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읽었던 역사소설에서 유자광이 갓 즉위한 예종을 만나고 돌아가서 아내에게 말하는 내용이 있었다.

 

"아주 훌륭한 임금님이시로구만. 내 계책이 잘 먹혀 들겠어. 이제 앞으로는 입신양명의 길만 남은 게야."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남이의 역모를 고변하게 된다.

 

물론 소설이다. 실제로도 어떠했었는가는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다만 역사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의외로 저런 종류의 모함이 제법 아주 잘 먹히더라는 것이다.

 

역사상 군주들 가운데 모함이 유독 잘 먹히는 경우를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로는 열등감이 있고, 둘째로는 그런 열등감에서 비롯된 비대해진 자아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그런 자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맹신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자기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작은 의심조차도 어김없는 사실인 것이다. 사실이어야 하는 것이다.

 

무오류가 오류를 만드는 것이다. 완전무결이란 그런 오류를 인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류의 가능성조차 인정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자신의 권위와 존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그런 부류들에게 아주 작은 의심이라도 스스로 가지게 만든다면 그로부터 확신은 사실이 되고 마침내 진실이 되어 어떤 변명과 반론도 듣지 않게끔 만들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려 해도 아예 예단하여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죽어도 의심은 남고 아주 작은 단서로도 죄는 증명될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결백이란 표현까지 쓰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 죄도 없다. 전혀 아무런 티끌만한 흠도 자신에게는 없다. 검찰의 별건수사는 그런 점에서 아주 역사도 유구하다 할 수 있다. 죄에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사람이 죄를 지었다 여기기에 사람에게 벌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미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고 있고 벌을 주고자 하는 상황이라면 아무것이라도 벌을 줄 만한 이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물론 필요하다면 고문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죄를 고발케 하여 찾아낼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모든 혐의들에 대해서도 자신은 전혀 무고하며 아무 잘못도 없음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스스로 결백을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죄인으로 처벌받아야 한다.

 

현대의 사법제도가 지금과 같이 발전해 온 이유인 것이다. 어째서 사람이 아닌 죄를 처벌해야 하는가. 어째서 무죄를 전제로 수사하고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인가. 사람을 처벌해 온 역사를 알기 때문이다. 사람을 대상으로 단정짓고 수사와 재판을 해왔던 역사에 대해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더구나 대부분 수사와 재판의 대상이 되면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자의 입장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자인 수사기관이 증거를 수집해서 유죄를 입증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미 고발을 당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모든 의혹들에 대해 - 심지어 자신과 관련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안들까지 일일이 대응하며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원래 무고하기에 전혀 상상도 못한 부분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고발이 이루어지면 그에 대한 반박근거나 논리를 찾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다.

 

벌써 10년은 넘게 지난 타진요 사태에서도 확실히 그것을 느꼈었다. 네티즌이란, 아니 현대의 대중이란 멍청한 전제시대의 군주와 같다. 자기가 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생각한다. 명석하게 깊이 꿰뚫고 있다 착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판단은 항상 어김없이 옳다. 근거야 얼마든지 머릿수도 많으니 스스로 납득만 할 수 없으면 아무거라도 찾아서 들이밀 수 있다. 판단은 자기가 하는 것이다. 결론도 자기가 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자신이 제기한 모든 의문들에 대해 대답하고 해명하라. 도저히 터무니없는 질문들이기에 대답을 궁리하는데조차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조차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질문했으니 바로 대답해야 하고 아니면 너는 유죄다. 유자광이 이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기뻤을까? 그래도 설마 역대 조선의 국왕 가운데 이정도로 멍청한 왕은 없었다.

 

아무튼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으니 정의연은 무조건 해명부터 해야 한다. 어찌되었든 누군가 의혹을 폭로했으니 윤미향은 무조건 그에 대한 대답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해명하고 답을 해도 전혀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눈과 귀는 다른 누군가가 터뜨린 또다른 의혹으로 향해 있다. 그러니까 해명하라. 그러니까 답을 하라. 아니면 유죄다. 그런데 정작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들은 어째서 자신들의 의혹에 대해 다른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것인가.

 

그냥 대충만 봐도 근거도 불확실한 불완전한 의혹들이었다. 대개는 무지에서 시작된 의심이었으며, 그럼에도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기에 지속된 의혹들이었다. 사실과 사실의 틈새를 비집고 나온 문제제기에 어떻게 바로 구체적인 답까지 들려주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지금 정의연 논란을 보면서 얼마나 대한민국 대중들이 위안부문제에 관심이 있는 척 하면서 정작 아무런 관심도 없었는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앞장섰던 자칭 진보들 역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지한 상태였었다.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벌써 정의연의 편에서 정의연을 대신해서 많은 사실들을 해명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기에 그런 해명들도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의심하며 의심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 웃긴다는 것이다. 아무라도 되도 않는 주장이라도 내지르면 당연하게 정의연과 윤미향은 그에 대한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 주장의 근거를 대기보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도 그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대답을 정의연과 윤미향이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런 주장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이미 사실로 확정짓고 통장을 까라, 계좌를 까라, 영수증을 내놓으라. 그럴 주제도 안되는 것들이.

 

오죽하면 이용수씨가 그리 주장한다고 수요집회의 의미마저 부정하고, 그동안 일본 정부의 진심어린 사실인정과 반성을 요구한 사실마저 부정하려는 이들까지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그런 것 상관없이 이미 1995년에 아시아여성기금을 받고 끝낼 수 있도록 해야 했다. 끝까지 일본이 조성한 민간기금으로 위로금을 받는데 반대했던 정대협을 비판하며 박근혜정부의 위안부합의에 반대했던 사실마저 비난한다. 어째서 위안부가 아닌 성노예라는 표현이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조차 없이 피해자들이 반대하니 써서는 안된다. 그것이 과연 위안부 피해자들과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심에서 나온 것들인가. 과연 위안부문제에 대해 평소 관심을 가져왔다면 그런 주장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연 진짜 박근혜 정부에서 이루어진 위안부합의가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하지만 자신들이 틀릴 리는 없으니까. 언론이 시작했어도 이미 자신들이 결론을 내린 이상 결과도 그렇게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자신들은 틀리지 않았다며 타블로를 비난하는 타진요 찌그러기들이 인터넷상에 기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대중은 옳다. 국민은 옳다. 그러므로 자신도 옳다. 절대 틀릴 리 없다. 그래서 선동하기도 쉽다. 선동당한다는 생각조차도 없다. 이미 그렇게 자신은 믿고 있고 결론까지 내린 뒤이니까.

 

길원옥 할머니의 의손녀라는 여자가 이번에 돌아간 쉼터 소장에 대한 어떤 의혹을 제기했다. 근거같은 건 없다. 자기가 그렇게 생각한다. 자기가 그렇게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명 역시 정의연이 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다. 과연 지금 상황에서 사실이니 진실이니 하는 것이 무에 그리 중요할까. 저들이 바라는 것은 조선시대 옥사에서처럼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의 근거일 텐데.

 

위안부운동은 이렇게 끝난 것이다. 한겨레의 최근 기사들을 보면서 토악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이 지경까지 오도록 자신들도 열심히 도왔으면서 이제와서 위안부운동의 취지가 훼손되어서는 안된다는 개소리를 늘어놓는다. 빠져나가고 싶은 것이다. 마치 자신들은 아니었던 척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이미 위안부운동은 끝났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테니까. 더이상 이어갈만한 무엇이 남아있기는 한가. 보완하고 고쳐서 이어나갈 무엇이 있기는 한 것인가.

