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버뮤다 삼각지대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때 꽤 유명했었다. 신비한 실종과 사고가 빈번한 곳이라고. 그래서 많은 SF나 판타지에서 외계인이나 초고대문명, 혹은 이세계로 이동하는 통로가 있으면 거의 여기로 설정되고는 했었다. 알 수 없는 존재나 작용이 이 지역을 오가는 배나 비행기 등을 일부러 공격하거나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다른 지역도 대충 삼각형 그려놓고 그 안에서 일어난 사고들을 찾아봤더니 버뮤다 삼각지대와 다르지 않더라.

 

원래 미신이라는 게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시합 도중 속옷을 갈아입었더니 졌더라. 그래서 시합과 속옷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돼지꿈을 꾸었더니 복권에 당첨되었더라. 역시 인과관계가 없다. 조상묘를 바꿔 썼더니 벼슬이 높아졌다더라. 이름을 바꿨더니 좋은 취직자리가 생겼다더라.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마따나, 기모란 교수도 같은 말을 하고 있다. 하루에만도 수 백 명의 사람이 여러 이유로 죽어나가는데 죽은 시기가 공교롭게 비슷하다고 백신이 원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외할아버지가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전날 저녁까지 멀쩡하다가 다음날 아침에 깨어 보니 이미 돌아가신 뒤셨다. 친할머니 역시 밭일을 하다 말고 피곤하다고 돌아오셔서는 그냥 누워서 주무시듯 세상을 떠나셨다. 사람의 목숨이란 게 그런 것이다. 언제 어느때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모른다. 심장이나 뇌 쪽에 아주 작은 이상만 있어도 그로 인해 바로 숨이 끊어지거나 위독한 상태가 되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당장 최근 유명을 달리한 택배기사 분들도 워낙 택배기사들 고생하는 걸 아니까 과로사라 부르는 것이지 앞뒤맥락 다 빼고 보면 역시나 어제까지 멀쩡히 배달 잘 하다가 오늘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직전에 백신이라도 맞았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20대 건장한 청년마저 일마치고 돌아와서 목욕하던 도중 세상을 떠나는 일도 일어나고 하는 것이다. 매시간 매분 건강상태를 꼼꼼히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아무 조짐 없이 예고 없이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고 그 원인을 바로 특정할 수 있는 것인가. 오죽하면 돌연사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있다. 어느날 갑자기 아무일없이 쓰러져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그만큼 현실에서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쓰러지기 직전 밥을 먹었으면 밥이 문제이고, 친구와 전화를 했으면 전화가 문제며, 숨을 쉬었더니 숨쉰 게 원인이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인가. 그러니까 언론에서도 '백신 접종 후'라는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비겁하다. 백신이 원인이라고 밝혀진 것도 아닌데 백신을 앞에 붙임으로써 백신이 원인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원인은 하나다. 대한민국을 코로나로부터 지켜내고 있는 질병관리청을 무력화시키자.

 

이번 국정감사에서도 노골적으로 그 의도가 드러난 바 있었다.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정은경 청장을 집중해서 공격하고 있었다. 올 초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이래로 거의 한결같았었다. 어떻게든 가짜뉴스를 만들어내어 당국의 방역을 훼방놓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야 한다. 더 많은 확진자들을 내어 국민의 건강을 위험으로 내몰므로써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현정부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정권교체를 이루어야 한다. 어제 국정감사에 대한 보도에서 알 수 있듯 언론에게 현정부는 악 그 자체다. 윤석열을 추종하는 이유도 현정부의 악을 응징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없이 어떻게 청와대가 저지르는 부정과 범죄들을 찾아내고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인가. 한겨레 기자가 직접 방송에 나와서 했던 말이다. 도대체 저들은 어떻게 청와대으 부정과 범죄들에 대해 저토록 확신을 가지는 것일까.

 

그러나 청와대는 악이기에 그 악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다소간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한겨레든 정의당이든 차마 국민의힘이 강조해서 말하지 못하는 광화문집회에 대해 허용해야 한다 강하게 주장하고 나서는 것이다. 코로나19를 더 확산시켜야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으니까.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감염되고 수 만의 사람이 죽어나가도 그는 대의를 위한 숭고한 희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점을 찍는다. 선을 잇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난 사건사고가 매우 빈번하며 신비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지금 독감 백신 논란은 언론이 만들어낸 방역당국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버뮤다 삼각지대인 것이다.

