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고 노무현 대통령이 로스쿨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사법연수원을 매개로 한 검찰과 사법부의 유착을 깨고자 하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원래 행정부인 검찰을 오히려 사법부인 법원이 스스로 자신들과 동류라 여기게 되는 이유였다. 같이 사법고시를 봤고, 사법고시에 합격도 했고, 사법연수원에서 같이 연수도 받았다. 사법연수원 기수가 같으면 서로 있는 곳은 달라도 동기고, 사법고시와 사법연수원이라는 매개로 그들은 그렇게 판검사로 하나가 된다.

 

물론 양승태의 사법농단 이후 법원이 검찰에 제대로 약점을 잡힌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공개되지 않았을 뿐 양승태의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가 아직 다수 사법부에, 그것도 상층부에 포진해 있을 것이란 뜻이다. 김명수가 법원개혁에 적극적이지 못한 이유도 아마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개혁을 위해 인적청산을 하려 했더니 법원 자체가 아예 사라질 지경이 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승진한 대다수 판사들이 양승태 라인에 속해 있었다. 한 마디로 양승태 라인 없으면 법원이 돌아가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검찰이 마음먹고 달려들면 기소될 인간들 또한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원래 검찰과 법원은 한 몸이었으니.

 

일단 사법고시만 합격하면 열쇠 몇 개는 기본으로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뚜쟁이들 통해서 자연스럽게 혼맥을 통해 주류사회에 편입했던 것이 바로 과거의 판검사들이었었다. 남들보다 공부 잘해서 사법고시 합격했고, 결혼을 통해 그야말로 이 사회의 주류에 편입되었고, 그런데 가만 돌아보니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사법고시와 사법연수원이란 고리로 서로 얽혀 있다. 대단하지 않은가. 엘리트이지 않은가. 자신들이 법을 통해 이 사회를 지배하고 심판한다. 그런데 여기에 양승태의 사법농단으로 목줄까지 잡혔으니 판사는 판사라서, 더욱 검사는 검사라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것이다. 오히려 감히 어디 검사와 판사를.

 

세상에 피의자가 임의제출로 자료를 제공할 가능성이 있으니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압수수색을 기각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피의자가 피의자인 이유는 범죄를 저지르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은폐하려 하고 있기에 피의자인 것이다. 자수한 것이 아니다. 정의를 위해 스스로 불의를 고발한 것이 아니다. 끝까지 은폐하려 하는 것을 몇몇 언론이 끈질기게 파헤쳐 수사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검찰총장 어부인이시니까. 하긴 그러니까 자칭 진보들이 윤석열 검찰총장 만세를 부르며 빌붙어 먹으려 하는 것일 게다. 진짜 살아있는 권력이란 검찰이니까. 그런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청와대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이상 문재인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래서 한겨레 기자들은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순간 이미 청와대의 유죄까지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검찰인데.

 

아무튼 그래서인 것이다. 검찰은 사법부가 아니다. 행정부 공무원들이다. 사법부는 법원이며 별개의 존재여야 한다. 오히려 항상 서로 경쟁하는 긴장관계에 있어야 한다. 검찰과 법원이 유착하면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바로 국민들이라는 것이다. 자칭 진보 새끼들이 얼마나 국민을 개똥으로 여기는가. 대부분 그런 유착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힘없는 서민들일 텐데도 오히려 그런 유착을 옹호하며 그 전위가 되려 발악 중이다. 그러니까 검찰과 사법부를 사법고시 단계에서 서로 분리시키자. 나아가 변호사 시험을 절대평가로 바꾸어 더 많은 수를 양산해 내보내면 더욱 검찰과 사법부가 유착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사회생활 오래 하고 판사가 된다면 대학이라는 학연도 그 의미가 조금은 희석된다.

 

검찰과 법원이 유착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하물며 청와대조차인 것이다. 청와대며 현직장관까지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판사 출신이고 검사 출신이면 이렇게 달라진다. 그에 대한 비판 한 마디 없다. 바로 그토록 입바른 소리만 일삼던 자칭 진보들까지. 로스쿨을 지나 이제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를 더 늘려야 할 때다. 마지막 단계다. 같이 시험을 친 놈이 또 누가 있는지 몰라야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지. 법을 배운 쓰레기들이다. 자칭 법조인이란 것들은.

그래서 내가 말했잖은가. 류호정이 대통령 앞에서 김용균법을 가지고 1인시위한 자체가 국민의힘의 사주를 받았거나 아니면 알아서 추파를 던지려 그런 것일 거라고. 세상에 민주당더러 노동문제에 대해 국민의힘을 본받으라는 개소리를 너무나 당연하게 지껄이고 있는 중이다. 중대재해법의 제정과 관련해서 국민의힘과 연대하려 한다. 그런데 아는가? 류호정이 그토록 1인시위까지 해가며 비판하는 김용균법이 어떻게 그렇게 누더기가 되었는지?

