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국가주의 국가에서 모든 생산과 소비는 국가를 단위로 이루어진다. 물건을 생산해서 팔면 그 이익은 모두 국가경제로 귀속된다. 자본가는 자본을 투자해서 공장을 짓고 생산을 하며,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내다팔아 이익을 남긴다. 그리고 그 이익은 다시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지급되며 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자본가가 가져간 이익 역시 시장에서 사용됨으로써 모든 가치는 시장에서 순환하며 소비된다.


그런데 세계화 이후 이같은 전통적 관계가 상당히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당장 생산에 투자되는 자본부터 다양한 국적을 가지게 된다. 당연히 투자에 따른 이익의 상당부분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향한다.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그 이익이 향하는 경로를 세금이 없는 다른 곳으로 틀어놓는 경우도 많다. 물건을 생산해서 시장에 내다팔아 이익은 많이 남겼는데 정작 그 이익이 그 나라의 사회와 개인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아마 최근 크게 이슈가 되었던 옥시 역시 이런 중요한 사례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생산도 판매도 거의 국내에서 이루어지는데 정작 이익은 대부분 영국의 본사로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옥시의 제품으로 인해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건만 어떤 책임도 가지지 않고 단지 이익만을 탐한다.


당연히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시장에서 이익을 얻은 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싫다고 자본은 국경을 넘는다. 세금도 내기 싫고 의무도 지기 싫다고 국경을 넘거나 아니면 정부를 협박한다. 국적자본이든 다국적자본이든 그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보니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을 두고 국가가 경쟁해야 한다. 그 경쟁에서 희생되는 것은 결국 국가에 속한 사회이고 개인들이다. 자본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희박해지고 국가는 국부를 앞세워 사회와 개인에 양보를 강요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넘기보다 노동력들이 알아서 국경을 넘어 찾아오도록 국가를 압박한다. 메르켈이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 대단한 인도주의적인 신념 때문이라 여긴다면 순진한 것이다.


자본이라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기에 자본가들은 국가를 자신들을 위해 경쟁시킬 수 있다. 반면 수단을 보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국가에 의해 경쟁하는 입장이 된다. 더 싼 임금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과 경쟁하며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한다. 자본의 이익과 반비례해서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는 줄어드는데 정작 노동자의 소득은 비례해서 감소한다. 삶은 더욱 열악해지고 사회는 더욱 불안해진다. 차라리 나라문을 닫고 우리들끼리 잘살자. 더 잘 살 필요도 없이 그냥 있는 것으로 어렵더라도 우리들끼리 살아보자.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체험과 직관의 영역이다.


본능적으로 안다. 무엇이 자신의 삶을 이토록 열악하게 만들었는지. 특히 노동자의 입장에서. 쇠락한 생산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나라문을 닫고 노동을 영국 국민들만이 독점하자. 영국의 자본으로 하여금 영국에 투자하도록 만들자. 영국에 투자하고 그 이익을 다시 영국사회에 돌려준다. 문제라면 이미 그렇게 하기에는 영국 자신도 유럽연합체제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산업구조가 그렇게 개편되었다. 상대적으로 열등한 분야는 도태시키고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분야만을 집중해서 성장시킨다. 혼자서 살아남기에는 지나치게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 버렸다.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서 경상도나 전라도가 따로 떨어져나간다면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구조를 다시 바꾸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을 과연 영국은 감당할 능력이 되는 것인가.


자본가들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국경을 넘나든다. 노동자 역시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국경을 넘나든다. 그리고 평준화된다. 기업에 더 유리하면서 노동자에게는 더 불리한 환경으로. 사회저변은 취약해지며 단지 겉보기 규모만 성장한다. 숫자는 늘고 규모는 커지는데 정작 실질적으로 와닿는 것은 없다. 누적되며 반복된다. 그래도 단지 숫자의 단위가 괜찮으니 괜찮은 것인가. 묻는 것이다. 그래도 좋은 것인가고.


굳이 중국에 공장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 집도 절도 없는 아랍의 난민들이 맨몸으로 유럽으로 들어간다. 어떻게하면 이들은 더 값싸게 자신들을 위한 노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니 조선족을 받아들여 귀화시키면 된다. 이민을 받아 인구를 늘리면 된다. 한국의 기득권도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예전으로 원대래도 돌아간다. 불가능한 꿈이지만 그럼에도 바라게 된다. 바로 문제다.

