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시합을 한다. 상대가 발이 빠르다. 발을 묶는다. 팔이 길다. 팔을 자른다. 주먹이 세다. 글러브에 스폰지를 더 두껍게 댄다. 위빙이나 더킹을 잘해서 주먹이 맞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링사이드에 묶어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발이 느리고, 팔도 짧고, 주먹도 약하고, 몸놀림도 둔한 선수가 공정하게 자기보다 더 강한 선수를 이길 수 있도록 하는 룰이다. 그래서 과연 그런 시합을 공정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말장난이다. 공정이란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합리적이고 납득할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을 거쳤는가. 시합을 하는 이유는 누가 선수로서 더 뛰어난가를 알기 위해서다. 권투선수로서 누가 더 실력이 뛰어나고 더 강한가. 그런데 약자가 강자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강자의 손발을 묶고 일방적으로 불리한 룰을 적용한다. 그것을 같아졌으니 이제 공정해졌다 말한다.


어찌되었든 대표선수를 뽑는 대회다. 본선으로 가면 이쪽의 사정따위 전혀 아랑곳않는 그야말고 진검승부가 펼쳐질 터다. 이길 수 있는 선수를 선발해야 한다. 그런데 공정을 기하자고 약한 선수도 이길 수 있도록 룰을 바꾸자 말한다. 압도적으로 강한 상대가 약한 상대에게 질 수 있도록 공정한 룰을 만들지 한다. 그래야 재미있을 거라고. 재미를 위해 대표선수를 선발하는가.


전부 말장난에 속고 있다. 만일 학교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똑같이 성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가산점을 주거나 패널티를 주어야 한다 주장한다 가정해보자. 그래야 공부 못하는 아이들도 의욕을 가질 테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보다 긴정할 것이다. 그래서 공부못하는 아이가 각종 패널티와 가산점에 힘입어 공부잘하는 아이보다 점수와 등수에서 앞선다면 그것을 공정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당원이든 어쨌든 너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후보가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다. 당내에서 더 많은 당원의 지지를 얻는 쪽이 당의 대표로서 적합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그보다 지지가 약하다면 약한 후보인 것이다. 강한 후보를 내보내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착각한다. 아무렇게나 해도 후보만 되면 모두가 자기를 지지할 것이다. 정동영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가장 혐오스런 방식으로 경쟁 자체를 훼손하려 한다.


도대체 특정 후보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마저 트집잡는다. 더 많은 열성지지자를 가지고 있어 그들의 활동에 자신들이 위축되는 것마저 핑계삼는다. 그러면 자기들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는가. 그만한 지지자를 스스로 모아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다른 후보를 공격하고 자신을 보호케 한다. 이재명이 실제 그러고 있다. 단지 의도했음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못하는 것이 지금 그들의 실력이고 능력이다.


하여튼 똑같은 것들이다. 항상 반복이었다. 너희들은 우리를 어쩌지 못하지만 우리는 언제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벌써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분열은 막아야 한다. 이탈은 막아야 한다. 그것을 볼모잡고 저들은 항상 저렇게 멋대로 해왔었다. 지지자마저 돌아보지 않는다. 오히려 지지자를 탓하곤 한다. 그들의 뿌리가 어디인지 새삼 확인한다. 썩은 뿌리가 쓸데없이 깊고 넓다. 한심하다.

  1. Playing 2017.01.22 16:50 신고

    이어지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저는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 어떤 논의들이 진행되었고 현재 어디까지 결론이 나왔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써주신 글들만 보고 판단을 내림을 이해해주세요

    결론적으로 조금 다르게 봅니다
    무언가 현재 잘하고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더 잘할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인지는 사람마다 다를테죠
    그 사람이 결국 원하는 목표를 이룰지 다들 꿈꾸겠으나 그곳에 가는 길이 어떤게 좋은지는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평가를 위한 항목을 만드는데... 이때는 서로간의 가치관과 사고력이나 풍부한 경험의 차이로 인해 다른 항목을 요구할수 있습니다
    문제는 특정 숫자로 무언가를 판단내린다는 게 굉장히 어리석을 가능성이 높기만 합니다

    아무튼 10만이 1000만을 넘어 목표에 도달하도록 만들어야죠. 그러기 위하여 당원들의 뜻을 새겨듣고 깊이 이해하고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려는 노력이야 말로 이 과정에서 얻을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을 숫자로 판단내리기 위해 항목을 정하는 건 어쩌면 영원히 고민거리 같고, 그것을 공정이나 평등이나 기타 단어로 표현하는 것보다 멈출수 없어서 계속 앞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라고 보고 다시 논의하면 어떨까 싶네요

    아무튼 정말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가적으로 아주 중요한 담론 같아요. 부디 언론들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이런 이야기들을 심도있고 입체적으로 고찰할수 있는 자료들과 실제 토론의 자리들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충 하고 넘어갈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보고 앞으로도 수없이 반복될꺼 같기에 역사적인 과제라고 보네요

사실 유권자가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이나 정치적 이념을 위해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당원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은 불과 얼마전까지 한국사회에서 매우 낯선 일이었다.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의 지지자로서가 아니라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이기를 강요당하고 있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함부로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서도 안되었다. 그런데 하물며 당원가입이라니.


그래서 훨씬 전부터 진성당원을 중심으로 당을 꾸려왔던 소수 진보정당을 제외하고 거대정당 가운데 당원이란 단지 구색만 갖추는 수준으로 머무는 경우가 적지 않았었다. 당헌당규에도 명문화되어 있고 이것저것 구체적인 내용들도 있었지만 정작 그것을 알고 당원으로 가입해서 활동하는 유권자의 수는 매우 적었다. 어차피 소수 유력정치인들에 의해 이합집산하며 멋대로 만들어졌다 사라지고는 하던 정당이었다. 당원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요구하는가 전혀 관심도 없이 소수의 유력정치인들이 그러자 하면 그렇게 결정되고 행동에 옮겨지는 것이었다. 그런 정당에서 당원이란 결국 소수 유력정치인들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 무언가를 하려 할 때 명분으로 앞세울 숫자 그 이상이 아니었다. 그런 당원을 과연 누가 바랐을까.


아무래도 민주주의의 역사가 일천했던 때문이었다. 유권자 스스로가 정치의 주체라는 자각도 없었고, 정치의 주체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배운 바도 없었다. 그저 타자로서 비평가가 되거나 아니면 방관자가 되어 일방적으로 정치와 정치인들을 지켜보며 판단하려 할 뿐이었다. 정치를 바꿔야겠다. 정치를 다시 유권자에게로 돌려주어야겠다. 처음 새천년민주당을 깨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만들 때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이른바 천신정이라 불리우던 소장파들이 앞세운 명분도 그것이었다. 유권자 스스로 당의 주인인 당원이 되어 당을 이끌어갈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 진성당원이란 그를 위한 화두였다. 일정한 절차를 거치고 정해진 당비를 납부한 권리당원에 대해 당의 대소사를 묻고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 그리고 그 다음 열린우리당이 어떻게 되었는가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지금도 내가 유시민을 개새끼라 욕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깟 열린우리당을 위해서 천 년을 가는 정당을 만들어보자는 말만 믿고 가입했던 개혁신당의 동지들을 팔아넘기고 있었다.


