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서울역 노숙자가 와서 최신형 노트북을 팔려 한다. 당연히 의심해 봐야 한다. 그럴 능력이 안되어 보이는데 상당한 가치의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면 충분히 의심부터 해봐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들여서는 심지어 보증서까지 위조해 다른 사람에 팔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과연 장물인 걸 모르고 샀으니 자신들도 단지 피해자일 뿐이라는 주장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지난 대선을 기억한다. 선거운동 막바지에 녹취록을 들고 나와 국민의당 인사들이 어떤 식으로 미디어등을 통해 흘리고 있었는가를. 지금도 당시 국민의당에서 내놓은 성명등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기정사실을 만들기 위해 자신들이 여러 경로로 확인했노라 주장하고 있었다. 복수의 증인에게 확인을 거친 명백한 사실로 검찰조사가 시작되면 문재인에게 치명타가 될 것이라 강조하기도 했었다. 실제 당시 녹취록에 대해 그와 같은 검증을 거쳤다면 지금과 같은 당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을까?


언론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더 나쁜 놈들이 이놈들이다. 사실확인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파슨스에 다녔던 실제 문준용씨의 동문들을 찾아가 확인했다면 당시 이미 녹취록에 대한 진위여부를 언론이 먼저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국민의당이 주장하는 것들은 아무 검증없이 있는 그대로 마치 사실처럼 받아쓰며 보도하고 있었다. 검찰조사가 나오고 나니 그제서야 몰랐다는 듯 호들갑을 떨어대며 국민의당을 비판한다. 아니 그 와중에도 국민의당과 안철수는 어떻게든 구해내려 벌써부터 수작들을 부리고 있다. 언론이 버릇을 잘못들였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한겨레, 경향, 오마이, 뉴스룸 등 신뢰도 높은 진보언론들마저 그에 동참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들은 무슨 짓을 해도, 심지어 광화문 광장에서 똥을 싸고 스트리킹을 해도 언론이 지켜줄 것이다.


참 어이가 없다. 자신들이 말한 그것들을 직접 실천에 옮겼어야 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최초로 녹취록을 받아든 것이 5월 3일이었다고 하니 시간적으로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다. 공당으로서, 그리고 언론으로서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했다. 아주 최소한의 사실확인조차 않은 채 그저 자기들에 유리한 내용을 공개하기에 급급했다. 그 과정에서 허위와 과장까지 섞이고 있었다. 바로 자신들이 한 것이었다.


민주당은 공격을 그만두라.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붓고 있다. 누구를 향한 것이었던가. 어디를 향한 것이었던가. 누가 피해자인가. 자기들은 피해자다. 모르고 당한 그저 피해자일 뿐이다. 장물인 줄 모르고 샀을 뿐이다. 일개 개인이라면 확인할 수단도 경로도 마땅치 않으니 그럴 수 있다 하겠다.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5%에 지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었다. 솔직히 바보라 생각했었다. 반성하는 중이다. 웃기지도 않는다.

신고

사실 사드문제를 미국과 중국 어느쪽의 입장도 거스르지 않으면서 원만히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하나다. 그래서 중국이 저리 지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핵을 동결시킨다. 최소한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전향적으로 나서도록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협력해서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더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객위주다. 오히려 사드를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만드는 지렛대로 삼는다.


문재인 정부가 사드에 대해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를 강조하며 최대한 시간을 끌려 하는 이유다. 빠르면 1년, 길게 봐서 2년 안에 북한 핵문제 해결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다면 사드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더이상 북한의 핵무기를 막기 위한 수단이 필요없을 뿐더러 북한의 전향적 태도에 대해 내주는 선물로도 유용하다. 그리고 북한핵문제의 해결은 여러 구설수로 곤란을 겪고 있는 트럼프에게 확실한 업적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정인 특보의 발언이나 북한과 대화를 강조하면서도 미국과의 공조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는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미국과의 공조에 실패하여 북한핵문제 해결에 동력을 잃어서는 안된다.


