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10일 이른바 운동권이라 불리우는 대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들은 물론 버스기사며 택시기사에 상인들까지 모두 거리로 쏟아져나와 민주화를 외쳤었다. 정확히 당시 시민들이 외친 구호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독재타도, 다른 하나는 호헌철폐. 독재타도야 당연하고 호헌철폐란 무엇이었는가. 그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은 체육관에 정부가 임명한 대의원들이 모여서 간접선거로 선출했었다. 박정희가 다시 선거를 치르면 김대중에게 질 것 같으니 유신개헌으로 바꿔 놓은 것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것을 다시 다음 대통령선거에서도 그대로 간접선거로 치르겠다며 현재의 헌법을 유지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했으니 사람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게 바로 6월 항쟁이다.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우상호였고, 그래서 우상호와 우현이 같이 찍은 사진이 꽤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기도 했었다. 이원욱도 아마 그 세대였을 것이다. 63년생이니 얼추 맞다. 우상호가 62년생이다. 그런 이원욱이 직접민주주의는 나치라 주장한다. 하긴 그래서 내가 전부터 말했을 것이다. 우상호든 권인숙이든 당시 민주화운동을 깊이 후회하고 있을 것이라고. 내가 기억하는 운동권 집행부의 모습이라는 것도 학생들은 전경이랑 싸운다고 밤새 피터지고 있을 때 기숙사에서 아주 편히 쉬고 있던 것이었다. 그때 선배 몇 명도 전경에게 피투성이가 되도록 얻어맞고 끌려갔었고, 다음날 거리는 온통 최루탄 투성이었었다. 아, 이런 게 바로 운동권이라는 거구나. 내가 학생운동 집행부를 신뢰하지 않았던 이유다. 이후 김민석이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보인 행보에도 그래서 상당부분 이해하고 있었다. 원래 그런 새끼들이다.

 

직접민주주의는 나치다. 직접민주주의는 틀렸다. 그러므로 소수에게 다수를 대표할 자격을 주는 간접민주주의가 옳다. 그래서 유신헌법이 옳았다는 것 아닌가. 민주당 대의원이라는 것이 권리당원에 의해 직선제로 선출되는 대의기구라면 또 모르겠다. 대개는 지구당을 장악하고 있는 소수에 의해 의도적으로 임명되듯 만들어지는 신분인 경우가 더 많다. 말하자면 조직과 기반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낸 신분이란 것이다. 그래서 유신정권의 체육관선거와 대의원에 의한 선거의 차이는 무엇인가? 대통령을 간접선거로 선출하는 대의원들도 어찌되었거나 유권자들일 터다. 어쨌든 정부가 선별해서 임명한 이들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정당한 대의기구로써 존재한다면 어째서 대의원과 일반 당원 사이에 의견차이가 이토록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것인가? 더구나 그렇게 의견차이가 크다면 민주주의의 원칙에 있어 다수인 당원과 소수인 대의원 중 누구를 따라야 하는 것인가?

 

70년대부터 이어진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한 마디인 것이다. 소수의 자격이 있는 엘리트가 지배하는 것이 옳다. 무지한 대중이 아닌 소수의 자격을 인정받은 이들이 이끌어가는 것이 바르다. 바로 어제인가 2찍 진보가 대의원제 수호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썼던 그 맥락이다. 더불어 이원욱에게 역사교육을 다시 시켜주자면 직접민주주의는 그리스의 폴리스들이다. 그 가운데서도 왕이 없던 아테네 등의 폴리스들에 한정된다. 로마는 민주정이 아닌 공화정이었다. 시민을 대표하는 원로원 의원들의 합의에 의해 이끌어가던 체제였다. 차라리 로마의 공화정이 민주당의 대의원제와 유사하다. 일반 시민들에게는 참정권이 없었다. 그래서 로마의 시민들이 경제적으로 몰락해가는 상황에서도 로마의 시민들은 사실상 자신들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했던 아테네의 몰락은 직접민주주의 자체보다는 시민들이 더이상 참정권을 행사하기를 포기하면서부터였다. 페리클레스 시대부터 이미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한계에 이르렀고 소수의 유력한 시민들에 의한 과두적인 체제를 유지하게 된다. 당연히 독일의 나치는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되었지만 그 민주주의에 의해 심판할 기회 자체를 부정하며 권력을 유지했었다. 역시 소수의 유력자의 독점에 의해 유지된 체제이지 나치 치하에서 나치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될 방법이 없었다.

 

아무튼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저런 새끼들이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거들먹댄다. 아니 민주화운동을 한 이유 자체도 원래는 주위에 거들먹거리고 싶어서 시작한 것일지 모르겠다. 민주화운동 한다면 먹어주거든. 더구나 집행부에 한 발 걸치고 있으면 특히 대학생들은 꺼뻑 죽어준다. 당시 문화가 그랬었다. 송강호의 저 유명한 '현정화' 그 장면이 바로 민주화운동 선후배사이의 토론장면이다. 일반적인 주입은 있어도 쌍방향적인 토론은 없었다. 그런 새끼들이 나더러 쁘띠라며 욕질하고 했었으니. 다시 말하지만 소수의 대표자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체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공화제와 민주정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도대체 학교 다니며 뭘 배웠기에 저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인지. 이런 새끼들이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었으니 민주당이 제대로 돌아갈 리 있나. 어이없을 뿐이다.

 

조금 더 부연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아테네가 몰락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솔직히 몰락이라고 하기에는 당시 상황이 좋지 못했었다. 무엇보다 전염병으로 당시 정치지도자이던 페리클레스까지 죽어나갈 정도로 큰 타격을 받은 상태에서 스파르타와 전쟁을 치른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테네가 정치적으로 크게 후퇴했다는 것은 시민들이 더이상 정치에 참여하기를 꺼려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와 같은 소수에게 맡기고 방임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빛을 바래게 되었다.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인가. 80년대 민주화세대의 학생운동을 부정하는 선언인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옳았다. 민주화는 틀렸다. 그래서 민주화인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2찍 진보들이 민주당의 대의원제 약화에 발작하는 이유와 민주노총이 넥슨 노조를 무시하고 회사 앞에 가서 시위한 맥락은 어찌보면 같은 동기에서 출발하고 있을 것이다. 국민과 노동자는 그저 무지하고 무력한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재명이 아내가 다쳐서 연차를 냈다고 하자 아내 다쳤다고 연차쓰는 노동자가 어디있느냐고 발악했던 진중권이 그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군인이 휴가나가서 몸이 안좋아 전화로 휴가연장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느냐고 지랄하던 2찍 진보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직장인이나 군인이란 여전히 그런 이미지에 불과하다.