당원의 숫자도 충분하고 당원으로 가입하고 권리당원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진다면야 당연히 당원에게 모든 것을 묻는 것이 옳다. 열린우리당 이전에 새천년민주당도 최소한 형식을 그렇게 갖추고자 했었다. 오히려 그런 점에서는 한나라당이 새천년민주당보다 앞서는 부분도 있었다. 소수의 유력정치인이 아닌 당비를 내는 당원들이 당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과연 현실이 그러했는가. 어차피 정당의 당원이 되는 자체가 일반인들에게 희귀한 일이던 시절에 당원가입까지 할 정도면 상당히 적극적인 동기나 목적이 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대개는 누군가의 조직이었다. 실명이면 그나마 나았고 심지어 차명으로 종이당원만을 만들어저 자신의 조직으로 활용한 정치인이 적지 않았었다. 과거 정당에서 선거를 앞두고 경선을 해도 그 결과가 전혀 공정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당비마저 조직을 거느린 정치인이 대신 내주기도 했었다. 오죽하면 그런 정치인들의 부담을 키워 조직의 규모를 제약하기 위해 당비를 더 높게 정해야 한다 주장하고 있었을까. 박스떼기가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에 의해 뚝 떨어지듯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이전부터 꾸준히 해오던 짓들을 조금 더 규모있게 노골적으로 저지르다가 상대편에 들통난 바보같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어째서 과거에는 권리당원이 아닌 국민경선이었는가. 그러니까 과거에도 권리당원이란 지금의 권리당원과 같은 존재였는가. 특히 당시 1야당의 권리당원은 호남에 지나치도록 편중되어 있었는데 1야당에 대한 호남의 지지가 절대적이었던 것도 한 이유였지만 결국 대부분은 호남에 기반을 둔 특정정치인들의 개인사조직으로 관리되어 온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선을 해도 자신들이 만들고 관리하는 조직을 이용해서 당원의 결정이라는 명분으로 안전하게 공천을 받고 확실하게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권리당원들에 당의 요직이든 후보의 선택이든 마음놓고 맡길 수 있었겠는가. 다시 한 번 열린우리당을 처음 만들 때 내세웠던 명분만 정동영이 당권을 쥐고 지켜주었다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었다는 것이다. 당은 여전히 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받고 있는 가운데 이미 있는 권리당원마저 소수 정치인의 사조직이나 다름없으니 후보를 결정한다해도 지지자조차 반드시 그들에 투표할지 자신할 수 없었다. 정동영이 그 대표적인 예 아니던가. 심지어 정통야당의 지지자들마저 정동영에게 투표하기를 포기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소한 지지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도 당 밖에 여부를 묻지 않으면 안된다.


당원이 10만이 넘었다. 정체도 알 수 없는 종이당원이 아닌 자발적으로 본인인증까지 마치고 당비까지 낸 말 그대로 진성당원들이다. 침묵하는 다수가 아니라 시끄러운 다수다. 저마다 요구도 다르고 이해도 다르다. 지향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다. 하지만 민주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의 정치인들을 지지한다. 잘하는 정치인들에게는 한도가 넘도록 후원금을 입금하기도 한다. 내 정당이다. 내 정치인이다. 더구나 한창 당이 흔들리며 쪼개지려는 상황에 당을 지키겠다 모여든 당원들이었다. 당에 대한 동기나 요인이 이전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이 높다. 대 손으로 내 당의 대표와 내 당의 대통령후보를 뽑겠다. 그런데도 지금에 와서도 당원이 아닌 국민인가.


국민이라고 별다를까. 국민 가운데 지지자가 있고, 지지자 가운데 당원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문재인이다. 국민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문재인이다. 그래서 배심원제니 뭐니 이상한 소리들을 한다. 모바일도 못믿겠다면서 당원을 불신하며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당원을 배제하고 문재인에 유리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배제하고. 권투시합을 하려는데 상대의 주먹이 세니 팔을 묶고, 발이 빠르니 발을 묶고, 맷집이 좋으니 일부러 몸에 멍까지 내고. 그러고도 공정한 경선이라 말한다.


지지율이 높고 본선에서 승리가능한 후보가 선택되는 것이 바로 공정한 경선이다. 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을 충실히 실현할 수 있고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후보가 당원과 지지자에 의해 선택되는 것이 바로 제대로 된 공정한 경선인 것이다. 약자와 강자를 인위적으로 맞추는 것이 아닌. 평등은 경쟁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라는 자체가 평등과 배치되는 개념이다. 평등한데 어떻게 경쟁이 되는가. 공정한 경쟁을 하는 것이 어떻게 평등을 전제해야만 하는가. 그럴 것이면 지지율이 높든 낮든 사이좋게 손잡고 모두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옳다.


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수도 없이 좌절하고 실망하면서 몇 번이나 포기한 끝에 겨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10만의 진성당원이 당을 지탱한다. 당을 지키겠다고 모인 10만의 당원이 당의 모든 중요한 일들을 결정한다. 아직도 부족하다. 100만, 200만, 지지자는 모두 당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이다. 당원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당원이란 과연 정당에서 어떤 존재인가.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달라진 시계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려 한다. 2017년 대한민국의 내일을 결정할 대통령후보로 나서겠다는 이들이다.


정말 괘씸하다. 국민의 간절한 바람을 본다. 지지자들의 필사적인 열망을 본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어느때보다 높다. 민주당의 대선후보로만 선출될 수 있으면 광화문에서 똥을 싸도 문제없이 대통령까지 될 수 있다. 진짜 입으로 똥을 싸고 있다. 원래부터 반대하는 입장이기는 했었다. 특히 특정인의 경우 정동영의 지지자이기도 했었다. 정동영이 열린우리당시절 당원들을 어떻게 대했었는가.


오로지 진성당원으로만 경선하자는 말은 않는다. 말했듯 아직 당원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적어도 100만은 넘어야 당원의 뜻이 지지자의 뜻이고 유권자의 뜻이라 여겨도 크게 무리가 없다. 하지만 당을 지키겠다 모여든 당의 주인들이다. 그 당이 요구하고 명령하고 있다. 내가 내 당의 후보를 뽑겠다. 누가 당의 주인인가. 당은 누구에 의해 존재하고 누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 한심한 것이다. 아직도 갈 길은 멀기만 하다. 

사실 그렇게 길게 쓸 것도 없는 것이, 한 눈에도 문재인과 이들 기타 후보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전혀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가. 한 마디로 오로지 대통령 하나만 바라보고 국민과 눈을 맞추려 애쓰고 있는 문재인에 비해 국민은 아랑곳없이 짝사랑하듯 문재인만 바라보고 있다.


하긴 이 또한 이명박이 남긴 모순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명박에 의해 길들여진 개가 되어 버린 언론들은 하나같이 여당인 새누리당에 우호적이고 야당인 민주당에는 적대적이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여권에 가장 위협이 될 수 있는 친노 정치인에 대해서는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그같은 의도를 충족하기 위해 야당정치인들마저 이용한다. 친노를 비판하면 언론에서 상당히 비중있게 자신의 모습을 내보일 수 있다.


