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이란 단지 의심일 뿐이다. 의심은 오로지 자신의 일방적 생각일 뿐 객관적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의심만으로 상대를 단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그 주체가 단지 경찰이라는 이유로. 단지 검찰이라는 이유로. 수사기관이 의심했으니 근거가 있을 것이다. 세상에 근거없는 의심은 없다. 역사상 있었던 모든 무고와 음해와 모함과 오해는 모두 어찌되었던간에 특정할 수 있는 근거가 있었기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그러면 그 의심의 근거들이 타당한가? 그래서 지금 내가 의심하고 있는 그것들이 엄연한 사실로써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인가? 그래서 모든 의심에는 입증의 과정이 필요하다. 사실로써 입증한 다음에야 의심은 판단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전에 판단을 강요한다. 의심이 있으니 저놈은 나쁜 놈이다.

 

2찍 진보를 그냥 2찍이라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보편적 시민의 권리를 그토록 중요하게 여기던 놈들이 정작 검찰의 발표 앞에서는 인권따위 아무렇지 않게 똥구덩이에 쳐박아 버린다. 아마 민주당 관련인사여서 그럴 것이다. 민주당만 죽일 수 있다면 인권이야, 시민의 권리따위야, 검찰의 전횡과 인권유린이야. 그동안 검찰이 수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선택을 했음에도 그토록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던 2찍 진보 가운데 누구도 검찰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죽은 사람이나 아니면 관계된 다른 사람을 욕했지. 그나마 이선균씨는 민주당과 관련된 인사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건 경찰이 저지른 것이지 검찰과는 무관하다. 마약과의 전쟁을 누가 시작했을까? 이선균씨와 지디에 대한 수사는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거창하게 시작되었던 것일까? 무엇보다 검찰에 의해 수사지휘를 받는 곳이 바로 경찰이다. 그러려고 시행령으로 검수완박을 무력화시키고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이슈를 들고 나왔던 것이었다. 검찰이 장악한 법무부에 경찰국 신설한다고 난리난 것이 불과 1년 조금 전이다. 아니 그 전에 경찰이 떠든다고 언론이 언제 일방적으로 받아쓰기만 했었느냐는 말이다. 경찰수사단계에서 이렇게 커지는 경우도 이전에는 별로 없었다. 단지 검찰이 수사성과를 가져가기 전에 무고로 판단이 되었을 뿐.

 

의심을 받았으니 죽을 만하다. 경찰이 아무 근거없이 의심했을 리 없으니 자기 책임이다. 그 밖에 부적절한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 바로 그 새끼들도 공범이다. 사실이 사실로써 밝혀지기 전까지는 판단해서는 안된다. 더구나 지금 재판부가 과연 공정하게 객관적인 사실만으로 판단하는 곳이던가? 알면서 모르는 척 넘어가는 새끼들 역시 공범이다. 명징하게 사실만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데 사실의 조각들만으로 전체를 판단하고 그를 절대시한다. 그러라고 부추기는 것들이 바로 언론일 것이고. 그것을 전혀 감시도 비판도 않는 것이 한국 지식인 사회다. 2찍 진보 새끼들. 그러고도 진보라 그런다.

 

아무튼 처음 어떠한 반론도 나오지 않았을 때부터 아직은 아니라 여기고 판단을 미루어 왔었다. 결국 몇 번이나 검사결과 음성이 나왔음에도 수사를 밀어붙이는 상황을 보고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거리인가. 수사하고 있으니 유죄라는 병신들에 어이가 다 없었다. 그리고 결과가 이렇다. 그런데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모두가 그냥 지나친다. 어이없을 따름이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 태어난 것이 죄인 것일까. 고인의 명복을 빈다. 버러지새끼들의 나라다.

정의당이 민주화역사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한겨레가 민주화세대에 대한 배제를 주장한 이유가 꽤 궁금했었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들을 찾아봤는데 결국은 지령을 받은 것이었다. 2찍 진보들 수준이 그렇지 뭐. 검찰이 그러라고 했으니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서울대 나오고 사법고시 합격해서 영감 소리 듣는 진짜 엘리트들 아닌가.

 

그러고보면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는 놈들과 아직 운동하겠다는 놈들 사이에 신경전 같은 것이 있었다. 운동하겠다는 놈들은 정의에 대한 우월감을, 공부만 열심히 하겠다는 놈들은 성적에 대한 우월감을. 사회로 나와서는 당연히 역전되었다. 운동하던 놈들은 달리 갈 곳이 없어 이리저리 전전할 때 공부만 하던 놈들은 죄다 잘나가고 있었으니.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열등감은 이렇게 아직까지 유전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2찍 진보들이 검찰을 추앙하다못해 숭배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검찰은 정의다. 선 그 자체다. 검찰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검찰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이다. 괜히 학생운동한다고 허송세월했던 자신들에 비해 진짜 열심히 공부해서 사회적으로 번듯하게 성공한 엘리트일 테니까. 한 편으로 검찰 역시 공부도 않고 운동만 하다가 정치권에 들어가서 배지 달고 행세 좀 하는 인간들이 한 편으로 눈꼴시고 한 편으로 부럽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검찰 뿐만 아니라 그렇게 운동권에 대한 열등감을 뿌리깊이 가지고 있는 놈들이 연합해서 진짜 대통령 만들어보고자 했던 것이 지난 정권의 윤석열로 대동단결이었던 것이었고. 거기에 당연히 2찍 진보도 빠지지 않는다.

