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이슈가 되었던 친딸성폭행 재판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 일단 성폭행으로 고소당하면 무고로 맞고소하는 것이 성폭행 가해자들에게는 상식처럼 공유되는 기술일 것이다. 피해자 역시 무고혐의로 수사받도록 함으로써 그 과정에서 느끼게 될 모멸감과 수치심, 그리고 공포를 통해 스스로 고소를 취하하도록 심리적으로 압박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효과가 있기도 하다. 피해자인 자신이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수사받으며 진짜 가해자들과 마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무고죄 수사에는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보호고 뭐고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당연하게 성폭행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가 무고로 고소한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를 일방적으로 무고의 가해자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가는 중이기도 하다. 무고가 성폭행 가해자들의 전략이며 오히려 그로 인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몰려서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니까 무고로 맞고소당했더라도 사실관계를 잘 따지고 헤아려서 그 진실여부를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얼마전 재판부에서도 성폭행을 고소한 딸의 탄원서조차도 전후관계를 따져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단지 성범죄로 고소당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단정지어야 한다? 고소가 근거가 된다는 것인가?

 

고소가 근거가 된다면 마땅히 무고죄로 맞고소하는 것도 역시 판단의 근거로써 타당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오죽이나 억울했으면 무고죄로 맞고소했을까. 스스로 결백한데 무고하게 성범죄자로 몰리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이 무고죄로 맞고소도 한 것일 게다. 피해자와 연대해야 한다면 무고죄를 주장하는 사람과도 연대해야겠지. 그런 걸 바라는 것인가? 성범죄를 그냥 성간의 대결로 만들고 말겠다? 그러니까 여성이 성범죄로 고소하면 무조건 피해자고, 따라서 남성 역시 무고죄로 고소하면 무조건 피해자여야 한다. 그리고 각각 남성과 여성으로써 서로의 피해자들과 연대해야 한다. 이 미친 년들이 지금 주장하는 것이 이따위 논리란 것이다.

 

할 말이 없어진다. 성범죄 무고죄에 대해 수사를 성범죄 수사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주장에 십분 공감하던 터였다. 성범죄의 특수성을 알기에 무고죄 수사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또다른 가해일 수 있다. 그런데 여성주의자들이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고 확인시켜주었다. 고소했으면 피해자고 고소당했으면 가해자다. 그러니까 무고죄로도 고소당했다면 가해자고 고소했다면 피해자인 것이다. 그런데 둘을 왜 따로 수사해야 하는 것일까? 무고죄의 억울함은 억울함도 아니란 것일까? 남성은 인간이 아니라서?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여성주의자들이란 것이다. 여성주의자들 덕분에 반여성주의자들과의 논쟁이 갈수록 더 힘들어지고 있다. 여성주의자들의 행동을 근거삼으면 딱히 반박할 말이 없게 된다. 그래서 그런 여성주의자들을 일부로 몰아서 논리를 전개하는데 일부라는 것들이 오히려 더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여성주의자들의 등쌀에 입을 다물었다면 이제는 여성주의자들 하는 짓거리에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러니까 왜 무고죄는 고소당했는데 가해자가 아니고 고소했는데도 피해자가 아니냐고. 무고죄 피고소인에게는 어째서 연대하면 안된다는 것인가.

 

아무튼 덕분에 자칭 여성주의자들의 민낯만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중이다. 여성주의자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는 가로세로연구소가 그 기준이 되어 준다. 다르지 않다. 가로세로연구소와 자칭 여성주의자들이 보이는 말과 행동에 전쳐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설득하기 좋아졌다. 이제는 나도 반여성주의 하련다. 사람이 사람 같지 않으면 사람대접해 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사람으로써 마땅히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킬 줄 안다는 뜻이다. 여성주의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머릿속에도 사람이 없으니. 말을 섞기도 싫다. 이제는. 반여성주의가 옳다. 안타깝게도.

하긴 그러고보면 말이 진보정당이지 정의당에 남은 진보적 가치가 무엇인가 의심스러운 상황이기는 하다. 역시 심상정이 민주당 2중대란 이야기를 꺼낸 이유이기도 하다. 남북문제든 노동문제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이슈이든 대부분 논의는 민주당으로 수렴되어 민주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정의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민주당 정부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처우를 개선하고, 정규직을 늘리려 하는 중이다. 남북문제도 해결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책들도 마련하고, 그를 위해 보수언론과 보수정치권과 앞장서 싸우고 있는 와중이란 것이다. 아무리 순수한 진보의 목소리를 낸다고 그 치열한 현장에서 정의당의 목소리가 먹힐 리 있겠는가.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더구나 그동안 정의당의 주요한 지지기반이 되어 왔던 노조와 시민단체들까지 다수 민주당에 합류하면서 진보정당이라지만 내세울만한 진보적 아젠다가 아예 없다시피 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오죽하면 인천국제공항 정규직화 이슈에서조차 정의당의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고 있었겠는가 말이다. 뭐라 떠들기는 했을 텐데 그러나 나같은 소시민의 귀에까지 들리기에는 너무 미약했고 그다지 잘 와 닿지도 않았다. 노동이슈마저 정의당의 손을 떠났다면 이제 정의당에 남은 진보적 아젠다란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도 민주당보다는 자기들이 더 낫다고 주장하며 심지어 미래통합당과도 손잡을 수 있는 명분이 되어 줄 아젠다여야 한다. 뭐겠는가? 당연히 여성주의지.

