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느끼는 거지만 2030 2찍남들이 이준석을 진짜 희한하게 고평가한다. 오죽하면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준석을 싫어하는 이유가 이준석이 위협적인 존재라 그러는 것이란다. 진짜 그런가? 그런데 한 편으로 비슷하게 이준석을 고평가하는 놈들이 또 하나 더 있기는 하다. 바로 자칭 진보들이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었을 때 한겨레의 기사를 아직도 기억한다. 민주당은 어째서 이준석이 없는가? 너무 뿌듯해서 자랑하듯 놀리듯 쓴 기사였다. 그러고보면 확실히 전부터도 자칭 진보의 이준석에 대한 평가가 꽤 좋았었다. 2찍 남성들의 여성 및 사회적 소수자 약자들에 대한 혐오에 기생하는 부류였을 텐데 어째서? 하지만 김학의를 출국금지시켰다고 문재인 대통령은 사법적인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이성윤은 고검장이 되어서 안된다 입에 거품을 물던 것이 자칭 진보였고 보면 또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윤석열 지지해서 대통령까지 만든 것이 자칭 진보 아니던가.

 

아무튼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준석을 싫어하는 이유는 별 것 없다. 이준석의 눈물쑈에 보인 본능적인 혐오감과 같은 맥락이다. 이준석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에 대한 공감을 이야기한 적 없다. 현실을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개인이 아닌 비판과 평가의 대상인 객체로써만 인간을 이해했다. 그래서 2찍남들의 정서와도 통하는 바가 있었다. 차라리 욕할 수 있는 악이 욕하기도 애매한 위선보다 낫다. 실제 사회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악보다 타자로서 욕하기 불편한 위선이 더 나쁘다. 그렇다 보니 이준석이 말하는 논리나 이성이란 결국 인간이란 자체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배제한 그냥 뇌피셜인 것이다. 상대를 철저히 객체화했을 때 가능한 머릿속 논리가 이성이 되고 냉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놈이 울면서 감정을 드러냈으니 사람들의 평가가 좋을 리 있다. 그러고보니 이것도 자칭 진보와 닮은 꼴이네?

 

그래서 싫어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가치란 인류보편의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전제하는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주체로써 개인이 개인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보장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이 추구하는 리버럴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깡그리 대놓고 무시하고 조롱하고 혐오와 경멸의 감정마저 아무렇지 않게 내비치고, 더구나 그를 통해 인기를 얻으려 하고 있으니 감정이 좋을 리 있나. 그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혐오감정에 편승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준석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그때는 또 자칭 진보에서 이준석에 대한 평가가 그리 좋지 못했다.

 

아무튼 깨닫는 것이다. 어째서 자칭 진보와 민주당은 서로 어울릴 수 없는가. 자칭 진보는 오히려 국민의힘보다 민주당을 더 혐오하는가. 2030 2찍들과 비슷하다. 대놓고 욕할 수 있는 보수가 욕하기도 애매한 중도보다 차라리 더 낫다. 차라리 노동자를 더 힘들게 하는 쪽이 애매하게 좋아지게 하는 것보다 평가하기 더 편하다. 이준석 덕분에 떠올랐다. 저놈들과 무엇이 다른가. 이준석과 김학의가 곧 자칭 진보다. 그래서 저놈들과는 서로 섞일 수 없다. 그래서도 안된다. 당연히.

그동안 정의당이 비례에서 상당한 유의미한 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의 모호한 정체성에 힘입은 바 컸다. 주류언론은 민주당을 진보라고 몰아가는데, 정작 중도보다는 진보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보기에는 민주당의 행보가 영 마뜩지 않았다. 보수정당과 경쟁하고는 있지만 딱히 진보적이라 할 만한 지향이나 추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 더 선명하라고 그 대안으로서 더 왼쪽에 있는 진보정당에 비례표를 주게 된다. 다시 말해 진보정당으로서 민주당과 선명성을 경쟁할 때 오히려 그 존재를 드러내고 가치도 높일 수 있었다는 뜻이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민주당이 보이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진보적인 유권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문재인이 당대표가 되고 많은 인재들을 영입하면서 민주당의 선명성이 전보다 더 도드라지기는 했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여러 정책들을 실제 시행하고 여당인 민주당 역시 이런저런 개혁법안들을 주도해서 입법하면서 정의당의 위치가 위협받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정의당의 지분은 여전했고, 상식적이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는 불편하기만 한 영역들도 사회 곳곳에 남아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진보적인 정책에는 동조하면서 그렇지 못한 정책들에 대해서는 강하게 대안을 제시했어야 옳았다. 그러므로 여전히 민주당보다는 정의당에 더 많은 진보적인 지분이 있고,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정의당에 더 큰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 당장 중대재해법만 하더라도 정의당이 주장한 법안에서 얼마나 후퇴한 것인가. 그렇다면 더 완전한 법안을 위해 정의당이 더 큰 힘을 가지고 국회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어필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이 망한 것이었다. 민주당과 진보의 선명성을 가지고 경쟁했어야 하는데 민주당과 차별하겠다고 중간을 건너뛰어 국민의힘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민주당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보다 왼쪽에서 진보적인 노선을 가지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반대편에 위치한 국민의힘과 손을 잡고 그들과 동조하는 행보를 보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온 말이 바로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는 국민의힘에 대한 정의당 당시 당대표의 헌사였다. 주 69시간 노동에, 최저임금인하와 주휴수당폐지와 정규직해고자유화를 주장하는 정당에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는 찬사를 바친 것이었다. 민주당만 아니면 되니 나온 참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향성은 지난 정의당 대표경선에서 했던 정의당이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에 찬성해서 지지율이 꺾였다고 하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과 같이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지지율이 망했으니 앞으로도 국민의힘과만 함께해야 한다.