지금 국민의당이 빠진 함정이 바로 그것이다. 정치인은 부고기사 빼고 어떤 식으로든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것이 좋다. 하물며 상당히 영향력있는 공중파와 종편의 프로그램에 패널로 초대되어 집중적으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인지도를 높이는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려면 아무래도 방송국의 요구대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발언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마침 친노를 불편하게 여기고 싫어하기도 해서 서로 입장이 맞기는 했지만 다른 발언은 아예 언론에서 다루어주지도 않는다. 무조건 친노와 문재인 이야기만 해야 한다.


아무래도 친노를 욕하고 문재인을 비난해야 언론에서 크게 다뤄주고 하니 그에 맛들리고 만다. 마치 문재인을 직접 겨냥해 공격하는 동안 자기가 그와 동급이 된 듯한 착각마저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정작 자신의 눈은 종편을, 그리고 종편을 나가 비난하는 사이 문재인과 친노에만 고정되고 만다. 언론에서도 일부러 그렇게 구도를 짠다. 언론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입이지 그들의 정치적 야심이나 이상 같은 것이 아니다.


문재인을 욕하지 않으면 아예 언론에서 다루어주지도 않는다. 문재인을 욕해야지만 그나마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준다. 언론의 눈치를 보느라 정작 자신에게 표를 줄 유권자는 무시한다.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어떤 말들을 듣고 싶어하는가 신경쓸만한 여유가 없다. 그리고 그런 발언들에 아예 철저히 대응하지 않으며 한 발 한 발 대권을 향해 나가는 문재인만이 대중과 눈높이를 같이 하고 있다. 대중이 듣고 싶은 말, 알고 싶은 사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 다른 후보들에게는 단지 문재인만 있을 뿐이었다.


밴드웨건이라기보다는 그냥 거대여당과 소수여당의 구도와 비슷하다 할 수 있다. 2012년 대선에서 보였던 정치인으로서 문재인의 미숙함은 이제는 그를 비판하는 이들에 의해 벌써 대통령이 된 것 같은 안정감으로 바뀌고 만다. 모두가 문재인이 대세라 말하는 사이 마치 기정사실처럼 문재인이 아닌 경우 자체가 리스크로 여겨지게 된다. 문재인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문재인이 대통령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대비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을 것이라 말하는 자체가 불안요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문재인에 반대하면서 그들이 정작 대통령이 되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


물론 아주 없지는 않다. 의외로 제법 많다. 다만 정작 후보자들 자신들이 이용하려는 언론 자체가 그런 것들을 보도할 생가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언론을 이용해 자기를 알리려 한 대가로 언론에 의해 자신의 주장을 철저히 편집당한다. 문재인만 바라본다. 문재인만을 목적으로 한다. 대중들의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그렇다. 저들의 목적은 문재인을 떨어뜨리는 것이고, 저들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전략 역시 문재인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이다. 정작 후보자 자신의 진실은 어디에도 없다. 관심도 없고 필요도 없다. 무한의 악순환이다.


지지하고 싶어도 후보자 자신이 그곳에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된 이후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어야 한다. 유권자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러주었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민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 국민을 바라보며 국민을 향하고 있어야 한다. 내가 여기 있다고. 남을 비난하는 말이 아닌 자신을 긍정하는 말로써. 문재인을 비토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선택하게끔 한다. 너무 쉬운 길을 가려 했다.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 언론을 이용했고 언론에 이용당한다. 문재인만이 오로지 대통령을 바라고 한 걸음씩 묵묵헤 떼놓고 있다.


문재인을 비토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을 지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지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도 지지하지 않는다면 결국 결과는 같다. 내가 그곳에 있다. 유권자가 바라보는 곳에 그들이 원하는 자신이 있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다. 아무튼.

사실 삼국지만이 아니다. 중국은 물론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이른바 난세라 불리우는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는 너무 가까워도 안되고, 둘째 너무 멀어서도 안되며, 셋째 미친 척 해서도 안되고, 넷째 결국 남는 것은 명분이라는 것이다. 한 마디로 너무 가까우면 초반부터 집중공격을 받을 테고, 너무 멀면 다가가느라 지칠 테고, 미치면 주위로부터 외면당하며, 결국 정통성을 확인하는 것은 명분이라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부터 중심에서 자리잡고 시작하면야 인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더구나 명분에 있어서도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할 수 있다. 동탁이 그랬다. 처음 낙양으로 들어갔을 때 동탁이 거느린 사병이라고 해봐야 고작 3천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낙양에 입성해서 황제까지 확보함으로써 낙양에 주둔하고 있던 한왕조의 중앙군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었다. 원래는 집금오인 정원이 대장군 하진의 명을 받아 장악하고 있던 중앙군이 여포의 배신으로 인해 동탁에게 넘어갔고 이후 호로관에서 17로 제후군과 대등하게 싸우는 밑천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초반에 치고 나간 탓에 바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니, 무엇보다 아직 한왕실의 권위가 완전히 추락하지 않았고 각지의 제후들 역시 완전히 독립하기 전이었다는 것이 원인이 되었다. 당장 동탁을 몰아내면 누구라도 황제를 옆에 끼고 동탁이 그랬던 것처럼 천하를 호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너도나도 동탁을 적대하게끔 만든 것이었다. 결국 17로 제후군이 와해되고 다수의 제후들 역시 동탁의 우위를 인정하게 되기는 했지만 그 대가는 낙양을 버리고 장안으로 천도하는 스스로 가진 명분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명분을 잃었으니 그 빈틈을 노리고 동탁을 제거하려 시도하는 이가 나타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수순이었던 것이다. 정상은 비정상을 배제함으로써 바로선다.


동탁이 너무 가까워서 문제였다면 원소는 너무 멀어서 문제였다. 차라리 처음 원소가 계획한대로 유우를 황제로 옹립했다면 하북에도 장안과 별개의 또다른 황제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허도의 조조를 통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황제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하며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제는 조조의 수중에 있었고 명분 역시 최소한 겉으로는 황제를 떠받들고 있는 조조에게 있었다. 세력에서 압도하고 있었음에도 관도대전에서 원소가 가지고 있던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약점이었다. 물론 역사에 만일은 없다. 형주의 유표나 양주의 손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손권의 휘하에서 한을 대신하는 새로운 왕조를 꿈꾼 이는 노숙 정도가 유일했을 정도로 그들은 이미 천하를 둔 쟁패에서 훨씬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면 조조는 어땠을까. 첫째 조조가 황제를 맞아들였을 때는 이미 천하에 제후들의 할거기 시작된 이후였다. 한왕실의 권위가 떨어지며 제후들도 자기일 챙기기에 더 바빴고, 어느 정도 제후들의 세력도 정리되면서 위협이 될만한 세력들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동탁과 달리 굳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 명분을 해치는 행위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은 탓도 컸다. 최소한 황제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황제의 이름으로 제후들을 상대한 것은 조조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조차 그를 함부로 여기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조조를 적대하는 것은 바로 한의 황제를 적대하는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조조가 저지른 사소한 명분상의 잘못들마저 놓치지 않고 그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도 존재했다. 바로 유비였다. 바로 이 유비로 인해 조조는 생전에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황제즉위마저 아들인 조비대에서야 이루어지고 만다. 아무것도 없는 유비가 조조의 천하통일을 좌절시킨 것이었다.