 

바로 앞서 쓴 글의 보충이다. 어째서 심상정은 자기 당의 당원들마저 입장을 달리한다고 모두 내보내려 하고 있는가. 그렇게까지 해가며 정의당에 남기고자 하는 순혈과 순결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조차 과거 동지로서의 의리마저 뒤로 하고 오로지 고소인 여성의 편에서 함께 하겠다. 그를 통해 민주당과 차별화하고 미래통합당과 다시 한 번 야권연대를 이루겠다. 보통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절반이 여성이고, 그 여성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주의에 관심을 가진다면 자신들이 그들의 중심에 서서 미래통합당과 한 번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거꾸러뜨리는데 힘을 보태겠다. 그래야 진보의 아젠다들을 모두 회수할 수 있으니.

 

어찌보면 불쌍한 처지인 것이다. 민주당이 앞장서서, 심지어 주도해서 다수의 진보적 아젠다들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니 말로만 떠드는 정의당의 목소리따위 어디서도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진중권이 미치고 홍세화가 날뛰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로만 떠들던 시절을 끝났다. 입으로만 떠들어도 평가받고 대우받던 좋은 시절은 이제 끝났다. 50에도 못 미치는 다만 20이나 30일지라도 실제 현실에서 이루어낼 수 있는 정치의 시절이 왔다. 그래도 나름대로 살자고 발악하는 중인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하면 언론들의 예쁨도 받을 수 있다. 진중권이 입증해 보이지 않았는가. 언론이 원하는 말을 해주면 언론의 마사지도 받을 수 있다. 수가 낮지는 않다. 인간이 더러워서 그렇지. 나름대로 큰 그림이다. 정의당을 위한.

아마 지금쯤 정의당 지도부는 모여서 파티를 열며 춤이라도 추고 있을 지 모르겠다. 모르겠는가? 하필 박원순 시장의 조문정국에 맞춰서 심상정 당대표가 민주당 2중대라는 말을 꺼낸 이유를? 심상정이 정치를 해 온 세월만 수 십 년이다. 그 극성맞은 NL들 다 때려잡고 진보정당 최초로 사당화를 이룬 인물이란 것이다. 그런데 생각없이 그런 말을 뱉었을까?

 

몇 년 전엔가 유시민과 함께 통진당에서 떨어져나와 정의당을 만들 무렵 한 축을 이루었던 참여계 출신들이 대거 탈당한다 했을 때 오히려 정의당은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그래도 정의당에서 노회찬과 함께 가장 대중적으로 인지도도 인기도 높았던 유시민을 어떻게든 내쫓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었다. 당연하다. 참여계는 원래 열린우리당에서 떨어나온 노무현 전대통령의 지지자들이었다. 자칭 진보주의자 입장에서 그들은 진보도 당연히 아니었고, 더구나 진보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노무현 전대통령을 지지하던 떨거지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처음 정의당을 만들 때야 세가 필요하니 함께했지만 어느 정도 자리도 잡고 했으니 불편한 가짜들은 나가주는 것이 좋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박원순 지사를 성추행 가해자로 공격했을 때 반발하며 뛰쳐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의 평소 정치적인 성향이 어떠했을 것인가. 아무리 시민운동과 진보운동을 오랜동안 함께 해 온 사이라 할지라도 지금 소속되어 있는 당이 민주당이고, 장차 민주당의 대선후보를 노리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그를 과연 진보의 동지로 볼 것인가? 단지 민주당 소속의 지자체장으로 볼 것인가? 그러니까 민주당 소속의 지자체장을 같은 진보의 동지로 여길 사람들은 이제 그만 나가라. 그래서 심상정이 민주당 2중대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렇게 정의당에서 민주당 정치인이나 지지하는 불순한 무리들을 모조리 걸러냄으로써 순수하고 순결한 진보의 정당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

 

류호정이나 장혜연 같은 초짜들이 무슨 대단한 깡이 있어 당대표까지 참석하는 그래도 대한민국 정치계의 거물이며 한때 시민운동과 진보운동의 거물의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 당당히 선언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냥 개인적으로 가지 않는 것을 넘어서 대놓고 박원순 시장을 가해자로 몰면서 고인에 대한 모욕까지 서슴지 않고 있었다. 과연 당대표인 심상정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지 초짜 정치인다운 섣부르고 성급한 정의감과 패기가 그런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이라 믿는 사람이 진짜 있기는 한 것인가. 

 

이를테면 정의당의 정화과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정의당에 몸담고서 어디 가서 민주당의 편에서 민주당에 유리한 발언을 하는 불순한 무리들을 모두 정의당에서 솎아내고야 말겠다. 이를테면 신장식이 끝내 비례후보에서 사퇴해야 했던 진짜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더이상 정의당의 이름으로 민주당에 유리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용납지 않겠다. 싫으면 나가라. 나가도록 판을 짜 주겠다.

