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보았던 아마 만화였을 것이다. 코메디 콩트였을지도 모른다. 새로 사업을 시작한 주인공이 있었다. 부모로부터 받은 돈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돈이 잘 벌렸다. 그래서 직원들 월급도 올려주고 자기도 팍팍 쓰면서 한창 기분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어느날 기계가 고장났는데 돈을 벌리는대로 다 썼더니 고칠 돈이 안 남았다. 어쩌겠는가? 기계를 고치지 못하니 망할 밖에. 물론 현실에서라면 대출이라는 수단이 있기는 하다.

 

감가상각이라는 것이 있다. 보유하고 있는 고정자산의 가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하락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바로 오늘 나온 신품도 일단 한 번 사서 소유한 순간 다시 팔려면 중고로 가격을 낮춰 팔아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저 사서 소장할 뿐인 수집품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쓰이는 유형의 물품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하게 그 가치를 소모하게 되는 것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10년 전 1억에 산 기계는 과연 지금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3년 전 비싸게 주고 샀던 인덕션과 가스렌지는 지금 판다면 얼마의 가격을 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해 3년 동안 사용한 사무용 책상과 의자를 지금 산다면 얼마를 더 쓸 것을 기대하고 사야 하는 것인가? 결국 예정된 기한이 지나면 다시 돈을 들여 수리하거나 새로 사야 하니 그 비용까지 계산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최신기계지만 계속 사용하다보면 언젠가 기계가 낡아서 고장나는 순간이 오게 된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 번 고장나는 정도이다가 고장나는 빈도도 늘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더 이상 기계 자체는 여전히 문제가 없어도 경쟁을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새기계를 사들여야 하는 때가 돌아온다. 기존의 기계로는 더이상 다른 경쟁자들과 경쟁 자체가 되지 않는다. 차라리 아직 쓸모가 있을 때 일찌감치 팔아버리고 새기계를 사서 더 높은 효율로 생산하는 편이 경쟁력 면에서도 더 나을 수 있다.

 

그러고보니 가까운 곳에 실제 사례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래도 준수한 사양의 PC들로 채워진 PC방이었다. 최신게임도 잘 돌아가고 시설도 꽤나 쾌적했었다. 하지만 넘쳐나는 손님들에 사장은 더이상 투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었고 빠른 PC의 발전속도만큼 준수한 사양의 PC들은 순식간이 최신게임을 돌리기에 무리가 있는 구닥다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비싼 돈을 들여 PC들을 업그레이드하려 하는데 이미 손님이 떨어져나가기 시작한 PC에 그럴 여력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 PC방 업계에 신규사업자만 넘쳐났었던 이유였다. 새로 창업할 때는 최신 고사양 PC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관리하지 않은 결과 구닥다리로 전락하며 손님은 떨어지고 이익마저 줄어들어 더이상 업그레이드할 여력마저 사라지는 악순환의 구조에 있었던 것이었다. 대개는 사업이라고는 처음 해보는 초보들이라 이익에서 사업장의 유지와 관리를 위한 비용을 따로 남겨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마저 모르는 경우가 많았던 때문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자신이란 곧 자신을 위한 유일한 생산수단일 것이다. 자신이 소유한 자신을 사용해서 일을 하고 가치를 생산하여 그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문제는 그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이 과연 자신이라는 생산수단을 유지하고 관리하고 나아가 재생산하는데 충분한 수준인가 하는 것이다. 그저 밥만 먹고 잠만 잘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다.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고, 아프기 전에 예방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도 해야 할 테고, 정신적인 평안을 위해 취미생활도 가져야 한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분신인 2세를 낳아 기를 수도 있어야 한다. 자신을 이을 2세가 자신을 온전한 자신의 생산수단으로 삼아 살아갈 수 있도록 부모로써 보살펴야 할 책임도 지니게 된다. 그를 위한 비용을 온전히 자신을 수단으로 한 노동을 통해 공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경우 무언가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중국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고 베트남 역시 다르지 않다. 일본 또한 지나온 과정이며 역시 지금도 현재진행중이다. 이들 나라들의 공통점으로 유교라고 하는 전통적 가치를 꼽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은 지금 유교의 전통이랄 만한 것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걔들은 공자가 누군지 맹자가 뭐하는 사람인지 오히려 남인 우리보다도 더 모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다. 그보다는 하나같이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가 한심한 나라들이라는 것에 더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이들 사회에서 노동자로서 일을 해서 받는 임금으로는 더이상 자기 혼자 먹고 사는 이외에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당장 그렇지 않은가. 최저임금이 너무 높다는데 지금 우리나라 최저임금수준으로는 한달 내내 죽어라 일해봐야 혼자 겨우 먹고 살 수 있을 뿐이다. 법적으로 허용된 연장근로시간 안에서 최대한 일을 해도 아이 하나 낳아 기르려면 꽤나 허리가 휘어져야 한다. 아이까지 기르며 그를 위한 충분한 넓이의 주거공간을 가지고 장차 아이가 이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까지 시키려면 주 52시간동안 연장근로수당 다 챙겨가며 일해도 돈이 한참 부족하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서 최저임금 이상을 주는 사업장이 과연 많은가? 그 힘들다는 조선업계조차 계약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최저임금만 받으며 일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더 오랜 시간 일하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말한 것이다. 그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손상, 나아가 자신도 연인도 가족도 챙길 수 없는 여유의 부족은 또한 현실적으로 가족을 가질 수 없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2030 남자새끼들이 사회경험도 없는 병신새끼들이라는 또 하나 이유다. 그런데도 최저임금 낮추고 일하는 시간을 늘려주어야 취직도 잘되고 결혼도 많이 할 것이다. 머리에 똥만 들어찬 것인가?