과연 일반 대중에게 국가적, 혹은 국제적인 이슈에 대해 올바로 판단하고 결정할 능력이 갖춰져 있는가.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사실을 판단하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가운데 다수는 대학도 나오지 못하고, 다수는 지적으로 충분히 남들보다 뛰어나다 말하기 어렵다. 그런 다수의 대중에게 판단을 맡겨 선거, 혹은 투표의 결과에 따라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 과연 합리적이고 효율적인가. 그것은 옳은가.


하지만 한 편으로 고도로 훈련받은 선택된 소수의 엘리트라 해서 항상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인가. 최소한 선거를 통해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는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대학도 나오고 여러 분야에서 상당한 경력을 쌓은 그 사회의 엘리트들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항상 바른 판단과 결정만을 내리는가. 당장 영국에서 브렉시트 여론을 주도한 이들 역시 영국사회의 주류들이었을 것이다.


군왕은 무치다. 그것은 전적으로 군왕에 속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말아먹어도 자기 나라를 말아먹는 것이다. 나라 재정을 축내고 백성들이 신음해도 자기 재정 자기 백성이니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잘한 것도 못한 것도 모두 국왕에게 속한 군왕 자신의 권리이며 책임이고 의무다. 못하면 군왕을 바꾸면 된다. 바꾸지 않는다면 여전히 군왕이기에 그가 하는 모든 행위는 옳다.


민주주의다. 국민이 주권자다. 항상 잘할 수는 없다. 항살 옳을 수도 없다. 때로 잘못하기도 한다. 때로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모두 전적으로 주권자로서 국민에게 주어진 권리이며 책임이고 의무다. 옳아서가 아니라. 항상 바른 결정을 내려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국민이 가지는 권리인 것이다. 틀릴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고, 오해하고 실수할 수도 있다.


브렉시트가 과연 옳았는가. 그건 나중에 가서 결과가 드러나면 판단할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이성이든 감정이든 무엇에 의해서든 영국인들 스스로가 EU에 남아있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반수의 영국인들이 EU를 거부했으므로 영국 역시 EU를 탈퇴한다. 옳고 그름 이전의 당위의 문제다. 국민이 그리 선택했다.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거기에 이것저것 양념을 섞고 장식을 얹어 이익을 추구하려는 몇몇 인간들이 문제일 뿐.


왕이 잘해서 왕이 아니다. 왕이 훌륭해서 왕인 것도 아니다. 그렇게 왕을 고르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실력으로 왕위를 쟁취했다고 왕으로서 항상 훌륭한 것도 아니다. 찬탈자가 과연 이전의 무능한 군주보다 더 훌륭했는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명군들에게도 하나나 둘 쯤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이다. 왜? 왕이니까. 국민은 주권자다. 국민의 뜻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국민이 주권자니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굳이 왜 그런 판단을 했어야 했는가 물을 수는 있다. 그같은 판단이 과연 적절하고 옳은 것이었는가 토론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같은 판단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된다. 다수의 결정에 의한 결론을 무시해서도 안된다. 하물며 국민이 가진 주권을 비웃고 의심한다. 옛날같으면 반역이다. 묻고 또 묻는다. 듣고 또 듣는다. 가장 기본인데 가장 어렵다. 여러 과정 가운데 하나다. 먼 시간 가운데 찰라다. 국민은 그래서 항상 옳다. 민주주의란 그런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국민의당에서 먼저 나서서 엄정하게 진실을 규명하고 당사자들을 징계하는 것이다. 당에서는 모르고 있었는데 조사해 보니 다른 사람들 모르게 몇몇 국회의원들이 개인적으로 부당한 이득을 챙기려 했다. 책임정당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정중히 사과한다.