 

그동안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민주당이 얼마나 많은 법안을 만들고 정책을 추진해 왔는가는 깡그리 잊는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국민의힘의 전신이던 보수정당들이 집요하게 저지하고 방해해 왔는가도 완전히 무시한다. 당명이 바뀌었으니 별개의 정당이란 것인가. 그러니까 노동자들이여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에 표를 주라.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이여 민주당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국민의힘에 힘을 실어주라. 노동문제에 있어 그동안 가장 선명한 정체성을 보여 온 정의당이었기에. 그런 정의당이 하는 말이니까. 그러므로 정의당의 기준에서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이 굳이 정의당과 손잡아야 하는 이유고, 정의당이 국민의힘과 연대하며 내줄 수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장시도 그렇게 왼쪽에서 민주노동당이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런 목적이었다. 그래서 굳이 김용균법이었던 것이었다. 김용균법이 어떻게 그렇게 누더기가 되었는가. 누가 김용균법을 반대했고 끝내 무력화시키고 있었는가. 물타기다. 세척이다. 그러니까 모든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있다. 조만간 노동자의 편에서 기사를 쏟아내는 조중동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노동자를 외면하는 모순된 진보정권이라는 프레임이면 다시 한 번 자칭진보언론들이 보수언론과 손잡기 아주 좋은 명분이 되어 준다. 홍세화니 뭐니 늙다리들도 죄다 기어나올 테고. 그러니까 말했을 것이다. 저들의 진보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고.

 

세상에 국민의힘이 도와준다니 저리 기뻐할 수 없다. 그동안 내내 무시하다가 한 번 힘 실어준다니 세상에 국민의힘보다 노동자를 생각하는 정당도 없는 것이다. 저들이 진정 바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주인인 보수진영으로부터 인정받고 도움받는 것을. 그게 진정한 진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입법과 정책으로 이루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보수정당에 의해 이루어져야 가치가 있는 것이다.

 

민주당 2중대 소리는 그리 싫더니면 국민의힘과 손잡는 건 아예 아무 거부감도 없다. 먼저 추파를 던졌으면 비루한 것이고, 뒤에서 이야기가 오간 것이면 비열한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된다. 정경심 교수가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찾으려는 것을 부정한 것처럼, 조민씨 집을 밤늦게 남자들이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유시민도 이제 정의당에 대한 미련을 버릴 때가 됐다. 그래서 '자유론'을 들고 나온 것 아니던가? 그냥 웃긴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작년 9월 기자간담회에서 조국 전장관이 건장한 남자기자 둘이 딸이 혼자 사는 집에 밤늦게 찾아와 문을 두드리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도대체 기자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 본 적이 있었다. 그토록 성인지감수성 주장하던 생물학적인 여성기자들도 한 목소리로 말하더라.

 

"기자가 취재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대상이 조국 전장관의 딸이 아니었고, 밤늦게 찾아와 문두드린 놈들도 기자가 아니었다고 생각해 보라. 그래도 그 생물학적 여성기자들은 그럴 수 있는 일이라 무심히 넘기려 했을까? 여성이 많이 사는 동네에 남성이 서성이는 것 가지고도 생난리 지랄을 떨어대는 게 바로 그들 생물학적 여성기자들이란 것이다. 그러면서 입만 열면 떠들어대는 게 바로 성인지감수성이다. 그냥 집 주변을 서성인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 문앞까지 찾아와서 문을 두드린 것이다.

 

둘 중 하나다. 조국 전장관의 딸이어서 여성으로 인정하지 못했거나, 기자가 그런 것이어서 그럴 수 있는 일이 되었거나. 뭔 말인가? 언론이 떠들어대는 성인지감수성이란 단지 정치적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토록 여성의 인권에 관심이 많은 여성단체, 진보단체들은 어떠한가. 아무리 취재를 위한다고 여성 혼자 - 그것도 민간인에 지나지 않는 젊은 여성이 혼자 사는 집을 남성들이 밤늦게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무일도 아니라 생각하는 것인가. 역시 둘 중 하나다. 조국 전장관의 딸이어서거나, 아니면 기자라서거나. 그런데 그 기자란 오로지 현정부를 공격하는데만 혈안이 된 기자다. 같은 고소고발을 당해도 현정부에 우호적인 기자들은 기자협회에서도 나서서 성명을 내거나 하지 않는다. 현정부를 적대하는 기자들만 성명을 내고 보호하려 노력한다.

 

그러니까 말했잖은가. 지금 여성주의란 민주정부를 무너뜨리고 보수정권을 다시 되찾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진선미 같은 민주당내 여성주의 정치인들도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민주당과 반대편에 있는 이들만 여성이다. 그들의 인권만 보호할 가치가 있다. 오히려 더 예민하게 더 민감하게 더 공격적으로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하긴 정경심 교수가 시민으로서 자기 권리를 지키겠다는 것 가지고도 손석희 벌레새끼는 지랄거리고 있었지. 손석희 감싸는 개새끼들은 그래서 똑같은 새끼들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이니까 그래도 된다. 나아가 민주당이니까 그래야 한다. 기자는 그래도 된다. 기자니까 그래야 한다. 그 어디에 여성이 있고 인권이 있는가. 그따위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성인지감수성따위 귓등으로 들어도 된다. 어차피 저들끼리의 놀음이라.

 

기소의견으로 송치되었다 한다. 명백한 범죄다. 그러나 과연 기자협회가 가만히 있을 것인가. 특히 여성기자협회나 여성단체가 가만히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리 주장하지 않을까. 성인지감수성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만을 보호한다. 그게 바로 지금 이 사회 여성주의의 현실이다. 개소리다. 똥냄새만 풀풀 난다.

