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언론이 박원순 시장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마저 난도질하면서도 오히려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아직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혐의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아무것도 없다. 성추행이라는 것도 정도가 있다. 그냥 단순히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손을 만지고 등을 두드리는 것조차 당사자가 그렇다면 성추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높은 수위의 차마 글로 쓰는 것조차 꺼려지는 그런 수준의 성추행도 있기는 하다. 그러면 과연 박원순 시장이 저질렀다는 성추행이란 어느 정도 수위이고, 그래서 이렇게까지 죽은 사람을 난도질해도 좋은 정도인가.

 

속옷사진이라는데 그냥 런닝셔츠에 반바지 입은 사진이 보기에 불쾌했다 한다면 오히려 동정여론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친근한 표현으로 했던 행동들이 성추행으로 여겨져 고소까지 당한 것이라면 그동안 박원순 시장을 비난했던 사람들에게 거꾸로 비난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진짜 인면수심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수위가 높은 성추행이라면 그동안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추모했던 이들마저 돌아서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모든 것이 자신들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다. 자기들 머릿속에서 누군가는 박원순 시장이 무고하고, 누군가에게는 성폭행보다도 살인보다도 민간인에 대한 고문과 학살보다도 더 끔찍한 범죄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행위들을 했었길래 당사자는 자기가 성추행의 피해를 입었다 고소까지 한 것일까.

 

그래서 언론은 그런 상상에 기대서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마음껏 죽은 이를 유린할 수 있는 것이다. 가능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유가족의 가슴에도 대못을 박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조차도 정당하게 여겨질 만큼 박원순 시장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언론의 농간에 어느새 대중들조차 박원순 시장이 저질렀다는 성추행에 대한 상상을 키우게 된다. 어째서 박원순 시장을 고소한 고소인과 변호인은 성추행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도대체 뭔 짓을 저질렀는지 한 번에 시원하게 밝히란 것이다.

 

차라리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 잘되었다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뭔 짓을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면 추모를 하든 비난을 하든 대중들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의 삶까지 모두 부정될 정도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가. 아니면 아직은 동정해도 좋을 만큼 단순한 실수에 지나지 않았는가. 그도 아니면 단지 오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속옷사진이라니까 바로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진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짜 적나라한 어떤 모습일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박원순 시장이라면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일 수 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어떤 것인가. 그리고 어떤 행위들이 성추행이라 여겨진 것이고 실제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만일 다른 의도로 고소사실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그 정도가 경미한 수준이라면 사실을 밝히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진짜 정도가 심해서 부관참시로도 부족한 수준이라면 의외로 빨리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경고하지 않았는가. 계속해서 2차, 3차 가해가 이루어지면 더 적나라한 사실도 공개할 수 있다. 마치 2차, 3차 가해를 계속해서 사실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진짜 사실이 밝혀지고 그 정도가 참혹해서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정도라면 나 역시 박원순 시장을 비난할 것이다. 비난하는 정도 역시 지금껏 내가 해 온 그대로 인간이 아닌 대상에 대한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표현들이 대거 동원될 것이다. 나는 사람이 죽었다고 지은 죄까지 용서하고 하는 타입이 아니다. 다만 비례성만은 지킨다. 그래서 죽음으로 대신할 정도의 죄인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그러니까 제발 사실을 공개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상상에만 맡기게 하지 말고.

 

과연 언론이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랄 것인가. 아니면 정의당이나 자칭 진보, 여성주의자들이 모든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인가. 벌써부터 박원순 시장을 가해자로 단정짓고 비난부터 퍼붓는 민주당내 자칭 여성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만일 사실이 아니었다면? 혹은 오해였고, 혹은 정도가 미미한 수준이었다면. 당장 들리는 이야기만도 그렇게 높은 수위까지는 아닌 듯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동안 자신들이 했던 말과 행동들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고소인이야 당당하다. 어떤 경우이든 자신이 성추행으로 여겼고 피해자라 생각했기에 고소까지 했던 것이다. 다만 주위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도덕적 윤리적 법리적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판단은 다른 것이다. 그것을 과연 지금 비난하는 모두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영결식장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차라리 모든 진실을 밝혔어야 했다 말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죽은 이를 추모하려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도,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했거나, 혹은 비난하는 입장에 선 이들을 위해서라도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서 추모해도 좋은 것인가, 아니면 비난해야 마땅한 것인가. 죽은 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오물을 뿌리고, 무덤까지 파헤쳐 시신을 난도질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물론 언론이나 정치권, 여성주의자들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더 더럽히고 더 난도질하며 마음껏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고 싶을 테니. 혹시라도 진실이 밝혀져서 자신들이 책임질 일따위 만들고 싶지 않다.