 

무서운 것이다. 사람의 선입견이란 것은. 더구나 자기가 무척 잘났다 여기는 인간들이 가진 예단과 확신을 넘어서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역사상 그리 훌륭하고 뛰어난 이들조차 되도 않는 모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일족까지 몰살당하고 했던 것이다. 그 반복을 보게 된다. 대중에 대한 혐오다. 참 대중적이다. 더럽다.

오토바이라면 길 위의 깡통 하나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닝을 타고 가는데 앞에서 오토바이가 길을 막고 있으면 역시 비켜주기를 바라거나 다른 길로 돌아서 가는 수밖에 없다. 캐딜락을 타고 있어도 당장 이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앞에서 비켜주지 않는다면 정중히 요청하거나 협상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다. 차의 상태나 사람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힘으로 밀고 지나가기에는 상당한 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괜히 고장이라도 나면 가다가 멈춰설 수도 있다. 그런데 밀고 지나가는 것이 덤프트럭이고 심지어 탱크라면 과연 어떨까? 그래도 여전히 비켜주기만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177석, 아니 우호의석까지 더해서 181석이 가지는 의미란 것이다. 얼마든지 단독개원도 가능하다. 단독으로 상임위를 구성하고 국회를 열어서 법안들까지 처리할 수 있는 의석수인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이 정의당과 바른미래당 등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다른 야당들과 연대하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수적으로 훨씬 소수인 보수정당에 끌려다녀야 했던 것은 바로 그것이 안되었기 때문이었다. 없는 의석까지 다 끌어모아 봐야 당시 자유한국당이 표결에 응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이라는 비상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그마저도 상당한 방해를 감수해야만 했었다. 유치원 3법과 검찰개혁법안들을 통과시키는데 걸린 시간이 거의 1년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그만한 의미를 갖는 법안들이니 패스트트랙이라도 태웠지 그렇지 못한 법안들은 매번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멈춰서기 일쑤였었다. 자유한국당과 대화를 통해서 협력을 이끌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회 자체가 마비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그렇게 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미래통합당이 반대하든 말든, 아니 정의당마저 미래통합당의 편에서 막아서든 어쨌든 그냥 민주당이 하고 싶으면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상임위도 마음대로 18개 모두 가져가고, 국회도 단독으로 열어서 모든 법안을 임의로 처리하고, 그래도 미래통합당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다. 장외투쟁에 나서도 그냥 무시하면 되는 것이다. 언론이 아무리 미래통합당의 장외투쟁을 중요하게 보도해도 앞으로 4년 동안은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의 여당으로서 필요한 모든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혹시라도 국회 안에서 실력으로 입법을 저지하려 하면 국회선진화법이 그나마 있는 의석마저도 모조리 날려버릴 것이다. 뭘 할 수 있는가. 언론이라도 없으면 지금 미래통합당이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가.

 

아반떼로 길을 막고 있는데 탱크가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사정해야 하는 것은 탱크의 조종수가 아니다. 아반떼의 운전사다. 탱크는 그냥 아반떼를 밟고서 지나가면 되는 것이다. 탱크에는 조금의 흠조차 없이 아반떼만 박살나고 마는 것이다. 엎드려 무릎꿇고 제발 멈춰주기를 빌어야 하는 것은 아반떼 운전사지 탱크 조종수가 내려서 비켜달라 사정해야 할 상황이 아니란 것이다. 그 정도 차이가 난다. 민주당 일부만 그 사실을 모른다. 태산의 힘을 가지고도 겨자씨만한 간담으로 지레 알아서 긴다. 유시민의 과거 평가였다. 그놈들이 아직 민주당 안에 남아 있다.

 

지금 이해찬과 김태년이 하고 있는 일은 그런 사실을 야당과 무엇보다 언론과 여론에 알리는 작업인 것이다. 민주당이 지금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 힘으로 과연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지. 경고의 차원이기도 하다. 과거처럼 밖에서 민주당을 흔들려 해봐야 의미가 없다. 박용진 같은 놈들 몇 부화뇌동해봐야 내쫓아도 대세에는 전혀 아무런 지장도 없다. 윤미향 하나 붙잡고 달려들어도 전혀 상채기조차 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발악일 뿐. 한겨레와 경향이 어째서 저토록 필사적으로 민주당을 저지하려 달려드는가. 저들의 공포이기도 하다.

 

양보해야 하는 것은 민주당이 아니다. 양보가 아닌 구걸을 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소수야당인 미래통합당인 것이다. 감히 양보라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금 미래통합당은 국회에서 무언가를 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민주당의 단독개원조차 명분을 제외하고는 저지할 힘이 없다. 아니 명분조차도 없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를 열겠다는데 어떤 명분을 가지고 그를 저지할 것인가. 제발 살려달라고 빌어야 하는 것이다. 언론이 미래통합당을 망치고 있다. 모든 언론이 자기들 편이니 민주당과도 한 번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주호영이라 다행이다. 참 볼 것 없다. 한심하다.

사실 별로 비판할 거리도 없다는 것이, 신혜선 이사장과 동아일보 인터뷰어의 말을 각각 요약하면 이 한 마디로 정리되기 때문이다.

 

신혜선,

 

"정대협을 떠난지 오래되어 지금 돌아가는 상황은 잘 모르겠다."

 

동아일보 인터뷰어,

 

"그동안 언론이 보도한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머지는 아무리 그래도 정대협의 그동안 활동의 취지나 과정들에 의미가 있었으니 그마저 훼손하지 말라는 취지인데, 더불어 현정부에 대한 시민단체 활동가로서 뻔한 비판까지 더해서.

 

어차피 세세한 내용 같은 건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다 말하고 있고, 더구나 언론이 제기한 의혹 가운데 상당부분이 허위이거나 과장이거나 심지어 무지로 인한 것임이 드러난 상태고, 그런데도 그것을 기정사실 삼아서 상식적인 대답을 정의연에 대한 비판인 것처럼 당당히 기사로 내보낸다. 원래 이놈들 하는 짓거리가 이렇다.

 

하긴 이런 상황에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것부터 다른 의도가 의심된다 할 수 있겠지만. 이제와서는 조중동과 인터뷰하는 자체에 대해서마저 의심의 눈길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보니 자기가 공동대표일 때 윤미향은 상근직원이었다고 하고 있었으니 그런 점도 고려되고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별 내용도 없는 인터뷰였다.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전 공동대표와 언론의 보도만 사실로 간주한 언론사 인터뷰어의 뻔한 상식적인 대화였으니. 인용하는 놈들이 병신들인 것이다. 딱 속아넘어가기 좋게 써놓기는 했다.