즉 당장은 직접적인 대화나 협상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물밑에서 끊임없이 북한과 중국에 제안하고 설득을 시도하게 된다. 그런 것은 실무선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대통령은 단지 가이드를 설정하는 역할에 머물 뿐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대통령이 임한다면 실무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결과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남은 것은 중국의 태도변화인데, 한국정부 혼자라면 어쩌지 못하겠지만 미국과 일본이 함께 여론을 만들면 중국이라고 지금처럼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 다행히 트럼프는 러시아의 푸틴과도 사이가 좋다. 자칫 북한 핵문제 해결을 빌미로 대중국포위망이 만들어질 상황이다. 문재인이 위안부협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하면서도 결정적으로 일본정부를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중국을 적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는 나라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한국정부에 요구하기 위해서는 중국정부도 어느 정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사드배치와 관련해서 법으로 정해진 절차를 철저히 밟는 것도 그를 위한 명분쌓기다. 한국정부는 그럼에도 중국정부를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보답을 받기 위해서는 행동에 나서야만 한다. 한국 혼자가 아니다. 동맹자인 미국과 함께다.


아마 그같은 메시지가 전해졌기에 전에없이 미국 정가에서도 문재인을 극진히 예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다르게 문재인 정부의 한미동맹은 명확한 전략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 질서에서 한국정부는 항상 미국과 이해를 함께하며 미국의 동맹자로서 존재할 것이다. 굳이 한미일동맹을 위해 한국정부를 희생시킬 필요 없이 한국정부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맹방 가운데 하나다. 그것이 외교라는 것이다. 항상 공짜는 없다.

신고

이보다 더 확실한 동맹의 증거는 없다. 당장 자신이 미군의 희생과 도움으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다. 직접 당시 연관된 전투의 기념비를 찾아가 헌화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대한민국과 미국은 67년 전 피로 맺어진 사이다. 한미동맹을 가지고 국내에서 그동안 왈가봘부한 것이 무색해지는 장면이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느곳이든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야 어떻든 공동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산과 안위를 내던진 이들에 대한 감사를 당연하게 여긴다. 어쩌면 그동안 미국사회조차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과거 자신들이 세계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어떤 일들을 해왔었는가를. 그때 많은 미군들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숨걸고 싸운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그 가운데 대한민국 대통령도 나오게 되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그 사람이 돌아와 미국에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그들의 정의로움을 일깨우고 있다. 그래서 아직 많은 세계인들이 위대한 미국과 미국인을 존경하고 있다.


동맹이라고 항상 모든 사안에 대해 동의하기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입장과 이해가 맞을 수는 없다. 서로 오해가 있고 갈등이 빚어져도 굳은 신뢰로 그것을 헤쳐가는 것이 바로 혈맹이라는 것이다. 아마 문재인 대통령은 그것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른다. 미국과 대한민국의 동맹은 피로 맺어진 역사 위에 영원한 동반자로 가는 과정 위에 있다. 동맹은 과거이며 그리고 미래다. 현재는 그 과정이다. 당장은 불편하고 어색한 부분이 있어도 그 사실 자체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증거삼아 미국인들을 설득한다. 대한민국과 미국은 피로써 이어진 운명이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이었다. 가장 먼저 찾아서 헌화도 하고 식수도 했다. 참전용사와의 시간도 가졌다.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에게 미국은 어떤 의미인가.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미국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러니 의심하지 마라. 불만은 갖더라도 자신들을 불신하지는 말라. 대한민국에서 그랬듯 미국인들의 심장을 겨눈다. 진심이 가장 확실한 책략이다. 직진이야 말로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타고난 전략가인 것인가. 대단하다.

신고

사실 지난 대선에서 4월 말쯤 되면 이미 문재인의 당선은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더 정확히 가장 유력한 경쟁자였던 안철수의 낙선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4월 초의 유치원 발언과 이은 4월 23일 TV토론회에서의 'MB아바타'발언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가 되고 있었다. 아무리 앞으로 5년간 이 나라의 국정을 책임질 국가원수를 뽑는 선거인데 부패한 것은 참아도 무능하고 멍청한 것은 못참는다. 하물며 유치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과연 5월 5일 선거를 앞두고 급히 문재인 아들과 관련한 녹취록을 조작해서 발표해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모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얼마의 표를 얻는가가 문제지 다음 대통령은 당연히 문재인이다. 홍준표든 안철수든 유승민이든 심상정이든 어차피 낙선한 것 얼마의 표를 얻는가가 관심사일 뿐이었다. 설사 지금 단계에서 실명도 밝히지 않은 녹취록을 공개한다고 이미 굳혀진 표의 흐름이 한순간에 뒤바뀔 리는 없다. 가능성은 셋 중 하나다. 진짜 녹취록을 조작해서 당선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거나,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당선되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거나, 마지막으로 어차피 떨어질 것 문재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큰 상처를 입히려 한 것이거나. 마지막은 호남계를 의심할 수 있다. 문재인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히면 설사 선거에서 지더라도 호남에서 자신들의 지분은 어떻게든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나머지 두 가지다.