일단 부정이든 비리든 범죄가 성립하려면 이해가 존재해야 한다. 누군가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봤다. 당연하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손해더라도 부정이든 비리든 저지른 당사자에게는 이익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설계수명이 다한 원전을 조기에 폐쇄키로 하는 결정이 누구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인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현정부 들어 탈원전과 함께 추진중인 신재생에너지 사업과 연관지어 주장하기도 한다. 현정부의 탈원전 정책에는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이권이 깊이 개입되어 있을 것이다. 이미 이명박 정부 전부터 추진된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대해 새삼 공격하는 주장이 늘어난 이유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현정부와 여당의 인사들이 그쪽 업자들과 유착되어 있기 때문이고, 따라서 탈원전은 현정부와 여당의 거대한 이권사업에 지나지 않는다. 오죽하면 탈원전만 제대로 털어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수 있을 것이란 주장까지 나오겠는가. 

 

아마 윤석열이 노리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일 것이다. 원전 조기폐쇄 결정과정의 문제를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현정부 사이의 관계와 연결할 경우 정권차원의 거대한 권력형 범죄로 몰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오히려 현정부 들어서 태양광 등에 대한 규제가 더 강화되었다.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한 정책은 이미 훨씬 전부터 조금씩 시행되며 이명박근혜 시절 들어 본궤도에 오르고 있었는데 어떻게 현정부만을 특정해서 그 고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 그렇더라도 원전 조기폐쇄와 태양광 발전과의 사이에 직접적인 고리를 찾아야 할 텐데... 아, 언론을 믿는가? 하긴 검찰이 그렇다면 한겨레나 경향 같은 자칭 진보들도 원전 찬성론으로 돌아서기는 하겠다. 그렇더라도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해야 할 텐데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그러니까 헛짓이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정치공세다. 민주당이 윤석열과 검찰더러 정치질한다 주장하는 이유다. 윤석열이 절대 대선후보가 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아무리 재판을 통해 무죄로 판결나더라도 한 번 제기된 의혹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심리의 문제다. 사실이 아닌 믿음의 문제다. 그러니까 정부의 탈원전정책에 문제가 있다. 중대한 부정과 비리의 의혹이 있다. 그 사실을 현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에게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어차피 수사를 해도 처벌도 못할 것을 그냥 이슈용으로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검찰권력을 이용해 액션만 취하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어떤 이해를 가지고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가며 원전의 조기폐쇄를 결정했을 것인가. 그러도록 유도하거나 압력을 행사했을 것인가. 그냥 단순히 업무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정책의 성패는 법적인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알면서도 그런다는 점이 더 고약스럽다 할 수 있다. 마지막 발악인 것일까.

 

어떤 대가가 오고 간 것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이해가 관여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정책결정 과정에서 판단의 근거 가운데 일부에 오류가 있었다. 오류라 판단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그조차도 미래에 대한 전망치라면 오류가 오류일 수 없게 된다. 윤석열을 검찰개혁의 적임자라 여기며 지지했던 인간들이 얼마인데. 병신은 답이 없다. 항상 결론이다.

내가 진중권이나 서민 등의 글을 읽지 않는 이유는 다른 것 없다.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주제로 글을 쓰다가 중간에 뒤집어 엎는 이유도 같은 이유다. 쓰이지 않는다.

 

글이란 생각을 따라가고, 생각은 곧 흐름이다. 조각조각의 생각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면서 하나의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면 그것이 글이 되고 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잘 쓰인 글은 그 내용에 대한 이해와 상관없이 잘 읽히는 것이다. 논리가 어떻고 사실관계가 어떻고 따지기 이전에 진짜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고 쓴 글이기에 쉽게 한 번에 읽히는 것이다. 반면 아무리 내용이 타당해도 억지로 끼워맞춘 글은 읽기가 영 불편하다. 물론 아예 다른 사람이 따라가는 자체가 버거운 사고의 레벨을 가진 인간들도 존재하기는 한다. 이를테면 칸트나 비트겐슈타인 같은 부류들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면 결국 이해하고 났을 때 희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마저 없다면 그걸 뭐라 판단해야 할까?

 

