열의 도덕성을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20대는 과연 이전 세대들이 주장한 그대로일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아직은 웃을 뿐이다.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보르겠지만 지난 2017년 대선 당시 드루킹이 쓴 글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커뮤니티마다 퍼나르던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저번 김경수 지사를 끌어안고 비열하게 자폭한 드루킹 일당들이었다. 당시까지 드루킹은 문재인 지지자였다. 아니 그 전, 그로부터 거의 15년 전부터 노무현 전대통령 지지자들이었다.

 

드루킹은 모르는데 뽀띠는 안다. 2003년 4년 서프라이즈에 상주했던 사람은 알 것이다. 송하비결 어쩌구 하며 노빠들을 낚아대던 이상한 인간이 하나 있었다는 걸. 그 뽀띠 따라다니던 놈들이 결국 문재인 대통령을 엿먹이고 문대인 대통령의 측근이 되었을 김경수를 감옥에 보냈다. 왜? 자기들 하자는대로 안했다고.

 

똥파리들도 이와 같다. 똥파리들 진두지휘하는 놈이 어떤 놈인가 확실하진 않지만 분명한 건 하나다. 드루킹 쫓아다니던 놈들이나 그 인간 쫓아다니는 놈들이나 결국은 같다. 결국은 제 마음대로 안된다고 자기들이 지지하던 대통령과 정당에 칼을 꽂을 수 있는 놈들이다.

 

윤석열의 공약을 보았을 것이다. 평소 발언도 보았을 것이다. 그 주위에 포진한 면면들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지한다면 그놈들은 처음부터 민주당 지지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민주당의 가치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그와 상반되는 국민의힘의 가치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하긴 2002년 당시에도 있었다. 하는 말은 죄다 한나라당인데 그냥 사람이 좋아서 노무현을 지지하던 놈들. 호남을 욕하고 광주를 원망하면서도 자기들이 노무현 지지자란다. 복지를 거부하고 평화에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혐오한다. 민주주의는 개에게나 주라는 소리를 그놈들에게 들었었다. 평화주의자라는 말을 경멸을 담아 쓰던 놈들이 바로 그놈들이었다. 그들에게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민주당이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런 놈들만 결국에 남아 지지하던 당시 상황은 또한 어떠했을까?

 

아무튼 그동안 몇 번 경고했던대로 이 새끼들 결국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하긴 똥파리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전부터 나 역시 문빠라며 그들에 대한 혐오를 감추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윤석열을 지키겠단다. 김건희를 존경하게 되었단다. 저들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이미지란 윤석열과 김건희였던 것인가.

 

그냥 버러지들이라 보면 된다. 똥파리가 퇴화하면 똥파먹는 구더기가 된다. 그런 연놈들인 것이다. 정의당보다도 더 끔찍하고 혐오스럽다. 저런 새끼들을 지지자라고 끌고 다니는 새끼도 민주당에 한 새끼 있다. 거기 부화뇌동하는 새끼들도 한무더기고. 당선시키고 탄핵하면 된다? 이명박 때도 그랬었다. 당선시키고 반대하면 된다. 개뿔. 지랄들이다.

보수는 돈을 주니까 미투가 안 터진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그러면 그 돈을 주는 대상은 피해자일까? 아니면 미투를 정의하고 확산시키는 주체인 여성단체들일까? 

 

물론 경험으로 대부분 그 답을 알고 있다. 보수정당이라고 미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미투라 불리지 않았을 뿐이다. 성희롱과 성추행과 심지어 성폭행에 대한 고발은 있었지만 그것을 누구도 미투라 여기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고 누구도 퍼뜨리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해자 편에서 피해자를 윽박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왜? 그래서 국민의힘이 김건희의 녹취록을 막고자 필사적이었던 거구나. 아마도 민주당 내부의 여성주의자들과의 결탁이 드러날지 모른다는 위기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존재로 인해 편하게 내통하며 적절히 대응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돈을 쥐어준 당사자가 누구라는 사실만 간접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역시나 정의당의 여성주의자들이, 아니 자칭 진보의 자칭 여성주의자들이 어째서 국민의힘에 대해서만 약한 모습을 보이는가 이로써 더 분명해진 셈이다. 역시 돈이었다. 그래서 전부터 말한 바 있었다. 심상정이 선거운동을 잠정중단한 것도 결국은 국민의힘으로부터 돈을 더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가. 정의당이 왼쪽에서 더 욕해주어야 국민의힘도 운신하기 더 편하다.

 

가장 귀에 들어오는 대목이었다. 어째서 자칭 여성주의자들은 심지어 김학의에 대해서조차 검찰의 입장만을 거드는가. 돈이 최고다. 여성은 개뿔. 젠더감수성은 쥐똥. 진실일 터다.