아예 정치를 모른다. 아니면 알더라도 반드시 당선되어야 하는 동기가 있었다. 지금 단계에서 용의자로 지목된 이유미씨의 카톡내역을 보더라도 녹취록 조작이 안철수의 당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하기까지 한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 즉 이유미나 이준서 같은 정치에 막 발을 딛인 신인들이 뭣모르고 가담한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하다못해 기초의원 배지 한 번 달아본 적 없는 정치신인들의 그같은 공작을 노회한 당의 지도부가 아예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부화뇌동해서 따르고 있었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국민의당의 노회한 정치인들마저 믿어야 했거나 혹은 믿는 척 해야 했던 어떤 이유를 찾지 않을 수 없다. 마침 이유미와 이준서에게 지시할 수 있는 인물이면서 위의 두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인물이 한 사람 있었다. 남들 다 안된다 말해도 혼자서 된다고 무작정 밀어붙여 당이 따르게 만들 한 사람이다. 누구이겠는가?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차라리 경악스러울 정도로 어이없는 사건이었다. 수단도 조잡하고 졸렬해서 그래도 40석이나 차지한 원내 제 3당에서 저지른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 그래도 정치밥 먹은 세월이 얼마인데 이런 뻔히 속이 보이는 수작을 벌이고 있었겠는가. 마찬가지로 문준용씨를 물고늘어지던 바른정당의 하태경 의원의 방식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 확연히 드러난다. 지시를 했더라도 정치를 잘 아는 사람은 아니다. 아주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어설픈 의도로 벌인 사건이다. 국민의당 지도부에서 그럴 수 있는 것은 그래서 단 한 사람 뿐이다. 지난 대선에서 모두를 놀라게 하고 당황케 만든 상당히 독특한 선거포스터를 기억한다. 심지어 포스터를 기획한 사람조차 자기의 작품이 아니라 말했었다.


물론 단순한 추론일 뿐이다. 사실일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고 바로 활동을 재개하며 다음 선거를 노리고 있었다. 원래 자기에게로 왔어야 할 표가 홍준표 때문에 문재인에게로 갔을 거라면서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자기가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역시 단 한 사람이었다. 판세가 그런데도 자신만큼은 선거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당내 인사들의 조언마저 거부하고 있었다. 정황이 증거가 된다면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당의 논리에 따른다면. 흥미롭다. 지켜본다.

신고

전에도 썼었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한다. 설사 집안살림만 하는 전업주부라 할지라도 결혼한 이후 가사노동을 통해 바깥일하는 남편을 도왔기에 남편의 재산과 지위에 대한 상당한 지분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서 이혼재판에서도 결혼이후 증식된 재산에 대해서는 아내가 거의 절반을 자신의 기여분으로 받아가기도 한다. 그러면 한 남자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아내의 역할과 지분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역시 많은 사람들이 문재인의 자서전이나 혹은 미디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옛날이야기를 보면서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었다. 나라면 저렇게 못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여사가 진짜 생불이거나 아니면 그만큼 문재인을 사랑해서 져 준 것이다. 힘들게 공연 마치고 온 사람에게 잔심부름이나 시키고, 사소한 사치조차도 못하게 단도리를 치면서, 공직에 있다고 하다못해 백화점 쇼핑마저 못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런 요구에 완벽하다 할 정도로 충실히 따라준 것도 바로 김정숙 여사였다. 김정숙 여사가 그렇게 안에서 돕지 않았다면 정치인 문재인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활달하고 사근사근한 성격으로 주위에 인기가 좋았던 점도 지난 대선에서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매주 호남을 찾아 주로 문재인 비토층인 노인들과 만나며 호남의 민심을 돌리는 첨병에 있었다. 문재인 당시 후보와의 여느집 부부와 다르지 않은, 그러면서도 드물게 다정한 모습이 세간에 화제가 되며 사람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당장 취임 초 아직 청와대로 이사하기 전 찾아온 민원인과의 훈훈한 에피소드는 정권에 대한 기대까지 높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김정숙 여사를 단순히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으로만 호칭해야 하겠는가.