바로 미쳐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동탁이 끝내 부하인 여포에게 살해당한 것은 스스로 천하의 중심을 차지하고서 명분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제왕조에서 충이라는 명분을 지키지 못하고, 위정자로서 백성을 위한다는 명분을 지키지 못했으며, 심지어 주변부에 속하는 인물로써 주류지배층과도 크게 반목하고 있었다. 동탁의 편이라고 해봐야 자신의 근거지인 서량출신의 인사들이 전부였는데 아무리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 힘만으로 누르고 지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동탁의 무력은 이들 서량출신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그 틈을 비집고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람들을 스스로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조조가 끝내 천하통일에 실패하고 만 것도 결국 명분을 잃어서였다. 서주에서의 학살은 연주에서 자신을 지지하던 장막과 진궁 등의 이반을 불러왔다. 고작 한 줌도 안되는 유비의 세력이 조조와 겨룰 만큼 커질 수 있었던 것도 조조에 반발하는 지식인과 백성들이 조조와 적대하는 유비에게로 모여든 것이 가장 컸었다. 그저 조조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만으로도 조조가 한 가지 명분을 잃을 때마다 유비에게는 한 가지씩 명분이 쌓였고 그 결과가 적벽과 한중에서의 패배이고 촉한의 성립이었다. 물론 유비 역시 관우가 죽고 황제의 폐위와 조비의 즉위에도 불구하고 관우의 복수를 하겠다며 군사를 일으키며 스스로 명분을 잃었던 탓에 백제성에서 회한어린 삶을 마쳐야만 했었다. 


사실 역사상 난세를 통일한 당사자들이 정작 치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바로 몰락하고 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난세를 통일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다 보니 명분을 잃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잃은 명분은 약점이 되어 누군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이 되어 버린다. 끝까지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자기 자리를 지키고 천하를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을 이뤄낸 두 사람이 바로 송을 건국한 조광윤이고 명을 건국한 주원장이다. 난세를 통일했으면서도 바로 안정적인 치세로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명분상에 약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2012년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이 바로 대선패배의 책임을 지고 뒤로 물러나 칩거하다시피 침묵하며 지냈던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다. 정작 야권의 유력대선주자로서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하며 야권의 중심으로 떠오른 안철수가 여러 실책들을 보이며 상처입고 있을 때 문재인은 떠밀리듯 주변으로 밀려나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그리고 딱 적당한 2015년 안철수가 물러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로 출마하면서 적절한 때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이때도 문재인을 정면으로 조준한 수많은 정치적 공세들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모두 버텨낸 것이 지금의 문재인을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새정연이라는 제 1야당의 정통 위에 당의 혁신과 인재의 수혈이라는 명분을 더함으로써 민주당이라는 중원은 확실히 문재인의 영역이 되었다. 더구나 박근혜로 인해 야권마저 지리멸렬함으로써 사실상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조조와 같은 위치가 되었다.


다만 불안요인이라면 그 과정에서 문재인이 저지른 실책이나 명분의 문제를 비집고 그를 공격할 소수세력일 텐데, 그런 점에서 또 문재인에게 다행인 것은 그런 소수세력들 치고 당을 끼고 문재인을 공격한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문재인에게 민주당이 명분이라면 그들 역시 민주당을 명분삼아 문재인을 공격했어야 하는데 - 그런 점에서 안희정은 무척 영리하다. 민주당이라는 당과 문재인이라는 정치인 사이의 괴리를 비집고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히 효율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쟁자들은 오히려 당과 문재인을 싸잡아 공격함으로써, 아니 나아가 당원과 지지자들마저 안중에 두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지지자들로부터 유리시키는 어리석은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유비를 본받으라는 말이다. 노무현이 2002년 경선에서 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차근차근 명분을 잃지 않으면서 중심에 다가가는 정석적인 행보 때문이었다. 경선을 하자면서 당을 배제하고, 당원을 배제하고, 지지자를 배제한다. 지지자를 폭도 테러리스트로 폄하한다. 문재인의 명분은 더 강해진다.


아무튼 확실히 지금 시점에서 야권의 대선주자 가운데 가장 전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은 그런 점에서 안희정 한 사람 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 멀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문재인의 아류가 되어서도 안되지만 너무 척을 지는 것도 곤란하다. 민주당이라는 명분을 지키면서도 자기만의 자리를 확고히 지킨다. 문재인 다음은 나다. 문재인이 아니면 나다. 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급한 마음에 문재인 지지자들과 척을 지며 미친 짓을 하는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어차피 문재인 지지자들도 경선에서 승리하면 자기에게 표를 주어야 할 유권자들이다.


덧붙여 반기문을 이야기하라면 딱 사세삼공의 명문을 배경삼아 황제노릇하던 원술을 떠올리게 한다. 원소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무것도 없다. 타고난 혈통 탓에 모두가 떠받들어 조상의 유산으로 혼자서 황제인 양 떠들 뿐이다. 아직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아직 실제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이미지 뿐이다. 그나마도 겉껍데기다. 난세는 그런 어설픔 껍질따위 한순간에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결국 알몸의 자신만으로 승부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준비가 되어있을까. 그나마 원술은 원래 자기 세력부터 상당했었다. 아직 그정도도 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만 본다. 바로 앞에 이익만을 본다. 내가 잃은 손해만을 생각한다. 어떻게든 바로 만회하려 무리수를 둔다. 정작 지켜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불리할 때 사람의 바닥이 드러난다. 그릇의 한계를 내보이게 된다. 이제 남은 것은 문재인이 얼마나 실수할 것인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를 것인가. 그나마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삼국지도 후반에 가면 참 재미없어진다. 제갈량이라도 나와야 하려는지. 어쨌거나.

진짜 아예 듣보잡이면 문재인 쯤 되는 거물을 상대로 자기 인지도 올리려는 수작이 제법 효과가 있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거나 문재인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그와 같은 수준에서 놀려 하고 있다. 최소한 문재인을 정면으로 겨냥하며 비판할 정도의 깜냥은 된다. 문제는 박원순의 급은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머리이자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서울특별시의 시장이다. 그것도 재선시장이다. 재작년, 그리고 작년 초 높은 지지율로 야권의 최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인지도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대중이 아직 박원순이라는 사람을 몰라서 지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알만한 사람은 거의 알고 야권의 많은 유권자들이 한 번 쯤 지지를 선택하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지지가 바닥을 치는 이유, 그럼에도 아쉬운 것이 있기 때문에.


서울시장으로서 행정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정치철학과 구상을 보여주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장으로서 박원순이 구체적으로 그리는 그림은 무엇인가. 서울특별시를 어떤 식으로 바꾸어가려 하는 것인가. 그런 점에서 퀴어축제를 앞두고 종교단체에 굴복하여 소수성애자들에 대한 입장을 바꾼 것은 치명적이었다. 이 사람은 대선밖에 없다. 대선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말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더 큰 것을 목표로 삼았어야 한다. 문재인 따위가 아닌 더 큰 것을 목표로 그를 향해 칼을 휘둘렀어야 한다. 벌써 여러번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박원순 시장은 섣부른 판단으로 그 기회를 날려버리고 있었다. 대중과 척을 지는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중보다 반 걸음 앞에서 대중을 바르게 이끌겠다는 자신감과 포부를 드러낸다. 박원순이 목표로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국민을 책임지고 5년 동안, 개헌이 되면 어쩌면 4년 동안 이끌어야 하는 자리다. 그래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은 오로지 묵묵히 대선만을 바라보고 한 걸음씩 걸음을 떼놓고 있다.


