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봉건사회에서는 군주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무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지분과 권력이 주어졌다. 그게 바로 천승제후니 백승제후니 하는 말의 유래인 것이다. 천자가 만 대의 수레를 동원해서 전쟁에 나설 때 어떤 제후는 그 가운데 천 대의 수레를 이끌고 있고, 어떤 제후는 고작 백 대도 못되는 수레를 모아서 가지고 왔다. 누구의 발언력이 더 세겠는가. 누가 더 큰 관심을 받고 논공행상에서도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겠는가.

 

일본 전국시대에 10만석이니 100만석이니 하는 영지의 규모가 중요하게 여겨진 것은 그에 비례해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에 차이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더 크고 더 비옥한 영지를 가지고 있으면 그만큼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영지의 크기에 비해 더 적은 병력만을 동원하거나, 아니면 적은 병력을 동원해도 더 정예인 병력을 동원하는 등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영지를 보유한 영주의 실력과 영향력으로도 바로 이어지게 되었다. 어쨌거나 싸움에 실제 도움이 되는 놈이 최고인 것이다.

 

어째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한국은 항상 일본보다 후순위에 있었는가? 당연하다. 인구만도 거의 세 배 가까이 차이났다. 경제력은 아예 말할 것도 없었다. 군사적으로도 일본의 해상자위대는 미국 태평양함대의 호위함대역할을 충분히 수행하고도 남을 만큼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다 일본 본토에서도 발진할 수 있고 혹은 다른 지역으로도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는 첨단 항공전력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불과 십 수 년 전까지 한국의 군사력이란 육군을 제외하면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프리깃함인 광개토대왕이 한국해군의 최대대양전력이던 시절이 있었다. 대체할 전폭기가 없어서 F-4팬텀을 한계까지 굴려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경제력은 사실 한국도 이만하면 아직 아쉽기는 해도 크게 무시당할 정도는 아니다. 1인당 GDP도 일본 턱밑까지 따라왔고 재정건전성만 보면 일본보다 더 큰 여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작 미국의 국제전략에 있어 한국이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 묻는다면 아직 의문점이 있다. 그래서 미국이 굳이 사드배치를 강요했던 것이었다. 사드라도 한국에 배치해 놔야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미국을 위해 역할을 할 수 있겠다. 그것 말고 지금 한국의 군사력으로 얼마나 미국의 대중국전략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추진하려는 것이다. 전략자산이랄 수 있는 항공모함과 핵잠수함과 대륙간탄도탄의 도입을. 유사시 한국은 미국을 위해 아주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기 위한 지극히 정치적인 선택이었다. 이제 미국은 절대 한국을 무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지금처럼 북한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한국군의 대부분 전략과 전술, 그리고 군사정책들이 북한이라는 특정한 상대에 구속되어 있기 쉽다는 것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오로지 북한을 이기기 위해서만 전략전술을 구상하고 장비를 도입하고 무기를 개량한다. 그것이 과거 한국이 육군만 비대한 불균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첫째 이유였다. 그래서는 곤란하다. 더 유연하고 더 자유로운 그래서 미국이 원하는대로 바로 반응할 수 있는 군대가 미국 입장에서도 필요하다. 그래서 종전선언인 것이다. 더이상 북한만 의식하지 말고 더 넓은 세계로 그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도록 한다.

 

이해했을 것이다. 어째서 일본은 한국과 북한의 종전선언에 반대하고 있는가. 같은 이유로 오히려 한국 보수들이 항공모함과 핵잠수함과 대륙간탄도탄의 도입에 회의적인 것이다. 어딜 감히 일본의 자리를 넘보는가. 어딜 감히 미일관계에 한국이 숟가락을 얹으려 하는가. 지금 민주당 일부가 생각하는 것과 아주 비슷하다. 그냥 일본이 미국 아래 첫째로 있고 한국은 그 아래에서 떨어지는 국물이나 핥으면 된다. 종전선언에 대한 반대와 전략자산 도입의 반대는 그래서 함께가는 것이다. 그들은 또 전시작전권의 환수에도 반대하는 입장이다. 미국이 원해서 하는 것이다.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실제 자신들을 위해 도움이 될 동력이지 보호가 필요한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중국은 그런 종전선언에 찬성의 입장을 보이는가. 완충지대란 무엇인가? 평소의 긴장과 만에 하나의 경우에 충격을 중간에서 흡수할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공간이 오히려 그 만에 하나의 상황을 일으킬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중국이 북한에 무작정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해 줄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인 것이다. 그랬다가 진짜 만에 하나 북한이 오판해서 한국과 무력충돌이라도 일으킨다면 그 여파는 바로 가까이 있는 중국에게까지 미치는 것이다. 북한과 한국 사이의 긴장이, 아니 더 나아가 미국과의 긴장관계로 인한 불똥도 지금까지 계속 중국에게까지 튀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중간지대에 존재하는 국가나 세력들은 어느 한 쪽의 편만 일방적으로 드는 경우가 없었다. 실질적으로는 어느 한 쪽 편에 서더라도 한 편에서 다른 진영과도 여지를 남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야 서로 적대하는 진영들끼리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더라도 그를 통해서 중재와 타협을 시도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일본과 조선 양쪽에 한 발 씩 걸치고 있던 에도시대 이전의 대마도가 그런 경우였었다. 명백히 일본의 영토였지만 임진왜란 직전까지 전쟁의 가능성을 먼저 경고하는 등 조선과의 관계에서도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북한이 미국과의 긴장과 갈등을 풀어야 중국도 마음놓고 북한을 한국과 일본에 대항하는 중간지대로서 마음놓고 키워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지금 가장 종전선언을 바라는 것은 중국일지도 모른다.

 

미국은 훨씬 유용한 전력이 된 동맹을 북한이라는 족쇄로부터 풀어주어 더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고, 중국은 북한이라는 진짜 완충지대를 가질 수 있으며, 당연히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과의 적대관계로 인한 막대한 비용과 낭비를 줄일 수 있다. 반면 북한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 완충지대로 자리하고, 미국에게 한국의 전략적 비중이 높아지면 안좋은 나라가 하나 있다. 그래서 일본이 반대하는 것이다. 종전선언이야 말로 미국에게 있어 일본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면 이 가운데서 종전선언을 반대한다는 건 어떤 의미이겠는가.

 

흥미로웠다. 보수라면 오히려 항모도입에 찬성할 줄 알았다. 핵잠도입에도 호의적일 줄 알았다. 그런데 대륙간탄도탄에마저 회의적인 경우가 많았다. 어째서? 그래서 전시작전권 환수에 반대해 온 것이었다. 종전선언에도 반대해 온 것이었다. 북한은 주적이어야 한다. 한국의 모든 국방과 군사정책은 북한을 대상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를 위해서? 그게 바로 한국 보수의 정체란 것이다. 오랜만에 진지하게 글 썼더니 손가락이 꼬이려 한다.

 

더이상 미국이 단일패자로서 자신의 힘만으로 세계질서를 좌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파트너가 필요하다. 유사시 함께할 동맹으로써 믿을 수 있고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대상이 반드시 필요해졌다. 유럽의 영국과 남태평양의 호주와 과거에는 동아시아에 일본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이란 존재가 두드러지고 있다.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돌려주겠다 나서기 시작한 무렵과 일치한다.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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