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개미' 중에 개미를 좋아하다가 개미의 잔혹한 본능을 보고는 오히려 혐오로 돌아선 과학자가 한 사람 나온다. 오래전 내가 우연히 알게 된 사회복지 공무원 가운데 비슷한 이유로 복지의 대상이 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던 이들이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이래야 한다. 소외된 사람은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 또한 주체적인 사고를 하는 독립된 인격으로서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악착같이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거부하게 된다. 저런 건 내가 생각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이 아니다.

 

이재명이 자기 부인을 위해 일정까지 취소했을 때 진중권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일반 직장인들이 그랬다가는 잘린다. 그러라고 있는 연차다. 설사 연차 다 썼더라도 휴직이라는 제도도 있다. 휴직이 아니더라도 사정을 말하고 양해를 구한 뒤 출근을 늦출수도, 조퇴할수도, 아니면 결근하는 것도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니는 그리 대수롭지 못한 직장에서도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굳이 진중권은 일반 직장인을 이야기했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중권이 자칭진보이던 시절 머릿속에 이미지로 가지고 있던 일반 직장인의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논란이 한창이던 때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놈이 '썰전'에 나와서 그런 개소리를 지껄인 적이 있었다. 편의점 알바들도 식대 교통비 받을 텐데 이런 비용들까지 최저임금에 산정하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편의점 알바 해 봤거든? 식대 없었다. 그나마 유통기한 지난 이른바 폐기 식품들을 거저 가져가서 먹을 수 있는 정도였다. 교통비? 세상에나 그런 훌륭한 소리를. 망상이다. 현실을 보지 않고 자기 머릿속에 구축된 이미지로 대상을 판단한다. 전에도 말한 적 있을 것이다. 어째서 자칭 진보는 무식한가. 사실을 사실 그대로 객관적으로 보려 하지 않고 주관적 이미지에 끼워맞춰 판단하려 한다. 드러난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기계적으로 조국에 대한 비난부터 쏟아내는 손석희가 그런 경우다. 내가 옳다고 여기므로 사실여부와 상관없다.

 

그래서다. 자칭 진보가 오히려 수구들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은. 탈원전을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소가 여전히 지어지고 있어야 하고 오히려 더 늘어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탈원전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탈원전을 주장하는 자체가 어색하다. 그래서 현정부의 탈원전을 비난하며 탈원전을 주장하는 이중성을 아무렇지 않게 보인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는데 그러자면 노동자들이 먼저 낮은 최저임금으로 인해 곤란을 겪어야 한다. 대체휴일제를 도입하기 위해서도 대체휴일이 없어 어려워하는 노동자가 있어야 하는데 벌써 도입되어 실행되면 불편한 것이다. 그러므로 벌써 내가 복무하던 시절에도 사정이 있으면 사후결재를 전제로 휴가를 연장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어째야 하는가?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노동자,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의 모습 그대로 국민들이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칭 진보 입장에서 국민의힘은 '노동존중의 정당'이고 민주당은 아닌 것이다. 차라리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것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보다 진보적 가치와 지향에 부합한다.

 

국민의힘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정통권력이라는 저들의 인식도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이를테면 정상상태다. 사회적 약자들이 억압당하고 차별당하는 것이야 말로 저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상상태인 것이다. 여기서 모든 진보운동이 출발하는 것이다. 김학의가 무죄가 되어야 여성운동도 가능하다. 김학의를 처벌할 수 있는데 여성운동은 의미가 없다. 일단 이명박과 박근혜 상태에서 그를 극복하고 혁신하기 위한 진보운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보다 하나라도 더 좋아져서는 자신들의 이해를 넘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진보운동을 위해서라도 사회를 정상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정당한 권력이 지배해야 한다.

 

그래서 한 편으로 저들은 민중을 혐오하는 것이다. 노동자라면 마땅히 자신들에 도움을 구걸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라면 당연히 자신들에 온정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북적북적 으쌰으쌰 새로운 대안을 찾고 하나씩 바꾸어 나가려 하고 있다. 오죽하면 자칭 진보에게 40% 가까운 민주당 지지자는 국민도 아니다. 그토록 혐오와 차별을 반대한다는 자칭 진보가 이들에 대해서만큼은 거리낌없이 증오와 저주의 발언을 내뱉을 수 있는 이유다. 대상이다. 주체가 아니다. 그런 대상 주제에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스럽고 혐오스럽겠는가.