대통령이 되어서 무엇을 하려는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엇을 바꾸려는가. 지금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하는 것인가. 그 답을 듣지 못했으니 지지율이 빠지는 것이다. 열심히 지지하고, 지지하면서 박원순에 대해 알아가고, 그리고 실망해서 돌아선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문재인 목을 베어 그 앞에 나타나면 사람들이 다시 자신을 지지해줄까?


아젠다를 제시해야 한다. 이 사회를 관통하는 화두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서울특별시의 시장으로서 재직하며 실제 실천했던 연장에 있어야 한다. 좋은 정책들도 많았다. 성공도 했지만 실패도 있었다. 그 가운데 과연 이 사회의 미래와 직결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재명이 어째서 아직도 박원순과 다르게 높은 지지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성남시에서 이재명이 보여준 행동들이 대선후보로서 이재명이 추구하는 미래이며 비전이다. 사실 지금도 아주 늦지는 않았다. 다만 그럴 수 있는 무엇이 박원순에게 남아있는가가 문제일 뿐.


한 마디로 급에 맞게 놀라는 말이다. 자기의 급이 어느 정도 되는가 알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가 그냥 대나무쪼가리 남아돌아서 덧붙인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어디 있고 상대가 어디쯤 있는가 알면 그에 맞게 적절한 전략을 만들고 실제 행동에 옮길 수 있다.


차기를 기약하는 것도 애매해지는 이유다. 처음부터 몰랐던 것보다 알았는데 잊혀진 처지가 더 서러울 수 있다. 어차피 이름이 들려봐야 아, 누구 하는 정도로 끝나고 만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없기에 행동은 무도하다. 가엾기조차 하다.

이를테면 오래전 어느 커뮤니티에서 글쓰며 놀고 있을 때였다. 나름 넴드였는데 꽤 공들인 글이 그날따라 최악의 조회수에 리플도 하나 없는 황당한 경우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솔직히 공황이 오더라. 왜지? 뭐지? 혹시 몰라 지우고 다시 올리고, 괜히 홍보글도 쓰고... 결론은 못쓴 글이다. 반성했다.


내가 지금에 와서 조회수나 방문자수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 이유다. 리플접대도 않고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냥 나는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은 찾아와 내 글을 읽는다. 읽을만 하면 읽고 리플 달고 싶으면 단다. 그건 그들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그것으로 끝이다. 선을 긋는다. 그러고 나니 확실히 편해진다. 대신 글쟁이치고 싸가지가 없어진다.


하다못해 인터넷에서 글질하는 것도 이렇다. 평균방문자수 5천이 넘어가던 블로그가 방문자수 200언저리로 떨어졌을 때 아, 망했구나. 하지만 그래도 깨달음이 있었기에 그러거니. 어차피 블로그로 먹고 사는 것도 아니다. 한때 유력한 대선주자였다. 지지율 20%를 넘나들며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남은 지지율이 겨우 한 줌도 채 되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을 유력한 대선주자로 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가만 돌아보면 박원순 시장은 실패란 거의 없이 성공한 삶을 살았던 경우다. 인권변호사로 시민사회단체를 이끌며 비주류의 삶을 살았던 것은 자신의 선택이지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다지 돈과도 권력과도 상관없는 삶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그는 가장 주목받는 위치에서 모두를 이끌고 있었다. 그리고 서울시장. 서울시장으로 당선된 초반에도 승승장구하며 말했던 것처럼 유력한 대선주자로 한때 문재인마저 넘어서고 있었다. 처음 겪는 실패이고 좌절이다. 자기보다 한참 아래 있던 사람들에게조차 추월당하고 자기 사람이라 여겼던 사람들에게도 버림받는다. 과연 자기 사람이었는가는 차치하고라도.


뭔가를 해야 한다. 아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해서라도 자신의 실패를 되돌려야 한다. 자신의 좌절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자기의 탓이 아니다. 자기의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일까.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 기다린다는 선택지도 있다. 묵묵히 기다리며 다음을 기약한다. 하지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미련이 그마저 하지 못하게 만든다. 안달하며 조급해진다.


너무 배고파서 양잿물인지 똥물인지 가리지 못하는 상황이라 보면 된다. 그것이 자기에게 유리할지 분리할지도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지르고 덤비고 발버둥치고 그래도 안되면 다시 지르고 덤비고 발버둥친다. 전형적인 한 번의 실패로 스스로 무너져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다. 그것이 나락이라는 것도 모른다. 영영 다시 올라갈 길을 잃고 만다. 그러고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실패가 인간의 바닥을 드러낸다. 성공도 인간의 바닥을 드러낸다. 성공하고 오만하지 않기가 쉽지 않고, 실패하고도 좌절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 좌절하고 체념만 하면 차라리 나은데 섣부른 발버둥이 그나마 있던 것들마저 모두 잃게 만든다.


과연 박원순 시장에게 다음이 있을까. 이재명은 그나마 어느 정도 선을 지켜서 이쯤에서 멈추면 다음을 약속할 수 있다. 하지만 선을 너무 넘어 버렸다. 당원들 뿐만 아니라 중립적인 유권자가 보기에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것이 진짜 자신이다. 서글프기도 하다.

  1. 2017.01.11 16:06

    비밀댓글입니다

이를테면 올림픽을 앞두고 복싱 국가대표 선발전 경기가 열리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한쪽에서는 헤비급 선수 하나가 다른 선수들을 그야말로 양민학살하며 결승전까지 모두 1분 안에 KO로 끝내고 있다. 그 옆 링에서는 라이트급에서 선수들이 매번 판정까지 가는 팽팽한 접전 끝에 아슬아슬하게 대표가 선발되고 있다. 복싱팬의 입장에서 둘 중 어느쪽에 더 관심이 가고 어느쪽 선수에 더 기대를 가지겠는가.


착각하는 것이다. 그냥 민주당 대통령후보 하나 뽑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굳이 국제대회를 앞두고 국가대표를 뽑는 것은 선수 개인에게 국가대표라는 명예를 안겨주기 위함이 아니다. 국가대표로 뽑히고 난 뒤에도 글서 국가대표선수들은 훈련소에서 합숙하며 보다 엄격하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아야만 한다.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다. 똑같이 자기의 나라를 대표해서 출전한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겨루어야 하는 것이다. 마땅히 겨루었으면 이겨야 한다. 우승까지 하게 되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그러기를 바라는 국가와 국민의 기대가 있다. 자체로도 개인의 영광이지만 국가와 국민을 대신하는 국가대표로서의 책임이기도 하다. 당연히 국가대표를 선발할 때는 대회에 나가서 이길 수 있는 선수를 우선해서 선발하는 것이 옳다.