그럴 수 없다면 차라리 박선숙과 김수민 등 관련자들을 전적으로 믿는 스탠스를 취했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먼저 관련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하는 모양새는 취했어야 한다. 당사자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은 없었다더라. 같은 당의 동료이고 오랜 동지이기에 그들의 선의를 믿고자 한다. 모든 사실이 밝혀졌을 때 비통한 표정을 지으며 믿을 수 없다 말한다면 동정표는 얻을 수 있다. 나쁜 건 부정을 저지른 당사자들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했다. 엄정하게 진상을 조사하지도, 그렇다고 관련자들을 전적으로 믿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두루뭉수리하게 이도저도 아닌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의혹은 당지도부에게로까지 번지고 만다. 이런 상황에조차 당대표가 침목하며 대중의 상상력은 끝도 없이 온갖 곳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자르지 못한다. 그나마 어설프게 잘라내려다 김수민의 반발만 사고 말았다. 역풍이 분다.


작년 새정치민주연합을 뛰쳐나가면서 내세운 명분이 첫번째였다. 문재인은 두번째에서 한 발 더 나갔다. 두 사람이 가진 성향의 차이이고 그릇의 차이다. 설사 잘못했어도, 그래서 죄를 짓고 처벌받는 처지가 되었어도 쉽게 자신의 인연을, 신뢰를 물리지 않는다. 그것은 곧 주위의 신뢰로 이어진다. 문재인을 비판하는 사람도 그런 인간적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적개심을 누그러뜨린다. 아예 안티는 그냥 빼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엄정하게 조사해서 먼저 징계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같은 당 국회의원이니 당 차원에서 지켜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을 인위로 키운 것인가면 그것은 더욱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만일 2012년 저선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참 재미있는 캐릭터다. 

국가란 관념의 공동체다. 실체가 없다. 과연 5천만 국민 가운데 현실에서 실제 얼굴이라도 한 번 스치며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실제 자신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로 한정하면 범위는 더 좁혀진다. 그런데 한 번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라 묶는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과연 그같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자신의 권리나 의무와 같은 것들은 그래서 여전히 모호하다.


세금을 주인없는 돈이라 여기는 이유다. 국가가 주인이다. 국민이 주인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눈 먼 돈이다. 그래서 부정을 저지른다.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부정이라는 자각조차 없다. 국회의원이 보좌관을 채용하면서 등급을 실제보다 올린다. 보좌관에게는 원래 주기로 한 임금만 지급하면서 올려서 받는 만큼의 차액은 자기가 가진다. 국민의 세금이다. 그런데도 심지어 언론조차 그것이 보좌관의 돈이라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국회의원이 국가를 속이고 임명해서 받아낸 돈인데?


대우조선 사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갔다. 그것도 몇 조나 되는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돈의 주인들이 아무말 없으니까. 그런 놈들을 책임있는 자리에 올린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도 국민 자신이다. 국민 자신조차 세금을 남의 돈이라 여긴다. 그래서 세금 내기도 싫어하고, 복지도 싫어한다. 딱 내 돈 남의 돈 그 수준에서 의식이 머문다.


국가라는 실감이 없으니까. 국민이라는 실체를 느끼지 못하니까. 여전히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그들이 그들이 인식하는 세계의 전부다. 가족, 친척, 친구, 동창, 동료, 동향, 혹은 기타등등등... 막연하게는 안다.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런 인간들 가운데 국회의원이 나오고 대통령이 나온다. 잘한다 칭찬한다. 의리있다. 인정있다.


내가 인정이니 의리니 하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다. 특히 공인에게 있어 그같은 말은 혐오의 대상이다. 공적 관계다. 공적 존재다. 정작 공인이어야 할 이들에 대해서는 관대한데 고작 연예인에게 공인이라며 현미경으로 잣대를 들이댄다.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 내 동창, 내 동향, 내 동료... 물론 아주 없어질 수는 없다.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며 인간의 본성이다.


죄의식조차 없다. 보좌관에게 임금으로 지급되어야 할 세금을 호위신고로 횡령한 더민주의 서영교나, 허위계약서로 선거자금을 부풀려 국고를 축내려 했던 국민의당이나. 나는 그들을 믿는다. 선의를 믿는다. 그래서 그들이 끔찍하도록 혐오스럽다. 그들의 선의란 국민의 돈은 주인없는 돈이라는 선의다. 실체가 없으면 인정하지 않는 선의다. 대한민국의 현주소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섬뜩하다.