 

사실 웃긴다. 운동권이라 하면 대개 우상호나 이인영 정도 세대들일 것이다. 지금 수박이라고 잘려나네 마네 하는 이원욱도 딱 그 즈음이다. 다들 지금 다음 총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바로 그 개딸들이 주장하는 세력들인 것이다. 그 다음은? 김영삼에 의해 한총련이 아예 악마화되고 나서 더 이상 운동권이 정치권으로 들어오는 경우란 거의 없다시피 하게 되었다. 그래서 누가 있는데? 하지만 그렇게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으니. 한겨레가 4050은 모두 운동권이라 정의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더구나 운동권에는 여성도 거의 없이 남성 뿐이다. 그러니 기득권이다. 당연하다. 80년대 대학까지 갈 수 있었던 여성은 드물었고, 그런 여성들 대부분은 민주화운동에 관심이 없었다. 권인숙도 지금 저렇게 뼈저린 후회를 하고 있지 않던가. 어째서 여성주의자들은 또 민주화세대들을 그토록 증오하고 혐오하는가. 여기에 답이 있는 것이다.

 

결국 한동훈이 마지막 조각을 끼워맞춰 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2찍 진보와 검찰 사이에 저토록 단단한 연대가 가능했는가. 권인숙처럼 저들 대부분이 아마 지금 후회하고 있는 것일 터다. 나도 잘나가는 검사들처럼 공부나 열심히 할 걸. 그런데 나처럼 공부도 안했던 민주당 운동권은 뭐한다고 저리 잘나가는가. 세상 나와보니 알겠는 거겠지. 그래도 집안이 좋으니 아직도 진보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몰랐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확실하다.

그렇게 한 목소리로 이동관의 사퇴를 아쉬워하더니만 아예 방심위원장이 주변사람들을 시켜 민원을 사주하고 그를 근거로 과징금을 때리는 상황에서도 역시나 자칭 진보 언론들은 조용하기만 하다. 문재인 정부였으면 과연 자칭 진보 인사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생각해보면 바로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과연 저들에게 언론의 자유란 어떤 의미일까?

 

정부가 KBS를 장악하는데 앞장서서 문을 열어 준 것은 결국 KBS 자신이었다. KBS 직원들 스스로가 기존의 사장 쫓아내고 정권의 낙하산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 정권의 개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하긴 언론의 사명 어쩌고 하더니 그 첫마디가 바로 문재인 목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내 검찰의 대변인이 되어 대선까지 한결같은 태도를 취했었다. 그러다 내쫓긴 놈들이야 어차피 윤핵관들도 떠밀려나는 상황이니 그러려니 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한국 언론들에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필요하기는 한가. 언론 스스로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언론을 탄악하고 정권이 장악하여 마음대로 휘둘러도 감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사를 찾아보기가 너무 힘들다. 그나마 MBC 정도일까? 진보를 자처하는 새끼들은 조선일보가 나서지 않는다며 징징거리는 중이고. 그런 놈들에게 언론의 사명이며 공정성이란 어떤 의미일 것인가?

 

제 2의 언론통폐합이 필요한 이유다. 지금도 정부의 지원만 끊으면 대다수 언론들을 문닫게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 한국사회 전체에 크게 안좋은 영향까지 끼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좋으면 좋았지. 방송국은 하나만 있으면 된다. 신문사도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다. 기자새끼들이 많이 있을 이유가 무엇인가. 윤석열 정부가 하는대로 그보다 더 세게 밀고 나가면 찍소리 못할 것이 언론이고 기자라는 새끼들인 것이다. 제발 한겨레부터 일단 문닫게 했으면. 저 새끼들 볼 때마다 열불 터져서 내 명에 못 죽는다. 경향일보야 지금 원래 자리 찾아가는 중이고. 원래 창간부터 어용으로 시작한 언론이었으니.

 

좋은 기자는 죽은 기자 뿐이다. 망한 언론이야 말로 좋은 언론이다. 새삼 깨닫게 되는 격언이다. 기자새끼들 죄다 좋은 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검찰보다 더 혐오하는 게 바로 저 기자새끼들이다. 기레기라는 말도 쓰레기에 대한 모독이다. 쓰레기가 쓸 데가 얼마나 많은데. 저 새끼들은 재활용도 안된다. 곱게 갈아 거름으로 주어도 오히려 농작물이 썩는다. 기자라는 단어를 치는 순간도 손가락이 썩는 것 같다. 더러운 새끼들. 

아마 여기서도 몇 번 이야기했던 것 같다. 무려 20세기 말이었다. IMF가 일어나기도 전이었다. 당시 하이텔 게시판에서 여러 사람이랑 키배뜨며 전화요금 깨나 바치고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사람을 만났었다. 대충 직업은 의사였고, 개신교 신자였으며, 진보적 성향을 가진 여성주의자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람이 했던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일본의 지배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진보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헛소리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이른바 자칭 진보들 상당수가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꽤나 놀랐던 적이 있었다. 

 

원래 여성주의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말 제자들까지 정신대로 내몰았던 김활란이었다. 이기붕의 마누라였던 박마리아도 여성주의자로 유명했었다. 여성주의자들이 위안부문제에 있어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일 것이다. 종군위안부는 남성의 문제이고, 더구나 조선인 부역자들도 상당수 관여하고 있었기에 일본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민족문제가 아닌 여성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일본을 배제하고 가해자인 남성과 피해자인 여성만 보아야 한다. 여성주의자들이 이영훈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며 여러 게시판에서 키배를 벌였던 이유였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주의의 경향은 주로 유력한 집안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YWCA등 군사독재시절 여성주의로까지 이어진다.