마찬가지다. 이제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여 대선후보가 되면 장차 치러질 대선에 자기당의 대표로서 출마해야 한다. 상대당 후보와 겨루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정권을 가져와야 한다. 그를 위해 치르는 경선이다. 그러기 위해 당원과 지지자들 역시 어떻게든 대선에 나가 승리할 수 있는 후보를 고르려 눈에 불을 켜고 후보자들의 자질과 품성과 정책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당의 이름을 걸고 대선에 나가 승리하여 정권을 가져올 수 있겠다. 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정책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실질적 수단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후보가 결정되면 그때부터 당과 당원, 지지자들은 자기당의 후보가 승리할 수 있도록 모든 노력과 수단을 동원해 돕게 된다. 그렇다면 대선후보 경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어야 하겠는가.


다시 앞서 예로 든대로 올림픽대표 선발전에서 주최측이 특정 선수가 너무 강하니 이대로는 경기가 너무 재미없다며 일부러 그 선수에게 불리한 규정을 적용한다. 한계체중도 차이를 두고, 글로브도 다른 것을 쓰게 하고, 무엇보다 판정에서 포인트에 가산점을 준다. 약한 선수도 비등하게 싸울 수 있어야 경기가 재미가 있다. 일정부분 맞다. 그러나 결국 그렇게 선발된 대표선수가 국제대회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걸고 다른 나라 선수와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밖에서 열리는 국제대회에서 자기네 선수가 불리하다고 경기의 룰을 바꾸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래도 되는 위치에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테지만 당장 공정한 절차와 과정을 통해 선발된 다른 나라의 대표들과 겨뤄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렇게만 한다면 대회에 나가서 다른 나라 선수들을 이기고 우승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라면 쓸데없는 노력이고 수고다.


정작 대통령선가가 시작되고 상대당 후보가 자기당 후보에 대해 지지율도 더 높고 강하니 선거의 룰을 바꿔달라 요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자기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의 룰을 바꿀 수 있게 협력해달라 요청하면 과연 좋다고 들어주겠는가. 그런데 오로지 자기당 후보를 선발하는 경선에서만 약자를 위한 배려를 하겠다 말한다. 약자가 충분히 강자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도록 인위로 강제하겠다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만에 하나라도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경우가 나올 수 있도록. 그래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대통령후보가 되면 실제 선거에서 다른 당의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 것인가.


정동영에게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미련일지 모르겠다. 정동영은 실패했지만 자기는 성공할 수 있다. 정동영이 실패한 그 방법으로 자기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경선과정에서 보여준 정동영의 혐오스럽고 한심한 모습들이 많은 야권지지자로 하여금 그에게 투표하기를 포기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이명박의 집권을 막기는 막아야 하는데 그래도 도저히 정동영에게 표를 주고픈 마음까지 생기지는 않았다. 바로 자기당의 당원과 지지자들과 등돌리고 거리를 벌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부터 그런 식으로 후보가 결정되면 대선을 보이콧할 수 있다. 표를 주지 않은 유권자의 탓이 아니다. 표를 줄만한 후보를 내지 못한 민주당의 탓이다. 전적으로 민주당이 자격있는 후보를 내지 못한 잘못인 것이다.


하여튼 우습다. 고작 그런 깜냥들인 것이다. 대통령후보가 목표다. 대통령후보만 되면 끝난다. 그동안 도저히 민주당을 지지하지 못할 이유가 되었던 탈당파들이 하던 짓거리 그대로다. 정권은 뒷전이다. 총선의 승리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로지 한가지 당권이다. 당의 주도권이다. 그래서 당의 지지율이 폭락하고 유권자의 냉소만을 받아도 자기 손안에 국회의원 배지과 당권이 쥐어져 있으면 얼마든지 웃을 수 있다. 그러니 자기당 후보가 대통령선거에 나섰는데 싫다고 지지는 커녕 훼방이나 놓으며 다른 당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마저 보인다. 대통령이 목적이 아니다. 문재인을 꺾고 친문을 꺾고 그래서 제 1야당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목표다. 다행히 민주당 경선만 통과하면 잘하면 대통령도 거저 될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생각해보면 웃기기만 한 것도 아니다. 많은 종목에서 국가대표선발전을 치를 때마다 잡음이 일고는 하는 것부터 거의 동어반복인 셈이다. 실력은 안되는데 대표는 되고 싶고, 그래서 그런 부류들이 자격도 없는 선수를 대표로 삼아 국제대회에 내보낸다. 그리고 그런 경우 대부분 국제대회에서 어이없이 망신을 당하는 이유가 된다. 정당이 추구하는 정권교체라고 하는 목적조차 사유화하려 한다. 떨어져도 내가 떨어진다. 물론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룰마저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꿔야 한다.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떨어질 배짱조차 없다. 바로 그놈들의 정체다.


재미있으라고 하는 경선이 아니다. 반드시 경선의 흥행을 노려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도 아니다. 이미 다수의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민주당을 지켜보고 있으며 그것은 지지율로 반영되고 있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자기들끼리 즐기는 게임과 같다. 당원도 지지자도 전혀 상관없이 당이 추구해야 할 목적마저 잊고 만다. 바로 거기까지가 그들의 한계다. 눈앞의 먹이에 정신이 팔려 주위도 보지 못한다. 내가 한심하다. 창피하다.

네가 홈런을 못치는 것은 야구공을 테니스공으로 바꾸지 않아서가 아니다.


네가 100미터 달리기에서 지는 것은 트랙이 직선이어서가 아니다.


네가 복싱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링이 좁아서가 아니다.


네가 골을 넣지 못하는 것은 그래 골키퍼가 있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 그래봐야 네가 득점왕이 될 수는 없다.


경선에서 지는 것은 경선룰이 불공정해서가 아니다. 당원 가운데 문재인 지지자가 많은 것은 단지 문재인이 인기가 많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당원들에게 인기가 많으니 당원을 배제하자. 내가 타석에서 홈런을 치지 못하니 야구배트를 테니스라켓으로 바꾸자. 하지만 공식경기에 나가려면 야구공과 야구배트에 익숙해져야 한다. 연습경기에서 홈런친나고 뭐가 달라질까?


진짜 인간들이 작다. 그것도 대통령되겠다는 인간들이다. 도대체 저런 인간들이 대통령 되서 뭘 어쩌겠다는 것인지.


그냥 인간에 대한 환멸만 깊어진다. 이것이 그리 야권지지자들이 기뻐하던 야당의 대선후보군이다.


나무배트에 적응하지 못해 사라진 아마추어 스타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그릇을 평가한다.


지들 인기없는 걸 남탓하지 마라. 지들 못해서 인기없는 걸 룰을 탓하고 조건을 탓하고.


리더가 되겠다는 사람들이다. 한심하다.

사람들이 권력을 욕망하는 이유는 대략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라서. 다른 하나는 권력이 가장 요긴한 수단이라서. 이를테면 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욕망하던 권력을 손에 쥐자 정작 아무것도 않고 혼자서만 놀았더라는 어느 분의 경우일 것이다.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지 다른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그저 권력을 손에 넣은 김에 주위 사람들도 조금씩 챙겨주고... 그러나 아직도 자기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기는 오로지 선의로서 그런 것인데 그런 것들이 도대체 무슨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내가 대통령인데. 아, 들통났다.


