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PC에 반대하는 주류의 의견은 전통적으로 한결같았다. 동성애는 고칠 수 있다. 성전환도 막을 수 있다. 살이 쪘으면 빼면 된다. 말랐으면 찌우면 된다. 못생겼으면 성형하면 된다. 선량하고 우월한 흑인과 황인은 백인과 같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PC는 선택이다. 그러므로 강요해서는 안된다. 알아서 받아들이도록 기다려야 한다. 설득도 강요이므로 괜히 그런 시도따위 필요없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대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결국은 자기 문제니까. 정히 흑인인 게 어려우면 약물이든 수술이든 피부색을 바꾸려 노력이라도 해 보던가.

 

그러니까 왜 사람들이 다양성을 모두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그리 발악하는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이해하려고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판타지세계에는 성소수자따위 없다는 개소리가 나오지. 원래 유전적으로 타고나기를 게이로 레즈비언으로 트랜스젠더로 여러 소수성정체성으로 타고나는 것인데 판타지세계라면 그런 것들따위 없을 것이라 말하는 것부터가 교정과 예방과 배제의 대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 아닌 중세시대가 배경이라면, 아니면 혹은 고대사회에서였다면 그런 성소수자 문제따위 아예 없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 2세의 남자애인이 아버지에 의해 목을 잘린 게 18세기였을 테니 근세라 치고, 테베에서 동성애자들만으로 신성부대를 만든 건 또 고대였었고, 중세에도 동성애 문제는 역시나 꽤 시끄러웠었으니 그래서 언제 그런 게 없었다는 건데? 그리고 이미 존재하는 그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 어쩔 거고?

 

이를테면 우리사회에서 다문화가정과 같은 것이라 보면 된다. 예전에는 혼혈을 튀기나 잡종이라고 비하해 부르고는 했었다. 아예 피부색이나 생긴 것이 다르다는 이유로 군대에서도 안 받아줬었다. 대놓고 법과 제도로 차별을 하고 개인과 집단에 의해서도 당연하게 차별이 이루어졌었다. 그런 건 꼴보기도 싫다. 내 근처에는 아예 없었으면 좋겠다. 그나마 예전에는 집값에 그리 민감하지 않아 망정이지 그럼에도 혼혈이 하나 동네로 이사온다 하면 모두가 난리도 아니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우리 주위에 실재하는 현실이니까. 내가 보기 싫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지는 않으니까. 내가 없었으면 한다고 당장 이 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는 그들이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면 어째야 하는가. 어쨌거나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이웃일텐데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사는 방법을 강제로라도 학습해야 한다.

 

그래서 PC는 강제고 강요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흑인이라고 차별해서는 안된다. 아시아 원숭이 새끼라고 놀려서는 안된다. 게이고 레즈라고 배척하거나 거부해서는 안된다. 트랜스젠더 역시 같은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살찐 것이 잘못은 아니다. 180도 안되는 루저가 잘못이 아닌 것처럼. 아, 나도 180 한참 밑이다. 그러니까 그 루저 발언에 발악하던 새끼들이 뭔 반PC고 지랄이냐고. 그게 PC란 것이다. 키나 몸무게 생긴 것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고 차별해서는 안된다. 원래 아니었었으니까. 원래는 아무렇지 않게 차별해 왔었으니까. 배척하고 배제해 왔었으니까.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아 왔었으니까. 단지 타고나기를 성소수자로 타고났다고 자기의 정체성과 다른 삶을 강요받고 심지어 그로 인해 죽임까지 당해야 했었으니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아버지에 의해 탑에 갇힌 채 살해당한 애인의 잘린 목을 봐야만 했던 프리드리히 2세의 처지가 되어 보라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고통받아야 할 일인가. 

 

그러니까 반PC한다는 새끼들도 말하는 것이다. 지난 수 천 년간 그렇게 살아왔었다. 그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잘 살아왔었는데 갑작스럽게 바꾸라고 하는 자체가 전통을 무시하고 혼란을 불러오는 것이다. 그러면 원래 그러고 살아왔었으니 너 노비 되어서 한 번 살아보라 그럴까? 수 천 년 노비 부리고 노예 거느리고 신분에 따라 억압받으며 살아왔었으니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까? 다수가 그러니까 소수가 받아들이라? 다수가 그러면 소수는 당연하게 그대로 따라야 한다? 난 이 새끼들이 도대체 뭔 대가리로 그런 주제에 자유를 말하고 억압을 말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동안 그러고 살아왔으니 다수의 뜻에 의해 포르노도 금지하고 성인물도 금지한다는 것이다.