 

자칭진보 단체가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하고, 자칭 진보언론들이 그를 홍보하고 나서는 이유인 것이다. 심상정이 유독 이재명에게만 각을 세우고 윤석열은 무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겨레 역시 윤석열의 공약에 대해 적극적으로 비판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반기고 있을 것이다. 윤석열이 당선되고 윤석열의 공약대로 되어야만 비로소 자신들이 진보로써 바로 설 수 있다. 진중권이 변절한 것이 아니란 이유다. 변절이라기보다는 자칭 진보로써 더 선명해지려는 의도에 가깝다. 정의당과 한겨레가 과연 진중권과 다를 게 무엇인가. 원래 그런 부류들이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90년대 초까지 대학교 축제에서 락밴드를 보기 힘들었다. 락이란 미제국주의의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안치환이 락을 한다 했을 때 화제가 된 이유였다. 민중가수 출신인 안치환이 락을 한다는 자체가 화제가 되었을 정도로 운동권과 락은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 많은 민중가요들이 역시 미국 태생인 포크에 빚을 지고 있을 텐데?

 

음악 뿐만 아니라 읽는 책이며 보는 영상을 가지고도 지랄하는 선배들이 학교에는 적지 않았었다. 이른바 의식화란 것이다. 제대로 정신이 박힌 대학생이라면 이런 노래를 듣고, 책을 읽고, 영상을 봐야 한다. 학교 안에서 프락치라 의심된다고 집단으로 린치한 끝에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 괜히 일어난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나마 힘이 없으니 출연거부인 것이다. 하긴 오세훈이 한겨레 광고 끊었다고 정의당이 논평을 내늘 걸 본 적이 없다. TBS 지원금을 끊었다고 비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민주당이 언론사나 기자를 고소고발하면 언론탄압이고 국민의힘이 대놓고 힘으로 언론을 찍어누르는 건 정당한 권리행사다. 자신들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찾아가 직접 대화와 토론을 통해 입장을 밝히기보다 출연거부를 통해 그 존재와 영향력을 위축시키겠다. 힘이 없으니 출연거부지 힘이 생기면 도대체 뭘 어쩌겠다는 것일까.

 

심상정이 말하는 단일화가 의미없다는 이유가 여기서도 나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나 검찰이 언론을 협박하고 회위하고 억압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없이 침묵하며 오히려 그를 닮으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민주당은 조금만 언론에 비판적이어도 탄압이라는 극단적이 표현까지 쓰고 있었다. 과연 저들이 말하는 언론의 자유란 무엇인가. 그보다 저들에게 정서적으로 가까운 유대의 대상은 누구일 것인가.

 

아무튼 나도 김어준 개새끼라 여기지만 그렇다고 공당이 되어 자기들에 비판적인 말 몇마디 했다는 이유로 출연거부까지 하는 걸 보고는 저 새끼들 또 저 지랄이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저들이 바라는 언론의 자유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용인할 수 있는 자유의 한계인 것이다. 광주왜곡과 세월호 비난은 상관없지만 심상정 비판은 안된다. 씨발년들.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였던 제환공, 그러나 그 말로는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굶어죽다니. 그리고 시신까지 한참동안 방치되어 구더기가 잔뜩 슬어 있었다 한다. 관중과 포숙아를 재상에 임명하여 전성기를 연 군주였지만 그가 말년에 임명한 재사가 수초, 개방, 역아였던 때문이다. 

 

역사상 자신의 무능에도 신하를 잘 두어 성세를 이룬 군주가 적지 않았다. 아마 삼국지의 유선도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비의 고명을 받은 제갈량과 그 제갈량의 추천으로 재상에 오른 장완과 비의가 보좌하는 동안 촉한은 몇 배나 강한 조위를 군사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의까지 죽고 유선이 직접 인선하여 재상을 임명하고 국정을 이끌어야 할 상황이 되자 모든 것이 반전되었다. 괜히 유선의 아명인 '아두'가 바보의 대명사가 된 것이 아니다. 군주 자신의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변의 인재의 도움을 받은 성세는 결국 그 한계를 맞이하게 된다. 하물며 과연 자신이 능력이 안되는데 능력있는 인재를 등용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가.