얼마전 민주당에서 추진한다는 대선에서의 기여도를 반영한 총선공천은 아마 자칭 페미들을 겨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민주당의 대통령후보가 젠더감수성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를 위해서 국민의힘과 내통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뒷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닷페이스 출연 전에 선대위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민주당 선대위에서는 반대하고, 반면 국민의힘 선대위에서는 그같은 행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선대위 내부에서 반발했던 김남국의 단톡방 대화마저 누군가 외부에 유출하기까지 했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다행인 것은 이재명은 성인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로지 옳은 일을 위해 스스로 어려움과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수도승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권력의지가 강하다. 한 번 겪어 봤다. 저들의 주장을 들었을 때 어떨 결과가 돌아오는지. 저들이 지랄한다고 한 번 꺾여 주었을 때 어떻게 자신의 권력의지가 훼방을 받는지. 그래봐야 좋아하는 건 저들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닷페이스 건으로 확인한 것이다. 여성의 지지율은 그다지 오르지 않았는데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마저 반발이 심상치 않다. 민주당의 기존 지지층에서마저 이재명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페미니즘과 손잡아서는 안된다. 아니 그런 정도를 넘어서 페미니즘과 소통하려 시도해서도 안된다. 아마 그래서 더 권인숙이나 정친숙, 진선미 나부랭이들이 날뛰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란이라 여겼을 것이다. 부마사태를 일으키려 했던 박정희나, 친위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던 전두환이나 미얀마 군부가 그런 것처럼. 어떻게든 반발하는 지지자를 찍어 눌러야겠다.

 

지지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아니다. 지지받기 위해 납득시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바라는지 듣고 실행하는 것이 아닌 가르치는 것이다. 윽박지르고 찍어누르려는 것이다. 김부겸은 결국 꼰대였다. 선거를 앞두고 특정 계층을 무시하며 가르치려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 지 모르는 것인가. 그것이 민주당내 자칭 페미였고, 그로 인해 이재명의 지지율은 한 차례 출렁여야 했었다. 그런데도 저들의 주장을 들어야 하는가.

 

유시민의 말이 맞았다. 이건 한 차례 겪고 지나가야 할 예방백신과 같은 것이다. 유시민조차도 당내 여성주의자들을 곱게 보고 있지 않다. 아니 이전에 알릴레오에서 침묵의 자유조차 부정하는 행위에 대해 에둘러 비판한 적이 있었다. 박원순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성주의자들이 보여준 모습에 아마 유시민도 상당히 실망했던 듯하다.

 

아무튼 당의 이름을 걸고 출마한 후보의 당선보다도 여성주의가 더 중요하다. 어차피 누가 당선되든 자신들의 위치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반드시 정권을 잡고 현실에서 이루어야 하는 정책과 법안들에 대한 절박함이 없다. 바로 저들이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국민의힘에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 내가 정부 초기부터 비판했었을 것이다. 남인순, 진선미, 유은혜 등등 여성주의를 앞세운 년놈들 조심하라고. 저것들은 민주당의 동지가 아니다.

 

어쩌면 한명숙이 싸놓고 간 똥일지도 모르겠다. 한명숙이 저런 찌그레기들 민주당 안에 많이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결과를 보고 있다. 여성주의를 위해서라면 민주당의 패배도 국민의힘과의 결탁도 전혀 서슴지 않는다. 내통하여 패배를 부추기려 하고 있다. 민주당보다 자신들의 여성주의가 우선이다.

 

다음 총선에서는 부디 저 씨발년들 면면 기억해 뒀다가 공천에서 모두 떨어뜨리기를. 당적도 회복했겠다 우리 동네에서도 저런 년놈들 나오겠다 경선 붙으면 죄다 날려버려야겠다. 저것들은 그냥 적이다. 이재명도 이제 알았을 것이다. 저것들 하는 소리 듣느니 윤석열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살 길에 가깝다. 씨발 쌍년들이다.

정의당은 어쩌면 제도권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념정당일 것이다. 요즘은 국민의힘도 상당히 이념정당화되기는 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이념을 앞세운 정당으로 제도권에서 버티고 있는 유일한 존재가 정의당이란 사실을 부정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정의당의 이념이란 무엇인가?