 

공수처법이 통과될 때도 정의당은 국민의힘의 논리를 받아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었다.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이 윤석열 정부의 총리와 장관을 상대로 웃으며 좋은 말이나 늘어놓는 모습도 그래서 당연하게 이해가 된다.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민주당이 윤석열이나 주위인물들을 공격하면 앞장서서 방어하고 나선 것이 바로 정의당이었다. 이재명에 대해서는 매순간 날선 발언들을 쏟아내던 정의당이 정작 윤석열에 대해서는 왜 윤석열은 안되냐며 감쌌다. 지난 대선에서 단일화만 안했을 뿐 윤석열과 선거운동을 공조한 것이 바로 정의당이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이런저런 특검이나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그래서 정의당은 항상 소극적이거나 반대입장이었다. 그런 결과인 것이다. 최소한 윤석열 정부에서는 진보정당으로서 정의당의 존재감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심지어 노조들이 간첩몰이를 당하며 탄압받고 있는 와중에조차 노동자의 정당이라던 정의당은 그 모습조차 볼 수 없었다. 그런 정당을 굳이 기성 정당의 대안으로 지지해야 하는 것인가.

 

그러니까 그동안은 기존의 거대양당이 현실정치에서 추구하지 못하는 진보정치에 대한 대안으로써 진보정당인 정의당에도 일정 지분이 주어져야 한다 여기고 있었다면, 이번 정부 들어서는 대안은 커녕 그냥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 놓여 있는 국민의힘에 가까운 중간정당으로서 그 가치가 희박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찌되었거나 국민의힘과 협력하며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민주당과 차별화를 시도하는 정당인데 굳이 진보적인 정치를 위해 그런 정당에 지지를 보낼 필요가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중간지대의 정당으로서 정의당이 그동안 분명한 정체성이나 확고한 인상을 심어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런 정당에 표를 주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류호정은 정의당이 더이상 진보정당으로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며 약을 팔고 언론은 그대로 받아써주고 있었으니.

 

아직도 한국정치에는 진보의 남아있는 공백지가 거의 무궁무진하다 할 정도다. 거대 양당이 거의 중도에서 보수로 치우친 결과 진보의 영역은 그야말로 무주공산인 것이다. 당장은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도 깃발만 꽂아 놓으면 언젠가 그곳으로 찾아올 유권자가 적지 않을 터다. 그런데도 진보만으로는 만족 못하겠다며 민주당의 영역을 노리느라 보수정당과 손잡고 그 정체성을 섞어 놓았으니 진보라고 그 자리가 남아 있을 리 있나. 정의당만이 아니다. 한겨레와 경향, 그리고 홍세화나 강준만, 김규항 같은 놈들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은 진보당과 박노자 정도일까? 사회민주당이 혹시 그 대안이 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진보가 멸망하는 순간이다. 한순간의 선택의 결과다. 자업자득이다.

그래도 내게는 정세균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다. 열린우리당이 깨지고 다시 민주당으로 합쳐졌을 때 그 중심에는 김한길을 중심으로 한 당권파가 있었다. 바로 지금 수박들의 원조다. 그리고 당시에도 운동권들의 깽판은 여전했었다. 그나마 김근태가 살아있을 때는 어느 정도 개혁성도 보여주더니만 손학규가 중심을 잡고부터는 그나마도 없이 패거리정치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2030이 586을 괜히 싫어하는 게 아니다. 민주화운동을 했다 뿐 586 가운데 그동안 이렇다 할 개혁성이나 선명성을 보여준 놈이 누가 있던가. 그런 때에 그나마 정세균이 최대계파를 거느리고 어느 정도 민주당을 잘 지탱하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 그 시기 민주당이 선거에서 몇 차례 이기기도 했었다.

 

2016년 총선에서 종로에 출마해 오세훈을 눌렀을 때 정세균에 대한 지지자들의 호감은 그야말로 절정에 이르렀었다. 이낙연에게 지역구를 물려주고 총리로 들어간다 했을 때 그에게 기대하는 사람도 그만큼 적지 않은 수였었다. 아직 이낙연이 차기대통령으로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박원순도 이재명도 한참 뒤에서 쫓아가던 상황이었다. 총리로서 잘만 했으면 정세균에게도 기회가 아주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낙연과 닮은 꼴이다. 조선일보만 보면서 총리질하다가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알아서 멀리 걷어차 버렸으니.

 

바로 공공의대 정원확대와 관련해서 의사들이 파업했을 때 그에 대처하는 행정부의 중심에 정세균이 있었던 것이었다. 총리든 장관이든 임명했으면 권한 안에서 최대한 믿고 맡기는 타입이라 행정부의 조치나 대처에 대해 대통령은 정작 크게 관여한 바가 없었다. 그래서 책임총리로서 정세균의 이름으로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해야 했었는데 이때 너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자신은 두루두루 원만하고 우호적으로 선의로써 상호이해 아래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사람좋은 모습을 기대했었는지 모르겠는데 정작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너무 유악하다는 인상만 받을 뿐이었다. 정부의 정책방향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을 때 필요하면 강하게 나가는 의지도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었다. 정부의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서도 그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의사들의 여론에 끌려다니는 모습만 보여주고 말았다. 민주당 정부에 대한 지지가 결정적으로 꺾인 계기였다. 민주당은 이해당사자들의 반발과 그로 인한 혼란을 적절히 수습할 역량이 안 된다. 한 마디로 무능하고 무책임하다. 그때 정세균이 보여준 모습이었다.