 

중국 명왕조의 정통제가 가장 신임했던 인물은 환관인 왕진이었다. 글도 한 줄 못 읽는 무식쟁이였지만 그러나 정통제를 어려서부터 보살핀 인물이었기에 나중에 왕진의 무능으로 인해 적군에 포로로 잡혔다가 황위까지 잃었음에도 복위하고 나서 그 복권을 시도했을 정도로 정이 깊었다. 하마트면 그때 정통제만 포로로 자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명 자체가 망할 뻔 했었다. 그리고 그 정통제가 복위하여 천순제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도 그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충신 우겸을 죽이는 것이었다. 장거정의 보좌를 받아 다시 성세를 회복하던 명을 수렁에 빠뜨린 만력제는 말할 것도 없다. 장거정이 부패했다는 이유로 아예 국정을 돌보지 않아 명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피폐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벨리사리우스란 역사에 남을 명장을 거느리고도 그를 의심하여 홀대한 유스티니아누스는 어떨까? 유스티니아누스는 그 자신도 역사에 남을 뛰어난 황제였지만 그러나 벨리사리우스란 명장을 휘하에 두고 거느릴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서 벨리사리우스의 말년 역시 상당히 비참했었다. 항상 그와 비교되는 이순신 또한 선조의 의심과 견제로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었다. 하긴 그러고보면 유선도 황호의 참소를 믿고 전장에 있던 제갈량을 소환하기도 했으니 자기보다 뛰어난 인물을 밑에 두고 거느린다는 건 권력자에게도 상당히 난이도 높은 과제일 것이다.

 

한 마디로 알아야 한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그렇게 멍청하게 묘사되지만 유비가 살아있을 적 그의 부하들은 감히 함부로 유비를 속이거나 이용할 마음을 먹지 못했었다. 조조와 비견할만한 당대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비 휘하에는 간신이라 할 만한 인물조차 없었다. 조조 역시 그 자신은 다시 없을 개자식이었지만 그 휘하에 그를 속이거나 이용하려는 간신은 없었다. 최소한 맥락은 알아야 속지 않고 이용도 당하지 않는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있어야 의심하지 않고 충실하게 그 역량을 활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누가 뛰어난 인재인지 알아볼 안목이 있어야 한다. 그 또한 오로지 자신의 역량을 근거로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대본이 없으니 연설도 하지 못한다. 가벼운 인삿말이라도 할 수 있다. 농담으로 분위기라도 띄울 수 있다. 그러고보니 인간의 지능이란 사회화와 관련이 있다고 했었다.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고 유지해나가는가, 아니 그 관계를 이해하고 자신의 위치를 정립하는가 하는 고도의 연산을 위해 인간의 지능은 발달해 왔었다. 그 최소한의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다. 그러고보니 딱 자칭 진보가 좋아할만한 인재상이기는 하다. 자칭 진보가 왜 윤석열을 물고빠느라 정신없는지 알겠다. 말했듯 자칭진보도 텍스트와 레퍼런스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병신들이 대부분이거든. 텍스트와 레퍼런스에 종속되어 자기 사고와 판단까지 잃은 버러지들이다.

 

박근혜가 괜히 최순실따위에 휘둘려 권력을 그따위로 방기하고 남용했겠는가. 그런데도 자기가 전문가들 기용해서 전적으로 맡기고 책임만 모두 지겠다. 전두환도 그랬었다. 그런데 전두환도 그렇게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다. 자기가 사악해서 그렇지 대본 없이는 말도 못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당장 문재인 대통령만 해도 주위에서 당대표시절부터 함께했던 경제전문가들이 사라지자 홍남기 따위에게 잡혀 휘둘리고 있는 것을 보라. 자기가 경제전문가가 아니니 홍남기가 하는 말에 어쨌든 설득당하고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전문적인 지식은 해박할지 몰라도 그 의도까지 항상 정직하고 선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이용해 사익을 취하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더구나 전문가라고 그가 추구하는 방향이 항상 모두를 위해 옳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그것을 통제하고 감시하고 관리하는 게 바로 리더의 역할일 터다. 하지만 사신이 그럴 역량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되겠는가.

