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무려 두 번이나 김학의의 특수성폭행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었다. 심지어 재조사를 위한 출국금지요청까지 묵살하고, 출국금지의 정당성을 수사하겠다며 나서는 상황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상황을 두고 자칭 진보와 여성주의자들은 무엇에 더 분노하고 있는가?

 

무려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린 무고한 일반인 김학의를 사찰하고 출국금지시킨 그 절차의 정당성을 문제삼고 있는 중이다. 김학의가 출국했는지 여부를 공무원들이 살피고, 무고한 일반인이었는데 출국금지시켜서 결국 다시 수사받고 재판받도록 만들었다. 김학의에게 무혐의처분을 내린 검찰에 대한 비판 한 마디 없이 출국금지시킨 법무부의 책임만을 따지려는 중이다. 묻겠다. 그럼 김학의의 글로 쓰기도 너무나 참혹한 성범죄에 대한 분노는 어디로 간 것인가?

 

김학의에게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출국금지요청을 씹고, 그리고 그 출국금지의 불법성을 이제와서 따지겠다는 검찰에 대한 비판은 한 마디도 없다. 결국 그로 인해 김학의의 성범죄들이 모두 공소시효만료로 무죄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대한 비판 역시 아예 한 마디도 없다. 오히려 그들이 김학의보다 더 분노하는 것은 자신의 오랜 동지였고 남편이었던 이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겠다는 한 아내의 손글씨 편지였었다. 가족을 믿고 싶은 아내의 마음은 비난하되 김학의나 김학의를 수사한 검찰에 대한 비판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말했지? 차라리 성추행하려면 성폭행을 하라. 성폭행을 하려면 국민의힘에 입당하라. 

 

결국 결론은 내려진 것이다. 성인지감수성이란 정치적 프로파간다다. 성인지감수성이란 없다. 단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선동의 구호로써 성인지감수성이란 단어가 이용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지방의회에서 지방지 여기자를 대상으로 성희롱 발언이 나왔을 때 누구도 그 발언에 분노하지 않았었다. 보수정당에서 성폭행 의혹이 불거지고 성추행 고발이 나왔을 때도 그 잘난 성인지감수성은 어디로 갔는지 꽁꽁 숨어 있었다. 김학의 출국금지 논란에서도 피해자가 당한 끔찍한 고통은 아예 사라진 채 무고한 일반인이 된 가해자만이 남았다. 가해자인 것은 법원에서 이미 유죄판단을 내리고서도 공소시효를 이유로 무죄판결을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위해서 그를 수사하기 위한 출국금지의 정당성만을 따져물으며 정권의 정당성까지 걸고 넘어지는 중이다. 김학의를 수사한 것은 정권차원의 큰 잘못이다. 그리고선 다시 성인지감수성을 끄집어낸 것이 오랜 동지에 대한 우상호의 신뢰와 존경, 그리고 아내의 믿음이었다. 그런데도 과연 성인지감수성이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인가?

 

김학의 출국금지 논란은 그런 점에서 여성주의와 여성주의가 앞세우는 성인지감수성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증거인 셈이다. 김학의의 성범죄보다 김학의의 무고함에 더 집중하며, 김학의를 무혐의처분한 검찰보다 그를 출국금지한 정부에 대한 분노를 더 강하게 드러낸다. 대통령이 엄중한 재수사를 지시했으니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정권차원의 비리다. 바로 그런 보도를 하기 위해서, 그런 비판을 하기 위해서 자칭 진보는 내부투쟁까지 하고 있는 중이다. 김학의의 억울함을 밝히는 일이야 말로 참된 진보가 해야 할 일인 때문이다.

 

앞으로 성인지감수성 어쩌고 떠드는 버러지년들 보면 김학의 이야기부터 해주면 될 듯하다. 김학의와 박원순 누가 더 흉악한 범죄들인가. 누구에게 분노하고 누구에게 더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원래도 진보가 아니었지만 이제는 더욱 진보라 할 수 없는 주제들이 되었다. 김학의를 감싸는 자칭 진보에 여성주의라니.

 

국회의원 보좌관은 근로기준법상 보호대상이 아니라는 류호정의 발언을 돌아보라. 성범죄를 친고죄로 돌려야 한다는 장혜영의 주장을 돌아보라. 월성원전 폐쇄는 정권차원의 범죄고 비리다. 정의당의 입장이었다. 그래서 윤석열을 징계해서는 안된다. 진보가 어디 있는가? 진중권과 정의당, 한겨레 사이에 차이란 존재하는가? 이미 알던 사실이다. 버러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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