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뿌리깊은 나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아마 거의 유일하게 정기준의 주장을 옹호하고 있었을 것이다. 백성은 현명해짐으로써 오히려 어리석어진다. 백성이 글을 배우고 지식을 쌓으면 오히려 기득권에 더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원래는 교활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파렴치할 정도로 충동적이었던 백성이 이타를 배우고 이성을 배움으로써 지배자들의 입맛대로 통제될 수 있게 된다.

 

그때 그 예로써 들었던 것이 바로 2차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이었다. 일본 전국시대까지만 해도 농민들의 반란은 거의 일상이었다. 자기들끼리 전쟁한다고 다이묘들이 아예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뜯어가니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 그것은 거의 대부분 문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농민들 자신도 자기가 살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정작 문명화된 구일본제국 시절에는 일본 국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죽을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알아서 세금을 바치고 노동력을 바치고 심지어 죽는 것마저 영광으로 여겼었다. 국민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국가를 이루는 한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살고 죽는 것보다 국가의 이익과 영광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회사에 평소 불평불만이 그리 많았던 인간이 하나 있다. 나이도 좀 되는데 하여튼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에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혹시나 지난 대선에서 최소한 윤석열은 안 찍었겠지. 시절이 이러니 자백하더라. 자기 윤석열 찍었다고. 이유는 여가부폐지와 통일부폐지. 아니 돈 많이 안 주고, 사람 많이 안 쓰고, 대우도 좆같다고 그리 욕하더니만. 그러고는 임금이 줄어서 알아서 그만두는 사람 나오면 적당히 정리도 되니 회사를 위해서도 좋다고 떠들어댄다. 이제 20대인 젊은 친구는 아예 말할 것도 없다. 친중친북이 싫어서 윤석열 찍었다. 지금도 오르지 않은 임금과 기간제라 언제 잘릴 지 모르는 신분과 병가조차 못쓰는 열악한 현실에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정작 그보다 여가부와 친중친북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그래서 말해 주었다. 원래 거대서사는 쉽게 사람을 속인다.

 

솔직히 두 사람 모두 여가부가 있든 말든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친북이 뭐고 친중이 뭐고 실제 사는데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시피 할 것이다. 그보다는 고용안정과 급여와 회사로부터의 처우가 더 일상에서 와닿을 것이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국가단위에서 움직이는 거대서사에 개인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진 무언가가 있는 양 쉽게 현혹되고 마는 것이다. 그저 내가 사는 것만 생각해야 하는데 더 높은 가치를 위해서 자신도 희생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차라리 같이 일하는 사람들 좀 내보냈으면 좋겠다. 대충 보면 알겠지만 평소 불평불만도 가장 많고 일도 너무 못해서 가장 먼저 잘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당연히 아직 기간제라면 말할 것도 없다. 자르면 기간제부터 자르지 정규직부터 자르겠는가. 그런데도 나 자신의 일상과 이익을 위해 투표한 것을 비웃는 심리를 보고 있으면 그저 한숨만 나온다.

 

어설프게 배우고 익힌 부작용이다. 괜히 쏟아져나오는 주장과 논리에 현혹되고 만 결과라 할 것이다. 그냥 모른 체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터다. 그러고보면 평소 불만 많고 아는 척 말만 많았던 사람들이 대개 2찍을 선택했었다. 너무나 이상이 고결해서 민주당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윤석열을 지지하고 그것을 합리화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논리로 자기는 중도층이니까 한 번은 한 쪽을 한 번은 다른 한 쪽을 지지하는 것이 옳다. 과연 그것이 자기 생각일 것인가.

 

듣자하니 태양광사업을 하는 회사들에서도 태양광을 악마화하는 보수여당과 후보를 지지한 인간들이 적지 않았다 한다. 뻔히 예산 줄이고 지원 줄이고 환경도 안좋아질 것이 예상됨에도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편의점 알바가 주휴수당 줄인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페미 때문에 잔업하느라 죽겠다는 IT 종사자들이 120시간 일하게 해달라 대통령에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 수출하는 기업들이 탈중국을 선언한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어째서 이런 모순들이 나오는가. 자기 땅이 철원에 있으니 남북화해가 더 유리할 텐데도 북한에 적대해야 한다며 2찍을 선택하는 것도 같은 논리다. 민주당이 진보적이지 못하니 민주당을 응징하기 위해 그나마 이룬 진보를 모두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2찍 진보들 또한 다르지 않을 터다. 저들의 정의가 저들이 놓인, 그리고 추구하는 현실을 넘어선다.

 

아무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원래 국민교육이라는 자체가 국민 개개인의 능력계발을 위한 것이 아닌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을 양성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초의 국민교육도 거대서사가 더 중요했다. 국가와 민족이 개인의 앞에 있었다. 오죽하면 국제주의를 주창하던 사회주의자들마저 국가간 전쟁이 벌어지자 자원입대해서 알아서 죽어나갔겠는가. 그 정점에 파시즘이 있었을 것이다. 이념이라는 거대서사를 위해 개인을 말살하던 냉전시대도 다르지 않다. 어설프게 배워서 더 위험하다. 그 위험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이 사회는 여전할 것이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다. 

아주 어린 시절 우리 부모님도 말씀하셨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

 

그래서 어느 학교 어느 교실에나 공부만 잘하는 찐따가 최소 하나는 있었다. 공부만 할 줄 알지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른다. 대부분이 아는 일반적인 상식은 물론 최소한의 사교를 위한 기술도 노력도 아예 무지하다. 괜히 예전 사법시험 준비하다가 뒤늦게 군대 온 선임이 사법시험 공부하는 놈치고 멀쩡한 놈이 없다 말한 것이 아니다. 

 

최근 짤로 꽤나 화제가 되고 있는 만화가 시마모토 카즈히코도 그래서 자기 만화에서 이런 명대사를 남기고 있었다.

 

"골방에 쳐박혀서 만화면 그리던 새끼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되었을 리 있겠나!"

 

선천전 소시오패스가 아닌 후천적 소시오패스인 것이다. 비슷한 부류로 오타쿠가 있을 것이다. 오타쿠 역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는 건 비슷하니. 주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니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하려 하기보다 자기만의 세상에서 모든 것을 인식하고 판단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그래도 되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가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만화라거나, 영화라거나, 특정한 캐릭터라거나. 그래서 전혀 주위를 신경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만 행동하며 그것을 스스로 납득하고 마는 것이다. 하물며 공부를 잘해서 부모님도 선생님도 모두 칭찬만 한다면 말할 것도 없다.

 

전근대 왕조국가들이 오래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다. 왕의 핏줄이라고, 더구나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라고 제대로 쓴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드물다. 뭐라 해도 다 들어주고 어떻게 해도 다 용인해준다. 그런데 아예 궁궐 안에서 보던 사람만 매일 보며 살아야 한다. 그런 놈이 왕이 된다고 제대로 된 왕이 될 수 있을 리 없다. 암군, 혼군이 괜히 생기는 게 아니다. 도대체 뭐라 해도 들어 쳐먹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서 엉뚱한 소리만 내뱉는다. 그런 놈이 심지어 영감소리 듣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어떻게 되겠는가?