 

처음에는 속시원하다 여기다가 이제는 박원순의 죽음마저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판을 짜는 심상정의 정치력에 감탄하게 된다. 즉 지금 조금이라도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애석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정의당에서 나와 주는 것이 정의당과 심상정 대표를 진정으로 위하는 행동이란 것이다. 녹색당이 그런 것처럼 조금이라도 민주당 2중대라 불릴 만한 부분을 더이상 정의당 안에 남겨 두지 않겠다. 확실히 얼마전부터 정의당 출신들이 방송이나 유튜브 등에 나와 하는 말이나 태도가 많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떠나야 하고 떠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아마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자칭 진보들과 직접 어울리기 전에는 전혀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 진보파쇼다. 순혈과 순결의 진보적 가치를 집착하듯 추구한다. 그래서 정작 진보인사들이 정의당이 아닌 차라리 민주당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노회찬도 정의당에서는 죽는 그 순간까지 철저히 비주류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것이다. 정의당에게는.

요즘 천하통일에 매진하느라 똥걸레가 오보를 낸 것도 모르고 지나갔었다. 역시나 똥걸레였네. 어디 조선일보가 오보낸 줄 알았더니만 결국 똥걸레였다. 바로 이런 것이 저들이 주장하는 여성주의이고 피해자와의 연대인 것인가.

 

박원순 시장이 실종되고 한겨레에서 기사를 하나 냈었다. 박원순 시장이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는데 그 직전에 서울시청 차원에서 대책회의를 연 적이 있었다. 실제 이 기사를 근거로 박원순 시장이 실제 성추행을 저질렀고 고소당하자 결국 불행한 선택을 한 것이라 믿는 사람이 상당한 상황이다. 그런데 서울시청에서 바로 반박자료를 냈다. 그런 대책회의는 있지도 않았고 고소사실도 서울시에서는 알지 못했었다. 무슨 뜻이겠는가.

 

달리 그런 정황을 전할만한 사람이 없다. 대책회의가 실제 있었고 그 사실을 알고서 전했다면 박원순 시장의 측근 가운데 한 사람이란 뜻이다. 성추행이라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닌데 개나소나 알게 아무나 데려다 회의를 열지는 않았을 테니. 그런데 그만큼 시장으로부터 신뢰받던 인사가 시장이 실종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 그런 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더구나 추가취재도 안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과연 언제 누가 어떻게 대책회의를 열었는지 더 이상 구체적인 보도가 나오지 않고 있는 중이다. 오히려 서울시청 차원에서 그런 회의는 없었다는 확인만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한겨레 기자는 시장이 사라진 그 순간 누구로부터 듣고서 그런 기사를 썼던 것일까?

 

조선일보 잘하는 짓거리 있지 않던가 말이다. 성추행으로 고소한 사람이 있다. 피고소인인 박원순 시장이 행방을 감춘 상태다.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것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벌써 몇 년 전 일인데 중간에 아무 일 없이 바로 고소부터 이루어졌겠는가. 그동안 고소인이 문제제기를 하고 박원순 시장이 그에 대한 대책회의도 하지 않았을까. 소설이다. 물론 나 역시 블로그에서 자주 하는 짓거리다. 다만 나와 기자가 다른 이유는 내 블로그를 누가 무슨 대단한 공신력을 기대하고 찾아와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도 자기 이름 걸고 회사의 이름 아래 기사를 낸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피해자와 연대하는 것은 사실을 조작해서 기사를 내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피고소인인 박원순 시장을 가해자로 만들어야 한다. 고소인인 여성을 피해자로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서 사실도 조작한다. 거짓으로 기사를 쓴다. 양심의 가책따위 없다. 박원순 시장은 이미 가해자일 테니까. 고소인인 여성은 반드시 피해자일 테니까. 그를 위해 기사 정도 조작하고 왜곡한다고 무슨 큰 잘못이라 할 수 있겠는가. 언제부터인가 한겨레가 조선일보를 동경하며 따라가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겨레 기자들의 미래 직장이 바로 조선일보 경력직인 이유다. 어째서 한겨레가 그토록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반대하고 나서는 것인가.

 

하루빨리 입법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한겨레나 경향 같은 악질적인 언론들부터 폐간시키고 봐야 한다. 조중동은 덩치가 있으니 힘들어도 한겨레 경향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사실을 조작해서라도 고소인을 피해자로 만들어 연대하고, 사실관계가 명확치 않은데도 피고소인을 가해자로 만들어 비난하고 조롱한다. 저것들이 박원순 시장의 죽음이 알려진 순간 하던 짓거리들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래서 저놈들은 망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저런 놈들부터 망하게 만들어야 뒤라도 깨끗해진다.

 

새삼 어이없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다. 그냥 똥걸레가 똥걸레한 것이다. 받아쓴 놈들이야 똥걸레가 총대 매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반드시 망하게 만들어야 한다. 뿌리를 뽑아버려야 한다. 증오도 아깝다. 벌레새끼들.

