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몇 번이나 말했다. 차라리 바보가 되라. 미친 놈 되지 말고. 똑똑한 거 안다. 많이 안다는 것도 안다. 그만큼 남들보다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고 더 깊이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국민이 주인 아닌가. 늬놈들 멱줄 잡고 있는 이들이 국민 아닌가. 그러면 그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가 한 번 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째서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라는 말이 나오는가. 그놈의 협치, 상생 때문이다. 결국 같아진다. LH에 대해서도 집권당이라고 책임은 독박쓰고 결국 대책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공을 나눠 갖는다. 국민의힘과 합의해서 국민의힘과 같은 대책을 내놓는다. 더구나 욕먹기 딱 좋은 것들로. 부작용 있으면 나중에 바로잡더라도 당장은 민주당을 향한 국민의 분노부터 어떻게 다스릴 생각을 해야 할 것 아닌가.

 

국민들은 더이상 민주당 믿지 못하겠다 때려죽이자 선거로 민심을 보여주고 있는데 민주당은 여전히 오만하게 그런 국민의 위에서 놀려 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시가와 처가에 대해서까지 재산신고하는 건 무리이지 않은가. 나중에 판단하고 지금 당장은 국민이 분노했고 불신하고 있으며 죽이겠다 벼르고 있으니 납죽 엎드릴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누가 주도했는지 알겠다. 여기까지 왔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국민의힘은 임대차법 반대했다는 이유로 법이 뻔히 통과될 것을 알면서 그 이상 전세를 올리고서도 오히려 당당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법들에서 그랬다. 우리는 법안에 반대했으니 아무 책임도 없다. 설사 민주당과 합의를 했어도 자기들은 처음부터 법에 반대했으니 법을 어기는 행동을 해도 전혀 문제가 아니다. 국회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능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대상과 합의하겠다고 책임은 책임대로 지고 공은 공대로 가져간다. 결국 같은 놈이 된다. 선거에서 지고도 이 모양이면 이건 진짜 미친 놈들 맞는 것이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이다. 질러야 할 대는 질러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진 가장 큰 이유다. LH사태 터졌때 뒤같은 것 생각지 말고 오히려 더 크게 앞장서서 질렀어야 했다. 박영선이 지르고 김태년이 지르는데 정작 민주당은 조용했다. 입바른 소리나 지껄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책임이 누구에게 갔었는가.

 

이해충돌방지법 보면서 민주당은 아직 멀었구나 새삼 확인하게 된다. 상임위 면면을 보니 더 확실하다. 박용진 정의당 있다 왔었지? 그냥 정의당 가지. 가만 보면 가장 진보적일 것 같은데 가장 수구적인 입장에 있다. 이딴 새끼들 믿고 180석 밀어준 국민이 병신인 것인가. 조금 더 망해봐야 정신을 차릴 지 모르겠다.

 

그런데 선거에서 참패한 선대위원장은 어디서 뭘 하고 있더라? 이낙연은 지금 어디사 무릎꿇고 배라도 가르고 있는 것인가? 느닷없는 조국, 추미애 책임론은 어디에서 튀어나온 것일까? 이번 결정에도 이낙연은 아무 연관이 없는 것일까? 정동영은 그래도 입으로는 꽤 그럴싸한 소리를 지껄이곤 했었다. 내 눈이 썩었다. 

박원순에 대해 모진 소리 않는 것조차 2차가해라며 조리돌림하지만 김학의에 대해서는 출국금지의 정당성의 의심하며 무고한 시민의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

 

박주민이 월세 9% 올려받은 건 내로남불리지만 오세훈이 용산참사에 대해 발언한 것이나 주호영이 23% 올려받은 것은 비판할 거리가 되지 못한다.

 

조국은 죽어 마땅한 놈이지만 나경원이야 검찰에서 무혐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는가.

 

세월호에 분노하지만 유가족 사찰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결론은 정당하다. 인보사와 가습기살균제에 대해 분노하지만 재판부의 판결은 객관적이고 옳다. 

 

무엇보다 노동자를 위하는 정당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보좌관은 법에 해당되지 않으므로 마음대로 갑질하고 잘라도 된다. 그래서 더불어 진정으로 노동자를 위하는 정당은 국민의당이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뭐가 있을까?

 

전에 했던 말의 리바이벌이다. 국민의힘 지지자인 지인, 강준만도 김규항도 홍세화도 전혀 이름을 알지 못한다. 당연하다. 단 한 번도 자신들을 아프게 비판한 적 없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이명박이나 박근혜에 대해 민주정부에 했듯 날선 비판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모른다. 그런 놈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나한테 처음 들었다. 이명박근혜 시절 강준만이 한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게 뭐가 있을까? 싸가지없는 진보 말고. 그 책이 누구를 타겟한 것인지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세훈과 박형준의 온갖 의혹들에 대해 오히려 네거티브라며 민주당을 욕하다가 셀프오보로 언론에 빌미를 만들어주는 것이 자칭 진보의 수준이란 것이다. 김학의를 위해 분노하며 문재인 퇴임 이후를 벼르던 순간 자칭 진보는 진보는 커녕 인간으로서의 가치마 잃어 버렸다.