 

사법시험 폐지되어 다행이라 여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그래도 로스쿨이라도 다니면서 다른 사람도 만나고 해야지 사법시험 공부한다고 골방에 쳐박혀서 법전만 보고 있으면 멀쩡한 사람도 쓰레기가 되기 쉽다는 이유다. 사법시험 출신들이 맹하거나 독하거나 둘 중 하나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물정을 모르면 맹하고 그런데도 독기를 가지고 공부만 해댔을 테니 독하다. 그런데 그 방향이 어딘가 틀어져 있다. 다만 같은 이유로 방황도 했었고 현실의 어려움도 몸으로 겪어 알고 있는 이들은 그래서 꽤나 외골수로 한 방향을 향해 달려가는 경향도 보인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같을 것이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주위를 보지 못한다. 자기만의 정의감과 선의에 사로잡혀 정작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

 

고개만 파묻고 있으면 상대가 자신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니 상대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나마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것이 현실적으로 언론 정도일 것이다. 이전에는 기무사나 국정원이 검찰을 제대로 견제하면서 때로 농락도 했지만 민주정부를 통해 무력화된 지금은 검찰을 제대로 감시하고 비판할 수 있는 주체라고는 겨우 언론 하나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언론이 검찰이 원하는대로 그냥 받아써주기만 한다. 아니 언론 자체가 검찰과 비슷한 놈들로 이루어져 있다. 역시나 언론고시라는 것이다. 언론이라는 권력을 바라고 공부만 해서 스펙만 좋은 놈들이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검찰과 어울리려 한다. 그렇게 비슷한 부류끼리 서로 주고받으며 자가발전을 한다. 절차탁마가 아니다. 자가발전이다. 검찰은 언론을 띄우고 언론도 검찰을 띄우고. 그러니 뭘 해도 포장되고 뭘 해도 미화된다. 조심할 이유가 전혀 없다.

 

너무나 뻔한 내부갈등쇼를 보며 문득 드는 생각이다. 대부분 벌써 눈치채고 있었다. 윤석열 정부에 불만을 가진 지지자들이나 진지하게 받아들였을 뿐 중도층에서까지 어차피 선거용 쇼일 것이라며 콧방귀나 뀌던 중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아니 아무리 그래도 화재가 난 현장에 갔으면 피해자들도 만나고 위로도 하고 돌아와야 할 것 아닌가. 만나서 화해쇼 한 번 하고 그냥 돌아온다. 그래도 통할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나경원이 그랬었던 것일까? 나경원이 국쌍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듣는 사람을 바보로 여기는 언행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짜 저 말을 믿으라고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뱉는 것인가? 그런데 진짜였다.

 

하긴 그동안 한동훈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내뱉는 언행들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기는 했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나 2030 남성들이 좋아한 것이기도 했다. 딱 공부 잘하는 모범생의 말투다. 다만 나와 같은 부류들의 기준으로는 그냥 공부만 잘하는 찐따다.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 모지리들이 학교에서도 딱 저런 말투를 썼었다. 이준석도 비슷한 과다. 참고로 2찍 진보들 가운데서도 저런 말투 쓰는 놈들이 꽤 된다. 오래전 기억이지만 인터넷에서 키배 뜨면서 책으로만 세상을 아는 놈들이 참 많구나 진지하게 깨닫는 계기가 되어 주었던 놈들이다. 2찍 진보가 괜히 윤석열 정부를 지지한 것이 아니다. 그나마 사과할 발언이라도 했던 김경률에 비해 문재인 정부에서 그리 말많던 자칭 진보 가운데 그 정도라도 발언하는 놈들을 본 적이 있는가. 

 

현정부의 수준이자 언론의 수준인 것이다. 사실상 현정부와 언론은 한 몸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성과다. 여성주의에 여와 야가 없는 것처럼 언론에도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여성주의는 여성주의이고 언론은 그냥 언론이다. 언론인인 연 하는 지식인들은 그냥 언론의 찌그레기들이다. 박노자가 소중한 이유다. 진보를 자처하는 인사들 가운데 멀쩡한 지식인은 박노자 하나 뿐이다. 아무튼 어째서 현 정부가 이지경까지 왔는가. 이런 지경까지 보여주고 있는가. 새삼 기억도 가물한 오래전 교실풍경을 떠올리고 마는 이유다. 그때도 그런 놈들이 있었다.

 

부모들 잘못이다. 그저 공부만 잘하면 된다. 그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된다. 사법시험 잘봐서 판검사만 될 수 있으면 된다. 혹은 의대 가서 의사만 될 수 있으면 된다. 판검사와 의사 가운데 멀쩡한 인간이 드문 이유다. 좋은 대학 나와서 지식인인 연 하는 놈들도 비슷하다. 우리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지금 2030이 저모양이지. 미안할 지경이다. 

그러고보면 그동안 2찍 단체나 개인들이 민주당 인사들의 권위를 깎아내리기 위해 시도한 행위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갑작스런 기습시위였었다. 장애인단체가 그랬었고, 성소수자 단체가 그랬었다. 그럴 상황도 아닌데 예고없이 들이닥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그리고 뒤에서 또 욕한다. 언론은 당시 상황을 받아서 최대한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기사를 낸다. 노무현도 그랬고 문재인도 그랬었다. 그런데 이들 단체들 절대 보수정권 인사들에게는 그런 짓 않는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동안 2찍 단체들이 보수정권과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묘사를 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반면 민주당 대통령에 대해서는 항상 적대적이었다. 당장 민주노총이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에게 하는 발언들의 수위를 보라. 어쩌면 그래서였을 것이다. 하긴 결국 좌파란 공산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스탈린과 마오쩌둥과 김일성과 차우체스쿠가 루즈벨트나 케네디보다 더 가깝다. 결국에 그래서 한겨레든 경향이든 정의당이든 홍세화나 김규항 같은 무리들이 윤석열을 지지하고 지금도 침묵하고 있는 것이겠지.

 

어째서 그동안 2찍 단체들은 뭔 일만 있으면 민주당부터 찾아가 점거하고 농성하고 항의부터 했을까? 어째서 같은 사안과 관련해서 더 부정적인 입장에 있던 보수정당에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고는 결국 지지한 대상이 바로 그 보수정당의 대통령후보였다. 잘 들어주어서가 아니다. 잘 들어주니 말을 해보고자 해서가 아니다. 정치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그런 요구와 주장을 했을 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자 했던 것이었다. 보수정당이었으면 자신들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노무현도 장애인단체 하는 말 다 들어주었다가 결국 언론을 통해 오만 욕을 다 들어야 하지 않았던가. 바로 앞에서 기습적으로 요구를 하고서도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비난을 쏟아냈었다. 보수대통령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하긴 그러고보면 2찍 진보들의 요구라는 건 한결같았었다. 한 방에 다! 그냥 위에서 찍어눌러서 그냥! 여성주의라는 것도 그러다 역풍을 맞았을 것이다. 정권을 잡았을 때 힘으로 찍어눌러 한 번에 다 이루어보자. 대화도 토론도 필요없다. 타협도 양보도 절대 없다. 그런 2찍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따라서 언제나 권위주의적인 보수정당의 대통령이었을 것이다. 혹은 자칭 진보 스스로가 권위주의적이 되거나. 당헌당규를 마음대로 인용해서 당원들이 투표로 뽑은 비례대표 순위도 바꾸던 정의당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에서 대의원제를 약화시키려 하니 2찍 진보새끼들이 발작들을 했던 것이다. 어리석은 대중과의 소통처럼 쓸데없는 것은 없다. 그래서 저들이 선택한 것이 윤석열 정권이다.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는가 싶다. 세상에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리 말많던 2찍 단체들이 정권이 바뀌고 나니 쥐죽은 듯 조용하다. 민주노총이 이렇게 조용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간첩몰이당하는데도 그냥 가만히 앉아서 당해준다. 노동자가 죽어도 그냥 그러려니 숨죽이고 넘어간다. 심지어 그동안 연대하던 한겨레나 경향, 그리고 정의당마저 이에 대해 철저히 침묵하고 있는 중이다. 성소수자 단체나 장애인 단체 같은 사회단체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들이 원하던 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들이 지지해서 선출한 자신들의 정부다. 불만이 있을 리 없다.