 

군사독재시절이라고 여성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가진 것 많고 정작 할 일은 없는 유력자 집안의 여성들이 남성의 비호를 받으며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했었다. 전반적인 여성의 인권은 지금보다 낮았지만 배경이 배경인지라 여성주의자들의 활동 자체는 지금보다 훨씬 나았었다. 돈도 잘 나왔고 당국과도 협조가 잘 되었고 더구나 대부분 사회문제들은 자신들과 크게 관계가 없었다. 지금도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정작 사회적인 약자인 여성노동자들의 일상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계약직 노동자를 해고케 할 수 있는 것이나, 지휘부를 움직여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같은 여성 공무원을 징계토록 시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란 자신들과 같은 자격이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평범한 일반 남성들이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것조차 저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당시 여러 게시판에서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의견을 내거나 하면 가장 적대적으로 달려드는 것이 바로 그들 여성주의자들이었다. 여성주의는 당신들 남성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째서 항상 기득권 남성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아양을 떨어대는 것일까?

 

아무튼 한국 여성주의의 뿌리가 그렇다 보니 군사독재에 대해서도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한없이 관대하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보다 그때를 더 좋아하는 여성주의자들도 없지는 않다. 물론 반대편에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여성주의자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김대중 전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총리까지 지냈었던 한명숙 전 민주당 대표였다. 하지만 결국 박원순이 당했던 취급이나 정의당이 민주화 역사와 단절을 선언한 예에서 알 수 있듯 여성주의의 주류는 이미 그쪽으로 정리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민주화세대인 4050은 한겨레를 아예 읽지도 말라는 것이 저들이 선택한 단호함이었다. 그런 여성주의자들이 보기에 1212 쿠데타를 다룬 영화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여겨지겠는가.

 

군사독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든 그와 상관없이 군사정권과 유착해서 보다 수월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여성활동가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등에 업고 더 큰 대우를 받으며 활동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민주화 이후 여성주의란 얼마나 성가시고 번거로운 것인가. 때때로 여성주의자들에게서 보게 되는 반민주적이고 친독재적인 성향도 그런 영향인 것이다. 단순히 여성이라서 박근혜를 지지한 것이 아닌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도 여성주의자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란 뜻이다. 그런 점에서 1212에 비판적인 영화는 반여성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아니 실제로 반여성적인 영화로 규정되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아 그런 평론가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하지만 의외로 전혀 새롭게 여겨지지 않는 주장이었다. 박정희가 있었기에 대한민국 진보도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필연이었다. 실제 자칭 진보들로부터 들었던 주장이었다. 역사발전론에 입각해 대한민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라도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필요했다. 그에 비하면 민주화 이후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이 정작 대한민국 사회의 진보를 얼마나 왜곡해 왔는가.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으면 일본인들과 똑같이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는 삶을 살았을 것이란 어느 자칭 진보의 한탄과도 닿아 있다. 당시의 현실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범죄자일 뿐이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좋은 것은 여성주의를 위해 좋은 것이다. 더 나은 보편적 가치를 위해서가 아닌 여성주의 자체를 위한 것이다. 대부분 여성주의자는 기득권이다. 기득권일 수밖에 없다. 당장 여성주의의 온상이라 할 만한 학교부터 그런 기득권들을 위한 곳이란 인상이었다. 그런 여성주의가 진보까지 먹어 버렸다. 자칭 진보가 윤석열 정부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어떻게든 지지할 이유를 찾느라 바쁘다. 그냥 당연한 현실이다. 아무렇지 않은.

이를테면 월세의 경우 싼 것은 보증금이 천만 원도 안하는 곳이 아직도 제법 많다. 월세 조금 더 준다고 하면 일단 보증금에 대한 부담은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 최저임금 수준으로도 혼자서 열심히 아끼며 모으면 어떻게 제법 그럴 싸한 집을 구할 수 있는 돈을 마련하는데 몇 년 걸리지 않는다. 둘이라면 더 빠르다. 그런데 전세는 아니다. 어지간하면 거의 1억 가까이서 노는 전세금을 과연 지금 최저임금 기준으로 얼마나 아끼며 모아야 과연 마련할 수 있을까?

 

더구나 일단 월세 보증금이라는 것부터 거의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제도라는 것이다. 사실 법적으로도 월세 밀렸다고 보증금에서 까는 것은 아마 안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월세는 월세, 보증금은 보증금이다. 그런데 굳이 따로 보증금을, 그것도 몇 배 이상 받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한 번에 목돈을 들여야만 월세를 얻을 수 있는 구조라는 것도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당장 일본만 해도 몇 달 치 월세만 선불로 내면 얼마든지 바로 월세로 들어가 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른 선진국에서도 월세가 밀리면 바로 경찰을 동원해서 내쫓을 수 있는 대신 보증금이라는 것이 따로 없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결혼해서 살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 당장 다가올 현실적인 부담에 대해서.