 

그게 문제다. 물론 더불어민주당은 이념적으로 본다면 중도보수, 혹은 온건보수에 더 가깝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도 민주당이 그동안 추진해 온, 그리고 민주당 정부에서 시행해 온 많은 법안과 정책들이 그동안의 이 사회의 법과 제도, 정책들에 비해 진보적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민주당과 각을 세우겠다며 정의당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 반대입장을 드러냈다. 심지어 그동안의 국민의힘의 정책이나 지향보다도 더 극우화된 윤석열의 주장에 대해서도 한 마디 비판조차 없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이재명은 사소한 꼬투리도 놓치지 않고 욕하는데 윤석열은 아예 아무말없이 넘어간다. 오히려 윤석열을 검증하겠다는 비판을 걸고넘어지는 상황까지 옆에서 지켜보게 된다. 그러면 지금 정의당이 하는 행보로 봐서 저들은 진보정당인가? 아니면 진보를 참칭한 다른 무엇인가?

 

말하자면 민주당과 차별화하겠다고 민주당을 욕하는 사이 자기 정체성마저 부정하는 모순된 상황이 반복되어 온 결과인 것이다. 민주당이 진보적인 정책과 법안들을 내도 정작 진보정당인 정의당이 앞장서서 반대하면서 더이상 정의당에서 진보적인 무언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탈원전을 주장하다가 탈원전을 비리라 떠들고, 김학의 사건에 분노하다가 김학의 수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하니 죄라고 욕하고, 최저임금과 근로시간단축, 대체휴일, 공수처, 중대재해법 모두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뭐가 남았을까? 지금 정의당에?

 

그래서 2%의 지지율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민주당이라면 죽도록 혐오하는 마지막 숫자가 바로 저 지지율일 것이다. 내가 아는 자칭 진보의 마지노선이다. 그 밖에 지적 허영의 일환으로 자칭 진보를 주장하던 놈들은 신지예나 진중권처럼 저쪽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당장 경향일보와 한겨레일보를 보라. 그런 놈들이 윤석열 아닌 심상정을 지지할까? 한겨레와 경향은 벌써 안철수에 올인한 모양이더만.

 

누구를 탓할 것 없는 자업자득인 것이다. 민주당이 진보적인 정책과 법안을 들고 와도 민주당과 차별한다고 민주당만 욕하느라 진보로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저버리고 말았다. 오히려 2.2%의 지지율조차 너무 높다고 여겨질 정도다. 그런데 내가 아는 자칭 진보 병신들의 숫자만 모아도 저 정도는 될 것 같으니. 그냥 웃을 뿐이다. 씨발년 쌤통이다.

벌써 5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늘어진 뱃살이다. 아무리 근육을 키우고 늘려도 이미 한 번 늘어난 뱃살은 오히려 내장지방이 빠진 만큼 늘어진 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허리사이즈는 28인치 이하로 유지되는데 늘어진 뱃살이 그 위를 덮고 있으니 영 보기가 좋지 않다. 그러면 도대체 이 지랄맞은 뱃살은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던 외할머니는 내가 많이 먹으면 그리 좋아하셨다. 애가 자랄 때가 되었다. 한창 자랄 나이라 많이 먹는 것이다. 그래서 밥도 고봉밥으로 퍼주고, 라면도 아무때나 끓여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고기는 당연히 너무 비싸니 무리고, 채소도 그리 많이 자주 먹을 수 없었다. 대부분 내 식욕을 책임진 것은 라면과 고추장에 비빈 보리밥이었다. 단백질은 물론 지방도, 비타민도, 섬유질도 부족한 식단이었다. 그래도 필요한 열량은 채울 수 있었으니 나쁘지 않았다. 단지 지방이 쌓이며 배가 나오는 것이 문제였을 뿐.

 

그래서 성장기라 필요한 만큼 열량을 섭취하는대로 배가 나오게 되었다. 배가 나오고 나머지는 가슴으로 몰렸다. 그냥 돼지였다. 그때 자라난 가슴과 뱃살이 아직까지 남은 것이다. 대학교 들어가고 몸무게가 58 kg까지 줄었을 때도 늘어난 가슴살과 뱃살은 그대로 늘어진 채 예전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더욱 나이가 들어 50 가까워진 지금은 60kg초반대에서 근육량까지 적절히 유지하고 있음에도 그 늘어진 뱃살을 어찌하지 못하는 중이다. 그때 누군가 있어 나의 식단을 관리해 줬으면 어땠을까? 탄수화물의 섭취를 제한하고,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를 충분히 고려했다면 지금보다는 몸이나 건강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해외 네티즌들이 한국 무상급식 식단을 보며 감탄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이유로 가끔 질투와 시기의 감정까지 느끼는 것은 그런 나 자신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당시 내 도시락 반찬이란 고작 김치 아니면 무말랭이였다. 밥만 도시락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고 반찬은 겨우 구색을 맞출 정도였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콩자반이나 멸치볶음을 싫어한다. 무말랭이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김치는 국물이 새서 그다지 도시락 반찬으로 적당치 않았다. 전문 영양사가 관리하는 식단을 검증된 재료로 조리해서 제공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혜택이며 축복인가.