 

정도전이 재상총재제를 주장한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왕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다. 즉 혈통에 의해 계승되는 것이다. 그러니 왕의 핏줄이 왕이 되었다고 항상 선량하고 유능하리란 보장이 없다. 그러므로 왕은 그저 명분과 정통성을 가지고 그 자리를 지키고 능력과 성품을 검증받은 재상이 그를 보좌하도록 한다. 아, 왕이었지. 손에 왕자 쓰고 있었던가. 왕이라면 그래도 된다. 하늘이 내린 존재니까. 선량할 필요도 유능할 필요도 없다. 그냥 왕의 핏줄이면 된다. 그래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긴 윤석열도 서울대라는 왕의 혈통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서울대 빼고 뭐가 있는가. 그런데도 서울대니까. 서울대는 뭐든 잘한다. 서울대 출신들의 자부심이다. 자칭 진보까지 윤석열 지지에 나서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서울대고 사법고시 출신인 자신이 왕이 되어 재상을 유능한 사람으로 임명하겠다. 시대착오도 이런 시대착오가 없다. 바닥이 너무 얕다. 절망적일 정도다.

드디어 그 새끼 뒈졌네?

 

그런데 너무 편하게 뒈진 거 아님?

 

김대중의 가장 큰 실책

 

저 새끼 저대로 죽게 내버려둬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시체라도 부관참시했으면 바라기는 하지만.

 

또 국가장 하자? 김부겸 개새끼.

 

그래도 친구는 친구인가 보다. 노태우 뒈지고 바로 전두환도 뒈진다.

 

광주 한복판에 묫자리 썼으면.

 

아무나 밟고 지나가게.

아마 정경심 교수가 부동산투기에 손을 대서 아파트도 몇 채 가지고 있었으면 인권위가 그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 인권이란 그같은 자기 직분에 충실한 사람들만을 위한 인권일 테니.

 

인권의 정의가 바뀌었다. 그동안 검찰수사에 대해 인권이란 측면에서 비판해 온 부분들이 있었다. 지나치게 불필요한 주변인들까지 소환해서 상관없는 별건들까지 헤집으며 사실상 협박에 가깝게 권위를 앞세운 강압수사를 하고 있다. 심지어 구속에 대해서도 피의자의 방어권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최소한으로 제약할 것을 많은 인권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인권위는 주장한다. 검찰은 그래도 된다.

 

인권에 대한 아주 오랜 논리 가운데 하나다. 사람의 인권은 모두 같지 않다. 사람마다 인권은 차등을 두어야 한다. 인권을최대한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과 최소한으로만 보호되어야 하는 사람이 따로 존재한다. 그리고 더욱 여성주의자들은 같은 인간 안에서 여성이라는 차별을 두고, 여성 안에서도 노동자와 자산가, 전문직의 차별을 둔다. 물론 남성 안에서도 그렇다. 그런 점에서 끈떨어진 연 신세인 정경심 교수의 인권이야 돌아볼 필요가 있는가. 무엇보다 그렇게 몰아간 주체가 자신들이 그토록 추종하는 주류기득권 남성인 것이다.

 

국민의힘의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은 범죄조차 아니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행위조차 아니다. 그동안 여성주의자들이 일관되게 보여 온 행보였다. 지금 인권위의 판단은 다른가.

 

뒤늦게서야 동의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는 참사를 넘어섰다. 특히 여성주의자들에 대한 인사는... 아니 좋은 점도 있다. 기자들과 같다. 좋은 여성주의자는 죽은 여성주의자 뿐이다. 인권의 개념마저 이렇게 오염시킨다.

 

원래 여성주의 자체가 인권과는 상관없는 친일, 친독재, 친기득권의, 기득권 남성에 빌붙는 기득권 유한부인들의 취미생활에서 출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이 없다. 새삼 확인한다. 인권이 죽었다. 빌어먹을 것들이다.

결국 유시민이 주장한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 봤다는 의혹 역시 사실로 드러났다. 윤석열의 징계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온지도 꽤 되었다. 그래서? 검찰과 손잡고 난리치던 언론 가운데 제대로 반성하거나 최소한 사실보도라도 제대로 하는 놈들이 있나?

 

윤석열이 고발했을 때는 아주 엎드려 죽는 시늉까지 했었다. 결론은 하나다. 무서운 사람과 무섭지 않은 사람, 그래도 되는 사람과 그래서는 안되는 사람, 세상에서 제일 비열하고 비루한 짓거리가 사람 가리는 것이다. 그러고도 언론의 사명이니 자유니 지껄이겠지.

 

기자놈들이 말하는 언론의 자유란 별 것 아니다. 가짜뉴스 낼 자유, 거짓말할 자유, 기사인 척 광고질할 자유다. 언론의 존재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이유인 것이다. 도대체 지금 언론이 이 사회의 공익과 정의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새삼 확인케 되는 것이다. 좋은 기자는 뒈진 기자 뿐이다. 좋은 기자들 되었으면 좋겠다.