글을 쓰다 말고 뭔가 자꾸 말을 지어내려 하면 그건 이미 내 스스로가 나 자신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미 다음 문장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떠올라야 하는데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억지로 부여잡고 이어붙이려 한다. 그건 이미 내 생각이 아닌 것이다. 그런 건 써봐야 나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글에 욕이 많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내 생각을 쓰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욕까지 거르지 않고 - 물론 그럼에도 상당부분 순화시켜 곁들여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경우 내가 쓴 글을 나중에라도 다시 읽게 되면 당시 내가 어떤 감정상태였는지까지 생생하게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만큼 솔직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의 진중권은 그런 게 없다. 서민의 글은 예전부터도 잘 안 읽혔다. 그래서 아예 이름 자체를 기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진중권은 몇 년 전까지 동의여부와 상관없이 꽤 잘 읽히는 글을 쓰고는 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참 쉽게 읽힌다. 그런데 최근 진중권의 글을 보고 있으면 세 줄을 넘어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건 뭐 배설도 아니고 진짜 글쟁이로서 고약한 상황이라 봐야 할 것이다. 글의 내용이 아닌 호흡을 중요시하는 내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영 읽기 고약한 것이 지금 진중권의 글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김용민이나 이동형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있어도 잘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많다. 의도하여 만드는 목소리가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이유다. 진영과 상관없이 말로 글로 먹고사는 놈들은 그래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그나마 강준만의 진정성을 이해하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읽히는 느낌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진심인 것이다. 변절이 아니라 그냥 지금 강준만이라는 개인의 보는 현실과 판단이 그렇다는 것이다. 바로 강준만과 진중권의 차이다. 강준만은 보는 방향이 달라졌고, 진중권은 말하는 대상이 달라졌다. 그 차이는 작은 듯 너무 크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제발 진중권 글 좀 퍼다 나르지 말라는 것이다. 덕분에 요즘 내가 갑자기 난독증이 왔나 고민하게 되었다. 읽히지 않는 글처럼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들리지 않는 말이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남의 말 듣지 않고 남의 글 읽지 않으면 어느내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글을 써도 읽히지 않게 된다. 그런데 지식인이라 불린다. 지식인이 그렇게 값싸진 것일까.

 

아침부터 핸드폰 찾는다고 물속을 헤집고 다녔더니 피곤하다. 확실히 요즘 핸드폰들 방수기능이 짱짱하다. 밤새 물속에 쳐박혀 있었는데 여전히 멀쩡하다. 일단 말려서 써야 할 것 같고. 진중권은 제발 부고기사만 보기를. 사는 게 힘들다.

 

 

나도 한 때 인터넷에서 글쓰는 행위에 나름 의미를 부여하던 때가 있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지 않나 싶다. 돌이켜보면 도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닌 것인지 부끄럽기만 하다. 인터넷은 인터넷이고 글질은 단지 글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블로그하면서 그 흔한 리플접대도 않게 되었다. 뭔 의미인가? 나는 내가 쓰고 싶은대로 쓰고 사람들은 찾아와 자기 읽고 싶은대로 읽고 리플을 단다. 그 이상 나와 그들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 내 생활은 블로그가 아닌 현실에 있다.

 

결국 육체노동을 시작했다. 요즘 크게 이슈가 되고 있는 그 일이다. 물류가 공사장 노가다보다 좋은 점은 매일 일정한 거리를 출퇴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따로 숙식을 하지 않으면서도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까지 짧다. 그리고 주 6일이 대부분인 공사장에 비해 주 5일로 주말을 온전히 쉴 수 있다. 한 마디로 더 많은 시간을 휴식과 충전에 쓸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일도 더 힘들고 급여도 더 적고 야간에 일을 해야 하며 급여상승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은 단점이다. 어찌되었거나 역시 다른 기술 없이 돈 벌려면 몸 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육체적으로 좀 더 편한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급여수준을 생각하면 사실상 대안은 없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그래서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내 벌이는 내 몸이 고생해서 벌어들인다. 블로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아예 까맣게 잊고 있을 때 쯤 100달러인가 입금되었다고 메일 날아오는 정도는 용돈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진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 하고 싶은 모든 말을 다 블로그에 쏟아낼 수 있다. 내가 구독자 눈치를 보겠는가? 리플 단다고 그 내용을 굳이 신경쓰며 고려하겠는가? 블로그질 그냥 귀찮으면 안하면 그만이다. 성가시면 때려치면 그만이다. 이 블로그가 아마 한 11번째인가 12번째인가 그럴 것이다. 한창 때는 블로그질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싸움질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아예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다 개무시한다. 그러고 싶은 사람들은 그러는 것이고 나도 내 하고 싶은대로 한다. 그래서 유튜브는 처음부터도 고려도 안했다. 나는 어떻게 해도 엔터테이너는 되지 못할 사람이다.

 

내가 진중권 부류를 혐오하고 경멸하는 이유다. 정확히 변희재니 뭐니 하는 입만 산 놈들은 그냥 개무시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기자놈들은 다를까? 최소한 나는 남 욕하면서 돈벌지는 않는다. 남 모욕하고 조롱하고 상체를 후벼파면서 내 이익을 구하지는 않는다. 아니 오히려 거꾸로 내가 이익을 얻자고 다른 이의 고통과 불행을 이용하려는 패악질은 하지 않는다. 아마 얼마전에 썼을 것이다. 진중권이나 서민의 욕설을 보면 진정성이 없다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위악같은 위선을 뒤집어쓰고 쓰는 거짓된 분노의 배설물일 뿐이다. 어째서? 목적이 다른 것이다. 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구하고자 하는 것이 따로 존재하는 때문이다. 그들에게 글과 말이란 단지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쓰고 싶어 쓰고 싸고 싶어 싸는 나와 다른 이유다.