 

국회의원이 대통령 앞에서 안좋은 소리 좀 했다고 입까지 틀어막힌 채 끌려나가고 말았다. 입이 막하고 사지가 붙들린 채 맞기까지 했다. 어이없는 상황인데 아주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검찰총장 시절 그는 검찰과 언론이라는 권력을 이용해서 일방적으로 린치를 가하는 것에 아주 익숙해 있었다. 그때 그런 검찰의 폭력을 응원하고 지지하고 환호까지 보냈던 것이 어디의 누구였던가. 바로 2찍 진보들이 말하는 진보적 가치란 그들이 지지한 지금 정부에 있는 것이다.

 

당연히 한겨레는 진보가 맞다. 경향도 분류하면 진보에 속할 것이다. 정의당도 진보정당이긴 할 것이다. 스탈린주의도 마오주의도 어쨌거나 진보이기는 할 테니. 수많은 진보의 지향 가운데 저들이 진정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지했고 지지하고 지지할 정부의 모습이 저들의 실체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저들에게 아직도 우호적인 민주당 지지자라는 새끼들이 혐오스러운 것이고. 조응천을 더 지지한단다, 자칭 진보라는 것들이. 버러지새끼들이라는 이유다.

2찍 새끼들이 진짜 병신같다는 이유다. 한결같다. 내가 원래 민주당 지지했었다. 지금도 진보정당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 하는 꼬락서니 마음에 들지 않아 국민의힘을 지지했고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드는 이유가 민주당의 이념성, 극단성, 선민주의, 편향성, 무능, 그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에 대해 과연 국민의힘은 자유로운가? 아니면 지금 윤석열 정권은 자유로울 것인가?

 

민주당이 페미라고 지랄하면서 국민의힘으로 돌아선 놈들치고 국민의힘이 페미들과 손잡고 지랄하는 것에 반발하던 새끼가 거의 드물다는 것이다. 신지예가 윤석열을 지지했고, 이수정도 마찬가지였었다. 여러 여성주의 이슈들에서 여성주의자들은 한결같이 국민의힘 편에 있었다. 국민의힘 관련한 여성이슈에는 침묵하고 민주당과 관련해서만 목소리를 높이던 것이 바로 여성주의자들의 행태였었다. 하지만 필요하면 민주당이 원래 페미를 지지했으니까라면서 여성주의자들의 정치적 선택을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페미라 반대한다?

 

이념적 편향성이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종부세가 그 이유가 된다. 최저임금이나 근로시간제, 혹은 중대재해법들이 그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념적인 정책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한다. 그러니까 국민의힘은 이념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 웃기는 건 2찍 진보새끼들이 최저임금 1만원 안 지키고 근로시간 52시간 전체 적용 안했다고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중대재해법이 원안에서 후퇴했다고 아예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지지하고 있기도 하다. 하긴 2찍 진보들에게는 국민의힘이 진정한 노동존중의 정당일 테니.

 

뭐냐면 결국 원래 그런 성향이었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도 많이 보았었다. 하는 짓거리는 딱 수구 그 자체인데 대세가 그쪽이다 보니 괜히 진보인 연 개혁인 연 하면서 오히려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부류들이다. 노무현 때도 남들더러 쁘띠라 부르던 새끼들이 알아서 먼저 한나라당 지지로 돌아서더라. 노무현 욕하고 열린우리당 해체되고는 민주당 욕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럴 만하니 그쪽 지지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까 민주당 하는 짓거리는 참아주지 못하겠는데 국민의힘 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다. 그래서 똥파리 아니던가. 이재명이 살아있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윤석열 정권 하는 게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지금도 윤석열 정권이 이재명과 민주당을 대상으로 정치수사를 시작하고 그를 이용하려 하면 이전까지 무엇을 했든 열광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최저임금제와 주휴수당을 폐지하고 주 69시간을 밀어붙이는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문재인 정부에서 최저임금 1만원과 52시간제 전체 적용을 하지 않은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이 중대재해법 무력화를 시도하는 건 용납할 수 있지만 민주당이 중대재해법의 내용을 후퇴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민주당의 이념성이나 실정은 용서할 수 없지만 국민의힘의 이념성이나 무능은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 내내 국민의힘과 민주당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극단적이었고 불관용적이었으며 패악적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을 지지했다면 그 사람을 원래 민주당 지지자라 보아도 좋은 것인가? 그냥 지역이 대구고 경북이었을 뿐 지역주의를 벗어나 사고하게 되면서 민주당을 지지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원래 국민의힘 지지자라 보아도 좋을 것인가?

 

아마도 태어난 지역이 호남이었거나, 아니면 학교 다닐 때 주위에 그런 사람들만 있었거나, 혹은 자기가 좋아한 누군가가 그런 소리를 떠벌리고 다녔거나. 서민이 그런 경우 아니었던가. 강준만의 글을 읽고 감화되어 진보인사인 연 하다가 결국 자기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원래 진보인사였는데 전향한 것이 아니라 그냥 계기가 되어 솔직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진중권도 다르지 않다. 유럽에서 유학했다고 자기 아는 것 자랑할 때는 진보였었고 한계가 드러나고 현실에 대한 필요가 생겼을 때는 원래 자리를 찾아간 것이다. 그것을 자기가 원래는 민주당 지지자였다 떠들다니.