 

물론 진실이 밝혀져도 그들은 주장할 것이다. 그조차도 끔찍한 범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속옷사진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만으로 고문이나 학살보다 더 끔찍한 범죄인 것이다. 그저 친근한 표현이 지나친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사건을 조작하고 무고한 이를 죄인으로 만든 것보다 더 참혹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협박하여 성매매를 강요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편취하려 한 범죄보다 더 파렴치해야 한다. 믿음은 항상 진실보다 우선한다. 나도 편하게 비난하는 편에 서고 싶지만 글쎄... 안희정은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럴 수 있을 것인가. 

기자것들은 자기들이 오보 좀 냈다고 기레기니 기더기니 비난을 듣는 것이 그리 억울하다고 한다. 경향일보를 경향신문이 아닌 경향일보로 부르는 것이 불만이고, 똥걸레를 한겨레가 아닌 똥걸레라 부르는 것이 또 그리 불만이다. 그런데 박원순 시장은 단지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모든 삶까지 부정당하고 부관참시를 당하는 중이다.

 

단 하나의 오점도 아닌 의혹만 있어도 죽음마저 모욕당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동안 수도 없이 오보를 냈던 똥걸레 역시 그 모든 역사를 부정당하고 부관참시당하는 것이 맞지 않은가.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오보는 기자들이 내는 것이다. 기사를 내는 것은 편집국이라도 기사를 쓰는 것은 전적으로 기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레기라 부르는데 뭐가 그리 억울하고 불만인 건데. 그래서 좆선이고 똥아고 종양이고 경향일보고 똥걸레인데 뭐가 그리 화나는 건데?

 

정의당 역시 마찬가지다. 류호정 의원의 대리게임 하나만으로도 정의당의 정체를 부정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아니 내가 알음알음 들어 알고 있는 사실만 터져도 지금 정의당에 죽어서 제대로 묻히지도 못할 인간들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의혹만으로도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 발기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면서.

 

아무리 의혹이 있어도 그 의혹의 크기에 비례해서 생전의 업적 역시 존중해주는 것이 인간의 상식이란 것이다. 정의당에게는 성추행이라는 것이 그렇게 한 인간의 인생을 부정할만한 큰 범죄이기라도 한 것인가. 그래서 고작 소리 듣는 것이다. 성추행이 작은 범죄라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생명보다 무거운 범죄도 아니다. 그것도 단지 고소사실만 가지고 유가족의 가슴에 대못을 넘어 드릴을 몇 개나 꽂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정의연과 관련한 오보들에 대해 정정보도 요청이 받아들여졌다는 뉴스를 보면서 더욱 깨닫게 된다. 저들의 논리 그대로 저들은 단 하나의 오보만으로도 쓰레기 그 이하의 취급을 받더라도 너무 당연하다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지껄이기만 해 봐라. 특히 여전히 잘난 척 떠들어대는 똥걸레 기자것들. 전부터 눈여겨보고 있었다. 벌레도 지구에는 도움이 된다.

한겨레의 탁현민 보도는 보는 순간 바로 오보인 것을 알았다. 아무리 그래봐야 일개 비서관인 탁현민에게 그만한 특혜를 줄 권한이 있기는 했을 것인가. 대개 권력형 비리란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는 위치에 있거나, 아니면 구성원들이 손잡고 짬짬이로 나눠먹으려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그런데 고작 탁현민에게 그렇게 찍어누를 수 있는 힘이나, 아니면 짬짬이로 나눠먹을 자기 편이란 것이 있었을 것인가.