 

이 버러지가 어디서 또 똥을 지려 놨나 본데. 그런데 지금 와서 강준만의 한 마디가 얼마나 대중에 영향을 미치기나 할 것인가. 보수는 강준만을 모르고 민주진영은 강준만을 벼르고 있는데. 똥벌레가. 

요즘 드라마 '빈센조'가 인기다. 무고한 사람을 그리도 많이 죽인 흉악한 마피아인데 어느샌가 약자의 구원자가 되어 추종까지 받고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새롭고 신기한 일일까?

 

어떻게 변명해도 홍길동은 도적놈이다. 임꺽정은 살인자다. 로빈후드는 범법자다. 수호전의 주인공 송강이나 이규, 장청등은 거의 살인자에 사람을 죽여 고기를 먹고 만두를 빚어 팔던 흉악한 범죄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민중들은 그런 도적놈, 살인범, 범죄자들을 영웅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가난한 달동네에 살다 보면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개인에게 양심의 가치란 딱 자기가 가진 경제적 능력에 비례하는 것을. 가진 것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것을 도덕과 윤리 같은 규범에 양보할 수 있지만 가진 것이 없으면 고작 몇 천 원에도 체면이고 염치고 수치심이고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달려들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데 사람을 얼마나 죽였으면 그게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될 것인가.

 

기존의 법과 제도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했기에, 기존의 권력과 구조와 규범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했기에, 그래서 그런 기존의 질서로부터 벗어난 다른 존재에게 기대게 되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빼앗긴 것들을 돌려주지는 못하더라도 빼앗아간 놈들을 곤란케라도 만들어 달라. 그래서 도둑놈 아르센 뤼팽이 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 아니던가.

 

과연 대중이 민주당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법과 제도와 규범과 질서를 너무나 잘 지키느라 악인을 앞에 두고서도 아무것도 못하는 선량한 주인공인가? 아니면 그런 것 다 무시하고 악을 응징하고 약자를 구원할 수 있는 악당일 것인가? 그런 것을 두고 흔히 의적이라 부른다.

 

어째서 대중은 이재명을 희구하는가? 민주당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대선후보 이재명의 지지율은 건재한 이유가 무엇인가? 악당이거든. 이놈은 분명 악당이다. 모두가 느낀다. 나 역시 느낀다. 그래서 싫었다. 그래서 차라리 이낙연을 지지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삼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이것저것 다 따지고 지키느라 아무것도 못하는 선인이 아닌 그런 것 다 무시하고 무어라도 실제 할 수 있는 악당이라는 것을.

 

선과 정의의 차이다. 정의롭다는 것은 누군가로부터 욕을 먹는다는 뜻이다. 악인일수록 욕하게 된다. 파렴치하고 추악한 인간일수록 더욱 정의로운 이들을 비난하게 된다. 그래서 때로 죄인이 되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예수가 그렇게 십자가에 매달렸다. 확실히 성경에 보이는 예수는 그저 선하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역사에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다 오명을 뒤집어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민중은 자신들의 영웅으로 기억했다.

 

누구로부터 칭찬을 들을 것인가? 누구로부터 비난을 들을 것인가? 그를 위해 어디까지 무엇까지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는가. 같은 시기 방영한 드라마 '괴물'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은 진정 정의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양보하고 희생할 수 있는가.

 

착한 사람은 절대 정의로울 수 없다. 착하기만 해서는 절대 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내밀라. 그 전에 대부분 힘없는 사람들은 때리려는 기세만으로도 목숨을 잃기 십상인 것이다. 오른쪽 뺨을 맞고서도 왼쪽 뺨을 내밀 힘이 있으면 그것부터 이미 약자가 아니라는 증거인 것이다.

 

누구에게 칭찬을 들으려 하는 것인가? 누구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것인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은 절대 선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이다. 언론이 좋게 써주는 정치인만을 꿈꾸는 것인가.

 

민주당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다. 지지자들 없이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것들이다. 되도 않게 착각을 한다. 대통령이 아니어도 자기가 민주당을 차지하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

 

지난 시절 동안의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중앙정치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던 때문이다. 고작해야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나고 말 것이란 이유다. 아무리 이낙연이라도 지금의 민주당을 온전히 장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조국이 문제인가? 윤미향의 책임인가? 박원순의 잘못인가? 그보다는 무능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어떤 결과도 보여주지 못했다. 마피아라도 상관없다. 사람을 얼마를 죽였어도 그는 자신들의 영웅이다. 오세훈과 박형준이 그런 예이지 않은가. 자칭 진보들마저 용산참사에 대한 그 참담한 발언을 인내하며 넘어갔다.

 

착각하면 안된다. 오해해서는 더욱 안된다. 4월 20일을 기다린다. 다시 민주당 당적을 회복하려 한다. 절대 이번에는 저놈들 마음대로 되도록 참고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탈당은 안된다. 누가 당의 주인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아무것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것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온실의 화초들이란 것이다. 진정 2030이 민주당의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가. 차라리 정의당으로 넘어가 버렸으면. 혐오스럴 뿐이다.