 

돈을 벌기 위해, 명성을 얻기 위해, 인정을 받기 위해, 그들은 그렇게 다른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서 글을 쓰고 말을 한다. 그래서 저들의 말에는 진심이 들어있지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자극적으로 더 선정적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게 글을 쓰고 말을 할까만 고민하는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이 바로 흔히 말하는 논객, 혹은 평론가라 부르는 놈들의 실상이다. 김어준이나 김용민, 이동형 등의 부류도 내게는 그래서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진다.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사람은 글이 수단이 되고, 말을 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말이 곧 수단이 된다.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어 버린 글과 말에 어떤 진정성이라 할 만한 것이 남아 있을 수 있는가. 그러니까 어느날 갑자기 김어준이 문재인 욕을 하고, 김용민이 민주당 욕을 하기 시작해도 저들이 지금 버는 수입과 명성과 인지도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서민은 교수질이라도 하니 인정은 한다. 그런데 교수질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뭐한다고 잘 모르는 분야에 저리 끼어드는지. 아마 기생충 전문가일 때보다 더 여기저기서 불러주기도 하고 알아주기도 하는 사실에 맛들인 때문일 것이다. 그 맛 진짜 죽여준다. 나 역시 미미하지만 경험해 본 바이기에 아주 모르지 않는다. 막 여기저기서 추켜주고 누군가는 팬이라 그러고 누군가는 직접 생일이라고 불러서 술까지 사주고 진짜 내가 뭐라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구나. 개뿔. 그러니까 학생들 가르치고 기생충 연구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시라. 그리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생겼을 때 내가 했던 것처럼 착 딸라붙는 욕설로 문재인이든 조국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놈들 대차게 까면 그게 진짜가 되는 것이다.

 

아주 오래던 도시탈출에서 오히려 욕은 황봉알이 더 많이 더 독하게 했음에도 김구라가 더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이유인 것이다. 황봉알은 아무데서냐 욕질을 했지만 김구라는 딱 자기가 욕해야 하는 순간을 골라 그때만 욕하고 끝냈다. 말하자면 진중권과 서민 류의 욕설이란 당시 황봉알의 욕설과 크게 다르지 않는 수준이란 것이다. 김용민과 김어준 사이에도 급의 차이가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 그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한다. 김용민이 오버할 때는 그래서 오히려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김어준은 그냥 나르시스트고. 사람들 앞에서 벌거벗고 춤추면서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황홀해 할 사람이 바로 김어준이란 인간이다. 진중권이 차라리 김어준같은 나르시스트였을 때는 그나마 글이 읽어 줄 만은 했었는데.

 

다만 그럼에도 같은 글로 말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 가운데서도 인정하는 몇 명 중에 유시민이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그동안 읽었을 수많은 텍스트와 고민했을 수많은 시간들이 느껴지는 때문이다. 그건 노동이다. 그야말로 일이다.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고 말을 하니까 돈이 되는 수준인 것이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글과 말이기에 돈을 버는 수준이 되는 것이다.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자료찾기 싫어서 진지한 글 쓰자고 카테고리 만들어 놓고는 몇 달에 겨우 하나 쓰기도 버거워하는 내가?

 

아무튼 일이라는 건 소중한 것이다. 내가 내 몸으로 내 손으로 직접 일해서 돈을 벌어 먹고 산다는 것은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다. 뭔가 대단한 일을 이루어야 사는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자체가 의미가 있고, 산다는 자체가 오로지 존귀한 것이다. 살아있기에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허투루여길 간단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과연 글과 말을 목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냥 내 손으로 내가 벌어 먹고 산다. 글은 그냥 취미생활일 뿐. 대개는 어디서 술쳐먹으며 되는대로 떠들던 소리들을 대충 정리해 올리는 것들이다. 그 이상 무슨 의미가 필요한가. 사회적으로도 무엇이 더 가치있는 일인가는 너무나 분명한 것이다.

 

놈팽이 새끼들은 진짜 사회의 잉여며 해악들이란 것이다. 손가락으로 입으로 떠드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정도로 취해 버린 진짜 놈팽이들은 결국에 세상에 쓸데없는 말들만 넘쳐나게 만든다. 하긴 그런 놈들 모아서 월급까지 주는 언론사라는 곳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썩은 선비란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고래로 하는 일 없이 주둥이로만 한 몫 하려는 놈들은 항상 문제였었다. 새삼 느끼는 것이다. 저 새끼들이 싫다. 끔찍하게도 싫어 죽겠다.

내가 다니는 회사 사장이 뉴스에 나왔다. 글쎄 다른 기업 사장들과 담합을 했단다. 심지어 정권에 뇌물도 상당히 갖다 바쳐 구속위기다. 그런데 그렇게 담합하고 뇌물 갖다 바치는 사이 회사의 매출도 늘었고 덕분에 성과급까지 두둑하게 월급도 밀리지 않고 꼬박꼬박 들어오게 되었다. 직원 입장에서 사장은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그래서 공인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다. 개인이 아닌 공적 존재로써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이들인 것이다. 때로 개인의 선과 도덕과 양심을 벗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심지어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군사작전을 지시하고 승인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더 큰 국가적인 이익을 위해서 작전에 참가한 군인들은 물론 상당수 민간인의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단호히 군사적인 행동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쿠바 미사일사태 당시 3차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우려에도 끝까지 단호한 행동으로 소련과 대치했던 케네디의 리더십이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좋은 사람이 리더가 되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일단 리더가 되고 나면 마냥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이유인 것이다. 좋은 리더가 될 것인가, 좋은 사람이 될 것인가. 리더로서 전체의 이익을 위해 차라리 악역을 맡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 할 것인가. 후자를 들어 흔히 송양지인이라 부른다. 차라리 내가 비난을 듣고 나라를 살리는 것이 리더로서 어울리는 덕목인 것이다. 내가 모든 오욕을 감수하고 나라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리더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인 것이다. 집단의 이익이 지켜질 때 리더는 비로소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그래서 공인이다. 한겨레가 이명박에 대해 평가한 것을 두고 찬양이라 말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어찌되었거나 개인적으로 어쩐 부정을 저질렀든 나라를 안정시키고 국익도 지켜내지 않았는가. 대통령에게 그 이상 뭘 바라게?