어째서 이승만은 한국전쟁 당시 종전은 커녕 휴전조차 반대하고 있었는가. 이미 국토가 초토화되고 수많은 국민들이 죽거나 다치고 생사를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끝까지 전쟁을 이어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북한을 무찌르고 통일을 이루자는 '멸공통일'은 군사독재가 끝날 때까지 대한민국의 국시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그렇게까지 오히려 더 호전적으로 전쟁에 집착하고 몰두했던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는가.

 

결국은 아주 최근까지, 아니 지금 이 순간까지도 북한을 일컫는 '괴뢰'라는 단어에 그 답이 있는 것이다. 괴뢰란 한 마디로 꼭두각시 인형이다.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엄하고 대등한 존재가 아닌 누군가의 사주에 의해, 혹은 조종에 의해 영혼없이 행동하는 존재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다못해 한 사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다양한 주체들에 의한 병립정부가 아닌 불순하고 불온한 존재에 의해 이용당한 끝에 민족을 분열시키고 끝내 전쟁의 참화까지 겪게 만든 하수인들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전쟁도 아닌 '6.25동란'이었던 것이다. 전쟁조차 아니었다. 대등한 정치적 주체에 의한 무력충돌이 아닌 그저 반란에 지나지 않았다.

 

너무 간단한 비유인 것이다. 당장 조선시대 홍경래가 평안도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 조선조정에서 반란군과 휴전도 아닌 종전을 맺는다 가정해 보라. 더이상 조선조정은 홍경래군과 싸우지 않겠다. 그 말인 즉 홍경래군을 병립 가능한 독립적인 주체로써 인정하고 예우하겠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없었던 대등한 정치주체가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니 역사는 이를 '독립'이라 말하고, 그때까지의 무력충돌을 '독립전쟁'이라 다시 정의하게 된다. 물론 북한의 경우는 분열되던 당시 하나의 주권을 가진 정부가 없었으므로 사정이 약간 다르다. 명이 멸망할 당시 숭정제의 자살 이후 정통성있는 황제가 사라지자 너도나도 황제를 자처하던 병립정부의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언젠가 명이든 청이든 하나의 나라로 흡수통일되어야 한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다. 종전선언은 그동안 사실상 하나의 독립된 주권국가로 존재해 오던 북한을 완전히 인정해주는 요식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다시 말해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것은 독립된 주권국가로써 병존하는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 차라리 통일을 주장하는 이들이 종전선언으로 통일의 가능성이 영영 사라졌다 말한다면 이해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통일에 반대한다는 놈들이 종전선언에 무작정 반대부터 하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더구나 종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북한과 대치하는 전선으로 끌려가야 할 20대 남성들이 그러고 있다.

 

통일이 싫으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종전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여전히 북한은 대한민국에게 있어 통일의 대상으로 남고, 따라서 그를 위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 또한 계속해서 이루어지게 된다. 명목상이더라도 그로 인한 낭비가 결코 작지 않다. 통일을 비용 때문에 반대한다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종전선언에 찬성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언론이 병신인지, 그런 언론만 믿고 떠드는 어린 놈들이 더 병신들인 것인지.

 

하긴 더 어이없는 것은 그래서 스스로 보수의 입장에서 종전선언에 반대한다는 놈들 가운데 이같은 맥락을 들먹이는 놈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드는 이유가 일본과 미국이다. 일본과 미국 때문에 종전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게 한국 보수의 수준이다. 그런 놈들에게 휘둘리는 자칭 20대 공정남들의 수준인 것이고. 이준석이 딱 그 놈들 수준이기는 하다. 우습지도 않다.

이낙연계가 자신들의 태업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경험이 있다.

 

2012년 당시 김한길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당권파는 문재인 당시 후보의 낙선을 위해 아예 대놓고 태업한 바 있었다. 하다못해 지역조직조차 가동하지 않고 있었다. 제대로 선거운동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훼방만 놓지 않았을 뿐 사실상 낙선운동을 했던 것이었다. 더구나 안철수의 갑작스런 사퇴로 단일화효과도 사라진 상태였다. 결국 문재인 당시 후보는 간발의 차이로 박근혜에 패배한 바 있었다.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낙연이 안철수가 되고, 이낙연계가 김한길의 역할을 대신 한다. 오히려 선대위를 장악하고 선거운동을 훼방놓고 태업함으로써 더 확실하게 이재명을 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러면 다음 수순은 무언가?

