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과 관련해서 여성주의자들이 실수한 것이 그나마 여성주의에 온건하던 4050마저 돌아서게 만든 것이다. 박원순이란 인물을 고작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그 삶까지 모두 부정하고 가족에게까지 어쩌면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상처를 입혔다. 그러고서도 다시 남성들을 상대로 증오와 저주의 단어를 퍼부어댔었다. 정의당은 아예 민주화세대를 부정했고, 한겨레는 자신들의 기사를 소비해주는 독자로서도 4050의 남성들을 거부하고 있었다. 2030이야 원래 여성주의에 비판적이던 세대였지만 4050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지금 여성주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인가?

 

이번 선거의 패배를 계기로 누구보다 강하게 여성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과 수정을 요구하는 계층이 그래서 4050의 민주당 지지자들이란 것이다. 원래는 여성주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라도 온건하거나 아니면 더 적극적으로 여성주의 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하던 이들이 여성주의를 민주당을 패배케 만드는 원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여성주의에 아예 관심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여성주의자들이 오세훈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낸 사실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민주당에 투표한 대신 남성들은 완전히 민주당을 외면하고 있었다. 손익계산이 들어간다. 여성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어봐야 지지는 못 받지만 남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외면당한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여성주의자들이라고 모든 여성의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어느새 여성주의자들도 일반 여성들과 분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주의자가 여성을 온전히 대표하는 것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나치게 과격하고 투쟁일변도의 여성주의에 대해 여성 스스로가 염증과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반면 남성들은 투표라는 수단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 아예 대화의 상대가 아니라며, 동의도 지지도 필요없다며 무시하고 배제하던 남성들이 자신들의 힘을 보여 준 것이다. 이 상황에서 공당이라면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

 

그러고보면 내가 여성주의에 대해 거리를 두게 된 계기도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오히려 여성주의자로부터 입닥치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였을 것이다. 여성주의는 남성의 동의니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남성은 대상이지 절대 주체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누구의 동의와 지지가 필요할까? 바로 윤석열이나 오세훈이나 이명박, 홍준표 같은 진짜 기득권 남성인 것이다. 그래서 기생페미니즘이다. 기생이다. 매춘부다. 권력자에 기생하여 권력자의 권력을 자신의 것처럼 행사하던 천박한 주제들인 것이다. 역사에 많다. 몸을 팔아 권력에 기생하는,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게밖에 여성에게 선택지란 따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가.

 

아무튼 민주당 지지층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논의들이 그래서 무척 흥미롭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몰라도 지지층은 거의가 여성주의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주의는 민주당의 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이다. 물론 여성주의자들이 선택한 것이다. 박원순에 대한 공격을 넘어 민주당과 문재인정부, 나아가 지지자들까지 모두 싸잡으려 했다. 박원순에 우호적이던 여성들도 함께였다. 그런데도 지지를 바라는가. 어차피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확실해졌다. 원래 한국 여성주의란 친일로부터 시작했다. 군사독재시절 불의한 권력에 기대서 성장해 왔을 것이다. 잠시 잊고 있었는데 새삼 떠올랐다. 여성주의란 유한부인들의 유흥에서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대학교육도 받을 수 있고, 굳이 취업해서 돈 벌 필요도 없는, 가사노동에도 종사하지 않아 시간이 남아도는 여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와 권력을 과시하느라 선택했던 놀음이었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과연 여성주의자들에게 남성들과 똑같이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들에 종사하는 같은 여성이란 어떤 의미이겠는가. 더러운 것들이란 이유다. 끔찍하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