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원죄설이 가지는 긍정적인 의미는 인간의 선의를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죄를 짊어지고 사는 존재다.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신을 거역한 죄악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의란 동기보다 그 결과를 봐야 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일찍부터 법치가 발전했다. 공적인 규범에 의해 인간은 선한 행동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북송 이전 유학에서 순자가 맹자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진 이유였다. 개인의 선의보다 강제된 교육과 제도만이 인간의 행동과 결과를 선하게 만들 수 있다. 인의란 인간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선의 안에 존재한다. 법이 무서워서 선해지고, 교육으로 강제되었기에 선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선해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정치인에게서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선을 기대한다. 그는 원래 좋은 사람이라서. 오로지 선한 동기에 의해. 선한 의지를 쫓아서. 그래서 내로남불이란 말도 나온다. 위선이란 말도 나온다. 까놓고 말해보자. 그렇게 선하고 욕심도 없는 사람이 굳이 그 수고와 노력과 비용을 들여가며 정치를 하려 하겠는가. 정치인의 모든 행동은 정치적 이해에 기반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 지지를 받기 위해서, 그러므로 자기가 좋은 정치인이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소상공인을 위해 지원하고자 추경을 통과시켰다. 무려 14조다. 적은 돈이 아니다. 야당이 동의해주지 않는다고 단독으로 처리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물론 정치적인 이해가 아주 없지 않다. 당장 불리한 선거국면을 뒤집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로 인해 코로나로 인해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을 지원할 재원이 생겨났다.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기에 지원을 강행한 정치인과 순수한 의도로 지원에 반대한 정치인 그렇다면 도덕적으로 누가 더 우월한가?

 

한국사람들은 이상하다. 분명 교육의 문제일 것이다. 건물주다. 얼마든지 세를 올려받아도 좋을 갑의 위치다. 그런데 법안을 발의한다. 마음대로 일정 이상 임대료를 못받도록 강제하자. 그래서 법이 통과되지 않아 그냥 하던대로 했다. 욕한다. 반대했던 사람은 그냥 내버려두고 발의한 사람만 욕한다. 위선이다. 그러니까 법이 통과됐을 경우 자기도 손해보는데 그런 법을 발의했다는 거다. 오히려 칭찬받아야 하는데 더 비난한다.

 

건물주는 감히 건물주의 이익에 반하는 법을 발의해서는 안된다. 갑은 을의 사정을 봐주는 법을 발의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순수한 악이 위선보다 낫다.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기 위해서 솔직하게 자신들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 어느 자영업자가 손님 오는 줄도 모르고 떠들던 말이다. 그래서 돈을 주겠다는 정당이 돈을 안주겠다는 정당보다 자기들에게 더 유리하다는 것인가. 자기들에게 더 좋다는 것인가.

 

순수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어떤 결과도 내놓지 못한다. 지방대 출신의 서울대 폐지론자의 존재와 같은 것이다. 일반고 출신이 자사고 폐지를 주장해봐야 배아파 그런다는 소리나 듣고 자사고 출신이면 자기 혼자 꿀빨려 그런다는 욕만 듣는다. 동기의 선이 가지는 함정이다.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이일지도. 하찮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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