 

직장인은 아직 아내가 다쳐도 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한다. 아니 그냥 술먹고 아주 죽을 것 같아서 나 오늘 쉬겠다 당일 전화로 연락해도 연차가 된다니까? 심지어 오후 늦게 일어나서 연차처리 좀 해달라 하면 그렇게 해준다. 결근도 연차가 남아 있으면 연차로 대체해주는 직장이, 특히 연차사용을 권장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는 생각하는 이상으로 꽤 많았다. 그리고 군인이 휴가나갔다가 사정이 생기면 전화로 복귀를 늦추거나 휴가를 연장하는 것은 내가 현역이던 90년대에도 이미 상당부분 가능했었다. 하지만 2찍 진보라는 것들이 실제 직장을 다녀봤거나 군복무를 제대로 해 본 적 없을 테니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관념적으로 판단한다. 직장인은 이럴 것이다. 현역 군인이라면 저럴 것이다.

 

노동자는 회사와 분리되어 있다. 회사의 이미지나 이익과 무관하게 그저 월급만 받고 일하는, 그러면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착취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회사에 문제가 생겼어도 노동자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이다. 오히려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도 같은 노동자로서 연대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노동운동계에서도 더이상 사회주의란 의미를 잃은 지 오래일 것이다. 노동자의 소외라는 관점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생산으로부터의 소외보다 더 심각한 것이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다. 자신의 일로부터 어떤 의미도 가치도 보람도 느끼지 못한다. 내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수단으로서 내다 팔고 만다. 그런데 급여까지 적으니 착취이고 약탈이다. 하지만 모든 노동자가 그러한가.

 

열정페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IT 노동자들이 120시간 노동을 스스로 주장할 수 있었던 것도 그만큼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고 보람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 노동자들이 그렇기도 하다. 나는 내 회사 욕해도 되는데 남이 내가 다니는 회사 욕하면 기분이 나쁘다. 일하면서 초단위로 쌍욕을 내뱉다가도 그래도 내가 일한 결과물이 상품으로써 사람들 사이에서 팔리는 것을 보면 뭔가 뿌듯하기도 하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건설현장의 일용직들이다. 나도 가끔 남부순환도로와 코엑스 별관을 기분내키면 떠벌리기도 한다. 거기서 노가다 좀 뛰었었거든. 내가 다니는 회사고 내가 내 시간과 노력을 들어 만든 결과물들이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의에 의해 오염되고 왜곡되고 심지어 그로 인해 비난까지 받고 있다. 그로 인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해야 한다.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가? 그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와 연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인 회사와 더 협력해야 하는 것인가?

 

국민은 무지렁이다. 더구나 좋은 대학을 나오지도 못하고, 높은 수준의 교육도 받지 못했으며,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단체 등 이슈의 중심에서 현실을 치열하게 경험해 보지도 못했다. 그런 국민들이 과연 정치적으로 어떤 판단을 중요하게 내리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가? 그래서 2찍 진보들이 윤석열을 좋아하는 것이다. 어째서 2찍 진보들이 윤석열 비판하고 나서는가 했더니 벌써 한동훈으로 갈아탄 사람들마저 적지 않다. 서울대거든. 더구나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까지 합격해서 검사가 되어 활약한 이들이고. 서울대라면 그러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더구나 사법시험까지 어렵게 합격한 영감님들이라면 그러는 것이 다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반면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뭐라 주장한다고 해서 거기에 의미를 두기는 곤란하다. 실제 2찍인지는 모르지만 자칭진보로부터 들은 말이다. 무지한 대중. 그러니까 민주당도 제대로 당을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무지렁이 당원들이 아닌 선별된 소수의 엄정한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거기에 더해 대의원제가 유지되어야 시민사회단체든 진보진영이든 민주당에 지분이 생긴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더해지기는 한다.

 

어째서 진보를 자처하며서 저리 몸을 던져가며 윤석열과 한동훈을 지지하는가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야 말로 노동존중의 정당이고 여성존중의 정당이다. 민주노총이 정권차원에서 대놓고 간첩몰이해도 그저 당하고만 있는 이유다. 노란봉투법에 대해 정작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정권과 여당이 아닌 굳이 정치권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히 건드려서는 안되는 절대존엄이 존재하는 것이다. 저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세계관이다. 구시대의 잔재처럼 여전히 그들의 머릿속에는 절대적인 계급과 신분이 존재한다. 그를 근거로 판단한다.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까울수록 더 민주주의의 본질에 충실한 것이다. 더 많은 다수의 주체가 직접 참여해서 자신의 정치적 주장과 요구를 현실에 반영할 수 있을 때 민주주의는 더 그 근본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지하고 무능한 다수가 아닌 선별된 소수의 특별한 이들이 그 판단과 선택을 주도해야 한다. 자칭 진보가 2찍 진보로 진화한 진짜 이유일 것이다. 오래전부터 지적해 온 바였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은 지금도 행동으로 입증해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감탄이 절로 나올 뿐이다.

방송독립이라... 그러니까 지금 정권에 의한 KBS 장악이 KBS 구성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리인가? KBS 구성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억압이고 강제다. 권력의 전횡이고 횡포다. 그런데 KBS 문 열어준 건 KBS 구성원들 맞는데?

 

문재인 정부 시절을 기억한다. 그때 KBS가 문재인 정부를 상대로 얼마나 지랄을 했었는가를. 당장 KBS 파업을 마친 순간 노조위원장이 처음으로 했던 말부터 문재인 정권을 타도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지어 가짜뉴스까지 동원해가며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집요하게 악랄할 정도로 공격했고 마침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러면 검찰로부터 받아서 쓰지 취재해서 쓰느냐는 것이 당시 KBS의 태도였고, 그래서 끝까지 검찰로부터 받았으며 검찰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었다. 심지어 참언론 참기자 어쩌고 하던 댓읽기의 정연욱은 검언유착을 묻기 위해 자발적인 오보를 내서 프레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기도 했었다. 그러던 놈들이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조용했다. 언론장악이라고 하는데 KBS에 점령군으로 들어가려는데도 오히려 민주당이 도와준다니까 앞장서서 문부터 열어주고 있었다. 그래서 KBS는 당한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협력했던 것인가?