 

반드시 죽어야 할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다. 죽을 것 같은 사람이 죽는 것도 아니다.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일 것인데. 더구나 노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무일 없이 일상을 보내다가도 조용히 잠들 듯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죽음을 부러워하며 자기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하는 것이다. 기왕에 죽을 것이면 아프지 않게 오래 앓지 않으며 한순간에 잠들 듯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 

 

더불어 모든 의약품에는 부작용이란 게 있다. 약효가 좋은 만큼 더욱 그 부작용도 큰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째서 그런 부작용이 있는데 그 약품을 사용하는 것인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만큼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1300만명의 접종자 가운데 몇 명이나 백신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률로 따지면 0 다음에 0을 다시 몇 개나 붙여야 하는 가능성인 것이다. 이렇게 한꺼번에 다수의 사람이 백신을 접종한 경우도 드물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불과 얼마전까지 상온에 노출되었던 백신 가지고 지랄을 하더니만 결국 아무일 없는 것으로 밝혀지니 아무거라도 트집거리를 찾아서 기사를 쏟아낸다. 저놈들은 지금 한국이 유럽이나 미국처럼 코로나19로 패닉에 빠지지 않은 게 불만인 것이다. 그러니까 뭐라도 꺼리를 찾아서 질병관리청을 공격해야 한다. 냉정하게 이성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을 감정과 본능으로 선동하려 한다. 언론은 개혁이 아닌 박멸의 대상이라는 이유다. 좋은 기자는 다 죽었다.

한 마디로 다른 가능성도 있는데 왜 그것까지 살피지 않았느냐? 다른 계산법도 있었는데 그 계산법을 사용하지 않았느냐? 왜 늬들 멋대로 다르게 판단했는가?

 

그래서 고발도 없었던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는 담당자의 재량이다. 난 또 뭔 내용인가 했었네. 대충 내용을 보니 자기 재량으로 결정한 건 좋은데 다른 방법도 있지 않았는가는 의문제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르게 판단할 수 있었는데 한 가지로만 판단했다. 그런데 그 여러 가능성 가운데 선택하는 게 바로 재량이라는 것이다.

 

경제성이라는 게 그래서 난해한 것이다. 그래서 아마 감사원도 그 경제성을 파고 든 것일 테고. 어떤 기준으로 어떤 조건에서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론이 전혀 상이하게 나올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산자부도 곤란해했던 것이겠지.

 

내용을 보니 별 것 아닌데 문제삼으려는 놈들에게는 별 것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그런 결정을 내렸는데 왜 다른 대안을 살피지 않았는가. 굳이 그렇게까지 안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라고 산자부가 있는 건데? 웃기는 것들이다.

벌써 한 20년은 된 것 같다. 당시 자료에서도 이미 전세계에 존재하는 현물가치보다 화폐가치가 세 배는 더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뭔 말이냐면 지금 세계에서 유통되는 돈을 다 모아서 세계를 사면 그 두 배 만큼의 돈이 남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면 그 넘쳐나는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니 그래서 남아도는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서 2008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시작된 것이었다. 돈은 넘쳐나는데 정작 그 돈을 투자할만한 곳이 없다 보니 아무데나 그냥 돈 꼬라박다 일어난 사단인 것이다. 그나마 당시까지는 미국 혼자서 돈을 풀었지 지금은 중국도 같이 돈을 풀고 있는 중이다. 거의 미친 듯 사방에 돈을 뿌리며 세계의 현물가치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그 과정에서 세계의 부동산 가격도 미친 듯 오르고 있는 것이고.

 

부동산은 거의 금 수준의 안정자산으로 여겨진다. 부동산을 들고 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감추고 배째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동산은 항상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더구나 인구가 느는 만큼 부동산의 수요도 계속 늘게 될 것이기에 가치는 항구적으로 우상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자본이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로 여기는 대상이다. 한 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면 금융권으로부터 대출받기도 한결 용이해진다. 돈은 넘쳐나고 투자할 곳은 마땅치 않고 여기저기 돈을 뿌려대는 놈들이 생겨나고, 그러면 결과는 어떻게 될까?

 

정확히 현정부가 들어서서 부동산 가격이 지금 수준으로 오른 것이 아니란 것이다. 그나마 현정부가 여러 정책들로 억제하고 있으니 이나마 오른 것으로 끝난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다른 나라 사정을 보라. 지금 전세계적으로 부동산 폭등은 일상이 되어 있는 상태다. 집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일은 그래서 의외로 매우 흔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지금 정부에서 부동산 규제를 푼다면 집값이 내려갈까? 재개발만 허락해주면 집값이 내려갈 것을 확신하는가? 재개발을 왜 하는가? 돈 벌려고 하는 것이다. 집값 올려서 돈 벌어보겠다고 재개발에 돈 꼬라박는 것이다. 살 집도 아닌데 그저 재개발만 바라보고 집을 산 사람들에게 재개발만 하게 해주면 집값 내려주겠냐 한 번 물어보라. 올리면 올렸지 절대 내리지 않는다. 언론이 하는 대표적인 거짓말이다.