윈터펠 전투에서 존 스노우와 산사는 싸움에 임하는 동기도 목적도 자세도 모두 달랐었다. 존 스노우는 스타크의 성을 물려받지 못한 말 그대로 서자에 불과했다. 당연히 윈터펠을 상속할 권리 역시 롭의 유언장이 전해지지 않은 지금 그에게는 없었다. 윈터펠 전투에 참가할 당시 존 스노우는 단지 스타크 가문의 일원일 뿐이었으며, 윈터펠이 아닌 오로지 스타크를 위해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반면 산사는 윈터펠의 영주 에다드 스타크와 그의 아내 캐틀린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였다. 어쩌면 산사가 릭콘의 죽음을 방관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에다드와 캐틀린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 중 행방이 밝혀진 것은 산사와 릭콘 뿐이었기에, 만에 하나 릭콘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윈터펠을 수복하게 된다면 아들인 릭콘이 에다드의 정식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산사의 늑대는 너무 일찍 죽었다. 고향인 북부가 아닌 킹스랜드에 너무 물들어 버렸다. 꿈에서 깨고 그동안 보아온 것이 세르세이와 조프리, 그리고 리틀핑거였다. 탐욕과 모략과 살육에 익숙해 있다. 굶주린 개를 풀어 램지를 살해하는 장면은 그것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스타크의 다른 형제들과는 다른 냉혹함과 잔인함을 보여준다. 윈터펠을 가지겠다. 자신이 윈터펠의 주인이 되겠다. 그를 위해 리틀핑거를 용서하고 그의 군대를 이용한다.


바로 그 차이였던 것이다. 윈터펠인가, 아니면 스타크인가. 윈터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스타크라는 이름을 위한 것인가. 그럴 자격조차 없었다. 그런 자각마저 없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릭콘의 위기를 보자마자 바로 말을 달려 뛰쳐나갔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릭콘을 구하려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롭과 에다드가 보여주었던 스타크의 모습이었다. 그에 비하면 산사는 자신의 영지를 되찾고자 하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냉정하고 치밀하며 그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존 스노우마저 도구로 사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베일의 기병이 램지군의 뒤를 치며 전세가 역전되자 존 스노우가 바로 몸을 일으켜 램지를 뒤쫓은 것도 무슨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없었다. 그냥 어머니는 다르지만 자신의 형제이자 마지막 남은 스타크의 아들인 릭콘을 죽인 범인을 어떻게든 잡아 죽여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슬플 정도로 초라하게 그는 램지를 뒤쫓아 성문을 부수고 다시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램지를 잡아 때려누인다. 무기가 아닌 맨주먹이라는 점이 그래서 무척 인상적이다. 무기란 권력이다. 하다못해 램지의 굶주린 개조차 권력이라는 수단이다. 램지를 내리치는 동안 존 스노우의 손까지 피로 물든다. 그냥 하나의 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아닌 존 스노우라는 개인으로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바로 롭과 존의 근본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롭은 스타크의 후계자였다. 적장자로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스타크의 후계자로서 길러졌었다. 스타크와 윈터펠, 북부에 대한 고결한 책임과 의무는 그때부터 이미 롭과 하나였다. 그러나 존 스노우는 단지 에다드 스타크의 여러 아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어머니조차 알지 못하는 사생아에 지나지 않았다. 나이트워치에서도 그는 사실 그렇게 리더로서 책임을 느낄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나마 산사는 윈터펠의 상속자로서 이리저리 떠넘겨졌고 킹스랜드와 리틀핑거, 특히 램지로부터 직접 겪으며 배운 것들이 있었다. 스스로 군주이고자 하는 자와 군주라는 자각조차 없는 자와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개인이었다. 단지 존 스노우였다. 에다드 스타크와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으며, 롭과 산사와 아리아와 브랜과 릭콘의 형제였다. 그래서 형제를 위해 스타크를 위해 싸움에 나섰다. 아무런 공식적인 작위도 직함도 없이 그냥 스타크라는 이유만으로 싸움에 나선 것이었다. 다만 이 싸움의 결과 산사가 윈터펠을 차지한 이후가 중요할 듯하다.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고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아마 소설보다 드라마의 존 스노우가 훨씬 나이가 많을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상당한 시일이 지났으니 더 나이가 들어 버렸다. 그래서 착각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존 스노우는 그냥 철부지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다. 롭 스타크도 결국은 그런 미숙함이 자신의 죽음과 스타크의 파멸을 불러오고 말았었다. 도대체 작가는 소설을 언제나 끝내려는 건지. 나이도 적지 않고만. 가장 큰 불안요인이다. 성장하기에 아직 남은 시간이 충분하다.