 

코로나 시국에서 이재명이 신천지를 상대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며 일하는 도지사로서 자신의 모습을 전국에 각인시킨 것과 비교되는 모습일 것이다. 아마 정세균이었다면 신천지 관계자를 불러 좋게좋게 웃으며 대화로 풀어가려 했었을 것이다. 그나마 총리니까 뉴스로도 나오는 것이지 저래서는 자기 이름을 알리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가 총리라는 중요한 기회를 얻고도 그것을 살리지 못하고 대선후보경선에 이름도 제대로 올리지 못하고 만 현실이었을 것이다. 만일 그때 정세균이 이재명처럼 의사협회를 상대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고 끝내 정부의 정책을 관철했으면 평가는 또 달랐을 것이다. 총리가 강한 의지를 가지고 버티며 해결을 주도하니 정부의 의도대로 정책이 실행되고 있었다. 그것이 힘이고 능력이다. 실행력이고 돌파력이다. 사람들이 대통령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다. 문재인도 그것이 부족해서 비판을 많이 받았다.

 

아무튼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의대정원을 늘린다고 하니 더욱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정작 윤석열 정부에서는 문재인 정부보다 두 배 이상 더 정원을 늘린다고 하는데도 의사협회가 조용하다는 것이 그래서 더욱 정세균의 당시 판단을 아쉽게 만드는 것이다. 하긴 정세균만일까. 이낙연도 그러다 망했다 보면 된다. 힘을 주었는데 그 힘을 쓸 줄 모른다. 힘을 쓸 줄 모르고 멍청하게 끌려만 다닌다. 그게 바로 무능하다는 것이다. 힘을 쓸 줄 알면서도 자제하는 것이 절제하는 것이고 힘을 전혀 쓸 줄 모르면서 자제만 하는 것은 그냥 겁많고 비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놈들은 그래서 일찌감치 모두 떨어져 나갔다. 이제는 오래전 기억으로만 남는다. 지금 정세균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생은 선택이다. 언제나.

이러니까 그동안 선거 때만 되면 당연하게 민주당에 표를 주어 왔던 사람들이 정작 민주당 자체에 대해서는 아예 대놓고 혐오하고 경멸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었다. 웃기지 않은가? 평소에는 오히려 보수정당보다 더 욕하는 게 민주당인데 그럼에도 결국 선거 때만 되면 민주당에 투표해야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당장 보라. 오랜만에 겨우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했는데 어찌되었거나 선거에서 이겼으니 기쁘고 다행이라는 한 마디 하는 놈이 이렇게나 없다.

 

원래 저런 놈들이 민주당의 주류였다. 민주당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나마 봐줄만하다는 게 김근태계와 정세균계였는데, 보다시피 이놈들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수준임에도 이보다 더한 것들이 그동안 민주당의 주류로써 당권을 쥐고 마음대로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있던 것이 김한길이었고, 그 김한길을 따르던 이른바 당권파들이다. 안철수를 따라 민주당에서 난장을 치고 떠난 놈들조차 그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문재인이 집권하고 있는 동안 숨죽이고 있다가 정권이 바뀌기를 기다렸다는 듯 아예 대놓고 나서서 그때처럼 설치고 있는 중이다. 수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란 뜻이다. 예전부터도 있었고, 오히려 문재인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에서는 그들이 다수고 주류고 심지어 주인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당에 마음을 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보라. 바로 그 수박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이낙연부터 자기 때부터 한 번도 이기지 못하다가 겨우 작은 선거 하나 이겼는데 다른 지지자들이 모두 기뻐하고 있는 와중에 혼자서 엄중한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중이다. 조응천이나 이원욱 같은 놈들은 대놓고 선거에서 이긴 정당에 똥물을 뿌리고 저주까지 하고 있는 와중이다. 같은 당에 속해 있지만 저놈들에게는 당보다 항상 자기가 우선이다. 자기들 계파가 우선이다. 자기들 계파를 위해서는 선거에서 져도 상관없고 이겨도 기쁠 것이 없다. 그래서 아예 일부러 지기도 한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그놈들이 주도해서 해 놓은 공천을 보면 아예 지기로 작정했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당을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는 선거에서 지는 것도 전략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졌던 선거가 2012년 대선이었고 지난 2022년 대선이었다. 과연 표를 주는 입장에서 대놓고 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놈들에게 지지를 보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김한길을 비롯한 그 뒤를 잇는 수박들에 대해 지지자들이 증오의 감정마저 드러내는 이유일 것이다. 저놈들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 이길 수 있는 선거마저 지고 말았다. 보수정당에 기회를 주었다. 당을 망쳤다. 그로 인해 내가 졌다. 좋아할 수 없는 짓거리를 해놓고는 싫어한다 억울해하면 진짜 그게 더 억울할 일 아니겠는가. 표를 주는 당원과 지지자들을 상대로 그래도 아예 대놓고 자기들 이익을 위해 지겠다 행동해 놓고는 자신들을 비난한다 오히려 억울해하면 그게 더 화나는 일일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민주당 망하기만 바라는 자칭 진보가 항상 그들과 연대하려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놈들이 당권을 잡아야 민주당이 망할 수 있다. 그래서 지지자들은 더욱 그놈들을 싫어한다.

 

아무튼 당대표까지 지냈던 놈이 자기가 소속된 당의 승리를 보고도 최소한 다행이라 여기지조차 못한다는 것이 저놈들의 수준이자 현실인 것이다. 대놓고 아주 오만 언론에 얼굴을 비추며 저주를 퍼붓는 놈들이야 말로 저놈들의 민낯이다. 어째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저런 놈들을 극도로 혐오하며 경멸과 증오마저 보이는가. 그런 놈들이니까. 그런데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런 수준일 밖에. 그냥 쌍욕만 나온다. 더러운 것들이다.

어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정의당이 우울했던 이유? 다른 것 있을까? 정의당의 지금 마인드는 하나다. 