 

그래서 더 혐오스럽고 환멸스러운 것이다. 당장 지금 이재명을 민주당 대표로써 그리고 차기 대선후보로써 지지하고 있는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은 분명 대선후보경선에서 이낙연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었더라도 차라리 투표를 포기할지언정 윤석열에 표를 줄 생각따위 못했을 것이다. 하물며 윤석열의 당선을 위해 지지선언을 하거나 앞장서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을 터다. 민주당 내부의 수박들을 넘어 진선미 나부랭이와 같은 페미들을 욕하면서도 그래서 민주당 안에서 대안을 찾았지 페미가 싫다고 국민의힘과 윤석열을 지지하는 일따위 감히 상상해서도 안되는 일인 것이다. 차라리 정의당에 표를 주면 주었지 국민의힘이 당선되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민주당 탓을 하면서 2찍을 정당화하는 저따위 행위들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문재인이 싫어서 국민의힘을 지지했다. 그러면 원래 성향이 국민의힘인 것이다. 민주당 하는 꼬라지가 마음에 들지 않아 윤석열을 지지했다. 원래 그쪽 성향이었는데 처음부터 자리를 잘못 잡았던 것이었다. 그냥 중간에서 하는 꼬라지 보고서 판단했다면 이해나 한다. 그런 경우 정책 하나 법안 하나 이슈 하나가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니까. 그래서 평소 두 정당이 보인 모습에서 과연 어느 쪽에 더 마음이 가고 어느 쪽에 더 관대해질 수 있는가. 어느 쪽을 더 낫다 여기고 있었는가. 결국 한 마디로 평소에도 국민의힘이 더 나았다 여겼으니 그리로 지지를 선택한 것이다. 이전에 무슨 정당을 지지했는가는 그래서 의미가 없다. 동네가 대구라 한나라당을 지지했지만 아무리 봐도 민주당이 옳기에 민주당을 지지한다면 그것이 원래 그 사람의 성향인 것과 같다. 거기에 무슨 말을 더 덧붙이는가.

 

들을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윤석열보다 이재명에 더 분노해서 윤석열 정권의 실정과 패악은 웃어 넘기면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인사들만 공격하는 그놈들의 헛소리를 더 이상 들어줄 이유가 없는 것과 같다. 이재명이 묻었으니 문재인 대통령도 내던지겠다는 놈들이 바로 그런 놈들이다. 처음 이유는 문재인 전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 똑같은 것이다. 물론 자기최면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은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중립적인 위치에서 판단했다. 원래 중립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믿고 있었을 뿐.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별 해괴한 헛소리들을 다 듣는다. 버러지들이다.

심지어 이명박도 자기 친형을 감옥에 보낸 바 있었다. 물론 자기 임기 동안 가장 작은 혐의로 가장 작은 형량만을 받도록 수작을 부린 건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통령의 친인척이 직접 수사를 받고 처벌도 받을 수 있다는 실례를 보임으로써 최소한의 기준은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런 것들이 이명박과 박근혜로 이어지며 한결같이 보여왔던 정치적인 수사들에 대해서도 면피가 되어 주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하지 않았는가.

 

그런 점에서 어쩌면 지난 정부에서 검찰총장이고 그 측근이었다는 사실이 현정부의 실세들에게는 빠져나올 수 없는 외통수가 되어주고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최근 조국이 수사받은 이유가 너무 검찰을 압박해서였다고 떠드는 2찍들까지 보이고 있을 정도라는 것이다. 공정과 정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정치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어째서? 이후 검찰이 보여준 모습이 그것이었으니까.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한 개인과 일가족을 탈탈 털었다. 더이상 조국을 언급해봐야 중도층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할 것이란 이유다. 전 정부에서는 그렇게 목숨걸고 정권을 상대로 수사했었으면서 이번 정부에서는 어째서 정권에 대한 수사는 아예 손놓고 있는가.

 

그래서 핑계를 댄다. 전정부에서 다 끝난 일이다. 전정부에서 나온 주장들이다. 그러니까 전정부에서 수사를 담당했던 주체인 검사들이 어디의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당시 검찰을 장악하고 있던 것이 어디의 누구들이었는가. 그래서 그때는 전정부를 상대로 아득바득 아주 사소한 것까지 털다가 이제와서는 아예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이 대놓고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런 검찰 출신 정권과 그 정권 아래에 수족처럼 움직이는 검찰을 보면서 대중은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이재명에 대한 악마화도 그래서 이제는 힘을 잃어간다. 그런 검찰이 2년 가까이 수사하고도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설사 답이 나오더라도 그때는 너무 늦다. 무능하거나 결국에 권력이 작용한 것이거나.

 

암살미수 피해자가 헬리콥터로 이송되었다고 그를 수사하겠다고 하면 과연 유권자들이 움직이겠는가 하는 것이다. 차라리 지금 뉴스 자체가 사라져서 관심에서 멀어져 있을 뿐이지 오히려 수사가 시작되면 이재명 대표가 암살의 피해자가 될 뻔했다는 사실만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전대통령의 사위를 지금 와서 수사하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과연 현정부를 지지할 이유가 되어 줄 것인가. 무엇보다 그동안 언론이 하도 문재인 전대통령과 이재명을 갈라치기한 덕분에 이재명에게는 전정부에 대한 부채가 크게 지워져 있지 않은 상태다. 무엇보다 하다못해 이명박근혜 정부 수준의 최소한의 기준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정부가 법과 정의를 앞세워 그런 수사를 한다고 설득력따위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오히려 반감을 키우면 키웠지.

 

공부만 잘한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공식도 잘 외우고 응용도 잘하는데 정작 그 이상 필요한 상황에 창의적인 사고를 하는 것에 약점을 보인다. 문제를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출제자가 의도한 답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검찰과 언론과 자칭 진보가 붙어먹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비슷한 놈들이 비슷한 짓거리를 반복한다. 이렇게 하면 통하겠지? 그 결과가 2찍 진보까지 가세한 한동훈 띄우기다. 덕분에 2찍 진보들은 신났다. 윤석열 비판하는 척 하면서 다시 진보인 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마저도 나서는 놈이 거의 드물기는 하지만. 내가 아는 자칭 진보지식인 논객들 다 어디서 코박고 뒈졌는지 찾아보기가 힘들다. 차라리 나서서 서민처럼 빨아주기라도 하던가.

 

아무튼 정치도 기술이라는 것이다. 전문성이 필요하다. 필요하다면 측근이라도 가족이라도 일정부분 희생해야 한다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쇼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수사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언론만 잘 이용하면 될 줄 알았다. 말빨 좀 되는 인간들 앞세우면 통할 줄 알았다. 대중은 어리석지만 오히려 그래서 누구보다 더 교활하고 이기적이다. 모르는 척 할 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수박들이 지랄하는 이유일 테지만. 한심한 것이다.  

이미 결혼해서 배우자가 있음에도 다른 이성과 바람이 났다. 개인 사이에 해결할 일이다. 개인적인 정의감이나 도덕관으로 비난을 할 수는 있지만 어찌되었거나 남의 일이고 개인이 알아서 어떤 식으로든 풀어갈 문제인 것이다. 한 순간의 실수라 여기고 그냥 봉합한 채 살 것인가, 아니면 배우자로서 신뢰를 저버린 이를 용서하지 않고 끝내 갈라설 것인가. 그래서 결국 어떤 식으로 용서하고 어떤 식으로 갈라서든 그러한 과정과 결론들이 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간통죄가 사라진 것이다. 개인의 문제를 국가가 나서서 강제할 수는 없다.