 

장악당하기 이전과 이후 KBS의 보도에 무슨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친보수 친검찰이라는 애초의 기조와 크게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인사에서 불이익을 본 사람이 있다는 정도인데, 원래 논공행상에서는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괄이 왜 반란을 일으켰겠는가. 논공행상의 불만을 없애기 위해서 유방도 오랜 고향친구를 죄를 물어 죽이고 있기까지 했다. 세키가하라에서 전공을 세웠어도 미덥지 못하다면 가토 기요마사처럼 가문까지 몰락할 수 있는 것이다. 더 충성한 사람이 있으니 충성이 조금 미흡한 사람은 배제하는 것이 옳다. 그런 인사상의 차이를 가지고 언론탄압 어쩌고 하는 것도 어쩌면 문재인 정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 그런 언론이었다. 오죽하면 문재인 목따려고 파업까지 했겠는가. 기껏 정권이 바뀌고 정권에 의해 휘둘리던 KBS를 풀어주었더니 바뀐 정권을 때려잡기 위해 언론의 정상화를 명분으로 파업까지 했던 곳이 바로 KBS였다. 당시 노조위원장이 KBS에서도 꽤나 양심적인 인사였다니 원래 KBS의 정체성이 그랬다는 뜻이다. 스스로 자처한 것인데 언론장악이라는 것은 결국 내 밥그릇도 챙겨달라. 거기에 오만 기자새끼들까지 다 달려들고 있으니 윤석열 정부도 참 어이없는 노릇일 것이다. 아무리 그 많은 기자새끼들 밥그릇까지 다 챙겨야 하는가. 그냥 내버려둬도 찍소리 못하는 딸랑이 걸레들인데.

 

이동관 사퇴했다니 그리 아쉬워하던 것이 기자새끼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까지 민주당 한 방 먹였다고 환호하던 것이 언론인이란 새끼들이었다. 내 밥그릇 챙겨달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좋은 기자는 다 죽었다. 죽은 기자만이 좋은 기자다. 하여튼 별 지랄들을 다한다. 버러지새끼들이.

오래전 보았던 아마 만화였을 것이다. 코메디 콩트였을지도 모른다. 새로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이 있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돈이 잘 벌렸다. 그래서 직원들 월급도 올려주고 자기도 팍팍 쓰면서 한창 기분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어느날 기계가 고장났는데 돈을 벌리는대로 다 썼더니 고칠 돈이 안 남았다. 어쩌겠는가? 기계를 고치지 못하니 망할 밖에. 물론 현실에서라면 대출이라는 수단이 있기는 하다.

 

감가상각이라는 것이 있다. 보유하고 있는 고정자산의 가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락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바로 오늘 나온 신품도 일단 한 번 사서 소유한 순간 다시 팔려면 중고로 가격을 낮춰 팔아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저 사서 소장할 뿐인 수집품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쓰이는 유형의 물품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하게 그 가치를 소모하게 되는 것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10년 전 1억에 산 기계는 과연 지금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3년 전 비싸게 주고 샀던 인덕션과 가스렌지는 지금 판다면 얼마의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3년 동안 사용한 사무용 책상과 의자를 지금 산다면 얼마를 더 쓸 것을 기대하고 사야 하는 것인가? 결국 예정된 기한이 지나면 다시 돈을 들여 수리하거나 새로 사야 하니 그 비용까지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최신기계지만 계속 사용하다보면 언젠가 기계가 낡아서 고장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 번 고장나는 정도이다가 고장나는 빈도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이상 기계 자체는 여전히 문제가 없어도 경쟁을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새기계를 사들여야 하는 때가 돌아온다. 기존의 기계로는 더이상 다른 경쟁자들과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아직 쓸모가 있을 때 일찌감치 팔아버리고 새기계를 사서 더 높은 효율로 생산하는 편이 경쟁력 면에서도 더 나을 수 있다.

 

그러고보니 가까운 곳에 실제 사례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래도 준수한 사양의 PC들로 채워진 PC방이었다. 최신게임도 잘 돌아가고 시설도 꽤나 쾌적했었다. 하지만 넘쳐나는 손님들에 사장은 더이상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고 빠른 PC의 발전속도만큼 준수한 사양의 PC들은 순식간이 최신게임을 돌리기에 무리가 있는 구닥다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비싼 돈을 들여 PC들을 업그레이드하려 하는데 이미 손님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한 PC에 그럴 여력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PC방 업계에 신규사업자만 넘쳐났었던 이유였다. 새로 창업할 때는 최신 고사양 PC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하지 않은 결과 구닥다리로 전락하며 손님은 떨어지고 이익마저 줄어들어 더이상 업그레이드할 여력마저 사라지는 악순환의 구조에 있었던 것이었다. 대개는 사업이라고는 처음 해보는 초보들이라 이익에서 사업장의 유지와 관리를 위한 비용을 따로 남겨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마저 모르는 경우가 많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자신이란 곧 자신을 위한 유일한 생산수단일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자신을 사용해서 일을 하고 가치를 생산하여 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이 과연 자신이라는 생산수단을 유지하고 관리하고 나아가 재생산하는데 충분한 수준인가 하는 것이다. 그저 밥만 먹고 잠만 잘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아프기 전에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도 해야 할 테고, 정신적인 평안을 위해 취미생활도 가져야 한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분신인 2세를 낳아 기를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을 이을 2세가 자신을 온전한 자신의 생산수단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로써 보살펴야 할 책임도 지니게 된다. 그를 위한 비용을 온전히 자신을 수단으로 한 노동을 통해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경우 무언가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고 베트남 역시 다르지 않다. 일본 또한 지나온 과정이며 역시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으로 유교라고 하는 전통적 가치를 꼽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은 지금 유교의 전통이랄 만한 것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걔들은 공자가 누군지 맹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오히려 남인 우리보다도 더 모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다. 그보다는 하나같이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한심한 나라들이라는 것에 더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이들 사회에서 노동자로서 일을 해서 받는 임금으로는 더이상 자기 혼자 먹고 사는 이외에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당장 그렇지 않은가.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는데 지금 우리나라 최저임금수준으로는 한달 내내 죽어라 일해봐야 혼자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뿐이다. 법적으로 허용된 연장근로시간 안에서 최대한 일을 해도 아이 하나 낳아 기르려면 꽤나 허리가 휘어져야 한다. 아이까지 기르며 그를 위한 충분한 넓이의 주거공간을 가지고 장차 아이가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까지 시키려면 주 52시간동안 연장근로수당 다 챙겨가며 일해도 돈이 한참 부족하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사업장이 과연 많은가? 그 힘들다는 조선업계조차 계약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저임금만 받으며 일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더 오랜 시간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말한 것이다. 그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손상, 나아가 자신도 연인도 가족도 챙길 수 없는 여유의 부족은 또한 현실적으로 가족을 가질 수 없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2030 남자새끼들이 사회경험도 없는 병신새끼들이라는 또 하나 이유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낮추고 일하는 시간을 늘려주어야 취직도 잘되고 결혼도 많이 할 것이다. 머리에 똥만 들어찬 것인가?

