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대통령이 4년 중임제였고 2007년 대선이 이명박의 재선도전이었으면 정동영도 해 볼 만 했겠구나. 

 

마치 시계를 13년 전으로 돌려 놓은 듯 내내 그 생각 뿐이었다. 이명박이랑 정동영이로구나. 그것도 아주 늙은 정동영.

 

반트럼프 말고 내세울만한 아젠다가 없었다. 물론 나름대로 비전도 정책도 다 준비되어 있겠지만 대부분 선거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재선되어서는 안된다는 한 가지만으로 치러지는 듯하다.

 

재미있는 건 트럼프 지껄이는 소리에 바로 눈쌀부터 찌푸리는 민주진영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데 오히려 트럼프의 헛소리에 열광하는 놈들은 바이든을 지지하고 있는 역전된 현실일 것이다. 오바마가 그동안 한국에 싸놓은 똥이 그만큼 독하고 양 또한 상당하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반면 그 동안 한국에 해 준 것들도 제법 되고.

 

아무튼 위악과 위선 가운데 그나마 무엇이 더 나은가면 그래도 위선이라는 것이다. 위악이란 그나마 선을 혐오하고 경멸하지만 위선은 최소한 선이 좋다는 정도는 안다. 지행일치가 안된다고 근본부터 부정할 필요는 없다. 역사상 완벽하게 지행일치를 이룬 이들은 몇몇 '성인'이라 불리는 위인들 뿐이었다. 원래 모순이 있어야 인간인 것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더구나 일본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누가 우리에게 유리하냐는 것인데. 물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되었든 맞춰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끌어오면 되는 것이긴 하다.

 

미국도 참 많이 망가졌다. 그보다는 시스템이 늙었다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오바마가 미국 사회에서도 그다지 이룬 게 없다는 인상이다. 오바마의 실패가 다시 늙은 미국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역시 중요한 건 한국 대통령이다. 한국 정부다. 잘 맞춰 가기를. 다음은 이낙연일까? 이재명일까? 누가 되었든.

검찰더러 정치적으로 독립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늬들 마음대로 정치하라는 뜻이 아니라 아예 정치를 하지 말라는 뜻인 것이다. 그래서 선출된 권력이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을 맡게 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선출된 권력이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바로 선거를 통해 심판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출된 권력이 검찰을 잘 지휘감독 하고, 검찰은 그 아래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최대한 억제하며 오로지 법리에 충실하며 수사해야 한다. 그런데 뭐라? 이제는 아예 검찰총장이 정치하겠다 나서고 있네?

 

이 또한 불문율이었다. 검찰총장을 역임했으면 정치같은 건 하지 않는다. 하물며 대통령이라니. 그것도 퇴임후가 아니라 재임 중에 정치하겠다 선언까지 하고 있었다. 비판하는 언론조차 하나 없다. 재임 중에 정치를 하겠다 선언했으면 이미 정치인 아닌가. 차기 대선주자로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정치적 중립이라고? 자기가 이미 정치인이고 어느 편에서 정치를 할 것인지가 거의 정해진 상황에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말하는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은 그냥 내 마음대로 정치하겠다는 선언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가.

 

물론 이해는 한다. 박근혜 탄핵 이후 자칭 보수진영에 문재인 대통령과 맞설 수 있는 인물이 아예 보이지 않았다. 원래부터 없었고 이후로도 여러 과정을 거치며 하나씩 꺾이며 남아나지 않게 되었다. 자칭 진보들이야 원래 앞세울만한 인물이 없기는 했었다. 더구나 서울대 출신이어야 하고, 명망가여야 하고, 무엇보다 그토록 증오스러운 민주당 정권을 상처입힐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심지어 자칭 진보들조차 현직 검찰총장이 정치하겠다 나서는 상황에 대해 한 마디 비판조차 못하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검찰개혁이 아닌 추윤대립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검찰개혁 실패라는 프레임으로 윤석열을 지원하는 중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가.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나서면 자칭 진보와 자칭 보수를 아우르는 범진보보수 단일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무튼 정경심 교수의 재판에서도 그 의도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른바 친박 태극기부대에 대한 추파인 셈이다. 정경심은 최순실이다. 정경심의 범죄는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같다.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냈듯 정경심과 함께 문재인도 반드시 감옥에 보내겠다. 한겨레와 경향, 홍세화, 정의당 무리들이 저리 윤석열에 목을 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무현 전대통령 죽기 전 심상정이 얼마나 집요하게 물어뜯고 있었게? 다시는 근본도 없는 친노친문이 정치의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아예 그 뿌리를 뽑고야 말겠다. 사모펀드는 이미 조범동 재판에서 무죄가 났고, 고작 표창장에 인턴증명서 가지고 과연 7년이라는 징역이 가능하기는 한가. 그런데도 굳이 그런 무리한 구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선언하는 것이다. 박근혜를 죽였듯 이제는 문재인을 죽이겠다.

