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한 이해와 판단이 서로 다르다면 논쟁을 통해 자기들끼리 해결하는 것이 원칙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기성의 국가와 사회를 비판하면서 흔히 쓰는 말이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폭력적인 권력구조라는 것이다. 검찰이란 조직에서 다수를 차지하며 그 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 역시 대부분 남성들일 텐데 그런 남성들에게 단지 의견이 다른 같은 여성의 징계를 의뢰하는 것이 과연 타당하긴 한가?

 

그래서 벌써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여성주의의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면서 했던 말이 바로 기생페미니즘이란 것이었다. 스스로 쟁취한 무언가를 가지고 이루고자 하는 여성주의가 아닌 단지 남성의 권력에 기생해서 이루고 싶어 하는 여성주의란 뜻이다. 자신들과 다른 판단과 지향을 가지는 이들과 논쟁을 통해 설득하며 하나씩 쟁취해 나가기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눈에 들어 그들의 비호 아래 권력에 기생하여 일시에 폭압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여성주의란 것이다. 그래서 실제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은 설득의 대상이어야 할 일반 남성 대중이 아닌, 심지어 일반 여성 대중조차도 외면한 채 오로지 권력을 가진 특수한 소수를 향해서만 부르짖는 경우가 많다.

 

진혜원 검사의 판단은 틀렸다. 진혜원 검사의 주장이 잘못되었다. 그렇다면 왜 틀렸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근거를 제시하며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도 설마 같은 여성인데 남성 일반들보다야 근거만 타당하다면 설득하기도 더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차라리 대화를 통해 설득하기보다 진혜원 검사가 속한 검찰이라는 조직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 남성인 검찰총장과 그를 정점으로 이루어진 검찰이란 권력의 구조를 이용하고자 했었다. 같은 여성조차 대화와 설득의 대상이 아닌 권력을 통한 억압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박근혜를 탄핵당하는 그 순간까지 지지했던 것이기도 하다. 여성이 대통령이 되어야 그 힘을 빌어 자신들도 권력을 휘두르며 여성주의의 이상을 이룰 수 있다. 그나마 여성에 우호적인 남성권력이 들어서니 오로지 그에 기대서만 설득과 공감이 아닌 억압과 폭력을 통한 강제로써 그를 이루려 하는 중이다.

 

그야말로 마초 페미니즘이라 할 만하다. 여성주의자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남성권력의 속성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권력이 아닌 남성의 권력에 기대서. 남성의 권력을 이용해서. 그래서 그 권력만 빌려준다면 어느새 자신들의 편이 되는 것이다. 장자연 사건도, 김학의 사건도, 여성의 인권을 처참히 유린한 그런 사건들을 철저히 은폐해 온 언론들과 어느새 한 편이 되어 손잡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이야 말로 진정한 페미니즘 언론이다. 과거 전력은 중요하지 않다. 원래 매춘부에게 손님이 과거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법이다. 몸을 팔려는데 상대가 얼마나 대가를 주려는가가 중요하지 손님의 정체가 무엇인가가 무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래서 기생페미니즘이란 것이다. 그래서 마초페미니즘인 것이다. 권력에 기생해서 그 권력을 사용해 억압하고 강제하는 것 말고 소통의 방법을 모른다. 그만한 위치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이들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2차 가해라는 억지도 그래서 가능하다. 증거를 대가며 구체적인 진술을 하는 자체를 성가시고 피곤해 한다. 그냥 들으라. 그냥 믿으라. 아니면 너희를 벌하겠다. 확실히 박원순에게도 원죄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겠다. 버릇을 너무 잘못 들였다.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전에 먼저 여성 스스로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방법을 배우게 했어야 했다. 소통법을 배우도록 했어야 했다.

 

여성주의보다 우선하는 것이 인본주의다. 여성보다 우선하는 것이 인간이란 가치다. 여성이 절대 인간보다 우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여성 위에 남성이 없듯 남성 위에도 여성은 없다. 그런데 남성 위에 여성 있고, 그 여성 위에 권력있는 남성이 있고, 그런 남성들과 가까운 자신들이 있는 듯 여긴다. 여성주의에는 여성이 없다. 권력에 취한 여성을 도구화하는 소수의 엘리트들만 있을 뿐. 더욱 확신을 가진다. 여성주의는 사회를 넘어 인간의 해악이다. 분명한 깨달음이다.

누군가 강도를 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묻는다.

 

"어디서 어떻게 강도를 당하셨죠?"

"내 말을 안 믿는 건가요? 2차 가해입니다."

 

신고자가 지목한 사람을 불러 대질심문을 한다.

 

"이 사람은 그런 적 없다는데..."

"내가 피해자입니다. 지금 가해자의 편에서 2차 가해를 하는 건가요?"

 

결국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 용의자를 기소한 검사가 증인을 불러 심문하려 한다.

 

"증인 나와주세요."

"왜 증인이 필요하죠? 내가 피해자입니다. 2차 가해입니다."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증거는 이 핸드폰 사진이면 충분합니다. 피해자인데 2차 가해를 하려는 건가요?"

 

그리고 검사 심문이 끝나고 변호인 심문이 시작되려는데,

 

"저 변호사는 뭡니까? 왜 가해자 편에서 변호를 하는 거죠? 2차 가해입니다."

 

재판장이 참다 못해 한 마디 한다.

 

"여기는 신성한 재판정입니다."

"지금 저에게 뭐라 하시는 건가요? 2차 가해입니다."

 

그러니까 왜 가해냐고. 도대체 박원순 시장이 뭘 어떻게 했길래 성추행이라 주장하는 것인가. 그냥 성추행이라 주장하는 것 말고 내놓은 증거라는게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대화방 초대화면 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장에 의문을 표하는 것조차 2차 가해라. 그러니까 성범죄는 일단 신고를 당했으면 사실여부도 따지지 말고 무작정 믿고 지지하기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침묵하는 것도 용납지 않고 오로지 지지의 발언만을 요구한다. 그게 페미니즘?

