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터펠 전투에서 존 스노우와 산사는 싸움에 임하는 동기도 목적도 자세도 모두 달랐었다. 존 스노우는 스타크의 성을 물려받지 못한 말 그대로 서자에 불과했다. 당연히 윈터펠을 상속할 권리 역시 롭의 유언장이 전해지지 않은 지금 그에게는 없었다. 윈터펠 전투에 참가할 당시 존 스노우는 단지 스타크 가문의 일원일 뿐이었으며, 윈터펠이 아닌 오로지 스타크를 위해서 싸움에 임하고 있었다.


반면 산사는 윈터펠의 영주 에다드 스타크와 그의 아내 캐틀린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였다. 어쩌면 산사가 릭콘의 죽음을 방관하자고 주장한 것도 이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에다드와 캐틀린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 중 행방이 밝혀진 것은 산사와 릭콘 뿐이었기에, 만에 하나 릭콘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윈터펠을 수복하게 된다면 아들인 릭콘이 에다드의 정식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


산사의 늑대는 너무 일찍 죽었다. 고향인 북부가 아닌 킹스랜드에 너무 물들어 버렸다. 꿈에서 깨고 그동안 보아온 것이 세르세이와 조프리, 그리고 리틀핑거였다. 탐욕과 모략과 살육에 익숙해 있다. 굶주린 개를 풀어 램지를 살해하는 장면은 그것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스타크의 다른 형제들과는 다른 냉혹함과 잔인함을 보여준다. 윈터펠을 가지겠다. 자신이 윈터펠의 주인이 되겠다. 그를 위해 리틀핑거를 용서하고 그의 군대를 이용한다.


바로 그 차이였던 것이다. 윈터펠인가, 아니면 스타크인가. 윈터펠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스타크라는 이름을 위한 것인가. 그럴 자격조차 없었다. 그런 자각마저 없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릭콘의 위기를 보자마자 바로 말을 달려 뛰쳐나갔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릭콘을 구하려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롭과 에다드가 보여주었던 스타크의 모습이었다. 그에 비하면 산사는 자신의 영지를 되찾고자 하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냉정하고 치밀하며 그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존 스노우마저 도구로 사용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베일의 기병이 램지군의 뒤를 치며 전세가 역전되자 존 스노우가 바로 몸을 일으켜 램지를 뒤쫓은 것도 무슨 거창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마저 없었다. 그냥 어머니는 다르지만 자신의 형제이자 마지막 남은 스타크의 아들인 릭콘을 죽인 범인을 어떻게든 잡아 죽여야겠다는 한 가지 생각 뿐이었다. 슬플 정도로 초라하게 그는 램지를 뒤쫓아 성문을 부수고 다시 많은 희생을 치른 끝에 램지를 잡아 때려누인다. 무기가 아닌 맨주먹이라는 점이 그래서 무척 인상적이다. 무기란 권력이다. 하다못해 램지의 굶주린 개조차 권력이라는 수단이다. 램지를 내리치는 동안 존 스노우의 손까지 피로 물든다. 그냥 하나의 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아닌 존 스노우라는 개인으로 보면 이해하기가 더 쉽다.


바로 롭과 존의 근본적인 차이이기도 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롭은 스타크의 후계자였다. 적장자로서 아주 어렸을 적부터 스타크의 후계자로서 길러졌었다. 스타크와 윈터펠, 북부에 대한 고결한 책임과 의무는 그때부터 이미 롭과 하나였다. 그러나 존 스노우는 단지 에다드 스타크의 여러 아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어머니조차 알지 못하는 사생아에 지나지 않았다. 나이트워치에서도 그는 사실 그렇게 리더로서 책임을 느낄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그나마 산사는 윈터펠의 상속자로서 이리저리 떠넘겨졌고 킹스랜드와 리틀핑거, 특히 램지로부터 직접 겪으며 배운 것들이 있었다. 스스로 군주이고자 하는 자와 군주라는 자각조차 없는 자와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개인이었다. 단지 존 스노우였다. 에다드 스타크와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었으며, 롭과 산사와 아리아와 브랜과 릭콘의 형제였다. 그래서 형제를 위해 스타크를 위해 싸움에 나섰다. 아무런 공식적인 작위도 직함도 없이 그냥 스타크라는 이유만으로 싸움에 나선 것이었다. 다만 이 싸움의 결과 산사가 윈터펠을 차지한 이후가 중요할 듯하다. 그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겪고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아마 소설보다 드라마의 존 스노우가 훨씬 나이가 많을 것이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상당한 시일이 지났으니 더 나이가 들어 버렸다. 그래서 착각한다. 지금으로 따지면 존 스노우는 그냥 철부지 애송이에 지나지 않는다. 롭 스타크도 결국은 그런 미숙함이 자신의 죽음과 스타크의 파멸을 불러오고 말았었다. 도대체 작가는 소설을 언제나 끝내려는 건지. 나이도 적지 않고만. 가장 큰 불안요인이다. 성장하기에 아직 남은 시간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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