 

하긴 전에도 말한 것처럼 그 정도 형량은 나와야 작년부터 1년 넘게 그토록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데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부터가 작년 조국사태의 진짜 목적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겨레와 경향이 미쳐 날뛴 이유이고, 정의당이 뒤늦게 - 진짜로 뒤늦게인지는 모르겠지만 - 조국비판에 가세한 이유인 것이고, 자칭 진보 지식인들이 윤석열 편에서 진보의 이념인 인권을 거름구덩이에 쳐박는 소리를 지껄여 온 이유인 것이다. 박근혜가 불쌍하다. 박근혜가 과연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지은 것인가. 설마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테니. 서민의 박근혜 동정론을 보라. 이명박근혜보다 차라리 문재인이 더 못하다는 한겨레를 보라. 그렇게 만들고 싶은 것이다. 박근혜도 못했지만 문재인은 더 못하다.

 

단위부터 차이가 난다. 그렇게 다 긁어모아봐야 벌금 9억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나마 권력을 써서 그랬는가면 권력이 실제 개입한 정황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박근혜와 같다. 최순실과 같다. 그냥 정치적인 구형인 것이다. 그런 짓거리를 그냥 보고만 있는 자칭 진보들도 똑같다. MBC도 그래서 마냥 신뢰하지 않는다. 비판해야 할 때 정작 비판하지 못한다. 벌써부터 윤석열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일까. 기득권 동맹이다. 트럼프와 샌더스를 막기 위해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이 함께 움직였던 것처럼. 민주당은 성공했지만 공화당은 실패했다. 한국은 윤석열로 대동단결이다.

 

저들의 민낯을 똑똑히 봐야 할 때인 것이가. 검찰이 정치를 한다. 검찰이 독립을 넘어 중립을 무시하고 아예 노골적으로 자기 정치를 하겠다 선언한다. 그 모든 것이 작년의 연장에 있다. 그런데 한 마디 비판조차 않는다. 한 마디 말로라도 견제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검찰의 편에서 정부를 비판하느라 여념이 없다. 과연 저들이 주장하는 진보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고용유연화까지 스스로 주장할 수 있는 한국 진보의 가치와 지향이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보수야 오히려 윤석열로 망할 지경이라. 한국의 진보는 검찰진보다. 그리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아마 처음 추미애 장관이 법무부장관이 지명되었을 때 특히 검찰은 상당히 만만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싶다. 정치인이란 참 지켜야 할 것이 많은 부류들이다. 욕심이 없이는 정치같은 건 할 수 없다. 더구나 무려 5선, 당대표까지 지냈고 차기 대선후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인물이니 얼마나 아쉬운 것도 많고 지키고 싶은 것도 많을까. 그러니까 적당히 건드려주면 자기의 큰 꿈을 위해서도 적당히 타협하지 않을까.

 

그래서 안되는 것이다. 추미애 장관은 삼국지로 치면 장비와 같은 인물인 것이다. 앞에 '여'도 필요 없이 그냥 장부다. 영화 '아저씨'에서 원빈이 말했지. 자기는 오늘만 산다고. 내일을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을 이길 수 없다고.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칼집부터 버리고 본다. 여기서 내가 죽거나 네놈들이 뒈지거나. 노무현이 괜히 정몽준 앞에 두고 추미애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꼽았던 것이 아니란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나중을 생각지 않는다. 내가 하기로 했으면 한다. 내가 해야만 한다면 한다. 내가 검찰개혁을 해야 한다면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그야말로 자기 정치생명까지 내던지고 덤벼든 싸움이란 것이다. 5선의 국회의원이, 전직 여당의 대표에,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손꼽히는, 대한민국 여성정치인 가운데 가장 거물이 모든 것을 내던지고 검찰 하나 때려잡겠다 나선 상황인 것이다. 두려울 것이 없다. 물러날 곳도 없다. 타협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모든 언론을 동원해서, 심지어 여론조사까지 인용해서 모욕주고 흔들려 발악해봐야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아마 지금 추미애 장관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한 사람 뿐일 텐제, 추미애 장관이 무엇까지 걸고 지금 싸움을 하고 있는가 아는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그를 뜯어말릴 수 있을까? 자신이 요청하여 추미애 장관은 그 많은 것들을 버리고 내걸어야만 했었다.

 

만일 윤석열이 진정으로 추미애 장관을 이기려 했다면 윤석열 자신 역시 자신의 미래를 걸었어야 했다. 검찰총장이라는 자리와 장차 대권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모두 내던지고 전력으로 부딪혀야 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추미애 장관보다 지켜야 할 것이 더 많았던 것은 정작 윤석열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켜야 할 것들을 붙들고 있는 사이 하나씩 손발이 잘리고 가야 할 길을 잃게 된다. 이길 수 있을까?

 

처음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을 때가 어쩌면 윤석열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는지 모른다. 정확히 검찰이다. 그때 윤석열이 자리를 내던지고 나왔다면 조금은 추미애 장관에게도 어느 정도 타격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란 조직 전체보다 자신과 주위의 측근들만은 집요하게 생각하는 타입이다 보니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이런 궁벽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만다. 그런데도 대선후보감이라 띄워주는 언론은 얼마나 병신들이란 것인가.