권력의지란 결여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보다 크고 강한 무언가에 대한 추구로 나타나는 것이다. 때로 그것은 돈이 되기도 하고, 사회적인 명성이 되기도 하며,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권력을 향한 욕망으로 발전한다. 저것만 내가 가지면. 저것만 내 손에 쥘 수 있으면. 그러면 얼마든지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을 텐데. 얼마든지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마음껏 해낼 수 있을 텐데. 그래서 과연 권력을 손에 쥐고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그러나 결국 그 모든 것은 일단 권력을 손에 넣고 나서야 생각할 일인 것이다.


정당이란 무엇인가. 아니 정당만이 아니다. 당장 인터넷커뮤니티들만 둘러봐도 때때로 상당히 치열하게 주도권싸움이 벌어지곤 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과연 자신들의 이 커뮤니티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 것인가.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회원을 구성하며, 어떤 과정과 방식으로 유지하고 관리할 것인가. 회원마다 생각이 다르고 요구도 다 다르다. 그러면 한바탕 전쟁이 일어난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모두를 위한 최선인가. 그래서 치열한 싸움의 결과 어느 한 쪽이 승리하여 주도권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 커뮤니티는 그들이 주장한 바에 따라 바뀌기 시작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도저히 동의하지 못하겠으면 뛰쳐나가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다. 아주 흔하기 일어나는 일들이다.


정당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정치권력이다. 의회에서 보다 많은 의석을 확보하여 의결권을 가지고, 대선에서 자신들이 낸 후보가 당선케 함으로써 자신들이 주장한 정책들을 실제로 현실에서 추진한다. 그러자고 정치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재명도. 그리고 박원순도.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정치가 있다. 자기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정치가 있다. 그래서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고 국회의원으로 출마도 했다. 지자체장도 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은 성남시장이 되고 서울특별시장이 되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정치가 아닌 남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 자기가 해야만 하는 정치가 아니라 남이 해야만 하는 정치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분명 성남시 안에서도, 서울특별시의 공무원이나 여러 이해주체들 가운데도 이재명이나 박원순과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다수의 지지를 받아 시장이 되었으니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 패권주의인가.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몇 번이나 말했다. 민주주의는 전쟁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진다. 승자만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래서 승자가 되고자 한다. 자신과 다른 상대를 꺾고 그를 굴복시켜 승자로서 자기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고자 한다. 하지만 전쟁이란 너무 많은 것들을 죽이고 파괴하니까. 결국 전쟁까지 하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대신 힘을 가진 주체들이 모여서 서로의 힘을 겨루어 적당히 싸움이 있기 전에 대화로서 합의하려 한다. 다수결의 전통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전제군주가 나타나기 전부터 많은 사회에서 힘을 가진 이해주체들에 의한 대화와 합의, 그리고 다수결로서 의견을 모으고는 했었다. 그러면 그같은 합의의 과정에서 내가 의도한대로 결과가 나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그게 바로 정치다. 어떻게든 지지자를 끌어모으고 반대세력을 흩어놓아야 한다. 얼마나 많은 아군을 끌어모았는가가 바로 그가 가진 정치적 힘인 것이다.


총선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려 정당들이 노심초사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의회에서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해야 더 많은 법안들에 자신들의 요구와 입장을 반영할 수 있다. 그래서 대중들에 인지도높은 인사들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영입하고, 당선될 수 있도록 표를 줄 유권자를 상대로 공약을 앞세워 유세를 한다. 선거에서 어느 당이 더 많은 의석을 차지했는가는 어느 당이 더 국민의 눈높이와 요구에 맞췄는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한 것이다. 얼마나 더 유권자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는가. 그래서 더 많은 지지자를 모아서 그들로 하여금 투표하게 하면 그 정당은 의회에서 다수당이 되고 입법을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다. 물론 다수당이 되었다고 일방적으로 소수당을 무시해서야 안될 일이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다수당의 입장에 입법에 더 크게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한다. 문재인도 자기가 추구하는 정치가 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정치가 있다. 그래서 대선후보에도 출마했고, 당대표도 되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주위로 끌어들였었다. 노무현이 남긴 이른바 친노라는 인적유산만이 아니다. 스스로도 당내의 여러 계파에서, 그리고 당 밖의 여러 분야에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자기의 주위에 세우고 있었다. 대선후보 문재인에 대한 높은 지지는 그같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대중의 평가인 것이다. 한때 10%초반까지 떨어졌던 지지율이 지금은 거의 30%에 육박하려 한다. 어떤 이들이 지적하는 맹신적인 '빠'들이 아닌 충분히 비판하며 지지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늘어난 것이다. 총선에서도 열심이 대중들에 호소하여 다수당이 되었고 원내에서도 친문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했다면 그것은 누구의 공이겠는가. 당장 다수의 유권자와 당원들이 문재인의 노력과 그의 목적을 지지했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어차피 이재명도 민주당내에 지지하는 당원이 많고 자기를 따르는 정치인들이 많으면 그대로 자기 하고싶은대로 당이 운영되기를 바랄 것이다. 박원순이라고 당에서 자기 계파가 다수인데 다른 계파 눈치보며 해야 할 일도 못하는 상황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싫어서 안철수도 탈당해서 국민의당을 만들었다. 그것이 싫어서 국민의당으로 간 인사들은 이제 안철수를 밀어내고 당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것이 정치다. 그러지 못하는 것은 그럴 능력이 안된다는 뜻이다. 자신들의 능력부족을 누군가의 패권으로 몰아간다. 너무나 당연히 정치인으로서 추구해야 하는 일들을 자신들이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낙인을 씌우려 한다. 지지자가 문제다. 열성지지자가 문제다. 정치인이 지지자를 탓한다. 남의 지지자라고 정치인이 지지자를 탓하며 그들을 모욕한다. 어째서 그들은 자신들이 더 많은 더 적극적인 지지자를 끌어모을 생각을 하지 않는가. 않는 것이 아니다. 못하는 것이다.


자기 계파 정치인 끌어갔다 화를 낸다. 자기 계파 정치인이 그리고 갔다고 비난을 쏟아낸다. 한심한 것이다. 얼마나 못났으면 자기 사람이라 여겼는데 하루아침에 버리고 다른 사람을 따라갔겠는가. 그것이 정치인의 그릇이다. 원수마저도 자기를 따르게 만드는 것. 서로 칼을 겨누던 사이조차 자기의 그늘 아레 머물도록 만드는 것. 내가 문재인에 기대를 가지는 이유다. 노무현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김대중도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당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지는 못했었다. 정확히 채웠다기보다 끌어모았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자기 사람이 있다. 자기 세력이 있다. 대통령이 되어서도 주도적으로 정치를 끌어갈 힘을 이미 가지고 있다. 최소한 노무현처럼 혼자서 좌충우돌하다 주저앉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래도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치고 한심한 말버릇들일 것이다. 그냥 말버릇이다. 내용도 없고 당연히 평가할 가치도 없다. 패권이라니. 그러자고 정치를 한다. 의회에서 패권을 쥐려 총선을 치르고, 행정부에서 패권을 가지려 대선에서 이기려 한다. 당장 자신들이 대선후보로 선출되고자 당의 경선에 출마하려 하지 않는가. 자기가 못한다고 남을 끌어내리려는 것은 장삼이사필부필부들이나 하는 짓거리다. 적어도 이 나라를 이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라 여기는 이들이다. 자신은 물론 주위에서도. 너무 저질스러워 차마 말을 더하기도 부끄럽다. 대한민국 정치수준이 이정도인가 참혹하기만 하다.