 

내가 직접 경험해 봤기에 아는 것이다. 있는 집 자식들은 고기며 햄이며 오뎅이며 단백질을 잘도 챙겨서 싸오고 있었다. 도시락 가득 계란후라이도 있었고, 맛난 반찬도 가득이었었다. 어째서 그런 단백질과 지방 위주의 반찬들을 아이들은 맛나다 여겼을까? 필요한 영양이 그런 반찬들에 더 많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하면 심지어 저녁값까지 용돈으로 써야 했던 나는 항상 주리면서도 탄수화물 위주의 조악한 식단에만 의지해야 했었다.

 

어째서 무상급식인가. 무엇을 위한 무상급식인가. 낙인효과? 개지랄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다. 가장 중요한 성장기에 아이들의 영양을 직접 관리하고 지켜낼 수 있다. 28인치의 허리에도 늘어진 내 뱃살을 보며 더욱 확신하게 된다. 가슴근육을 키우며 겨우 채워진 가슴살을 보면서도 확신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던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기란 그저 손쉬운 탄수화물이나 죽어라 먹으며 지방을 채우던 시절이란 것이다. 국가가 그 시절을 관리해 준다. 20년 뒤, 30년 뒤, 지금의 세대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이없게도 무상급식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계층이 무상급식을 반대한 오세훈을 지지한 현실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한 단면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무상급식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있다. 자칭 진보가 얼마나 사악한가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일 것이다. 무상급식은 정작 반대했던 수구의 성과이자 업적이었다. 민주당은 배제한다. 오세훈이 무상급식을 가능케 했다. 그런 식으로 몰아가려 한다.

 

어릴 적 도시락 반찬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나오는 무상급식의 식단들과 비교해보게 된다. 차라리 내가 먹고 싶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가 저 식단들을 섭취하고 싶다. 지금도 나는 저만큼 체계적으로 관리된 식단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너무 사소하게 무시되고 있다. 안타깝기 전에 화부터 나는 이유다. 나는 그 시절 먹는 것에 얼마나 절박했는가. 지금도 역시. 그것은 차라리 절망이기까지 하다.

집에서 이마트까지 거리가 딱 걸어서 오갈 수 있을 정도가 된다. 그래서 자주 이마트에서 술과 안주를 사다먹었다. 물론 동네 마트에서 사도 되긴 하지만 이마트 정도 되어야 파는 술의 종류나 질 모두 나를 만족시킬 수 있다. 주류백화점은 이마트보다도 더 멀리 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술 사는 김에 안주까지 같이 사서 냠냠거리며 먹고는 했었는데 그러던 것이 몇 달 전부터 많이 달라졌다.

 

신세계 오너라는 어느 분 때무이다. 그 인간 면상 보고 있자니 그냥 보드카 정도 안 먹고 말지란 생각만 들게 되었다. 그냥 동네 마트나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술 가운데 비슷한 것으로 아무거나 먹으면 그만이다. 안주야 어디서 사먹으면 어떤가. 내가 직접 해먹어도 크게 다를 것 없다. 요즘은 밀키트도 상당히 잘 나오는 터다. 그래서 몇 달 되었다. 이마트 들르지 않은지가. 보드카 대신 편의점에서 파는 장수막걸리로 주종을 바꾸게 된 것이.

 

소매점의 한계다. 세상에 상품도 많은데 굳이 특정 소매점만 집착할 이유가 없다. 세상에 술은 많다. 안주거리도 많다. 이마트 아니더라도 더 좋은 물건을 더 싸게 파는 곳은 인터넷에도 널려 있다. 굳이 이마트를 고집할 필요 없이 동네 마트에서 더 신선하고 좋은 제품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경로도 많다. 지역화폐라는 요긴한 수단도 있을 터다. 동네 마트에서 이용하면 그만큼 돈을 아낄 수 있다. 도대체 뭘 믿고 저 인간은 저리 오만한 것일까.

 

때로 고맙기조차 하다. 덕분에 술도 많이 줄었다. 이마트에서 술을 잔뜩 사다 쟁여놓고 마실 때는 꽤 마시는 양이 제법 되었는데 이제는 마실 때마다 편의점에 가서 딱 적당한 양만 사오니 그 양도 많이 줄었다. 그러라고 저리 개지랄을 떠는 것일까. 내 인생에 다시 이마트란 없다. 신세계는 더욱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 놈들 위해 내 주머니에서 돈 한 푼 흘러가게 내버려둘 수 없다. 당연한 다짐이다. 나 자신의 존엄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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