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뒤에 '장'자 붙은 자리를 그리 싫어하는 이유다. 그냥 말단일 때는 시키는대로만 하면 된다. 굳이 더 생각할 필요도 없고 판단할 이유도 없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면 하라는대로 그러지 말라면 또 그러지 않으면 된다. 당연히 책임도 딱 거기까지만이다. 하지만 별 것 아니라도 뒤에 '장'이 붙기 시작하면 때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도 내려야 한다. 책임도 져야만 한다. 무슨 말이냐면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와 책임을 먼저 생각하느라 온전히 자신의 주장과 판단에만 맡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거의 매번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어지간한 독재자들조차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며 살지는 못한다. 당장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도움이 될 만한 세력이나 개인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어디까지 어떻게 권력을 나눌 것인가도 결정해야 한다. 북한에서 김정은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김정은 자신의 권력유지에 도움을 주는 다른 주체들에 대해 충분한 대가를 이 순간에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정작 모든 것을 김정일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 같아도 여기저기 눈치보며 신경써야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그냥 독재자니까 김정은 혼자 결정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고 나서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주위도 배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김영철이 한 번 숙청되었다가 다시 복귀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당 안에서만 서로 다른 수많은 주장과 이해들이 공존한다. 서로 다른 이념과 신념과 가치와 지향이 서로 갈등하며 충돌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느 것을 희생시킬 것인가. 대한민국에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과연 반대정파의 주장과 요구라고 온전히 무시만 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내가 권력을 가져야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바를 현실에서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양보하고 무엇까지 타협할 수 있을 것인가. 매 순간이 선택이며, 그 선택이란 무언가를 얻기보다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이기 쉽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리 원하고 주장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이 적지 않으므로. 나는 절대 반대인데 다수의 국민들이 그것을 바라며 요구하고 있으므로. 대신 그 대가로 권력을 가지고서 반드시 절대 양보하지 않고 이루어야 할 한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바로 리더십이라 부르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타인을 이끄는 능력이 아니다. 내가 마음대로 타인들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보하는 것이다. 희생하는 것이다. 포기하는 것이다. 선택을 통해 그들로부터 하나씩 받아내어 그것으로 온전히 하나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거부할 수 없도록 조건을 제시하고 충족해주는 능력인 것이다. 거기에 개인이란 없다. 자신이란 없다. 그래서 리더란 오로지 공적인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혹은 내가 간절히 원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만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런 각오를 가진 이들만이 비로소 리더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리더로서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그들을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정의당을 두고 사람들은 정당이 아닌 정치동아리라고 비웃고 폄훼하는가. 그래서 정의당이 무엇을 양보해 봤는가. 무엇을 포기해 봤는가. 지지자들마저 짜증날 정도로 민주당은 항상 타협에 익숙하다. 양보와 희생과 절충과 포기에 익숙하다. 분위기 봐서 아니다 싶으면 바로 물러서 빠진다. 상황 봐서 괜찮겠다 싶으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장차 선거에서 유리할 것 같다 싶으면 반대하던 법안과 정책도 얼마든지 동의하고 추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언론을 적으로 돌린 상황에서도 항상 보수정당과 경쟁하며 대등한 의석도 얻고 대통령도 당선시켜 정권을 가져오기도 했던 것이었다. 김대중이 좋아서 김종필과 손잡았겠는가. 노무현이 좋아서 정몽준과 연대했겠는가. 문재인이 스스로 바라서 안철수를 설득하고 있었겠는가. 당을 지키기 위해서 김종인이라도 데리고 와야만 했었다.

 

그런 필사적이고 처절한 의지가, 그렇게 간절하고 절박한 권력에 대한 탐욕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당이 있는 것이다. 정의당이 자신들의 선명한 정의와 진보의 이념을 자랑할 때 때로 꺾이고 때로 짓밟히고 때로 부서지면서도 민주당은 보수정당과 몸으로 부딪혀 싸우며 지금의 자리를 지켜왔던 것이었다. 국민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여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상황만은 피하려 노력하면서. 대세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인 지켜야 한다. 그래서 김한길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세력이 크고 강해도 민주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오롯이 민주당의 가치와 지향을 정의하는 그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대사였을 것이다. 왕인 자신의 마음이 지옥에 있기에 백성들이 극락에 사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길을 가고 있기에 백성들이 사는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왕이 저 하고 싶은대로 오로지 좋은 길만 찾아가면 오히려 백성이 지옥에 살게 된다. 그런데도 왕의 마음이 보살이 아니라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한 점 티끌없이 맑지 못하다고 그를 욕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인내하고 인내하고 또 인내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예 싫어 죽겠어도, 화가 나고 원망이 들고 미운 마음에 사로잡혔어도, 혹은 좋고 기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도 그러나 자신은 왕이기에 그런 모든 마음을 접어야 하고 눌러야 하고 끝내는 죽여야 한다.

 

정의당과 민주당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의석수도 적고 정권은 더욱 꿈도 꾸지 못하는 대신 마음은 편한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들의 선명한 주장만 마음껏 내지를 수 있으면 그만이니까. 이런 쉬운 걸 민주당은 왜 못하는가. 그렇게 쉬운 일이기에 민주당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런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 표창원과 같은 이들은 정치를 더욱 혐오하며 그만두기도 한다. 정치란 사람의 길이 아닌 짐승의 길이다. 그런데 그 짐승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와중에도 이 사회는 이나마라도 지켜진 것이었다.

 

새삼 정의당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가소로운 이유인 것이다. 진보적 이념과 정책을 두고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더욱 강하게 비판하겠다는 저들의 의도와 선언이 우습게만 여겨지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동아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속편하게 자신들의 주장이 어떻게 이용될지를 알면서도 선의라 여기기에 고용유연제도 주장할 수 있다. 해고도 쉽게 하고 채용도 쉽게 할 수 있게 제도를 바꾸겠다. 유럽의 어디서 같은 제도를 시행중이니 문제는 없다. 한 점 티끌 없이 투명하기만 해서 그냥 웃게 된다. 그래서 정의당인 것이고 민주당인 것이다. 비판도 아까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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