 

뭔 말이냐면 지금 한겨레는 탁현민을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의 우병우나 최순실 정도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기사를 쓴 김완 기자가 방송에 나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청와대의 범죄를 밝혀야 한다. 청와대의 범죄를 밝히기 위해서라도 검찰의 독립은 필요하다. 그 청와대는 일반명사 청와대가 아니라 당시 윤석열 검찰이 정치수사를 벌이던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였다. 검언유착 의혹을 알릴레오를 통해 폭로했을 당시도 악의적이라고 비난하던 것이 바로 한겨레의 김완이었다. 참고로 채널A기자의 검언유착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려는 검찰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던 기자협회장이 한겨레 기자 출신이다.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있지도 않았던 대책회의가 있었다는 오보를 냈던 곳도 바로 한겨레였다. 말하자면 때를 잡은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그렇게 떠나고, 성추행이라는 추잡한 의혹이 씌워지며 논란이 커지는 순간, 바로 기회다 여기고 청와대를 공격할 건수를 잡아 바로 터뜨린 것이다. 물론 사실관계같은 건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기는 했지만 청와대를 비판하는 것이니 상관없겠다 싶어 최대한 끌어모아 엮어 봤다. 조선일보가 잘하는 짓이다. 원래 한겨레 기자들의 소원이 나중에 경력 쌓아서 조선일보 가고 삼성 가는 것이다. 정부만 공격할 수 있다면 뭘 어떻게하든 모두 정당하다.

 

하다하다 그리 대기업 비판하던 한겨레가 상장되지 않은 업체가 청와대와 정부행사를 수주했다고 지랄하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청와대의 논평이 참 적나라하다. 상장되지 않았다는 게 무슨 대단히 비밀스럽거나 자기들끼리 나눠먹는 흑막 같은 것이 아니란 것이다. 아직 상장할 만큼 기업의 규모나 매출이 크지 않다는 뜻인 것이다. 대부분 스타트업들이 그렇게 상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뭐가? 자칭 진보언론이 그런 걸 문제삼는 이유가 무엇인데? 아, 삼성이 아니라 그리 화가 난다는 뜻이었을까?

 

이런 것들 망할까봐 그동안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입법을 미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그래도 진보언론인 한겨레와 경향이 걱정되어 논의를 멈추고 있었다. 청와대만 공격할 수 있으면 된다. 정부만 공격할 수만 있으면 된다. 그것이야 말로 언론의 사명이고 진보의 정체다. 그러면 사실관계라도 확인하고서 하던가. 확인하고서도 왜곡하고 편취하고 조작해서도 정부만 공격하면 된다. 쓰레기 인증이다. 똥걸레다.

익명의 미투란 진보정당 정의당 진보언론 한겨레 같은 형용모순에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미투란 원래 누군가를 고발하기보다 그동안 침묵해야만 했던 피해자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행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효도 지난 경우가 많아서 법적 처벌은 어려운 경우라도 모두가 사실을 알고 자신을 지지하며 가해자를 비난하는 상황을 통해 자기 잘못이 아니고 자신은 오로지 피해자일 뿐이란 사실을 사회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구호도 나오는 것이고, 당신의 편에 서겠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발을 익명으로 한다?

 

더구나 그같은 미투의 고발 과정에서 반드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나오면서 사회적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 의해, 설사 그 고발이 거짓이었다 할지라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고발에 얼마나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인가. 내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사실이 아닐 경우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럼에도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었기에 대중의 앞에 서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밝힌 만큼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도 함께 폭로가 이루어졌어야 했을 텐데 그런 것은 없이 그냥 일방적인 주장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죽어서 어떤 반론도 할 수 없는 상황에.

 

과연 박원순 시장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성추행 고소 때문이었는가. 하지만 의도적으로 언론의 보도는 그런 식으로 사실관계를 몰아간다. 성추행 고소를 알았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로 박원순 시장은 분명한 가해자다. 박원순 시장 자신이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사실을 이용하려는 듯 일방적인 주장만 사실처럼 퍼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명백한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고인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를 하는 만큼 자신 역시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그만한 구체적인 근거라도 제시하던가. 텔레그램 비밀방 초대사진 같은 건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도 모르겠는데 내 주장만 믿어달라.

 

미투의 취지를 오히려 스스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 한국 여성계란 주장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니 그 주장을 들어달라. 믿고 지지해 달라. 남대문에 불질렀던 사람도 자기 나름의 억울함이 있어서 그리했던 것이었다. 세상에 억울한 일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매번 그런 억울한 이들의 이야기를 마냥 믿고 지지하기만 해야겠는가. 그런데 그러라고 강요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을 타겟으로 삼은 덕분에 언론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원래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처음부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를 자신들의 진정한 대통령으로 지지하던 것이 바로 그들이었었고.

