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직전 썼던 글의 연장이다. 그때 말했었다. 정의당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 자신들이 터무니없이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하려 한다. 그것은 바로 언론이 바라는 정의당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언론이 기대하는 민주당을 공격할 수단으로서 진보정당 정의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21대 총선 이전까지 진보정당에서 누구를 비례대표 후보로 내세웠는가 아는 사람도 거의 드물었었다. 정의당 당원이나 진보정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나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공천되었는가 내용을 알 뿐 대부분은 언론이 다루지 않으니 당선되고 나서야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나오면 그런가보다 넘어가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유독 이번 총선에서 만큼은 모두가 이름을 알 정도로 언론에서도 중요하게 기사로 내보내고 있었다. 어째서?

 

원래 정의당의 - 정확히 진보정당의 가치란 수구세력과 비교되며 자연스럽게 진보로 분류되어 버린 민주당을 진보의 관점에서 비판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를 양분하는 거대정당으로써 그 크기 만큼이나 구성도 복잡하고 노선도 모호한 민주당에 비해 항상 진보정당은 이념적으로도 더 선명하고 도덕적으로도 더 순결하며 행동에 있어도 과감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이미지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현실적이라는 보수성에서는 보수정당에 미치지 못하면서 이상론인 진보성에서도 진짜 진보정당에 미치지 못하는 모호하고 무능한 민주당이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수적인 유권자는 민주당의 무능에 실망하고, 진보적인 유권자는 민주당의 모호함에 환멸을 느껴 멀어지게 된다. 실제 그렇게 되었었다. 선거 때만 되면 다시 결집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도저히 지지하지 못할 정당이라며 외면하는 유권자들이 그동안 너무 많았었다.

 

그런 정도면 되었던 것이다. 당연하게 현실론을 앞세워서 수구정당의 손을 들어주면서도 진보적인 이상론에서는 진보정당의 목소리를 빌어 민주당을 비판한다. 보수적인 관점에서도 비판하고 진보적인 관점에서도 비판하며 그 주장 자체를 가치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를 위해서는 진보정당이 더 선명해도 좋았던 것이다. 더 과격해도 전혀 상관없었다. 그래봐야 고작 10석도 못 얻는 군소정당따위 뭐라 떠들든 그것을 현실로 옮길 가능성 따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딱 그 정도만,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만 진보정당을 이용하며, 오로지 그를 목적으로만 여지껏 보호해 왔던 것이었다. 사실상 사육이다. 그런데 그런 진보정당이 감히 무언가를 이루어 보겠다고 민주당과 손을 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자칭 진보들이 민주당 2중대라는 말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수구정당 2중대라는 말에는 무덤덤한 모습을 보였던 진짜 이유였던 것이다. 언론이 뭐라 하지 않으니까. 민주당의 편을 들면 민주당 2중대라 욕하는데 수구정당과 손잡고 민주당을 공격하면 독자노선을 걷는 진보정당으로 인정해주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진보정당으로 오롯이 홀로서기 위해서라도 수구정당과 손잡고 민주당을 공격하는 편이 자신들 입장에서는 더 나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심상정이 그런 상황을 타개해 보겠다고 원내교섭단체를 노리고 민주당과 손잡고 무려 검찰개혁에 손을 들어주려 하고 있었다. 검찰개혁을 위한 법안들에 힘을 실어주며 선거법 개정을 위해 민주당과 협력하고 있었다.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감히 진보정당 피라미들이 언론님들과 검찰님들을 거스르려 하다니.

 

사실 그동안도 진보정당 내부에 문제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었다. 통진당의 경우가 너무 심해서 표면으로 드러났을 뿐 사실 지금도 정의당을 언론이나 검찰이 작심하고 털면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단지 언론과 권력이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정의당을 그냥 방치하며 봐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본보기로 잠시 정의당의 비례후보들을 살짝만 털어 주었던 것이었다. 어째서 논란이 된 비례후보가 그리 많았었는데 신장식 하나만 순번에서 제외된 것일까? 조국사태 당시 신장식 변호사가 여러 방송에 나와서 검찰과 언론을 비판했던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정의당을 결정한 것이다. 다시는 이런 미친 짓 말아야겠다.