 

그야말로 자신의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장래를, 포부를,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내걸고 하는 싸움이란 것이다. 그래서 무섭다. 확실히 조국 전장관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서 차라리 조국 전장관 그냥 두고 적당히 어르고 달래며 기득권을 지키는 쪽이 더 낫지 않았겠는가 후회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것이다. 요즘 지켜야 할 것이 없어진 조국 전장관이 얼마나 사나워졌는지 모두가 보았지 않은가. 추미애는 태생이 싸움꾼이다. 적이 아니라 다행이다. 진짜 무섭다.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다시 없을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사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었다. 앙리 4세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종교까지 가톨릭으로 바꾸고 있었다. 권력이란 수단이다. 수단이기 때문에 목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유시민도 입버릇처럼 정치에 대해 때로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 말한 것 아니던가. 유시민이 바로 그걸 못해서 지금 야인으로 남은 것이다.

 

신념? 좋다. 양심? 좋다? 약속과 신뢰? 아주 좋은 말들이다. 당헌에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자리를 후보조차 내지 않고 다른 정당에 내준다면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지자체장이란 지자체를 이루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장차 더 큰 선거에서 당의 승리를 도울 지역조직의 구심점이기도 한 것이다. 아니 굳이 조직도 필요없이 해당 지자체장이 어떤 행정을 펼치는가에 따라 다른 선거운동도 필요없이 당의 정책과 강령을 시민들에 알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냥 부산시장 하나 서울시장 하나 내주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는 민주당원이 없는가? 서울에는 민주당 지자체장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지지자가 없겠는가? 더불어 부산과 서울에서 민주당의 이념과 정책을 마음껏 펼치고자 하는 인재들이 민주당 안에서도 넘칠 정도다. 그들이 지자체장으로서 자신의 이상과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정당의 역할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의 실력과 당이 지향하는 정책적 방향성을 대중들에 알리고 확인받고 인정받고 나아가 다시 정권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선거를 당헌 몇 줄 때문에 포기하자?

 

그래서 당원들에 묻는 것 아닌가. 이대로 좋은가. 원래 국가간 종약도 너무 불리하고 굴욕적이다 싶으면 알아서 기회봐서 일방적으로 파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당이니까. 당헌이란 너무나 중요한 공당으로서의 약속이며 신뢰일 테니까. 그러니까 당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약속을 지켜서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만 공당으로서 후보를 내서 검증받는 것이 더 옳을 것인가. 정치란 공적인 것이다. 개인의 양심보다 신념보다 공적인 책임을 우선한다. 그러므로 공당으로서 어떻게 책임을 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오거돈은 몰라도 박원순은 유죄가 확정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냥 일방적으로 유죄라고 단정짓고 낙인까지 찍은 결과인 것이다. 그런 것 다 차치하고 그렇지만 공당으로서의 책임은 그런 사적인 책임을 위해 지자체장이라는 공적인 자리를 거부하는 작은 것이 아닌 그럼에도 지자체장을 차지하여 공적인 책임을 다하는 더 큰 것에 있다. 당원들의 동의까지 받지 않았는가. 이것이 공당으로서 당원의 의지에 따른 책임이고 선택이다. 당연한 것이다. 말은 의미없다.