 

그러니까 과연 지금 상황을 미투라 부를 수 있는가 묻는 것이다. 당사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그저 주장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소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는 오해와 추측들에 대해서마저 2차가해라며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그래서 그런 오해와 추측들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미투에서는 자기 얼굴과 이름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누구인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고소를 했으니 피해자일 것이고 고소당했으니 가해자일 것이란 믿음은 그냥 맹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이로써 분명해지는 것은 여성주의자들은 단지 여성주의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자신들을 정의하는 전부다. 박원석 같은 남성 여성주의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보편의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오로지 여성 그 자체만을 고집하며 관철하려 한다. 왜이겠는가. 다 들어주고 받아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그 박근혜를 탄핵당하고 나서까지 지지했던 것이 그런 여성주의자 부류들이란 것이다. 하긴 그 원한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광장을 개방했던 박원순의 죽음까지 부관참시해야 한다. 참 명료하다.

언론 때문에 잠도 못자고 출근하는 중이다. 지난 주에는 복권도 꽝됐다. 왜 언론때문이냐고 묻지 마라. 그냥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피해호소인 아닌가.

 

그래서 피해호소인으로서 요구한다. 언론들 다 뒈져줬으면 좋겠다. 아니 앞으로 언론인들 부고 볼 때마 쫓아다니며 악플이나 달아볼까? 피해를 호소했으면 그래도 된다면서?

 

딱 이 정도 수준의 논리다.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고 그냥 주장만 있다. 고소장만 접수된 상태다. 그러나 피해호소인이라는 어디 근본도 없는 단어를 갖다가 지 좆대로들 놀고 있다.

 

확신하건데 기자것들은 사람새끼들이 아니다. 여성주의자 년들도 사람년들이 아니다. 아직도 정의당에 남아 있다면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그냥 내가 그렇게 정했다. 왜? 피해호소인이니까. 참 편하다. 썩을 것들.

첫째 미투는 익명이 아닌 자기 얼굴과 이름을 걸고서 하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고 자기 주장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고자 하는 각오로써 세상에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사실과 진실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과연 그 사람의 주장이 사실인지, 얼마나 그 주장의 근거들이 타당한지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주장에 신뢰성을 더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주장한다고 믿어주는 것은 다른 의도를 가진 얼치기들 밖에 없다. 나경원 비서출신이라는 말이 왜 나오겠는가. 누군지 모르니까.

 

둘째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했다면 영결식날 그런 기자회견 같은 걸 해서는 안됐었다. 아니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그렇게라도 진실을 밝혀야겠다 마음먹었다면 차라리 다음을 기약하지 말고 기자회견장에서 모든 것을 까발렸어야 했었다. 그래야 역시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던 시민들도 마음을 정리할 것이 아니던가.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돌릴 정도도 안되는 증거를 내보이면서 그렇다고 온전히 고인을 떠나보내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악의에서 나온 행동인가. 철저히 고인을 욕보이겠다는 의도 말고 다른 어떤 의도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과연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기자회견을 통해 제시되고 있었는가.

 

셋째 고소인도, 경찰도, 청와대도, 어느 누구도 박원순 시장에게 고소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데 박원순 시장이 고소사실을 반드시 알았을 것이란 판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반드시 알았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확신을 가질만한 다른 근거가 있는가? 그렇다면 성추행 고소와 박원순 시장의 선택 사이에 아무 연관성도 없다는 추정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그런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언론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인가? 오히려 청와대마저 의심하며 정치적인 쟁점으로 만들려는 시도마저 보인다.

 

넷째 아무튼 기껏 고인의 영결식을 훼손해가며 기자회견을 열고 제시한 증거라는 게 아무나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프로필사진과 대화명이 적힌 텔레그램 비밀방 접속화면이다. 사실 인터넷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조작이란 메신저 대화창을 이용하는 것일 게다. 대화명과 프로필사진을 이용해서 마치 진짜 당사자들이 대화한 양 화면을 꾸미고 그를 통해 사람들을 낚는다. 그러니까 도대체 뭘로 어떻게 성추행을 했다는 것인가. 속옷사진이라도 보여주던가. 성희롱한 발언이라도 보여주던가. 그것이 고인의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던가. 그냥 변죽만 울린다. 결국 목적은 하나였던 것이다. 고인의 영결식에 똥물을 끼얹자.