 

물론 불과 얼마전까지 저런 방식이 통하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요즘도 우스개로 많이들 이야기하지 않던가.

 

"내가 누구인 줄 알아?"

"내가 여자야!"

"내가 고소인이야!"

"내가 피해호소인이야!"

"내가 피해자야!"

"그러니까 믿어!"

"따라!"

"지지해!"

 

씨발 여자가 무슨 벼슬이나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그러고보면 이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대부분이 잘 나가는 여자들이기는 하다. 남자들에게 '어딜 감히!'라 말해도 되는 위치의 여자들이란 것이다. 더구나 언론이 편들어주고 있다. 언론개혁을 위해서 이제는 여성개혁까지 해야 하는 모양이구나. 여성은 언론에게 여성주의란 명분을 쥐어주고, 언론은 여성에게 언론이라는 힘을 빌려주고. 그래서 어딜 감히가 가능해진다. 같은 여성에게마저 인간으로서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을 이야기 할 자유마저 박탈한다.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성추행이냐고.

 

진혜원 검사의 중징계를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검사의 일이란 게 그런 것이다. 누군가 고소고발하면 당사자의 진술과 제시된 증거와 참고인의 진술까지 취합해서 실제 범죄의 성립여부를 판단한다. 그래서 요구하는 것 아니던가. 증거나 증언은 차치하고라도 도대체 뭘 어떻게 당했는지 구체적인 사실이라도 이야기해달라. 그랬더니 하는 말이란 새벽에 출근시키고, 잠깨우게 하고, 속옷 심부름 시키고, 혈압재게 했다. 그래서 속옷 심부름을 여성이라서 시켰었는가? 아니면 비서니까 시킨 것이었는가? 더구나 피고소인으로부터 증언도 들을 수 없을 테니 더욱 엄정하게 자신이 주장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밝혀 재구성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2차 가해라?

 

증거를 요구해도 2차 가해, 보다 구체적인 진술을 요구해도 2차 가해, 그냥 지켜보자고 침묵하니 2차 가해, 죽은 사람은 죽었다고 2차 가해, 도대체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려니 그것도 2차 가해, 피해자의 주장과 다른 정황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것도 2차 가해, 중세 마녀사냥인가? 아니면 이단심판인가? 그냥 믿지 않으면 다 2차 가해고 엄중하게 처벌해야 하는 중죄가 되어 버린다.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자칭 안티페미들은 어디서 뭘하는 쓰레기들인가.

 

온라인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평소 문재인 욕하고 박원순 욕하고 미래통합당 지지하던 안티페미가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박원순과 함께 고소인을 같이 욕하더라.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 그런데 이번엔 나 역시 그냥 맞장구치고 말았다. 그래, 더이상 여성할당제 같은 것으로 여성의 고용을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여자랑 같이 일하는 것처럼 피곤한 일도 없다. 참고로 이 친구는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여직원과는 단 한 마디도 섞지 않을 정도로 지독한 외골수다. 온라인에 취한 놈들이 아니면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도 역시 더이상 여성문제로 싸우기를 포기하고 입장을 같이 하기로 한다. 오랜만에 대화가 부드럽게 잘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의미란 것이다. 정치적 목적과 여성주의의 신앙만 제하면 생각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대체 속옷 심부름 정도가 그렇게 죽은 사람을 부관참시해야 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인가 하는 상식 차원의 판단인 것이다.

 

아마 상황이 달랐다면 당연히 나의 대응도 달랐을 것이다. 죽은 사람을 모욕하지 않고, 무덤까지 파헤쳐 부관참시하려 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는가. 비례의 원칙이란 것이다. 소매치기했다고 손목을 자르고, 도둑질 했다고 목을 매달고, 성폭행 했다고 일가족까지 노예로 팔아넘긴다. 분명 범죄자인데도 그런 경우 그런 형벌까지 받게 된 이들을 동정하게 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지나쳤고 넘쳤고 그래서 선을 넘고 말았다.

 

아무튼 개씨발 쌍것들이라는 것이다. 범죄를 저질렀으면 죄인이지만 이미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갇혔으면 수형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형자들 역시 보편적으로 사회적 약자로 여겨진다. 공권력에 의해 인신을 구속당하고 감옥에 갇힌 채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조차 제약당하고 있는데 과연 강자이겠는가 약자이겠는가. 당연히 죽어서 자신을 위한 한 마디 변명조차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괜히 이미 죽은 사람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 않으려는 문화가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아무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더 대상을 짓밟으려 하고 있다.

 

그래서 과연 진상조사라도 제대로 하고 있느냐면 인권위도, 서울시의 자체조사도 모두 여성들 스스로가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소인과 변호인 자신이 거부하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그렇게 진실이 중요하다면서.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과연 여성단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어째서 여성단체들은 언론과 손잡고 이런 식으로 일을 키우려고만 하고 있는 것인가.

 

어쨌거나 정말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뭔 말만 하면 2차 가해다. 아무말도 않고 있어도 2차 가해다. 죄다 2차 가해고 그 판단은 자신들이 한다. 언론이 부추기니 아주 신났다. 여성운동은 없다. 최소한 앞으로 나에게는. 여성주의자란 내게 있어 그냥 기자와 같은 뜻인 것이다. 안티페미를 외치던 일베 벌레들처럼. 빌어먹을 것들이다.