 

아, 생각났다. 저따위 소리 떠드는 새끼들 가운데 유독 성인물 금지하는 것 가지고 지랄하는 새끼들 넘쳐나더라. 수 천 년 그러고 살아왔거든? 이 사회 다수이자 주류가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거든? 미국 주류들은 포르노에 관대한 것 같지? 아니 무엇보다 포르노가 합법화된 것이 언제부터라 생각하는 것인가? 최소한 여성주의 운동보다도 훨씬 늦다. 아니아니 포르노의 합법화부터가 여성의 인권신장과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지위상승이 성적인 해방을 불러왔다. 여성의 지위가 낮은 사회일수록 성적인 억압 또한 강하다. 거의 비례관계라 보면 된다. 여성이 단순히 자궁이고 성적인 대상인 사회일수록 여성의 성은 은밀해져야 한다. 도구이고 수단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래오던 것인데 느닷없이 성은 자유로워야 하니 억압을 풀어야 한다면서 원래 그래오던 것이니 소수자들은 그대로 억압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래전 이야기들에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잘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때 흑인과 아시아인은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오로지 백인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아니 백인만이 인간으로서 이야기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인어공주도 딱히 백인이라 묘사하지 않았음에도 앙연하게 백인이 되었던 것이었다. 백설공주 역시 아시아인과 유럽인들 사이에 피부가 희다고 하는 기준이 예전에는 같지 않았었다. 조선시대 유럽인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 하얗다기보다 피부가 붉다고 기술한 경우를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라면 유럽인 역시 백설공주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된다. 피부가 하얗지 않고 붉으니까. 그냥 당시 유럽사람들이 보기에 당연하게 백설공주 주인공은 유럽인일 테니까 그리 묘사한 것이다. 톨킨 자신도 엘프의 인종에 대해 딱히 기술한 것이 없는데 엘프가 백인이 아니라고 지랄하는 한국 원숭이 새끼들은 진짜 어이가 없을 따름이다. 그동안 그래 왔었으니 앞으로도 유색인종인 흑인과 황인과 라틴계는 계속 차별하라고?

 

이건 인간의 존엄에 대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절대적인, 근대 이후 인간의 문명을 정의하는 대전제인 바로 보편적인 인간의 존엄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가장 존엄하고 그래서 배타적인 인간이 가지는 기본권에 대한 것이기에 강요이고 강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기에 차별해서는 안된다. 인간이기에 혐오해서는 안된다. 인간이기에 배척해서도 배제해서도 안된다. 인간이기에 마땅히 서로 존중하고 공존해야 한다. 어떤 성과 인종과 정체성을 가지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자체가 근대이후 인간의 문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가 혐오하고 싶으니 소수자를 혐오하겠다. 내가 차별하고 싶으니 약자를 기꺼이 차별하겠다. 그래서 나도 혐오하고 차별한다. 약자도 아니다. 소수자도 아니다. 2030 남성 새끼들이 진짜 약자고 소수자였다면 이러고 대놓고 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2030 남성 가운데 소수의견에 대해서는 그다지 반감이 없다. 주류고 대세고 대표성을 가지는 다수이니 대놓고 마음놓고 욕하는 것이지. 그놈 새끼들이 남들을 혐오하고 차별하고 배척하고 배제하니까. 그런 것을 자유라 말한다. 선택이고 권리라 말한다. 그러니까 강제하지 말라. 차라리 악이 위선보다 낫다는 새끼들다운 대가리속이다.

 

별로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그럴 생각도 없다. 하도 병신같고 거지같아서. 왜 PC냐고? 왜 혐오하고 차별하면 안 되느냐고? 늬들도 못생겼다고 비웃으니까 싫잖아? 키도 작은 루저새끼들이라니까 열받지 않나? 대가리 똥만 든 2030 2찍 버러지 새끼라니까 속 뒤집힐 테지. 왜 멀쩡한 남의 집 자식을 두고 그렇게까지 말하는가.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볼 때는 늬들도 멀쩡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이 갑자기 바뀌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역시 환경이 문제인 걸까? 미세먼지가 대가리만 똥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PC를 강요하는가? 배웠을 것이다. 기억 못하는 것이지. 병신새끼들.