 

"국민의힘님들이 다 해 주실 거야."

 

덧붙이자면,

 

"김건희님이 다 해 주실 거야."

 

최저임금 없애면 노동자 임금 올려주겠지. 근로시간 늘리면 노동자 더 힘들지 않게 신경써 주겠지. 노조를 탄압하면 노동자 권익에도 힘을 써주겠지. 중대재해법을 무력화시키면 노동자가 좀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해 주겠지. 그래서 노동과 관련한 사안에서조차 정의당은 철저히 국민의힘과 보조를 맞춰 왔었다. 유명한 말 있지 않은가. 국민의힘은 노동존중의 정당이다. 바로 정의당의 시각에서. 물론 한겨레와 경향, 민주노총 등 자칭 진보의 시각에서도다.

 

자기들 후보의 지지율 1.7%는 그래서 아프지조차 않다. 정의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는 이유는 민주당의 표를 갉아 먹기 위해서지 당선을 노려서가 아니다. 자기들 지지율 뻔히 아는데 굳이 선거비용 들여가며 후보를 내고 완주하는 이유야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우울하다. 그럼에도 자기들이 아무 역할도 못하고 민주당이 선거에 이기고 말았다.

 

그동안 선거들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선거들에서 정의당은 과연 국민의힘과 민주당 가운데 어느 정당을 더 욕해 왔을까? 심지어 지난 대선에서는 아예 정의당 대변인이 나서서 윤석열 후보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고 있기도 했었다. 2017년 대선이 끝나자마자 문재앙 운운하며 문빠들더러 덤비라던 것이 바로 한겨레였으니 뭐 알 조다.

 

그래서 신난다. 정의당 우울하게 하려면 다른 것 없다. 국민의힘을 이기면 된다. 정의당이 조금이라도 힘을 얻는다면 그것은 모두 국민의힘을 위한 것이 된다. 새삼 확인한다. 그것이 자칭진보란 것이다. 너무 조용한 새끼들이다.

누가 보면 이스라엘이 평화만 추구하다가 지금 상황을 맞았는 줄 알겠다. 이스라엘은 아무것도 않고 그저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평화적인 공존만을 추구했는데 그 결과가 하마스의 테러로 돌아왔다고 믿는 놈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하마스에 의한 민간인 피해에 분노하며 그 이상의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하는 것일 게다. 지금도 아예 장벽을 세우고 좁은 구역 안에 200만이 넘는 사람들을 몰아넣고 심심하면 가서 사람을 죽여대는데 도대체 뭘 더 어떻게 해야 힘에 의한 평화가 되는 것일까? 

 

사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적인 공존이 아주 불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의 항쟁을 주도했던 PLO의 아라파트 의장이 당시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와 함께 서구의 중재를 받아들여 팔레스타인 거주구역 안에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평화적인 공존을 꾀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라빈 총리도 다른 누구도 아닌 이스라엘의 강경파가 암살해 제거했고, 아라파트 의장 역시 이스라엘에 의해 살해당한 바 있었다. 당연히 그때도 이스라엘은 아라파트와의 공존이 아닌 강경한 입장만을 고수하면서 오히려 온건파로 돌아서 있던 PLO를 약화시키고 하마스가 성장하는데 혁혁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전에는 하마스는 그저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막 커나가고 있던 신생 과격파 조직에 지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틈만 나면 하마스를 이유로 팔레스타인 거주구역에 미사일을 쏘고 폭탄을 떨구고 군인을 보내 직접 총으로 쏴죽였었다. 

 

그래도 이스라엘이 한 학살들과는 수준이 다르다. 주로 2찍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도 백린탄으로 깔끔하게 태워 죽이지 않았는가. 폭탄으로 아예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으니 문명인의 방식일 것이다. 총으로 저격하거나 난사해서 그나마 참혹함은 덜하다는 점에서 하마스의 그것과는 다르다 할 수 있다. 그러니 전기와 수도를 끊어 굶겨 죽이고 병들어 죽게 하고 마침내는 지금 거주구역에서 내쫓아서 살던 터전을 잃고 더 큰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하자. 모르긴 몰라도 저 대부분이 교회에 다닐 것이라는 것에 지금 마시는 커피도 걸 수 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하던 수준으로도 너무 온건했으니 더 강경하게 다시는 하마스가 덤빌 수 없도록 이스라엘이 힘을 투사해야 한다. 어느 정도로? 그래서 저번 글에서도 인용해 썼을 것이다. 가자지구를 아예 초토화하라.

 

물론 2찍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국민의힘의 논평도 한 몫 하고 있을 것이다.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전쟁을 준비하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평화적인 공존에 대한 시도를 배제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한 평화를 불러 올 수 있다. 언제든 한반도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평화를 위한 온건한 시도가 아닌 오로지 무력에 의한 대립과 응징만이 그 위험성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수 십 명 이스라엘과 외국 민간인 피해자들을 위해서 수 백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학살하자. 학살이 아니다. 확실히 이런 부분도 2찍스럽다 할 것이다. 학살이 아니라 가자지구의 평탄화다.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이야 어찌되든. 당장 보이는 하마스에 의한 희생자들만 생각한다.

