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창천항로'를 보면 주인공 조조의 입을 빌어 원소라는 캐릭터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었다.

 

"패배를 패배로 여기지 않는다."

 

사실 이 평가는 동시대의 인물 조조와 유비에 더 걸맞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조조는 이미 이루어 놓은 것이 있었기에 어지간한 패배에도 바로 수습하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 확고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적벽에서 수 만의 병력을 잃었음에도 당대에 천하를 평정하는 목표만 수정했을 뿐 조조의 패권 자체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었다.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의지할 땅 하나 없이 천하를 떠돌면서도 처음 품었던 큰 뜻을 포기하지 않은 유비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가.

 

여포의 배신으로 서주를 잃고, 조조에게 패하며 서주에서 여남에서 신야에서 계속 쫓겨 도망치면서도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이 넘쳐나고 있었다. 굳이 관우, 장비며 손건, 미축을 말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싸움에서 크게 지고 흩어졌다가도 어느새 다시 유비를 중심으로 모여 하나의 세력을 이루는 이들이 항상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위연과 같은 이들도 있었다. 어째서? 유비에게는 대의가 있었으니까. 혼란한 천하를 바로세우겠다는 큰 뜻이 있었고 그를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다. 그랬기에 유비에게는 패배가 패배가 아니었고,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역시 실패가 실패가 아니었다. 언제고 기회만 찾아온다면 유비는 반드시 자신들이 헌신하고 희생한 만큼 그 고귀한 뜻을 이루어 줄 것이다.

 

그래서 유방이 그렇게 항우에게 패하고 쫓겨다녔음에도 그를 따르는 이들은 오히려 더 늘어만 갔던 것이었다. 수도 없이 패배하고 비참하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음에도 어느새 다시 일어나 항우와 맞섰던 유방과 한 번의 패배에 모든 것을 잃은 양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항우의 선택에서 초한쟁패의 결과가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이다. 진정 자신의 길에 한 점 의혹이 없다면 죽는 그 순간까지 패배를 패배로 여겨서는 안된다. 뜻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살아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견디며 다시 일어날 수 있어야 한다. 칭기즈칸이 한 번 싸움에 졌다고 모든 걸 포기했다면 과연 몽골제국의 신화가 가능했겠는가? 바로 그렇게까지 할 수 있도록 사람을 버티고 떠미는 것이 '대의'란 존재인 것이다.

 

어쩌면 보수정당과 민주당의 가장 큰 차이라 할 것이다. 작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180석을 내줬을 때와 이번 보궐선거에서 1년짜리 시장 두 자리 내줬을 때 어느 쪽의 충격이 더 컸을 것인가. 어떤 패배가 더 치명적이었을 것인가? 그런데 당시 큰 패배에도 국민의힘이 지금 민주당처럼 혼란스런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2004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과반을 내주었을 때도 한나라당은 오히려 당당했었다. 2017년 박근혜가 탄핵되었을 당시에도 당시 새누리당은 반성따위 하지 않았었다. 자기들이 진짜 옳다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언제고 국민들이 자신들을 선택할 것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작년 총선이 끝나고 국민의힘은 더 오만해지고 당당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180석을 얻고서둬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확신이 없다. 자신들이 지금 목표로 하고 있는 그것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는 것이다. 일단 국민의힘의 지금까지 해 온 것들에 비판적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자기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다. 검찰개혁을 왜 하는가? 언론개혁을 왜 해야 하는가? 사법개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성주의 정책들은 어떻게 펼쳐야 하는가? 확신이 있다면 패배에도 전술은 바꿀지언정 전략까지 바꿔서는 안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지향과 정체성까지 부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한 번 졌다고 아예 지금까지 해 온 자신들의 모든 것을 부정하며 배가를 생각부터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정 옳다면 국민들은 자신들을 다시 한 번 선택해 줄 것이다.

 

양성평등이라는 가치가 진정 옳고 공동체를 위하는 것이라면 그 결과에 대해 젊은 남성들도 동의해 줄 것이다. 그런 확신이 있다면 전술은 바꾸되 전략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해 온 가치와 정의와 지향이 진정 옳았다면 방법론에서 문제가 있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방향이 옳았음을 국민들이 알아 줄 것을 믿고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보라. 초선 나부랭이들이 벌써부터 민주당의 존재와 가치를 부정하며 나서는 것을. 대통령의 목을 베어 항복할 기회만 노리는 중이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런데 너무 기시감이 드는 것이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의 행동이 그들만의 독단은 아닐 것이라 확신하는 이유다. 열린우리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면 안다. 문재인이 대표가 되기 전 민주당을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익숙할 것이다. 이낙연의 주위를 채우고 있는 이들의 이름을 들은 적 있었다. 씨발 다시 민주당이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이번 전당대회가 중요하다. 민주당 주요 인사들이 최고위원 선출에 관련해 계속해서 발언하는 이유일 것이다. 민주당을 이전으로 되돌리려는 놈들이 있다. 그러면 이익을 보는 놈들일 것이다. 누구인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오히려 패배에도 민주당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하는 때인 것이다. 패잔병들이여 모이라고. 민주당을 도우려는 이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라고. 서주에서 도망쳤던 유비가 원소의 명을 받고 여남으로 오자 그동안 흩어졌던 관우와 장비까지 모두 모이고 있었다. 한 번 졌으니 이제라도 조조를 따라갈까? 그러면 관우는 왜 굳이 조조를 벗어나 유비에게로 갔던 것일까? 

 

민주당이라는 정체성보다 그저 국회의원 한 자리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영입되어 공천까지 받은 정치신인의 적나라한 현실인 것이다. 아마 국민의힘에서 제안이 왔어도 이소영이나 오영환이나 장경태나 망설임없이 그리로 향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쪽이 더 정체성에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민주당이 한 번 패배했으므로 민주당의 방식은 틀렸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당 옮기라니까. 국민도 아닌 지지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에 왜 붙어있는 것인가.

 

유럽이 아예 나치 독일의 손아귀에 떨어졌을 때도 처칠은 이제 남은 것은 피와 땀과 눈물과 헌신 뿐이라며 오히려 전의를 드높이고 있었다. 나치독일의 공세에 모스크바와 스탈린그라드까지 함락당할 상황에서 스탈린은 항복보다 독일에 이길 방법만을 찾고 있었다. 한두 번의 패배야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전투에서 졌어도 전쟁에서 이기면 이기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을 기억하라. 해 줄 말은 이 한 마디 뿐이다. 어째서 민주당인가? 민주당이어야 하는가? 그 답을 스스로 들려줄 수 없다면 민주당이 굳이 존재할 이유조차 없다.

 

이소영 나부랭이들의 뒤에 숨은 그놈들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느낀다기보다는 안다. 어째서 2030은 지금의 민주당에 등을 돌렸는가? 나도 30대 때 열린우리당을 아예 상종 못할 놈들이라며 외면한 적이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려는 것인가? 아니 이미 상당부분 그때로 돌아가 있는 것을 느낀다. 달라진 것이라면 전보다 그렇게 적극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은 인내심만 강해진 나 자신 뿐이다. 패배가 아닌 바로 그 점이 위기인 것이다. 심각해야 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