 

사실 집값을 잡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다. 정부가 가진 땅마다 모두 임대아파트를 짓는 것이다. 임대아파트만 수 십만 세대를 지어 싼 값에 공급하는 것이다. 역시 언론이 가장 앞장서서 반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주장이 모순된다는 것이고. 임대아파트를 싼 값에 공급할 수 있게 되면 당연히 임대아파트를 기준으로 주변의 아파트가격도 내려가게 된다. 그래서 한 편으로 인근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네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임대아파트가 싼 값에 나왔으니 주변 아파트와 가격비교를 당연히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가격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공평하게 모든 지역에 골고루 아주 값싸게 임대아파트를 지을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집값을 잡으려면 언론들이 먼저 앞장서서 주장해야 하는 정책인 것이다. 집도 없는 자칭 청년세대가 강력하게 지지해야 하는 정책인 것이다. 웃기는 게 집 없는 자칭 청년들이 임대아파트는 재산권 침해라고 끔찍하게 싫어한다. 임대아파트 강제로 짓게하는 것도 거부감을 갖는다. 돈 있는 사람 돈 벌게 해 주라. 도대체 무슨 정의이고 공정인 것일까. 집값을 잡으려면 공급을 늘려야 하는데, 그 공급은 이미 집가진 사람들의 이익을 늘려주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도 여러 채 가진 사람들을. 부동산 정책일까? 아니면 돈 퍼주는 정책일까?

 

아무튼 처음부터 전제가 잘못된 문제였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왜 오르는가였다. 정확히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문제였었다. 그러면 현정부가 아니었으면 부동산가격은 안 올랐을까? 그래서 언론이 무당이라는 것이다. 지금 세계경제의 구조를 보면, 한국경제의 구조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걸 누구나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는 이유는 하나다. 결국 다주택자들 돈 좀 벌게 해달라. 그것이 공정이고 정의다.

 

김현미가 멍청해서 조금 삽질을 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아파트 가격이 어떻게든 추가적인 상승은 억제되고 있는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그만큼 한국 시장에도 돈은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나오는 말이 규제지역을 피해 투기하는 놈들 이야기 아니던가. 그만큼 돈이 많으니까.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근본적인 이유다.

MBC 이보경기자는 굳이 분류하자면 김세의나 이현경보다는 성재호나 정연욱 류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냥 진중권, 홍세화, 임미리, 정의당 류와 하나로 묶으면 되겠다. 일단 정부를 까자. 정부를 까는게 정의고 사명이다.

 

몇 번이나 말했다. 사실 나는 KBS 파업할 때 아예 관심도 가지지 않았었다. 저 새끼들이 바뀔 리 없다. KBS가 바뀌는 일은 KBS가 문닫기 전에는 절대 없다. 내 예상대로였다. KBS 정상화 돕겠다고 거리로 나갔던 사람들이 그래서 얼마나 불쌍하던지. 지금 그 사람들도 자신들의 행위를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그때는 내가 오히려 더 욕을 먹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파업이 끝나고 아마 성재호였을 텐데 일성이 재미있었다. 문재인 정부를 까서 파업의 정당성을 입증하겠다.

 

언론이면 당연히 권력을 까야 하는 것이다. 지식인이면 당연히 권력과 불편한 관계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깐다. 그래서 욕한다. 비유하자면 타진요로 인해 타블로 욕하는 게 아예 유행처럼 되었을 때 너도나도 타블로 욕한다고 오버하느라 곧잘 선을 넘던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뭐든 이슈가 터질 때마다 너도나도 특정한 대상을 비난하면 나도 따라서 더 세게 비난해야 한다는 강박에 무리수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내가 기자인데. 그래도 내가 지식인일 텐데. 그러면 어떻게든 남들 알아보게 권력도 비판하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무도 안 알아주니까. 그래서 결정적인 속내까지 드러내고 마는 것이다. 문재인을 죽여야겠다. 사실 모두가 그러고 싶어도 차마 입밖에 내지 못했던 말일 것이다. 그래서 총대를 맨다. 임미리가 민주당 빼고 투표하자 했으니 자기는 노무현처럼 문재인을 죽여야 한다 말하겠다. 물리적 어쩌고 하는 수식은 의미가 없다. 기호적으로 거의 아무 의미없는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 죽여야 하는데 너무 나갔다 싶으니 괜한 변명으로 할 말 만 만들어 놓은 것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에는 아예 애꾸라는 표현까지 사용해서 조국 전장관을 모욕했네.