한 가지 사과해야 할 것이 있다. 얼마전 무기계약직이 되기까지 내가 전혀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어째서 젊은이들이 인국공 사태에 그토록 분노하고 있었는가. 그래봐야 보안직이다. 직렬도 달라서 정규직이라지만 승진할 일도 급여가 오를 일도 없을 것이다. 사무직 전환? 말도 안된다. 다만 보안직과 관련한 사무업무가 있으면 관리자로서 그를 관리하는 직책이 새로 생길지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20대 30대에게는 너무 먼 이야기다. 그때까지 보안원으로 버텨낼 수나 있을까?

 

어찌되었든 공기업 무기계약직이 되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복권 사는 걸 그만두는 것이었다. 미래가 불안했다. 언제 일을 그만두게 될 지 몰랐었다. 실제 그렇게 작년 갑작스레 실직을 하고 지금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당장 2년 뒤 3년 뒤를 기약하지 못한다. 어지간한 기업 정규직으로 입사해도 과연 내가 40대 50대가 되었을 때 여전히 남아 승진도 하고 가족도 부양하고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그에 비하면 그래도 인국공도 공기업이니 보안원들은 고용이 보장된 것이 아닌가. 그 일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그들은 미래를 보장받은 것이다.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자기가 대단한 부자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아니다. 대단한 신분이 되어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저 중산층만 되었으면. 먹고 사는 걱정 없이 결혼하고 자식 낳아 가족을 이루고 문제없이 살 수 있었으면. 그런데 안된다. 이태백이니 사오정이니 하는 말들을 현실로 느끼며 살아온 세대인 것이다. 과연 지금 정규직으로 입사했다고 내 미래까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꾸준히 월급만 받아 모으면 걱정없이 가족은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비트코인에 몰리고 주식에 매달리는 것일 게다. 부동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게다. 노동을 통한 임금소득이 자신의 가치상승으로 인한 자산소득을 따라가지 못한 지 오래일 테니.

 

그래서 불만인 것이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하는데, 가족도 이루고 부양도 해야 하는데 그런 미래를 마치 기성세대가 틀어막고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언제 어떻게 내 미래가 바뀔 지 모르니 복권을 사야 했던 내 마음처럼 저들 역시 다른 희망과 목표를 가져야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을 꿈꾸고 그래서 공기업을 희망한다. 대기업이 아니면 아예 취업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다. 30대까지 고용률이 바닥을 기다가 30대 넘어가면 급격히 실업률이 바닥을 치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진짜 자기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 직업이라 생각지 않는다. 과연 지금 이 일을 해서 내게 미래가 있을 것인가.

 

진정 청년들이 바라는 부분일 것이다. 중산층이라도 되고 싶다. 그저 열심히 성실히만 살다 보면 중산층의 삶이라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인국공이 문제가 아니라 인국공이란 공기업이 가진 엄격함이 문제인 것이다. 자기가 먼저 그만두기 전까지 한 번 공기업에 무기계약직으로 들어가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잘릴 일이란 거의 없다. 그런 자체만으로 벌써 내 나이에도 느껴지는 안도감이란 것이 장난이 아니란 것이다. 10년 뒤를 기약할 수 있다. 오늘의 지출과 소비에도 10년 뒤까지 자신의 삶을 계량할 수 있다. 그를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최저임금도 기왕 올리려 했으면 화끈하게 올렸으면 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기왕 하는 것 확실하게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실감할 수 있게. 내가 체감할 수 있게. 그러니까 지금처럼 열심히만 살면 내게도 희망이 있다. 공무원이 아니라도. 공기업이나 대기업이 아니라도. LH사태에 청년들이 결정적으로 돌아선 이유였다. 공기업 다니는 새끼들은 이런 식으로 부당하게 이익을 챙기고 있었구나.

 

말하자면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기회의 평등이다. 그것은 그저 내가 열심히 성실하게 능력껏 살기만 하면 아무일없이 중산층의 삶은 살 수 있을 것이란 약속이다. 진정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젠더이슈는 지엽말단이다. 나이드신 어머니와 막걸리 한 잔을 하다가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대단치도 않은데 내가 이토록 여유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어째서 인국공이었던 것일까? 한 마디로 자기가 먼저 그만두기 전에는 지켜질 일자리와 급여에 대한 약속이 그렇게 젊은 세대들에게는 소중했던 것이다.

 

이소영 같은 잘 나가는 성공한 젊은 층은 이해할 수 없는 정서일 것이다. 아마 정치사회운동으로 날을 지샌 대부분 586들도 이해못할 사고일 것이다. 그러나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째서 지난 4년 동안 매주 사던 복권을 더이상 사지 않게 되었는가? 60세까지는 정년이 보장되었다. 일도 힘들고 최저임금이나 고작 받는 정도지만 정년을 맞은 뒤에도 다시 기간제로 일할 수 있을 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다. 굳이 복권이나 비트코인에 매달리지 않아도 내게 미래의 불안따위 없다. 지금이라면 그동안 굳이 기피해 온 결혼도 출산도 육아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실제 코로나 전 태국 여자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은 선배가 있었다. 이제는 자기 가족을 가져도 충분히 부양이 가능하다. 부인이 친정에 얼마를 가져다 준 들 그래봐야 내 자식의 어미이고 외가 아니던가.