작년 이목희가 걸렸을 때도 그리 말한 바 있었다. 이건 상납이 아닌 횡령이다. 딸을 인턴으로 취업시켰다. 차라리 딸에게 월급을 그대로 주었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결국 딸에게 지급해야 할 인턴월급마저 자기 후원계좌로 넣어 버렸다. 


그냥 일차원적으로 보자면 그저 자기 딸에게 돌아가야 할 월급마저 어머니라는 이유로 갈취한 것이다. 그러나 달리 보자면 원래 지급하지 않아도 되었을 돈을 일부러 딸을 인턴으로 채용하면서까지 굳이 세금에서 받아갔다. 


원래 국회의원 상납의혹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원래 채용하기로 한 직급보다 한 단계 이상 높여 채용함으로써 법으로 보장된 임금을 보다 많이 받도록 함으로써 그 차액만큼을 후원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계좌로 넣는다. 혹은 사무실의 운영비로 쓰고 추가로 고용된 법외인력들에 대한 인건비로 사용한다. 결국은 원래 세금에서 지급되었을 임금보다 더 많은 임금을 공문서를 위조하여 가로채는 것이다.


보좌진들도 모르고 당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동의하나 도의하지 않으나 받는 돈은 같다. 단지 외부로 드러난 직급만 차이날 뿐이다. 임금은 같은데 직급은 더 높다.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후자쪽이 더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다만 국회의원과의 사이가 틀어질 경우 이것을 빌미삼기도 한다.


자꾸 상납이라 하니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보좌관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급여 가운데 일부를 후원으로 운영비로 내놓았다. 모두가 합의한 관행적 행위였다. 하지만 그 관행이 사실은 국민의 재산인 세금을 임의로 유용하는 관행이었다. 나라를 속이고 국민을 속이는 관행이었다.


딸을 인턴으로 채용하는 것은 전에도 말했듯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턴으로 채용해서 정당하게 월급을 주고 제대로 일도 시켰다면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 인턴이 아니더라도 부모를, 혹은 친인척이거나 지인이기에 가까이서 돕는 사람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채용하고서 정작 인턴으로서 일도 안 시키고 급여도 정한대로 주지 않았다. 법을 어긴 것이다. 법을 속인 것이다.


그래서 기다린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들이 드러나기를. 이런 걸 관행이라 부른다. 이미 마비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행위인지. 얼마나 크고 중대한 범죄인지. 냉장고에 머리를 식히며 찬찬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의미에 대해서.


이러니 그놈이나 이놈이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정치인이란 다 똑같다며 냉소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최소한의 죄의식마저 없다. 세상이 그들을 그리 만든 것인지. 아니면 그런 놈들이기에 세상이 이모양인 것인지.


더민주 차원에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차라리 보좌관의 수를 늘리라. 당연히 늘어난 만큼 세금에서 확실히 임금은 지급한다. 다만 후원은 금지한다. 기부도 금지한다. 보좌관들의 임금을 보호하며 규제한다.


다시 말하지만 상납이 아니다. 본질을 흐린다. 세금을 횡령한 것이고 그를 위해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다. 위계로써 보좌관들에 범죄에 가담하도록 한 것이다. 모두 잡아 처벌한다면 어떻게 될까. 어디까지 썩은 것인지. 한심하다.

돌 하나로 두 마리 새를 잡으려다 보면 두 마리 다 못잡는 경우가 있다. 아니 오히려 두 마리 다 잡는 경우가 더 드물다.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보면 모두를 불만족시키게 된다. 그래서 항상 선택이 중요하다. 누구를 만족시키고 누구를 달래줄 것인가.