이제야 봤네. 주 52시간제 폐지를 20대 남성 가운데 44%나 찬성했구만. 역시 실제 직장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다 보니 30대는 또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하지만 아마 물어보면 그래도 자기들 하는 일 빼고는 52시간제 폐지가 옳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확신해 본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 52시간근로제를 강화하고 최저임금 인상한다 했더니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것이 바로 그들 세대였으니. 공부 안해서 그딴 일 하는 것들 더 적은 돈 받고 더 오래 더 고통받으며 일하는 게 공정이라던 게 바로 그들 2030 남성들이었다. 진짜 아주 징하게도 싸웠네. 지들도 최저임금이나 받는 주제들이면서.

 

일단 보수정당 지지한다고 죄다 주 52시간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 52시간제에는 찬성하면서도 여가부폐지 하나만 바라보고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놈들이 그 이상이었다. 민주당은 페미이기 때문에 페미에 반대하기 위해서 보수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놈들도 내 주위에 차일 정도로 많다. 최저임금은 올려야겠고 주휴수당도 받아야겠지만 그러나 중국과 북한이 싫기에 보수정당을 지지한다. 그런데도 주 52시간제 폐지에 찬성하는 여론이 절반 가까이 나온다. 2030 남성들이 보수화된 것은 아니라는 어떤 사람들의 주장을 바로 반박해주는 결과일 것이다. 그런 변수들을 감안하면 여전히 현정부와 여당의 가장 든든한 지지기반은 6070에 이어 2030 남성들이었을 테니.

 

내 주위에도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있다. 자기들도 최저임금받고 일하면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안된다. 주 52시간제로 인해 일하고 싶은데 더 일 못하는 것은 부당하다. 주휴수당은 놀며 받는 돈이니 공정하지 않다. 무엇보다 정규직은 - 즉 무기직은 해고가 자유로워야 한다. 이해는 한다. 그 사람은 아직 기간제 계약직이라. 무기직 되고 나서도 같은 생각일까는... 아, 있구나. 자기도 무기직인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 꼴보기 싫다고 다 잘라야 한다는 사람이. 바로 이런 게 정치적인 신념이라는 것이겠지. 그래서 이데올로기라 하는 것일 게다. 그런 놈들이 지금 정부를 만들고 아직도 지금 정부의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안해서 그런 일 하는 사람은 더 고통스럽게 더 힘들게 더 어렵게 더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과 비교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정이다. 자식새끼들도 가난하다고 특혜받을 생각 말고 더 열심히 노력한 부자들과 같은 기준으로 경쟁하는 것이 공정인 것이다. 출산장려를 위해 아이를 가진 부모들을 위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까지 보장하는 것을 아이없는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들이니. 그래서 MZ인 것일까. 딱 그렇게만 일하게 시켰으면 속이 다 시원하련만.

 

너무 뻔한 조사결과라 그다지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한 50%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생겼다. 20대 남성 가운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런데 또 내 주위를 돌아보니 그렇다고 뭐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겠다. 즉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주 52시간이 지켜졌으면 좋겠다. 원래 그랬었으니. 그러려니 하는 중이다. 워낙 뻔하다.

어차피 들어가는 소재나 구현되는 기능도 같다면 그냥 더 싼 곳에 맡겨서 만들면 이문도 더 남지 않겠는가. 

 