그러고보니 내가 민주당을 탈당한 것도 선거가 끝나고 180석의 압승에도 유시민을 저격하며 책임을 물으려는 모습에 환멸을 느껴서였었다. 그동안 유시민이 민주당을 위해 한 일이 얼마인데. 선거기간동안 민주당에 한 표라도 더 가도록 노력한 것이 또 얼마였었는데. 그러나 당적도 없고 무리에 속하지도 않으니 마음놓고 저격하며 떨어진 놈은 떨어진 놈대로, 붙은 놈은 붙은 놈대로, 그러니까 200석도 할 수 있었다는 거다. 이 뭔 개소리인가.

 

인지상정이라는 것일 게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마음가짐이다. 물론 스스로 성추행 당했다고 고소한 사람이 있는데 마냥 외면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는 하다. 그런데 고소고발했다고 피해자라고 연민을 가지고 연대하려 한다면 가세연과도 연대해야 할 것이다. 법세연은 어떨까? 그렇게 고소고발 남발하고 있는데. 그냥 고소인이다. 고발인이고. 나름대로 고통받고 억울한 것이 있어서 그것을 풀고자 경찰에 고소까지 했을 텐데 그것까지 무어라 하는 것도 사실 인지상정에 벗어나는 일이기는 하다.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박원순 시장의 죽음이 원통하다고 고소한 사람을 무작정 비난할 일도 아니고, 고소당했다고 바로 가해자로 여길 일도 아니다. 하물며 사람이 죽었는데.

 

성추행의 진실의 사람의 목숨보다 무겁지는 않다. 더구나 평생을 여성의 인권을 위해 노력해 온 인권변호사의 삶의 궤적보다 더 가치있지도 않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심상정이 박원순에게 돈 빌려줬다 떼인 적 있거나, 아니면 돈 빌렸다 갚기 싫은데 억지로 갚은 적이 있다. 최소한의 신뢰라도 있었다면, 동지적인 연대라는 것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역시 당연한 사람의 마음으로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해 한 번은 더 믿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설마 그 사람이 그랬을까. 아무리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했었겠는가. 지금 대부분 추모하는 주변사람들이나 전혀 상관없는 시민들의 마음이 그런 것이었을 터다. 고소인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박원순이란 인간에 대한 신뢰가 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심상정은 그렇게 쉽게 바로 박원순을 가해자로 단정지은 것일까? 고소한 사람이 피해를 주장해서? 그 사람을 더 신뢰할만한 무언가가 심상정에게는 있었던 것일까?

 

정의당의 공식논평에도 있었다. 아직 사실관계를 다 파악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고소했다고 피해자라는 것이다. 고소당했다고 가해자라는 것이다. 결국은 하나다. 원래 박원순에게 원한이 있었거나, 아니면 남성이기에 그저 고소당했다는 사실만으로 가해자로 여기는 것이거나. 그런데 박원순의 그동안의 삶을 보았을 때 그 정도 원한을 맺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테고, 박원순을 그냥 남성으로만 여기는 것도 그다지 타당하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죽은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었는가.

 

그래서 한 편으로 다행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죽음으로 언론의 실체를 까발렸고, 박원순 시장은 죽음으로 여성주의의 진실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지금 여성주의가 누구와 함께 어울리고 있는가. 지금 여성주의자들의 행동이 가세연 등 극우유튜버와 무엇이 다른 게 있던가. 단지 고소당했다는 이유로, 더구나 고작 성추행으로 고소당했다고 한 인간을 단정짓고 조롱하고 모욕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류호정으로는 부족했는데 갈수록 더 말들이 심해지고 있는 중이다. 축배를 들고 환호를 한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80년대 90년대 선배들은 참 쓸데없는 짓 한 것이라고. 민주화고 인권운동이고 다 쓸데없다. 특히 남성이 하는 여성주의 운동이란 것은. 여성주의자들에게 남성은 절대 동지일 수 없다. 남성이란 억압하고 타도해야 할 적에 지나지 않는다. 성재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박원순은 어째서?

 

정의당에서 당원들의 집단탈당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마 나와 비슷한 것을 본 모양이다. 안희정 전지사와 관련해서 이야기한 바 있었다. 이념에 매몰되면 사람이 사라진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을 일방적으로 가해자로 낙인찍는 행위가 피해자라 주장하는 고소인을 위해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죽은 박원순 시장을 모욕하는 순간 고소인에 대한 굳이 없어도 되었을 불편한 감정까지 생겨나고 마는 것이다. 그 고소인으로 인해 모든 삶과 죽음까지 모욕당하는 모습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박원순의 삶이 어떠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아니다.

 

원래 사람은 감정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이다. 유교의 이기론에 따르면 리의 이성은 기의 감정을 움직이는 원천에 지나지 않는다. 이성으로 판단하고 그를 감정으로 드러낸다. 이성으로 사고하고 그를 감정으로 표현한다. 민주주의가 옳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에 분노한다. 세상은 공정하고 평등해야 한다. 그래서 불공정과 불평등에 분노하며 원망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래서 인지상정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고 지켜져야 하는 근본 같은 것이다. 그래서 감정을 드러낸다. 정의당 정치인들이 박원순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 감정의 근원은 무엇일까.