 

지금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아이 하나 낳아 기르는 것조차 버거울 뿐이다. 그냥 낳아 기르는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교육까지 시키려면 진짜 별보고 나가서 별보고 들어오는 생활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그 사이 아이는 누가 돌보는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들이자는데 그 혜택을 볼 수 있는 것은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소수들인 것이다. 어지간하면 거의 최저임금만 받고 일해야 하는데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하며 가사도우미에게 월급까지 줘야 한다? 가사도우미의 최저임금을 낮추면 다른 곳은 영향이 없을까? 무엇보다 당장 이성을 만나려 해도 데이트비용은 어디서 떨어지는가?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데 꾸미기도 해야 할 테고, 여기저기 재미있고 즐거운 장소도 찾아야 하는데 그럴 돈은 또 어디서 날 것인가? 역시나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 한다면 그럴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라? 

 

그나마 선진국들에서 출산률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들을 국가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분한 급여와 여가시간, 그리고 개인이 아닌 사회적인 부담을 통해 육아의 책임을 나누는 과정들을 통해서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도 크게 곤란을 겪지 않아도 되는 현실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남아 있기에 충분한 수준으로 출산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는 하다. 더불어 육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무책임한 출산이 사회화로부터 소외된 치안의 사각지대를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아무런 대책 없이 그저 낳아 방치한 아이들이 결국 사회적 가치로부터 소외된 채 범죄로 내몰리는 구조가 그들 사회에도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더이상 큰 부담이 아니기에 이들 사회에서는 여전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물론 그 근저에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최소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여러 장치들이 있을 터다.

 

그러니까 어째서 젊은 세대들에서 더이상 결혼도 출산도 않고 있느냐는 것이다. 결혼한 사람들을 위해 이런저런 복지를 제공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아이를 낳았다고 어린이집을 회사돈으로 운영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주는 것은 아이를 낳지 않은 직원들에 대한 차별이다. 임신해서 아이 낳는다고 자리를 비우는 여성들로 인해 자기 일이 늘어나니 불편하고 따라서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말거나 아니면 취직을 말아야 한다. 아이를 낳느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써야 하는 여성의 채용을 사용자가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로 보장되어야 한다. 2030 남자새끼들이 출산율 어쩌고 떠드는 것이 어째서 이토록 역겨운가 굳이 더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지하는 것이 주 120시간 일하며 더 적은 최저임금에 주휴수당도 받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당과 정치인이다. 하긴 그러니까 역시나 결혼도 않고 아이도 낳지 않으며 그저 증오에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게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자기란 자기를 위한 수단이다. 자기란 자기를 위한 소유이며 자기를 위한 가장 요긴한 유일한 생산수단인 것이다. 그런 자기를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하며 보수하고 재생산할 것인가. 그럴 수 있는 여유가 주어져 있는가.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나마 있는 것들마저 줄이고 없애자는 정당을 오히려 그 당사자들이 앞장서서 지지하고 있다. 그것들을 없애자는 주장을 매도하고 비난한다. 희망이 없다는 이유다. 그래서 일본사회도 수출기업들의 부쩍 성장한 실적에도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고 중국의 미래다. 다음 세대는 조금 나을까? 하긴 부모들 탓이다. 그게 또 나랑 비슷한 세대들이다. 망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너무 당연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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