 

전세가 없다면 모르지만 월세로 들어가서 다달이 월세를 내면서 사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수입이 알량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꽤나 부담일 터다. 거의 대부분 최저임금이거나 그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일 텐데, 거기서 월세라고 매달 수 십만 원씩 내고 나면 저축까지 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울 것이다. 반면 전세는 어찌되었거나 계약기간이 끝나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으니 돈을 고스란히 아낄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전세금을 돌려받고 올려주면서 돈을 모으다 보면 어떻게 집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래서 결혼을 결심하면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당장 전세집부터 알아보게 된다. 그런데 그 돈이 만만치 않다. 집에 손을 벌리지 않고서는 이제 막 사회에 첫발을 딛은 젊은 세대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그냥 결혼하기를 포기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당장 살기 어려운 것도 있는데 장래를 위해서도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것조차 현실적으로 너무 큰 부담이다. 그렇다고 보증금이 싼 단칸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구차하게도 느껴진다. 번듯하게 신혼답게 결혼생활을 시작하려면 그래도 어느 정도 되는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월세조차도 너무 부담이다. 하물며 집을 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그렇게 시작해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까지 하고 싶어도 현실의 문턱 앞에 주저앉고 마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이유일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체념하고 그런 기회 자체를 거부해버리는 이들마저 있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이를 갖는 것은 감히 언감생심일 테고.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위해서도 살 집을 구해야 하는데 그건 더 난이도가 높다. 주변의 환경과 학교까지 고려해서 집을 구하려면 진짜 그때는 없는 돈도 끌어와야 할 지 모른다. 결국에 전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합리성을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전세가 너무 많은 것들을 왜곡하고 또한 망가뜨리고 있다.

 

그냥 사는 만큼 내며 살 수 있는 만큼 쓰면서 함께 지금만 살아갈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지 않고 딱 자기 수준에 맞게만 살 수 있으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러기조차 어렵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이다. 바로 우리가 만들어온 이 사회의 현실인 것이고. 문득 든 생각이다. 여러 이유중의 하나가 아닐까. 아마도.

아주 어릴 적 동네에 하우스를 하는 형이 있었다. 정식으로 하는 하우스는 아니고 자취방을 동네에서 도박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하우스로 빌려주고 그 돈을 받아 생활하던 사람이었다. 나도 자연히 그를 통해 도박이라는 것을 몇 번 맛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도박하면 안되는 사람이구나.

 

도박과 투기가 서로 닮은 부분일 것이다. 빠지기가 어렵다. 돈을 따면 따서, 혹은 잃으면 일어서 손털고 일어나기가 도저히 쉽지 않다. 돈을 땄으면 더 딸 것 같다는 생각에, 돈을 잃었으면 잃은 돈을 벌충해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아예 망하기 직전까지 도박판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당시는 망하고 싶어도 망할 돈 자체가 없었기에 그래봐야 며칠 일당 날리는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설마 플러시 잡고 지르는데 포카드가 나올 줄이야. 물론 그러고도 인터넷 고스톱으로 한 번 크게 망한 적이 있기는 하다. 진짜 올인 앞두고 괜히 호기 부리다 내가 올인당했었다. 그러고서도 몇 번이고 다시 덤볐다가 오히려 평정을 잃은 상태에서 그때마다 모두 잃고는 이제는 인터넷도박도 아예 손을 대지 않는다.

 

내가 주식이며 코인 같은 투기에는 얼씬도 않는 이유일 것이다. 오르면 좋은데 올랐다고 팔기가 어렵다. 팔고 나서 오르면 아쉽고, 그렇기 때문에 더 오를 것을 기대하면 팔고 나오기가 어렵다. 그러다가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올랐던 것이 생각나서 자꾸만 미련을 가지게 되고 손해를 보는 순간부터 본전생각에 더욱 놓지 못하게 된다. 오죽하면 그런 말이 있다. 세상에 상종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 부류가 담배 한 번에 끊는 사람과 도박 돈따고 잃어나는 사람, 사법고시 1차 합격하고 손터는 사람이라고. 그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물론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곳은 지금껏 어디에도 없었다.

 

영끌족들을 그다지 동정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오를 때는 오르는 것만 보고 가능한 모든 돈을 끌어들여 집을 샀을 것이다. 그러면 올랐으니까 팔아서 차익만 얻었으면 되는데 더 오를 것을 기대하고 마냥 붙잡고 있었다. 언제까지? 그게 문제다. 최고점이란 곧 하락이 시작되는 지점이란 뜻이니까. 오르는 동안에는 팔지 못하고, 당연히 떨어지기 시작하면 더 팔지 못한다. 그러면 결국 집을 안고 같이 죽어야 한다. 그런 계산도 못한 것이다. 언론이 부추기니까 벼락거지 되기 싫어서 아무 생각없이 뛰어든 결과다. 집값이 떨어지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일찌감치 팔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다. 하긴 팔고 나오려 했어도 어차피 사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차익을 기대하고 투기에 뛰어든 바보들 제외하고는.

 

영원히 오르는 것은 없다. 오르는 것은 언젠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때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인가. 떨어질 때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리며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돈을 잃기 시작했을 때 버틸 수 있는 여력만 있으면 도박에서도 다시 기회가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영끌족과 진짜 꾼들의 근본적인 차이다. 그리고 결국 언제나 승자는 그럴 능력을 가진 꾼들인 것이고. 언론이 떠든다고 휘둘리는 건 그런 꾼들이 움직이는 언론에 놀아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꾼들의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몰랐다면 교훈으로 삼으면 되는데 과연 그럴 주제라도 될 것인가.

 

남들 돈버는 것 부러워하다 보면 결국 자기만 힘들어지고 불행해진다. 그런 단순한 상식조차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몸으로 직접 겪으며 배워야 한다. 교훈이라 여겨야지 별 수 있을까. 그렇게 집값이 언제나 오르지는 않을 거라며 살 집을 장만하라 해도 듣지 않더니만 직접 대가를 치르고 마는 것이다. 크게 염두에 둘 것은 아니다. 별 관심도 없다.

