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관념의 공동체다. 실체가 없다. 과연 5천만 국민 가운데 현실에서 실제 얼굴이라도 한 번 스치며 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실제 자신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이들로 한정하면 범위는 더 좁혀진다. 그런데 한 번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라 묶는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과연 그같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자신의 권리나 의무와 같은 것들은 그래서 여전히 모호하다.


세금을 주인없는 돈이라 여기는 이유다. 국가가 주인이다. 국민이 주인이다. 그러나 실체가 없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눈 먼 돈이다. 그래서 부정을 저지른다.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그것이 부정이라는 자각조차 없다. 국회의원이 보좌관을 채용하면서 등급을 실제보다 올린다. 보좌관에게는 원래 주기로 한 임금만 지급하면서 올려서 받는 만큼의 차액은 자기가 가진다. 국민의 세금이다. 그런데도 심지어 언론조차 그것이 보좌관의 돈이라 이야기한다. 처음부터 국회의원이 국가를 속이고 임명해서 받아낸 돈인데?


대우조선 사태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갔다. 그것도 몇 조나 되는 막대한 돈이 들어갔다.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돈의 주인들이 아무말 없으니까. 그런 놈들을 책임있는 자리에 올린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도 국민 자신이다. 국민 자신조차 세금을 남의 돈이라 여긴다. 그래서 세금 내기도 싫어하고, 복지도 싫어한다. 딱 내 돈 남의 돈 그 수준에서 의식이 머문다.


국가라는 실감이 없으니까. 국민이라는 실체를 느끼지 못하니까. 여전히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그들이 그들이 인식하는 세계의 전부다. 가족, 친척, 친구, 동창, 동료, 동향, 혹은 기타등등등... 막연하게는 안다.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알지 못한다. 그런 인간들 가운데 국회의원이 나오고 대통령이 나온다. 잘한다 칭찬한다. 의리있다. 인정있다.


내가 인정이니 의리니 하는 말을 싫어하는 이유다. 특히 공인에게 있어 그같은 말은 혐오의 대상이다. 공적 관계다. 공적 존재다. 정작 공인이어야 할 이들에 대해서는 관대한데 고작 연예인에게 공인이라며 현미경으로 잣대를 들이댄다. 내 가족, 내 친척, 내 친구, 내 동창, 내 동향, 내 동료... 물론 아주 없어질 수는 없다.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그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 인간의 이성이며 인간의 본성이다.


죄의식조차 없다. 보좌관에게 임금으로 지급되어야 할 세금을 호위신고로 횡령한 더민주의 서영교나, 허위계약서로 선거자금을 부풀려 국고를 축내려 했던 국민의당이나. 나는 그들을 믿는다. 선의를 믿는다. 그래서 그들이 끔찍하도록 혐오스럽다. 그들의 선의란 국민의 돈은 주인없는 돈이라는 선의다. 실체가 없으면 인정하지 않는 선의다. 대한민국의 현주소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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