지금 고소인을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서며 참페미니스트로 추앙받는 강용석과 김재련, 그리고 바로 그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인간쓰레기로 부관참시당하고 있는 박원순, 과연 사람이라면 누구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너무 자명한 것이다. 이번 박원순 시장과 관련한 논란에서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이들과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라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차이는. 그나마 싸가지는 없어도 민주당의 여성주의 정치인들은 영결식까지는 참아주는 인내심을 보이고 있었다. 박원순 시장을 비판하면서도 그동안의 삶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동안의 삶을 인정하지만 그래도... 그마저도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은 박원순 시장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부터 그 죽음을 바라고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그 순간 축배까지 들고 있었다. 여성주의를 대표할만한 인간들이 보인 행동들이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추모하거나, 그동안의 삶과 업적들을 애석해하거나, 박원순 시장에게 씌워진 혐의에 대해 의심을 보이는 이들은 2차 가해자라 부르며 매도하기 급급했었다. 언론과 결탁해서, 언론에 페미니즘이라는 명분을 쥐어주고, 언론이 마음껏 날뛸 수 있도록 힘을 싣고 그에 편승하려 하고 있었다. 언론과 결탁한 놈들이 지금껏 멀쩡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평소 안티페미니즘을 주장하던 일베들은 오히려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을 금과옥조처럼 받들며 페미니즘 전사로 변신하고, 평소 페미니즘을 지지하던 이들이 고소인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가지거나 바로 편들지 않고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이면 2차 가해자라며 공격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평서 안티페미를 주장하던 고소인의 지지자들과 페미니즘을 지지하던 고소인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이들 가운데 누가 그동안 더 올바른 삶을 살아왔다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단지 고소인의 편을 드니 일베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고, 고소인을 의심했으니 2차 가해자이며 여성차별주의자다. 그러면 누구의 편에 서야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냥 가세연과 박원순만 비교해도 바로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김재련 변호사가 지난 정부에서 했던 일들만 놓고 봐도 바로 견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페미니즘이 바라는 인간상이란 가세연이고 김재련이며, 박원순이나 진혜원 등이 아니다. 하긴 윤석열이 진혜원 검사 징계하겠다고 감찰부에 넘긴 것을 보니 역시나 이들이 진짜 누구와 손을 잡고 있는가가 분명해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성주의 변호사가 진혜원 검사에게 중징계가 가능하다 자신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여성주의가 원래 누구를 지지했는가 안다면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 여성주의가 바라는 인간상이란 과연 보편적으로 추구할만한 바른 인간상인 것인가.

 

원래도 페미니스트가 아니었지만 더욱 페미니스트가 되기를 거부하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아무리 내가 가세연과 같아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일베놈들과 같이 놀 수는 없는 것이다. 페미니스트가 바라는 인간이 그런 것이라면 그냥 박원순처럼 페미니스트의 적이 되고 말겠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의 적이란 오히려 훈장이다. 페미니스트의 아군이란 차라리 모욕이고 치욕이다. 페미니스트들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언론이든 뭐든 페미니스트들이 지금 몰아가는 상황이란 오히려 악을 선으로, 불의를 정의로, 부도덕을 도덕과 윤리로 뒤바꾸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그것이 정의라면서.

 

가세연을 앞세우고, 김재련을 앞세우고, 하긴 덕분에 일베가 류호정과 장혜영을 지지하는 웃기는 꼬라지도 보게 되었기는 하다. 원래 저들은 하나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은 - 아니 모르는 척 하는 것은 민주당 내 여성주의자들 뿐. 그나마도 결국 서울시장을 둘러싼 나름의 셈법이 있는 것이다.

 

아무튼 볼수록 쓰레기들만 저쪽으로 몰려가는 듯한 모습이 보기가 좋다. 진중권도 보이지 않는가. 박용진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 않은가. 참 저런 놈들과는 같이 섞이는 자체가 치욕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동안 페미니즘을 지지하며 페미니즘에 반대해 온 자신들을 무시하고 조롱한 것이 원망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대로 고소는 곧 피해자고, 진실을 알고자 하는 시도는 2차 가해라는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디 한 번 당해봐라. 그러면 박원순 하나만 당하고 말겠나?

 

참 병신들이란 것이다. 오히려 기회다. 봐라. 페미니즘이란 이런 것이다. 이런 것들이 페미니스트란 것들이다. 더구나 과연 민주당 지지자라고 모두 극렬 페미니즘에 우호적이었었는가. 오히려 이런 때 손잡고 안티 페미니즘 진영을 강화하는 것이 이후를 위해서도 더 현명한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남성 페미니스트였던 박원순 시장이어서가 아니라 박원순 시장조차도라는 것이다. 자신들을 위해서 그토록 노력해 온 박원순 시장조차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적으로 돌리고 죄인으로 단정짓는다. 그런 게 페미니즘이라면 차마 사람이 가져야 할 신념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그동안 문제되었던 것보다 더 지독하고 더 악랄한 모습을 보이고 있음에도 자칭 안티페미들은 오히려 그런 페미들의 행동을 용인하고 지지하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그런 주장과 행동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진정 반대하고자 하는 것은 페미니즘인가, 단지 민주당이 싫었던 것 뿐인가.

 

웃기게도 정권 초반 남녀간의 성간갈등이 한창 고조되던 무렵에는 20대 남성의 입장에서 페미니즘을 그리 비판하던 언론들조차 어느새 열렬한 페미니즘의 지지자라도 된 듯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안티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의 오월동주라 할 만하다. 민주당 정치인을 죽이려면 서로 일베도 페미니즘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동안 다른 대상들을 상대로 하던 것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란 것이다. 진실을 요구하는 것도, 증거를 기대하는 것도, 그래서 사실관계를 검증하는 것도 모두 2차 가해라는 것이다. 심지어 당사자가 죽었는데 이유가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2차 가해라고 낙인부터 찍어 버린다. 그래서 뭐가 성추행인가? 자는 거 깨우랬다고. 자기가 있으면 시장님이 기분 좋아 하더라고. 속옷심부름 시켰다고. 여비서가 안하면 남비서가 속옷심부름 했겠지. 주말에 출근하는게 그리 싫었던가. 증거라고 나온 게 그냥 대화방 초대하는 화면 하나 캡쳐한 것이다. 아무리 이런 정도로 더구나 얼굴과 이름까지 가리고서 성추행이라고 고발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던가. 그런데도 죽음으로도 씻지 못할 중죄다. 그러니까 늬들이 진짜 안티 페미 맞느냐는 것이다. 저 주장들이 다 옳다면서?

