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기자새끼들 언론장악 반대 어쩌고 하는 게 다 구라라는 것이다. 당장 보라. 정권의 언론장악을 앞장서서 기획하고 추진했던 이동관이 사퇴했는데 잘 사퇴했다는 기자새끼가 한 새끼라도 있는지. 오히려 이동관을 탄핵하려던 민주당을 비웃고 조롱하며 비판하는 새끼들이 더 많을 정도다. 민주당 엿먹이려고 사퇴한 게 너무 탁월했다고 빨아주는 새끼도 그만큼 많다. 무엇을 뜻하는가?

 

언론으로서의 자유와 가치를 지키겠답시고 파업했던 KBS가 성공리에 파업을 마무리하고 내뱉었던 첫일성이 무엇이었는가를 떠올려보라. 문재인 목을 따서 자신들이 파업한 정당성을 입증해 보이겠다. 뭔 말이냐면 처음부터 문재인 마음껏 공격하려고 파업했다는 뜻이다. KBS의 중립성을 보장해주겠다고 파업에도 힘을 실어줬던 민주당을 오히려 공격하기 위해서 언론의 자유와 가치를 앞세웠던 것이었다. 민주당만 아니면 된다. 즉 민주당만 아니면 전두환 시대의 언론검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언론사 통폐합도 얼마든지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언론장악 반대라는 것도 윤석열 집권을 저제로 한 요구일 뿐 그 대안으로 민주당의 저지를 위한 노력을 요구한 것은 아니란 뜻이다. 민주당이 KBS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행동을 하려 하자 오해려 문 활짝 열고 KBS 갖다바친 구성원들의 행동력을 보라.

 

물론 소수는 아닐지 모른다. 개신교가 그런 것처럼 언론에도 소수 양심적인 기자가 있을 수 있다. 과거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꽤나 청렴하고 양심적인 독재부역자가 있었을 수 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가운데서도 조선에 우호적이고 동정적이던 인사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런 이들이 모두를 대변할 수 없는 것처럼 결국은 방향성이다. 언론의 자유가 무엇보다 소중한 것처럼 떠들던 한겨레와 경향마저 이동관 탄핵을 추진한 민주당을 욕하고 이동관과 정권의 선택을 찬양하는 현실을 보라. 탄핵에 반대하는 민주당내 정치인들의 목소리만 열심히 받아쓰던 것들이었다.

 

언론의 자유란 최소한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의미없는 헛소리라는 뜻이다. 언론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와 중립성이 아니다. 공공성도 아니다. 재갈과 채찍이다. 제너럴 셔먼이 참 좋은 말을 남겼었다. 내가 아는 좋은 인디안들은 모두 죽었다. 언론이 받아썼다. 좋은 인디안은 죽은 인디안이다. 좋은 기자는 죽은 기자 뿐이다. 기레기라는 말을 거부한다. 쓰레기도 소중한 자원일 수 있다. 기자는 어디도 쓸 데 없는 폐기물일 뿐이다. 그냥 버려야 하는 것들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