 

탄핵은 거짓말이다. 아무리 민주당이 180석 의석을, 우호의석까지 190석까지 확보할 수 있다고 탄핵에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을 테고, 무엇보다 헌재까지 가서 어떻게 결론이 내려질지 모른다. 거기에 아예 대놓고 검찰이 나서서 훼방놓기 시작하면 탄핵을 주도한 국회의원들은 거의 감옥에서 회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뭘 바라고 아예 대놓고 지자 말하고는 자신들만의 시간을 주장하는 것인가.

 

조경태를 기억할 것이다. 한희갑이나 김경재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김한길의 이름까지 거론되는 중이다. 공통점은 무언가 철새다. 그것도 중요한 시점에 민주당의 명분을 가지고 날아갔던 아주 요긴한 철새들이었다. 물론 한두명이면 대선도 끝났는데 데려갈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낙연계 수 십 명이면 과연 어떨까? 민주당의 개혁정책을 앞장서서 저지하고 이재명의 낙선도 도왔다. 여기에 내각제 개헌이라는 미끼까지 던진다. 이보다 더 나은 그들의 시간이 있을까?

 

도깨비라 부르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한다면서 윤석열도 지지할 수 있는 놈들이다. 홍준표와 윤석열이 공약한 정책들이 있었다. 하나같이 문재인 정부의 개혁을 이전으로 회귀시키려는 시도들이었다. 그러나 이재명만 막을 수 있다면 자신들은 그마저도 감수할 수 있다. 윤석열과 관련한 의혹에도 침묵할 수 있다. 이재명만 아니라면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도 물고빨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바로 철새들의 시간인 것이다. 어차피 이대로 태업했다가는 예전과 달리 자신들의 행위가 바로 지지자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러면 재선도 장담하지 못한다. 금태섭을 기억하고 있다.

 

그냥 적이라 보면 된다. 장차 적이 될 놈들이다. 동교동계가 지금 죄다 어디 가 있는가. 어디에 있었는가.

 

일단 버리고 시작해야 한다. 원팀이라기에 참고 보고 있었더니 또 저 지랄들이다. 민주당은 저 병 못 고치나 보다. 씨발.

과거 선거들을 돌이켜보면 아무리 보수적인 인물이라도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해 진보적인 정책 몇 개는 기본으로 공약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처럼 아예 보수조차 바라지 않을 수구로의 회귀를 전면에 내세운 경우란 오히려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흥미롭다. 그런데 어째서 자칭 진보들은 남의 일 구경하듯 하는 것일까.

 

경향이야 이미 수구로 돌아섰고, 그나마 진보를 자처하던 한겨레조차 윤석열의 공약을 보고서도 중계에만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비판한다면 이재명이다. 정의당은 아예 윤석열은 제치고 이재명의 도덕성만 공격하는 중이다. 윤석열이 당선돼서 실제 공약한 그대로 모든 것이 과거로 회귀해도 상관없다. 그동안 그들이 그토록 간절히 주장하던 진보적 가치란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의미였던 것인가.

 

곰곰히 생각하다가 어째서 정의당이 돈도 없다면서 매번 선거에 후보를 낼 수 있었는가 그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빚이 많다는데 빚독촉에 시달린다는 말도 들어 본 적 없었다. 빚이 너무 많아서 정당하게 지불해야 할 임금이나 각종 비용을 체납한 경우가 있다는 말도 들어 본 적 없었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돈이 들어오고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 동은 도대체 어디서 들어오는 것일까?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이 중도층이란 함정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당의 왼쪽에는 정의당이 있다. 더 진보적인 정의당이 있으므로 민주당이 진보적이지 못해 실망하는 유권자가 있으면 정의당으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에게 등돌린 중도층이 있다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기 쉽다. 그래서 조중동이 정의당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파면 나올 게 많다. 과거 보수정권 아래에서도 토론에서 자기를 모욕한 상대에게 보복하려 한 박근혜를 제외하고 진보정당에 대해 그리 적대적이거나 하지 않았다. 훌륭한 도구였다. 정의당을 통해 민주당이 진보적이지 못함을 비판하고 민주당 내부의 보수화를 이끌어낸다.