 

2찍은 정신병이라는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욕할 수 있으니 위선보다는 악이 낫다. 욕하기도 애매하니 실제 피해는 악이 끼쳐도 위선이 더 나쁘다. 수 십 명 이스라엘 민간인 희생자들을 위해 수 백만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것이 그들이 말하는 정의고 공정이고 상식이다. 2찍을 같은 사람으로 봐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들이 세계를 보는 기준이 이렇다. 역겨울 뿐이다. 공당인 국민의힘이야 뭐. 한반도에서 전쟁 날 수 있다고 떠드는 여당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을 장려하게 위해 여러 재정지원정책을 내놓았을 때 정작 20대 남성들은 반발했었다. 나더러 중소기업에 다니라는 것이냐. 중소기업 다니는 놈들만 혜택을 보는 것 아니냐. 그래서 정작 4050 남성들의 생각과 달리 20대 남성들은 그런 지원정책들을 축소하고 폐지했을 때 오히려 환영했었다. 그런 쓸데없는 곳에 돈을 쓰기보다 보다 가치있는 곳에 써야 자신들에게도 좋다. 그럼 더 가치있는 곳은 어디인가?

 

정권이 바뀌고 공무원과 공기업 채용을 줄였을 때도 20대 남성들은 지지를 보냈었다. 사실 이것은 지금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었다. 가난한 놈들을 위해 세금을 쓰는 것은 낭비다. 정부가 고용을 책임지려 해서는 안된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자원을 몰아주어야 결국 국가도 발전한다. 한 마디로 삼성이나 현대 같은 곳에 더 퍼주란 것이다. 그러면 자기들도 그런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정권이 바뀌고 지금 정부에서 우리나라에게 가장 큰 수출시장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를 노골적으로 적대하는 정책을 펼쳤을 때도 20대 남성들은 지지를 보냈다. 그래서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외교였다. 중국과 적대하니 잘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잘못이니 러시아에 물건을 팔 필요가 없다. 당연히 수출이 줄고 실적이 떨어지니 기업들도 채용을 안하겠지? 중국과만 적대하면 취직이야 결국 자기 능력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타깝다. 같은 20대라도 여성들의 입장은 또 많이 다르다. 20대 여성들은 다수가 민주당의 정책들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선거에서 패한 탓에 20대 남성들과 도매급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물론 2찍이 아닌 20대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윤석열이 내놓은 공약들이나 그동안의 주장과 행보들에 대한 판단으로 지지를 보내지 않았음에도 결과적으로 같은 취급을 받게 되었다. 그 결과가 지금 상황이다. 그런데도 아직 많은 2찍 20대 남성들은 말한다.

 

노동유연화해서 정규직 마음껏 자를 수 있게 해 주면 내가 그 자리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더 많은 사람을 해고하고 그리고 돈 더 벌게 더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게 해 달라. 중소기업은 돈이 적어 못 가겠다면서 기업들이 더 많은 사람을 뽑을 수 있게 최저임금도 낮추고 주휴수당도 없애라. 알바하러 온 놈이 그러고 있더라. 유시민이 참 옳은 말을 했다. 그래서 안타까운데 안타깝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괜히 도매급으로 안타까워할 수 있다. 그게 더 안타깝다.

어제 차마 옮겨 적는 것조차 너무나 끔찍한 잔학행위가 하마스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과연 인간으로서 그럴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어쩌면 인간이기에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복잡한 머리와 답답한 가슴을 안고 기사를 읽는데 문득 흥미로운 댓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 당사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것이 이 모든 사태의 본질일 터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완전히 밀어버린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해가 되는가? 전혀 얼굴도 본 적 없는 아이들의 죽음 때문에 무려 수 백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초토화하고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 말하는 것이다. 그만큼 끔찍한 행위였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인간으로서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이 그렇게까지 인식을 비약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면 마땅히 그 이상 되돌려주는 것이 옳다. 나아가 이런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짓들을 저지른 자들이라면 그 이상의 댓가를 치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여기서 의식을 조금 더 확장해 보자. 그렇게 죽은 아이들이 내 형제고, 내 친구고, 내 이웃이고, 내 자식이다. 그런 죽음들을 태어나서 지금까지 매순간 지켜봐 왔었다. 그렇다면 그 당사자에 대한 감정이 어떻겠는가?

 

팔레스타인과 식민지 조선을 비교하는데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인들에 의해 내몰리고 내쫓긴 세월이 벌써 80년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나마 대한제국 황실의 무능으로 인해 큰 무력충돌없이 침탈되었던 조선과 달리 팔레스타인은 전쟁까지 직접 치렀었다. 그래도 이제는 자기 영토고 자기 백성이라고 어찌되었거나 일본제국의 신민으로 동화시키려 했던 구 일본제국과 전혀 다르게 이스라엘은 또한 철저히 팔레스타인인들을 분리하여 박해하고 차별했었다. 크게 문제만 없으면 살던 곳에서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살아도 크게 상관치 않았던 것이 식민지 조선이었다면 이스라엘은 아예 팔레스타인인들의 먹고 살 길마저 막아 버렸다. 그 감정이 과연 식민지 조선인들과 같겠는가?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이 굳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굳이 그래야 할 정도로 일본인들에 대한 감정이 심화되어 있지 않았다. 일본인 전체가 아닌 일본인이 조선과 조선인에 저지른 행위에 아직은 주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대로 식민지지배가 50년, 60년, 그 이상 이어졌어도 여전히 그럴 수 있었을까? 더구나 당시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자금도 무기도 항상 태부족이었다. AK-47을 현대의 죽창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RPG-7을 알라의 요술봉이라 칭송하며 부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에게는 당장 자신들을 위협하는 일본군과 헌병, 경찰들을 상대로 쏠 한 발의 총알조차 아쉬운 상황이었다. 폭약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체코 용병들이 러시아를 탈출하며 흘러들어온 무기가 아니었으면 김좌진조차 청산리에서 화승총을 들고 일본군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기껏 무관학교를 설립하고서도 훈련할 총기가 없어서 목총으로 입으로 소리내어 가며 훈련을 받아야 했던 것이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처지였다. 그런데 그 귀한 무기를 민간인을 상대로 쓰자고? 돌았냐는 소리가 바로 나온다. 한 마디로 하마스가 저리 민간인을 상대로도 지랄할 수 있는 이유는 무기와 인력이 그만큼 넘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배때지가 부른 것이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하마스처럼 돈과 무기, 그리고 군사훈련까지 지원해주는 우방이 있었다면 어쩌면 역사란 모르는 것이다. 한 마디로 단순비교는 절대 무리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튼 1차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은 거의 항상 아무 이유라도 있으면 팔레스타인인들의 거주구역을 공격했고, 사람들을 살해했으며, 살던 곳에서 내쫓았다. 그나마 처음 팔레스타인들이 내몰려 살았던 지역조차 날이 갈수록 좁아지며 환경은 열악해지고 그나마 먹고 살 최소한의 방도조차 없이 생존의 위협마저 느껴야 했다. 이렇다 할 산업이랄 것도 없이, 최소한의 인프라조차 없는 채로 하루하루 이스라엘의 군사적 공격을 걱정하며 죽어가는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을 지켜봐야 했었다. 그런 세월이 80년이면 과연 팔레스타인인들의 이스라엘인들에 대한 감정이 어떠하겠는가? 그렇다고 여타 다른 문명국가들처럼 그로 인한 감정을 문명인의 방식으로 세련되게 표출할 수 있게끔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작 꾸란이나 읽고 외울 뿐 그나마 존재하던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교육체계마저 무너진 지 오래다. 당장 이스라엘이 심심하면 백린탄을 터뜨리는 곳이 팔레스타인인들의 학교와 병원이었다. 그래서 야만인 것이다.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분노가 증오라는 감정으로 일그러지도록 문명이란 존재하지 않는 폭력 속에 방치되었으니.