 

그동안 거대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약소한 진보정당이 명맥을 지키며 원내에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당비까지 내며 지지하는 당원들이 아닌 오로지 언론의 비호와 방조였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도움 없이 정의당은 단 하루도 버틸 수 없다. 언론이 작심하고 털기 시작하면 단 며칠도 제대로 버티기 어렵다. 이번 총선에서도 언론이 끝까지 민주당 후보들 검증하듯 정의당 후보들을 검증하려 했으면 6석은 커녕 열린민주당이나 국민의당에도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 일찌감치 항복을 선언했으니 더이상 헤집으려 않고 오히려 정의당을 이용해서 민주당의 표를 분산시키려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정의당을 너무 공격하면 진보진영의 표가 모두 민주당으로 갈 수 있으니 적당히 봐주면서 민주당의 표를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하자. 덕분에 민주당이 잃은 의석이 몇 석은 족히 될 것이다. 과연 자신들이란 언론에게 어떤 존재인가. 자신들에게 언론이란 어떤 의미인가. 정의당 지도부와 당대표 심상정이 이번 총선을 거치면서 더욱 절실하게 치열하게 깨달을 사실을 것이다.

 

실제 언론이 정의당을 한 차례 흔들고 난 뒤 정의당의 행보를 보면 딱 언론이 좋아할 만한 말과 행동만을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조선일보 받아쓰기 좋으라고 탄핵을 언급한 것이었고, 언론이 듣기 좋으라고 조국 전장관을 비판했던 것이며, 민주당의 단독개원과 추경심사에 대해서도 거부한 미래통합당의 책임보다 독단과 독선이라는 언론이 원하는 프레임에만 충실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번 박원순 조문국면에서도 그래서 심상정은 그래도 박원순 시장에 대한 의리로 자기가 직접 나서지 못하고 초선인 류호정과 장혜영을 앞세워 언론이 바라는 말을 대신 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성주의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모독하고 청와대까지 함정에 빠뜨리려 한다. 그래야 정의당도 언론으로부터 예쁨받고 도움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심상정이 굳이 박원순 조문국면에서 민주당 2중대 이야기를 끄집어 낸 이유였다. 서울신문의 지원사격은 한 편으로 경고이기도 했었다. 다시는 작년 패스트트랙 정국에서처럼 감히 자신들을 무시하고 민주당과 손잡으려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그러면 절대 두 번 용서는 없다. 그러므로 혹시라도 자신들의 노선에 반대하는 지지자 당원들은 그냥 당을 떠나라. 어차피 당원들의 지지에 힘입어 존재해 온 정당은 아닌 때문이다. 언론이 기사만 잘 써주면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뭣도 모르는 이들이 자신들에 표를 주어 다시 6석 정도는 얻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런 언론을 믿고 증거같지도 않은 증거를 앞세워 고소인과 변호인은 고인의 영결식을 더럽히려 했던 것이었고.

 

그냥 우연히 맞아 떨어진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는가. 연대라고. 지금 정의당은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모독하려는 언론과 수구세력과 연대하여 정의당의 명맥을 지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정의당을 살리고 죽이는 것은 당원도 아니고 지지자도 아니다. 오로지 언론이며 수구세력인 것이다. 그래서 진중권이 정의당에 경고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구언론이 바라는 바를 대신 말해줌으로써 진중권 나부랭이도 훌륭히 사랑받으며 그 이름을 날리고 있다. 

 

당원들이 탈당하겠다는데 전혀 당황하거나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잘되었다며 기회라고 말하는 당직자까지 있는 상황이다. 어째서이겠는가. 그래도 심상정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박원순 시장에 대한 동지로서의 마지막 의리였을까. 독한 정치인이다. 한 정당을 이끌만한 그릇은 된다 하겠다. 정의당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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