당권과 대권의 분리라는 게 참 듣기는 좋다. 맞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고 당은 입법부의 일원인데 행정부와 입법부가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면 얼핏 삼권분립의 원칙 자체를 훼손하는 듯 보인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수반으로서 행정부를 이끌고 당은 당대로 입법부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망했던 것이 바로 참여정부였었다. 아무리 당권을 틀어쥐고 있어도 모든 정치인에게 정치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대권을 거머쥐는 것이다. 현실이 허락하지 않으니 다른 목표도 이야기하는 것일 뿐 아주 실낱같은 가능성만 있어도 누구나 한 번은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바로 대권이란 것이다. 그리고 일단 당권을 가지게 되면 당을 자신의 대권을 위해 움직일 수 있는 기회란 것이 생겨나게 된다. 그렇게 가능성이란 것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자신들을 여당이라 불리게 만들어 준 현직 대통령조차 대권으로 가는 길에 놓인 하나의 장애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의 당권을 장악한 것이 노무현이 차기 대통령감으로 여기고 밀어주던 정동영이었었다. 처음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정동영은 막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민적 지지가 높았던노무현 전대통령을 배경삼아 당시 시대의 과제처럼 여겨졌던 정치개혁을 명분으로 앞세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단 열린우리당이 만들어지고 2004년 총선에서 마음껏 공천권을 휘둘러 당권을 손에 쥐게 되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언론이 합심해서 공격하고 대통령을 지지하던 여론마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이대로 대통령과 끝까지 함께할 경우 자신의 대선에도 좋지 못할 것이란 계산이 섰던 것이었다. 그러니 차라리 언론과 여론의 편에서 대통령을 공격하며 자신의 입지를 높이자. 바로 거의 모든 언론이 한결같이 김부겸을 민주당 차기 당대표로 밀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대통령이 속한 여당의 대표지만 또한 차기 대권을 노리는 경쟁자이기도 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의 후광도 얻어야 하겠지만 언론과 여론의 비판이 거세다면 차별화하려는 시도 또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결국 국민적 여론이 좋지 못하다면 차기 대권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조차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회창이 김영삼을 신한국당에서 쫓아냈고, 정동영 역시 노무현 전대통령을 열린우리당에서 몰아냈었다. 바로 그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언론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론의 눈치를 보면서 언론을 쫓아 정부와도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몰아갈 여지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떻게 된다? 정부가 하겠다는데 정작 여당이 나서서 반대하다가 결국 자중지란만 일으키고 마는 참여정부의 재탕이 되고 마는 것이다.

 

현정부의 지지율이 역대 어느 정부보다 오히려 더 높은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당이 정부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사소한 이견은 있어도 대통령이 하겠다면 당이 철저히 뒷받침하고, 당이 요구하면 대통령 또한 행정부의 모든 역량을 기울여 반드시 이루어낸다. 힘이 있는 것이다. 청와대와 행정부와 여당이 하나가 되었다.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때로 논쟁하고 때로 충돌하면서도 하나의 방향을 향해 모든 힘을 기울여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패스트트랙만 하더라도 과거의 민주당이었다면 이렇게 이탈표조차 거의 없이 무려 1년 가까이 끌어 온 법안들을 수월하게 통과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언론이 금태섭을 필사적으로 빨아주는 것이기도 하다. 멸종위기종이다. 민주당 안에 금태섭 같은 인간들이 많아야 하는데 이제 금태섭 하나 남았으니 어떻게든 보호하며 번식에 성공해야 한다.

 

결국 그러한 청와대와 여당의 협력에 의해 아무것이든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지하든 반대하든 청와대와 여당이 하나가 되어 아무것이라도 실제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코로나19의 방역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가능했는가?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시절부터 당대표를 하면서 당을 자신의 사람들로 채우며 장악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영입했거나 이전부터 따르던 사람들 말고도 문재인 대통령이 당에서도 힘을 가지니까 문재인 대통령의 눈치를 보면서 친문을 자처하는 과거의 비문들마저 나타나고 있었다. 스스로 친문이라 자처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을 입기 위해 저리 서로들 다투고 있는 중인데 과연 여당인 민주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과 결정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 있을 것인가.

 

이낙연 의원이 전남도지사에 출마하며 중앙정치로부터 멀어진 것이 벌써 6년이 된다. 그 사이 문재인 대통령에 의해 당의 혁신도 이루어졌고, 당내 인사들도 다수 바뀌고 있었다. 도저히 같은 정당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너무나 많이 바뀌어 있었다. 오히려 이낙연 의원 자신도 전남도지사에 출마하던 무렵 당에 남아 있던 이제는 탈당한 인사들이 더 친숙하게 여겨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전남도지사로 있다가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국무총리가 되어 돌아왔을 무렵에는 이미 더불어민주당은 이전의 새정치민주연합과 전혀 다른 정당이 되어 있었다. 당장이야 대통령의 후광도 있고, 차기 대선주자로서의 높은 국민적 지지도 있으니 많은 당내 인사들이 이낙연 의원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과연 이대로 여전히 당과 거리를 둔 채 바로 대선에 출마해서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그런 상황은 이어질 것인가.

 

당장 이낙연 의원의 가장 큰 경쟁자로 나타난 것이 역시나 차기 대선을 노리는 김부겸 전의원이라는 것이다. 서로 지역기반도 다르다. 따라서 자신의 지역기반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서로 취해야 하는 노선까지 모두 다르다. 이미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서 벌써부터 한참 앞서가고 있는 이낙연 의원에 비해 김부겸 전의원의 경우 국회의원 배지마저 잃었으니 그를 뒤집을 비장의 수단의 더욱 필요한 터다. 이낙연이 대통령이 되어 바로 자신을 후계자로 지목하면 또 모를까 아니라면 스스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이낙연이라도 밟고서 길을 만들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니까 참여정부를 돌아보면 된다니까. 이낙연이 대통령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강력한 청와대와 여당의 협력을 위해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당권을 쥐어야 한다는 이유인 것이다. 자기 사람을 만들고, 그런 자기 사람들을 여기저기 심고, 나아가 민주당이 자신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며 움직이도록 모든 준비를 마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에는 모두 친문들 뿐이니까. 친문이 아니더라도 친문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와 달리 온전히 여당인 민주당을 고스란히 자신의 우군으로 삼아 모든 반대에도 무릅쓰고 하나씩 개혁의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낙연은 다를까? 그러니까 참여정부를 돌아보라는 것이다. 더 정확히 과연 언론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위해 진지하게 진심으로 조언하고 있을 것인가. 언론이 바라는 것도 역시 참여정부의 재탕인 것이다. 이낙연 의원이라도 당내 기반 없이 바로 대권으로 직행해서 당과 유리된 채 거대여당의 지원조차 없이 혼자서 날뛰다 자멸하고 말라.

 

그렇기 때문에 이낙연 의원 자신도 대선을 앞두고 당권부터 잡으려 벌써 필사적인 것이다. 그냥 과자 하나 더 먹겠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낙연이 목표로 하는 민주당의 당권이 장차 대권을 쥐고 자신이 성공하기 위한 열쇠이기도 한 것이다. 당권 없이 대권도 없다. 설사 대권은 있더라도 성공은 있을 수 없다. 반대하는 놈들은 모두 적이다. 언론은 아주 오래전부터 민주당의 오로지 적이었었다.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차별만은 정당하다.

 

당권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무려 177석이나 되는 거대여당의 당권이란 대통령마저 위협을 느낄 정도인 것이다. 177석 여당이 열린우리당처럼 몽니를 부리면 더이상 정부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지 않다. 당을 믿지 못하기보다 정치를 잊지 못한다. 정치하는 인간들의 선의를 잊지 못한다. 이낙연에게 당권이 필요한 이유다. 이미 당위다.

그러고보니 내가 정의연 문제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아무말이나 막 하고, 아무 행동이든 막 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만 여긴다. 공짜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어렵게 쟁취해낸 것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며, 혹은 지금까지도 고통속에 살아가는 대가로 겨우 지금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시 그렇게 어렵게 싸우며 큰 희생을 치른 이들을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군사독재에 협력하던 세대들더러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군사독재에 협력하고 여전히 당시를 찬양하는 이들에 대해 이미 구세대라며 다음 세대를 위해 물러나야 한다고 굳이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최근 이야기도 아니다. 벌써 참여정부시절부터 그리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민주주의따위 개나 주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찾아온 것이 이명박근혜 정권이었었다. 그래서 이명박근혜 시절이 그렇게 살기 좋았었는가. 하필 그 무렵 한국으로 와서 민주주의가 무언지 제대로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탈북자들에게는 그저 위로만 보내고 싶다. 도대체 민주화를 위해서 싸우고 희생한 그들이 뭘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일까?