 

정권 초기 여러 이슈들을 두고 논쟁하던 사이라 오히려 더 적나라하게 느끼게 된다. 저 새끼들은 그냥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깔 꺼리가 없어서 페미니즘에 반대했던 것이며, 따라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깔 꺼리가 생기니 바로 페미니스트가 되고 만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남페미라 고소해서 그러는 것이라? 남페미가 싫은 것인가? 페미니즘 자체가 싫은 것인가? 그러면 남페미만 사라지만 페미니즘을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인가.

 

확실히 이런 걸 보면 여성주의자들이 영리하기는 했다. 이들의 반페미니즘이라는 게 얼마나 어이없는 허구고 모순인가를 벌써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불만이 많고, 현정부와 여당에 불만이 많고, 그러니까 그냥 여성을 욕하고 페미니즘을 욕하자. 그래서 현정부와 여당을 욕할 수 있으니 그냥 페미니즘의 편에 서자.

 

이 새끼들 또 페미 어쩌고 하는 꼬라지 보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필요할 때는 페미고 필요없어지만 안티페미다. 그래서 벌레새끼들인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초지일관 안티페미를 주장했으면 인정할 만도 했을 텐데. 지금 저 주장들의 모순이 보이지도 않는 것인가. 뇌가 우동사리거나 우동사리가 뇌이거나. 상종하기도 싫어진다.

어제 kbs 뉴스9에서 자살도 2차가해라고 떠들어댄 모양이다. 고소인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니 그 정체를 알려는 것도 2차가해. 그런데 자신이 당한 성추행을 공동체의 공론에 맡기고자 했던 것은 고소인 자신 아니던가. 공론이란 바로 그런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당사자의 주장에 대해 과연 타당한가 옳은가를 공공의 다중이 판단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데 주장하는 바를 모두 인정하고 긍정해달라. 그게 무슨 공론인가? 선언이지.

 

이런저런 증거들과 정황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힌 내용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왜 그랬는가? 어째서 그것이 성추행이 되고 성추행의 증거가 되는 것인가? 그마저도 2차 가해라고 한다. 아니 이것저것 사실을 밝히기는 했는데 성추행이라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자기 상식에 그런 정도 가지고 이렇게까지 난리칠 일은 아니니 정말 그런가 되묻는 것인데 그마저도 2차 가해라면 그냥 다중들은 판단하지 말라는 것인가? 지금 언론과 여성주의자들이 그리 몰아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너희는 판단하지 말라. 우리가 판단할 테니 너희는 그냥 따르기만 하라.

 

비유하자면 어른들과 이야기할 때면 거의 항상 반드시 나오는 '어딜 감히 어린 놈이!'와 비슷한 뜻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딜 감히 여성님들께! 어딜 감히 여성주의자님들께! 어딜 감히 언론님들께! 오랜만에 신이 났다. 언론의 보도에 의혹을 제기하면 감히 여성주의를 거부하는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무지한 대중이 되는 것이고 그 모든 행동은 2차 가해가 되는 것이다. kbs 뉴스9에서 앵커가 말한 맥락도 그런 것이다. 스트레스가 쌓였겠지. 뭐라 보도해도 믿지 않으니 무척 짜증도 났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2차 가해라면 2차 가해인 것이다. 자기들이 성추행이라면 성추행이고, 추악한 범죄라면 추악한 범죄고, 그러므로 더이상 다른 이견을 달지 말라. 죽음조차 2차 가해다. 살아서 때리는 대로 맞으라.

 

만일 진짜 박원순 시장이 성추행 고소건으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 아니었을까. 안티페미 외치던 병신새끼들은 지금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이 선언한 것이다. 자살도 하지 말고, 반론도 하지 말고, 그냥 고소인이 떠들면 인정하고 엎드려서 때리는대로 다 쳐맞으라. 뭔 소리인지 알겠는가? 반론하고 반박하는 자체도 2차가해이니 그냥 언론과 함께 때리면 쳐맞고 뒈지라면 뒈지라는 소리인 것이다. 죽는 것조차 너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게 여성주의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가. 지금 한국의 여성주의는 여성엘리트주의라고.

 

대중도 판단할 수 있다. 나같은 그저 계약직이나 전전하는 가난하고 비루한 존재조차 사실여부에 대해 얼마든지 자신의 지각과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상식에 비추어 설사 성추행이라도 그렇게 중대한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상황을 키우는 이유를 의심하게 될 정도다. 그러니까 2차 가해라는 것이다. 감히 자신들을 거스르고 있으니까. 대중은 그냥 따르면 되는 것이다. 여성주의자 이외의 대중들은 다른 판단 말고 그냥 자기들이 떠드는대로만 따르면 되는 것이다. 그런 게 성인지감수성이라는 것인가.

 

하긴 kbs뉴스9의 앵커 정도면 그래도 좋은 성공한 엘리트이기는 할 것이다. 방송에 나와서 떠드는 이름있는 여성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야 엘리트로서 여성주의라는 타이틀을 이용해서 지금의 자리도 지키고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다. 무지한 대중을 가르치고 바꿔가면서. 민주당 여성정치인들이 저 지랄 하는 이유는 단지 서울시장 공천에서 여성의 지분을 인정해달라는 요구인 것이고. 그러므로 엘리트로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고 더 강화하겠다. 대중은 그런 자신들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성인지감수성이라는 말로 돌려 말한다.