 

기자는 엘리트다. 검찰과 동급이다. 검찰이 옳다면 옳다. 검찰이 정의라면 정의다. 기자가 그런 검찰과 함께 하고 있다. 성재호나 정연욱 나부랭이들이 주장하던 KBS의 정상화도 그런 것 아니었던가. 검찰을 위해서 인터뷰도 왜곡하고, 자진해서 오보도 내주고. 그러니까 9시뉴스 앵커자리도 꿰찼겠지. 그냥 준 건 아닐 것이다. 아님 말고.

 

이보경 뿐만 아니라 아마 MBC 내부에서 아나운서 하나도 비슷하게 떠들다 잠깐 이슈가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MBC는 기자 개인의 일탈이지만 KBS는 아예 조직적이다. 한동훈에게는 바로 즉시 다음날 사과하고 김경록PB는 오히려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중이다. '댓읽기'는 요즘 아예 KBS의 보도에 대해 반성도 사과도 않고 있더라. 구독자들이 우쭈쭈해주니 그냥 뭉개고 지나가도 상관없다 여기는 거겠지. SBS와 JTBC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이보경이 특별한가? MBC가 이상한 것이다. 아직까지는 조직적인 어떤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 역시 MBC에서 지금 위기를 타개할 오보가 나오는 것일까? 사람은 이상한데 조직이 멀쩡하다는 게 말이 되지 않으니.

 

이상할 것 없는 언론의 정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회에서 엘리트인 연 하는 놈들의 본모습이기도 할 것이고. 도대체 고소할 놈들이 왜 이리 많은 것이냐? 뿌리까지 썩어 있다. 망한 언론이 좋은 언론이다. 새삼 확인한다.

언론에 대한 기대야 오래전에 접었으니 그냥 그러려니 한다. 오히려 정도가 더 심한 사안임에도 나경원 하는 소리 다 받아쓰며 변명까지 대신해주는 모습을 보면 저놈들이 주장하던 공정과 정의라는 게 대체 뭐였을가? 역시나 나경원에 대해서는 전혀 분노하지 않는 자칭 청년들이며 지식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에 다시 없을 악인이고 부패한 인물로 조국 전장관은 몰아가더니 나경원은 뭐라? 모성애? 

 

이러니 조국사태야 말로 한국 사회의 바닥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진짜 바닥이지 않은가. 저들의 공정과 정의와 합리라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안진걸 소장이 아주 큰 일을 했다. 입시와 관련해서 유사하면서도 명백한 불법이었던 나경원과 불법이라고는 사실상 없었던 정경심에 대한 검찰과 언론과 지식인과 청년들의 다른 태도를 보며 깨닫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저것들은 그냥 쓰레기다. 버러지다. 폐기물이다.

 

그 정의롭다던 한겨레 경향마저 지금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는 중이다. KBS도 결국 사회부장의 압력이었는데 나경원 캐다가 접고서는 열심히 나경원 떠드는 소리만 받아서 같이 떠들고 있는 중이다. 나경원 취재하던 그 기자가 사회부 소속이었다던가? 바로 김경록PB 인터뷰 왜곡하고도 잘했다 큰소리치던 그 인간이 부장으로 있는 곳이다. 문재인 정권 무너뜨려 파업의 정당성을 입증하겠다는 그 인간이기도 하고. 

 

다시 한 번 확인한다. 좋은 기자는 다 죽었다. 죽은 기자만이 좋은 기자다. 망한 언론사만이 좋은 언론사다. 언론은 쓰레기다. 불과 몇 년 사이에 평생을 믿어 온 신념을 바꿔 버렸다. 언론의 자유? 후쿠시마에나 던져 버리라. 기자에게 인권이란 없다. 그럴 자격조차 없다. 진보? 세상에 진보가 어디있게? 새삼 분노하는 것도 내가 아직 미숙한 증거다. 분노할 거리도 안된다. 원래 그런 것들인 것을. 대한민국이 부끄럽다.

이건 사실 지능의 문제다. 누군가 부산항에 배가 들어오면 갚겠다고 돈을 빌려갔다. 돈을 빌려준 자체가 인천항에 들어올 배가 있다고 인정하고 믿고 있었다는 뜻이다. 다른 누군가가 묻는다.