 

아마 그래서 지금 하마스의 행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당혹해하고 있을 것이다. 저러는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저와 같은 행동은 너무나 어리석고 무모한 것이다. 도대체 어째서 하마스는 저럼 뒤가 없는 사람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는가? 또한 어째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저같은 인간을 포기한 듯한 과격한 행위들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가? 간단하다. 말했듯 팔레스타인의 대부분 성인들은 그동안의 가혹한 감금생활로 인해 제대로 된 문명화의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계속되는 야만의 폭력 속에서 더욱 증오라는 감정에 매몰되어 버렸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제 자신의 원수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때 그들의 머릿속에 미래라는, 혹은 장래라고 하는, 또는 전략이나 계획과 같은 거창하고 복잡한 생각이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말 그대로다. 폭주인 것이다. 저들은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분풀이, 말 그대로 복수다. 자신들이 그동안 쌓아 왔던 증오를 마음껏 풀어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자신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행위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그로 인해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로 돌아올 지 전혀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저런 너무나 끔찍한, 팔레스타인을 동정하던 이들마저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행위들이다.

 

지금 팔레스타인 문제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일 것이다. 그동안 쌓여 온 증오가 너무 크다. 너무나 뿌리깊다. 더구나 그것은 팔레스타인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도 해당되는 부분일 터다. 팔레스타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이스라엘 역시 그동안 적지 않게 당해 온 것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어진 일방적인 승리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의식적인 우월감마저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자신은 오로지 피해자라 여기는 팔레스타인의 좌절과 열등감이 자신들은 보다 우월한 존재라 여기는 이스라엘의 선민의식과 만난다. 여기에 역사가 더해진다. 이것을 누군가 가운데서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동안 그런 역할을 한 주체가 없었다. 미국도 소련도 중국도 그저 그런 상황을 이용하려 할 뿐 근본적인 해결에는 소극적이었다. 그 결과가 이런 막나가는 상황인 것이다. 오늘 복수만 할 수 있으면 당장 내일 죽더라도 아무 여한이 없다.

 

전혀 상관없는,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대상들의 죽음에 수 백만의 고통과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이란 것이다. 그런 참혹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죽었으니 팔레스타인 사람 전체가 죽고 고통받는 것도 당연하다. 심지어 당사자도 아닌 제 삼자다. 당사자가 되면 어떻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너무나 순수한 감정이 내 감정마저 흔들었다. 어째서 인간은 이토록 슬픈 것인가. 악마라는 단어에 어째서 슬픔이란 뜻이 숨어 있을까?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다. 단지 약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슬프다.

 

더불어 그러면 어째서 하마스는 이스라엘인들 뿐만이 아닌 다른 외국인들마저 무차별로 공격하는가. 과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국제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채 누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고 80년을 이어갔다고 생각해 보라. 하긴 일본의 조선합병을 승인해주고 식민지지배를 내내 지지해주었던 미국의 뜻을 따라 다시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잊으려 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는 할 터다. 그래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저들이 막나가는 이유를 동의는 못하더라도 왜 그러는가 알 수는 있게 된다. 저들의 행위와 별개로 보다 근본적인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다시 평화롭게 자유로운 삶을 누리며 문명의 세계로 나올 수 있도록. 고타마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출가한 이유일 것이다.