 

벌써 잊은 모양이다. 이소선 여사, 배은심 여사, 박정기 옹. 아마 세월호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직접 겪었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그저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며 슬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억울하게 떠나간 자식들을 위해 부모는 때로 기꺼이 투사가 되기도 한다. 그 서슬퍼렇던 군사독재 아래서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더이상 아무것도 두려워 않고 기꺼이 투사가 되어 그들과 맞서게 된다. 자식을 잃은 억울함과 분노가 풀리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자식은 부모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게 되는 것이다. 민주화의 중요한 순간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당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던 것이 민주화의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부모들이고 가족들이었던 것이다. 그 분들 또한 민주화를 위해 함께 투쟁한 동지이기도 했었다.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민주화를 위해서 함께 투쟁했었던. 자격이 없다고?

 

나이 많으면 하도 언론에서 빨갱이라 떠들어댔으니 그 기억이 남아 그럴 수 있다 치겠다. 그렇게 열심히 싸워 쟁취한 결과 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마움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하긴 자칭 좌파놈들이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의 국민으로서 부와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며 한탄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었다.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 너무 나갔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약소국이 아닌 일본이라는 경제대국의 국민으로 살았을 것 아닌가. 그저 조금 늦게 태어나 아무일없이 살아간다고 아무 생각없이 막 사는 것은 아닌가.

 

어째서 민주화유공자들에게도 훈포장이 주어져야 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는 민주주의 국가인 것인가? 민주화유공자들이 희생하며 투쟁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었다. 이명박근혜조차 그리 견디기 힘들었는데 하물며 전두환이야. 하물며 박정희야. 그래서 요즘 페미니즘이 그리 논란인 모양이다. 마치 페미니즘 자체가 전두환이고 박정희인 것처럼. 페미니즘으로 인해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당하는 것처럼. 민식이법이 논란이 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스쿨존에서 마음껏 교통법규를 무시하며 운전해도 되는 자유를 억압당하고 박탈당했다. 그런데 그런 법안들을 누가 만들고 지지했는가? 누가, 무엇이 그런 법안들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실행되도록 만들었는가? 소수의 권력자인가? 아니면 다수의 시민의 힘이었는가? 차라리 군사독재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조차 결국은 시민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는가?

 

대한민국을 권위주의와 군사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 거듭나게 만든 유공자들이란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세계 아무곳에서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게 만들어준 이들이란 것이다. 그것도 지금 입도 아닌 손가락만 살아있는 인간들과 달리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찢기고 부서지면서 이루어낸 성과들이란 것이다. 훈포장이 이루어지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가? 군사쿠데타 일으키고, 독립운동가 때려잡던 친일파들도 받은 훈장인데? 어린 놈들이란 소리가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부모들의 문제인 것일까? 뭐가 중요한가를 모른다.

 

벌써 33년 전이다. 아마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가 아닌 김영삼이 당선되었다면 당시 벌써 유공자들을 찾아서 훈포장이 이루어졌을지 모른다. 비로소 역사가 제 자리를 찾아간다. 민주화운동 뿐만 아니다. 감염병 방역에 힘쓴 사람들 역시 유공자로서 포상하는 국가를 만들어가려 한다. 단지 권력의 주변에서 충성한 사람들만이 아닌 진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명예를 누리도록 하려 한다. 그 의미를 애써 폄훼하려는 인간들이 그저 서글플 뿐. 쿠데타와 친일파가 그리 그립고 좋은 모양이다. 씁쓸하다.

대통령이란 하늘이 내리는 자리다. 되고 싶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가만 있다가 그저 운이 좋아서 앉을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실력으로 쟁취해야 하는 자리인 것이다. 사람이 할 바를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처럼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비로소 하늘의 선택을 기다린다. 원래 동아시아에서 군주에게 하늘이란 바로 백성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지금 말로 국민이고 시민이다. 하잘 것 없던 시절에도 백성들의 지지 없이 아무리 강력한 군주라고 자신의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전두환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던 노태우조차 6.29선언이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냈다는 실적이 있었다. 박근혜 역시 박정희의 후광을 등이 업었다지만 차떼기 이후 최악의 위기로 내몰렸던 한나라당을 기사회생시키고 이후 자신의 이름으로 치른 선거마다 모두 승리하며 보수가 다시 정권을 가져오는데 큰 역할을 했기에 대통령까지 되었던 것이었다. 논란이야 있어도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청계천복원과 대중교통체계 개편을 이루어낸 이명박에 비해서 당시 여당의 후보였던 정동영이 내세울만한 것이 무엇이 있었는가. 노무현은 몇 번이나 낙선을 거듭하면서도 지역주의를 한 번 깨보겠다고 도전한 전력이 있었었다. 그래서 2012년과 2017년의 문재인이 달랐더 것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그런 점에서 2012년 낙선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기도 한다. 과연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단지 이명박에 대한 반감에 편승해 대통령까지 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힘있는 민주정부가 가능했을 것인가?

 

지금 이낙연 의원이 차기 대선주자로서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높은 지지 역시 여전히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총리였다는 배경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총리로서도 무척 잘하기는 했었다. 무엇보다 안정감이 돋보였다. 신중하고 침착하면서 크게 모난 데 없이 무난한 국정운영을 보여주고 있었다. 딱히 뭘 잘했느냐면 떠오르는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총리로서 과연 못한 것이 있느냐 생각하면 역시 떠오르는 것이 없다. 국민들도 이제는 지친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것을 이뤄보겠다고 온 나라를 들쑤시기보다 그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만을 안정감있게 해낼 수 있는 인물을 바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결국 앞으로 5년 동안 대한민국을 맡아 이끌어가려면 현재의 능력 뿐만 아니라 미래의 비전도 보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이낙연 의원 자신도 그것을 알았기에 굳이 총리자리를 박차고 국회의원에 출마해 국회로 들어간 것일 게다.

 

말하자면 지금 이낙연 의원이 차기 대선주자로서 받고 있는 높은 지지율이란 단지 국민적인 기대와 지지가 여전히 높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총리로서 그 후광에 힘입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기보다 국민들로부터 선입금받은 사실상 빚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총리 시절에는 안정감 있게 잘했는데 과연 이후 차기 대통령감으로서 얼마나 실력과 비전을 갖췄는가 찬찬히 따져 보겠다. 그래서 이낙연 의원도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국무총리 자리를 박차고 자신의 힘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해 당선도 되었던 것이었고, 자신이 차기 대선후보로 출마하게 될 민주당의 당원과 지지자를 대상으로 자신에 대한 신임을 묻고자 당권에도 도전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과연 당내의 여러 경쟁자들을 대상으로도 이낙연은 국무총리시절처럼, 아니 당시는 보여주지 못했던 자신만의 경쟁력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인가. 혹시라도 그 과정에서 가장 강력한 당권후보인 자신을 꺾기 위해 반대편에서 결집할 경우 그마저 꺾을 수 있어야 이후 당과의 관계를 주도하며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동력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지금 당내에서 이낙연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거셀수록 차기 대선주자로서 더 큰 기회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아예 당 전체가 이낙연에 반대해서 결집하다시피 했는데도 그마저 이기고 당대표가 될 수 있다면 이낙연의 실력은 차기 대선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미 검증도니 것이나 다름없다. 자신을 비판하고 심지어 반대하며 공격하는 목소리들을 꺼리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당의 안팎에서 이낙연을 떨어뜨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서는 이들의 존재를 불편해 할 이유도 당연히 없다. 시련이 더 큰 인물을 만든다. 하늘이 사람을 더 크게 쓰려 하면 그만큼 더 큰 시련을 내리기 마련이다. 국민 입장에서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과연 국무총리 시절의 이미지 만큼 이낙연이 차기 대통령으로서 자격을 갖춘 인물인가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

 

개인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뒤를 이을 차기 민주당 대통령으로서 이낙연이 가장 유력하다 여기고 있기는 하지만 당장 2년 뒤의 일조차 아직은 모르는 것이다. 이낙연이 과연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지. 혹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며 이낙연을 대신해서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지. 어느 쪽이든 지금 가장 강력한 이낙연보다도 더 나은 인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이낙연 의원 뿐만 아니라 당권을 두고 경쟁할 다른 후보들도 눈여겨 보아 둘 필요가 있다. 자격이 있는 사람이 기회를 얻는다. 치열할수록 유권자는 더 즐겁다.