 

성추행이 목숨보다 중하다. 아무리 살인을 저질러도 사람의 목숨까지 뺐는 경우는 드문데 성추행은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범죄인 것이다. 그래서 성인지감수성이니 뭐니 쓰레기통에 쳐박으라는 것이다. 없던 여성에 대한 혐오까지 생기려 하고 있다. 여성주의자들 욕하면서 어지간하면 그래도 합리적인 주장들에 대해서는 욕먹어가며 지지하고 했었는데 그냥 다 때려치고 말겠다. 여성은 인간이 아니다. 단지 여성일 뿐. 여성주의자들이 그리 선언하지 않았는가. 여성에 인간은 없다고. 여성주의에 인간은 없다면서. 여성주의에는 대중도 개인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성만 있다.

 

TV는 그냥 죽을 때까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물론 TV 있어도 수신료 안내는 방법 정도는 있을 테지만 내 양심이 그런 걸 허락지 않는다. 수신료 내기 싫어서 TV 안 산 지 10년을 넘어간다. 여성주의자는 그냥 적이다. 내게 있어 적이란 동등한 존중해야 할 인간이 아니란 뜻이다. 아무리 민주당 공천을 받았어도 여성후보가 나왔으면 투표도 포기한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계기로 건드려서는 안되는 곳까지 건드려 버린 모양이다. 좆같은 상황이다.

내가 여성주의자 씨발년들이 성인지감수성 어쩌고 아무데나 끌어다 붙일 때 욕하며 했던 말들이 있다. 여성보다 인간이 먼저다. 원래 페미니즘이란 여성 역시 인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낙타와 텐트의 우화와 비슷할 것이다. 머리만 좀 들어갈게. 앞발만 좀 들어갈게. 몸만 좀 들어갈게. 뒷발만 좀 들어갈게. 꼬리까지 들어갈게. 그리고 사람은 낙타에게 밀려나 텐트 밖에서 지내게 된다. 아예 사람취급도 받지 못한 여성들이 그래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여겨지게 되니 할 일 없어진 여성들이 그 이상을 원하게 된다. 아니 무슨 여성주의자라는 년들이 데이트할 때 남성이 더치페이 하는 것 가지고 시비거냐?

 

원래 여성주의자라는 자체가 남성이고 여성이고 다 똑같은 인간이니 더 차별하고 더 배려하고 하는 것 없이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군대에서 얼차려 받을 때 여성도 같이 받고, 직장에서 쌍욕 들을 때 여성도 같이 듣고, 힘들게 잡일 할 때 여성도 같이 하고. 당연하게 남자 직원들만 불러서 야단치고 있으면 왜 자기는 빼고 야단치느냐고 항의할 수 있어야 여성주의인 것이다. 그런데 여성도 함께 야단치면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것이다. 비서니까 시장이 필요해서 옷갈아입거나 할 때 갈아입을 속옷도 함께 가져다 주고 집으로 보내고 하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였던 것인가.

 

물론 박원순 시장도 잘못했다. 여비서라고 특별대우해서는 안됐었다. 남비서들과 똑같이 화나면 화내고 짜증나면 짜증내고 질책하고 야단치는 모습도 보였어야만 했다. 오죽 여직원들만 특별히 대우했으면 남비서들이 하나같이 여비서를 방패막이로 사용하려 했을까? 그래서 묻고 싶다. 그러니까 박원순 시장이 다른 남비서들 대하듯 여비서도 대했다면 전혀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것인가. 그런데 혈압을 재면서 했다는 말이나 갈아입을 속옷을 가져다 주고 집으로 보내는 일 등을 보면 그냥 비서로서 일을 한 것 뿐인데? 여비서는 따로 달리 대우해야 한다고? 더구나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까지 파헤쳐 난도질해야 할 정도로 그게 그렇게 흉악한 범죄인 것인가.

 

도대체 무슨 내용을 가지고 성희롱이라 성추행이라 주장하는 것인지 제대로 살피지도 않는 것 같다. 그냥 성추행이라니 흉악한 범죄다. 성추행으로 고소했으니 흉악한 범죄자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것도 상당히 법적으로 심각한 범죄에 해당하거든? 그런데 여성이니 상관없다. 여성에 대한 범죄이니 시효도 한도도 없다. 뭐 이런 개 씨발 좆같은 것들이 다 있나. 욕하려고 쓰는 글이니 계속 욕을 붙이겠다. 욕 없이 쓰기 힘든 글이다.

 

아무튼 확신했다. 예전 글 보면 알겠지만 나 역시 여성할당제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었다. 취업시장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아직 많이 불리하고 상당한 차별도 받고 있다. 그러니 할당제로 강제해서라도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취소다. 절대 취소다. 이래도 성인지감수성, 저래도 성인지감수성, 남직원들과 똑같이 대해도 성인지감수성, 남직원들과 달리 대해도 성인지감수성, 그리고 그 책임과 처벌은 거의 무한대. 누가 그런 여성들을 데려다 쓰겠는가? 비서로서 할 일도 여성이라고 일일이 가려서 시켜야 하는데 차마 못할 일인 것이다. 혈압도 대신 재달라 말할 수 없다. 말도 혹시라도 성인지감수성인지 쓰레기인지에 걸릴까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한다. 이게 직원이냐? 상전이지?