한겨레의 정체성은 이제 명확해졌다 할 수 있다. 당장은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나 부장을 잠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윤석열을 대통령으로까지 밀어올리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한겨레였다. 한겨레와 경향, 그리고 정의당과 이른바 자칭진보 논객들이 지난 대선까지 보수정당과 윤석열의 문제들을 덮으며 민주당을 비난하는데 앞장섬으로써 그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한겨레는 민주당 안에서도 보수정당과 주장이나 지향이 비슷한 이들만을 골라서 비호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아마 대선이 끝나고 그런 루머가 돌았을 것이다. 민주당 국회의원 중 다수가 지방선거가 끝난 뒤 당을 뛰쳐나와 윤석열을 중심으로 빅텐트를 만들 것이다. 국민의힘 탈당파들과 합쳐서 중간지대에 윤석열을 중심으로 한 거대정당을 만들거나 아니면 국민의힘은 그대로두고 민주당 탈당파를 중심으로 친위정당을 만들어 행동을 함께 할 것이다. 당연히 이같은 기획의 중심에는 김한길이 있었고, 그 결과 정권 초기 유력한 총리후보 가운데 하나로 김한길이 거론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탈당과 윤석열과의 결합이 예고된 이들의 상당수는 이미 문재인 정부부터 윤석열과 친분을 다져온 이들로 예견되고 있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지금도 윤석열 옹호에 앞장서고 있는 이상민이나 이원욱, 박광온, 윤효중, 박용진 들이 바로 그들일 것이다. 김부겸도 윤석열과의 친분으로 인해 이후 한 자리가 예약되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그러면 지금 한겨레가 민주당 내부에서 필사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이들과 비교해 보자.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인 박주민이나 이재정 등에 대해서는 한겨레도 매우 적대적이다. 최강욱이나 김용민과 같은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반면 윤석열 정부에 협력적이거나 최소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인사들에 대해서는 보수언론과 함께 우호를 넘어 비호에 앞장서는 중이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이나 부정을 비판하려는 한겨레의 태도가 진심이었다면 오히려 지금의 모습은 정반대로 나타났어야 했다. 윤석열 정부를 적극적으로 비판하고 견제하는 정치인들을 띄우고 오히려 소극적으로 비호하고 협력하는 정치인들을 비판했어야 옳다. 하지만 한겨레가 지지하는 것은 언제나 류호정처럼 윤석열 정부에만 우호적인 정치인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대선까지 내내 윤석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던 모습과 정확히 일관된 방향성을 보인다. 그리고 그같은 한겨레의 행보와 정의당과 여타 자칭 진보 이른바 논객들의 행보 역시 매우 일치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찌 이해해야 하는가.

 

한 마디로 이것이 바로 자칭 진보의 정체라는 것이다.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란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한국 진보를 이해하려면 윤석열을 보면 된다. 윤석열과 한동훈이 바로 대한민국 진보가 추구하는 지향점인 것이다. 좋은 대학 나와서 사법고시로 자기 실력을 입증한 진짜 엘리트들이 대중을 이끌어나가는 것. 그래서 한겨레는 일찌감치 괜히 앞장서서 설치는 4050과 이른바 개딸이라 불리우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여성들을 대놓고 폄하하고 비난한 바 있었다. 배제와 부정을 주장한 바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한겨레를 구독한다는 것은 그냥 병신 인증이다. 뇌도 없고 간도 없고 쓸개도 없는 그냥 살아 숨쉬는 단백질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한겨레가 아무리 숨기려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진실일 것이다. 한겨레가 아무리 위장하려 해도 설마 윤석열에 진짜 비판적인 민주당 정치인이나 당원, 지지자들의 편에서 기사를 쓸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당은 철저히 윤석열의 친위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서 생전 보수정당에는 하지 않던 민주정당이 맞느냐는 논리로 그들을 도와 비판하며 나서는 것이다. 안하던 짓을 갑자기 한다면 분명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진실이다. 그저 역겨운 것이다.

간단한 비유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있다. 본사에서 엄격하게 검증하고 관리한 재료들만으로 정해진 레시피에 의해 생산된 빵들을 팔아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어느 빵집 주인이 임의로 자기가 만든 빵을 그 안에 섞어 판다. 본사와는 전혀 다른 수준의 재료와 레시피로 만든 빵을 본사의 이름으로 팔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니 심지어 다른 빵집의 빵이 잘 팔린다는 이유로 경쟁 프랜차이즈의 빵까지 들여다 놓고 팔고 있다. 그런데도 그냥 두고 봐야 하는 것인가?

 

자기 건물에 오락실을 하겠다 해서 계약을 했더니만 정작 문을 열고 보니 성인오락실이다. 그것도 심지어 불법적인 게임을 하는 오락실을 하고 있었다. 혹은 미용실을 하겠다 해서 임대를 주었더니 거기서 성매매를 주선하고 성인용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런 경우에도 건물주는 이미 계약을 했으니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인가. 건물주 입장에서도 자기가 소유한 건물의 가치를 위해 입점한 가게의 종류와 수준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진실한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을 하는 정의연의 구성원 가운데 일본 정부도 할 만큼 했으니 이만하자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긴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무궁화회로 따로 떨어져나간 이들도 있었던 것이었다. 정의연 논란 당시 이 무궁화회를 같은 위안부 피해자로 묶어 인터뷰를 내보내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이 휩쓸리고 있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남은 위안부 피해자 중 가장 적극적이던 이용수 활동가가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협상을 긍정하는 보수정당과 언론의 손을 들어주면서 정의연은 이후로 아예 유명무실해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생존한 피해자도 얼마 없으니 그래도 큰 문제가 아니라지만 과거 생존해 있는 피해자가 많았을 때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니까 그대로 보아 넘겨야 하는 것인가?

 

결사란 그런 것이다. 가톨릭 신앙 위에서 사회적인 활동을 하고자 모인 유서깊은 단체가 있다. 이들 단체에서 요구하는 조건은 단 하나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다 대고 나는 개신교인데 가입하지 못한다고 공정성을 따진다는게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환경운동을 하자고 모인 단체에서 나는 개발도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공장의 건설을 반대하는 활동을 저지하고 나선다면 그는 단체의 취지와 맞지 않는 인물인 것이다. 하다못해 직장인들끼리 아침에 모여 축구를 하자고 조기축구회를 만들었는데 자기만 육상을 하겠다 하면 그 사람이 나가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같은 정치적 목적과 지향을 공유하는 결사인 정당이라면 어떠할까?