 

어떤 사람들은 그리 말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의 선택으로 인해 고소인만 더 곤란해지고 고통스러워졌다. 그래서 이러는 것인가. 너무 곤란하고 고통스러워서 고인이 가는 길에라도 똥물을 끼얹자. 이건 정치적인 행위다. 더구나 기자회견의 결과 청와대까지 자칫 휘말릴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정의당과 여성주의자들이 바라는 바도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저들이 미래통합당과 수구세력과 연대하는 진짜 이유일 테니. 그런데도 그냥 단지 성추행으로 고통받은 피해자일 뿐이라? 그러면 얼굴부터 까던가. 서지현 검사도 김지은씨도 모두 자기 얼굴과 이름을 걸고서 진실을 밝혔으니.

 

미투도 아니다. 그냥 고소다. 자기 얼굴도 이름도 숨기고 변호사를 대신해서 여론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고? 진정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풀고 싶어서? 자기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그저 고인에게만 오물을 끼얹고 싶어서? 그런 고소인에게 동조하는 놈들도 똑같은 의도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과연 아무리 실제 성추행이 있었어도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정당한가. 인간적인 감정으로 이해할 만한 정도인가. 지금 그래서 언론도 장난질치고 있는 것이다. 성추행이 무슨 대학살급 되는 범죄인 줄 착각하게 만든다. 대단한 여성주의자들이다. 벌레년들.

총선 직전 썼던 글의 연장이다. 그때 말했었다. 정의당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 자신들이 터무니없이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언론이 바라는 정의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론이 기대하는 민주당을 공격할 수단으로서 진보정당 정의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21대 총선 이전까지 진보정당에서 누구를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웠는가 아는 사람도 거의 드물었었다. 정의당 당원이나 진보정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공천되었는가 내용을 알 뿐 대부분은 언론이 다루지 않으니 당선되고 나서야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나오면 그런가보다 넘어가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총선에서 만큼은 모두가 이름을 알 정도로 언론에서도 중요하게 기사로 내보내고 있었다. 어째서?

 

원래 정의당의 - 정확히 진보정당의 가치란 수구세력과 비교되며 자연스럽게 진보로 분류되어 버린 민주당을 진보의 관점에서 비판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를 양분하는 거대정당으로써 그 크기 만큼이나 구성도 복잡하고 노선도 모호한 민주당에 비해 항상 진보정당은 이념적으로도 더 선명하고 도덕적으로도 더 순결하며 행동에 있어도 과감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이미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현실적이라는 보수성에서는 보수정당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상론인 진보성에서도 진짜 진보정당에 미치지 못하는 모호하고 무능한 민주당이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유권자는 민주당의 무능에 실망하고, 진보적인 유권자는 민주당의 모호함에 환멸을 느껴 멀어지게 된다. 실제 그렇게 되었었다. 선거 때만 되면 다시 결집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도저히 지지하지 못할 정당이라며 외면하는 유권자들이 그동안 너무 많았었다.

 

그런 정도면 되었던 것이다. 당연하게 현실론을 앞세워서 수구정당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진보적인 이상론에서는 진보정당의 목소리를 빌어 민주당을 비판한다. 보수적인 관점에서도 비판하고 진보적인 관점에서도 비판하며 그 주장 자체를 가치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를 위해서는 진보정당이 더 선명해도 좋았던 것이다. 더 과격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그래봐야 고작 10석도 못 얻는 군소정당따위 뭐라 떠들든 그것을 현실로 옮길 가능성 따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 그 정도만,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만 진보정당을 이용하며, 오로지 그를 목적으로만 여지껏 보호해 왔던 것이었다. 사실상 사육이다. 그런데 그런 진보정당이 감히 무언가를 이루어 보겠다고 민주당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칭 진보들이 민주당 2중대라는 말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수구정당 2중대라는 말에는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던 진짜 이유였던 것이다. 언론이 뭐라 하지 않으니까. 민주당의 편을 들면 민주당 2중대라 욕하는데 수구정당과 손잡고 민주당을 공격하면 독자노선을 걷는 진보정당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진보정당으로 오롯이 홀로서기 위해서라도 수구정당과 손잡고 민주당을 공격하는 편이 자신들 입장에서는 더 나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심상정이 그런 상황을 타개해 보겠다고 원내교섭단체를 노리고 민주당과 손잡고 무려 검찰개혁에 손을 들어주려 하고 있었다. 검찰개혁을 위한 법안들에 힘을 실어주며 선거법 개정을 위해 민주당과 협력하고 있었다.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감히 진보정당 피라미들이 언론님들과 검찰님들을 거스르려 하다니.

