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워마드나 메갈리아 같은 극단적인 혐오주의자들에 대해서까지도 여성주의를 앞세우고 있기에 그래도 이해해주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부류 가운데 하나였다. 여성에 대한 어떤 부채의식 때문에라도 어느 정도 극단적이더라도 여성주의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부류였었다. 그래서 그때는 논란이라는 게 가능했었다. 워마드와 메갈리아에 대해서조차 반대편에 다른 의견들이 적지 않았고 그래서 때때로 긴 논쟁이 이루어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원래 그렇게 여성주의에 대해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이고자 했던 대부분 사람들은, 특히 여성주의와 직접 상관이 없는 남성의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이 절대적으로 많았었다. 이준석을 보면 알 수 있듯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경우 여성주의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경우가 오히려 더 많았었고. 하지만 정작 여성주의자들이 선택한 것은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민주당이 아니라 여성주의를 혐오하는 국민의힘이었다. 여성주의자 신지예가 이준석과 한 배를 탄 모습을 떠올려 보라. 오죽하면 여성가족부 없애겠다고 이준석이 앞장서서 공약했더니 여성주의자들이 좋아서 지지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을 정도였다. 민주당의 성문제는 어떻게든 키워서 공격하다가 국민의힘의 성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었고, 김건희에 대해서는 여성이라면서 결사적으로 방어하다가도 민주당 인사에 대해서는 여성으로 감히 드러내기 두려운 사안에 대해 주저없이 까발려 댔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민주당 밖에 있는 여성주의자들만이 아닌 민주당 안에 있는 여성주의자들까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여성주의자로서 공천받았던 정춘숙이 누구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민주당 안에서 여성주의자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다수가 지난 정부에서 정작 누구를 위해 정치를 했었는가 대부분 알고 있다. 여성주의는 민주당의 적이다. 정확히 민주당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양성간의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의 가치가 아닌 단지 기득권의 입장에서 혐오와 배제만을 주장할 뿐인 수구의 가치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의당이 여러 국정현안에 있어 보인 모습들이 그 증거일 수 있다. 여성주의를 위해 그동안 진보주의자들이 추구하던 모든 가치를 부정해 버렸다. 탈원전 했다고 문재인 퇴임하면 감옥에 보내야 한다던 것이 바로 정의당이었었다. 그러고보면 여성주의를 주장하던 한겨레에서도 김학의 출국금지시켰으니 문재인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대놓고 유튜브에 영상까지 내보낸 바 있었다. 그런 여성주의를 이해하고 관용하는 것이 과연 이 사회의 진보를 위해 어떤 가치가 있을 것인가.

 

아마 내게 있어 그 결정적인 계기를 꼽으라면 박원순에 대해 조금 온정적인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계약직 방송인이 일자리를 잃도록 압력을 행사했던 부분일 것이다. 같은 여성이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약자인 계약직 신분의 노동자였다. 그런데 단지 자신들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그 생계마저 막아버리고 있었다. 미투의 시발점이었던 서지현 검사에 대한 공격은 더 가관이었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로서 서지현 검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어이없는 말까지 서슴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대놓고 언론을 통해 떠든 것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여성이란 무엇일까? 어떤 의미이고 가치인 것일까? 그 순간 확신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여성주의는 기득권 여성의 한가한 놀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런 것을 지지할 필요가 있을까?

 

한 편으로 안타깝기도 하다. 여성주의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주장들에 휩쓸리고 마는 여성 노동자들이. 여성을 위한다니까 노동자인 자신도 위하는 것이라 여기고 그 가치를 추종하고 있는 것일 게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허위이고 기만이다. 여성주의가 추구하는 여성이란 기득권 여성이다. 오래전 어느 판사가 판결한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만을 보호하는 것이 현재의 여성주의다. 그런 여성주의의 허위와 기만에 대해 깨닫고 난 뒤 더이상 여성주의에 우호적이던 남성들의 이해와 관용은 설 곳을 잃어 버렸다.

 

물론 여성주의자 스스로가 바란 상황이기도 하다. 여성주의자들은 무지렁이 남성들의 지지를 바라지 않는다. 오히려 남성이 여성주의자들의 편에 선 것을 알면 더 날선 태도로 모욕과 비난을 퍼부어대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주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윤석열과 한동훈 같은 기득권 남성들이다. 이미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마음껏 휘둘러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해 주는 남성들인 것이지 보통의 일반 평범한 남성들은 아닌 것이다. 여성주의의 태생부터가 그랬었다. 자기 제자들을 정신대로 등떠밀어 내보낸 김활란이 여성주의의 대모다. 여대생들을 주한미군을 상대하는 고급창녀로 육성했던 모윤숙이나 공산주의자의 가족들을 동원해 위안소를 운영했던 박마리아가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것이다.YMCA가 원래 뭐하는 곳이었을까? 그래서 현실을 알게 된 대부분 남성들이 등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예전에는 그래도 여성주의와 관련해서 작게라도 논쟁이라는 게 이루어지던 사이트에서조차 이제는 어지간하면 일방적으로 여론이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아주 사소하게라도 여성주의의 편에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시도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다. 어차피 국민의힘이야 그런 데 관심이 없고, 관심이 있던 사람도 모두 등을 돌렸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그동안 장애안단체나 성소수자단체들이 누구를 위해 어떤 정치적 입장에서 누구를 주로 공격해 왔었는가 아는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개인으로서 여성이나 장애인, 성소수자에 대해서는 우호적일 수 있어도 집단으로서 그들의 주의와 주장에는 더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병신이란 것이다. 이 새끼들은 아직도 과거에 산다. 사실 민주노총이 아직까지도 민주당을 거부하고 윤석열을 지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일 것이다. 민주당은 성범죄가 일상인 반여성정당, 국민의힘은 노동존중과 여성존중의 정당, 그래서 윤석열 정권이 빨갱이몰이를 할 때도 그냥 입 꾹 닫고 당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였으면 민주노총이 이렇게 조용했을까? 그래서 윤석열 정부를 상대로 어쩌지 못하니까 괜히 여성주의 앞세워 한 마디 했다가 노조에 대한 영향력만 또 약화되고 말았다. 더 이상 들어줄 가치가 없는 소리에 한 발 얹었으니 그 대가를 치른 것이다.

 

아무튼 지금 우리 사회에서 여성주의의 현주소일 것이다. 정확히 여성주의가 선택한 결과다. 정권이 바뀌고 그토록 떠들던 성인지감수성이란 단어가 아예 사라지다시피 했다.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잦아들었다. 여성주의자들이 더이상 여성을 떠들지 않는다. 그만큼 현정부의 정책들에 만족한다는 소리다. 그들은 정치적인 선택을 했고 그로 인해 그들의 실체를 깨닫고 말았다. 어찌보면 다행스런 일이다. 흑역사라 여긴다. 여성주의를 이해하려 노력하던 시간들을. 부끄러울 따름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 안된다. 여성주의란 혐오다. 혐오하기에 혐오의 대상이다.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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