 

반면 수사기관에 의한 피의사실 유포와 언론의 사생활 파헤치기는 다수의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사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아직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피의자에 불과한데도 그를 다수의 기자들 앞에 세우고 단지 혐의에 지나지 않는 사실들을 공공연히 퍼뜨려 여론재판을 시도한다. 수사가 채 시작도 되기 전부터 언론에 의해 선입견을 만들고 다수 여론의 공격을 통해 당사자를 궁지로 내몰아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려 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생활은 물론이고 주변까지 피폐해지는 경우를 그동안 수도 없이 보아 왔었다. 더구나 언론이라는 것들이 자기들이 직접 취재한 것도 아닌 누군가로부터 받은 일방적인 사실들을 진실인 양 보도하는 것은 언론이라는 권력을 이용한 폭력에 다름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피해자인 개인이 불륜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있으므로 그러한 행위들이 정당하다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바로 이런 것들을 두고 나오는 말이 인권감수성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 자체가 가능한가, 아닌가? 내가 2찍 진보 새끼들을 진보가 아니라 단언하는 이유인 것이다. 진보를 자처하지만 정작 필요한 시점에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인간의 존엄을 시궁창에 내팽개쳐 버린다. 배우 이선균의 죽음에 진보를 떠들어대던 언론들도 한 몫 했던 사실을 기억하는 때문이다. 내가 손석희라는 나이만 쳐먹은 버러지새끼에게 결정적으로 혐오감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단지 개인이 자신의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마저 부정하는 그 행태를 보면서 너는 왜 검찰에 출석해서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반박했는가 물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검찰이 의심하고 언론이 떠들면 그 순간 유죄인가?

 

아니나 다를까 관련인사들이 모여서 발표한 성명에 대해서도 태도들이 한결같다. 그래서 불륜을 잘했다는 것인가. 수사기관은 수사하고 언론은 보도한다. 행실이 발랐으면 언론이 무어라 보도하든 상관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렇게 보도한 사실들이 수사기관이 수사한 내용들인 것이고, 수사과정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라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 수사기관은 비공개수사를 요청하는 피의자를 다시 한 번 기자들 앞에 세웠고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을 흘림으로써 사회적인 비난을 유도하고 있었다. 개인의 잘잘못을 떠나 그것이 드러나고 여론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공적인 힘들이 쓰이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인가.

 

파시즘이 다른 게 파시즘이 아니다. 개인이 사라진 다수를 파시즘이라 부르는 것이다. 파시즘을 오히려 전근대의 유산이라 여기는 이유다. 근대의 가장 큰 발견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개인이기 때문이다. 오롯이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개인의 존재야 말로 근대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개인을 다시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전체에 매몰시키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 즉 파시즘이라 불리는 것이다. 다수가 저지르는 폭력에 무감각하다. 오히려 개인의 사소한 잘잘못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것이야 말로 다수의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은 다수의 편에서 마음편하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놈들이 2찍을 선택하는 것이다. 배우 이선균의 죽음에 대해 연예관계자들이 나서서 발표한 성명에 반감을 드러내는 대부분이 그런 2찍들이었다. 2찍 진보 포함이다. 평소 그리 인권 떠들어대더니 이런 경우 그들은 철저히 권력의 편에 선다. 다수의 편에 선다.

 

마약으로 수사를 시작했으면 마약과 관련해서만 떠들어야 한다. 마약으로 수사를 시작해서 알게 된 개인의 사생활까지 퍼뜨리는 건 분명한 월권이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에는 개인이 누구와 사랑을 하든 관여할 어떤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언론은 취재를 하는 곳이지 받아쓰기 하는 곳이 아니다. 더구나 공적인 수사기관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위치에 있는 언론이 수사기관과 결탁해서 그들을 돕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결국 수사기관으로부터 혐의를 받는 개인과 주변을 무너뜨리고 재판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위한 것이라면. 그런 공적인 구조의 문제가 과연 개인의 사생활보다 가치가 없는 것인가.

 

이마저도 정치로 이해하는 버러지새끼들은 굳이 상대할 가치도 없다. 2찍이 어째서 2찍인가. 민주당 안에 있던 2찍들이 결국 이낙연을 따라 나간 것이 어째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기쁘고 반가운 호재로 여겨지는 것인가.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새끼들은 인간으로 취급할 필요가 없다. 버러지는 버러지다. 내가 특히 2찍 진보들을 혐오하는 이유다. 차라리 2찍 수구들은 평소 하는 말과 행동이 같기라도 하지. 사람같지도 않은 것들이다. 저런 새끼들도 인간이라는 게 그저 끔찍하다.   

어릴 적 보았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빨간 완장을 찬 인민복 차림의 남자가 끌려나온 마을사람들 앞에서 한 사람을 가리키며 무어라 소리치기 시작한다.

 

"이놈은 반동이다!"

 

그러면 군데군데 총을 들고 서 있는 인민군의 강압에 못이겨 사람들도 따라서 외쳐야 한다.

 

"저놈은 반동이다!"

"죽여라!"

 

혹시라도 아무말 않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총을 든 인민군이 은근슬쩍, 혹은 대놓고 위협하기도 한다. 아니 아예 앞에 나온 남자가 지목해서 말하게 하기도 한다.

 

"이 반동에 대해 말하라!"

 

그렇게 강압으로 시작된 증오와 적개심은 어느새 고조되기 시작하고 그 이유를 너도나도 떠들기 시작하면서 당연하게 그 사람은 죽일 놈이 되어 간다. 그리고 죽는다. 어릴 적 보았던 드라마에서는 그 죽이는 도구가 죽창이어서 더 극적이었다. 바로 인민재판이라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한 사람을 모두의 앞에 내놓고 증오와 적개심을 강요하여 죄인으로 만들고 공범으로 몰아간다. 내가 공산주의를 싫어한 이유다. 아무리해도 저 인민재판만 보고 있으면 도무지 공산주의라는 게 사람을 위한 이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째서 한겨레와 정의당이 저토록 검찰과 유착해 있는가. 검찰과 찰싹 달라붙어서 아예 떨어지려 하지 않는가. 유시민이 검언유착을 고발하고 김어준이 그것을 받자 한겨레의 기자란 놈이 그랬다. 유시민은 사악하다. 김어준은 주제도 모른다. 언론이 검찰과 유착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은 언론의 자유이며 권리다. 검찰의 무한한 권리와 자유는 정의롭고 언론의 그것 또한 정의롭다. 그를 담보하는 것은 검찰과 언론의 합작에 의한 여론몰이다. 검찰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 여론으로 만들면 그것이 정의가 된다. 재판부마저 그 앞에 자유로울 수 없다.

 

김건희 여사의 말이 옳다. 현정부는 좌파정부다. 진보정부다. 정의당과 한겨레가 그리 굳게 믿고 있는 이유다. 어쩌면 그래서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이 더 현정부에 비판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바로 저 인민재판과 닮았다. 박원순의 경우처럼 언론이 정한 답을 내놓지 않으면 여성이라도 직장에서 내쫓기고 불이익을 당해야 하는 그런 부조리한 구조가 인민재판의 그것과 너무도 닮아 있는 것이다. 아, 이래서 2찍 진보들이 검찰과 붙어먹는 것이로구나. 아직도 지난 시대의 이념에 사로잡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와서 이선균이 죽은 이유 어쩌고 지랄하고 있는데 원래 한겨레도 하나였었다. 한겨레 뿐인가? 정의당도 언론이 무어라 떠들면 받아서 욕하는데 조금의 주저가 없었다. 탈원전이 문제라니 탈원전 욕하고, 김학의 출국금지시킨 게 잘못이라니 청와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던 것이 한겨레였다. 자기들이 취재까지 해놓고도 조선일보가 주장하니 의혹이다. 자기들이 취재한 것이 있는데도 검찰이 그렇게 주장하고 다른 언론이 떠드니 그것이 진실이다. 그리고 그 증거를 그러한 폭력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 대상을 통해 찾으려 한다. 그러므로 한 번 찍었으면 악마로 만들어 죽여야만 한다.