 

사실 그동안도 진보정당 내부에 문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었다. 통진당의 경우가 너무 심해서 표면으로 드러났을 뿐 사실 지금도 정의당을 언론이나 검찰이 작심하고 털면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단지 언론과 권력이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당을 그냥 방치하며 봐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본보기로 잠시 정의당의 비례후보들을 살짝만 털어 주었던 것이었다. 어째서 논란이 된 비례후보가 그리 많았었는데 신장식 하나만 순번에서 제외된 것일까? 조국사태 당시 신장식 변호사가 여러 방송에 나와서 검찰과 언론을 비판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정의당을 결정한 것이다. 다시는 이런 미친 짓 말아야겠다.

 

그동안 거대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약소한 진보정당이 명맥을 지키며 원내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당비까지 내며 지지하는 당원들이 아닌 오로지 언론의 비호와 방조였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도움 없이 정의당은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다. 언론이 작심하고 털기 시작하면 단 며칠도 제대로 버티기 어렵다. 이번 총선에서도 언론이 끝까지 민주당 후보들 검증하듯 정의당 후보들을 검증하려 했으면 6석은 커녕 열린민주당이나 국민의당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일찌감치 항복을 선언했으니 더이상 헤집으려 않고 오히려 정의당을 이용해서 민주당의 표를 분산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의당을 너무 공격하면 진보진영의 표가 모두 민주당으로 갈 수 있으니 적당히 봐주면서 민주당의 표를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하자. 덕분에 민주당이 잃은 의석이 몇 석은 족히 될 것이다. 과연 자신들이란 언론에게 어떤 존재인가. 자신들에게 언론이란 어떤 의미인가. 정의당 지도부와 당대표 심상정이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더욱 절실하게 치열하게 깨달을 사실을 것이다.

 

실제 언론이 정의당을 한 차례 흔들고 난 뒤 정의당의 행보를 보면 딱 언론이 좋아할 만한 말과 행동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조선일보 받아쓰기 좋으라고 탄핵을 언급한 것이었고, 언론이 듣기 좋으라고 조국 전장관을 비판했던 것이며, 민주당의 단독개원과 추경심사에 대해서도 거부한 미래통합당의 책임보다 독단과 독선이라는 언론이 원하는 프레임에만 충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박원순 조문국면에서도 그래서 심상정은 그래도 박원순 시장에 대한 의리로 자기가 직접 나서지 못하고 초선인 류호정과 장혜영을 앞세워 언론이 바라는 말을 대신 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성주의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모독하고 청와대까지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 그래야 정의당도 언론으로부터 예쁨받고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심상정이 굳이 박원순 조문국면에서 민주당 2중대 이야기를 끄집어 낸 이유였다. 서울신문의 지원사격은 한 편으로 경고이기도 했었다. 다시는 작년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처럼 감히 자신들을 무시하고 민주당과 손잡으려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러면 절대 두 번 용서는 없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자신들의 노선에 반대하는 지지자 당원들은 그냥 당을 떠나라. 어차피 당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존재해 온 정당은 아닌 때문이다. 언론이 기사만 잘 써주면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뭣도 모르는 이들이 자신들에 표를 주어 다시 6석 정도는 얻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런 언론을 믿고 증거같지도 않은 증거를 앞세워 고소인과 변호인은 고인의 영결식을 더럽히려 했던 것이었고.

 

그냥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는가. 연대라고. 지금 정의당은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모독하려는 언론과 수구세력과 연대하여 정의당의 명맥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당원도 아니고 지지자도 아니다. 오로지 언론이며 수구세력인 것이다. 그래서 진중권이 정의당에 경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구언론이 바라는 바를 대신 말해줌으로써 진중권 나부랭이도 훌륭히 사랑받으며 그 이름을 날리고 있다. 

 

당원들이 탈당하겠다는데 전혀 당황하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잘되었다며 기회라고 말하는 당직자까지 있는 상황이다. 어째서이겠는가. 그래도 심상정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박원순 시장에 대한 동지로서의 마지막 의리였을까. 독한 정치인이다. 한 정당을 이끌만한 그릇은 된다 하겠다. 정의당의 현실이다.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자칭 진보들은 민주당 2중대라 불리면 그리 끔찍히 싫어하면서 보수정당 2중대라 하면 전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저들에게 이 사회의 정당한 지배자는 보수정당이며, 보수정당의 허락 아래 진보도 용인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고. 아니나 다를까 지금 여성주의자들과 정의당이 연대하는 대상을 보고 있으니 바로 견적이 나오는 것 같다.