 

진정 민주당이 고민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젠더이슈는 그야말로 지엽말단이다. 그마저도 결국은 현실의 불안의 연장에 있는 것이다. 10년 뒤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당장 5년 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기성세대는 모른다. 나처럼 직점 몸으로 일하며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입과 손가락만 놀려 돈을 버는 놈들은 이해하지 못할 세계인 것이다. 나의 가장 큰 긍지이자 자부심이다. 나는 일을 해서 내 노력과 실력으로 돈을 번다. 내가 얻은 답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민주당에 실망해 등을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도 다시 살펴야 할 것이다. 진정 젊은 남성들이, 국민들이 바라는 정책이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 자신의 머릿속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청년들이 느끼는 삶의 현장인 것이다. 그래서 사과한다. 공기업 정규직이란 이런 의미구나. 공기업 무기계약직이란 이런 의미였구나. 몰랐던 건 오히려 나 자신이었다. 잘릴 걱정이 없다. 정년까지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며 정해진 임금을 받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혜택이고 특권인가. 비로소 안 것이다. 현실은 눈물겹다.

박원순 시장과 관련해서 여성주의자들이 실수한 것이 그나마 여성주의에 온건하던 4050마저 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박원순이란 인물을 고작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그 삶까지 모두 부정하고 가족에게까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입혔다. 그러고서도 다시 남성들을 상대로 증오와 저주의 단어를 퍼부어댔었다. 정의당은 아예 민주화세대를 부정했고, 한겨레는 자신들의 기사를 소비해주는 독자로서도 4050의 남성들을 거부하고 있었다. 2030이야 원래 여성주의에 비판적이던 세대였지만 4050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 여성주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인가?

 

이번 선거의 패배를 계기로 누구보다 강하게 여성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과 수정을 요구하는 계층이 그래서 4050의 민주당 지지자들이란 것이다. 원래는 여성주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라도 온건하거나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여성주의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하던 이들이 여성주의를 민주당을 패배케 만드는 원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여성주의에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여성주의자들이 오세훈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 사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민주당에 투표한 대신 남성들은 완전히 민주당을 외면하고 있었다. 손익계산이 들어간다. 여성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어봐야 지지는 못 받지만 남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주의자들이라고 모든 여성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여성주의자들도 일반 여성들과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주의자가 여성을 온전히 대표하는 것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나치게 과격하고 투쟁일변도의 여성주의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염증과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반면 남성들은 투표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 아예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며, 동의도 지지도 필요없다며 무시하고 배제하던 남성들이 자신들의 힘을 보여 준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공당이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그러고보면 내가 여성주의에 대해 거리를 두게 된 계기도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오히려 여성주의자로부터 입닥치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였을 것이다. 여성주의는 남성의 동의니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성은 대상이지 절대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누구의 동의와 지지가 필요할까? 바로 윤석열이나 오세훈이나 이명박, 홍준표 같은 진짜 기득권 남성인 것이다. 그래서 기생페미니즘이다. 기생이다. 매춘부다. 권력자에 기생하여 권력자의 권력을 자신의 것처럼 행사하던 천박한 주제들인 것이다. 역사에 많다. 몸을 팔아 권력에 기생하는,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여성에게 선택지란 따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가.

 

아무튼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들이 그래서 무척 흥미롭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몰라도 지지층은 거의가 여성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주의는 민주당의 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이다. 물론 여성주의자들이 선택한 것이다. 박원순에 대한 공격을 넘어 민주당과 문재인정부, 나아가 지지자들까지 모두 싸잡으려 했다. 박원순에 우호적이던 여성들도 함께였다. 그런데도 지지를 바라는가.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확실해졌다. 원래 한국 여성주의란 친일로부터 시작했다. 군사독재시절 불의한 권력에 기대서 성장해 왔을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새삼 떠올랐다. 여성주의란 유한부인들의 유흥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대학교육도 받을 수 있고, 굳이 취업해서 돈 벌 필요도 없는, 가사노동에도 종사하지 않아 시간이 남아도는 여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과시하느라 선택했던 놀음이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과연 여성주의자들에게 남성들과 똑같이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들에 종사하는 같은 여성이란 어떤 의미이겠는가. 더러운 것들이란 이유다. 끔찍하다.

그러고보니 이명박의 악정을 보면서 자칭 진보들은 노무현 정부를 더 욕하고 있었다. 노무현이 못해서 정권을 내준 탓에 이렇게 된 것이다.