 

괜히 노무현 죽었을 때 한겨레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한명숙 잡아넣을 때 가장 앞장서서 좋아했던 것도 바로 한겨레였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재명 살았다고 가장 안타까워한 곳도 한겨레 아니었을까. 그리고 한겨레는 오래전부터 정의당과 한몸이었다. 그래서 웃기는 것이다. 노란봉투법 반대한 이원욱을 또 그렇게 좋아하는 곳이 한겨레일 테니까.

 

아무튼 이선균의 경우를 통해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저놈들이 저 지랄을 어디서 배웠는가. 그래서 더욱 2찍 진보들은 검언유착을 옹호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고발하는 것은 사악하고 보도하는 것은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하긴 댓글읽어주는 기자들에서도 그러더라. 기자가 검찰로부터 받아 기사쓰지 그럼 취재해서 쓰느냐고. 그것도 다른 언론들은 이익을 위해 그런다면 한겨레는 신념이다. 그것을 진실로 정의라 믿는다. 그래서 더 쓰레기라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4050 남성들을 아예 배제해야 한다. 그들을 아주 도려내야만 한다. 바로 한겨레에 올라왔던 기자의 기사 내용이다. 한겨레가 보수화되었다는 이유일 것이다. 선동만 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죽창부터 든다. 그것이 정의라고. 그래서 정작 2찍 진보들이 피의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무지한 것이다. 무관심한 것이다. 저들의 인권이 검찰의 수사를 받는 피의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2찍 진보의 자유고 인권이고 정의다. 혐오스런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파시즘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그것이 해당 국가 민중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인식이다. 해당 국가 다수 국민들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여 그러한 최악의 선택들을 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 개개인의 이성이란 것에 근본적 문제와 한계가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독일의 경우 황제가 쫓겨나고 독일제국이 무너지면서 제국이라는 시스템 아래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많은 이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더구나 제국이라는 강력한 억제장치가 사라지자 그동안 다수의 피지배 국민들 사이에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새로운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어가고 있었다. 히틀러와 나치가 괜히 공산주의를 제 1주적으로 여겼던 것이 아니었다. 공산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비슷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국가적인 단합을 주장하는 나치의 주장은 기득권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 가운데 하나였기에 그들의 선전과 선동은 기득권세력들의 동조와 협력에 의해 빠르게 대중들 사이에 퍼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고작 술집 구석에서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던 놈팽이가 전국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겠는가.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스페인에서는 공화주의자들이 스스로 총을 들고 파시스트를 상대로 맞서싸우기까지 했음에도 끝내 군을 장악한 기득권세력들에 패배하면서 프랑코에 의해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고 있었다. 과연 이탈리아 국왕과 교황청의 승인이 없었어도 무솔리니가 이탈리아의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겠는가. 아니 독일과 스페인에서도 역시 보수적인 가톨릭 교회는 파시스트 편에서 그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기득권들의 동조와 협력은 그들이 장악한 언론까지 움직이면서 대중적인 여론까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괴벨스가 제아무리 뛰어난 선전선동가였어도 언론의 협력이 없이는 그렇게까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란 뜻이다. 실제 히틀러와 나치가 장악한 것 같던 독일에서도 파시즘에 대한 저항은 소리소문없이 그러나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던 스탈린의 소련에 비해 전황이 불리해지는 동안에도 민심의 이반을 막기 위해 자원을 낭비해야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만 틀어져도 국민들의 저항으로 인해 내몰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히틀러와 나치로 하여금 전쟁에 모든 자원을 쏟아붓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다.

 

비단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뿐이었을까?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도 국민 다수의 의지와 상관없이 군부와 기득권이 칠레의 경제를 지배하고 있던 외세의 지원 아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권을 뒤집은 경우었다. 단지 그렇게 정권을 잡고 난 다음 새롭게 들어선 정부의 강력한 억압과 유인에 의해 국민 다수가 하나의 사상과 지향만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정권을 잡은 주체가 언론을 통해 선동하고 교육을 통해 세뇌하며 경찰과 군부를 동원해서 다른 사고를 억압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란 하나의 목적과 지향을 가지는 단일한 사회라는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그 과정이 전혀 다름에도 구 일본제국의 군국주의 역시 파시즘과 같이 취급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구 일본제국의 군국주의란 전근대적인 전제주의에 근대적인 수취시스템을 결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심지어 군부가 천황의 승인 아래 천황을 대신해서 통치하는 사실상 이전의 막부와 다를 바 없는 체제였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적인 막부체제의 강력한 행정력과 통제력은 기득권을 억압하는 약자들에 대한 더욱 강력한 억압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서 그나마 조금씩 일어나고 있던 사회주의가 아예 씨몰살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괜히 대한민국 보수들이 일본의 식민지지배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 동안에는 사회주의가 아예 발붙일 수 없었다. 그러면 그 수혜자는 누구일 것인가?

 

어쩌면 이 또한 기득권에 의한 기만일 것이다. 어떻게 독일에서 나치가 정권을 잡을 수 있는가. 밑도 끝도 없고 앞뒤도 맞지 않는 히틀러의 개소리가 독일사회에서 통용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실제 나치가 정권을 잡기 전 치른 선거에서 사실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그를 승리로 포장하도록 도운 주체가 있는 것이었다. 다만 나치가 정권을 잡고 난 뒤에는 그들 또한 기득권으로서 새로운 권력의 입장에서 경쟁자일 수 있었기에 그로 인한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고 있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오스트리아 출생에 고작 부사관 출신이었던 히틀러를 경멸했던 육군참모부의 태업과 같은 것들이다. 그래도 충실히 나치에 협력만 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주어졌고 특혜도 누릴 수 있었다. 밀덕들을 기쁘게 하는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난잡하기까지 한 비효율적인 무기체계 또한 이로 인해 비롯된 것이었다. 이놈도 밀어주고 저놈도 밀어주고 여기도 던져주고 저기도 던져주고 하는 사이 정작 필요한 무기와 장비가 정치적인 이유로 도태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보이게 된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모습 아닌가?