흔히 숫자만 보는 경영진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하나다. 실제 그렇게 망한 회사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보잉이 있다. 그야말로 온세계의 하늘을 지배했다 해도 좋을 정도로 가장 많이 팔린 최고의 여객기를 제작하던 회사가 이제는 비행기 문짝이 떨어져나가고, 아예 잘 날던 비행이가 알아서 추락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어째서? 자기네 비행기 잘 만들어주던 공장 팔아치우고 숙련된 노동자들마저 죄다 해고해 버렸으니까.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소리 하는 놈들이 적지 않았다. 최저임금 올릴 때 쯤 되면 자기 돈 잘 번다고 하거나, 아니면 돈이라고는 벌어 본 적 없는 놈들이 주로 떠들던 소리였다. 그깟 나사 박는 일에 뭔 최저임금씩이나 받는가? 그깟 용접 좀 하고, 아귀 맞춰 조립 정도 하는 거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데 돈 덜 받고 더 오래 일하고 처우도 낮은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 새끼들이 아마도 아무나 해도 괜찮은 구내식당에서 밥 조금 맛없게 나오면 지랄들 하겠지. 실제 서울교통공사 구내식당 직원들 정규직 전환해준다 하니 지랄하던 새끼들이 자기들 구내식당 밥 맛없고 위생 어떻고 지랄들은 무지 하더라. 그래서 돈 더 주고 해고의 위험 없이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 보니 그런 공돌이 새끼들에게 돈 주는 게 아까워져서 다른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기 중국 어디 가면 비슷한 물건을 더 싸게 만들어 주는 곳이 있다더라. 그렇게 한국에서도 많은 제조기업들이 선진국 기업들을 대신해서 물건 생산해 팔면서 기술을 획득하고 판로를 개척하고 마침내는 독자적으로 브랜드를 만들어 성공하기도 했었다. 이게 문제다. 말 그대로 어차피 들어가는 재료도 같고, 구현되는 기능도 같다면, 결국 누가 생산하든 크게 차이가 없어진다. 그런데 생산의 숙련도는 정작 실제 제조하는 업체에서 쌓이게 된다. 설계야 어차피 생산하는 쪽에서 그 설계를 가져다 쓸 테니 역시나 실제 제조업체 쪽에 넘어간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한국 기업들도 원청의 기술을 받아서 성장한 것 아니던가. 그리고 이제는 중국쪽 업체들이 한국 기업들로부터 하청을 받다가 그를 넘어서서 세계시장에서 지분을 다 가져가고 있다.

 

원래 브랜드 가치라는 게 그만큼 물건을 잘 만들었기에 생겨나는 것이다. 이 브랜드의 물건은 그냥 상표만 보고 사도 후회는 없더라. 만족감이 크더라. 그런 만큼 브랜드 가치에 걸맞는 제품을 계속해서 생산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한 것이다. 브랜드가치라는 게 한 번 추락하면 다시 되돌리기가 힘들 테니. 그래서 명품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다. 명품이라 불리는 브랜드일수록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더 큰 비용과 수고를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데 단순히 비용을 더 아끼겠다고 그런 부분들에 소홀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실제 프렌차이즈 가운데 그런 경우가 있다. 부모가 열심히 일해서 가게 이름을 널리 알려 놨더니 자식인지 사위인지가 그를 물려받아 프렌차이즈로 만들어 돈을 크게 벌려 한다. 문제는 부모들은 더 맛있게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서비스와 함께 제공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었지만 그 후대는 그런 것들따위 아예 관심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쓸데없는 낭비고 고생이라 여겼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모두 배제한 채 상표만 만들어 프렌차이즈로 만들었다. 그래서 과연 그렇게 만든 프렌차이즈들에 대한 평가가 어떠하겠는가? 재료도 싼 것을 쓰고, 그나마도 아낀다고 제대로 쓰지 않고, 그래서 맛도 이전과 전혀 다른 것들인데. 모르는 사람만 속고 먹는다.

 