 

사람이 감정적으로 올바른 대응을 보이지 못한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고 그 대상이 전두환이었어도 사람들이 이랬겠느냐 하는 것이다. 과연 박원순이란 인간을, 그의 삶을, 그 궤적과 업적들을, 그 동지적 관계를,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느냐는 기본적인 판단 자체가 잘못되었을 때 감정적으로도 전혀 바르지 못한 행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고소인을 피해자로 단정짓는 것도, 피고소인을 가해자로 단정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는가. 심상정이 박원순 시장에게 개인적인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닌가고. 그리고 그것을 본능으로 사람들은 아는 것이다.

 

꽤나 심각해질지도 모르겠다. 박원순 시장을 모르는 이들도 아닌 것이다. 몰라서도 안되는 것이다. 아니 설사 모르더라도 모르는 만큼 삼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머리만 너무 앞선다. 그런데 원래 진보가 그랬다. 여성주의자들이 그랬었다. 그것을 이성이고 논리라 여겼을 지 모르지만 섣부르고 일방적인 감정의 배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운동할 때 근육의 움직임을 살피듯 그래서 어떤 주장을 할 때도 자신의 감정의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 감정으로 글을 쓸 때는 굳이 이성적인 척 논리적인 척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정은 단지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다만 그 감정이 올바로 작용하고 드러나는가를 이성에 맡겨 판단하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어떻게 정의당 국회의원들의 박원순 시장에 대한 무례와 모욕과 혐오와 증오가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었는가.

 

다만 그렇다고 기회가 온 양 과거의 사건들까지 끄집어내어 여성주의자로서 박원순 시장의 삶까지 모욕하려는 반여성주의자들과도 말을 섞을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여러 논쟁에서 여성주의자들의 편을 들었던 것도 그들 반여성주의자들의 어처구니없는 주장과 논리에 혐오와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니까. 고작 고소장이 접수되었을 뿐인 사건과 복수의 증언으로 교차검증된 이전의 사건들이 같은가. 재판을 통해 판결까지 내려진 경우와 같은가. 안희정은 확실히 유죄였다. 내가 아는 바로 많은 성폭행 피해자들이 김지은씨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는 성폭행이라는 인식 없이 그런 행동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있다. 그게 바로 위계에 의한 성폭행이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대상으로부터의 강요된 성행위인 것이다. 그러면 그건 성폭행이 아닌 것인가.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연민 정도는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박원순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설사 사실이더라도 전기의 말미에 이런 추문도 있었다 정도를 덧붙일 수 있는 삶을 살아 온 사람이다. 그것을 깡그리 무시하며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정의당의 젊은 정치인들이. 그리고 정의당 당원들은 그런 자신의 당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고. 감정이 어떠할까. 민주당을 탈당한 입장에서 충분히 공감하는 바 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나도 프레임에 넘어갈 뻔했네. 그러니까 고소인은 전날부터 밤샘조사를 받았고, 박원순 시장은 아침까지 조사받은 그 날 산을 올랐다는 거지. 경찰이 박원순 시장에게 고소사실을 통보했다는 정황이나 증거도 없고.

 

결론은 정의당이 정의당하고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주의하고 가세연이 가세연하고 수구들이 수구짓한 거였네. 언론은 그냥 상수고. 그러고보니 밤샘조사 받고 나서 SBS와 바로 인터뷰한 부분도 흥미롭기는 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저들 모두가 그 순간 박원순 시장이 죽기만 바라고 있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과연 시신이 발견되기도 전부터 쏟아진 사망속보는 오보였을까? 언론들의 간절한 바람이었을까?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예단은 피해야겠다. 그래서 자칭 진보와 여성주의 년들은 죄다 버러지들이라는 것.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서 벌써 판결까지 끝내 놓았다.

 

아무튼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누가 누구와 연대하고 있는 중인가. 극우유튜버와 여성주의자들과 자칭 진보들이 분명하게 수구세력과 연대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우연이겠는가. 이동재가 이철더러 그저 한 마디만 하면 자기들이 다 끝내겠다고 한 것은 누구를 가리킨 것이었겠는가.

 

모르면 모르는대로 일단 지켜보기부터 할 일이다. 새삼 악취나는 쓰레기들을 분리할 수 있었으니 소득이 없었다 할 수는 없겠다. 세상에는 참 사람 꼬라지를 한 버러지들이 많기도 하다. 알고 있었지만.

여성주의자들은 정말 힘이 날 것 같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슈퍼챗을 받는다는 가세연이 나서서 힘을 실어주고 있지 않은가. 가로세로연구소를 비롯한 극우진영에서 박원순의 죽음을 여성주의자들 만큼이나 통쾌해 하는 이유가 있다. 하긴 여성주의자들이 통쾌해하는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원순이 촛볼광장을 열고 지켜주었었다.