 

사람들이 리더에게 바라는 것도 이런 것들이다. 나 대신 진흙탕 속으로 들어가 손에 오물을 묻히고 온몸에 피칠갑을 할 수 있는. 어떤 비난과 모욕과 조롱에도 기꺼이 나를 대신해서 내 이익을 지켜 줄 수 있는. 그러니까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떤 가난한 이들은 '그 분이 다 해 주실 거'라며 눈물까지 흘렸던 것이었다. 나쁜 사람인 것은 안다. 탐욕스런 인물인 것도 안다. 대신 그만큼 기꺼이 악역을 맡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삶을 나아지게 해주지 않을까. 그러니까 당장은 반대편으로부터 비난을 듣고 공격도 받겠지만 당원과 지지자들을 위해서, 무엇보다 국민을 위해서 차라리 그런 모든 것을 감수하고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겠다. 필요하다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반드시 국민을 위한 결과를 내놓고야 말겠다. 과연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차기 리더로써 그만한 결심과 각오가 보이고 있는가.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 이낙연의 차기대선후보로서의 지지율이 경기도지사 이재명에게 추월당하며 지지부진한 상황에 놓은 이유인 것이다. 무려 174석의 거대여당이다. 열린민주당 등 우호의석까지 모두 더하면 민주당 혼자서도 모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거대여당의 대표로써 과연 그동안 이낙연이 이룬 것이 무엇이 있는가? 공수처법을 통과시켰는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통과시켰는가? 아니면 말로라도 이재명처럼 강경한 목소리로 미래의 비전을 들려주고 있었는가? 이재명이 직접 전면에 나서서 무사안일의 관료사회를 비판하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부르짖고 있는 동안 이낙연은 여전히 총리시절 그대로 사람 좋은 당대표로써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겠다. 내 발을 오물에 닿게 하지 않겠다. 내가 진흙투성이가 되지는 않겠다. 그러니까 모양 좋게 그 모든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겠다. 자국민이 타국에서 인질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아니 대한민국의 영토를 타국이 침략한 상태에서도 그저 사람 좋은 자기 이미지만 챙기겠다는 뜻인가.

 

미안하지만 이낙연에게 남은 시한은 그리 많지 않다. 윤석열을 향해 비로소 한 마디 내뱉기는 했지만 이재명과 달리 이낙연은 말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행동에 나서야 한다. 주어진 힘을 목적을 위해 쓸 수 있도록 결단해야만 한다. 지금도 이미 많이 늦었다. 어차피 언론은 반대다. 어떤 언론도 지금 민주당이 추진하는 개혁법안들에 좋은 기사따위 써주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힘도 그것을 알기에 끝까지 반대하며 훼방놓으려 하는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저들로부터 비난을 듣지 않기 위해 그저 인내하기만 하는 것은 그냥 멍청하다는 소리다. 개인으로서는 인품이 훌륭하다는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리더로서는 무능을 넘어 그냥 병신찐따짜가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재명을 그다지 미더워하지 않는 나로서도 거의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 벌써 이낙연 지지에서 이재명 지지로 돌아선 이들도 제법 보이고 있다. 민주당을 개인의 선의를 위한 수단으로 여길 것인가? 자신마저 민주당의 정의를 위한 수단으로 여길 것인가?

 

어쩌면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당대표가 안되었다면 영영 이런 이낙연의 모습을 보지 못한 채 자칫 대선후보 경선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결단하지 않는 이낙연은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자격을 넘어 기본 자체가 안되어 있다.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지 못하고, 책임져야 할 때 책임지지 못한다. 비난과 공격이 두려워서 마냥 주저하며 눈치만 본다. 지난 20대처럼 민주당 의석이 국민의힘과 비등비등한 상황이면 또 달랐을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도 항상 단호했던 추미애 장관과도 그래서 비교가 되는 것이다. 추미애 장관을 지지해 볼까? 스스로 정치생명까지 내주어가며 검찰개혁을 위해 온몸으로 부딪혀 싸우고 있는 추미애 장관에 비하면 이 얼마나 한심한 모습인가.

 

이미 공수처설치는 앞으로 나가기 위한 과정이 아닌 단지 출발점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일단 공수처부터 설치하고 나야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몇 주 전 이낙연에 대해 글을 썼을 때는 대권을 위한 상당한 디딤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안정감도 좋지만 결국 국민이 바라는 것은 주어진 힘을 필요와 목적을 위해 과감하게 사용할 줄 아는 용기와 의지, 즉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이란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사람이 리더가 될 수는 있지만 리더가 항상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다. 리더가 좋은 사람이고자 하면 그는 리더가 되어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과연 이낙연에게 무언가를 책임질 수 있는,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리더십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사람은 좋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란 것이다. 한계가 가까워 온다. 실망이 크다.