하여튼 평소 아예 아무 관심도 없던 것들이 느닷없이 아는 척 관심있는 척 하려니 이런 모순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용수씨의 주장이 가지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용수씨의 주장을 모두 사실로 단정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이용수씨의 주장을 인정하면서 위안부운동을 계속 이어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일인지. 아무 관심도 없었으니 당연히 알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니 생각도 하지 못한다.

이용수씨는 첫째 위안부운동을 주도하던 단체로써 정대협의 존재와 자격 자체를 부정했었다. 정대협은 근로정신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체다. 근로정신대 문제를 해결하는데 위안부 피해자들을 그동안 앞장세워 이용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정대협에게는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해 앞장설 자격조차 없었다. 바로 위안부운동을 시작했고 주도했던 그 정대협에 대해 하는 말이다. 위안부운동은 출발부터 부정한 존재에 의해 부정한 의도로 시작된 잘못된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위안부운동에 앞장 서 왔던 피해자들의 역할을 부정했었다. 위안부 운동에 있어 가장 상징적인 인물이던 김복동 할머니조차 사실은 자신의 의사가 아닌 정대협의 강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며 이용당한 것 뿐이다. 그동안 수많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으로 시작되고 진행되었던 상당한 성과까지 봤었던 모든 그동안의 활동들이 정대협의 일방적인 강요와 강제에 의한 왜곡과 조작으로 전락하고 만다. 피해자 자신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제 3자일 정대협의 입장과 주장만이 강제된 것일 텐데 그런 활동에 새삼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일까? 차라리 할머니들을 강제로 끌고다니며 자신들의 입장만을 위해 이용했다면 마땅히 부정되고 단죄되어야 할 죄악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결론은 어떤가? 근로정신대문제의 해결에 위안부문제를 끼워넣는 바람에 오히려 해결만 더 어려워졌다. 일본정부는 벌써부터 사죄도 하고 배상도 하려 했는데 정대협이 근로정신대문제를 끼워넣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만 드러내느라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훼방놓기만 하고 있다. 그래서 이용수씨의 편에서 주장하는 대부분이 이용수씨의 주장처럼 위안부운동을 근본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게다. 그동안의 위안부운동이 잘못되었으니까. 그러니까 그 출발부터 과정은 물론 결과까지 모두 잘못된 위안부운동을 이제와서 계승할 의미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인가.

무엇보다 정대협이 같은 위안부피해자임에도 무궁화회 피해자들과 갈라서서 온갖 비난을 들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다. 같은 위안부 피해자임에도 정대협의 활동방향은 무궁화회에 속한 피해자들이 아닌 그 밖의 피해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없는 보상은 의미가 없다. 보상조차 아닌 위로금은 더욱 받을 수 없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의 책임을 인정하는 배상이어야지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정대협이 시작한 것이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당시 민간기금으로 조성한 아시아여성기금에서 위로금을 받기로 동의했던 피해자는 소수였었다. 아니 설사 다수였어도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보다, 배상금조차 아닌 위로금으로 만족하고 끝낼 수 있는 피해자들보다는 어렵더라도 배상을 받고자 하는 피해자들의 편에 서고자 했던 것이 바로 정대협이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대협과 뜻을 함께하며 활동까지 같이 했던 피해자들이 얼마이고, 그 분들이 남기고 간 유지가 있을 텐데, 이제 와서 이용수씨의 한 마디에 그 모든 걸 포기하고 뒤집으라고? 한 마디로 늬들이 지금까지 한 일은 다 틀렸으니까 지금 와서 다 뒤집고 새로 시작하라? 누가? 무슨 자격으로?

그리 지금까지와 다른 위안부운동을 하고 싶으면 자기들끼리 나서서 하면 되는 것이다. 어차피 정의연도 나락이고 더이상 앞으로 위안부운동을 주도할 동력도 사라진 상태다. 누가 지금 이 지경에 놓인 정의연을 믿고 지지도 하고 기부도 하겠는가. 새삼 운동의 목적과 방향을 바꾼다고 해도 한 번 찍힌 낙인이 지워질 리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 책임질만한 일을 아무것도 한 적 없는 늬들이 나서서 대신하면 되는 것이다. 쉼터도 대신 관리하고, 할머니들도 직접 보살피고, 운동방향이나 방법등도 직접 고민해서 구상하고, 그리고 국민들에게 지지도 호소한다. 딱 10년만 해봤으면 좋겠다. 그래도 정의연보다는 나을 것이다. 피해자가 수 백 명이던 시절부터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지금껏 운동을 지켜오고 이끌어 왔었다. 이제 남아계신 분도 몇 분 안 되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입바른 소리나 태연히 지껄여대는 그 정의감과 양심에 따르면.

이용수씨의 주장을 모두 인용해서 윤미향과 정의연을 공격하고는, 이용수씨의 주장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그러면서 위안부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헛소리와 함께 윤미향과 정의연에 대한 새로운 요구까지 더한다. 그래서 내가 어제 그런 글을 썼던 것이다. 시민이 벼슬이 아니다. 국민이 곧 시민단체에 채무자는 아닌 것이다. 자기들이 뭐라도 대단한 존재나 되는 듯 여긴다. 자기들이 그리 주장하면 시민단체는 당연히 따라야 한다. 모든 국민을 대신한 시민단체가 아니다. 정대협이 대신하던 시민들은 위안부문제가 돈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역사와 인권의 문제로서 근본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시민들이다. 그동안도 그렇게 위안부운동과 함께 정의연은 존재해 왔던 것이다. 주제도 모르는 놈들이 함부로 떠들 일이 아니란 것이다.

차라리 위안부운동 자체를 처음부터 부정하며 정의연의 해체를 주장하는 조중동과 보수진영이 더 일관되고 솔직하다 여길 정도로 자칭 진보, 자칭 중도, 자칭 개혁, 자칭 양심들 입에서 나오는 소리들이란 거의가 추악한 개소리들 뿐이다. 그나마 김민웅 정도가 쓸만한 소리를 했다. 내가 더이상 이용수씨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무리 불만이 있어도 그 오랜 세월을 자신들의 곁에서 도우며 보살피며 함께 지낸 이를 뒤에서 칼을 꽂아 죽이는 행위까지 긍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인정이 있어야 한다. 심미자 할머니도 이렇게 등뒤에서 칼을 꽂고 헤집지는 않았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과연 누구를 더 동정해야 할까?