 

웃기는 것이 보수정당이 대통령이나 대표의 지시 아래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그 단합을 칭찬하던 언론이라는 것들이 민주당이 그러고 있으면 정당의 민주성을 의심하는 기사를 아무렇지 않게 내보낸다. 유권자라는 것도 보수정당은 하나로 단합해서 행동한다며 칭찬하다가 민주당이 그러려 하면 독재라고 욕하기 일쑤다. 더구나 민주당의 경우는 그런 요구를 하는 주체가 다른 누구도 아닌 유권자인 당원과 지지자들이다. 다수의 당원과 지지자들의 요구로 정당의 운영방향을 정하려 하는데 그를 거스르려는 정치인의 편을 들어 독재라 말한다. 정치인이 당원과 지지자의 위에 있다는 것인가?

 

짜장면을 잘 만들어 맛집이라고 열심히 팔아주었더니 탕후루가 유행이라고 짜장면은 안 팔고 탕후루만 팔고 있다. 그런 짜장면집이 망해간다고 과연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가서 탕후루를 사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짜장면을 맛있게 사먹던 손님들을 배신하고 유행을 따랐다면 대가를 치르는 것이 옳다. 그래서 탕후루가 진짜 더 잘 팔린다면 알아서 탕후루 맛집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업종을 바꾸면 된다. 짜장면집이란 간판을 달고 탕후루를 팔면서 짜장면 사먹던 사람들이 탕후루를 안 사먹는다고 욕하는게 과연 정당한 것인가?

 

국가와 정당의 차이인 것이다. 국가는 자연집단이다. 그냥 국가 안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의 구성원이 되고 마는 탓에 국민이라지만 사실상 선택권이 없다시피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 안에서 최대한 합의를 통해 서로 맞추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 민주주의란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다. 투표를 통해 더 많은 다수를 위한 정책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그 과정에서 소수가 요구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절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당은 아니다. 아무나 가입할 수 있고 아무때나 다시 당을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과 자기가 맞지 않는다 여겼을 때 얼마든지 당을 박차고 나갈 수 있는 것이고 자신과 맞는 정당을 찾아가 일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도저히 당을 나갈 수 없다면 다수의 의견에 자신을 맞추며 자신의 주장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저 민주주의니까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달라.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 정권을 찬양하고 일본의 지배를 다시 받자고 주장해도 민주주의니까 그런 주장들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정치인과 당원 가운데 누가 진정한 당의 주인인가? 당의 이름으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있는 정치인과 그들에게 표를 주는 지지자 가운데 누가 진정한 당의 주인이며 당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는가? 그래서 다수 당원들이 그리 판단하고 행동하려 하는데 소수 정치인들이 그에 반대하고 막아서려 한다면 누구의 말에 힘이 실려야 하는가? 그래서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겠다면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니니 당을 나가는 것도 언제나 자유라는 것이다. 조경태가 그렇게 자기와 맞지 않는 당을 뛰쳐나가서 부산에서 몇 선이나 하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그렇게 옳다면 자기와 다른 당을 뛰쳐나가 자기 정치를 하면 된다. 양향자처럼 아예 자기 당을 만들거나, 조경태처럼 자기와 맞는 당을 찾아가거나, 그런데 굳이 자기와 맞지 않는 당에 남아서 민주주의 운운하며 자기 주장만 반복하는 것은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자칭 진보의 실체도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한국에서 진보란 엘리트주의다. 남들과 다른 엘리트들이 남들과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이 바로 진보라 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오래전 자칭 진보와 논쟁을 했을 때 그런 말까지 들어야 했을 정도였다. 하는 주장들이 일반 대중이 하는 것과 같다. 일반 대중의 일원이 되려 하는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남들보다 위에 있을 정도로 대단한 인간이 못되고 그래서 주장이란 항상 평범한 대중 가운데 하나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런 대중의 평범한 주장들이 모여 이루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진보일 터였다. 하지만 자칭 진보들은 아니었다. 일반 대중과 다른 자신들만의 특별함을 추구한다. 한겨레가 정작 수구의 본산인 조선일보를 추종하는 기사를 많이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일보와 같은 급이 되었을 때 자칭 진보스러운 우월감도 충족된다. 그런 점에서 그저 한낱 대중에 불과한 당원과 지지자가 엘리트인 정치인들을 좌지우지하려는 모습이 그들에게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한겨레가 앞장서서 지금 민주당의 비정상적인 대의원제를 수호하고자 나서는 이유다. 그런 맥락인 것이다. 정치인은 당원보다 우월하다. 그러므로 차라리 당원과 지지자들이 정치인을 따라야지 정치인을 압박해서는 안된다.

 

과거 새누리당의 진박감별과 지금 민주당의 수박당도측정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인 것이다. 그 주체가 누구인가? 그러므로 당의 주인이자 주권자는 누구인가? 박근혜라는 개인을 중심으로 판단하던 과거의 진박감별과 당원과 지지자들이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하는 수박당도측정이 그래서 동일할 수 있는가? 당원도 지지자도 필요없다면 다시 말하지만 당을 나가 자기 당을 따로 차리거나 맞는 당을 찾아 기어들어가면 된다. 당원도 지지자도 필요없는데 당적은 유지하겠다? 왜? 

 

저 놈들을 죄다 내보내야 한다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당원도 필요없다. 지지자도 필요없다. 그저 이대로 자기를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두고 때가 되면 표만 하던대로 챙겨주면 된다. 그런 걸 같은 정치적 목적과 지향을 가지는 당원이고 동지라 할 수 있을까? 동지가 아닌데도 그저 당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인가? 다수 당원과 지지자를 존중하지 않는 그들을 당의 대표로 여겨야 하는 것인가? 너무 당연한 것이다. 판단할 여지조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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