 

직장이란 곳이 업무적인 위계관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 함께 일하다 보면 위계관계도 인정관계로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정관계란 때로 아슬아슬한 선을 넘기도 하면서 부담없이 말도 나누고 할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그리고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인정관계를 위계관계에서도 기대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성은 안된다. 여성은 오로지 성인지감수성을 지켜가며 대해야 한다. 아무리 함께 오래 일했어도 동료도 뭣도 아닌 그냥 여성일 뿐이다. 나라도 안 쓴다.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폭로가 의미하는 바인 것이다. 저 썩을 것들은 데려다도 못 쓰겠다.

 

반여성주의를 그토록 강하게 주장하던 놈들이 얼마나 대가리 없는 쓰레기인가도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다. 말이 안되는 것이다. 아니 설사 그렇게 성인지감수성이란 걸 어겨서 문제가 있다 해도 그게 죽은 사람의 인격까지 모욕해가며 비난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란 것인가. 인간이 인간이 아니고 여성은 단지 여성이란 것이다. 여성이 인간의 위에 있다. 이 미친 것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런 의미 아니던가. 

 

아무튼 이런 정도가 그렇게 중대한 범죄라 한다면 성인지감수성인지 뭔지 그냥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리겠다. 반여성주의 하는 쪽이 내 이성에도 부합한다. 인간이 우선이다. 여성보다. 남성이고 여성인 것보다. 상식일 테지만. 버러지들.

간단히 남성인 내가 여성에 대해 같은 말을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라. 여성은 거짓말을 않는다. 필요에 의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편취하지도 않는다. 상황을 잘못 오해하는 경우도 없다. 오로지 이성적으로 명징한 사실과 진실만 말한다. 여성에 대한 칭찬일까? 아니면 여성에 대한 대상화이고 정형화이고 차별인 것일까?

 

이를테면 여성을 오로지 순결한 존재로만 여겨서 성적으로 조금만 더럽혀졌다 싶으면 바로 단죄하던 시대나 사회를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의 아름다움과 여성의 순결과 여성의 현숙함을 예찬하면서 거기서 벗어나는 여성들은 더욱 잔혹하게 내치고 단죄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거짓말하고, 필요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편취하고, 자신의 이해와 주관에 따라 오해도 하는 존재는 여성도 아니라는 것인가.

 

그런데 여성 스스로 그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이 말하니 사실일 것이다. 여성이 주장하니 진실일 것이다. 한 치의 거짓도 오류도 없이 그 자체로 이미 증명된 것이다. 여성이 피해를 주장하니 피해자라지 않는가. 여성은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이 아는 다른 특별한 존재인 것일까? 그렇다면 남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거짓말도 하고 왜곡도 하고 오해도 하는 일반의 여성들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인가?

 

여성주의에는 여성이 없다. 여성이 생각하는 대상화된 이상의 여성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여성주의가 현실에서 남성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사회적 약자니까. 어려서 그렇게 배워 놓은 탓에. 요즘 20대가 그런 점에서 우리들보다 더 솔직하고 더 당당하다. 여성도 인간이다. 스스로 인간이고자 해야만 한다.

 

여성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과 비슷한 그 무엇도 아니어야 한다. 혹은 인간이란 현실의 인간과 다른 이상적인 어떤 존재여야 한다. 망상이다. 그런 망상이 만들어낸 것을 흔히 신앙이며 종교라 말한다. 종교 앞에서 이성이고 인정이고 관계고 모두 부정될 뿐이다. 최소한 여성주의자는 보편의 인간이라 볼 수 없다. 똥은 거름으로라도 쓴다.

그냥 성인지감수성인지 뭔지 없는 채 살란다. 씨발 이게 뭐냐? 이게 다 성추행이라고? 그래서 죽은 사람 무덤 파헤쳐 시신까지 난도질해야 할 일이라고?

 

나 역시 괜히 일도 많고 바쁘기만 한 날에 힘들어하는 여직원을 보면 반 위로 반 농담삼아서 그리 말하고는 한다. 여직원님 있으면 사람들이 일부러 더 일을 많이 가지고 오는가 보네요. 일복 있으시네. 그러면 대개 웃어 넘긴다. 좆까고 이것도 성추행이면 앞으로 여직원들과 말도 섞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네?

 

시장이 마라톤 뛴다고 주말에 새벽같이 출근하게 되면 미안해서라도 그리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비서님이 나와주시면 더 힘이 나서 잘 뛸 수 있을 것 같네요.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굳이 주말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여비서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란 것이다. 성인지감수성 부족? 씨발 그냥 성인지감수성 없이 산다니까.

 

성추행이라며 예로 든 다른 사례들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 직원이었으면 몇 번이고 화도 내고 질책도 했을 일도 여성 비서였기에 최대한 참으며 웃는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면 직원들 입장에서 자기들 편하자고 여성 비서를 앞세우는 것도 얼마든지 상상 가능한 상황이지 않은가 말이다. 다른 곳으로 전출가고 싶었는데 만류했다는 점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개인적으로 그 여비서를 상당히 신뢰하고 인간적인 호감까지 느꼈을 가능성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여성 비서인 경우 화도 짜증도 내지 않고 온화하고 친근한 태도를 보였으니 성희롱을 한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여성 직원들에게도 남성 직원 대하듯 욕도 하고 야단도 치고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러면 성희롱이 아닌 것인가?

 

내가 직접 쟀을 때보다 여비서가 혈압을 재 주면 더 낮게 나와서 좋다. 이 역시 첫머리에 내가 동료 여직원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맥락인 것이다. 내가 직접 재야 하는데 비서라는 이유로 굳이 대신해서 혈압까지 재 주고 있는 중이다. 고맙고 미안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비서가 혈압을 재 주니 평소보다 혈압이 더 낮게 나오는 것 같다. 자기가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 물론 당시 박원순 시장의 표정이나 말투가 어떠했는가에 따라 더 악의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마찬가지로 더 선의의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나도 아재라 그런지 당시의 상황이 그려지는 듯 하는데 씨발 나도 뒈지면 무덤 파헤쳐서 시신까지 난도질하려는 것인지.