내가 뒤에 '장'자 붙은 자리를 그리 싫어하는 이유다. 그냥 말단일 때는 시키는대로만 하면 된다. 굳이 더 생각할 필요도 없고 판단할 이유도 없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면 하라는대로 그러지 말라면 또 그러지 않으면 된다. 당연히 책임도 딱 거기까지만이다. 하지만 별 것 아니라도 뒤에 '장'이 붙기 시작하면 때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도 내려야 한다. 책임도 져야만 한다. 무슨 말이냐면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와 책임을 먼저 생각하느라 온전히 자신의 주장과 판단에만 맡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거의 매번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어지간한 독재자들조차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며 살지는 못한다. 당장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도움이 될 만한 세력이나 개인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어디까지 어떻게 권력을 나눌 것인가도 결정해야 한다. 북한에서 김정은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김정은 자신의 권력유지에 도움을 주는 다른 주체들에 대해 충분한 대가를 이 순간에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정작 모든 것을 김정일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 같아도 여기저기 눈치보며 신경써야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그냥 독재자니까 김정은 혼자 결정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고 나서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주위도 배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김영철이 한 번 숙청되었다가 다시 복귀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당 안에서만 서로 다른 수많은 주장과 이해들이 공존한다. 서로 다른 이념과 신념과 가치와 지향이 서로 갈등하며 충돌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느 것을 희생시킬 것인가. 대한민국에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과연 반대정파의 주장과 요구라고 온전히 무시만 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내가 권력을 가져야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바를 현실에서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양보하고 무엇까지 타협할 수 있을 것인가. 매 순간이 선택이며, 그 선택이란 무언가를 얻기보다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이기 쉽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리 원하고 주장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이 적지 않으므로. 나는 절대 반대인데 다수의 국민들이 그것을 바라며 요구하고 있으므로. 대신 그 대가로 권력을 가지고서 반드시 절대 양보하지 않고 이루어야 할 한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바로 리더십이라 부르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타인을 이끄는 능력이 아니다. 내가 마음대로 타인들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보하는 것이다. 희생하는 것이다. 포기하는 것이다. 선택을 통해 그들로부터 하나씩 받아내어 그것으로 온전히 하나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거부할 수 없도록 조건을 제시하고 충족해주는 능력인 것이다. 거기에 개인이란 없다. 자신이란 없다. 그래서 리더란 오로지 공적인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혹은 내가 간절히 원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만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런 각오를 가진 이들만이 비로소 리더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리더로서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그들을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정의당을 두고 사람들은 정당이 아닌 정치동아리라고 비웃고 폄훼하는가. 그래서 정의당이 무엇을 양보해 봤는가. 무엇을 포기해 봤는가. 지지자들마저 짜증날 정도로 민주당은 항상 타협에 익숙하다. 양보와 희생과 절충과 포기에 익숙하다. 분위기 봐서 아니다 싶으면 바로 물러서 빠진다. 상황 봐서 괜찮겠다 싶으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장차 선거에서 유리할 것 같다 싶으면 반대하던 법안과 정책도 얼마든지 동의하고 추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언론을 적으로 돌린 상황에서도 항상 보수정당과 경쟁하며 대등한 의석도 얻고 대통령도 당선시켜 정권을 가져오기도 했던 것이었다. 김대중이 좋아서 김종필과 손잡았겠는가. 노무현이 좋아서 정몽준과 연대했겠는가. 문재인이 스스로 바라서 안철수를 설득하고 있었겠는가. 당을 지키기 위해서 김종인이라도 데리고 와야만 했었다.

 

그런 필사적이고 처절한 의지가, 그렇게 간절하고 절박한 권력에 대한 탐욕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당이 있는 것이다. 정의당이 자신들의 선명한 정의와 진보의 이념을 자랑할 때 때로 꺾이고 때로 짓밟히고 때로 부서지면서도 민주당은 보수정당과 몸으로 부딪혀 싸우며 지금의 자리를 지켜왔던 것이었다. 국민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여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상황만은 피하려 노력하면서. 대세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인 지켜야 한다. 그래서 김한길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세력이 크고 강해도 민주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오롯이 민주당의 가치와 지향을 정의하는 그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대사였을 것이다. 왕인 자신의 마음이 지옥에 있기에 백성들이 극락에 사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길을 가고 있기에 백성들이 사는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왕이 저 하고 싶은대로 오로지 좋은 길만 찾아가면 오히려 백성이 지옥에 살게 된다. 그런데도 왕의 마음이 보살이 아니라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한 점 티끌없이 맑지 못하다고 그를 욕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인내하고 인내하고 또 인내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예 싫어 죽겠어도, 화가 나고 원망이 들고 미운 마음에 사로잡혔어도, 혹은 좋고 기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도 그러나 자신은 왕이기에 그런 모든 마음을 접어야 하고 눌러야 하고 끝내는 죽여야 한다.

 

정의당과 민주당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의석수도 적고 정권은 더욱 꿈도 꾸지 못하는 대신 마음은 편한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들의 선명한 주장만 마음껏 내지를 수 있으면 그만이니까. 이런 쉬운 걸 민주당은 왜 못하는가. 그렇게 쉬운 일이기에 민주당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런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 표창원과 같은 이들은 정치를 더욱 혐오하며 그만두기도 한다. 정치란 사람의 길이 아닌 짐승의 길이다. 그런데 그 짐승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와중에도 이 사회는 이나마라도 지켜진 것이었다.

 

새삼 정의당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가소로운 이유인 것이다. 진보적 이념과 정책을 두고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더욱 강하게 비판하겠다는 저들의 의도와 선언이 우습게만 여겨지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동아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속편하게 자신들의 주장이 어떻게 이용될지를 알면서도 선의라 여기기에 고용유연제도 주장할 수 있다. 해고도 쉽게 하고 채용도 쉽게 할 수 있게 제도를 바꾸겠다. 유럽의 어디서 같은 제도를 시행중이니 문제는 없다. 한 점 티끌 없이 투명하기만 해서 그냥 웃게 된다. 그래서 정의당인 것이고 민주당인 것이다. 비판도 아까울 정도다.

말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한겨레가 설마... 아무리 한겨레가 미쳤기로 이명박을 좋다 하겠는가? 박근혜는 인정하더라.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를 지지했고 여전히 지지하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상당하다 보니. 그렇더라도 이명박은 아니지 않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예로 들어 이명박의 환경정책까지 칭찬하네. 이명박이 아파트값 더 올리려던 걸 실패한 것을 부동산정책의 성공이라 감싸고. 내가 말했잖은가? 저놈들은 민주당만 아니면 전두환이라도 찬양했을 놈들이라고.