돌이켜보면 정치인으로서 문재인의 가장 큰 약점은 추대되어 입문했다는 점일 것이다. 한 마디로 주위에 너무 많은 빚을 졌다. 자기가 하고자 해서가 아니라 주위에서 하라고 하니 떠밀리듯 나서게 된 것이다. 그렇다보니 자기가 주도해서 자신의 지향과 목적에 맞게 인사들을 주위에 배치하기보다 이미 있는 인사 가운데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더구나 그 결집이 단단한 것이 아니다 보니 주위에도 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그래서 문재인 정권 초기 모든 언론이 나서서 장하성부터 치기 시작했을 것이다.

 

수박을 포함한 저쪽 진영에서 공격한 대상의 순서는 첫째 경제정책을 담당했던 장하성부터 민주당에서 문재인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김경수와 검찰개혁에 앞장서야 할 조국 순이었었다. 그리고 사실상 이들이 문재인 정부에서 사라진 순간부터 문재인 정부가 처음 앞세웠던 개혁이슈들은 모조리 지운 듯 사라지고 말았었다. 그나마 추미애까지 법무부장관에서 물러난 그 순간 문재인 정부의 브레인이 되고 손발이 되어 개혁정책들을 추진할 주체가 아예 사라지고 만 것이다. 이후부터는 말 그대로 수박을 포함한 저쪽 진영에 포위되어 고립되어 아무것도 못하게 된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 또한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이 가진 약점이었으니 문재인 자신의 책임이 되어야 한다.

 

정치입문부터 대통령까지 어쩌면 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것이다. 당대표도 그리 오래 하지 못했었다. 자기의 정치적 지향에 맞는 인사들로 주위를 채우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었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을 가다듬을 시간조차 없이 바로 대통령까지 되었으니 사람이야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김경수를 내준 것은 너무 뼈아팠다. 김경수라도 남아서 대통령의 곁을 지켰더라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경수가 사라진 민주당에서 적극적으로 문재인의 입장을 대변하며 당을 움직일 구체적인 주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나머지야 지금 보는 그대로다. 문재인의 측근이라 여겼던 윤건영이 자기 자리 지키기 말고 뭘 하고 있는가 한 번 보라. 

 

아마 그래서 이재명도 주위부터 치고 있는 것일 게다. 하나하나 손발을 잘라놔야 나중에 대통령이 되더라도 노무현과 문재인이 그랬던 것처럼 주위를 포위해서 고립시키고 무력화시킬 수 있다. 성남시장부터 이재명의 주위를 지켰던 이들을 여러 죄목으로 수사하고 판결하여 배제코자 하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 결국 이재명도 지금 민주당에 있는 수박 가운데서 타협하여 주위를 채울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다시 문재인 시즌2다. 이를 피하려면 역시 문재인처럼 순진하게 떠드는대로 다 들어주기보다 윤석열처럼 하고 싶은대로 임기 동안 마음대로 하는 철면피신공이 필요할까?

 

전과로 문제삼으면 생까야 한다. 측근인사라고 시비걸면 무시해야 한다. 코드인사라고 비판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냥 웃어주면 된다. 아무리 저들이 저렇게 지랄을 해도 결국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죄다 사면해서 무시하고 데려다 쓰면 된다. 최소한 청와대라도 그런 인사들로 채워야 문재인 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조국이 당할 때 문재인이 왜 저리 무력했는가 생각해 봤다니 결국 청와대를 채우고 있던 병신들이 문제였던 것이다. 하다못해 이철희 같은 새끼들이 청와대에 들어가 있었으니 뭐라도 제대로 돌아갔을 리 없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지지자들도 마음의 대비를 해야 한다. 뭐라 공격이 들어오더라도 대통령이 쓰겠다면 써야만 한다. 지지율과 상관없이 해야 한다면 반드시 해야 한다.

 

장하성 물러날 때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장하성 물러나고 나니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재경부 입맛대로 아예 바뀌고 말았다. 김경수 잡혀가고 조국은 아예 일가가 절딴나는 지경에 이르고서는 문재인 정부에게 더 이상 개혁의 의지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 놈들에 둘러싸여 대통령노릇을 해야 했을 문재인을 위해 잠시 묵념. 안쓰럽기는 한데 그마저도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일 것이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다짐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현역병들의 급여도 올려주고 스마트폰도 영내에서 쓸 수 있게 해주었더니 2030 남성들은 오히려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것을 가지고 생색을 낸다. 벌써 해주었어야 하는 것들을 이제서야 해주면서 잘하는 것이라 떠든다. 그래서 더욱 문재인 정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근거로 삼고 있었다.

 

남성들만 현역병으로 고생하고 있기에 정부에서 더 많은 보상과 지원을 해주어야 한다. 남성들만 현역으로 징집되어 고생하는데 여성들도 같이 고생해야 한다는 주장 만큼 더 많은 혜택과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며 입에 거품까지 물었었다. 자신들이 설정한 이상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비난하며 자신들을 대변할 정당으로 국민의힘을, 정치인으로는 윤석열을 지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채상병 사건이 일어났다.