 

더 어이없는 것은 비서라고 시장이 운동하고 샤워까지 하고 나면 갈아입을 속옷을 가져다주고 갈아입은 속옷을 포장해서 집으로 보내는 일까지도 성추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면 비서가 하는 일이 무언데? 한 마디로 잠시의 시간도 아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을 위해 업무와 일상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비서라는 직책이란 것이다. 집에서 옷갈아 입는데 속옷 심부름 시킨 것도 아니고 시청에서 업무 도중 운동하고 샤워하는데 갈아입을 옷 좀 가져다 달라는 것이 성추행이라? 갈아입은 옷을 포장해서 집으로 보내는 것이 성추행이라? 이러고도 2차 피해라 주장하지. 그냥 여성 비서는 쓰지 말아야 할까? 뭐 농담도 못하고 사적인 일도 못 맡기고 인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런 내용을 뭔 자신감을 가지고 폭로한 것인지 그 머릿속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심지어 이따위 내용을 중대한 범죄사실이라 되는 양 기사로 내보내는 기자것들의 대가리속이 정말 신기할 정도다. 그냥 사회생활 조금만 해 봐도 말이 안되는 상황이란 게 바로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설사 당사자가 불쾌했으니 성희롱이고 성추행이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죽은 사람의 가는 길에까지 똥물을 뿌려야 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였다는 것인가.

 

내일 당장 동료 여직원들에게 고소당하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기부터 하다. 걍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아 버릴까? 걍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해야 하는 것일까? 죽은 사람의 무덤까지 파헤쳐야 할 중대한 범죄라는데 나같은 나부랭이가 과연 살아 남을 수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어째서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한 폭로는 다음으로 미뤘던 것인가. 밝혀지면 정작 별 것 아니게 될 지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고작 이런 걸로 죽은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 더럽히려 들었던 것인가. 한 인간을 재단하고 그 삶마저 정의하려 들었건 것인가. 앞으로 기업들이 여성을 채용하지 않으려 해도 뭐라 말하지 못하겠다. 그냥 제단 하나 만들어두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으면서 받들어만 달라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 정도 말들도 주고받지 못할 것이면 동료도 뭣도 아니지. 아무리 오래 같이 일해도 동료가 아닌 여성일 뿐이다.

 

오늘로 나도 반페미로 돌아섰다. 할당제 찬성했었다. 더 많은 여성들에게 채용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함께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꿨다. 고용해서 쓰는 입장에서 이 얼마나 부담이겠는가 말이다. 저런 정도로도 죽은 이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까지 난도질하는 여성들이라니. 나라도 저런 여자들은 데려다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났다. 오늘 밝힌 내용이 전부라면 최대 해봐야 그냥 주책맞은 아저씨였을 뿐이다. 자기 딴에는 선의로 친하다고 여겨서 했던 말이 단지 당사자에게는 불편하게 불쾌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다고 그런 아저씨의 주책맞음을 마냥 비난하고 단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은가. 나 역시 아저씨인데. 고소인으로서는 분명 수치심도 분노도 억울함도 있었으니 고소까지 한 것이겠지만 법적인 판단과 별개로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정도로 그 난리를 피웠던 언론이며 여성주의자며 네티즌들은 어디의 누구인 것인가.

 

도대체 이런 정도 이유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오히려 그 죽음이 상황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고소와 죽음 사이에 아무 상관도 없다면? 언론이 발악하는 이유일 것이다.

 

새삼 확인한다. 여성주의는 적이다. 여성은 같이 일할 수 있는 동료가 아니다. 최소한 여성주의의 기준에 있어서는. 내가 피곤해서라도 더이상 같이 일은 못 하겠다. 씨발 욕나오는 상황이란 것이다. 빌어먹을 것들이다.

성추행은 범죄다. 섹스는 그냥 성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섹스 스캔들이란 바로 그 섹스를 둘러쌀 일련의 구설들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매력으로 유혹했든, 아니면 돈과 권력으로 유인했든 어찌되었거나 상호합의 아래 이루어진 성관계가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이슈로 불거졌을 때 흔히 섹스 스캔들이라 부르는 것이다. 피하자라면서? 그런데 스캔들이라?

 

재미있는 것은 별 사소한 말들을 가지고도 2차 피해네 뭐네 입을 틀어막으려는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 자칭 언론들이 이런 문제에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주의자들이 이런 경우에 대해 민주당에게 그러는 것처럼 공격적으로 논평을 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반페미 늬들이 전혀 - 하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소인을 피해자라 부르는 지금 상황에 만족하며 호응하는 것이겠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는가. 여성주의자들은 지금 정치적은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고.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성주의자들과 결탁한 정의당과 자칭 진보언론의 속내는 물론. 똥걸레의 오보에는 청와대의 논평처럼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러운 벌레들. 차라리 집안에 날아다니는 날파리는 가엾기라도 하다.

예를 들어 재판정에서 누군가 재판장에게 이렇게 주장한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피해자입니다. 저 사람을 처벌해 주세요."

 

그러면 재판장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상식으로 모두가 알지 않은가. 자기가 어디 사는 누구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일들을 당했고, 구체적으로 그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증거나 진술을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가해자로 지목된 피고의 반론에 대해 자신의 주장에 더 타당성이 있으므로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근거를 대고 주장해도 상대가 제시한 근거와 논리에 의해 얼마든지 탄핵당할 수 있고 무죄로 판단될 수 있다. 그것이 재판이다.