장고끝에 악수다. 아무거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않 해 버린다. 결과적으로는 부산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차피 부산의 입장에서 김해공항은 지난 수십년 동안 자신들이 이용해 온 공항이기도 하다. 그와 관련한 모든 인프라가 준비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덕도와 밀양의 대결이었기에 가덕도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으로 부산의 편을 들어준 것도 아니게 된다. 문제는 어떻게 확장하는가다.


그동안 동남권신공항 건설과 관련해서 뜨거웠던 이유였다. 김해공항의 확장 또한 또 하나 대안일 수 있지만 너무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 김해와 부산의 도심과 주택가에 너무 인접해 있다. 주변의 토지에 대한 수용문제도 역시 난제로 남아 있다. 활주로만 넓히려 해도 주위의 산을 깎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사소해 보일 정도로 근본적인 지역주민들과의 이해조정의 과정이 첨예하게 남아있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미 가덕도든 밀양이든 결정될 것을 전제로 개발계획까지 세워놓았던 김해시였다. 바로 가까이에 김해공항이 국제공항으로 확장되면 그만큼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 당사자의 반발까지도 고려해야만 한다. 그냥 땅파고 콘크리트 부어서 공항만 뚝딱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밀양도 부산도 안된다면 결국 기존의 김해공항밖에 없다.


더민주의 승리다. 더민주가 나서지 않았다면 신공항이 밀양에 들어서더라도 누구 하나 말릴 사람이 없었다. 더민죽가 앞장서서 가덕도를 주장했다. 부산시민의 입장을 대변했다. 같은 당의 중진 김부겸까지 나서서 바람을 잡았다. 같은 당인데도 각각 대구와 부산을 위해 당적마저 잊고 열심이다. 가덕도에 신공항이 들어서면 더민주의 공이다. 가덕도가 아닌 밀양으로 결정되면 오로지 새누리의 책임이다. 그래서 타협안을 내놓는다. 밀양도 가덕도도 아닌 김해공항. 그런데 어차피 김해공항은 부산의 권역이다. 부산의 이익을 지켰다.


새누리당도 마냥 실패는 아니다. 가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산을 지켰다. 가덕도만큼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민주의 역할과 기여를 최소화했다. 새누리가 결정했다. 청와댁가 결정했다. 정의당은 처음부터 김해공항 확장을 주장했으므로 목소리를 키울 땍가 되었다. 우습게 되었다면 뻔한 이약기만 하닥가 결국 양비론으로 흐르고 만 국민의당이다. 국익을 고려해서 신속히 결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어디에? 어떻게? 아무말 없이 원론만 떠들다가 결과가 나오니까 둘 다 잘못했다. 최소한 영남권에서 이 이상의 지지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 차라리 반대편에 섰어도 입장이 분명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다. 입장이 바뀌면 나와 같은 편에 선다.


아무것도 안하지만 그래서 누구에게도 손해는 아니다. 모두에게 약간씩의 이익은 돌아간다. 그리고 어차피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기에 대안을 마련하기도 쉽다. 김해공항의 확장이 어려운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그때 현정부는 그곳에 없다.. 그냥 임기동안에만 지지율 빠지지 않게 적당히 관리해주면 그만인 것이다. 뒤로 미룬다. 김해공항 확장이 현실적으로 어려워질 때 그때 다음 정부든 그 다음 정부든 다시 이야기한다.


승자는 부산시민이다. 부산의 이익을 지켰다. 어차피 밀양이야 잃을 것도 거의 없다. 대구가 조금 불쾌하겠지만 어차피 그곳의 표심은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총선의 결과다. 청와대마저 꺾었다. 우습게 되었다. 재미있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에도막부를 열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평생을 통틀어 단 한 번 싸움에서 패했었다. 바로 다케다 신겐과의 미카타가하라전투였었다. 당시 아직 젊었던 도쿡가와 이에야스는 무모했고 결국 그의 용맹은 전국최강이라 일컬어지던 다케다 신겐의 군대에 대부분의 병사와 가신들이 몰살당하는 참패로 이어졌다. 하지만 바로 이 싸움을 반면교사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음흉할 정도로 진중하고 교활할 정도로 냉정한 책략가로 거듭난다.