삼성의 위기란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싸게, 비용을 아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돈 많이 드는 직원은 자르거나 아니면 대우를 더 낮춰서. 그보다는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주는 자기들이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 제품이 아닌 돈을 버는 것이다. 자기들이 지금까지 무엇으로 돈을 벌었는가는 관심도 없이 그저 들어오고 나가는 돈들만 보려 한다. 그 결과 삼성의 스마트폰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삼성 스마트폰이라면 그래도 안드로이드 쪽에서는 명품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중저가 제품 팔아서 겨우 이익만 보는 중이다. 그런데 메모리 반도체마저 그 지경이다. 세상에 삼성 메모리가 불량 많이 나와서 반품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메모리 구입할 때 삼성 거냐 아니냐를 가장 먼저 따졌었다. 당연히 삼성 메모리가 값도 더 비쌌었다. 돈 없으면 아낀다고 하이닉스 쓰고 그랬지 - 아니 차라리 술 좀 덜 먹고 그냥 삼성 메모리고 사고 그랬었다. 그만큼 믿고 써도 좋은 신뢰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삼성 메모리가 그렇게 잘 팔릴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 기술력이 삼성을 지배적인 기업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었고. 하지만 기술이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재무담당자가 보기에는 그런 기술을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 다 비용이다. 어차피 그래봐야 메모리인데 좀 더 싸게 만들어서 팔면 그쪽이 이익이 아닌가. 인건비도 아끼고 개발비용도 아끼고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도 아낀다. 그래서 만들고 있는 게 지금 삼성 메모리들이다. 설계결함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엔지니어들은 아는데 경영진은 아예 알려고도 않았다. 그리고 그런 엔지니어들에 대한 대우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오너경영의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그나마 하나만 잘하면 되는 기업들은 다를 수 있다. 맥주만 죽어라 만들고, 컴퓨터만 죽어라 만들고, 혹은 가방만 죽어라 만들고. 그런데 삼성은 이것저것 많이 한다. 그리고 그 삼성을 물려받은 후계자는 정작 다른 쪽을 자신의 치적으로 삼고 있다. 한 마디로 메모리가 어떻게 되든 스마트폰이 어떻게 되든 정작 삼성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후계자라는 놈은 아예 관심도 없는 것이다. 황제의 자리를 물려받았다고 반드시 자신의 나라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경영자가 아예 관심이 없으니 그 밑에서 호가호위하는 놈들이 지 꼴리는대로 하다가 결국 회사마저 말아먹고 마는 것이다. 컴퓨터 업그레이드한다고 삼성 메모리 알아보고 있으려니 주위에서 뜯어말리는 것 보고 아, 진짜 삼성 망해가는가 보구나 깨닫고 만다. 어쩌다 그 삼성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삼성만 겪는 문제는 아니다. 한때 외계인을 납치해 고문하고 있다던 인텔이 저 모양이 된 것도 숫자만 보고 경영하던 전문경영인 때문이었다. 크르니자크였던가? 그런데 그 인간 지금 다른 회사에서도 CEO로 잘 나가고 있는 모양이다. 회사의 미래보다는 당장의 배당금에 더 관심이 있던 주주들의 판단이 가져 온 결과인 것이다. 지금 삼성의 지배주주인 오너의 책임이 더 크다는 이유일 것이다. 경영자가 판단을 잘못했을 때, 그래서 정작 중요한 기술과 현장을 외면했을 때 어떤 결과가 돌아오는지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확실히 최근들어 삼성 제품 가운데 OEM이다 심지어 ODM의 비중이 늘고 있기는 했었다. 삼성 제품이라고 믿고 사보려 했더니만 정작 제조사는 중국의 다른 회사다. 아예 제품개발부터 중국쪽 회사가 다 하고 그냥 상표만 삼성이라 붙여서 파는 것들이 거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 제품들이 가지는 경쟁력은 삼성의 경쟁력인가? 실제 제품을 제조한 제조사들의 경쟁력인가? 그러고 10년이 지나면 삼성이라는 기업에 남는 것이란 과연 무엇일 것인가? 한성이 아무리 잘나가봐야 결국 중국 전자제품의 한국쪽 도매상을 넘지 못하는 이유와 같다. 한성이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제품 가운데 좋은 제품을 값싸게 잘 들여와 파는 것이다. 삼성이 그래서 한성보다 나은 게 애프터서비스 말고 무엇이 있는가. 그런데 그런 변화들마저 삼성이 추락하는 이유 중 하나였었으니. 더이상 삼성에 기술의 축적이나 발전이란 없다. 그런데도 기업상속을 못하게 막는다고 민주당더러 경제 망친다 어쩐다 하는 새끼들이라니. 