 

말하자면 파시즘이란 원인이 아닌 단지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조가 드러내는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이 스스로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던 일본에서도 군국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 이유다. 민중이 스스로 저항하며 거부하고 있었음에도 끝끝내 강제되었던 스페인의 경우가 그 증거인 것이다. 칠레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기득권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더 강력한 폭력을 요구하게 된다. 철거민들을 내쫓을 때나 파업중인 노동자들을 내몰려 할 때 조직폭력배를 동원하는 것처럼 자신들을 위해 얼마든지 부당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 대기업들이 기꺼이 막대한 재원까지 지원해가며 독재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 절대권력 아래에서는 일선 기자들 역시 상당한 지분을 배려받을 수 있다. 더구나 당장 하는 일 없이 지식인입네 정치인입네 하는 놈팡이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까 히틀러 역시 술집 구석에서 불평불만이나 늘어놓던 놈팡이란 것이다. 딱 홍세화나 김규항 무리들과 비슷한 부류들이다. 괴벨스처럼 자신의 실력에 걸맞지 않은 불우한 현실에 불만을 가진 지식인 나부랭이의 표상과 같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기득권과 정면으로 맞서려 하기 보다 대중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데 앞장섰다. 여기서 한겨레의 위치란 공산주의자를 악마화하던 당시 언론과 지식인들의 위치였을 것이다. 이준석에 동조하여 민주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을 배제해야 할 악으로 몰아 2030을 선동하려 했었다. 그리고 그러한 일방적 구조를 고착화하기 위해 언론과 교육마저 마음대로 하려 하는 중이다. 그마저 모든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 심상정이 저리 지랄하는 이유인 것이고. 어차피 윤석열 욕해봐야 다음은 한동훈이란 믿음이 있다.

 

백주대낮에 대한민국 제 1야당의 대표가 테러로 목숨을 잃을 뻔한 엄중한 상황에서도 굳이 트집거리를 찾아 비난하고 심지어 고발까지 하는 의사들의 행태란 그런 연장인 것이다. 개신교와 불교라는 종교권력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막론한 경제권력, 거기에 언론과 지식인사회가 합심한 여론권력에, 의사와 변호사 같은 고소득을 올리는 전문가들이 하나가 되어 정치결사를 만들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인 행동에 나선다. 심지어 이러한 정치적 연대 안에서는 신천지와 개신교조차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결사를 유지하는 동안에는 개신교조차 신천지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진보를 자처하던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들이 반노동적인 주장과 행동들에 동조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여성주의자와 반여성주의자가 서로 협력하기도 한다. 바로 거기에 한 발 걸치고 있던 것이 당시 정부여당의 대표 이낙연이었다. 사실상 문재인 포위망이었는데 이제는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재명 포위망이다. 노무현 때도 다르지 않았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민주노동당이 어디의 누구와 정치적 연대를 하고 있었는가.

 

원래 중국의 문화대혁명조차도 홍위병의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에게 그럴 동기와 명분을 제공한 기득권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이다. 그러도록 그들을 선동하고 실제 지휘까지 했던 당시 집권자 마오쩌둥과 그 주위의 사인방에 더 큰 책임이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나치가 패망하고서도 히틀러와 나치는 독일사회에서 배제되었지만 심지어 독일에서조차 진짜 기득권들은 살아남았었다. 인류 역사의 비극이랄까? 기득권은 어떻게 해도 기득권이다. 다만 나치 독일처럼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기득권은 얼마든지 배제할 수 있다. 누가 선택되고 누가 배제될 것인가. 그 전에 현실은 바뀔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지는 이유다. 저들은 언제까지 지금의 선택을 유지할까? 2찍 진보가 한동훈을 비판하지 않는 이유일 터다. 흥미롭게도.

문재인 정부 초반 잠깐을 제외하면 정의당은 언제나 국민의힘과 입장을 함께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이 반대하는데 들어주지 않았다고 공수처법 통과를 비난했던 곳이 바로 정의당이었었다. 중대재해법과 관련해서는 아예 국민의힘을 두고 진정한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당대표의 이름으로 찬사까지 바쳤었다. 지금 중대재해법에 대한 국민의힘의 입장을 살펴보라. 아니 중대재해법에 대한 국민의힘의 입장은 항상 일관되었었다. 김종인 개인이야 어떻든 항상 일관된 입장을 보여왔던 국민의힘이었을 텐데 과연 정의당이 그것을 몰랐었겠는가?

 

코로나 방역에 대해서도 그래서 광화문집회 등 중요한 이슈에서 정의당은 언제나 보수단체의 편에 서서 발언하고 있었다. 위안부 문제를 민족문제가 아닌 여성문제로 여기고 싶은 것이 여성주의자들의 일관된 입장이었으므로 윤미향과 정의연에 공격에 앞장선 것은 그나마 이해할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일본 정부가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인 여성들을 일본에 팔아넘긴 조선인 남성들이 더 문제다. 한국인 남성들이 먼저 반성해야 한다. 그러니 위안부문제를 한일간의 역사문제로 풀어가려는 정의연이 눈에 거슬렸을 터다. 하지만 탈원전을 먼저 주장했음에도 보수단체가 주장한다고 탈원전을 문제삼고, 박원순을 아예 부관참시하는데 앞장섰던 것들이 김학의를 출국금지시켰다고 이성윤 고검장의 승진에 반대하고 문재인 정부에 책임을 물으려 했던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심지어 나중에는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동의해서는 안되었다는 통렬한 자기반성까지 정의당 내부에서 나오고 있었으니 이 또한 국민의힘의 입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의당의 당대표였던 여자가 언론에 나와서 인터뷰하며 문재인 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정권교체의 책임을 이야기한다. 무슨 뜻이겠는가?

 

결국 그동안 정의당의 행보대로라면 국민의힘이 요구하는대로 정책을 펴지 않아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는 뜻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요구하는대로 정책을 펴지 않았기에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영입해 후보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대선 당시 지금 특검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김건희에 대한 민주당의 검증을 앞장서서 반대했던 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김건희에 대한 의혹을 민주당에서 제기할 때마다 정의당 대변인의 이름으로 여성을 내세워 오히려 공격하는 논평을 내놓고 있었다. 이 역시 정의당의 입장이라면 검찰과 검찰 가족에 대해 절대 건드려서는 안되었다는 주장일 수도 있다. 그랬다면 정권교체도 안 되었을 것이다.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하네. 검찰개혁한다고 어설프게 나섰다가 검찰과 언론과 자칭진보 지식인들의 포위망에 그대로 지리멸렬한 경우이니. 그러니까 검찰개혁한 것이 잘못이라는 뜻인가.

 

심상정의 주장을 정의당의 그동안 행보에 대입해 이해하면 결국 이런 것이 된다. 최저임금을 올려서도 근로시간을 줄여서도 안되었다. 중대재해법은 완벽하게 시작할 것이 아니면 아예 만들어서는 안되었다. 공수처법도 잘못되었고, 코로나 방역한다고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 것도 문제였다. 김학의는 검찰이 무고하다 했으니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놔주어야 했었고, 원자력발전서도 설계수명을 넘겼든 하자가 발견되었든 사고가 날 때까지 그냥 돌렸어야 했다. 검찰개혁은 아예 시도조차 말아야 했으며, 검찰과 검찰 가족들에 대해서는 어떤 검증도 수사도 말았어야 했다. 그러고보니 아베의 도발로 시작된 한일관계 경색에 대해서도 심상정은 자기는 과거사를 묻지 않겠다며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그냥 국민의힘이 하자는대로 하라. 그래서 정의당이나 한겨레나 홍세화나 김규항 같은 놈들이 윤석열 정부에 대해서는 저토록 조용한 것인가. 민주노총이 저렇게 조용한 건 진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아무튼 심상정 하는 소리 들으니 어째서 자칭 진보가 2찍 진보로 진화하게 되었는가 새삼 깨닫게 된다. 원래 저런 새끼들이었다. 지방대 다니는 사람 앞에서 서울대 다닌다고 자랑하고, 당장 실직해서 먹고 살 일이 걱정인 사람 앞에서 자기 뭐 먹었는가 겸손하게 과시하던 새끼들이었다. 타인에 대한 우월감으로 진보놀이나 하던 새끼들이니 그런 놈들 주장에 진정성따위 있을 리 없었다. 오죽하면 용산참사의 책임이 사망한 철거민들에 있었다는 오세훈을 대놓고 지지하고 있었겠는가. 성소수자나 장애인에 대한 차별발언에도 저들의 지지는 한결같았었다. 그래서 놀음인 것이다. 진짜가 아니니 장난이다.