한 편 이릉싸움에서 참패하며 모든 기반을 잃었던 유비도 있었다. 유비가 삼국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제까지의 다른 전쟁과는 달랐다. 그냥 신하였다. 탁군에서 처음 거병했을 때부터 함께였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도 관우와 장비는 자신을 주군으로 받드는 수많은 신하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신하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기반을 걸고 복수전을 벌였다. 오히려 처참하게 패하고 말았기에 유비는 신화가 될 수 있었다. 설사 싸움에서 패했어도, 결국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어도, 그러나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무엇이었다.


형제를 구하기 위해 필마단기로 적진을 향해 달려간다. 어쩌면 그가 서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히려 친형제였기에 산사는 릭쿤에 대해 냉정할 수 있었다. 자신을 증명해야 했다. 에다드 스타크의 아들임을. 롭과 리쿤의 형제임을. 스노우가 아닌 스타크임을. 전투에서 입었던 피해는 오히려 그에 비하면 사소하닥고 할 수 있다. 명분을 가진 사람에게 사람은 모인다. 존 스노욱가 나이트워치에서 모두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정규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나의 군을 이끌고 싸워본 경험이 없었다. 하나의 무리를 대표해 본 경험도 없었다. 무모했고 어리석었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드러낸다. 형제를 구학기 위해 목숨을 건다.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단지 형제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 누가 진정 왕으로서 자격을 갖추었는가. 산사의 늑대가 일찍 죽은 것은 예언과 같다. 역시 인간과 역사에 정통하다.  

가장 먼저 청년실업이 이만큼 심각하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고작 국회의원 인턴이다. 경력이라지만 인턴은 어디까지나 인턴에 불과하다. 정식보좌관도 아닌, 그것도 몇 개월 짜리 인턴에 그렇게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고용주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과연 그 인턴경력이 자신의 기업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줄 수 있고 또 이익을 남겨줄 수 있는가. 하지만 그마저도 어느새 어마무지한 스펙이 되어 버린다.


착각하는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은 국가가 고용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 개인이 자기 책임 아래 고용해 쓰는 것이다. 누구를 쓰든 몇 명을 쓰든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라면 모두 국회의원 개인의 재량에 속한다. 다만 입법부의 일원이자 국가기관으로서 국회의원이 일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기에 국가에서 법으로 정하여 지위를 인정하고 급여를 지급한다. 이들을 어떻게 쓰는가도 결국 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 국회의원 자신의 재량이다. 가족이더라도 - 아니 오히려 가족이기에 생판 남인 다른 보좌관보다 더 믿을 수 있고 더 가까이 둘 수 있다.


자식이 정치인인 부모를 따라다니며 돕는 것은 원래 그래서 그렇게 크게 흠이 되지 않았었다. 그렇게 급여가 센 자리도 아니다. 일이 편한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들이 편법으로 보좌관을 늘려 쓰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는 일에 비해 법이 정한 보좌관의 수가 너무 적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한 사람이 처리해야 하는 법안이며, 국정감사 자료며, 지역구 민원이며, 그것 다 국회의원 혼자 할 수 없으니 보좌관의 손을 빌린다. 물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당선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일은 해야 그래도 국회의원으로서 면피는 한다. 전혀 자격도 안되는데 하는 일도 없이 돈만 받아가는 경우가 아니라면 과연 가족을 인턴으로 - 아니 보좌관으로 고용해서 쓴다고 무슨 문제가 될까.


그래서 궁금해지는 것이다. 과연 서영교의원의 딸은 인턴으로서 자격이 안되었는가. 인턴으로서 과연 어떤 일들을 했었는가. 그래서 인턴을 함으로써 어떤 부당한 이익을 취했는가. 이력서에 경력 한 줄 써넣는 이상의 이익이어야 한다. 부당한 이익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돈만 받아간 것을 의미한다. 몇 달 인턴으로 인하고 지금은 그만두었다. 그만두고 로스쿨에 다니고 있다. 몇 달의 경력이 그렇게 중요한가. 만일 서영교 의원의 해명대로 원래 부모의 일을 돕기 위해 사무실에 상주하고 있었는데 결원이 생기면서 인턴으로 정식 채용되었다면 평소 하던 일의 연장선으로 봐야 한다. 그런 것까지 문제삼기에는 지나치게 각박한 것이 아닌가. 불법도 아니다. 단지 인턴 자리 하나 가족에게 배당한 것이 커다란 특혜가 되고 비리가 된다.