 

진짜다. 전임 대통령이 전두환이고 박정희인데 지금 대통령이 노무현 문재인이다. 한겨레에서 논조가 어떻게 바뀌었겠는가? 광주학살도 그럴 수 있었다. 국가의 통합과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10월 유신도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와 그토록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겨레가 노무현 죽이고 한명숙 잡아넣을 때는 철저히 협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박근혜 탄핵은 그리 앞장서더니 정작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니 지지자들을 상대로 저주부터 퍼부어댄 것이었고. 그래서 차라리 이명박근혜가 나았다.

 

개소리라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개인의 성공과 실패란 의미가 없다. 정치인이란 철저히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있어 공적인 역할을 다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개인적으로 뇌물을 받아 쳐먹었든, 부정을 저질러 수 천억을 뒤로 챙겼든 결과적으로 국가가 안정되고 부강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라고 정치인에게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위임한 것일 테니까. 개인의 실패라 말하지만 결국 공적인 성공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그 한겨레가. 현정부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와 비교되지 않는가?

 

바로 이런 모습들이야 말로 한겨레가 종이신문으로 돌아가려는 길을 완전히 불사르려는 각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종이신문을 사 줄 민주진보진영의 독자들은 상관없이 포털에서 자신들의 뉴스를 소비해 줄 보수적인 네티즌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쓴다. 이명박은 잘했다. 박근혜도 못하지 않았다. 노무현과 문재인만 못했다. 저들이 진정 듣고 싶은 이야기일 테니까. 죽은 신해철까지 끄집어내는 서민이나 이명박근혜 재평가에 앞장서는 한겨레나. 진보의 종말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중이다. 엘리트주의의 끝은 그냥 독재일 뿐이다. 

사모펀드 건은 조범동과 공범으로 기소되었다가 다른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났기 때문에 아예 정경심 재판에서는 심리조차 진행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재판관련 기사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죄다 표창장 위조 관련인데, 아무리 표창장 위조로 유죄판결을 받는다고 형량이 구속기간보다 더 나오기란 힘들다. 더 나오면 그 순간 사법부 적폐인증이다. 더구나 윤석열 장모가 사문서위조와 행사로 엮여 있기 때문에 더욱 연관되어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문제는 그렇다고 형량을 낮게 줄 경우 그동안 검찰이 수사한다고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것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추미애 장관이 조국 전장관 일가족에 대한 검찰의 과잉수사를 묻고자 하는 의지를 밝힌 이유다. 고작해야 표창장 위조다. 실제 위조되었다고 해봐야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지방 3류대의 봉사표창장이란 것이다. 오죽하면 지원자도 없어서 교직원들에게 원서를 쓰게 해서까지 겨우 신입생 수를 기준에 맞추고 있었겠는가. 총장이라는 사람이 학력까지 사칭하던 대학의 표창장이 뭐 그리 대수라고 그것 위조한 것 밝히겠다며 그토록 온 나라를 들쑤셔 놓은 것인가. 언론은 고작 표창장 위조 하나 파헤치려 그 난리를 피운 것인가. 

 

이래서 사법시험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사법고시 합격할 때까지 죽어라 골방에서 법전만 파다가, 사법고시 합격하고 나면 각각 법원과 검찰이라는 좁은 세상에 갇혀 거기가 전부라 여기며 살아간다. 조금만 머리가 있어도 지금 표창장 가지고 유무죄를 다투는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온 나라를 뒤집어 엎고 재판만 1년 가까이 끌어서 나온 결론이라는 게 표창장 위조가 사실이라는 것인가. 고작 표창장 따위가 그렇게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이었다는 것인가. 다른 의도가 없었다면 그런 정도 범죄로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수사와 기소를 이어가지도 않는다.

 

당장 주위에 물어보라. 정치적으로 아예 입장이 정해진 경우를 제외하면 고작 표창장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그렇게 시끄럽고 재판만 1년 가까이 끌어 온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조국 전장관이나 그를 임명한 대통령을 비판한다면 그렇게 온 나라를 오랜동안 시끄럽게 만든 자체를 문제삼고 있을 것이다. 비례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표창장을 위조했다 치고 그게 그렇게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인가. 설사 유죄판결이 나왔더라도 고작 그런 정도 사안으로 수사든 기소든 구속이든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그러니까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도 전과 달리 조국 전장관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조범동 재판에서 사모펀드 건이 모두 무죄로 판결난 이상 끝난 사안인 것이다. 표창장 위조와 관련해서 유무죄 여부는 정경심 개인이나 가족들에게나 의미가 있지 나같은 제 3자에게는 전혀 아무 상관 없는 그저 남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을 잘 해야 할 텐데. 오히려 섣부르게 유죄판결을 내릴 경우 괜히 후폭풍만 커질 수 있다. 면피로 삼기에도 검찰 스스로가 너무나 크게 일을 벌인 탓에 자위용으로나 겨우 쓰일 뿐이다. 대신 이재용 재판까지 맡아야 하는데 자칫 40% 넘는 지지율의 살아있는 권력과 174석의 거대여당과 사법부 전체가 대립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차라리 사실에 근거하여 법대로만 판결을 내린다면 검찰은 조금 더 곤란해지겠지만 사법부는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공부만 잘하는 머리 좋은 바보들이 사법부나 검찰이나 너무 많다는 사실인데. 머리 좋다고 다 똑똑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아무튼 오히려 이번 정경심 교수의 재판결과에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사법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경심 교수 자신이나 가족, 혹은 주변인들이 아닌 이상 재판결과에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 자신이게 되는 것이다. 검찰은 끝났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봉사표창장이란 검찰이 그동안 해 온 수사와 재판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다. 그런 검찰을 위해서 과연 사법부 전체를 끌고 들어갈 수 있는 판결을 내리고 말 것인가. 사소한 일에 너무 큰 것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 것인가. 김명수가 언제까지고 사법부를 지켜 줄 수는 없다.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역시 내 일이 아니라 그렇다. 정경심 교수가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지 내가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 아니다. 조국 전장관 아내이지 내 가족인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어 생난리를 쳤어도 전혀 흔들림없이 정부를 지지하던 국민이 무려 40%를 넘어가고 있었다는 사실만 명심하면 된다. 그들의 앞에 양승태가 아닌 사법부 전체가 청산해야 할 적폐로써 그 정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조국 전장관이나 가족들에게 더 큰 빚을 지게 되는 셈일 테지만 역사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연 머리 좋은 바보일 것인가? 흥미롭다.