 

심상정이야 말로 2찍 진보들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저들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진보적 가치라는 것이 얼마나 의미없는 것인가. 가치없는 헛소리였는가. 당장 저들과 함께하던 인간들이 어디서 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가 보면 된다. 민주당에서 저들과 가장 가까운 것을이 아마 이원욱 무리들일 터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절반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대뜸 탄핵부터 말하던 것들이다. 정의당에 대한 혐오는 그래서 정의롭다. 그래서 정의당인 모양이다. 정의로운 혐오와 경멸, 그리고 환멸. 그래서 정의당이다. 심상정이다.

너무 지나치다. 역시 검찰과 언론의 유착을 너무 믿고 있는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검찰이 당을 장악하기 전까지는 가끔씩 비판적인 기사를 내는 기자나 언론도 있었는데 검찰에 아예 당을 내주고 나니 진보들까지 2찍으로 돌아서서 빨아주고 핥아주느라 숨이 넘어갈 정도다. 그러니 자기들이 뭔 짓을 하고 뭐라 떠들든 언론이 포장해 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생각없이 내지르게 된다. 그걸 또 언론이 받아주니 다시 착각은 심해지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전처럼 그리 좋지만 못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의사란 사람을 살리는 직업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아직도 무의식중에 가지고 있다. 그래도 설마 의사가 사람의 목숨이 위중한데 자신의 이해나 혹은 정치적인 유불리를 따라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웬걸? 하마트면 테러를 당해 죽을 뻔한 사람에게 어째서 부산에서 치료받지 않았느냐며 의사들이 죄다 나서서 지랄 중이네? 심지어 어디선가는 아예 테러의 피해자를 형사고발까지 하고, 국민의힘도 그것을 받아서 사과를 요구하며 책임을 물으려 하고 있는 중이다. 세상 어디에 테러를 당해 죽을 뻔한 사람에게 특정한 장소에서 치료받지 않았다고 책임과 처벌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던가?

 

상식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그 치료과정을 두고 문제삼는 것 자체가 인간의 근본에서 벗어난 것이다. 일반인이 그런 소리를 해도 이 새끼 뭐하는 새끼인가 어이없어 할 판에 하물며 의사가 그따위 지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 환자가 서울에서 치료받겠다 했다고 자기들 무시했다 지랄하는 의사가 의사인가 하는 것이다. 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치료받았다고 오만 의사새끼들이 겨우 목숨을 건진 사람을 비난하고 처벌까지 하는게 과연 타당한 행동인가? 거기에 더해 반대 정당에서 피해자에게 사과까지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모습을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사는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보고 판단할 것인가.

 

평소 민주당에 호의적이지 않던 동료직원도 서울에서 수술받았다니까 그럼 서울에서 수술받지 어디서 수술받느냐더라는 것이다. 부산대병원이 얼마나 좋은 병원이든 일단 대학병원 가운데 서울대병원을 넘어설 수 있는 인지도를 가진 병원은 대한민국에 없다고 봐야 한다. 하물며 그것을 비난하고 나서는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닌 의사들이다. 의사들이 민주당 싫어하는 것 아는 사람은 거의 안다고 보면 된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의사들이 얼마나 정부와 민주당에 적대적이었는가 무의식중에 거의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예 이렇게 사람을 살려야 할 의사들이 죽을 뻔한 환자의 치료장소를 두고 지랄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은가? 의사들이 비난하니까 이재명이 잘못했다? 아니면 의사들이 뭐라고 저렇게까지 비난하는가? 그런데 거기에 더해 국민의힘까지 나서서 힘을 보탠다. 원래라면 혹시라도 테러와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서라도 일정한 선을 그어 두는 쪽이 정치적으로도 유리하다. 설마...?

 

프레임을 바꾸는데 성공한다고 항상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명에 대한 테러를 수술을 위한 전원을 통해 지역의료 홀대라는 프레임으로 바꾸려 했지만 그 결과는 테러 피해자에 대한 일방적인 부당한 공격이다. 하긴 아마 그래서 이재명 대표에 대한 테러뉴스 자체가 언론에서 아예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일 게다. 테러로 상처입고 쓰러진 모습도 거의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고 있는 중이다. 테러 자체를 지우고 테러로 인한 전원만을 남긴다. 하지만 그 전면에 나선 것이 의사라는 것이 문제다. 여기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냥 부산에서 그냥 치료받는 것이 나았을 것이란 정도를 넘어서 서울에서 치료받았으니 잘못이라 한다면 정상적인 사고에서 문제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 2030 남성과 6070 늙다리들이 인간을 벗어난 괴물들이란 것이고. 그것을 논리라 여기고 합리라 치장한다. 그러나 결국은 인간의 생명을 수단으로 여기는 괴물의 사고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어차피 평균 80점 정도 맞는 아이에게 100점을 맞지 못했다고 야단쳐봐야 아예 공부에 흥미를 잃고 말 뿐이다. 80점 정도 되는 아이에게는 81점이나 82점도 훌륭히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라 여겨야 한다. 이세돌에게 나중에 바둑을 복기하고서 그때 이렇게 두지 않았으니 넌 바둑을 못두는 것이라 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메시나 음바페에게 거기서 왜 그렇게 차지 못했느냐고 해봐야 그 사람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아쉽지만 딱 거기까지 뿐이다. 그랬다면 오히려 이재명 대표에게 더 아픈 상처가 되었을 텐데, 선을 넘어서면서 대중의 상식과 어긋나 버렸다. 과연 이같은 여론몰이의 결과 대중의 판단은 무엇일 것인가.

 

무엇보다 이번 총선의 가장 큰 이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이다. 이재명이 부산이 아닌 서울에서 치료받았어도 그것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을 대체할만한 비중을 가지지는 못한다. 원래 이재명을 싫어하던 사람들만 싫어하는 이유로 삼으려 할 뿐. 하긴 그래서 부산에서는 통할 지 모르겠다. 다른 당 후보를 도청한 사실이 드러났어도 오히려 불리해진 부산 후보를 밀어주어야 한다며 몰표를 주었던 동네였으니. 그런 것을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번에도 부산은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결론은 언론이 아니었으면 의사들까지 다 박살났을 것이란 것이다. 기자새끼들은 그냥 기자새끼들이다. 쓰레기란 말도 쓰레기에게 미안하다. 똥버러지도 세상을 위해 도움이 되는 존재다. 해악덩어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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