돌이켜보면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서울광장을 정부권력으로부터 지켰던 것은 다름아닌 서울시장 박원순이었었다. 더구나 당시까지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고 있었기에 그 적개심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런 박원순이 오욕속에 죽었으니. 그 죽음마저 물어뜯을 빌미를 남겼으니. 그런데 과연 여성주의자들의 동기라고 다를 것인가.

탄핵 전에도 탄핵 후에도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박근혜에 대한 여전한 지지를 드러내며 여성이기에 부당하게 탄압받고 있음을 주장한 바 있었다. 2012년에도 독재의 후신이든 뭐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폭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었다. 과연 여성주의자들에게는 박원순에 대한 원망과 원한이 없었을 것인가. 단순히 성추행으로 고소당했기에 공격한다기에는 그동안 그가 이룬 업적과 이 사회에 대한 기여마저 모두 무시한 채 지나칠 정도로 조롱과 비난을 퍼붓고 있는 중이다. 여성주의자와 보수진영의 말과 행동에서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왜이겠는가.

그동안의 경험으로 한국 여성주의자에게는 여성과 여성 이외의 무엇만이 존재함을 알고 있다. 조선후기 유학자들이 과연 만주족이 사람인가 아닌가로 고민했던 것처럼 저들은 여성 이외의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 웃기는 것이다. 그런 주제에 남성 권력에 기대서 뭔가를 이루려는 그 비루함이라니. 자기들이 나서서 목숨걸고 한 번 쟁취해 보던가, 동정해주는 것도 싫고, 동의해주는 것도 싫고, 편들어주는 것도 싫고, 돕겠다는 것도 싫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가축처럼 시키는대로 따르기나 하라. 원래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이 또 있는 집 자식들이라. 실제 남성들과 같이 중장비를 다루고, 중요한 설비를 관리하는 여성들은 살기에 바빠서 그럴 여유조차 없다. 그런 여성주의자들에게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란 어떤 의미였겠는가.

여성주의자들도 안다. 모르면 진짜 버러지 기생충들이다. 성추행이 사람 목숨보다 중하지 않다. 한 인간의 삶보다, 남겨진 이들의 고통보다 더 무거울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서슴없이 단지 고소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소인을 피해자로 단정짓고 죽었다는 이유로 가해자로 낙인찍어 조리돌림을 한다. 가세연이나 극우 유튜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아니 그들보다 더 끔찍할 정도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연민조차 찾아 볼 수 없는 모습들을 보인다. 왜이겠는가. 언론이 편향적이기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듯 저들이 언론과 유착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실제 지난 대선에서도 여성주의자들은 차라리 홍준표보다 문재인 대통령에 더 적대적이었었다. 과거 자유한국당에게는 유연하기만 하던 모습들이 민주당을 향해서는 강경하기만 했었다. 박근혜의 공적이다. 여성주의가 진보의 아젠다를 장악하면서 진보는 박근혜에 이끌려 보수에 종속되어 버렸다. 그래서 과연 보수언론과 보수정치권과 맞서가며 자칭 진보들이 무언가 이루어낸 것이 있기는 하던가.

새삼 확인하는 것이다. 가로세로연구소와 같은 극우 유튜버들이 박원순에 대해 보이는 증오와 혐오가 여성주의자들에게서 보이는 그것과 너무 닮아 있음을. 성추행범도 모두 사형에 처하고 가족까지 연좌해서 아예 사회로부터 매장시키자 한 번 주장이라도 해 보면 그 선의를 믿어 주겠다. 미친 놈들이 아니고서야 진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리 있는가.

극우와 여성주의가 함께 가는 모습은 사실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니다. 원래 일베와 메갈부터 서로 거울을 사이에 둔 위상동일체에 가까웠다. 그러면 또 고소인을 앞세우겠지. 그렇게 고소인이 피해자라 생각한다면 늬들이 대신해서 욕을 들어먹으란 것이다. 남의 이름 팔아 숨으려 하지 말고. 더러운 벌레들. 여름이라 벌레가 여기저기 많다. 죄다 약이라도 뿌려 버리고 싶지만. 끔찍하다.

기자것들은 그런 식으로 딸딸이를 치는 모양이다. 대중이 편향적인 언론을 좋아해서 자신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정파적이고 편향적인 언론을 바라니 자신들가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언론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단순한 산수만 해도 중립이라면 최소한 절반은 다른 쪽 편도 든다는 소리 아닌가. 그러면 절반은 좋아해야지.

잘하면 칭찬하고 못하면 비판한다. 옳은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것은 비판한다. 그러면 잘하면 되는 것이다. 옳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중립이란 것이다. 그것이 객관이란 것이다. 아무리 정파적이라고 BBC의 권위마저 무시하는 영국인이 몇이나 되겠는가. 가디언을 우습게 여기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마저도 채찍질로 여기고 자신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비난하고 조롱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언론이라면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한국 대중은 어떠한가.