오히려 여성을 독립된 인격으로 이해하고 부부관계에서 아내의 역할과 기여를 더 적극적으로 인정한다면 대통령과 상관없이 김정숙 여사를 영부인으로 불러야 마땅한 것이다. 영부인이란 영어의 퍼스트레이디와 마찬가지로 가장 높은 대표여성을 뜻하는 말이다. 안에서 내조로써 남편의 대통령 당선을 도왔으니 그만큼의 역할과 지분을 인정해서 그에 어울리는 신분을 부여한다. 실제 대부분 영부인들은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는 역할을 맡기도 했었다. 국제외교에 동반해서 여성들만의 창구를 통해 소통하기도 하고, 국내정치에 있어서도 대통령이 직접 챙기기 어렵거나 성격에 맞지 않는 행사를 직접 주도하기도 한다. 이번 청와대 앞길 개방행사에서도 김정숙 여사는 직접 시민들과 소통하며 어쩌면 사소할 수 있는 중대한 행사의 의미를 드높였었다. 그냥 남자의 아내라서가 아니다. 그만한 자격이 있다 여기기에 그런 역할도 맡기는 것이다.


영부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따라 정권의 명운이 갈리기도 한다. 이명박 때는 그나마 언론이 모두 정부 편이라서 살 수 있었다. 만일 민주정부에서 과거 육영수나 이순자와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면 그건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필적할 대단한 사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이고 그렇기 때문에 충분한 예우가 필요한 자리다. 권위주의 정부의 유산이 아니라 그만한 책임과 역할이 주어진 자리에 대한 예우이기도 한 것이다. 그나마 정부에서 권위주의에 대한 경계로 영부인도 아닌 여사라 불러달라는 것이 그렇게까지 꺼려야 할 일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진보언론이다. 여성의 인권과 권리를 보다 강하게 주장하던 언론들일 터다. 하지만 대통령의 부인은 단지 남편의 아내일 뿐이다. 남편 문재인에 딸린 부속일 뿐이다. 차라리 앞으로 후보자인 남편이나 아내만이 아닌 그 배우자까지 충분히 염두에 두고 투표하라 주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만의 후보도 대통령도 정권도 아니다. 오기인가, 아니면 나름의 신념인가. 과연 올바른 이념인가. 궁금할 뿐이다.

신고

아마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느낌일 것이다. 놀라움도 없었다. 분노도 없었다. 어차피 밝혀질 당연한 사실이 사실로 밝혀진 것 뿐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국민의당이 인용한 문준용씨 동료의 인터뷰는 사실과 거리가 멀었다. 혹시라도 그것을 믿은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뇌에 결함이 있는가 확인해 볼 것을 권해 본다. 다만 그럼에도 한숨부터 나온 것인 사실이 밝혀진 상황에서도 기껏 몇 사람을 희생양으로 빠져나가려는 그 졸렬함이다.


바로 얼마전까지 민주당의 중진들이었다. 호남에 기반을 둔 민주당의 실세들이었다. 대부분 그들이 지도부를 이루고 새누리당과의 정치적 협상과 경쟁을 주도해 왔었다. 이거야 말로 무게추 주렁주렁달고 출전하는 경주마 꼬라지다. 무게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출발점 한참 뒤에 쇠사슬로 묶어두기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 했으면 원래 민주당의 역량이 꽤 대단했었다고 봐야 옳지 않을까? 이런 뻔한 수작을 부리고 들키니까 그보다 더 뻔한 수작으로 빠져나가려 하면서도 여론이 속아줄 것이라 믿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언론을 믿고 있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과는 다르다. 자기들은 한겨레, 오마이, 경향 등 진보언론들로부터도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다. 누구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혹은 보도하더라도 지나치게 크게 보도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민주당 시절의 전략은 어차피 언론은 자기들 편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지금의 전략은 어차피 언론은 자기들 편이라는 것이다. 국민을 보고 하는 정치가 아니다. 대단하신 양반들이라 그래도 급이 되는 사람들의 눈치만 살피며 정치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안철수는 몰랐겠는가? 그래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몰랐다면 멍청이고 알았다면 사악한 것이다. 멍청한 것을 택할 것인가? 사악한 것을 택할 것인가? 정치인에게 사악하다는 것은 그리 나쁜 수식어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멍청하다는 딱지가 한 번 붙으면 더이상 높이 올라가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어쩌면 안철수를 겨냥한 호남계의 역습이었을지도. 하필 걸려든 모두가 안철수의 측근들이었다.