 

박근혜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이 못해서 대선에서 졌으니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저들이 당당하게 안철수를 지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안철수였으면 이겼을 텐데 문재인이 나가서 진 결과 이리 된 것이니 문재인과 민주당이 책임지라. 세월호 때도 그래서 유가족의 가슴에 쇠못을 박던 당시 새누리당보다 그를 바른 길로 이끌지 못한 민주당을 더 비난하기도 했었다. 세월호는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공격하는 명분이 아닌 민주당을 부정할 더 큰 명분이 되었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이명박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박근혜도 원래 그런 사람이다. 한나라당 새누리당도 원래 그런 정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그런 사람 그런 정당이 그러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고 따라서 그를 막지 못한 민주당에 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유시민이 예전 말했던 민주당 무능론이다. 그러므로 이명박근혜나 한나라새누리당에게는 비판을 자제하고 민주당부터 조지고 본다. 그런데 가만 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것이 있다. 조선시대 임금이 정치를 못하면 밑에 신하들이 욕을 먹었다. 임금을 제대로 이끌지 못했다.

 

비유하자면 보수정당은 항상 상수다. 민주당은 변수다. 보수정당은 원래 그런 존재들이고 원래 그래야 하는 존재들이고 원래 그럴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존재가 민주당인데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하니 항상 이 모양이 되는 것이다. 즉 보수정당의 잘못까지 모두 민주당의 잘못이 되는 신박한 논리인 것이다. 그런데 그 논리를 그대로 믿어 버린다. 민주당이 잘해야 보수정당도 잘한다. 그래서 말했잖은가. 민주당이란 보수정당이 잘하도록 만드는 도구일 뿐 민주당 스스로 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자칭 진보의 진보정책이란 그런 것이다. 원래 보수적인 보수정당을 설득하고 잘 유인해서 진보정책 비슷하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지 감히 민주당이 그런 것을 하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민주당보다 더 보수적인 정책과 법안들에도 정의당이 아주 사소한 말뿐인 동의에도 노동존중의 정당이라며 감격해 한 이유였다. 이 시대의 정통성있는 왕이고, 그런 왕을 바로 이끌 신하라면 지금 상황이야 말로 감히 반역하여 찬탈한 불편한 상황이 아니겠는가.

 

오세훈이 용산참사에 대해 참담한 발언을 했어도 비판하는 자칭 언론이 하나도 없었던 이유였다. 일단 주인을 제자리에 앉히고서 그 다음에 비판하든 견제하든 하며 바르게 이끌겠다. 잘못해도 역시 민주당 잘못이지 보수정당의 잘못은 아니다. 심지어 노동정책에 있어서조차 감히 보수정당을 비판 못하는 것이 바로 자칭 진보인 탓이다.

 

자기들이 비난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민주당은 잘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들이 오히려 훼방놓고 막아서더라도 그마저 극복하고 잘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가 잘하는 게 아니라 보수정당이 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자칭 진보와 수구정권의 관계에 대해 지금껏 해 온 말들의 내용이기도 하다.

 

오세훈이 잘못하면 그것은 오세훈의 잘못일 것인가? 국민의힘이 잘못해도 그것은 민주당이 잘못한 탓이다. 국민의힘과는 손잡아도 민주당과 손잡을 일은 없다. 충신들 나셨다. 자칭 진보의 민낯이다.

이소영이 자백했네. 언론과의 소통과 토론. 그런데 언론은 민주당과 대화할 생각이 없거든. 아예 대화할 생각이 없는 상대와 할 수 있는 소통은 한 가지 뿐이다. 굴복. 순종. 누구일까? 이토록 언론과의 소통을 필요로 할 사람은?

 

언론의 도움 없이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그러니까 언론이 원하는대로 뭐든 하겠다. 조국이든 추미애든 문재인이든 당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얼마든지 제물로 바치겠다. 언론 만세! 물론 그 언론은 조선일보겠지.

 

이소영이나 오영환 나부랭이들이 자기들끼리 생각해서 결정한 내용이 아니다. 열린우리당 시즌2가 시작되려는가. 이낙연에 기대한 인간들만 바보된 듯. 역시 이재명 밖에 없는 것인가. 실망이 크다. 인간이 추악하다.

전부터 선거 때면 당연하게 들던 생각이다. 왜 영입할까? 역사가 오랜 정당이면 각 지역마다 오래전부터 당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던 이들이 있을 것이다. 조금 오래되고 영향력도 있으면 위원장이니 뭐니 감투도 쓰고 있을 것이고, 아니더라도 당의 행사에 얼굴을 내밀며 자기 돈과 시간을 쓰던 이들일 것이다. 그들이야 말로 당의 정체성에 오래전부터 공감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해 오던 이들이 아니었겠는가.