유시민 이사장도 말한 적 있었다. 한국 언론은 자기들끼리 논쟁하려 않고 자꾸 정부를 가르치려고만 든다. 서로의 주장과 논리로 경쟁하기보다 누가 정부를 움직일 수 있는가로 경쟁하려 한다. 물론 민주정부 한정이다. 어딜 보수정부에 진보언론 나부랭이가 비판하고 훈계까지 하려 하는가. 이명박근혜 정부 당시 자칭 진보언론 진보정당의 모습이란 딱 독재국가에서 대외적인 이미지를 위해 허락한 관제언론 관제야당을 넘어서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민주주의 국가니까 비판도 견제도 하는데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선까지 넘어서지는 않는다. 민주당에 대해서만 그런다.

 

최저임금에 대해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이 개소리를 늘어놓는다. 물론 저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정론이다. 그러면 그래도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과 정당에서 보수정당과 언론을 향해서 반박도 하고 비판도 하면서 논쟁을 통해 여론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른 방향으로 이끌려 노력해야 하지 않는다. 절대 않는다. 민주정부 시절에는 그럼에도 그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 선명한 진보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며 정부와 여당을 꾸짖고, 보수정부 아래에서는 그럼에도 정부와 언론의 반대에도 민주당이 그것들을 관철시켜낼 수 있어야 한다며 야단만 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민주당 무능론이다. 민주당 무능론을 강화하고 확산시킨 것은 다름아닌 이들 자칭 진보들이란 것이다. 보수정당과 언론의 반대에도 진보를 관철시키지 못하는 무능한 가짜들이다. 저들이 지금도 민주당을 혐오하는 근거로 삼고 있는 것들이다.

 

최근 정의당 류호정이 대통령 앞에서 김용균법과 관련해서 1인시위를 한 것을 보며 분노를 넘어 혐오의 감정마저 느끼게 된 이유였다. 아마 기억할 것이다. 김용균법이 한창 이슈가 되었을 당시 민주당은 어떻게든 김용균법을 입법하려 하고 있었고 당시 자유한국당이 그것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법안을 입법하고 보자고 민주당에서 자유한국당의 요구에 많은 양보를 했었고, 그러고도 부족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운영위에 출석해서 되도 않는 의혹들에 반박해야 했었다. 그러면 당시 자칭 진보언론과 정당, 지식인들은 누구를 비판하고 있었는가? 김용균법을 반대한 자유한국당? 여론을 움직여 김용균법을 약화시킨 주범인 보수언론? 이미 말했지 않은가. 그때도 똑같았다. 정부가 문제다. 민주당이 문제다.

 

이번 류호정의 1인시위에 대해서도 국민의힘의 사주를 받았을 것이라 - 아니더라도 국민의힘과 보수언론에 잘 보이려 기획한 것이라 의심하는 이유인 것이다. 김용균법이 그렇게 된 것은 그나마 민주당의 법안을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이 비틀고 훼손한 덕분이란 것이다. 그런데 그 모든 책임을 대통령과 민주당에게 돌린다. 그동안 해 온 대로 김용균법이 그렇게 된 모든 원인은 대통령과 민주당에게 있다. 실제 법을 통과시키려 했던 정당과 정부가 있고 그것을 막아서며 법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려 했던 정당과 언론이 있는데 어째서 저들 자칭 진보의 비판은 항상 한 쪽 방향만을 가리키고 있는가. 그래서 정부와 여당에서 김용균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서고 보수정당이 반대하면 그때는 과연 자칭 진보들이 정부와 여당의 편에서 보수정당과 보수언론과 논쟁하며 싸울 결심은 하고 있는가 묻게 되는 것이다. 그때도 민주정부 탓, 민주당 탓만 하고 있겠지.

 

오죽하면 자칭 진보언론의 기자란 것들이 방송에 나와서까지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민주정부는 무능하며 악의 온상이다. 왜 그런가? 정권을 잡았을 때는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무력하게 떠밀리기만 했고, 정권을 잃었을 때는 보수정부의 기세에 아무것도 못한 채 허송세월만 보냈다. 그러면 정의당은? 지역구 의석 하나 가지고 아직도 버티고 있는 정의당은 도대체 뭔가? 정의당은 그래서 뭘 했었지? 무얼 하려 했었지? 그를 위해 어디까지 희생하며 무엇까지 싸워 봤었지? 그러나 상관없이 이 모든 것은 민주당 탓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칭 진보가 한국사회 주류로부터 진보임은 인정받는 수단이기도 했다. 민주당을 공격하는 동한 자칭 진보도 진보를 자처하며 존재해도 괜찮겠다.