 

"그 배는 지금 어디 있죠?"

"지금 부산항까지 사흘 거리에 있다네요."

 

그래서 그 배는 반드시 그 곳에 존재하는 것일까? 배가 그곳에 실제 있다면 돈은 채무와 채권이 되는 것이고, 배가 없다면 사기가 된다. 더구나 결국 사기인 것이 밝혀졌을 경우 배가 어디 있다던 피해자의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SBS가 김한석씨의 주장을 보도한 자체가 전혀 아무 의미도 없는, 조금만 보도의 매커니즘을 알아도 바로 악의라 느낄 수밖에 없는 행위라는 이유다. 그러면 사실취재를 해야지. 김한석이 이러이러한 말을 펀드사로부터 들었다는데 과연 사실인가. 피해자가 어떤 식으로 속아서 당했는지 모르는데 그 주장을 그대로 다 믿고 보도하나? 바보야?

 

자기가 정부관계자나 정권의 실세를 직접 보고서 그리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 펀드에 도움을 주는 것을 확인하고서 그리 전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렇다더라. 높은 사람 팔고 사기치는 건 사기의 기본 가운데 기본이다. 사진 한 장 찍고서 - 아니 아예 그 사진까지 조작해서 내가 이런 사람과 안다고 구라를 친다. 그런데 그걸 변명이라고 하고 있다.

 

이목희가 참 좋은 말을 했다. SBS는 좀 탄압당해도 된다. 그렇지 않은 언론이 몇이나 되겠냐만. 딱 10년만 언론 특정으로 언론이 그토록 좋아하는 박정희처럼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명박근혜처럼만 해도 된다. 버러지들.

비유하자면 인근에서 마약이 갑자기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나를 붙잡아놓고는 마약제조범으로 몰아가는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학교 다닐 때 화학 배웠지? 실험도구들 대충 쓸 줄 알지? 인터넷으로 화학과 관련한 사이트를 많이 검색했네? 그러니까 너 유죄! 그래서 내가 항변하지. 그래도 난 마약 만드는 법 같은 거 몰라요. 그러자 검사가 자신있게 나선다.

 

"봐라, 이거랑 이거랑 이거랑 이렇게 해서 이렇게 섞으면 마약이 만들어지지 않느냐? 만들 수 있지? 그러니까 너 유죄!"

 

개소리인 것 다 알겠지? 그러니까 거기에 쓰인 재료들을 내가 어떻게 준비했느냐 하는 것이다. 누구에게서 어떤 경로를 통해서 그런 재료들을 확보했고 남은 것이 있으면 지금 어디에 있는가? 도대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약을 만들었다는 것이며 그에 대한 확실한 단서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상관없다. 검사가 무려 법정에서 마약합성을 시연했다. 그러니까 얼마든지 마약을 만들 수 있으므로 나는 유죄. 이딴 게 언론이란 것들이에요.

 

다른 것 다 떠나서 MS워드를 쓸 줄 안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다. 그냥 MS워드로 텍스트입력과 수정이나 하는 정도로도 MS워드를 쓸 줄 안다고 말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 아니 엑셀 가지고 별 짓을 다하던 직장 여직원이 정작 내가 아는 것을 몰라서 신기해 한 기억마저 있었을 정도다. 당연히 그 밖의 기능들에 대해서는 내가 그 여직원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다고 내가 엑셀을 못 쓰느냐. 그냥 기본적인 것 정도는 아직 가능하다니까. 무엇보다 누가 문서편집하면서 이미지파일까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해서 편집해 사용하느냐는 것이다. 그림판만 가지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고보니 파일 잘라서 붙이는 거라면 그림판이 MS워드보다 훨씬 더 나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여직원의 경우처럼 MS워드 가지고 별 짓을 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되었다는 뜻인가.

 

사실 거기서부터가 문제다. MS워드에 그런 기능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걸 쓸 줄 아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당연히 화학물질과 화학물질을 합치면 화학반응이 일어날 테고 마약도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화학물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아는 것과 전혀 별개인 것이다. 무엇보다 MS워드로 한 작업 이전과 이후에 다른 프로그램을 사용한 작업들이 또 추가되어야 한다. 한글이야 그런데도 전혀 아예 다루지 못한다 했었고, 그 밖에 가능성 있는 프로그램들은 아예 컴퓨터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컴퓨터가 동양대에서 쓰이던 시점에 정경심 교수는 서울에 있었다. 그런데 다 무시하고 시연에 성공했다더라. 30초 걸렸다더라.