 

어처구니없는 비극이었다. 폭우가 쏟아져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에 해병대를 장비도 없이 내보내 무리한 구조작업을 지시했다. 그러고서도 정작 그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수사했던 부사관만 죄인이 되어 불명예스러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자기 또래의 현역사병의 죽음에 대해 과연 2030 남성들의 여론은 어떠한가? 추미애 아들이 휴가 나갔다가 전화로 휴가를 연장했다고 지랄하던 2030 남성들이 이 이슈를 대하는 태도를 보자. 그들은 과연 또래 병사의 죽음에 과연 조금이라도 분노하고 있는가?

 

당연하게 치료목적으로 휴가를 나갔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복귀할 수 없으면 전화로 연락해서 연장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내가 군대 있던 20세기에도 가능했는데 하물며 21세기에 안 될 리 없다. 하지만 군인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리도 없다. 직장인이 아내가 다쳤다고 연차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가며 분노하던 진중권과 비슷한 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가 군대 갔다 왔기에 그런 군인이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정밀한 정의감이 과연 채상병 사건에 대해서는 어떻게 조금이라도 적용되고 있는가?

 

채상병 사건이 지금처럼 조용히 묻혀가고 있는 이유는 별 것 없다. 인터넷의 주류인 2030 남성들이 그 사건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태원 참사처럼 아예 대놓고 피해자들을 조롱하지 않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이태원 참사도 피해자 대부분이 자신들과 비슷한 또래였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 가운데 자신들이 혐오하는 여성도 있고 외국인도 있으니 오히려 비웃고 놀리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이태원 참사는 피해자들을 평소 혐오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채상병은 그들 또래의 평범한, 그것도 국가에 의해 강제로 군대로 끌려간 피해자 남성이 아니던가. 그런데 너무 조용하다. 오히려 저들이 혐오해 마지않는 4050 남성들과 여성들이 더 관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왜?

 

당연하다. 정치적인 선택인 것이다.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에 불리하다. 그렇게 민주당을 페미라 욕하던 2030 남성들이 정작 윤석열이 신지예를 영입하고 이수정을 영입했을 때는 철저히 침묵했던 것이 그 예일 것이다. 박원순을 비난할 때는 여성주의의 논리를 앞세운 정의당을 응원하고 있기도 했었다. 대선 당시 여성가족부폐지를 오히려 찬성했던 여성단체들처럼 2030 남성들 역시 여성가족부 존치와 예산증액에 대해 애써 논리를 찾아 옹호하고 있는 중이다. 착각해서는 안된다. 현정부에 대한 2030 지지율이 낮은 것은 여성의 지지율이 낮아서 그런 것이다. 더불어 이준석을 쫓아낸 것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잠시 이반한 것이지 여전히 저들의 정치성향은 저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침묵하는 것이다. 오히려 피해자들을 더 조롱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부에 피해가 없을 테니까.

 

정치적인 지지에는 자신의 이익이나 혹은 신념, 양심 같은 것은 그리 크게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내가 지지하느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그로 인해 나에게 무엇이 돌아오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직원도 여럿 쓰는 사장이 굳이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을 줄이고 산업재해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강조하는 정부정책을 지지하기도 하는 이유인 것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을 마음대로 자를 수 없게 하는 법안인데도 그것이 옳다고 여기니까 지지한다. 내 세금으로 청년들을 위해 이런저런 지원을 하는 정책들도 4050을 위한 정책들에 우선하는데 오히려 찬성하며 응원하기도 한다. 농민이 농산물 가격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행동에 지지를 보내고, 어민들이 바다에 방사능폐수를 방류하려는 것을 오히려 지지하고 있는 정부를 지지해서 행동에 나선다. 자기들이 먹는 수돗물이 썩고 있는데 그러도록 계속 방치하자는 정당을 지지하며 낙동강 오염에 대해 철저히 눈을 돌리고 있는 부산시민들도 그 한 예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라면 당장 복무기간을 두 배로 늘리고 급여를 반으로 깎고 영내에서 휴대폰사용을 금지해도 최소한 침묵으로써 반대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병사 하나의 죽음 정도야.

 

당장 해병대부터 자기들 사단장이 관여되어 있으니 너무나 조용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나마 소수의 해병대 출신들이 나서서 시위도 한 모양이다만 대부분 해병출신들은 해병의 명예를 위해 침묵을 선택한 상태다. 그런 주제에 4050 정치적이라고 비난하는 건 뭐하자는 꼬라지들인 것인지. 그래서 2찍 2030들을 2대남이라며 조롱하는 것이다. 아마 광화문 한복판에서 집단으로 강간을 당해도 이준석 만세를 외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병신들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4050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신념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을 때 지지하던 이낙연을 외면했고 응원했던 민주당 정치인들을 비판하고 있었다. 지금 수박이라 불리는 정치인 가운데 일부는 지지자들 사이에서 꽤나 호감이 높았던 정치인들이었다. 오히려 국가에 의해 끌려가 억울하게 죽은 또래의 일이 이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침묵하고 있는 그런 주제들이 무슨 공정을 말하고 상식을 말하는가.

 

그러고보니 정권이 바뀌고 사라진 단어가 두 개 있다. 하나는 2030의 공정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주의자들가 떠들던 성인지감수성이다. 그렇게 쏟아져나오던 미투도 사라졌다. 그러고보면 초반 몇 건을 제외하고는 거의 정치적인 미투들이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정치적이지 않은 미투는 아예 거의 없고 있어도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여성주의자들이 바란 것일지도 모르겠다. 2030이 주장하던 공정의 실제 정체인 것이다. 2030 남성들을 아예 배제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기는 이유다. 저놈들 지지 받겠다 나섰다가 내가 열불터져 죽을 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일제강점기 교육하는 것도 반일이라며 문재인을 욕하던 놈들이 바로 저놈들이었으니. 딱 어울리는 지지자와 정당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의외로 채상병 사건에 대해 주로 2030 남성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너무도 조용한 것에 무득 생각나 끄적여 보는 것이다. 민주당과 진보언론들을 탓한다. 그래서 채상병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을 누가 하고 있는데? 진실을 묻고자 노력하는 정당을 지지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을 탓하는 그 꼬라지를 보면 병신이 따로 없다. 버러지 새끼들이다. 다른 말은 생각나지 않는다. 똥버러지새끼들.