막걸리 한 병 꺼내놓고 돼지고기 삶아서 먹으며 여유롭게 구경할 각이다. 어떻게 수습할까? 어떻게 결론이 내려질까? 어느쪽이든 안철수는 정치적으로 사망, 국민의당은 와해다. 다른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적지 않음을 안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한 발 물러나 있던 천정배, 정동영, 김한길 등등등... 원래 그렇게 망했던 정당이었으니까. 과거의 민주당이. 아주 재미있어졌다. 어떤 예능 드라마보다도 재미있다. 그냥 일어날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신고

이를테면 어느 여자에게 한 눈에 반한 남자가 있다. 그래서 바로 뒤쫓아가서 여자에게 제안한다.


"잠시 저와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러자 여자가 대답한다.


"먼저 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만들면 그때 대화를 나누도록 하죠."


뭔 뜻일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면 그때는 대화할 수도 있다. 그러면 굳이 대화할 필요가 없다.


핵개발을 포기하면 대화하겠다. 군비를 줄이면 대화하겠다. 통일하고 나서 그때 대화에 나서겠다. 대화가 무슨 소용인가 말이다.


어찌되었거나 개인이든 단체든 국가든 대화라는 것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오해를 풀고 더 깊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대화를 통해서 맺힌 것이 있으면 풀고 걸리는 것이 있으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화를 하기 위해 먼저 걸림돌이 되는 문제부터 해결할 것이 아니라 말이다.


물론 북한이 한국에 약점이 잡혀서 대화에 목매야 하는 상황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어떻게 해서든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한국과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배짱을 한 번 배짱을 튕길 만도 하다. 아쉬운 건 북한이지 우리가 아니다. 그러므로 조건도 세게 붙인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로 북핵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지지부진 끌게 되면 누구에게 더 큰 손해인가.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이유는 당장 자기들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다고 미국에 직접 위해를 가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그러니까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하고 싶으면 한국이 먼저 대화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대화를 통해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듣고 한국정부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조건이면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할 수 있는가. 만에 하나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한다면 한국정부는 어디까지 북한을 압박할 수 있는가.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든 군사적인 위협이든 그같은 대화를 전제로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만일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바를 따른다면 당장의 위협이나 곤란함을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아예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그같은 대화를 할 창구를 닫고 기회마저 차단한다. 핵개발을 할 때까지 북한과 대화는 없다. 그래서 지금껏 어떻게 되었는가 말이다.


외교는 감정이 아니다. 국가전략은 오로지 좋고 싫고의 개인적 감정이 아닌 냉철한 이성과 철저한 계산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싫은 놈이라도 필요하면 대화를 한다. 당장 전쟁을 하게 될 - 아니 심지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대화창구는 열려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아예 끝장을 볼 것인가. 적당한 수준에서 서로 타협하고 이쯤에서 멈출 것인가. 수많은 목숨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수천만의 운명이 바로 그 한 번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무거워야 한다. 신중해야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싫고 믿을 수 없는 놈이라도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북한에 대해 아주 강경하게 압박하고 있는 와중에도 미국 역시 북한과의 대화 자체는 이어오고 있었다. 아주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가능성이라는 것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한다. 국가의 의무이고 책임이기도 하다.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다. 북한이 잘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못하고 있다. 잘못하고 있으니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북한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대로 북한을 내버려두는 것은 당장 한국 국민들의 일상에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북한을 대화에 나서도록 유도하고 대화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겠다. 북한이 밉다고 핵개발을 포기하라는 말 한 마디와 함께 대화 자체를 단절한 지난 9년은 그 교훈이다. 아무것도 못하고 어느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북한핵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명박이 독도에서 일본국왕의 사과를 요구했던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아예 위안부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일본과 대화를 않겠다며 버티다가 졸속으로 협정을 맺었던 박근혜도 떠올리게 된다. 모두가 감정으로 외교를 하다가 빚어진 참사였었다. 위안부문제는 해결해야겠지만 그와 별개로 일본과의 우호관계는 계속 이어가겠다. 일본과 과거사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그와 별개로 양국의 협력관계는 훼손치 않겠다. 그 전 정부들의 인관된 기조였다. 그리고 현정부가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위안부협상은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일단 일본과의 관계는 개선하겠다. 두 가지를 연계하지 않겠다. 어쨌거나 일본은 한국에 있어서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잘해서 대화를 하려는 것이다. 북한이 믿을만해서 대화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핵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어떻게든 대화의 물고부터 열어야 한다. 그동안 단절된 관계를 하루아침에 모두 복원하기는 절대 무리다. 북한이 나쁘다는 것은 따라서 전혀 이유가 되지 못한다. 북한이 모든 것이 좋고 아무 문제도 없다면 대화 자체도 그리 절박하지 않다.