 

아, 참고로 연구개발과 제조 쪽은 또 다르기도 하다. 원래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다수가 현재 대통령과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연봉도 꽤 많이 받는 모양인데 고작 나사나 조이고 기름이나 칠하는 공장노동자들이 돈 많이 받는 게 그리 거슬렸던 모양이다. 세대문제라기보다는 원래 우리 세대들부터도 그랬었다. 현대자동차나 중공업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뭐 저런 일 하면서 돈도 저리 많이 받는가고 비웃고는 했었다. 서울대 출신 가운데 하나는 기껏 고등학교 나와서 공장에서 일하는데 연봉 2, 3천도 많지 않겠는가 대놓고 말하기도 했었다. 물론 한 10여 년 전 이야기다. 아마 주 52시간 예외도 그쪽에서 나온 주장들일 텐데, 판교에서 윤석열 당시 대선후보에게 주 120시간을 건의한 것도 IT쪽 인사들이었다. 그래서 이 꼬라지가 난 것이기도 하다. 저놈들은 자기들과 상관없다고 손 놓고 있다가 돈계산이나 하는 놈들에게 죄다 휩쓸리고 말았다. 결국 망하면 같이 망한다. 그래봐야 지들도 돈받고 일하는 임금노동자들이니.

 

그런 것이다. 어째 진짜 삼성 제품 좀 사보려 하면 죄다 제조사가 다르더라. 삼성이 만든 게 아니라 그냥 상표만 붙여 파는 물건들이 그리 많았다. 그래서 또 편하기도 하다. 삼성이 파는 물건과 거의 비슷한 물건을 다른 상표로, 혹은 해외구매로 더 싸게 구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냥 디자인만 다르고 상표만 다르다. 심지어 디자인마저 비슷할 때가 있다. 삼성은 그냥 브랜드 뿐이다.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LG의 그램도 그냥 일부 모델만 ODM하는 것인데 브랜드 전체에 대한 이미지가 바닥을 치고 있으니. 굳이 LG 노트북을 비싼 돈 주고 사고 싶지는 않다. 당연한 심리다.

 

그게 추세다. 다만 돈만 헤아리는 저놈들만 모를 뿐이다. 똑똑한 데 병신이다. 의외로 흔한 이야기다.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던 것은 인조의 즉위를 반대해서가 아니었다. 자기도 인조 즉위에 큰 역할을 했었는데 제대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포상은 커녕 오히려 자기 아들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으니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던 것이다.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이때 이괄을 따라 반란을 일으켰다가 소멸한 5만 병력이 여진과의 전투경험이 많았던 북방의 정예병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후 정묘와 병자년의 전란에서 서북면은 그야말로 무주공산 청의 군대에 저항조차 못해보고 밀리고 말았다.

 

조선초기에 있었던 2차 왕자의 난도 역시 1차 왕자의 난 - 즉 무인정사에서 나름 큰 공을 세웠다 자부했던 정안군 이방원의 측근 박포가 포상에 불만을 품고 다른 왕자에게 접근하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에 반해 계유정난 이후 수양대군이 정권을 잡았을 때 원래 단종을 옹위하는 입장에 있었던 신숙주, 정인지 등은 그가 공신으로 책봉하고 베풀었던 많은 보상들에 넘어가서 단종을 죽이는데까지 앞장선 바 있었다. 그게 바로 소인배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맹자가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그런 것처럼, 공자가 소인은 이해를 따지고 군자는 인의를 따른다 그랬던 것처럼, 원래 소갈머리없는 새끼들은 자기에게 돌아오는 이익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KBS 노조는 태생부터 반민주당이었다. 더불어 친검찰이었다. KBS 노조가 박근혜가 탄핵되고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을 때 파업을 하고 나서 내뱉은 첫마디가 문재인 모가지 따서 자기들이 파업한 정당성을 증명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권을 더 효과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당시 KBS노조는 결연하게 파업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검찰과 손잡고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공격하는데 앞장섬으로써 그들은 그 목적을 훌륭히 달성했었다. 선거기간에도 내내 검찰의 편에서 편향된 보도를 이어가던 결과 마침내 정권교체에 성공하자 방송을 다시 저들의 손에 넘겨주는 데 앞장섰던 것도 바로 KBS 노조였었다. 그런데 그런 KBS가 파업을 한다? 무엇 때문이겠는가?

 

원래 자기들이 지지해서 밀어주었던 정권이고, 자기들 손으로 직접 다시 쥐어주었던 방송이었다. 그런데 이제와서 파업을 한다는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닌 것이다. 기껏 정권을 위해 많은 것들을 해 주었는데 정작 돌아온 보상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설마 KBS가 방송의 공정성이니 언론의 자유니 하는 것 때문에 파업할 리는 없지 않겠는가. 원래 그런 것따위 관심도 없던 놈들이었고, 방송을 자기들의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하던 놈들이었다. 사장이야 자기들 자리나 잘 챙겨주고 보상만 잘 해주면 상관없는 것들이 그놈들이었다. 그러니 파업의 이유로 다른 가능성을 떠올리는 자체가 의미없는 것이다.