 

공론이란 공공의 판단이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주어진 근거와 논리들에 대해 각자 개인이 판단하여 집단의 이름으로 취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론에 맡기기 위해서도 다중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와 논리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투라고 자기의 이름과 얼굴부터 드러내고 자신을 가해한 상대를 다중에게 고발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여러 이유로 사실을 드러내기도, 처벌해달라고 고소하거나 고발하기도 어려웠는데 이제 와서 여러 다중들의 지지에 기대서 한 번 모두의 앞에서 그동안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을 한 번 풀어 보겠다. 그러자면 최소한 다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와 논리를 충분히 제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서지현 검사도 그런 경우였었다. 김지은씨도 그래서 방송에서 직접 나와 밝힌 구체적인 사실들을 듣고 바로 판단을 내리고 안희정을 용서못할 쓰레기로 규정지었던 것이었다. 그냥 김지은씨가 여성이고 미투라며 피해자라고 주장하니까 그리 믿어 버린 것이 아니란 것이다. 배우 오달수씨를 미투로 고발한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은 아무리 주장하는 걸 들어도 그냥 오해하고 관계를 맺으려던 것이 당사자의 거부로 인해 미수로 그친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황이었다. 충분히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은밀한 공간을 찾아갔는데 또 따라오기도 해서 성급한 행동을 했더니 사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왜 미투지? 차라리 몇 십 년 전 성폭행을 당했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폭로한 경우는 미투라 볼 만한 부분이 있었다. 당시는 사회 분위기가 또 그런 피해를 공공연히 밝히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으니. 그래서 이번 박원순 시장의 경우는 피해자라 주장하는 고소인이 구체적으로 밝힌 사실이 뭐가 있었지?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른다. 이름이 뭐고 어떻게 생겼고 어디서 뭘 하며 사는 사람인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구구한 억측들이 쏟아져 나온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리는지 모르는 가운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 사람의 말에 신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인가. 단지 여성이고 피해를 고발하고 있었으니까? 반여성주의 어쩌고 떠드는 놈들이 진짜 좆같다는 게, 이런 식으로 고소만 하면 바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구조가 고착되면 진짜 피해를 입는 것은 박원순 시장처럼 편들어 줄 사람도 없는 그냥 다수의 평범한 남성들이란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이번 한 번만 써먹고 끝낼까? 이번 한 번 만 크게 써먹고 앞으로 그냥 고소인이며 피고소인이라고 평범하게 쓰려 할까? 그래서 언제 어디서 뭘 어떻게 구체적으로 당했느냐고? 최소한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사실관계는 드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텔레그램으로 보냈다는 속옷사진만 해도 그냥 사진 한 장 골라서 까발리면 되는 일이다. 냄새를 맡았고 어쩌고 하는 행동들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했는지 판단할 수 있게끔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자기 몸에 나는 냄새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식으로 신체접촉을 했고, 자기에게 말을 걸었고, 그 가운데 죽은 사람이기에 반론할 수 없는 부분까지 포함해서 과연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가 추론하고 개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시 이런 일들이 일어났구나. 그런데 없다. 그냥 성추행이 있었다. 그것도 죽은 이를 곱게 보내서는 안 될 정도로 끔찍하고 추악한 성추행이 당시 박원순 시장에 의해 저질러졌다. 뭔지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극악무도한 범죄가 자신에게 저질러진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는 그냥 피해자고 박원순 시장은 가해자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다. 실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라고 고소고발된 사건들 가운데 또한 상당수가 상호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이라는 것을. 당사자는 그저 선의로 무심결에 한 행동인데 고소고발인들에 의해 자신들에 피해를 입힌 가해로 규정되어졌었다. 설사 실제 그런 행동들이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 결론내어진다 하더라도 또한 각자의 판단 속에 얼마든지 다른 결론이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원순 시장을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인상짓기 위해서. 과연 마지막까지 언론이 박원순 시장에 대한 진실을 사실이 아닐 경우에도 그대로 보도하며 자신들의 억측을 사과하는 모습이라도 보일 것인가. 정의연에 대한 수많은 오보들에 대해 윤석열에게 오체투지까지 했던 한겨레조차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웃기는 상황이란 것이다. 뭔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흉악한 범죄였다. 어디 사는 누구고 언제 어디서 뭔 일을 당했는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주장하니 피해자이고 상대는 가해자라는 것이다. 여성주의에 반대한다면서 그런 논리에는 충실히 지지를 보내는 얼간이들도 있다. 그러니까 극단적인 대립도 생겨나는 것이다. 김지은씨 경우도 사람에 따라 당시 김지은씨의 행동이 전형적인 위계강간 피해자의 행동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련지식이 없는 경우는 불륜이 아니라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워낙 고발내용이 구체적이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까지 내건 당당함과 절박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김지은 씨의 손을 들어주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믿음 뿐이다. 고소인을 믿는가. 고소인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 것인가.

 

그래서 언론이 굳이 피해호소인이라는 말까지 만들었다가 다시 피해자라는 표현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하필 그러한 선택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 중앙일보와 정의당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는 것이다. 정확히 정의당내 여성주의자 그룹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커넥션을 의심했던 것이다. 지난 박근혜 탄핵 당시 여성주의자들이 보인 행보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러니까 고소당한 순간 가해자고 고소한 순간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장난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2차 가해라고? 그러니까 뭐가 가해인지 구체적으로 밝혀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가해였고 피해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가정법이다. 고소인을 피해자로 가정하고 이런저런 상상을 더하거나, 고소인이 오해했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를 가졌을 경우를 가정하고 이런저런 상상을 끌어다 붙이거나. 그런데 재판이란 원래 고소고발한 원고 자신도 무고의 심증을 의심받으며 치러지는 것이다. 자기는 아무 피해없이 다른 사람만 일방적으로 피해주겠다? 여성이란 얼마나 특권화되어 있는가를 알 것 같다. 여성이 무슨 대단한 신분이고 벼슬인가? 엿같은 상황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