 

지금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아이 하나 낳아 기르는 것조차 버거울 뿐이다. 그냥 낳아 기르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까지 시키려면 진짜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는 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 사이 아이는 누가 돌보는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들이자는데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소수들인 것이다. 어지간하면 거의 최저임금만 받고 일해야 하는데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하며 가사도우미에게 월급까지 줘야 한다? 가사도우미의 최저임금을 낮추면 다른 곳은 영향이 없을까? 무엇보다 당장 이성을 만나려 해도 데이트비용은 어디서 떨어지는가?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꾸미기도 해야 할 테고, 여기저기 재미있고 즐거운 장소도 찾아야 하는데 그럴 돈은 또 어디서 날 것인가? 역시나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한다면 그럴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라? 

 

그나마 선진국들에서 출산률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들을 국가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급여와 여가시간, 그리고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부담을 통해 육아의 책임을 나누는 과정들을 통해서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도 크게 곤란을 겪지 않아도 되는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기에 충분한 수준으로 출산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다. 더불어 육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출산이 사회화로부터 소외된 치안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낳아 방치한 아이들이 결국 사회적 가치로부터 소외된 채 범죄로 내몰리는 구조가 그들 사회에도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더이상 큰 부담이 아니기에 이들 사회에서는 여전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 근저에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최소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여러 장치들이 있을 터다.

 

그러니까 어째서 젊은 세대들에서 더이상 결혼도 출산도 않고 있느냐는 것이다. 결혼한 사람들을 위해 이런저런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아이를 낳았다고 어린이집을 회사돈으로 운영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주는 것은 아이를 낳지 않은 직원들에 대한 차별이다. 임신해서 아이 낳는다고 자리를 비우는 여성들로 인해 자기 일이 늘어나니 불편하고 따라서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말거나 아니면 취직을 말아야 한다. 아이를 낳느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여성의 채용을 사용자가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2030 남자새끼들이 출산율 어쩌고 떠드는 것이 어째서 이토록 역겨운가 굳이 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지하는 것이 주 120시간 일하며 더 적은 최저임금에 주휴수당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과 정치인이다. 하긴 그러니까 역시나 결혼도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며 그저 증오에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게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자기란 자기를 위한 수단이다. 자기란 자기를 위한 소유이며 자기를 위한 가장 요긴한 유일한 생산수단인 것이다. 그런 자기를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하며 보수하고 재생산할 것인가.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주어져 있는가.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나마 있는 것들마저 줄이고 없애자는 정당을 오히려 그 당사자들이 앞장서서 지지하고 있다. 그것들을 없애자는 주장을 매도하고 비난한다. 희망이 없다는 이유다. 그래서 일본사회도 수출기업들의 부쩍 성장한 실적에도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고 중국의 미래다. 다음 세대는 조금 나을까? 하긴 부모들 탓이다. 그게 또 나랑 비슷한 세대들이다. 망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너무 당연한 상식이다.

문재인의 오랜 친구라는 송철호가 끝내 감옥살이를 하게 생겼다. 문재인이 너무 선량하고 정의롭고 도덕적이었던 때문이다. 너무 옳아서 윤석열과 한동훈의 폭주를 오로지 정당한 절차를 통해서만 해결하려다 결국 자신을 따르는 측근들인 조국과 최강욱, 그리고 송철호마저 모두 억울한 상황으로 내몰리도록 만든 것이다.

 

당시 문재인이 자신의 양심을 조금 접고 언론으로부터 욕먹는 것만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었으면 윤석열을 제어할 방법이 아주 없지 않았었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사용해서 대처했다면 윤석열을 찍어누르거나 아예 제거하여 검찰의 반란을 조기에 진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나중에라도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만 충실하게 해주었어도 대통령선거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다. 아니 당장 코로나로 사람들이 죽겠다는 상황에 선거에 영향을 줄 지 모른다고 지원금을 미루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오죽하면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청와대 앞까지 찾아가서 시위까지 했었겠는가. 혹시라도 자기가 지원금을 풀면 이재명이 당선되고 거기에 자기가 영향을 미쳤다는 말이 나올까봐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도 하지 않은 채 사실상 식물정부상태로 있었다.

 

심지어 윤석열이 대놓고 당선되면 청와대를 상대로 정치보복을 하겠다 선언했을 때도 측근들이 모두 분노해서 한 마디씩 하고 있는데 조용하라고 오히려 진정시키기까지 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로 인해 똥파리들이 윤석열에 대한 지지를 접지 않을까 대통령으로서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싫은 자신의 양심이 시킨 행동이었을 것이다. 물론 한 편으로 생각하면 옳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노골적인 정치보복 선언에 분노했던 측근들은 예고했던대로 검찰수사와 재판이라는 곤욕을 실제 현실에서 치르고 있는 중이다. 문재인은 그런 이들을 위해 최소한 변호사비용이라도 제대로 지원하고 있는 것인가.