 

선거에서 이길 때는 가만 있다가 선거에서 지기만 하면 진보적이어서 졌다. 보수적인 중도층의 마음을 잡지 못해서 졌다. 그러니 진보도 개혁도 다 때려치자. 그런데 진짜 진보적이면 민주당에 실망했을 때 진보정당인 정의당으로 돌아서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 그 전에 정의당이 과연 진보이기는 한 것인가. 진중권 나부랭이가 진보를 자처하던 것이 바로 자칭 진보고, 그런 놈들이 모인 정당이 바로 정의당이었던 것이다. 김학의를 수사한 것도 정권차원의 범죄다. 그로 인해 문재인 대통령이 감옥에 갈 수도 있다. 한겨레의 공식 논평이었다. 

 

진보적이라고 그런 자칭 진보의 정체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나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민주당에 실망했어도 정의당에 표를 주거나 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포기하지. 진보적이어서 포기하기 쉬운 이유는 어차피 자신들의 요구와 반대로 가는 거라면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보궐선거에서도 다수 진보적 지지자들이 투표를 포기했던 것 아니던가. 지금도 비슷하다. 도저히 민주당 후보인 이재명을 지지할 이유를 찾지 못해 선택을 유보하거나 거부하고 있는 진보적인, 혹은 우호적인 중도층 유권자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그들을 먼저 결집시켜야 진짜 중도층을 끌어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이미 정의당으로 갔을 것이므로 보수적인 중도층만 의식하자. 그동안 민주당의 방식이었다.

 

고민해야 한다. 진짜 민주당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민주당을 지지해서 얻을 수 있는 효능감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그것들을 확인시켜줄 수 있을 것인가. 그를 통해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인가. 중도층만 잡으면 끝인 것일까? 대통령의 지지율과 민주당의 지지율을 보라. 민주당은 과연 더 진보적이어서 대통령보다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가.

 

아무튼 분명해진 것이다. 이번 선거는 진정 진보와 보수의 진검승부가 될 것이다. 보수가 저토록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는데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말한 것이다. 저 새끼들은 그냥 자칭이라고. 그래서 유권자들은 진정 진보에 회의하거나 반감을 가지는가. 지켜 볼 일이다. 뭐라도 해야 하는 시점이다.

어째서 경선 전보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윤석열에게 밀리는 결과만 나오는가. 간단하다. 보궐선거 당시와 비슷한 이유라 보면 된다. 정확히 이재명 리스크가 아니라 민주당 리스크다. 저 새끼들 믿어도 좋은가.

 

정치적 지지란 결과에 대한 기대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지지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지자를 정치적 동지라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지향하는 바와 그 과정에 대한 이해와 추구가 같다. 이른바 말하는 효능감이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정치적인 지지를 함으로써 얼마나 내게 맞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윤석열을 지지하는 보수가 목표하는 결과는 하나다. 정권을 교체해서 복수하겠다. 그런데 민주당은?

 

그동안 민주당이 해 온 꼬라지를 보라. 문재인 대통령도 잘 한 것 없다. 지지자를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 너무 국민만을 바라봤다. 국민을 이유로 지지자를 외면해 왔다. 그 결과 지지자가 원하는 정치 가운데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도 정작 지지자들이 결집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조차 지지자는 무시한 채 중도층만 바라보며 중도층만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 하고 있다. 그런 정당을 지지할 이유가 있을까?

 

이재명을 중심으로 민주당이 더욱 선명하게 정부와 날을 세우려는 선택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 여기는 이유다. 지지자들이 돌아볼 수 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지지자를 중심으로 그래도 국민의힘은 아니라는 중도층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차별적인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당연히 그 중심에는 대선후보 이재명이 있어야 한다. 이재명이라면 다를 것이다. 이재명이라면 지금까지의 민주당과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먼저 지지층이 결집해야 중도층도 움직이는 것이다. 중도층이 움직인다고 지지층까지 결집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중도층만 보고 우왕좌왕하는 지금 꼬라지는 무엇인가. 중도층은 결과를 보고 따라가는 사람들이지 과정까지 살피는 사람들이 아니다. 결과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무능한 것이다. 지금 민주당이 빠진 함정이다.

 

이재명이 무엇을 바꿔 줄 수 있는가. 이재명이라면 어떤 것들을 지금보다 낫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미래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아는 새끼가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민주당은 무능하다. 지금까지만 보면 그렇다.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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