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여기서도 몇 번 이야기했던 것 같다. 무려 20세기 말이었다. IMF가 일어나기도 전이었다. 당시 하이텔 게시판에서 여러 사람이랑 키배뜨며 전화요금 깨나 바치고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는 사람을 만났었다. 대충 직업은 의사였고, 개신교 신자였으며, 진보적 성향을 가진 여성주의자이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사람이 했던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일본의 지배가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진보도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헛소리인 줄 알았더니 나중에 이른바 자칭 진보들 상당수가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을 보고 꽤나 놀랐던 적이 있었다. 

 

원래 여성주의의 뿌리는 일제강점기 말 제자들까지 정신대로 내몰았던 김활란이었다. 이기붕의 마누라였던 박마리아도 여성주의자로 유명했었다. 여성주의자들이 위안부문제에 있어 일본에 책임을 묻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일 것이다. 종군위안부는 남성의 문제이고, 더구나 조선인 부역자들도 상당수 관여하고 있었기에 일본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민족문제가 아닌 여성문제로 다루어야 한다. 일본을 배제하고 가해자인 남성과 피해자인 여성만 보아야 한다. 여성주의자들이 이영훈의 주장에 적극 동의하며 여러 게시판에서 키배를 벌였던 이유였다. 그리고 그러한 여성주의의 경향은 주로 유력한 집안의 여성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YWCA등 군사독재시절 여성주의로까지 이어진다.

 

군사독재시절이라고 여성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가진 것 많고 정작 할 일은 없는 유력자 집안의 여성들이 남성의 비호를 받으며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기도 했었다. 전반적인 여성의 인권은 지금보다 낮았지만 배경이 배경인지라 여성주의자들의 활동 자체는 지금보다 훨씬 나았었다. 돈도 잘 나왔고 당국과도 협조가 잘 되었고 더구나 대부분 사회문제들은 자신들과 크게 관계가 없었다. 지금도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정작 사회적인 약자인 여성노동자들의 일상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계약직 노동자를 해고케 할 수 있는 것이나, 지휘부를 움직여서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는 같은 여성 공무원을 징계토록 시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여성주의란 자신들과 같은 자격이 있는 이들을 위한 것이지 그렇지 못한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평범한 일반 남성들이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것조차 저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당시 여러 게시판에서 여성주의에 우호적인 의견을 내거나 하면 가장 적대적으로 달려드는 것이 바로 그들 여성주의자들이었다. 여성주의는 당신들 남성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어째서 항상 기득권 남성들에 대해서는 그토록 아양을 떨어대는 것일까?

 

아무튼 한국 여성주의의 뿌리가 그렇다 보니 군사독재에 대해서도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한없이 관대하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보다 그때를 더 좋아하는 여성주의자들도 없지는 않다. 물론 반대편에서 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여성주의자들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 김대중 전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총리까지 지냈었던 한명숙 전 민주당 대표였다. 하지만 결국 박원순이 당했던 취급이나 정의당이 민주화 역사와 단절을 선언한 예에서 알 수 있듯 여성주의의 주류는 이미 그쪽으로 정리된 지 오래라는 것이다. 민주화세대인 4050은 한겨레를 아예 읽지도 말라는 것이 저들이 선택한 단호함이었다. 그런 여성주의자들이 보기에 1212 쿠데타를 다룬 영화라는 것이 어떤 의미로 여겨지겠는가.

 

군사독재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든 그와 상관없이 군사정권과 유착해서 보다 수월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여성활동가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무소불위의 권력을 등에 업고 더 큰 대우를 받으며 활동할 수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그에 비하면 민주화 이후 여성주의란 얼마나 성가시고 번거로운 것인가. 때때로 여성주의자들에게서 보게 되는 반민주적이고 친독재적인 성향도 그런 영향인 것이다. 단순히 여성이라서 박근혜를 지지한 것이 아닌 박정희의 딸이라는 것도 여성주의자들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을 것이란 뜻이다. 그런 점에서 1212에 비판적인 영화는 반여성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아니 실제로 반여성적인 영화로 규정되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아 그런 평론가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었다. 하지만 의외로 전혀 새롭게 여겨지지 않는 주장이었다. 박정희가 있었기에 대한민국 진보도 있었다. 대한민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필연이었다. 실제 자칭 진보들로부터 들었던 주장이었다. 역사발전론에 입각해 대한민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라도 박정희의 군사독재는 필요했다. 그에 비하면 민주화 이후 민주화운동을 했던 이들이 정작 대한민국 사회의 진보를 얼마나 왜곡해 왔는가.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 있었으면 일본인들과 똑같이 더 나은 환경에서 더 나는 삶을 살았을 것이란 어느 자칭 진보의 한탄과도 닿아 있다. 당시의 현실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범죄자일 뿐이었다.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좋은 것은 여성주의를 위해 좋은 것이다. 더 나은 보편적 가치를 위해서가 아닌 여성주의 자체를 위한 것이다. 대부분 여성주의자는 기득권이다. 기득권일 수밖에 없다. 당장 여성주의의 온상이라 할 만한 학교부터 그런 기득권들을 위한 곳이란 인상이었다. 그런 여성주의가 진보까지 먹어 버렸다. 자칭 진보가 윤석열 정부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다. 오히려 어떻게든 지지할 이유를 찾느라 바쁘다. 그냥 당연한 현실이다. 아무렇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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