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국가주의 국가에서 모든 생산과 소비는 국가를 단위로 이루어진다. 물건을 생산해서 팔면 그 이익은 모두 국가경제로 귀속된다. 자본가는 자본을 투자해서 공장을 짓고 생산을 하며, 생산된 상품을 시장에 내다팔아 이익을 남긴다. 그리고 그 이익은 다시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지급되며 이들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자본가가 가져간 이익 역시 시장에서 사용됨으로써 모든 가치는 시장에서 순환하며 소비된다.


그런데 세계화 이후 이같은 전통적 관계가 상당히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당장 생산에 투자되는 자본부터 다양한 국적을 가지게 된다. 당연히 투자에 따른 이익의 상당부분은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향한다. 세금을 회피할 목적으로 그 이익이 향하는 경로를 세금이 없는 다른 곳으로 틀어놓는 경우도 많다. 물건을 생산해서 시장에 내다팔아 이익은 많이 남겼는데 정작 그 이익이 그 나라의 사회와 개인을 위해 쓰이지 않는다. 아마 최근 크게 이슈가 되었던 옥시 역시 이런 중요한 사례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생산도 판매도 거의 국내에서 이루어지는데 정작 이익은 대부분 영국의 본사로 돌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옥시의 제품으로 인해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건만 어떤 책임도 가지지 않고 단지 이익만을 탐한다.


당연히 경제활동을 통해 이익을 얻었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 시장에서 이익을 얻은 만큼 사회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그런데 그것이 싫다고 자본은 국경을 넘는다. 세금도 내기 싫고 의무도 지기 싫다고 국경을 넘거나 아니면 정부를 협박한다. 국적자본이든 다국적자본이든 그런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자보니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을 두고 국가가 경쟁해야 한다. 그 경쟁에서 희생되는 것은 결국 국가에 속한 사회이고 개인들이다. 자본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는 희박해지고 국가는 국부를 앞세워 사회와 개인에 양보를 강요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더 값싼 노동력을 찾아 국경을 넘기보다 노동력들이 알아서 국경을 넘어 찾아오도록 국가를 압박한다. 메르켈이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 대단한 인도주의적인 신념 때문이라 여긴다면 순진한 것이다.


자본이라는 수단을 보유하고 있기에 자본가들은 국가를 자신들을 위해 경쟁시킬 수 있다. 반면 수단을 보유하지 못한 노동자들은 국가에 의해 경쟁하는 입장이 된다. 더 싼 임금의 가난한 나라에서 온 노동자들과 경쟁하며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당한다. 자본의 이익과 반비례해서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는 줄어드는데 정작 노동자의 소득은 비례해서 감소한다. 삶은 더욱 열악해지고 사회는 더욱 불안해진다. 차라리 나라문을 닫고 우리들끼리 잘살자. 더 잘 살 필요도 없이 그냥 있는 것으로 어렵더라도 우리들끼리 살아보자. 이성의 영역이 아니다. 체험과 직관의 영역이다.


본능적으로 안다. 무엇이 자신의 삶을 이토록 열악하게 만들었는지. 특히 노동자의 입장에서. 쇠락한 생산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나라문을 닫고 노동을 영국 국민들만이 독점하자. 영국의 자본으로 하여금 영국에 투자하도록 만들자. 영국에 투자하고 그 이익을 다시 영국사회에 돌려준다. 문제라면 이미 그렇게 하기에는 영국 자신도 유럽연합체제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산업구조가 그렇게 개편되었다. 상대적으로 열등한 분야는 도태시키고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분야만을 집중해서 성장시킨다. 혼자서 살아남기에는 지나치게 기형적인 구조가 되어 버렸다. 과연 지금 대한민국에서 경상도나 전라도가 따로 떨어져나간다면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혼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구조를 다시 바꾸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필요하다. 그것을 과연 영국은 감당할 능력이 되는 것인가.


자본가들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국경을 넘나든다. 노동자 역시 더 좋은 조건을 찾아 국경을 넘나든다. 그리고 평준화된다. 기업에 더 유리하면서 노동자에게는 더 불리한 환경으로. 사회저변은 취약해지며 단지 겉보기 규모만 성장한다. 숫자는 늘고 규모는 커지는데 정작 실질적으로 와닿는 것은 없다. 누적되며 반복된다. 그래도 단지 숫자의 단위가 괜찮으니 괜찮은 것인가. 묻는 것이다. 그래도 좋은 것인가고.


굳이 중국에 공장을 새로 지을 필요가 없다. 집도 절도 없는 아랍의 난민들이 맨몸으로 유럽으로 들어간다. 어떻게하면 이들은 더 값싸게 자신들을 위한 노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니 조선족을 받아들여 귀화시키면 된다. 이민을 받아 인구를 늘리면 된다. 한국의 기득권도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예전으로 원대래도 돌아간다. 불가능한 꿈이지만 그럼에도 바라게 된다. 바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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