 

아쉬운 건 저 가운데 대부분은 윤석열을 위해 총대를 맬 만한 급이 못된다는 것이다. 역시 후보는 JTBC와 MBC 둘 중 하나일 듯하다. 추미애 장관 아파트에서 뻗치기 하는 것 얼굴 찍어 공개했다고 그 생난리를 치던 언론들이 검찰총장 인터뷰하겠다고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간 언론사 기자들이 송치된 사실에는 철저히 침묵한다. 기자협회장이 한겨레 출신이었지. 이번에 덕분에 바닥을 보게 된 언론이 많이 있다. 좀 되는 것 가지고 몰아가야지. 너무하잖은가?

 

검사가 MS워드로 어디까지 할 수 있다와 실제 당사자가 그것을 그대로 할 수 있다는 별개란 것이다. 걸리는 시간도 제각각이다. 검사가 재판정에서 마약 합성했다고 내가 진짜 마약제조범이냐는 것이다. 버러지 새끼들은 진짜 반성이라는 게 없다. 역시 기자는 탄압밖에 답이 없다. 좋은 언론은 죽은 언론 뿐이다. 유일한 진리다.

한 마디로 펀드란 것은 '내가 돈 잘 굴려서 이익나면 돌려줄테니 믿고 돈 좀 맡겨 주세요'다. 뭔 말이냐면 펀드에 가입한다는 자체가 수익의 배분을 약정받는다는 뜻이다. 물론 투자에 실패해서 손실을 보면 당연히 투자금도 까먹게 된다. 그러니까 펀드에 투자할 때는 최대한 꼼꼼히 따져보고 조심해서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아니면 자본력이 되는 금융기업의 경우는 다른 상품과 결합해서 원금보전을 약속하는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공직자의 펀드투자가 허용되어 있는 현실에서 펀드의 수익자로 이름이 올라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뉴스로 보도될 만큼 중요한 사안인가.

 

혹시 모른다. 이익이 생기면 이익을 나누고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특별히 원금을 보전해주겠다는 약정이 따로 이면에 되어 있다면 특혜를 의심할 수 있다. 당연히 세상에 공짜란 없으므로 특혜가 있다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도 따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갔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 2월에 투자하고 5월에 환매정지가 되어 원금도 아직 돌려받지 못한 상황이다. 돌려받기는 커녕 꼼짝없이 사기피해자가 되어 상당한 재산을 날릴지 모르는 처지로 내몰린 것이다. 그런데도 수익을 나누어받기로 했으니 부정이 의심된다. 범법이 의심된다. 말했잖은가. 공직자의 펀드투자는 합법이라고. 그래서 장관의 직위를 이용해서 펀드의 투자에 관여하고 부정하게 돕기라도 한 정황이 발견된 것인가.

 

요즘 KBS가 어느때보다 노골적이다. 아마 박원순 시장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부터였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공격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박원순이라는 성추행범이 몸담고 있던 정당이니 아무렇게나 공격해도 정당하다는 판단인 것일까. 한동훈을 구하겠다고 자가발적으로 오보를 내고 바로 사과하더니만 프레임이 바뀌었는데 왜 계속 수사하느냐는 뉴스를 주력시간대에 내보내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경화에 이은 진영 장관까지. 그렇다고 몰라서 그리 보도한 것도 아니다.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런 의심을 가지도록 타이틀을 짜고 내보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지 않았는가. KBS 정상화른 명분으로 파업한 다음에 당시 지도부가 약속한 것이 있었다. 문재인 정부를 끝장냄으로써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해 보이겠다.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원래 그것이 KBS의 목표였고 KBS의 정상화였다. 한국은행 자료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일단 정부부터 까는 기사를 내보내거나, 의사파업에 대해 정부가 분명 잘못했을 건데 방법이 잘못되었다 말하거나, 심지어 아예 인터뷰이의 인터뷰를 조작해서 사실을 왜곡해서 내보내고 인정조차 않거나. KBS 좀 보지 말라는 소리다. KBS의 정상화는 KBS의 폐쇄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새삼 확인한다.

 

문제, 회사에 평생 아래아한글(이하 한글)만 써 온 부장님이 계시다. 거래처에서 MS워드만 쓰기에 서식에 맞춰 보내려니 한글의 기능은 아는데 MS워드는 전혀 모르고 있어 곤란해 하는 중이다. 과연 일반적인 경우 부장님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물론 대부분은 그냥 MS워드 쓸 줄 아는 직원 불러다 시키고 말 것이다. 자기가 직접 해야 하는 경우다. 자기가 아는 한글의 기능으로 대부분 작업을 마친 뒤 MS워드로 옮겨서 완성지을까, 아니면 그냥 MS워드의 기능을 배우고 말까?