 

문재인이 무능하다는 이유는 한 가지다. 집권자로서 정권을 내주었다. 집권자로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지 않아 자신이 그동안 이룬 모든 것들을 무위로 돌릴 상대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정권을 내줌으로써 자신의 측근들조차 모두 상대의 손아귀에 쥐어주고 말았다. 그래서 문재인이 집권하는 동안 이룬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룬 것이 있다 해도 정권이 바뀌고 남은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래서 진심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다. 문재인이 이룬 것들이 진정 그가 진심으로 이루었어야 한다 여기는 것들이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가도록 방치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양심을 위해 그러도록 방치했고 그 결과 모든 것은 의미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문재인 집권 5년은 그런 점에서 사실상 없는 시간이나 다름없다. 모든 것이 부정되고 파괴되어 남은 것이 업는데 그 시간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선택한 것은 다름아닌 문재인 자신이었다. 그 결과 측근이던 조국과 그 가족들에 이어 친구들까지 고통받게 되었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겠는가.

 

이탄희의 주장이 설사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전혀 들을 가치가 없다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이탄희 뿐만 아니다. 어쩌면 선의에 의한 것일지 모르는 패배하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 주장하는 개새끼들의 소리를 그냥 버러지 똥파먹는 소리라 여기고 욕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선거에서 지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선의로 정정당당하게 선거를 치러서 졌다면 그래서 민주당에 무엇이 남는다는 것인가? 그를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대신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인가? 이탄희가 개새끼라는 이유는 지금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대부분 정책과 법안들이 나의 일상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 69시간 노동에, 주휴수당 폐지에, 최저임금인하에, 중대재해법폐지에, 정규직 해고자유화까지. 국민연금도 더 내고 더 늦게 덜 받게 될 것이 확실시되고, 전기와 수도가 민영화되면 진짜 전기 쓰고 물먹는 것까지 압박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을 위해 그런 것들도 기꺼이 감수하자. 씨발개새끼가 진짜 터진 입이라고 아무 소리나 똥싸듯 배설해대는데 이걸 사람새끼라 봐야 할 지 의문이 들 정도다.

 

솔직히 문재인도 지금 심정 같으면 개새끼 씹새끼 오만 욕을 퍼붓고 싶을 정도다. 문재인이 병신짓 하는 바람에 정권이 바뀌고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불편한 상황을 감수해야 했는가. 문재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기에 알량한 양심을 위해 그런 것들을 저버린 행위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괜히 윤석열을 욕하면서도 문재인을 더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아니다. 그런데도 자기는 유유자적 취미생활이나 즐기고 있으니. 저런 새끼를 내가 정치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이 한때 여성주의에 호의적이었다는 것처럼 지우고 싶은 흑역사로 여겨진다.

 

아무튼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짊어진 무게를 방기한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괜히 술쳐먹고 말타다 떨어져 뒈지는 바람에 수 십 년간 영국이라는 나라에 피바람이 불게 만들었던 어느 왕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은 윤석열과도 많은 점에서 닮았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짊어진 무게보다 자신의 양심이나 기분에만 따랐다. 물론 이탄희는 어차피 이제 민주당 국회의원도 아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쓰레기라는 것이다. 아직 그는 민주당 소속의 국회의원이다. 그나마 이탄희만 언급하는 것은 어차피 홍영표나 김종민, 유인태의 속내야 뻔하기 때문이다. 김부겸이나 이부영따위의 무리들 역시. 여당 국회의원을 하고 싶으면 여당으로 날라가면 된다. 그놈들 생각하는 것이야 고작 그런 수준이다.

 

새삼 문재인에 대한 분노를 일깨우고 말았다. 어디 도자기 가마에라도 놀러간 모양인데 참 인생 한가롭다. 그래도 되는 인사였던 것이다. 그가 그동안 주장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겼던 모든 것들이 고작 그런 정도의 가치에 불과했던 것이다. 속은 놈이 병신이다. 그걸 태연히 속인 새끼는 개새끼인 거고. 아우 씨발.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워마드나 메갈리아 같은 극단적인 혐오주의자들에 대해서까지도 여성주의를 앞세우고 있기에 그래도 이해해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부류 가운데 하나였다. 여성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 극단적이더라도 여성주의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부류였었다. 그래서 그때는 논란이라는 게 가능했었다. 워마드와 메갈리아에 대해서조차 반대편에 다른 의견들이 적지 않았고 그래서 때때로 긴 논쟁이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원래 그렇게 여성주의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이고자 했던 대부분 사람들은, 특히 여성주의와 직접 상관이 없는 남성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았었다. 이준석을 보면 알 수 있듯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경우 여성주의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었고. 하지만 정작 여성주의자들이 선택한 것은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민주당이 아니라 여성주의를 혐오하는 국민의힘이었다. 여성주의자 신지예가 이준석과 한 배를 탄 모습을 떠올려 보라. 오죽하면 여성가족부 없애겠다고 이준석이 앞장서서 공약했더니 여성주의자들이 좋아서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을 정도였다. 민주당의 성문제는 어떻게든 키워서 공격하다가 국민의힘의 성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었고, 김건희에 대해서는 여성이라면서 결사적으로 방어하다가도 민주당 인사에 대해서는 여성으로 감히 드러내기 두려운 사안에 대해 주저없이 까발려 댔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민주당 밖에 있는 여성주의자들만이 아닌 민주당 안에 있는 여성주의자들까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주의자로서 공천받았던 정춘숙이 누구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민주당 안에서 여성주의자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다수가 지난 정부에서 정작 누구를 위해 정치를 했었는가 대부분 알고 있다. 여성주의는 민주당의 적이다. 정확히 민주당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양성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의 가치가 아닌 단지 기득권의 입장에서 혐오와 배제만을 주장할 뿐인 수구의 가치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의당이 여러 국정현안에 있어 보인 모습들이 그 증거일 수 있다. 여성주의를 위해 그동안 진보주의자들이 추구하던 모든 가치를 부정해 버렸다. 탈원전 했다고 문재인 퇴임하면 감옥에 보내야 한다던 것이 바로 정의당이었었다. 그러고보면 여성주의를 주장하던 한겨레에서도 김학의 출국금지시켰으니 문재인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대놓고 유튜브에 영상까지 내보낸 바 있었다. 그런 여성주의를 이해하고 관용하는 것이 과연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어떤 가치가 있을 것인가.