그냥 유재일 떠올리면 된다. 한때 민주진보를 자처하다가 작년 조국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보수로 전향한 자칭 정치평론가다. 개인적으로 정치평론가라 하면 사짜 비슷하에 여기는 편이라 그다지 의미를 두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당장 유튜브만 보더라도 보수가 숫적으로도 압도하고 돈도 더 많이 벌리기에 그냥 편한 보수유튜버로 전향하기로 한다. 실제 아마 민주진보 평론가연 하던 시절보다 지금이 돈도 더 많이 잘 벌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다음카카오 부사장으로 조선일보 출신이 가면서 대문에 오른 기사들의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네이버야 오래전에 이미 평정되었고, 다음이 그나마 버티고 있었는데 최순실의 마지막 똥으로 카카오가 저쪽에 넘어가면서 대문이 갈수록 네이버스러워지고 있었다. 어차피 그동안 해 놓은 짓거리가 있으므로 민주진영 독자들이 더이상 자신들의 신문을 사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한겨레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기를 노려봐야겠다. 어떻게 하면 포털 편집자들이 좋아할만한 제목과 기사를 뽑아 1면에 간택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사실 한겨레라는 언론사의 정체성을 보더라도 그쪽이 맞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과연 한겨레가 참여정부 이후 단 한 번이라도 진보언론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한겨레의 정체성은 오로지 반민주당 하나였었다. 민주당만 욕할 수 있으면 이명박도 박근혜도 찬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과 손잡고 노무현도 죽였었다. 한명숙도 감옥에 보내고 있었다. 그때 한겨레 기자가 외쳤었다지. 사필귀정이라고. 한겨레에게 절대악이란 그 정도로 민주당이었고 친노였고 친문이었던 것이다. 그 밖에 것들은 그냥 나머지다. 그렇다면 어느때보다 민주당과 반민주로 정치권이 양분된 지금에 한겨레의 선택지는 무엇이 남았을 것인가. 정의당마저 반민주를 위해서 진보를 포기하고 고용유연화를 주장하기 시작한 지금 한겨레에게 남은 선택지란 무엇일 것인가.

 

실제 이번 정부 들어서 한겨레는 그동안의 주장을 부정하듯 최저임금인상에도 반대했고, 근로시간단축에도 반대했고, 탈원전 역시 반대한 바 있었다. 위안부문제에 있어서도 정의연이 아닌 박근혜식 위안부협정을 지지하는 스탠스를 취하기도 했었다. 모두 현정부가 추진한 정책들이라 그렇다. 최저임금은 인상되어야 하지만 현정부의 정책에 이런 문제가 있으므로 반대하고, 근로시간도 단축되어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에 이런 단점들이 있기에 반대하고, 탈원전을 주장하지만 정부의 정책과정에 이런 오류가 있으므로 반대한다. 위안부문제는 해결되어야 하는데 다른 언론이 비판하고 있으므로 정의연은 물러나야 한다. 그냥 다 반대다. 아마 현정부에서 차별금지법을 전격적으로 통과시킨다 하면 차별금지법도 반대하고 나서지 않을까.

 

그냥 반정부로 가겠다. 반민주로 가겠다. 돈 되는 쪽으로 쫓아서 가겠다. 한겨레가 삼성을 까는 이유는 하나다. 삼성을 까다 보면 적당히 까라고 삼성에서 얼마간 쥐어주기도 한다. 삼성 열심히 까던 기자를 특채해서 데려가기도 한다. 다 돈벌이라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당시에도 그런 식으로 정부로부터 얼마를 받아 쳐먹었을까? 최소한 현정부에서보다 한겨레가 더 살기 좋았던 시절이라는 한겨레 기자의 토로는 사실일 것으로 여겨진다.