 

사실 그런 이들 가운데 인재를 골라내는 것이 맞는 것이다. 정확히 당에 필요한 인물이라면 설사 영입이란 절차를 거쳤더라도 지구당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난 뒤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생판 살아 본 적도 없는 동네에 낙하산으로 공천받아 내려간다고 얼마나 지역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인가. 얼마나 지역민들과 밀착되어 있을 것인가. 지역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더구나 당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표창원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표창원은 처음부터 민주당과 맞는 인물이 아니었다. 조응천 또한 민주당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필요에 의해 영입된 경우였다. 그러니까 이소영이니 오영환 같은 나부랭이들이 되도 않는 짓거리를 마음대로 저지를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민주당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며, 민주당의 이념과 지향과 정책과 가치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면서, 오로지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달아보겠다고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출마한다. 오세훈도 원래는 환경변호사였다. 이소영과 같은 과다. 오영환이 소방공무원의 권익을 위해 행동한 점은 인정하더라도 원래 민주당과 같은 이념과 지향을 가진 인물이었는가. 그러니까 잡탕이 되는 것이다. 그나마 국민의힘은 오랜 보수의 정체성으로 영입한 인사들을 찍어눌러 동화시키는데 민주당은 워낙 민주적이라 그런 잡탕들이 제멋대로 날뛰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그 결과 금태섭이니 이소영이니 하는 나부랭이들인 것이다. 공당의 정치인들이 지지자를 무서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기 일쑤인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하는가. 김해영이니 박용진이니 하는 무리들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당원이란 오랜 동지들이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이고, 또한 자신이 공천받고 당선도 되게 해 주는 고맙고 무서운 사람들이다. 이소영은 지역 당원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지 못한다. 자신에게 정치헌금까지 해주던 지지자들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들인가 느끼지 못한다. 그보다 더 무섭고 더 고마운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은 아닌가. 이낙연이 바라는 것은 계파별로 나눠먹던 그 시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라면 지금 그 주위에 있는 썩은 물들에게도 자리가 생겨날 것이다. 유인태가 왜 저 지랄인가도 그런 점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의 지랄을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따로 영입이 필요없는 풀뿌리 당운영을 보다 체계화시켜야 한다. 지구당에서 오래 활동한 이들 가운데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후보를 결정한다. 될 수 있으면 지자체에서 정치를 경험한 이들이면 더 좋을 것이다. 구의원 시의원에서 시작해서 도의원도 되고 국회의원에 출마하고 나아가 지자체장이나 능력만 된다면 대통령도 노려 볼 수 있다. 아직 정치경험이 일천한 젊은 신인들을 위해서도 지자체 의원은 매우 의미있는 기회가 되어 줄 것이다.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가 몸으로 느껴보고 실력을 증명해서 더 높은 자리도 노려 볼 수 있다. 그런 게 기회 아니겠는가.

 

진정 청년들을 위한 대책이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청년들이 지구당을 통해 정치경험을 쌓고 중앙정치로 진출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정치외적인 사회적 지위나 명성이 아닌 오로지 정치인으로서 공동체에 헌신할 기회만 노려 온 청년들을 위해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준비해 준다. 한 편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청년보좌관을 일정 이상 채용하도록, 그 가운데서 기회를 줄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정치도 전문직이다. 교수 출신이, 검사나 판사 출신이 생전 처음 하는 정치에서 얼마나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중앙당에서의 계파보다 지구당에서 풀뿌리 민심을 더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원래 속했던 지구당에서 당원들이 무엇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가 깊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민심들이 하나로 모이며 하나의 정당이 된다. 내가 맨날 쌍욕에 증오의 배설이나 하며 사는 인간은 아니란 것이다. 그런 놈들이 있으니 쌍욕을 하는 것이지 나도 생각이란 걸 하며 산다. 먹고 사느라 대부분은 아무 생각 없을 때가 많지만.

 

최고위원을 중앙위원회에서 선출한다고? 누구의 수작인지 알겠다. 지금 그럴 수 있는 인물은 한 명 뿐이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니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바뀌기 싫은 것 뿐이다. 오래전 해왔던 방식 그대로, 자기가 알던 사람들이 조언해주는 내용 그대로, 그리고 또다시 등장하는 이름 양정철! 지난 총선 끝나고 느낀 위화감이 이렇게 현실이 되는가. 능력을 넘어서는 야심은 항상 독이 되는 것이다. 위험하다. 지금 민주당은 아주 위험하다. 

만화 '창천항로'를 보면 주인공 조조의 입을 빌어 원소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패배를 패배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 이 평가는 동시대의 인물 조조와 유비에 더 걸맞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조조는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이 있었기에 어지간한 패배에도 바로 수습하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확고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적벽에서 수 만의 병력을 잃었음에도 당대에 천하를 평정하는 목표만 수정했을 뿐 조조의 패권 자체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었다.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의지할 땅 하나 없이 천하를 떠돌면서도 처음 품었던 큰 뜻을 포기하지 않은 유비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여포의 배신으로 서주를 잃고, 조조에게 패하며 서주에서 여남에서 신야에서 계속 쫓겨 도망치면서도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넘쳐나고 있었다. 굳이 관우, 장비며 손건, 미축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싸움에서 크게 지고 흩어졌다가도 어느새 다시 유비를 중심으로 모여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이들이 항상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위연과 같은 이들도 있었다. 어째서? 유비에게는 대의가 있었으니까. 혼란한 천하를 바로세우겠다는 큰 뜻이 있었고 그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랬기에 유비에게는 패배가 패배가 아니었고,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역시 실패가 실패가 아니었다. 언제고 기회만 찾아온다면 유비는 반드시 자신들이 헌신하고 희생한 만큼 그 고귀한 뜻을 이루어 줄 것이다.