 

그동안 말해 온 내용이다. 한국 진보가 진보로써 존재할 수 있는 비결이다.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을 공격해야 한국사회의 주류로부터 이쁨을 받는다. 괜히 민주당과 보조를 같이 해 봐야 지난 선거에서처럼 자기네 후보들 신상이나 털릴 뿐이다. 정의당 털릴 것 많다. 사실이든 아니든 내가 여기저기서 주워듣는 이야기들이 있다. 조국 전장관 식으로 털면 나올 게 그리 없을까? 류호정도 그냥 맛배기로 살짝 건드린 것 뿐이다. 주류사회로부터 진보라고 하는 지분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을 희생양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당은 무능하며 악하다. 위선적인 가짜들이다. 말하자면 학습된 증오인 셈이다. 민주당을 증오해야 진보로써 존재할 수 있다.

 

정의당이 저토록 민주당 비판에 목을 매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눈치보는 것이다.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좀 봐 달라. 윤석열을 나름대로 비판하던 박원석이 윤석열의 편에서 추미애를 비판도 아닌 비난하는 꼬라지를 보라는 것이다. 정의당과 한겨레를 분리할 필요가 없다. 서민과 진중권과 홍세화와 강준만을 따로 분리해서 볼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경향은 아직까지도 자칭 진보언론으로 저들과 한 편에 있다. 그래서 저들은 과연 진보적인 가치를 위해 지금껏 무엇을 해오고 있었는가. 조선일보도 때로 민주정부를 공격할 때는 진보적인 논조의 기사를 내기도 한다. 한심한 것이다.

형사재판이란 피고가 자신의 결백을 밝히는 것이 아닌 기소한 검사가 범죄혐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 무존재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래서 행위를 구체화할 수 있는 증거를 통해 사실을 명백하게 재구성함으로써 범죄를 입증하면 그제서야 범죄사실을 인정하여 유죄판결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검사가 제시한 증거들이 부실하고 허술하여 범죄를 입증하는데 부족한다 여겨질 경우에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로 판결하게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과연 김경수 지사가 당시 현장에서 킹크랩의 시연을 보았는가? 시연을 보면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거나 한 적이 있었는가? 그래서 드루킹 일당의 댓글공작에 김경수 지사가 얼마나 직접 관여하고 있었는가? 심지어 특검이 제시한 타임라인마저 결국 닭갈비를 포장해 간 사실이 밝혀지며 부정되었던 터였다. 특검이 제시한 타임라인대로 김경수 지사가 시연을 볼 수도 지시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닭갈비를 포장해 간 사실 자체가 아예 시연을 보지 않았다는 증거는 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에 바로 유죄가 나오고 말았다. 안 봤을 수도 있지만 아주 안 봤다고 단정지을 수 없으니 본 것으로 간주하고 유죄판결을 내리겠다. 이건 또 어느 나라 법논리인가?

 

피고가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피고는 그저 검사의 기소내용을 반박하여 혐의만 부정하면 되는 것이다. 검사의 기소가 사실이 아니면 범죄가 아니게 된다. 그런데 검사의 기소내용이 반박되었는데 피고의 무죄입증이 부실하다고 유죄판결을 내린다면 도대체 재판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판사란 종자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 것인가. 판사들 그리 혼맥 좋다더니만 한 번 뒤를 파헤쳐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전형적인 심증재판이다. 예단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판결을 내린 것이다. 알면 알수록 고약하다. 공부 잘하는 머저리들이 이래서 문제다. 시험이 정의고 공정이다? 지랄이다.

"입을 맞추고 허위의 진술을 한 사실은 분명히 있으나, 수감 중에 자신들 기억을 증명할만한 객관적 자료가 불충분하다고 여긴 나머지 때로는 거짓된 때로는 과장된 진술 했다고 하여 그저 이를 탓하며 그들의 진술 전체를 없는 것으로 돌리는 건 실체적 진실 발견이라는 형사재판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그동안 시험성적으로 줄세워 뽑은 사법제도의 현실인 것이다. 저 말의 내용이 이해가 가는가? 한 마디로 앞뒤도 안맞고 거짓말로 드러난 부분이 있어도 판사의 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진실로 여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증거도 필요없고, 주장의 객관성과 일관성도 필요없다. 내가 유죄라 판단했으니 유죄고 내가 무죄라 여기고 있으니 무죄다. 내가 공부 잘해서 판사씩이나 되었으니 내 마음대로다.

 

사법농단의 이유였다. 검찰이 부패한 이유이기도 했다. 아니 그런 검찰과 언론이 붙어먹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서울대 나왔는데. 내가 명문대 출신인데. 그 가운데서도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에까지 합격했다. 그러니까 그 보상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내 마음대로 할 거다. 그래서 저따위 판결문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증거가 없는데 서로 말도 맞추고 거짓말도 하고 과장도 하고 그러나 진실이다.

 

김경수는 드루킹 같은 인간들을 걸러내지 못한 것으로도 일단 내 기준에서 아웃이다. 아무리 선거가 급해도 만날 사람을 만나야지 선거운동 급하다고 저따위 인간들과 어울리는가. 그와 별개로 참 재판부가 병신같다. 원래 인간이 병신인데 그런 인간에 너무 신뢰를 가지고 너무 큰 권한까지 부여한 탓이다. 저따위가 판사란다. 부모가 대체 뭘 가르쳤는지. 저래도 판사자식이라고 좋아라 방방곡곡 자랑하고 다녔겠지?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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