 

한 마디로 그냥 하던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원래 하던 대로 하는데 더 노골적으로 하겠다. 최근 한겨레 유튜브 채널을 보더라도 분명해진다. 윤석열 가족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최대한 회피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현정부와 여당의 책임으로 돌린다. 부정과 불법의 의혹으로 돌리려 노력한다. 윤석열 검찰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청와대의 절대악을 파헤칠 수 있다. 역시 한겨레 기자가 직접 라디오에 나와 한 말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똥걸레는 똥걸레다.

보수정당이나 검찰, 혹은 기업들이 언론이나 기자들에 대해 고소고발을 일삼아도 조용한 이유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래왔기 때문이었다. 원래 평소 힘으로 언론과 기자들을 찍어누르던 존재이기에 새삼 채이고 밟히고 굴려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길들여져 온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은 어째서 안되는 것인가? 역시 그래왔기 때문인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어지간해서는 언론이나 기자들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삼가해 왔었다. 기껏해야 말 몇 마디 험하게 하는 정도였지 고소고발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말 몇 마디 한 것도 여론이 뭐라 하기라도 하면 바로 철회하고 사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언론이 뭐라 보도를 하든 반응않는 것이 정상이고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도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이기에 참는 것이 상식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민주당은 언론과 기자를 상대로 고소고발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자칭 진보언론들조차 보수정당과 보수정권을 상대로 비판할 때는 표현 하나까지 세심하게 주의해 쓰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최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혹시라도 사실과 다른 것이 있으면 바로 무릎꿇고 사과한다. 아예 머리를 조아리고 바닥을 찧으며 용서를 구하는 경우마저 있다. 보수정당보다도 이 사회의 실세 중의 실세라는 검찰총장이라면 벌거벗고 누워서 배가르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아니면 다치니까.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가는 크게 곤란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되는 상대에게는 그래도 되고 그래야 하는 상대에게는 그래야 한다. 언론의 속성이기 이전에 소인배들의 속성이다. 양심도 신념도 지조도 절개도 없는 놈들에게는 그런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지난 1월 아예 대놓고 선거법을 위반하는 칼럼을 임미리가 쓰고 경향이 게재한 것도 그런 연장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과연 보수정당을 향한 것이었으면 가능하기는 했을까. 이명박근혜 정부에서였다면 감히 엄두라도 낼 수 있었을까. 그러나 민주당이니까. 그래도 되는 정당일 테니까. 그래서 나경원이며 홍준표가 기자를 고소하고 아예 회견장에서 내쫓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민주당에서 기자 고소하고 혹은 비판적인 논평을 내니 온 언론이 들썩인다. 오히려 검언유착의 의혹을 묻기 위해 알릴레오 패널 하나의 성희롱성 발언을 크게 키우는 경우마저 생긴다. 유시민이 사과할 것을 알았으니까. 가세연이나 홍카콜라라면 사과할 일 같은 것 없다. 그러니까 조국 전장관의 고소고발에는 반발하면서 윤석열의 기자고발과 송치에는 침묵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대로 두고만 봐야 하는가.

 

조국 전장관이 따박따박 하나하나 언론에 대해 악의적 오보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그래서 민주당과 지지자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이유인 것이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언론이 자칫 선을 넘거나 하면 보수정당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든지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사실 명분도 좋았다. 너무 봐주기만 했더나 언론이 넘어서는 안되는 선까지 넘고 말았다. 가족을 걸고 넘어졌다. 공직자 개인에 대해서는 공인이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사인에 지나지 않는 공직자 가족들을 대상으로도 온간 악의적인 비방과 모욕과 조롱이 일상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직자 개인에 대해서는 무어라 주장해도 용인하겠지만 가족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그래서 윤미향 의원의 경우도 남편이 나서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고 있는 것이다. 윤미향 의원 자신은 시민단체의 대표로서 공인이기도 하기에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그냥 개인사업을 하는 남편의 경우는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추미애 장관도 그래서 아들이 나서서 언론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는 중이다. 김용민 의원은 한 발 더 나가 아예 진중권을 대상으로 모욕죄로 고발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결국 뭐냐면 빌미를 준 것은 어디까지나 언론이며, 공직자의 검증에 가족까지 끌어들인 보수정당이란 것이다. 그것이 왜 문제인지도 모르고 비판의식없이 받아쓴 것도 언론의 너무나 큰 잘못일 수 있다. 그러니까 민주당도 더 이상 참지는 않겠다. 그래서 그 첫발을 조국이 여전히 수많은 언론의 비난 속에 내딛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 또다른 조국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은 외쳤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온라인에서만 사람들이 열사가 되고 투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런다고 누군가에게 실제로 쳐맞을 위험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온라인에서 대단히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일수록 그래서 자신을 향한 작은 비판조차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누군가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으로 고소고발당하면 그때부터는 오만 우는 소리를 쏟아내기도 한다. 쳐맞아보면 안다. 제대로 아파보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를 몸으로 깨닫고 그때부터 조심하게 된다. 민주당도 잘못 건드리면 좆되는 수가 있다. 민주정부도 괜히 잘못 선을 넘었더가는 진짜 인생 조지는 수가 있다. 이동재가 그 대표적인 예 아니던가.