지난 대선 직전 당시 당대표이던 송영길이나 민주당 지지자들이 윤나땡을 외쳤던 것은 이낙연이 그 정도로 개새끼일 것이란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해서였다. 이낙연을 지지하는 똥파리들이 그런 씹새끼들인지 몰랐다. 무엇보다 수박들부터 아예 윤석열과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다.

 

원래 경선이 끝나면 컨벤션효과라 해서 대중들의 기대가 일사적으로 올라가고는 하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다. 노무현도 그래서 처음 대선후보로 선출되었을 때는 바람이라 불릴 정도로 지지율이 상당히 높았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지나면 조정이 되는 게 대부분인데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경선에서는 이낙연이 아예 불복을 선언하면서 민주당 이미지만 진창이 되어 버렸었다. 거기다 이낙연의 불복선언을 도화선으로 아예 이낙연 지지자들이 윤석열을 지지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었다. 그 새끼들은 아직도 국민의힘 지지자들보다 더 열성적으로 이재명을 막아 잘됐다며 윤석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지하고 있는 중이다. 이럴 줄 알고 지지했는데 아직 이재명이 당대표로 남아 있으니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지지하겠다. 그 새끼들은 원래 국민의힘 지지자들이었던 것이다. 

 

당장 김남국의 발언이 국민의힘을 통해 보도될 정도로 아예 수박들까지 뒤로 내통하는 상황에서 과연 지지율이 어떻게 되었겠느냐는 것이다. 자기들에 불리할만한 발언들을 알아서 국민의힘에 갖다 바치고, 자기들에게 유리할 수 있는 행동을 스스로 자제하면서, 오히려 불리한 이슈들만 키우던 상황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민주당 내부에서까지 윤석열을 지지한다는 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국민들 입장에서 그런 민주당에 표를 줄 마음이 들겠는가.

 

이낙연이 신당차려 나간다 했을 때 오히려 다수 민주당 지지자들은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던 이유였을 것이다. 저 새끼 좀 수박들이랑 같이 똥파리들 데리고 민주당에서 나갔으면 좋겠다. 그냥 아예 자기들 원래 자리 찾아서 국민의힘에 입당했으면 좋겠다. 김어준만 동지라 여겼을 뿐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저 새끼들은 동지도 뭣도 아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눈물겹다. 어떻게든 이낙연 지키겠다고 심지어 윤석열을 지지하겠다던 똥파리들조차 욕하지 못하게 단도리하던 모습들이라니. 그래서 똥파리들은 지금 어디서 누굴 지지하고 있는가. 내가 김어준 방송을 안 듣는 이유다. 김어준이 출연시키고 띄워준 놈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중인가.

 

아무튼 윤석열과 한동훈을 비교하며 윤나땡을 언급하는 저쪽 지지자가 있기에. 다행히도 지금 민주당에는 당시 수박처럼 대놓고 내통하며 이적행위하는 놈들이 실체를 드러내며 더이상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똥파리들도 이제는 힘을 잃고 찌그러진 상태고. 저 새끼들 아니었으면 박빙이던 지난 선거에서 과연 졌었을까? 이원욱 같은 놈들이 선거패배 책임 운운하는 게 역겨운 이유다. 그래서 수박인 것일 테고. 새삼 열불이 치밀어 오른다. 씨발.

민주당이 의석수와 상관없이 항상 여러 이슈에서 보수정당에 비해 약세를 보였던 이유는 별 것 없었다. 안에 적이 너무 많았다. 뭐라도 어려운 상황이 벌어지면 함께 이겨나가려 하기 보다 희생양을 만들고 자기만 살아남으려 하는 놈들이 거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보수정당에서도 검찰과 국정원 등을 동원해서 조금만 건드려줘도 알아서 자중지란에 빠지며 무너져 주니 이보다 편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이 지지자 입장에서는 항상 답답했던 것이었고.

 

원인은 민주당이란 정당 자체가 원래 어떠한 특정한 정치적 이념이나 지향을 공유하는 집단이 아닌 김대중이라는 카리스마에 기대어 연합한 토호들의 연립정당이었다는 태생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보스가 너무 많았다. 보수정당은 보스라고 해봐야 언제나 하나나 둘이었다. 정확히 둘이 있어도 결국 하나만 남고 나머지는 밀려나거나 죽어지내는 경우가 많았었다. 이명박 때 박근혜가 그랬었고, 지금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김기현과 장제원, 홍준표, 이준석등의 상황이 그러하다. 다른 목소리를 낼 수는 있지만 결국 하나의 권력에 의해 모든 것은 수렴되고 만다. 그에 비해 민주당은 김대중이 대표로 있던 시절부터 주승용부터 시작해서 진짜 오만 놈들이 자기가 왕이라고 설치고 다녔었고 그런 영향으로 지금도 진짜 오만 잡놈들이 민주당이란 정당 자체를 무시하고 자기가 잘났다고 떠들고 다닌다.