 

첫째 그나마 조문정국에서 역풍을 맞을까 조심하던 미래통합당을 위해 조문 자체를 정쟁화함으로써 정치공세에 나설 빌미를 주고 있었다. 둘째 가세연과 같은 극우유튜버들이 여성을 앞세워 고인을 모욕하고 민주당을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사실상 가세연과 여성주의자들이 보이는 행보를 보면 전혀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치유와평화재단 출신의 변호사가 고소인의 변호사로 나서고 있는 중이다. 이 사실을 과연 정의당이 몰랐을까? 그리고 결국 이어지는 것이 청와대에 대한 공격, 심상정이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사실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래서 심상정이 민주당 2중대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참여정부 시절로 돌아간다.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당시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하고 있었다. 미래통합당 2중대가 되겠다. 2중대를 넘어서 선봉대가 되겠다. 그래서 가세연과 평화와치유재단 출신들과도 연대한다. 박원순을 모욕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들과 입장을 달리하던 수구세력과 손을 잡고 그들의 목소리를 빌린다. 진선미나 남인순 같은 민주당 내 여성주의자들도 조심해서 살펴 볼 일이다. 어떤 식으로 - 더구나 행정부에 몸담은 적이 있었으니 진선미 같은 경우 어떻게 문재인 정부의 뒤통수를 칠 지도 모른다.

 

모든 여성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 여성주의의 특수성이다. 여성주의란 이데올로기며 신앙이다.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하는 절대의 가치다. 신앙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약탈도 강간도 방화도 파괴도 모두 용서된다. 신앙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까지 모두 용인된다. 그렇게 믿는다. 그것이 바로 신앙이란 것이다. 역사상 모든 끔찍한 학살과 파괴는 바로 이런 신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때로 신이었고, 이념이었으며, 민족이었고, 국가였다는 차이만 있을 뿐.

 

저들이 저쪽과 연대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나는 반대편에 서야겠지. 한 번 적이라 생각하면 뭐라 떠들든 소음이나 잡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적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은 오히려 기쁜 일이다. 적으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당하는 것은 오히려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성주의는 그래서 단지 적이다. 자칭 진보야 이미 오래전부터 적이었다. 속이 시원하다. 그동안 여성주의 하는 짓거리가 꼴같잖기는 했었다. 여성주의는 수구와 함께 박멸해야 한다.

얼마전 이슈가 되었던 친딸성폭행 재판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 일단 성폭행으로 고소당하면 무고로 맞고소하는 것이 성폭행 가해자들에게는 상식처럼 공유되는 기술일 것이다. 피해자 역시 무고혐의로 수사받도록 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될 모멸감과 수치심, 그리고 공포를 통해 스스로 고소를 취하하도록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효과가 있기도 하다.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수사받으며 진짜 가해자들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고죄 수사에는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보호고 뭐고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하게 성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무고로 고소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를 일방적으로 무고의 가해자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가는 중이기도 하다. 무고가 성폭행 가해자들의 전략이며 오히려 그로 인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몰려서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니까 무고로 맞고소당했더라도 사실관계를 잘 따지고 헤아려서 그 진실여부를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얼마전 재판부에서도 성폭행을 고소한 딸의 탄원서조차도 전후관계를 따져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단지 성범죄로 고소당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단정지어야 한다? 고소가 근거가 된다는 것인가?

 

고소가 근거가 된다면 마땅히 무고죄로 맞고소하는 것도 역시 판단의 근거로써 타당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죽이나 억울했으면 무고죄로 맞고소했을까. 스스로 결백한데 무고하게 성범죄자로 몰리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무고죄로 맞고소도 한 것일 게다. 피해자와 연대해야 한다면 무고죄를 주장하는 사람과도 연대해야겠지. 그런 걸 바라는 것인가? 성범죄를 그냥 성간의 대결로 만들고 말겠다? 그러니까 여성이 성범죄로 고소하면 무조건 피해자고, 따라서 남성 역시 무고죄로 고소하면 무조건 피해자여야 한다. 그리고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써 서로의 피해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이 미친 년들이 지금 주장하는 것이 이따위 논리란 것이다.