 

아마 내게 있어 그 결정적인 계기를 꼽으라면 박원순에 대해 조금 온정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계약직 방송인이 일자리를 잃도록 압력을 행사했던 부분일 것이다. 같은 여성이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약자인 계약직 신분의 노동자였다. 그런데 단지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그 생계마저 막아버리고 있었다. 미투의 시발점이었던 서지현 검사에 대한 공격은 더 가관이었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로서 서지현 검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어이없는 말까지 서슴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대놓고 언론을 통해 떠든 것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여성이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이고 가치인 것일까? 그 순간 확신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여성주의는 기득권 여성의 한가한 놀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것을 지지할 필요가 있을까?

 

한 편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여성주의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주장들에 휩쓸리고 마는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을 위한다니까 노동자인 자신도 위하는 것이라 여기고 그 가치를 추종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허위이고 기만이다.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여성이란 기득권 여성이다. 오래전 어느 판사가 판결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만을 보호하는 것이 현재의 여성주의다. 그런 여성주의의 허위와 기만에 대해 깨닫고 난 뒤 더이상 여성주의에 우호적이던 남성들의 이해와 관용은 설 곳을 잃어 버렸다.

 

물론 여성주의자 스스로가 바란 상황이기도 하다. 여성주의자들은 무지렁이 남성들의 지지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남성이 여성주의자들의 편에 선 것을 알면 더 날선 태도로 모욕과 비난을 퍼부어대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주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윤석열과 한동훈 같은 기득권 남성들이다. 이미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는 남성들인 것이지 보통의 일반 평범한 남성들은 아닌 것이다. 여성주의의 태생부터가 그랬었다. 자기 제자들을 정신대로 등떠밀어 내보낸 김활란이 여성주의의 대모다. 여대생들을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고급창녀로 육성했던 모윤숙이나 공산주의자의 가족들을 동원해 위안소를 운영했던 박마리아가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것이다.YMCA가 원래 뭐하는 곳이었을까? 그래서 현실을 알게 된 대부분 남성들이 등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예전에는 그래도 여성주의와 관련해서 작게라도 논쟁이라는 게 이루어지던 사이트에서조차 이제는 어지간하면 일방적으로 여론이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아주 사소하게라도 여성주의의 편에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이야 그런 데 관심이 없고, 관심이 있던 사람도 모두 등을 돌렸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장애안단체나 성소수자단체들이 누구를 위해 어떤 정치적 입장에서 누구를 주로 공격해 왔었는가 아는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개인으로서 여성이나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우호적일 수 있어도 집단으로서 그들의 주의와 주장에는 더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병신이란 것이다. 이 새끼들은 아직도 과거에 산다. 사실 민주노총이 아직까지도 민주당을 거부하고 윤석열을 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일 것이다. 민주당은 성범죄가 일상인 반여성정당, 국민의힘은 노동존중과 여성존중의 정당, 그래서 윤석열 정권이 빨갱이몰이를 할 때도 그냥 입 꾹 닫고 당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였으면 민주노총이 이렇게 조용했을까? 그래서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어쩌지 못하니까 괜히 여성주의 앞세워 한 마디 했다가 노조에 대한 영향력만 또 약화되고 말았다. 더 이상 들어줄 가치가 없는 소리에 한 발 얹었으니 그 대가를 치른 것이다.

 

아무튼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의 현주소일 것이다. 정확히 여성주의가 선택한 결과다. 정권이 바뀌고 그토록 떠들던 성인지감수성이란 단어가 아예 사라지다시피 했다.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잦아들었다. 여성주의자들이 더이상 여성을 떠들지 않는다. 그만큼 현정부의 정책들에 만족한다는 소리다. 그들은 정치적인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실체를 깨닫고 말았다. 어찌보면 다행스런 일이다. 흑역사라 여긴다. 여성주의를 이해하려 노력하던 시간들을.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 안된다. 여성주의란 혐오다. 혐오하기에 혐오의 대상이다.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까 기자새끼들 언론장악 반대 어쩌고 하는 게 다 구라라는 것이다. 당장 보라. 정권의 언론장악을 앞장서서 기획하고 추진했던 이동관이 사퇴했는데 잘 사퇴했다는 기자새끼가 한 새끼라도 있는지. 오히려 이동관을 탄핵하려던 민주당을 비웃고 조롱하며 비판하는 새끼들이 더 많을 정도다. 민주당 엿먹이려고 사퇴한 게 너무 탁월했다고 빨아주는 새끼도 그만큼 많다. 무엇을 뜻하는가?

 

언론으로서의 자유와 가치를 지키겠답시고 파업했던 KBS가 성공리에 파업을 마무리하고 내뱉었던 첫일성이 무엇이었는가를 떠올려보라. 문재인 목을 따서 자신들이 파업한 정당성을 입증해 보이겠다. 뭔 말이냐면 처음부터 문재인 마음껏 공격하려고 파업했다는 뜻이다. KBS의 중립성을 보장해주겠다고 파업에도 힘을 실어줬던 민주당을 오히려 공격하기 위해서 언론의 자유와 가치를 앞세웠던 것이었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즉 민주당만 아니면 전두환 시대의 언론검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언론사 통폐합도 얼마든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언론장악 반대라는 것도 윤석열 집권을 저제로 한 요구일 뿐 그 대안으로 민주당의 저지를 위한 노력을 요구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민주당이 KBS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을 하려 하자 오해려 문 활짝 열고 KBS 갖다바친 구성원들의 행동력을 보라.

 

물론 소수는 아닐지 모른다. 개신교가 그런 것처럼 언론에도 소수 양심적인 기자가 있을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꽤나 청렴하고 양심적인 독재부역자가 있었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가운데서도 조선에 우호적이고 동정적이던 인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런 이들이 모두를 대변할 수 없는 것처럼 결국은 방향성이다. 언론의 자유가 무엇보다 소중한 것처럼 떠들던 한겨레와 경향마저 이동관 탄핵을 추진한 민주당을 욕하고 이동관과 정권의 선택을 찬양하는 현실을 보라. 탄핵에 반대하는 민주당내 정치인들의 목소리만 열심히 받아쓰던 것들이었다.

 

언론의 자유란 최소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의미없는 헛소리라는 뜻이다. 언론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와 중립성이 아니다. 공공성도 아니다. 재갈과 채찍이다. 제너럴 셔먼이 참 좋은 말을 남겼었다. 내가 아는 좋은 인디안들은 모두 죽었다. 언론이 받아썼다. 좋은 인디안은 죽은 인디안이다. 좋은 기자는 죽은 기자 뿐이다. 기레기라는 말을 거부한다. 쓰레기도 소중한 자원일 수 있다. 기자는 어디도 쓸 데 없는 폐기물일 뿐이다. 그냥 버려야 하는 것들이다. 

