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내가 정의연 문제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아무말이나 막 하고, 아무 행동이든 막 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만 여긴다. 공짜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어렵게 쟁취해낸 것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치며, 혹은 지금까지도 고통속에 살아가는 대가로 겨우 지금 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시 그렇게 어렵게 싸우며 큰 희생을 치른 이들을 지금 사람들은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군사독재에 협력하던 세대들더러 이제는 물러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군사독재에 협력하고 여전히 당시를 찬양하는 이들에 대해 이미 구세대라며 다음 세대를 위해 물러나야 한다고 굳이 말하는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최근 이야기도 아니다. 벌써 참여정부시절부터 그리 주장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민주주의따위 개나 주라고 말하더라. 그래서 찾아온 것이 이명박근혜 정권이었었다. 그래서 이명박근혜 시절이 그렇게 살기 좋았었는가. 하필 그 무렵 한국으로 와서 민주주의가 무언지 제대로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던 탈북자들에게는 그저 위로만 보내고 싶다. 도대체 민주화를 위해서 싸우고 희생한 그들이 뭘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일까?

 

벌써 잊은 모양이다. 이소선 여사, 배은심 여사, 박정기 옹. 아마 세월호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직접 겪었을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그저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며 슬퍼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억울하게 떠나간 자식들을 위해 부모는 때로 기꺼이 투사가 되기도 한다. 그 서슬퍼렇던 군사독재 아래서도 자식을 잃은 부모들은 더이상 아무것도 두려워 않고 기꺼이 투사가 되어 그들과 맞서게 된다. 자식을 잃은 억울함과 분노가 풀리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자식은 부모의 가슴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게 되는 것이다. 민주화의 중요한 순간마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당연하게 그 자리를 지키던 것이 민주화의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부모들이고 가족들이었던 것이다. 그 분들 또한 민주화를 위해 함께 투쟁한 동지이기도 했었다. 누구보다 소중한 가족을 잃고,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민주화를 위해서 함께 투쟁했었던. 자격이 없다고?

 

나이 많으면 하도 언론에서 빨갱이라 떠들어댔으니 그 기억이 남아 그럴 수 있다 치겠다. 그렇게 열심히 싸워 쟁취한 결과 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고 있으면서도 어째서 그에 대해서는 조금도 고마움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하긴 자칭 좌파놈들이 독립운동가들 덕분에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의 국민으로서 부와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며 한탄하는 모습도 본 적이 있었다.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 너무 나갔던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약소국이 아닌 일본이라는 경제대국의 국민으로 살았을 것 아닌가. 그저 조금 늦게 태어나 아무일없이 살아간다고 아무 생각없이 막 사는 것은 아닌가.

 

어째서 민주화유공자들에게도 훈포장이 주어져야 하는 것인가. 대한민국은 과연 민주주의 국가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는 민주주의 국가인 것인가? 민주화유공자들이 희생하며 투쟁하기 전까지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었었다. 이명박근혜조차 그리 견디기 힘들었는데 하물며 전두환이야. 하물며 박정희야. 그래서 요즘 페미니즘이 그리 논란인 모양이다. 마치 페미니즘 자체가 전두환이고 박정희인 것처럼. 페미니즘으로 인해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당하는 것처럼. 민식이법이 논란이 되는 이유도 비슷할 것이다. 스쿨존에서 마음껏 교통법규를 무시하며 운전해도 되는 자유를 억압당하고 박탈당했다. 그런데 그런 법안들을 누가 만들고 지지했는가? 누가, 무엇이 그런 법안들을 국회에서 통과시켜 실행되도록 만들었는가? 소수의 권력자인가? 아니면 다수의 시민의 힘이었는가? 차라리 군사독재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그런 것들조차 결국은 시민들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는가?

 

대한민국을 권위주의와 군사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 거듭나게 만든 유공자들이란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세계 아무곳에서든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랑스럽게 외칠 수 있게 만들어준 이들이란 것이다. 그것도 지금 입도 아닌 손가락만 살아있는 인간들과 달리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찢기고 부서지면서 이루어낸 성과들이란 것이다. 훈포장이 이루어지면 안되는 이유가 있는가? 군사쿠데타 일으키고, 독립운동가 때려잡던 친일파들도 받은 훈장인데? 어린 놈들이란 소리가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부모들의 문제인 것일까? 뭐가 중요한가를 모른다.

 

벌써 33년 전이다. 아마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가 아닌 김영삼이 당선되었다면 당시 벌써 유공자들을 찾아서 훈포장이 이루어졌을지 모른다. 비로소 역사가 제 자리를 찾아간다. 민주화운동 뿐만 아니다. 감염병 방역에 힘쓴 사람들 역시 유공자로서 포상하는 국가를 만들어가려 한다. 단지 권력의 주변에서 충성한 사람들만이 아닌 진짜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에게 국가와 국민의 이름으로 명예를 누리도록 하려 한다. 그 의미를 애써 폄훼하려는 인간들이 그저 서글플 뿐. 쿠데타와 친일파가 그리 그립고 좋은 모양이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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