 

그래서 유방이 그렇게 항우에게 패하고 쫓겨다녔음에도 그를 따르는 이들은 오히려 더 늘어만 갔던 것이었다. 수도 없이 패배하고 비참하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어느새 다시 일어나 항우와 맞섰던 유방과 한 번의 패배에 모든 것을 잃은 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항우의 선택에서 초한쟁패의 결과가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이다. 진정 자신의 길에 한 점 의혹이 없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패배를 패배로 여겨서는 안된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살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견디며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칭기즈칸이 한 번 싸움에 졌다고 모든 걸 포기했다면 과연 몽골제국의 신화가 가능했겠는가? 바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버티고 떠미는 것이 '대의'란 존재인 것이다.

 

어쩌면 보수정당과 민주당의 가장 큰 차이라 할 것이다. 작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내줬을 때와 이번 보궐선거에서 1년짜리 시장 두 자리 내줬을 때 어느 쪽의 충격이 더 컸을 것인가. 어떤 패배가 더 치명적이었을 것인가? 그런데 당시 큰 패배에도 국민의힘이 지금 민주당처럼 혼란스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을 내주었을 때도 한나라당은 오히려 당당했었다. 2017년 박근혜가 탄핵되었을 당시에도 당시 새누리당은 반성따위 하지 않았었다. 자기들이 진짜 옳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언제고 국민들이 자신들을 선택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작년 총선이 끝나고 국민의힘은 더 오만해지고 당당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180석을 얻고서둬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확신이 없다. 자신들이 지금 목표로 하고 있는 그것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의 지금까지 해 온 것들에 비판적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자기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검찰개혁을 왜 하는가? 언론개혁을 왜 해야 하는가? 사법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성주의 정책들은 어떻게 펼쳐야 하는가? 확신이 있다면 패배에도 전술은 바꿀지언정 전략까지 바꿔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지향과 정체성까지 부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 번 졌다고 아예 지금까지 해 온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배가를 생각부터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정 옳다면 국민들은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선택해 줄 것이다.

 

양성평등이라는 가치가 진정 옳고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에 대해 젊은 남성들도 동의해 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다면 전술은 바꾸되 전략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해 온 가치와 정의와 지향이 진정 옳았다면 방법론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방향이 옳았음을 국민들이 알아 줄 것을 믿고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라. 초선 나부랭이들이 벌써부터 민주당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며 나서는 것을. 대통령의 목을 베어 항복할 기회만 노리는 중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너무 기시감이 드는 것이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의 행동이 그들만의 독단은 아닐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다. 열린우리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면 안다. 문재인이 대표가 되기 전 민주당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익숙할 것이다. 이낙연의 주위를 채우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들은 적 있었다. 씨발 다시 민주당이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이번 전당대회가 중요하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최고위원 선출에 관련해 계속해서 발언하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당을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놈들이 있다. 그러면 이익을 보는 놈들일 것이다.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오히려 패배에도 민주당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하는 때인 것이다. 패잔병들이여 모이라고. 민주당을 도우려는 이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라고. 서주에서 도망쳤던 유비가 원소의 명을 받고 여남으로 오자 그동안 흩어졌던 관우와 장비까지 모두 모이고 있었다. 한 번 졌으니 이제라도 조조를 따라갈까? 그러면 관우는 왜 굳이 조조를 벗어나 유비에게로 갔던 것일까? 

 

민주당이라는 정체성보다 그저 국회의원 한 자리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영입되어 공천까지 받은 정치신인의 적나라한 현실인 것이다. 아마 국민의힘에서 제안이 왔어도 이소영이나 오영환이나 장경태나 망설임없이 그리로 향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쪽이 더 정체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민주당이 한 번 패배했으므로 민주당의 방식은 틀렸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당 옮기라니까. 국민도 아닌 지지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에 왜 붙어있는 것인가.

 

유럽이 아예 나치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때도 처칠은 이제 남은 것은 피와 땀과 눈물과 헌신 뿐이라며 오히려 전의를 드높이고 있었다. 나치독일의 공세에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까지 함락당할 상황에서 스탈린은 항복보다 독일에 이길 방법만을 찾고 있었다. 한두 번의 패배야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투에서 졌어도 전쟁에서 이기면 이기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기억하라. 해 줄 말은 이 한 마디 뿐이다. 어째서 민주당인가? 민주당이어야 하는가? 그 답을 스스로 들려줄 수 없다면 민주당이 굳이 존재할 이유조차 없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의 뒤에 숨은 그놈들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느낀다기보다는 안다. 어째서 2030은 지금의 민주당에 등을 돌렸는가? 나도 30대 때 열린우리당을 아예 상종 못할 놈들이라며 외면한 적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아니 이미 상당부분 그때로 돌아가 있는 것을 느낀다. 달라진 것이라면 전보다 그렇게 적극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은 인내심만 강해진 나 자신 뿐이다. 패배가 아닌 바로 그 점이 위기인 것이다. 심각해야 한다.