하기는 그래서 그냥 일반 시민들이다. 국가적인 단위에서 외교라는 것을 이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개인의 감정이 곧 국가의 감정이다. 그동안 보수정권들이 이용해 온 것들이다.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며. 때로 국민의 요구와 별개로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지금이다.

신고

선진국들이 갈수록 환경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들은 이미 그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무역장벽이다. 기술이 없으면 자기들 것을 사서라도 지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자기들에게 물건을 팔지 못할 것이다.


아주 오래전 인간들은 오로지 폭력으로 다른 인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추상적인 사고가 가능해지면서 권위라는 것에 기대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이었고 그다음에는 권력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해졌을 때 인간은 정의라는 것을 찾아내게 되었다. 이를테면 조선의 사대부들이 강조하던 삼강오륜같은 것들이다. 송익필에서 시작된 예학 역시 그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고 있었다. 부르주아들이 하층계급과 자신들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삼았던 것도 상식과 교양, 도덕이었다. 정의는 따라서 전략이다.


어차피 그들은 지킬 수 없을 테지만 그러나 자신은 그것을 얼마든지 지킬 수 있다. 그럴 수 있게끔 고도로 교육받고 훈련받으며 그 번거로움을 감당할 수 있는 수단이 자신에게는 있었다. 그러니까 농민이 사대부들처럼 글도 배우고 책도 읽으려 하면 농사짓느라 시간을 뺐기지 않아도 될 만큼의 재산이 필요한 것이다. 고된 노동으로 심신이 지친 노동자에게 부르주아처럼 그림과 음악을 즐기고 독서를 즐긴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이었는가. 


국가단위에도 그것은 적용된다. 필요할 때는 민주화정부를 뒤엎는 쿠데타를 지원했다가 다시 필요해지면 독재정권이라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압박하기도 한다. 말 잘듣는 독재자는 우방이지만 말 안 듣는 독재자는 단순한 살인자일 뿐이다. 어제까지 서방의 친구였다가 오늘은 갑자기 테러지원국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정의라나 그런 점에서 정당하게 자신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보다 요긴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그 정의를 결정하는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한 발 앞선 만큼 한 발 앞서서 무엇이 옳은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미 환경은 화두가 되었다. 화력이나 수력은 환경파괴가 심하고, 원자력은 너무 위험하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앞으로의 세계트렌드는 재생에너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생산비용입이 비싸다고는 하지만 그만한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선진국들에게는 있다. 무엇보다 한 발 앞서 연구를 시작한 만큼 더 값싸게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상당수 확보한 상태다. 재생에너지가 대세가 되면 당장 확보한 기술들을 다른 나라들에 본전에 마진까지 붙여서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다. 이후 세계의 에너지시장을 주도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이 괜히 국책사업으로 재생에너지에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쏟아붓는 것이 아니다. 한 발 앞서 나가야 뒤쳐지지 않고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


국가적인 의미에서 탈원전은 그저 원자력이 싫다는 일차원적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원자력은 위험하므로 원자력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 그러면 그 다음은? 재생에너지가 당장 비싸다지만 결국 언젠가 대세가 된다면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국제사회에서 경쟁에 동참할 수 있다. 일방적인 수용자가 아니라 생산자로서 뒤떨어지지 않고 흐름에 편승할 수 있다. 지금도 사실 늦다. 중국마저 우리보다 벌써 한참 앞서가고 있는 중이다. 지난 9년 동안 정부에서 손놓고 있는 사이 중국은 벌써 기술적으로 우리를 저만치 추월한 상태다. 그런데 이대로 손놓고만 있을 것인가.