 

할 말이 없어진다. 성범죄 무고죄에 대해 수사를 성범죄 수사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에 십분 공감하던 터였다. 성범죄의 특수성을 알기에 무고죄 수사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또다른 가해일 수 있다. 그런데 여성주의자들이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고 확인시켜주었다. 고소했으면 피해자고 고소당했으면 가해자다. 그러니까 무고죄로도 고소당했다면 가해자고 고소했다면 피해자인 것이다. 그런데 둘을 왜 따로 수사해야 하는 것일까? 무고죄의 억울함은 억울함도 아니란 것일까? 남성은 인간이 아니라서?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여성주의자들이란 것이다. 여성주의자들 덕분에 반여성주의자들과의 논쟁이 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있다. 여성주의자들의 행동을 근거삼으면 딱히 반박할 말이 없게 된다. 그래서 그런 여성주의자들을 일부로 몰아서 논리를 전개하는데 일부라는 것들이 오히려 더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여성주의자들의 등쌀에 입을 다물었다면 이제는 여성주의자들 하는 짓거리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러니까 왜 무고죄는 고소당했는데 가해자가 아니고 고소했는데도 피해자가 아니냐고. 무고죄 피고소인에게는 어째서 연대하면 안된다는 것인가.

 

아무튼 덕분에 자칭 여성주의자들의 민낯만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여성주의자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가로세로연구소가 그 기준이 되어 준다. 다르지 않다. 가로세로연구소와 자칭 여성주의자들이 보이는 말과 행동에 전쳐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설득하기 좋아졌다. 이제는 나도 반여성주의 하련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으면 사람대접해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사람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킬 줄 안다는 뜻이다. 여성주의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도 사람이 없으니. 말을 섞기도 싫다. 이제는. 반여성주의가 옳다. 안타깝게도.

하긴 그러고보면 말이 진보정당이지 정의당에 남은 진보적 가치가 무엇인가 의심스러운 상황이기는 하다. 역시 심상정이 민주당 2중대란 이야기를 꺼낸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문제든 노동문제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이슈이든 대부분 논의는 민주당으로 수렴되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정의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민주당 정부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을 늘리려 하는 중이다. 남북문제도 해결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들도 마련하고, 그를 위해 보수언론과 보수정치권과 앞장서 싸우고 있는 와중이란 것이다. 아무리 순수한 진보의 목소리를 낸다고 그 치열한 현장에서 정의당의 목소리가 먹힐 리 있겠는가.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더구나 그동안 정의당의 주요한 지지기반이 되어 왔던 노조와 시민단체들까지 다수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진보정당이라지만 내세울만한 진보적 아젠다가 아예 없다시피 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이슈에서조차 정의당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있었겠는가 말이다. 뭐라 떠들기는 했을 텐데 그러나 나같은 소시민의 귀에까지 들리기에는 너무 미약했고 그다지 잘 와 닿지도 않았다. 노동이슈마저 정의당의 손을 떠났다면 이제 정의당에 남은 진보적 아젠다란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도 민주당보다는 자기들이 더 낫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미래통합당과도 손잡을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줄 아젠다여야 한다. 뭐겠는가? 당연히 여성주의지.

 

바로 앞서 쓴 글의 보충이다. 어째서 심상정은 자기 당의 당원들마저 입장을 달리한다고 모두 내보내려 하고 있는가. 그렇게까지 해가며 정의당에 남기고자 하는 순혈과 순결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과거 동지로서의 의리마저 뒤로 하고 오로지 고소인 여성의 편에서 함께 하겠다. 그를 통해 민주당과 차별화하고 미래통합당과 다시 한 번 야권연대를 이루겠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절반이 여성이고, 그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신들이 그들의 중심에 서서 미래통합당과 한 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거꾸러뜨리는데 힘을 보태겠다. 그래야 진보의 아젠다들을 모두 회수할 수 있으니.

 

어찌보면 불쌍한 처지인 것이다. 민주당이 앞장서서, 심지어 주도해서 다수의 진보적 아젠다들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니 말로만 떠드는 정의당의 목소리따위 어디서도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진중권이 미치고 홍세화가 날뛰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로만 떠들던 시절을 끝났다. 입으로만 떠들어도 평가받고 대우받던 좋은 시절은 이제 끝났다. 50에도 못 미치는 다만 20이나 30일지라도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정치의 시절이 왔다. 그래도 나름대로 살자고 발악하는 중인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하면 언론들의 예쁨도 받을 수 있다. 진중권이 입증해 보이지 않았는가. 언론이 원하는 말을 해주면 언론의 마사지도 받을 수 있다. 수가 낮지는 않다. 인간이 더러워서 그렇지. 나름대로 큰 그림이다. 정의당을 위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