새벽부터 잠도 오지 않는데 어디서 누가 헛소리 지껄인다기에 찾아가 보고 다시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그러니까 정의연 해체하고 윤미향도 사퇴해야 한다니까. 자기 살 길 찾아 알아서 흩어지는 것이 옳다. 버텨봐야 상처만 입는다. 이용수씨가 전면에 나선 순간부터 지금 상황을 예상해 왔을 터다. 고마움을 모른다. 피해자든, 그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돈이나 조금 보내주던 대부분 시민들이든. 강한 사람들이기는 하다. 나라면 벌써 다 때려쳤을 것이다. 욕먹으면서까지 그 고생을 더는 못한다. 아니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똥이 똥중에 제일 더럽다더만. 기분도 더러운 요즘이다.

원래 시민단체란 한 사회에 있어 공공의 문제라 여겨지는 부분에 대해 소수의 활동가들이 나서면 동의하는 시민들이 후원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한 사회, 한 국가를 넘어서 인류 보편의 문제라 여기는 환경문제에 대해 활동가들이 단체를 만들어 활동을 시작하면 그에 동의하는 시민들이 후원 등을 통해 그를 지원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래서 시민단체의 힘과 영향력은 그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시민의 수와 비례한다 할 수 있다.

 

그런데 가만 뒤집어 보면 결국 그 많은 시민들이 시민단체의 활동을 자기 돈과 시간까지 들여서 지지하고 후원까지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문제라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이미 시민단체가 활동하기 전부터 인식하고 있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혹은 시민단체의 활동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결국은 시민단체가 활동을 통해 추구하는 그 방향이 자신을 위해서도 이로운 것이라 여기기 때문에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돈까지 들여 그를 돕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의 활동이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를 지지하고 후원까지 하는 시민들 자신을 위한 것인가?

 

물론 대부분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은 어떤 대가를 바라기보다 그저 자기가 좋아서 그 일을 선택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또 쉽게 그만두기도 한다. 하긴 일이란 자체가 그렇다. 일 자체가 좋아서 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흥미가 사라지면 바로 일을 그만둬 버리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일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제외한 다른 요소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그만큼 더 쉽게 그만두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찾아 떠나게 된다. 그래서 열정페이란 딱 열정 만큼, 열정을 시효로 주어지는 대가인 것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안다. 딱 더이상 만족하지 못하고 떠날 때까지만 주어지는 비용이라는 것을. 대부분 시민단체의 사정이 그렇다. 좋아서 하는 일인 만큼 대가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활동가들의 열정에 기대서 대부분 시민들은 아주 적은 후원만으로 그 성과들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묻게 된다. 과연 시민단체와 시민들의 관계에서 채권자는 누구이고 채무자는 누구인가?

 

아마 시민단체를 후원한다고 해서 한 해에 2, 3천만 원 씩 후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리 많이 후원해봐야 한 달에 10만원 정도도 사실 대부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에 반해 활동가들은 거의 자신들의 시간 전부를 그 일에 쏟아부어야 한다. 더구나 그 가운데 또 상당수는 자신들의 활동에 반대하는 상대편으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나서서 폭언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더 교묘하게는 소송을 걸거나, 아니면 언론을 동원해 음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을 활동가들 자신이 활동의 대가로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다달이 얼마간 후원하며 생각날 때마다 잠시 자원봉사나 나가는 것은 얼마나 쉽고 마음편한 일인가.

 

그래서 묻고 싶은 것이다. 그동안 정의연이, 정대협이 앞장서 온 위안부 운동이란 정대협이란 시민단체와 활동가들만을 위한 것이었는가? 대한민국이란 국가와 대부분 국민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로지 그들만의 문제였었는가? 이용수 할머니에게도 묻고 싶다.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 준 것 없다는데 그러면 도대체 정대협 말고 누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그렇게 그동안 자기 시간과 노력까지 들여가며 앞장서고 있었느냐고. 지금 이용수 할머니의 주위에 있는 그들이? 주위에서 듣기 좋은 소리로 자신의 편만 들어주고 있는 그들이? 무려 30년 동안 수 백 명이 넘는 피해자들을 돌보고 그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것은 과연 어디의 누구였는가? 그렇다면 그런 수고와 노력들에 대해 과연 한 번이라도 제대로 대가를 지급한 적이 있었는가?

 

이번에 돌아간 마포 쉼터 소장이 한 달에 고작 80만 원 받고 일했었다 한다. 현재 최저임금 기준으로 주휴수당 빼고 한달에 고작 100시간 일한 시급에 불과한 돈이다. 퇴근시간도 주말도 따로 없이 항상 할머니들과 함께 하며 받은 돈이 그 만큼이다. 그 돈 받고도 일할 사람이 쌔고 쌨다고? 있으면 한 번 정의연에 소개해 주라. 더불어 빈 건물에 상주하며 관리하면서 한 달에 120만 원 받겠다는 사람 있으면 한 번 정의연에 소개해 주기 바란다. 빈 건물인 티가 나지 않도록 언제든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게끔 항상 신경쓰고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마 윤미향 의원도 정의연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한 달에 300만원이나 받았었는지 모르겠다. 윤미향 의원의 올해 나이가 56세다. 1960년대 출생으로 대학교육도 받고 석사학위까지 있는 사람이 30년 동안 줄곧 한 가지 일만 해 왔음에도 한 해 연봉이 4천도 되지 않는다면 그마저 많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말이다. 그러면 그 알량한 돈을 받고 윤미향 의원이 그동안 해 온 일들이 어떤 것이었는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요양병원만 봐도 너무 분명한 것이다. 한 10년 전 쯤 요양병원 요양보호사들이 한 달에 200만 원 정도 받았었던 모양이다. 정확한 액수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씩 교대로 일하는데도 그마저도 부족하다며 이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매일같이 정대협 직원 몇 명이서 한 때 수 백 명이 넘던 피해자들을 돌보는 일을 해왔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돌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다양한 활동들도 해 나가야 했었다. 그렇게 피해자들을 위해서 30년을 하루같이 위안부운동을 해왔는데 고작 통장에 3억 있고, 2억짜리 아파트를 샀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보다 더 적게 받고 더 없이 살면서 위안부운동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리 하라면 당신이 하겠는가? 그리 주장하는 자신들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설사 위안부 피해자 자신들이라 할지라도 감히 그렇게 말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아무리 자기 좋아서 한 일이라지만 사람의 가치란 고작 그것 밖에 안되는 것인가?

 

그러고보면 공통점이 있다. 이번 정의연 논란에서 윤미향 의원의 재산을 가지고 문제삼는 대부분이 노동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고 무시하던 이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겨레와 경향, 그리고 정의당이 윤미향 의원을 비판하는 입장에 섰던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어느 개인이 한 가지 분야에서 30년 동안 한결같이 일해 왔다면 과연 3억도 안되는 집과 3억이라는 현금이 그렇게 문제가 될 만큼 많은 재산인가 하는 것이다. 혼자서 번 것도 아니고 남편도 따로 지역신문사를 차려서 사업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간첩사건 보상금으로 2억 넘는 돈을 받았다는데 딸의 유학자금으로 얼마를 썼다는 이야기 역시 없었다. 아니 다 떠나서 그래서 시민단체 하면서 집 사고 돈 억 대로 모았으니 문제다? 그러면 시민단체가 아니면 어떨까? 그러니까 시민단체에서 공공을 위해 일하려면 무료로 봉사해야 한다. 돈있는 놈들만 시민단체 하겠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수고를, 노력을 그 자체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건 모두 공짜다. 노동자의 노동력이 공짜인 것처럼. 저런 놈들을 진보라 하는 자체가 진보에 대한 모독이다.