세상에는 남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자칭 진보들은, 어쩌면 민주당 다수도 잊고 있는지 모르지만 세상에는 성별과 더불어 신분과 계급이라는 게 있었다. 대부분 약소한 개인들은 그런 구조의 말단에 존재하게 된다. 이를테면 중소기업 사장에게 갑질하는 대기업 직원이란 그런 말단의 일부인 셈이다.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의 갑을관계가 워낙 강고하니 개인들조차 그 안에서 그 구조의 일부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과연 편의점 시급제 직원은 대기업 임원보다 사회적으로 우월한 존재인가? 겨우 월세나 내며 사는 독신자 50대 남성은 월세를 받으며 사는 30대 젊은 여성보다 경제적으로 월등한 위치에 있는가? 민주당의 여성주의 정책이 가진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이것이었다. 정확히 주류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가진 가장 큰 모순이다. 그런 현실의 차이를 무시하며 오로지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차이만 강조하며 강요한다. 당장 하루를 버티기도 힘든 젊은 남성들에게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내와 양보만을 강요한다. 내가 당장 죽을 지경이란 것이다.

 

물류센터에서 일해보면 더 확실히 느끼게 된다. 어차피 최저시급이다. 그런데 하는 일이 다르다. 여성이라고 더 쉽고 더 편한 일을 더 짧은 시간만 하게 된다. 물론 그 결과 받는 돈은 남성이 더 많다. 밤늦게 일하고 더 많은 시간을 일하니 수당도 더 붙어서 급여차이는 상당한 편이다. 그래서 과연 남성이 여성보다 우대받는가? 남성들과 똑같이 힘든 일을 하는 여성들은 그래서 같은 여성들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다. 자기는 그렇게 힘들게 일하며 돈을 버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편하게 일하며 여전히 적지 않은 받아가고 있다. 그만큼 남성들은 그 편한 일을 할 기회를 잃게 된다.

 

남성들도 더 편해지고 싶다. 더 안전해지고 싶다. 더 수월한 일을 하며 더 여유롭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그런 일들이 독점적으로 돌아간다. 예전에는 그래도 되었다. 그만큼 남성과 여성의 격차가 컸으니. 어렵게 사는 동생을 도와주는데 내가 도와준 덕에 내 재산의 한 30%정도는 되는 수준이 되었다면 그래도 여전히 어렵다고 더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사실 30%만 되어도 굉장히 형제간에 정이 깊은 경우이고 그 이하에서도 괜히 내가 손해보는 것 같아 본전생각이 나는 것이 사람의 심리란 것이다. 하물며 현실에 보면 나보다 더 잘살고 잘나가는 여성들도 많은데 어디까지 자신은 여성들에 양보하고 인내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불편하게 힘들고 위험한 일만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도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참으라 한다면 어디까지 남성들은 참아야 하는 것인가.

 

정히 여성주의 정책을 포기하지 못하겠으면 그런 남성들의 의견을 듣기라도 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모여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듣고 공감대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여성의 일방적인 입장만을 강요했고 젊은 남성들의 불만은 쌓여만 갔다. 물론 여성들에 대한 불만만은 아니다. 이미 사회의 주류가 되어 있는 4,50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다. 그러면 정당차원에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럼에도 그러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그러는 것이 당연하다. 최소한 설득할 수 있는 결과라도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어떠했는가. 사실 박원순 시장 논란은 여성보다 남성들 사이에서 더 치명적이었다. 평소 여성주의자를 자처했던 박원순 시장이기 때문이다. 자기들도 지키지 못하면서. 그래서 위기인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옳기에 여성주의를 강요하고 강제할 것인가. 아니면 이쯤에서 한 번 숨을 고르고 넘어갈 것인가. 그래서 저 씨발년들이 조국을 걸고넘어지는 것이겠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 분명해졌다. 여성주의자들은 반여성주의 정책을 펴더라도 철저히 보수정당의 편에 설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잡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주의 정책을 펴도 반대하는 여성주의자들인가? 여성주의 정책만 포기하면 다시 지지해 줄 지 모르는 젊은 남성들일 것인가? 메시지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를 통해 나와야 한다. 아니면 박주민 정도 상징성이 있는 인물이거나. 고민할 시점이다. 과연 모든 남성은 여성보다 강하고 우월한가. 좆까라는 소리다.

 

현장에서 더욱 느끼게 되는 사실이다. 남성과 다름없이 힘든 일을 하는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쉽고 편하고 안전한 일만 하려는 같은 여성들을 더 혐오하고 증오한다. 남성들은 그래도 남성이라는 이유로 할 말도 못하고 그냥 참고만 있는데 여성들은 그런 여성들을 향해 자기가 하고픈 말을 다 쏟아낸다. 그 여성들이 틀려서? 그게 바로 사회의 구조란 것이다. 하긴 류호정이 보좌관 자른 과정을 보면 자칭 여성주의자들도 모르는 것은 아닌 모양이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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