 

한 마디로 동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의 기치 아래 모인 동지가 아니라 이합집산하는 어중이떠중이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 저놈은 내가 쳐내야 할 적이다. 저놈을 밀어내야 내가 더 돋보일 것이다. 저 놈 자리에 나를 따르는 누군가를 집어 넣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외부에서 공격하기 전에 안에서 먼저 뒤통수에 칼을 꽂는 놈들이 나온다. 어쩌면 열린우리당 창당도 그런 일환이었을 것이다. 민주당은 개혁이 안된다며 열린우리당을 만들었던 놈들이 나중에 고스란히 열린우리당 해체하고 민주당으로 돌아가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노무현 앞세워서 열린우리당 만들었던 놈들이 다시 그대로 노무현 쳐내고는 민주당으로 손잡고 돌아갔던 것이었다. 그런 놈들이 모여서 민주당이랍시고 이름 내걸고 있었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저놈들은 항상 자기들끼리 싸운다. 문재인 이전 민주당의 이미지였다.

 

그러고보면 검찰수사에 협력해서 송영길과 그 측근들을 저격한 것도 결국 이낙연을 따르던 떨거지 중 하나였을 것이다. 송영길이라는 거슬리는 존재를 쳐내기 위해 자신의 동료의원들을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을 이용해서 저격한다. 하긴 동료도 아니었을 것이다. 동지는 더더욱 아니다. 그러니 끝끝내 구속까지 당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그를 기회삼아 당대표부터 공격하고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검찰과 협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그놈들의 당과 지지자에 대한 태도가 그랬던 것이었다. 같은 당에 몸담고 있어도 오히려 더 혐오하고 더 증오하며 더 경멸해 마지않는 적이라 여긴다. 차라리 반대편에 있는 다른 정당과 다른 정치세력을 동지라 여긴다.

 

이탄희도 그런 예일 것이다. 몸은 민주당에 있는데 마음은 정의당에 가 있다. 당적은 민주당인데 정신은 정의당이거나 혹은 진보당에 있다. 박용진이 수박짓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원래 민주당 출신이 아니었다. 민주당을 누구보다 혐오하는 자칭 진보정당 출신이었다. 민주당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 좋아서 몸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김해영은 어떨까? 금태섭도 당을 나가고 나니 전보다 훨씬 자유롭고 솔직해진 듯하다. 그러면 과연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그런 정치인들이 어떻게 보일 것인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표창원을 대단하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표창원은 원래 보수적인 인사였다. 성향 자체가 보수에 더 가까웠다. 그런데 당에 몸담고 있는 동안에는 최대한 당론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표창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가장 먼저 했던 말이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하는 당론을 따르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동안에는 그런 내색을 크게 내비치지 않았었다. 오히려 때로는 정면에서 반대편 인사들과 논쟁을 벌이는 모습도 보였었다. 그런 최소한의 양식조차 저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하나가 되어 움직여야 할 당이 서로 논쟁하는 정도를 넘어서서 등에 칼을 꽂고 난도질하는 모습을 당원들은 어떻게 여기고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김한길류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이다. 의견이 다를 수는 있다. 주장이 갈릴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로 갈등할 수 있다. 서로 싸우고 부딪힐 수도 있다. 그래도 동지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나가야 할 나의 동류다. 그렇다면 그만한 양해와 배려는 기본으로 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총리가 되기 전 정세균이 지지자들 사이에서 알게모르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내 최대계파를 거느릴 수 있었던 비결일 터였다. 그에 반해 김한길류는. 우상호로 대표되는 운동권그룹은 어쩌면 그보다 더 심하다. 자기들이 심판이 된다. 당사자가 아니라 한 걸음 물러서서 제 3자인 양 판단질이나 하고 있다. 진짜 이건 뭐 월세방 사는 것도 아니고 민주당 안에서 자기들 끼리 그룹을 만들어 이기는 편 우리 편 입바른 소리나 일삼으며 남의 일인 양 여기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런 놈들을 지지자 입자에서 좋아할 수 있겠는가.

 

김종민이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180석 의석에도 민주당이 지리멸렬해야 했던 이유일 터다. 이낙연이 정치인으로서 쓰레기라 불리는 것일 테고. 당대표라면 더욱 소속 정치인들을 앞장서서 지켰어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둘 알아서 잘라내며 자기 이름만 지키느라 바빴었다. 그런 놈들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고 다수가 되었으니 뭐라도 될 리 있나. 그래서 오히려 그러라고 부추기느라 2찍 진보들까지 나서서 오만 지랄을 다 해댔었다.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비례해서 지지자들은 얼마나 답답했었겠는가.

 

외부영입을 이제는 더이상 반기지 않게 된 이유다. 그렇게 민주당이라는 정체성과 상관없이 한 자리 바라고 들어온, 더구나 행세 깨나 하는 인간들이 제대로 민주당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추구할 수 있을 리 없다. 민주당의 당원과 지지자들과 하나가 될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결국 지금과 같은 아싸리판이 되었던 것이었다. 수박들을 만드시 민주당에서 도려내야 하는 이유일 테고. 자신들의 정체성에 맞는 당을 찾아가면 된다. 박광온이나 윤영찬은 국민의힘에 입당하면 될 테고, 이탄희는 정의당이나 가 보라. 성전환이 필요할까? 남의 당에 상관없는 놈들이 주인행세를 한다. 어이없는 노릇이지만 놀랍게도 그동안 그것이 현실이었다. 불쾌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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