 

빚을 지고 있는 것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오히려 대부분 시민들이 고작 얼마간의 기부금과 자원봉사만으로 소수 활동가들이 바치는 대부분 수고와 노력에 기대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시민들이 후원하는 얼마간의 기부금이나 자원봉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수 활동가들의 수고와 노력에 기대어 그 결과까지 함께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빚을 지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그래서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서도 좋게 볼 수 없는 것이다. 도대체 뭘 얼마나 해주었다고 정의연과 윤미향 의원에 대해 빚을 갚으라, 아니 오히려 원수를 갚겠다 저리 난동을 부리는 것인가 말이다. 원래 자신들 것이었는가? 처음부터 자신들 것이었는데 정의연이, 활동가들이 그에 기생해 온 것이었는가? 위안부 피해자들이 지금껏 받고 누려 온 모든 것들이 누구의 수고와 노력에 의해 권리처럼 보장되었는가? 그런데도 자기들 생각과 요구와 맞지 않으니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쫓아 모두가 정의연 잘못했다.

 

그래서 해체하라 주장한 것이다. 고마운 것을 모른다. 소중한 것을 모른다. 정의연이 사라져봐야 안다. 수요집회가 중단되어 봐야 안다. 그래서 만족한다면 오히려 그쪽이 처음부터 맞았던 것이다. 시민단체의 노력과 수고는 공짜가 아니다. 얼마간의 기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희생과 헌신의 결과인 것이다. 나라면 할 수 있을까? 나더러 그 돈 받고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일하라면 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도 고작 80만 원 받으며 개인의 생활조차 없이 헌신해 온 쉼터 소장의 죽음마저 모욕하려는 이들이 있다. 그를 또한 오히려 비판해야 할 자칭 진보들이 방관하며 부추기기까지 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모욕을 당해야지만 그들의 그동안 활동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일까? 

 

기부금을 냈으니 정의연의 활동까지 자신의 소유여야 하는 것이다. 기부금도 안 냈고 자원봉사도 안했지만 그동안 지지해 왔으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니 한 번도 지지한 적 없고 오히려 반대만 해왔지만 대한민국 국민이고 시민이기에 정의연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내 마음과 같지 않으니 너희들은 죄인이다. 단지 단죄되어야 한다. 나라면 못 견딘다. 역시 윤미향 의원이나 정의연 활동가들이나 정신적으로 매우 강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더 걱정이기도 하다. 그 강함이 어느 한계를 지나면 파열로 이어질 수 있기에.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원한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노력을 모두 활동에 기부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모두를 대신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념을 떠나서 사실이다. 명백하게 드러난 부정이 없다면. 그래서 과연 드러난 실제 범죄나 불법이 있기는 한 것인가. 그저 일방적으로 정한 자기들의 기준에 맞지 않으니 틀렸다, 잘못되었다. 다 의미없어진다. 언론은 똥이다. 시민도 똥이다. 심정이 그렇다.

문득 그런 의심이 들었다. 과연 JTBC와 한겨레가 박근혜의 비선실세 최순실의 존재를 폭로한 것이 반드시 진실을 밝히거나 정의를 실현하려는 언론으로서의 사명감에서 그리한 것이었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이들 언론들이 보도하는 행태를 보면서 갈수록 그 의심은 커져만 갔고 지금에 와서는 확신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딱 JTBC와 한겨레가 보도를 쏟아내던 시점이, 심지어 조선일보마저 박근혜 정권을 공격하는 기사를 쏟아내던 그 즈음이 반기문이 UN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귀국해서 출마하려던 무렵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국정농단 의혹이 하나둘 밝혀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에서도 다수의 국회의원들이 탈당해서 바른정당까지 만들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섰던 것이 박근혜 정권 당시 차기 대선후보로까지 손꼽혔던 김무성과 유승민이었었다. 역시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철저히 버려졌던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만든 바른정당은 사실상 반기문을 차기 대선후보로 추대하기 위해 만든 정당이었었다. 그래서 반기문이 대선출마를 포기하자 바로 오히려 소수만 남기고 대부분이 다시 원래 새누리당이던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갔던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이 탈당하고 바른정당까지 만들었던 것은 반기문이 돌아와서 출마하면 가능성은 충분하겠다는 계산이 섰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주체들은 어땠을까? 2017년 한겨레의 무비판적인 반기문 띄우기 보도가 문제가 되었던 것을 기억한다. 

 

참여정부 당시 김근태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정면으로 들이받았던 이유 가운게 가장 컸던 것이 다름아닌 자기도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데 대놓고 정동영을 미는 듯한 모습에 배신감을 느낀 것이었다. 노무현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을 때도, 이후 민주당을 뛰쳐나와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도 정동영이 노무현을 등에 업었다면 김근태는 사실상 동등한 위치에서 노무현을 지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자기가 도운 과실을 모두 정동영에게 몰아주고 있으니 불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로 있던 시절까지도 김근태를 따르던 운동권 출신들은 철저히 친노 친문과 거리를 두는 행보를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 정치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 마냥 욕할 수만 없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역시 차기 대선주자로까지 언급되었던 김무성과 유승민 입장에서 자신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배제한 채 오세훈 따위를 차기로 염두에 두는 박근혜의 행보를 어떻게 여겼었겠는가.

 

2016년 총선을 기점으로 박근혜가 자신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소수만을 일방적으로 선별하여 밀어주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보수진영에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친박을 넘어 진박이네 뭐네 구분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 그 무렵이었었다. 그러면 당시 박근혜로부터 선택당하지 못하고 배제되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박근혜가 정권을 잡고 차기 정권까지 선출할지 모르는 상황이라는 것이 어떻게 여겨졌겠는가 하는 것이다. 자칫 박근혜가 정권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반기문이 UN사무총장의 임기를 마치고 박근혜의 후계로 선택된다면 자신의 앞날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후보로 박기문 이상의 대안이 없다 가정했을 때 반기문을 박근혜로부터 떼어낼 최선의 대안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면 답은 명확해진다. 박근혜를 대통령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당히 비밀스럽게 다루어졌을 최순실의 태블릿PC가 공교롭게도 하필 그 시점에 우연찮게 JTBC로 전달된 배경 역시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박근혜를 공격하던 언론들이 지금에 와서 한결같이 당시 정대협이던 정의연을 공격하며 위안부협상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이유도 역시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는 그래야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죽하면 한겨레 기자 스스로 그리 토로하고 있을 정도인 것이다. 이명박근혜시절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처음부터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란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상태에서 다른 사람을 염두에 두고 당시에는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폭로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아마 차기 대통령에 문재인이 당선될 것을 알았다면 한겨레나 JTBC나 판단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조차 재평가할 수 있는 그들이라면.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을 다시 평가하자고 보수언론이 만든 판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지금의 그들이라면.