 

그러니까 더 반발하는 것일 게다. 아니면 진짜 제대로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대충 걸리는대로 비틀고 키워서 정부와 여당만 욕할 수 있으면 권력과 싸우는 기사행세도 제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일일이 취재해서 확인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이다. 어디 감히 민주당따위가. 마치 하루종일 술쳐먹고 놀다가 공사가 아직 안 끝났냐는 집주인의 말에 화부터 내는 인부들 꼬라지인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가족까지 걸고 넘어지는 기자들을 더이상 봐줄 생각이 민주당은 없을 텐데. 더이상 그래도 되는 민주당은 없다. 그래야 되는 민주당도 없다. 존중없이는 존중도 없다. 언론의 자유를 먼저 짓밟은 것은 선을 너무 넘어버린 언론 자신이다.

 

이제부터 기자들도 몸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민주정부에 대해 기사를 쓸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발로 뛰어 취재한 뒤 표현을 조심해가며 써야만 한다. 보수정당에 그러는 것처럼. 검찰에 대해 그러는 것처럼. 그토록 현정부와 여당에 날을 세우는 자칭 진보들이 검찰을 향해 조심하는 것을 보면 어찌나 안쓰러운지. 정의도 신념도 진실도 용기도 무엇도 없는 그 비루함이란. 댓가를 치러야겠지.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려 했다면 대가는 엄중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언론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언론이 그동안 해 온 일들의 결과다.

 

조국 전장관을 지지하는 이유다. 하나하나 따박따박. 조국 전장관 하나로는 부족하니 윤미향 의원의 가족들도 한 번 나서봐도 좋을 것이다. 추미애 장관 가족들도 절대 언론을 그대로 두고 봐서는 안된다. 징벌적손해배상제는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이낙연에 거는 기대다. 이마저 못하면 대통령은 포기하는 게 옳다.

오래전 공사장에서 일하면 새참 때 막걸리도 한 잔 씩 돌리고 했었다. 당연히 안 될 일이다. 하도 안전사고가 일어나니까 아예 법으로 절대 그러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다. 현장에서 반응은 어땠을까?

 

안전모, 안전화, 안전장갑 꼭 하라. 그렇게 싫어한다. 근데 안전모는 솔직히 나도 별로다. 여름에 하루 쓰고 나면 온통 뭐가 나는 것 같은게 따갑고 가려워서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장에서 반발한다고 안전장비착용을 철회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개혁이라는 게 그렇다. 하다못해 군대에서도 그래도 뭐 하나 좋게 만들겠다고 지침이 내려오면 일단 병들부터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혹행위 하지 말라 해도 꼭 하고, 구타 하지 말라 그리 강조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타한다. 그래야 군대가 돌아간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 하라는 자체가 스트레스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권한으로 여기고 있다면 더욱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공무원들 돈 못받게 하고 기강을 바로세우겠다며 개혁에 나섰을 때 공무원들의 반응은 어땠겠는가. 택시들 규제하고 단속할 때는 어땠을까? 당연히 개혁을 시작할 때는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기득권의 저항이 없으면 그것은 개혁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저항을 당연하게 받아 옮기며 개혁은 잘못되었다 주장한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물론 기자와 검찰은 이해공동체다. 아예 대부분 기자들이 자신들은 검찰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기사를 쓴다. 검찰이 옳다면 옳고, 검찰이 그르다면 그르다. 검찰이 검다면 흰 것도 검은 것이고, 검찰이 노랗다면 파란 색도 노란 것이다. 그래도 되었던 이유는 검찰이야 말로 옳고 그르고 검고 노란 것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찰만 따라서 기사를 쓰면 전혀 문제될 일이 없었다. 그러니 검찰을 지켜야 한다. 검찰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기자인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검찰이 그동안 누리던 기득권과 편의로 해오던 관행등을 바로잡으려 한다. 귀찮고 성가시다. 피해가 막심하다. 그래서 검찰이 반발하고, 그런 검찰과 한 몸이 된 기자가 반발한다. 그래봐야 법무부는 검찰청의 상급기관이고 법무부장관은 검찰의 상관이다. 다만 이런 경우만 기자들은 쏙 빠진다. 양아치들이다.

 

아무튼 제발 집단으로 사표 좀 내주었으면 바라고 있을 지 모르겠다. 좋은 변호사들 많다. 오히려 검사들보다 더 현실에 밝고 양심적인 변호사들이 검찰 밖에 채이는 상황이다. 과연... 그러거나 말거나 개똥이 뒹굴어도 기차는 달려간다.

 

어이없으면서도 한 편으로 이해가 가는 이유다. 검찰과 언론은 한 몸이다. 검사와 기자는 자웅동체다.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공중파와 종편과 종이신문의 구분조차 없다. 현실이 그렇다. 똥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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