사실 자본주의의 한계는 명확하다. 수요가 늘면 생산도 늘어난다. 생산이 늘고 상품이 많이 팔리면 자본의 이익이 축정되어 자본의 총량도 늘어난다. 자본이 늘어나면 당연히 생산에 투자되어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게 된다. 그런데 시장의 소비는 어느 순간이 되면 더이상 늘지 않게 된다.


10이라는 자원을 들여 20의 가치를 가진 상품을 생산했다. 중간유통과정을 거치며 상품은 30의 가치가 되어 소비자에게 팔렸다. 원래 10의 가치이던 자원이 생산자와 중간유통과정을 거치며 소비자로부터 30이라는 돈을 지불하도록 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어디선가 이 돈을 벌어와야만 한다. 당연히 그 돈은 생산자와 유통자의 소비에서 나오게 된다. 원자재를 사들이고, 노동자를 고용하고, 혹은 개인의 소비를 위해 돈을 쓰는 과정에서 소비자가 지출한 돈은 다시 소비자에게로 돌아온다. 문제는 그것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려면 생산자의 잔고는 항상 0에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들이 사업을 통해 막대한 돈을 벌어 은행에 쌓아둔다. 그 돈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시장에 유통되는 돈이 아니다. 생산주체들에게 돌아가는 돈이 아니다. 그냥 쌓여 있는 돈들이다. 그만큼의 돈이 빠져나가 쌓이고 있는데 어떻게 시장에서는 계속 돈이 융통되고 있을까.


실제 전근대사회에서는 화폐의 부족으로 인한 전황이 꽤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역대 많은 왕들과 조정의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기까지 조선사회에서 화폐가 제대로 유통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 유통되는 화폐의 가치보다 구리의 가치가 더 컸던 탓에 그냥 돈을 녹여 구리로 쓰는 것이 더 나은 경우마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구리광산이 개발되고 어느 정도 구리가 확보된 뒤로도 여전한 구리의 부족으로 인해 일부 부자들이 돈을 쌓아두는 것만으로도 시장에 유통되는 돈은 턱없이 부족해지기 일쑤였다. 원래 상거래를 통해 유통될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화폐가 어느 곳에서 멈춰버리고 나면 경제 전반에 가해지는 타격이 상당하다. 중국에서도 실제 상거래에 필요한 은보다 유통되는 은이 부족해지며 상당한 문제가 발생했었고, 유럽에서는 아예 신대륙을 발견하기 직전 화폐유통 자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래서 미국이 막대한 무역 및 재정적자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미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인 달러의 유통을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지는 신용의 가치가 달러라는 화폐의 가치를 보증해준다. 그 신용을 바탕으로 미국은 막대한 달러를 찍어내며 시장에 유통시킨다. 그리고 그 만큼 미국은 달러를 팔고 세계의 상품들을 미국에서 소비해야 한다. 만일 세계최대의 소비시장인 미국에서 더이상 소비를 하지 않게 되면 세계의 경제는 경색되기 시작한다. 미국이 세계의 기업들로부터 상품을 사들이지 않으면 아마 적잖은 기업이 도산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세계 여러나라에서 일부러 재정을 동원해가며 미국의 채권을 사들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채권을 사들이는 만큼 미국은 재정을 소비하고 재정의 소비는 시장의 수요로 이어진다. 얼마든지 돈을 찍어내도 미국이라는 확실한 시장이 있는 이상 세계경제는 문제없다. 세계경제의 위기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중국이라는 대안이 나타나기는 했지만 결국 미국조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생산이 늘어난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다.


생산이 늘어난 만큼 소비도 늘어야 한다. 자본의 이익이 늘어난 만큼 소비할 수 있는 수입 역시 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비례관계는 이론처럼 완벽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자본의 이익에 비해 임금소득은 제자리고, 그만큼 미국에서도 중산층의 구매력은 벌써 오래전부터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생산은 늘고 자본도 늘어나는데 정작 그것을 사줄 시장도 투자할 대상도 줄어든다. 그래서 터진 것이 서브프라임모기지론이다. 현재 실재 존재하는 가치에 비혜 화폐의 가치가 무려 3배를 넘는다던가. 오래전 읽은 것이니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겠다. 돈이 있다고 쌓아두기만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곧 생산수단인 체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자본을 생산에 투자할수록 이익은 줄어든다.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의 감소다. 


어쩌면 지금의 경제위기마저 자본의 위기를 경고한 마르크스의 예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인지 모른다. 노동가치가 소외된다. 노동자가 소외된다. 그러나 노동자가 바로 시장에서 생산된 상품을 최종소비하는 소비자들이다. 노동가치란 그런 점에서 시장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비용일지 모른다. 지금의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얼마의 급여를 받아야 하는가. 노동자의 임금을 쥐어짜기만 하다 보니 노동자 자신이 소비에 쓸 돈이 줄어들게 된다. 노동자가 소비하지 않으면 수요가 줄어들고 생산이 오히려 생산자에게 압박으로 작용한다. 괜히 세계의 여러 정부에서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자의 급여를 올리겨나 노동자의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듯 노동자의 실질소득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우리만 모른 척 외면하고 있을 뿐.


전지구적 보수화현상은 그 반작용이라 보면 된다. 당장 내 손에 들어와야 할 이익이 다른 사람에게로 가 버렸다. 누가 가져갔는지는 모르겠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것이어야 할 이익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 분노를 발산할 대상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것이 무엇때문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럴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자신의 외부로 투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사회의 외부나, 혹은 정체적으로 외부에 있는 누군가다. 외국인이거나, 여성이거나, 장애인이거나, 특정한 인종, 아니면 민족과 같은. 저들 때문이다. 저들로 인해 내가 이런 곤란을 겪는 것이다. 그렇다고 사실을 알리기에는 이후의 상황을 감당하기 두렵다. 차라리 외부에 그 분노를 발산하는 것을 권장하거나 최소한 방관한다.


어차피 일을 해도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내일에 대한 희망이란 없다. 아무라도 아무렇게라도 원망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은가. 탓하며 미워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미워하는 동안에는 그래도 납득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과연 그렇게해서 자신의 삶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렇게라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냄으로써 마음의 위안을 얻기를 바랄 뿐이다.


미국의 한계는 벌써 오래전부터 여러 사람들이 지적해 왔었다. 더이상 미국은 세계자본주의를 지탱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포기하는 순간 세계자본주의는 붕괴한다. 그나마 소련이 사라지고 자본주의를 위협할 적도 남아있지 않으니까. 어떻게 될지는 글쎄...


딜레마다. 중국이 미국을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게 되면 중국의 생산도 그만큼 증가해야 한다. 소비가 증가하는 그 이상으로 생산이 증가한다. 반복이다. 과연 짧은 시간 안에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100년 후의 미래는 거기서 결정될지 모르겠다. 당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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