 

지난 대선에서도 그래서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서는 안된다는 한 가지 목적에 대해서만큼은 서로 입장을 같이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홍준표를 지지하고, 누군가는 안철수를 지지했지만, 결국 목적은 같았다.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어서는 안된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자칭 진보언론들에서 그 지지자들을 모욕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겠는가 말이다. 지금 와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당시부터 다수 진보언론 기자들이 공공연히 혹은 개인적인 공간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철수를 위해 눈물을 흘렸던 하어영이 KBS의 검언유착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오보를 터뜨렸던 정황도 그렇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지금 윤미향 의원과 관련한 논란도 그 연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이 언론에 나와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지금 청와대와 민주당은 그야말로 범죄의 온상이고 악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청와대와 민주당과 관련한 모든 의혹들은 그 자체로 사실로 간주된다. 오죽하면 코링크PE에 대해 익성의 실소유주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도한 한겨레가 지금까지도 정경심 혹은 조범동의 실소유주 가능성을 검찰로부터 받아 충실히 보도하고 있겠는가. 그러니까 민주당의 공천을 받았기 때문에 정의연도 잘못되었고, 정대협도 잘못되었고, 위안부 운동도 잘못되었다. 위안부운동이 출발부터 과정과 결과까지 모두 잘못되었다는 이용수씨의 주장을 전혀 아무 검증도 비판도 없이 고스란히 전하는 이유다. 차라리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한겨레의 민주당에 대한 태도가 지금과는 조금은 달랐었을까?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적인 의도로 야권의 유력인사를 몰아갔던 한명숙 전총리의 뇌물사건에 대해서도 오로지 검찰의 편만을 들고, 검찰이 현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유시민과 노무현 재단을 목표로 진행하던 채널A와의 검언유착 의혹에 대해서도 오로지 언론의 자유만을 부르짖고, 그리고 정의연의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아니 취재하려면 얼마든지 취재할 수도 있는 입장에서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협상과 이전 보수정부의 위안부정책을 재평가하려는 의도에 지금도 충실히 놀아나고 있는 중이다. 의도가 없다면 한겨레 기자것들이 모두 뇌가 없는 병신들이란 뜻이다. 나름대로 좋은 대학도 나와서 기자씩이나 된 인간들이 아무 의도없이 그렇게 철저하게 보수정권과 언론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놀아날 리 있겠는가.

 

그동안 JTBC에 속아왔었다는 것이다. 한겨레야 참여정부 이후 더이상 속지 않겠다며 아예 보지 않은 지 오래다. 한겨레 기사는 누군가 가져와서 링크하면 거의 보는 수준이다. 가끔 한겨레 유튜브채널에 올라온 것들을 보면 역시 내 판단이 그렇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확신만 가지게 된다. 과연 2016년 12월 반기문이 UN사무총장에서 퇴임하지 않았고, 더구나 유력대선후보도 아니었다면 당시 박근혜의 국정농단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아니 결국 그로 인해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것을 알았다면 언론은 그 사실을 당연하게 보도하려 했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결국은 박근혜의 잘못이란 것이다. 주변을 잘못 관리했다. 그래도 민주화운동의 거목인 김근태를 홀대하고 정동영에게 배신당한 끝에 아무것도 못하고 실패한 대통령으로 남았던 노무현 전대통령처럼 박근혜 역시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가를 치렀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나마 박근혜를 공격할 수 있는 신뢰할만한 언론으로서 한겨레와 JTBC가 선택되었던 것이고. 그리고 한겨레와 JTBC 역시 자기만의 이유를 가지고 박근혜를 공격하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었다. 박근혜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까지는 했겠지만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것이란 예상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이제와서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후회하는 마음에 다시 보수진영에서 만들어놓은 판 위에서 함께 칼춤을 춘다.

 

특히 진보언론의 노무현 전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태도를 보면 증오 이외에 표현할 적절한 다른 단어를 찾기 힘들다. 오히려 보수언론보다도 더 노무현 전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증오하고 혐오하는 듯 느껴진다. 차라리 박근혜가 낫다. 차라리 이명박이 더 낫다. 그래서 차마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피해가 돌아갈 과거의 일들에 대해 보수언론과 입을 맞추거나 최소한 그럴 수 없으면 침묵을 선택한다. 검찰과 유착했다기보다는 그냥 문재인 정부가 싫었던 것은 아닐까. 한명숙 전총리가 참여정부의 총리였었기 때문은 아닐까. 의심은 할수록 더 깊어진다. 언제나.

그러고보면 이명박근혜 정부 당시에도 한겨레와 경향은 보수정부와 여당에게 참 많은 것을 기대했었던 것 같다. 보수여당이 다수당이 되었을 때도 그 독주를 막기 위해 민주당에 힘을 실어주기보다 선거에 패배한 민주당의 무능을 비웃으며 보수여당이 잘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최소한의 예의일 테니까. 그래도 국민의 선택으로 다수당이 되었는데 그를 부정하고 무작정 막아서기만 하는 것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다.

 

이번 총선이 끝나고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긴 문재인 정부 출범부터 한겨레와 경향 같은 자칭 진보들은 거의 한결같았었다. 차라리 아무런 기대도 없이 어떻게든 막아야만 한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살아있는 권력이니 적극적으로 저지해야만 한다. 그래서 최저임금인상도 반대했었다. 근로시간단축도 반대했었다. 김용균법에 대해서도 오히려 반대하는 자유한국당보다 입법하려는 정부와 민주당부터 공격했었다. 즉 뭐냐면 그래도 보수야당은 자신들과 공존도 할 수 있는 대한민국 정치의 한 주체라면 민주당은 그조차도 못되는 그냥 적이라는 것이다.

 

총선이 끝나고 한겨레와 경향의 논조를 보면 그래서 거의 일관되다. 압도적인 여당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 그동안 국회선진화법으로 인해 의석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후퇴하고 포기해야만 했던 많은 개혁법안들을 더욱 선명하게 관철시키라 요구하기보다 어떻게든 민주당이 아예 아무것도 못하도록 보수야당에 힘을 실어주는데 열심인 모습이다. 물론 그렇게 미래통합당이 막아서 민주당이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게 되면 그때는 가장 앞장서서 진보의 입장에서 비판하려 할 것이다. 압도적인 의석을 가지고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무능한 여당이라고.

 

마치 숙제를 주는 것 같다. 미래통합당에 충분히 힘을 실어주어 민주당이 아무것도 못하도록 막되 그러나 민주당은 그마저 뚫고서 개혁을 이루어내야 한다. 자기들은 검찰과 손잡고 검찰개혁을 필사적으로 막아내겠지만 그러나 자신들이 주장하는 선명한 검찰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하면 너희들은 실패하는 것이다. 그냥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욕이나 먹으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겨레와 경향 같은 자칭 진보들이 민주당의 동지인가? 그런 한겨레와 경향과 입장을 같이 하는 자칭 진보들이 민주당과 그래도 같은 길을 가는 동지라 할 수 있는가?

 

깨달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직도 자칭 진보들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는 지지자가 있다면. 어제까지 연대하던 정의연마저 민주당 공천을 받았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버리는 것이 바로 저들 자칭 진보들이란 것이다. 30년 시민운동을 하고 겨우 통장에 3억 있는 것 가지고 당사자가 해명해야 한다며 공격에 나서는 것이 바로 자칭 진보들의 연대이며 의리란 것이다. 민주당만 빼고. 하긴 한겨레 김완 기자것은 방송에 나오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한 모든 의혹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더만. 하는 소리 들어보면 민주당과 관계된 모든 것은 그야말로 악의 온상이다. 그런 민주당을 막아서는 미래통합당에는 구국의 사명조차 지워져 있는 듯하다.

 

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 같아도 결국 자칭 진보들이 바라는 것은 민주당에 의한 개혁이 아닌 민주당을 제외한 다른 누군가에 의한 개혁이고 진보여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이라는 이름과 닿는 순간 이미 더럽혀지는 것이고 악이 되는 것이다. 21대 국회를 둘러싼 여러 논란들을 지켜보는 자칭 진보들의 일관된 태도다. 민주당만 빼고. 민주당만 막을 수 있으면. 아무런 기대도 요구도 바람도 없이. 참 재미있는 것들이다. 벌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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