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이 궁형이라는 다시 없을 치욕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사기를 완성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었다. 앙리 4세는 왕위에 오르기 위해 심지어 자신의 종교까지 가톨릭으로 바꾸고 있었다. 권력이란 수단이다. 수단이기 때문에 목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유시민도 입버릇처럼 정치에 대해 때로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 말한 것 아니던가. 유시민이 바로 그걸 못해서 지금 야인으로 남은 것이다.

 

신념? 좋다. 양심? 좋다? 약속과 신뢰? 아주 좋은 말들이다. 당헌에 그렇게 되어 있다. 그러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자리를 후보조차 내지 않고 다른 정당에 내준다면 누구에게 좋은 것일까? 지자체장이란 지자체를 이루고 있는 시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장차 더 큰 선거에서 당의 승리를 도울 지역조직의 구심점이기도 한 것이다. 아니 굳이 조직도 필요없이 해당 지자체장이 어떤 행정을 펼치는가에 따라 다른 선거운동도 필요없이 당의 정책과 강령을 시민들에 알리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냥 부산시장 하나 서울시장 하나 내주는 것이 아니다. 부산에는 민주당원이 없는가? 서울에는 민주당 지자체장이 들어서기를 바라는 지지자가 없겠는가? 더불어 부산과 서울에서 민주당의 이념과 정책을 마음껏 펼치고자 하는 인재들이 민주당 안에서도 넘칠 정도다. 그들이 지자체장으로서 자신의 이상과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돕는 것 역시 정당의 역할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당의 실력과 당이 지향하는 정책적 방향성을 대중들에 알리고 확인받고 인정받고 나아가 다시 정권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선거를 당헌 몇 줄 때문에 포기하자?

 

그래서 당원들에 묻는 것 아닌가. 이대로 좋은가. 원래 국가간 종약도 너무 불리하고 굴욕적이다 싶으면 알아서 기회봐서 일방적으로 파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공당이니까. 당헌이란 너무나 중요한 공당으로서의 약속이며 신뢰일 테니까. 그러니까 당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럼에도 약속을 지켜서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만 공당으로서 후보를 내서 검증받는 것이 더 옳을 것인가. 정치란 공적인 것이다. 개인의 양심보다 신념보다 공적인 책임을 우선한다. 그러므로 공당으로서 어떻게 책임을 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오거돈은 몰라도 박원순은 유죄가 확정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냥 일방적으로 유죄라고 단정짓고 낙인까지 찍은 결과인 것이다. 그런 것 다 차치하고 그렇지만 공당으로서의 책임은 그런 사적인 책임을 위해 지자체장이라는 공적인 자리를 거부하는 작은 것이 아닌 그럼에도 지자체장을 차지하여 공적인 책임을 다하는 더 큰 것에 있다. 당원들의 동의까지 받지 않았는가. 이것이 공당으로서 당원의 의지에 따른 책임이고 선택이다. 당연한 것이다. 말은 의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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