진짜 하다하다 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경향 문화 국민 세계 한경 매경이 중립적인 언론이란 소리도 듣게 되는 모양이다. KBS MBC SBS가 언제부터 사실만 엄정하게 보도하고 있었을까? 사람들이 정파적이고 편향적이어서 늬들을 신뢰하지 않는 게 아니란 것이다. 늬들이 원래 정파적이고 편향적이기에 차라리 자기들 입맛에 맞는 언론을 찾아서 위로와 만족이라도 얻기를 바라는 것이다. 늬들만 그렇게 생각한다. 보수지지자들에게 물어보라. 조선일보가 객관적인지. 중앙일보가 중립적인지. 하긴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니고서는 한겨레 경향을 진보적이라 말하는 진보지지자도 이제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만.

대중이 괜히 언론을 불신하고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언론은 단지 수단이다. 사실과 진실을 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자기만족을 위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어차피 언론이 사실을 보도할 리 없으니 언론의 편향성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파적 이해만을 추구한다. 여성주의자들이 유독 민주당의 성문제에 대해서만 민감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 결탁하려면 그 대상이 민주당이어야 한다. 정의당도 미래통합당도 설사 있어도 크게 일어나거나 하지 않지만 민주당이라면 확실하게 자신들의 힘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할 검찰총장을 보수의 유력 대선후보로 벌써부터 지지하는 대중들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과연 언론이 보도한다고 사실일까? 언론이 주장한다고 진실일 것인가? 그냥 필요하면 그렇다고 인정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해가 맞아 떨어지면 그때부터 언론은 참언론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언론을 신뢰하며 주장하는 이들은 중립적인 대중이 되어 버린다. 작년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집회가 연이어졌을 때 서초동과 광화문의 시민들에 대한 언론의 다른 태도들이 그 증거인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도 민주당도 그들을 만들어낸 지지자도 가짜 국민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고.

자기들이 먼저 정파적이고 편향적인데 괜히 남의 탓만 하려 한다. 정파적이고 편향적인 자기들을 중립으로 놓고 판단하려니 세상이 오히려 치우치고 비틀린 듯 보이는 것이다. 그런 놈들과 결탁해서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놈들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쓰레기인 것인가. 언론은 여성주의를 이용하고, 여성주의는 언론을 이용하고. 쓰레기들끼리 아주 잘도 모였다.

분명히 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니라 고소인이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고소인이고. 과연 고소사실이 박원순 시장의 선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아직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어째서 일부 극단적인 사람들이 피해자라 부르는 고소인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제대로 도발했거든. 사람이 죽었다는데 축배를 들고 조롱의 말을 쏟아내고. 성추행이 사람의 목숨보다 무겁다. 한 사람의 인생보다 더 무겁다. 그러니 고작 성추행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게 되면 그때는 괴물만 남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은 지금 언론을 등에 업고 있다는 것이겠지. 어차피 언론은 민주당에 적대적이니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 제대로 보도하지도 비판하려고도 않을 것이다. 원래 한 편이었다. 미투란 이름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마녀사냥할 때부터. 속성도 비슷하다. 버러지에 기생충들이라.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기본을 무척 중요하게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민주당 당적도 버렸다. 의리가 없는 놈들과는 함께할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도 존중도 없는 연놈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약자들을 위하겠다면서 그 약자들을 오히려 탄압했던 괴물의 예가 이미 역사에 있음을 아는데.

언론과 여성주의라는 버러지 기생충들의 콜라보를 아주 잘 즐겁게 보고 있는 중이다. 고소만 당해도 가해자고 추악한 범죄자고 그 모든 것을 부정되어야 한다. 세상에 여성주의자들만 살고 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남성들이 반성할 일이다. 스스로 쟁취하라 그래라. 유혈혁명을 일으키든 집단자살이라도 하든. 봐 줄 필요가 없다. 저들은 단지 버러지 기생충에 지나지 않으니. 언론과 딱 수준이 맞는다. 더러운 것들.

대한민국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언론의 보도를 그대로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물론 다른 나라라고 언론플레이가 없는 것은 아닐 게다. 그래도 정상적인 사회라면 기자가 취재도 할 것이고, 언론사 데스크에서 취재한 내용에 대한 판단도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어떤 주장을 했다고 있는 그대로 사실처럼 보도하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그러니 최소한 지금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내용은 데스크의 판단을 거친 것일 게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기자 개인의 일방적인 의심조차 마치 사실처럼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작년 조국 사태에서도 그런 경우를 헤아릴 수 없이 보아 왔었다. KBS 사회부장은 정경심 교수가 코링크PE의 실소유주라는 확신까지 가지고 인터뷰내용까지 조작해서 보도하고 있었다. SBS 역시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위조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아직 찾지도 못한 직인파일을 발견했다며 단독까지 달고 내보내고 있었다. 정의연 사태의 경우는 어떨까? 순차적으로 다섯 채의 집을 사고 판 것을 마치 한 번에 소유한 것처럼. 한 달에 120만원 받고 상주하며 관리한 것이 대단한 특혜이기라도 한 것처럼. 안성 쉼터를 팔았던 당사자의 인터뷰까지 따고서도 마치 대단한 의혹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오히려 위안부 피해자들을 이용해서 사적으로 이익을 편취하려는 이들이 언론을 이용해서 마치 의인이고 일방적인 피해자인 것처럼 정의연도 공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받아주니까.