 

나도 직장 다닐 때 문서작업 꽤나 해봤기에 말하는 것이다. 일하면서 제일 짜증나는 게 뭐였냐면 회사에서는 MS오피스와의 연동 때문에라도 MS워드를 주로 사용했는데 공공기관과 문서를 주고받으려면 반드시 아래아한글을 사용해야 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고 MS워드에서 작업한 것이 아래아한글과 바로 호환되었느냐면 표고 그림이고 다 깨져나가 아예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하는 것이 나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대개는 컴퓨터에 내부용 MS워드와 외부용 아래아한글을 함께 깔아놓고 용도에 맞게 따로 쓰고 있었다. 그렇다고 MS워드의 장점과 한글의 장점을 모두 살리기 위해 두 가지 프로그램 모두를 사용해 작업하는 경우가 있었느냐면... 미쳤거나 바보냐는 소리나 듣고 만다. 왜 그래야 하는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MS워드든 아래아한글이든 필요한 기능만 배우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이다. 어지간히 바보가 아닌 이상 메뉴만 몇 번 클릭해서 실행해 보면 대충 어떤 기능이 어떻게 쓰이는가 정도는 알 수 있다. 프로그램이 별개란 것이지 워드프로세서로써 반드시 필요한 기능들은 구체적인 내용만 다를 뿐 메뉴 자체는 서로 많은 부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아래아한글 잘 쓰면 MS워드도 대충은 기본은 쓸 줄 알고, MS워드도 잘 쓰면 아래아한글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기본적인 기능 정도는 쓸 줄 알게 된다. 내가 그랬으니까. 남들처럼 평소에는 거의 아래아한글만 쓰다가 정작 직장에 들어가니 MS워드만 쓴다길래 그때부터 혼자서 메뉴 몇 번 뒤져보고 배워서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쓰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다른 직원에게 물어보면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정경심 교수와 함께 일하던 조교들은 아래아한글을 제법 잘 썼다면서? 그런데 왜 MS워드여야 했던 것일까?

 

전에도 썼지만 검사의 기소내용을 보고서 내가 가장 먼저 가졌던 의문이었다. 왜 MS워드와 아래아한글을 같이 쓰느냐고? 굳이 MS워드와 아래아한글을 오가며 작업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 정도면 정경심 교수의 지능에 대한 아주 악의적인 폄훼이고 모욕으로 여겨질 수 있는 것이다. 캡쳐는 MS워드로 하고, 표창장은 한글로 만들고. 그냥 한글로 다 하면 되지 않겠는가. 아니 캡쳐만 따지면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당시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조교에게 물어보면 되지. 평소에도 별 시답잖은 것까지 물어보고 대신 시키는 통에 그리 원망이 자자했다는데. 아니나다를까 평소 정경심 교수의 표창장위조를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던 인간들조차도 여기까지 와서는 생각이 달라지는 듯하다. 검찰이 병신인가?

 

기자새끼들은 그냥 뇌가 없는 것이다. 인간이 아닌 것이다. 기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이유다. 기자에 대한 인격모욕과 성희롱? 언어폭력? 그런 건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법률에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유해조수라 판명되면 그나마 보호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아래아한글을 써보고 MS워드를 써봤으면 저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말이 안되는가를 알았을 텐데. 한글에 그런 기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 MS워드로 가능한가의 여부조차 의미없이 왜 굳이 그렇게 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 것이다. 결국 MS워드에서 파일을 잘라서 아래아한글의 서식에 붙였다면서? 그 과정에서 서식도 많이 손봤고. 그 자체가 아래아한글을 쓸 줄 안다는 의미인 것이다. MS워드만큼은 쓸 줄 안다는 의미인데 여기에 몇 가지 기능 정도 주위에 물어 배우는 것이 그리 어려울까?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진짜 만일 주위에 누군가가 서로의 장점을 모두 살리려 MS워드와 아래아한글 두 가지 프로그램을 번갈아 사용하고 있다 말한다면 한 마디 해 줄 것이다. 너 바보냐? 아니면 미쳤냐? 그런 수고를 할 거면 차라리 프로그램 하나를 제대로 써서 작업하는 쪽이 훨씬 빠르고 편하고 결과물도 낫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본을 부산대에 직접 제출까지 했다는데 그런 식으로 티나게 위조했으면 부산대에서 그대로 통과시켰을까? 전혀 티나지 않게 위조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 줄 안 모양이다. 더구나 서식도 있고 전용 표창장용지도 있는 상태인데.