이낙연 이 새끼는 진짜 주제를 모른다. 자신을 전혀 모른다. 다른 게 내로남불이 아니다. 이딴 새끼들이 지가 꼴리면 건강한 것이고 남이 꼴리면 범죄자라 몰아가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이낙연 자신은 물론 그 지지자들까지 경선결과에 불복하고 윤석열을 지지하네 하며 지랄을 벌였었다. 민주당 당원이라는 것들이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후보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상대정당 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실제 선거운동까지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명백한 해당행위였는데 당시 이낙연은 그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었는가. 자기당 후보인 이재명을 앞장서서 공격하고 이재명 뿐만 아니라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에 온갖 비난을 쏟아붓던 놈들에 대해 어떤 실제 행동들을 보이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도 개딸들은 다른 정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자기 정당 정치인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더 웃기는 건 개딸들만 문제라 여기는 인식이다. 민주당 지지층에서 개딸은 보이기만 그렇게 보일 뿐 실제 비중만 본다면 4050 남성들에 비해 한참 미치지 못한다. 민주당 지지층의 주류는 어디까지나 4050 남성들이고 이들이 과거 선거만 치르면 민주당을 떠받치던 당시의 2030 세대들이었던 것이다. 이낙연이 민주당에서 욕을 들어 쳐먹는 건 개딸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들 때문인 것이다. 이낙연 뿐만 아니라 수박들이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욕을 들어 쳐먹는 건 바로 이들이 그들을 비토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이낙연 욕하고 이원욱 욕하고 이상민 욕하고 김종민 욕하는 나는 벌써 50대에 남성인데 나도 개딸이라 부를 것인가? 개딸의 행동력이 저만한 영향력을 보이는 것은 그들의 행동이 정당하다 이들 주류지지층이 인정하고 지지해주었기 때문인 것이지 절대 그들이 다수여서는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심지어 이낙연은 중도층에서도 전혀 인기가 없다. 주위에도 민주당 이야기만 나오면 욕부터 내뱉고 보는 사람들도 이낙연이라면 고개만 절레절레 젓는다. 다른 무엇보다 당대표시절 이낙연 체제의 민주당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마치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이낙연의 모습에서 정치인 이낙연에 대한 환멸과 혐오를 가지게 된 것이었다. 한국 유권자가 가장 싫어하는 행위 중 하나가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것이다. 지지자 또한 국민인데 그 국민들의 선택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 놈은 믿을 수 없다. 그래서 그나마 이낙연 좋게 말하는 인간들은 윤석열에게 투표한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일부와 윤석열을 지지하는 보수층이 전부인 것이다. 그래서 이낙연이 출마하면 윤석열을 지지한 보수층에서 이낙연을 지지해줄까? 하긴 그래서 보수유권자들에 잘 보이려 정부와 여당은 칭찬하면서 민주당만 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치인 이낙연은 끝났다. 그 사실을 이낙연과 그 주위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개딸만 이낙연을 싫어하는 게 아니다. 민주당 지지층 전체가, 그리고 다수의 중도층에서 이미 이낙연은 끝난 정치인이다. 주제를 모르고 나대는 것이다. 하긴 언론이 그렇게 이용하고 있기는 하다. 언론만 바라보고 정치하는 것들의 끝이란 항상 이렇다. 그런 주제인 것이다.

간단한 비유다.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 계백은 황산벌로 군사를 이끌고 출진하기 전에 침략군에 의해 욕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자기 가족들을 자기 손으로 죽이고 있었다. 그만큼 5만의 적군을 5천의 병력으로 막아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었는데, 그러면 과연 당시 계백은 어차피 질 걸 알고 지려고 싸움에 나섰던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이기기를 바라고 군사를 이끌고 황산벌로 향했던 것일까?

 

어차피 지는 싸움일 테지만 그럼에도 싸워야 하는 것은 그만한 당위가 있기 때문이다. 나라가 망할 상황인데 신하로서 백성으로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한 목숨 내던지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행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질 싸움임을 알고 나섰으면서도 그 와중에도 어떻게든 승리할 가능성을 찾아본다. 그래서 때로 압도적인 열세를 뒤집는 승리도 가능했던 것이었다. 한 번 죽어보자 나선 싸움이 우연과 필연이 겹치며 대국을 뒤집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져도 가치있는 싸움이지만 이기면 더 의미가 있기에 뻔히 지는 싸움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내가 부산에서 노무현이 어떻게 선거운동하는지 부산 사람이 아니니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당시 동영상이나 사진을 보더라도 노무현이 부산에서 선거운동하며 어차피 질 선거라고 대충 넘어가는 모습은 보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당시 노무현은 어차피 지는 선거기에 더 필사적이었다. 당연하게 지는 선거여서는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지역주의를 깨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서 부산 시민들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리고 의미있는 득표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혹시라도 실제 당선이라도 된다면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중요한 시금석이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과연 노무현이 당시 어차피 질 선거라고 질 마음으로 선거에 임했는가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는 질 선거라고 지려고 선거에 임했었는가?

 

그래서 지금 연동형비례대표제를 그대로 두고 위성정당도 만들지 않아 선거에 질 경우 민주당은 어떤 의미를 실현하고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다당제는 민주주의 당위가 아니다. 민주주의라고 모두가 다당제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본진인 미국과 영국은 사실상 양당제를 취하고 있다. 정당활동 자체는 자유지만 대세가 두 개의 거대정당을 중심으로 모든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들이 민주주의국가가 아닌 것인가? 어차피 우리나라도 정당을 만들고 활동하는 자체는 법으로 얼마든지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다만 그들이 원내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인데, 그래서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 정당한 지분을 가지고 국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인 것이다. 하지만 특정 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오히려 정당한 국민의 선택을 왜곡한다면 오히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이다. 국민이 지지하는대로 의회구성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취지를 왜곡하는 행위를 방치해가면서까지 기존의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그래서 얼마나 민주주의의 본의와 부합하는 것인가.