전기요금이 얼마나 더 비싸지고. 하지만 선진국들이 그렇게 결정한 순간 그것은 이미 당위가 되고 있다. 새로운 정의가 되고 있다. 언제까지 선진국이 지나간 길을 찌꺼기나 주워먹으며 쫓아갈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이 사회 보수의 수준이라는 것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단기간에 결과가 나오는 연구가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그저 돈만 잡아먹는 연구일 가능성이 높다. 기업이 투자해서 이루기에는 현실적으로 제약이 너무 많다. 국가가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원전이 아닌 우리의 미래다. 미래의 당위다.

신고

사기업은 물론 하다못해 과학생회만 해도 '상식적 추측'에 근거해서 운영했다가는 말아먹기 딱 좋다. 말아먹지 않더라도 반드시 문제가 불거진다. 괜히 체계를 갖춘 거의 대부분의 집단이나 단체에서 문서를 통한 공식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다른데 그 상식대로 추측해서 일을 추진할 경우 책임은 누가 지는가.


그러니까 박근혜 정부가 그모양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바른정당도 자유한국당의 아류라는 것이고. 하긴 기껏 바른정당에 기대를 걸기 시작한 새로운 지지자보다 원래의 자유한국당 지지자를 바라본 정치가 그들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상식에 근거해서, 언론에 보도되었으니, 일반적인 지식으로 유추해서 정치를 하니 나라가 그모양일 밖에. 저런 놈들에게 다시 정권을 맡긴다. 그 머릿속을 한 번 들여다 보고 싶다.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닌 자기들의 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고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렇게 정치한다. 이런 식으로 정치해왔고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정치할 것이다. 그러니까 야당으로서 작심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논리 수준이 이 모양이다. 어이없는 것은 그나마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이나 국민의당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나아 보인다는 것. 국민이 문제인 것이다. 저런 것들에 표를 줬으니. 어이가 없다. 

신고

한국사람들이, 아니 대부분의 국가에서 구성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직군을 꼽으라면 거의 첫손에 꼽히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국회의원들. 하물며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이 압승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바로 박근혜의 국정농단이었는데 당시 지금 야당인 여당의 정치인들과 언론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국민들이 벌써 다 알고 있다. 그런데 그놈들이 겨우 뽑은 대통령 흔들겠다고 저리 어깃장을 놓고 있다. 과연 국민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의도대로 문재인과 여당을 비토하게 될까?


오히려 지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높은 지지율은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야당의 무책임하고 악랄한 정부흔들기에 대한 반동의 의미도 작지 않다. 저 놈들 원하는대로는 못해주겠다. 저놈들 저러는 꼬라지 보고 있으니 더 지지해줘야겠다. 민주당이 지금 감을 못잡고 있는 모양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높은 지지는 야당놈들 도저히 용서 못하겠다는 국민의 경고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고 쉽게 양보하고 가려는 태도는 국민을 기망하는 것이다. 그러라고 정권 주고 여당 만들어준 줄 아는가.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여당이 되어서 아예 알려고도 안했고, 알 주제도 못되었고, 알면서도 감추었던 야당들이다. 자유한국당은 모든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탄핵에 반대햇던 정당이기까지 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언론들이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에 진실을 밝히는데 가세하기는 했지만 그 전에 박근혜 정부의 문제들에 있어 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가. 박근혜가 요구한 메뉴얼 이상의 어떤 질문도 않고 비판도 않았던 것은 한겨레와 경향도 마찬가지였었다. 진보언론의 청와대출입기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국정농단의 최소 공범이거나 방조자들이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새로운 정부를 좌초시키려 힘을 모으고 있다. 그러면 이제는 국민이 힘을 모아 저들을 응징해야 한다. 응징하기 전에 경고한다. 너희들 그러지 마라. 그러다 크게 다친다. 아직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원래 저들의 바닥인 셈이다. 문재인 정부가 잘해서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너무나 뻔뻔하게 저열한 바닥을 드러내는 그들로 인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그 다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잘하고 있다. 물론 나는 좋다. 자살도 권리다. 권리를 존중한다. 웃긴다.

신고

+ Recent post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