 

아무튼 기자새끼들이며 검찰놈들의 바닥이 그대로 드러나는 또 하나 사례일 것이다. 아니 MS워드든 아래아한글이든 배우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린다고, 더구나 그렇게 많은 고도의 기능들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그냥 캡쳐하고 잘라내고 갖다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굳이 두 프로그램을 오갈 이유가 있었는가. 근본적인 의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왜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었느냐고? 답이 없는 것이다. 저런 놈들이 그래도 이 나라의 엘리트라는 것들이다. 병신들이다.

역시나 아주 간단한 비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은 다른 한 사람의 권리와 존엄을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지만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더 엄격하게 존중되고 지켜지고 있는 중이다. 과연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관계일까? 대등하고 평등한 관계일까? 일방적인 위계관계일까?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세상에 어느 대등한 관계에서 어느 한 쪽 만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존중하고 지켜주고 하겠는가.

 

내가 살면서 기자가 다른 사람 인권을 존중하고 지켜줬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태연히 기사로 사람을 모욕주고 절망에 빠뜨리고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는 것이 바로 기자란 종자들이다. 그러면서도 단 한 마디 사과조차 없다. 단 한 번도 반성이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사람이 죽으면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환호성까지 지른다. 아니 자기들이 그렇게까지 기사를 썼음에도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것을 가지고 비난하는 기사를 쓰기도 하는 지경이다. 그런데도 그런 기자들의 인권은 존중해달라?

기자에게는 인권이란 없다 여기는 이유인 것이다. 그냥 우발적으로 어쩌다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와 전혀 다르다. 상습적으로 의도적으로 상대의 존엄과 권리를 철저히 무시하며 그를 짓밟아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는 이들이다. 처벌조차 거의 받지 않는다. 채임조차 거의 묻는 법이 없다. 사람을 고통받게 만들고 그래서 심지어 목숨까지 끊게 만들면 오히려 칭찬받고 승진한다. 더 높고 더 영광스런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 그런 놈들의 인권따위 내가 왜 신경써야 하는가? 자신들을 향한 비난과 모욕이 듣기 싫다? 너무 견디기 힘들게 고통스럽다? 자기들이 쓴 기사로 인해 그 이상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들이 저렇게나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단지 저들이 어리석고 편향되어서 비판하는 것이라 무시할 뿐이다. 자신들이 무시하던 상대로부터 비난을 들으니 그게 그리 더 고통스러웠던 것인가.

 

국제법상 포로를 재판없이 함부로 살해하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아우슈비츠를 점령한 미군들이 포로로 잡힌 독일군을 즉결로 처형한 것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끔찍한 죄악을 저지르고서도 여전히 인간으로서 존엄과 권리가 지켜지기를 바라는가. 의사놈들과 확실히 닮았다. 자기들만 특별하다. 자기들은 얼마든지 사람들을 상처주고 모욕주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아도 성과가 되는데 자신들을 향한 어떤 비판도 비난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을 죽이고도 그저 몇 마디 비난을 듣는 게 그리 고통스럽다. 다른 사람들을 나락으로 떠밀고서도 자기를 향한 날선 말들이 그저 두렵기만 하다. 기자질 그만두면 된다. 그따위로 기사쓰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면 기자같은 것 그만 두고 더 건전한 다른 일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기자 월급 그리 많지도 않다면서? 기자질은 해야겠고, 사람은 죽여야겠고, 책임은 지기 싫고. 그러니까 기레기란 말조차 차라리 하는 짓거리에 비하면 찬양이고 고무라 여기는 이들이 생기는 것이다. 쓰레기에게 미안하고, 구더기에게 미안하다. 기레년이라는데, '년'은 사람에게 하는 욕설이다.

 

확실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셔먼이 참 좋은 말을 남겼다. 좋은 기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좋은 기자들은 다 죽고 사라졌다. 죽은 기자들만이 좋은 기자들이었다. 멀쩡한 놈들이 아직도 기자질이나 하고 있을 리 없다. 조금 더 솔직한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차마 거기까지는 너무 나간다 싶어서 참는다. 기자는 좀 탄압당해도 된다. 인권같은 것 무시당해도 된다. 그래야 마땅한 존재들인 때문이다. 징징거림이 짜증난다. 세상에 지들만 사는 것 같다. 역겨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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