딸이 로스쿨에 다니니 사시폐지에 적극적이었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아니 딸이 로스쿨에 다닌 것이 먼저인지 사시폐지를 주장한 것이 먼저인지 선후관계도 파악해야 한다. 로스쿨을 지지한다. 장차 사시를 폐지하고 로스쿨로 완전히 정착할 것을 처음부터 지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딸을 로스쿨에 입학시키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서연고도 아니고 중앙대 로스쿨 나왔다고 그것이 대단한 학벌로 작용한 가능성도 그리 높지 않다. 로스쿨 입학했어도 일단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야 변호사도 될 수 있는 것이다. 로스쿨 입학했다고 바로 변호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로스쿨에 입학한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특혜라도 받은 듯 난리다. 로스쿨이 특권인가. 아니면 로스쿨을 통해 장차 취득하게 될 변호사의 자격이 특권인 것인가. 그렇다고 로스쿨 입학과정에 어떤 특별한 문제라도 있었다는 확실한 근거마저 제시하지 않고 있다.


하기는 그래도 역시 국회의원이기에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다. 공인이다. 그래서 공인이다. 딸의 인턴채용마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하다못해 구멍가게라도 자기 자식 아무나 데려다 일시키고 돈을 주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기 싫어 도망친다. 그러나 국민이 보기에 부적절하다며 하지 말아야 한다. 바보가 되어야지 미친 척 해서는 곤란하다. 그만큼 국민들이 자식 취업문제에 예민하다. 또래의 취업문제에 아주 민감하다. 고작 인턴이지만 국회의원이 자신의 가족을 채용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불만을 가지며 분노를 드러낸다. 하지만 다만 그런 불만과 분노들이 정당한가. 


판단의 기준은 한 가지다. 그래서 얼마나 크게 부당한 이익을 보았는가. 가족을 채용했는데 그 자격은 충분했는가. 그리고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가 지불되었는가. 어떤 일을 얼마나 어떻게 잘 했는가. 역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인상 뿐이다. 그저 딸을 채용했다. 동생을 채용했다. 딸이 로스쿨에 다닌다. 여론재판에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예민한 시기 민감한 곳을 제대로 건드렸다. 제대로 들끓기 시작한다.


판단하기가 애매한 이유다. 근거가 없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그런데도 벌써 결론은 내려져 있다. 특별히 불법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부당한 수단을 동원한 것도 아니다. 해명이 사실이라면 아주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언론보다 국민의 속성을 잘 파악하는 곳은 없다. 어느새 고작 국회의원 인턴이 보통사람은 감히 넘볼 수도 없는 대단한 특권이며 특혜가 된다. 그냥 지켜본다. 아주 재미있다. 과정이 흥미롭다.

하기는 아무리 전관이 나서봤자 현관이 봐주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현관이 봐주어야 전관도 힘을 쓴다. 즉 '예우'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전관'은 대상이다. 행위를 하는 주체가 있다.


수사의 대상이 직접 수사하고 결론을 내린다. 그래도 믿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보다 그래서 안믿으면 어쩔 것이냐는 배짱이다. 자신들은 검찰이다. 이 사회의 특권층이다. 대중이 아무리 떠들든 자신들에게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


첨 얼마나 시기적절한가. 바로 어제 썼다. 대한민국이라는 식민지 아닌 식민지에 대해. 제국은 사라졌지만 제국에 부역하던 이들은 남았다. 제국을 닮아 식민지를 수탈한다. 식민지 백성이야 제국에 무어라 말하든 무슨 상관일까.


그냥 국민이 병신인 것이다.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모른다고 궁금해하는 것도 아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무언가 노력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기도 저 대열에 어떻게든 끼어보려.


예상된 결론이라 새롭지는 않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뻔뻔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국민이 생각보다 더 병신이었거나, 아니면 저들이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 있었거나. 재미있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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