 

확실히 하루가 지나니 이제는 아예 박원순 시장의 성추행이 기정사실인 것처럼 여기저기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언제부터 기자가 판사였을까? 언제부터 기자가 검사고 형사였을까? 여성주의자들은 신이다. 왕이고 황제다. 내가 성추행이라면 성추행이다. 내가 성범죄자라면 성범죄자다. 성추행은 학살보다 그 어떤 인권유린보다 중대한 범죄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부정할 만큼 중대한 범죄인 것이다. 형법에 기록된 형량을 보자. 실제 재판에서 나온 양형들을 보라. 하긴 십 몇 년 전 쓴 글 몇 줄 가지고도 아직도 지랄하는 게 여성주의자들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여성주의자를 비난하던 것들이 이번에는 다시 여성주의자들과 한 편이란 것이다. 언제부터 성추행이 그렇게 중대한 범죄였어요?

 

여성주의자들 떠드는 소리 들어주는 것 그만두기로 했다. 물론 당사자 입장에서 너무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신체에 대한 강제적인 접촉이 사람의 목숨이 오가는 상황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작 성추행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과 생명까지 좌우할 문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늬들은 늬들대로 그렇게 주장하라. 나는 절대 동의하지 않으니까.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당당하면 한 번 외쳐보라. 성추행범을 모두 사형에 처하자고. 다시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게끔 만들어 버리자고. 그렇게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고작 나서서 떠드는 소리가 진실을 밝히자는 것이고, 피해자를 위해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인생마저 부정하고 죽음을 모욕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분노하는 이유다.

 

과연 진짜 성추행이 있었는가. 아니 그보다 먼저 박원순 시장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피해자라 주장하는 여성의 고소 때문이었는가. 아직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실제 사실로 드러난 것은 아직까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의심하니까. 내가 주장하니까. 내가 가리키면 말도 사슴이 되고, 묵도 은어가 되었다 다시 도루묵이 된다. 재판도 필요없다. 수사조차 더이상 필요치 않다. 주장하면 사실이고 주장하면 진실이 된다. 벌레들은 그냥 벌레일 뿐. 그러나 그런 벌레들과 배를 맞춘 벌레들 덕분에 그런 일방적인 주장들이 사실처럼 퍼지고 만다.

 

정의당의 전략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의석도 없으니 언론을 등에 업어야겠다. 그동안 자신들을 동정보다는 차라리 무시하며 오로지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던 그대로 언론의 필요를 위해서만 움직이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모습을 보여야겠다. 요즘 정의당 하는 짓거리를 보면 딱 언론이 좋아할만한 것이다. 민주당의 당적을 버린 이유다. 아무리 정치적으로 지지해도 인간적으로 혐오감을 느끼면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다. 과연 저들이 인간이기는 한가. 여성주의에 인간이란 존재하는가. 정의당의 진보에는 인간이 있는가. 현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괴물이 되어 간다. 

지금 사람이 죽은 와중에까지 단지 고소사실만 가지고 범죄를 기정사실로 만들어 고인을 모독하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누가? 언론이! 정치권이! 자칭 지식인들이! 무엇보다 여성주의자들이!

 

피해자라고 말하는데 누가 피해자인가? 그러면 지금 내가 심상정이 나 때렸다고 고소하면 내가 피해자가 되는 것인가? 장혜영이 내 돈 훔쳐갔다고 고발하면 바로 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나마 류호정의 표현이 가장 온건하고 합리적이었다. 어찌되었거나 그런 불미스런 일로 고소당한 사람이고 고소한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런 자리까지 찾아가서 조문하지는 못하겠다. 그에 비해 다른 정의당 정치인들의 말은 어떠한가.

 

박원순이 그동안 인권변호사로서 해 온 일들만 해도 감히 그의 죽음 앞에서 저토록 오만할 수는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를 위해서 그동안 기여해 온 일들만 생각해도 그런 식으로 감히 죽은 이를 마음대로 모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고작 성추행이 그동안의 모든 삶까지 부정할 정도로 그렇게 대단한 범죄인가. 고작이라 말하겠다. 한 인간의 목숨 앞에서 성추행이란 고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자기들은 얼마나 대단한 인간들이기에.

 

아무튼 아예 기정사실로 만들고는 마음껏 박원순의 인격과 삶까지 난도질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살았으면 달랐을까? 살아서 뭐라도 변명을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재판을 통해 무고함이 드러났으면 조금은 태도들도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동안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 박원순 같은 이들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고. 평생 자신이 이룬 모든 것들이 깡그리 부정당하는 상황을 어찌 사람이 견딜 수 있겠는가.

 

박원순 자신도 여성주의와 깊은 유대가 있기에 오히려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성주의란 어떤 것인지. 여성주의와 손잡은 언론이란 어떤 존재인지. 정치권이 자신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과연 출구란 있을까?

 

그게 바로 지금 여성주의의 현실이란 것이다. 마땅히 타도해야 할 적이며 악이다. 다만 그럼에도 표 때문에라도 여성주의를 외면할 수 없다는 게 민주당의 어려움일 듯. 하지만 난 당원도 아니니까. 쓰레기들. 다 뒈져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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