 

더구나 그렇게 민주당이 지는 선거를 할 경우 제 1당이 될 국민의힘이 대통령과 함께 어떤 정책과 입법을 추진할 것인가도 보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 과연 민주당의 가치와 부합하는가. 더불어 민주당을 지지하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들의 요구와도 일치하는가. 그것을 막아야 하는 책임이 민주당에게는 있는 것이다. 지지하는 국민들만큼 그들의 바람과 기대 만큼 민주당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방법이 있는대도 단지 자신의 원칙만을 위해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방기고 유기다. 무엇보다 그런 절실함도 간절함도 없는 인간들이 민주당 당적으로 남아 있는 자체가 민주주의의 원칙과 위배되는 것이다. 너희는 무엇을 위해 민주당 배지를 달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 이탄희 이 병신새끼가 아마 그런 의도로 말한 모양인데, 민주당 180석보다 반윤 200석이 더 유용하다. 그래서 반윤 200석이 어디서 나오는가? 친박연대를 보았으면 이준석의 신당이 다시 국민의힘으로 돌아갈 것은 너무나 명확해진다. 바른미래당도 그래서 결국 다시 국민의힘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정의당이며 진보를 자처하는 2찍 진보들 역시 윤석열 정권 내내 민주당만 욕했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게는 어쩌다 한 마디 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이었다. 용혜인 말고 소수정당 가운데 현정부와 여당에 비판적인 정당이나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있던가. 그런 놈들을 모두 반윤석열 진영으로 여기자는 게 진짜 병신짓거리인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까지 범진보 190석이라고 설레발치던 유시민과 다르지 않은 수준인 것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의석을 얻고 정의당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했었는가. 아니 연동형비례대표제로 의석을 얻을 기대가 생긴 순간 심상정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문재인 탄핵이었다. 이인영이 옳다. 정의당과 얽히는 건 똥통에 빠지는 것과 같다.

 

어쨌거나 그렇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그토록 중요하고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라 여겼다면 아직 정권을 잡고 있고 민주당이 다수당이던 때 법을 바꿨으면 되는 일이었다. 늬들이 했어야 하는 일이란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탄희 이 새끼도 당시에는 이와 관련해서 법안을 발의하거나 하는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 지금 열심히 입을 터는 김종민이며 홍영표 역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낙연은 당대표로서 당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래놓고서는 자기들이 방치한 결과를 민심을 왜곡하게 되더라도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10% 이상 높은데도 국민의힘이 1당이 되는 결과를 처음부터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 윤석열 당선되더라도 탄핵하면 된다던 똥파리들이 아예 윤석열 다수당 만들어주자는 주장에 환호를 보내는 것은 그러려니 그냥 웃고 넘기고 말 뿐이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건 아니라더니 결과적으로 윤석열 다수당 만들어주자는 적극지지층이었던 것이다. 그런 놈들이 노무현 운운하는 것 보고 있으면 진짜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과연 어디까지 저열해질 수 있는 것일까.

 

아무튼 정의당의 윤석열 사랑이 너무도 절절하다. 지금 정의당 지지율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지되어도 단 한 석조차 얻기가 힘들다. 그럼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사수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민주당내 수박들과 같다. 이탄희의 의도도 그래서 대충 짐작이 된다. 국민의힘 1당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탈당해서 국민의힘에서 한 자리 하고자 하는 욕심일 것이다. 지금 출마를 포기하는 대신 더 확실한 지역구를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고수되면 아마 정의당과 국민의힘의 합당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최소한 심상정의 입당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명분은 확실하다. 국민의힘이야 말로 노동존중의 정당이며 여성존중의 정당이다. 이는 정의당 대표의 이름으로 나온 공식적 평가다.

 

김종민이니 유인태니, 유인태 이 영감은 어차피 출마도 안 할 인간이다. 국회의원 출마도 몇 번 못 해 본 정치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찌꺼기인 셈이다. 아마 국회의원 한두번 했을까, 그저 민주진영에 잠시 발을 걸치고 있었다는 이유로 많은 나이를 무기삼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며 먹고 사는 비루한 인생인 것이다. 그런 것들이 노무현이라니. 노무현 죽을 때 죄다 외면하고 있던 것들이었는데. 당장 하는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노무현이 부산에서 얼마나 절박했을 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더라도 지는 선거를 이기기 위해 나서야 하는 그 비장함과 간절함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놈들이 노무현을 떠든다. 병신은 답이 없다. 수박은 약이 없다. 역겨운 것이다. 하다못해 김어준도 아니라 그러는데. 토하고 싶다.

지금 국민의 보편적 여론은 지금 정부와 여당의 폭주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하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과반을 넘어가고 있다. 당연히 총선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할 것인가 의향을 묻는 조사에서도 과반 이상 야당에 투표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총선의 결과가 어떻게 나와야 하겠는가. 국민의 여론이 그렇다면 민주당이 승리해서 1당이 되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이 1당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방치하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하는 것인가.

 

웃기는 것이다. 민주당이 1당을 포기하는 것이 국민과 함께 승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의 여론은 민주당을 과반 1당으로 만들어 정부와 여당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국민인가? 선거결과를 국민의 실제 여론과 다른 방향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 의도는 무엇일 것인가. 무엇보다 그런 주장을 하는 놈들이 민주당에 몸담고 있다는 것이 웃기는 것이다. 다시 반복된다. 민주당 지지자는 국민이 아니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외의 국민만이 국민이다. 언론도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 그러니 국민의 승리가 되는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거의 과반에 가까운 국민을 배제했을 때 선거결과는 그들이 생각하는 국민의 여론과 같이 간다.

 

국민의 여론이 선거결과와도 바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의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과 부합한다. 국민을 배제한다. 정확히 자신들에게 표를 준 지지자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하긴 그래서 이탄희는 총선출마를 포기했을 것이다. 얼마나 역겨웠을까. 국민도 아닌 지지자들의 표를 받아 국회의원 생활을 하는 것이. 당당하게 민주당에서 지지자를 쳐내자는 주장을 할 수 있는 놈들이란 것이다. 어떻게든 지지자들을 위해 무어라도 하나 더 해 줄 수 있을 것을 고민하기보다 마음에 안드는 지지자는 쳐내자. 그러면 똥파리는? 역겨운 새끼들이다. 한겨레같은 놈들이다. 정의당같다. 구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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