 

사실 2017년이었던가? 당시 파업 때도 나는 같은 말을 했었을 것이다. 저 새끼들 파업해서 원하는대로 되어 봐야 결국 다시 저쪽에 방송을 갖다 넘길 것이다. 그저 자기 밥그릇 챙기겠다는 의도일 뿐 그렇게 밥그릇 다 챙기고 나면 원래 하던대로 돌아갈 것이다. 이명박 때도 방송을 정권에 넘긴 것은 KBS 내부 구성원들이었다. 예상대로 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대로 다시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과연 저 새끼들이 파업해서 뭔가 이루어낸다고 KBS가 바뀔 것인가? 바뀌기는 바뀔 것이다. 더 안 좋게 더 악랄하게 더 병신같은 모습으로.

 

KBS 정상화를 위해서는 KBS를 외국 자본에 팔아넘기고 공영방송을 새로 만드는 방법 말고는 달리 없을 것이다. 국내자본에 팔아넘겨봐야 다 똑같은 놈들이니 의미가 없고, 차라리 중국이나 러시아에 팔아넘기면 언론의 다양성이라도 늘어나니 그 쪽이 더 의미가 있다. 어차피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을 거 아니면 그냥 아예 폐업해 버리던가. 그리고 다시 만드는 것이다. 저건 고쳐서도 못 쓴다. KBS가 괜히 개병신쓰레기의 이니셜이 아닌 것이다. 그런 놈들이 파업한다고 이제와서 지지할 사람이 있기는 할 것인가. 폐국만이 답이다. 저것들은 답이 없다.

역사상 하나의 왕조, 혹은 문명이 쇠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제의 유지비용 증가에 있었다. 처음 하나의 왕조가 들어서고 문명이 세워졌을 때는 지배층이란 그를 주도한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지배층이 후손을 통해 확대되고 새로운 지배층이 일어나 편입되는 사이 지배층 자체가 증가하면서 그것이 집단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근대의 조선일 터였다.

 

원래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고 세금과 군역을 면제받는 지배층으로서의 양반은 전체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았었다. 일단 과거에 급제해야 양반이었고, 그 전에는 다른 농민이나 상인들과 다르지 않은 양인으로써 최소한 법적으로는 동등한 법적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런데 과거를 통해 새로운 양반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급제하여 양반이 되는 지배층이 늘어나는 가운데 기존의 양반들에게 주어진 권리들을 완전히 회수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차피 같은 이해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유럽의 봉건제가 그랬던 것처럼 관리로 등용된 양반들조차 양반들의 권리를 회수하는데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공범으로써 그들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데 더 협력적이었으니 날이 갈수록 그들이 세습하는 특권, 즉 국가적 자원은 국가 전체에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조선을 건국하고 바로 무리없이 지어냈던 경복궁을 아무리 중간에 전란이 있었다지만 임진왜란 이후 내내 지지부진 재건을 못하다가 아예 조선말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재정이 휘청일 정도가 되어 있었는가. 오히려 인구며 농업생산력에 있어서도 수 백 년 전인 건국초에 비해 후대가 여건적으로도 더 유리했을 텐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 더이상 양반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가가 요구하는 역으로부터도 면제되었다. 퇴계 이황만 하더라도 양반이었음에도 자발적으로 요역에 참여하기도 했었는데 후기에 이르면 양반이 군역을 사는 경우란 아예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양반이라고 관직을 차지하고 그를 이용해 재물을 모으는 한 편 이미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농민들로부터 막대한 소작료를 거둬들이고 있으니 국가의 자원을 일방적으로 이들을 향해 흘러들어갈 뿐이었다. 그러니 나라에 돈이 있을 리 없다.

 

오죽하면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면 왕실의 사유재산인 내탕금이 국가의 재정을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정작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한 양반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데다 양반들을 국가를 위해 동원할 수 없게 되다 보니 왕실이 사적으로 운용하고 관리하는 내탕금만도 못한 재정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이르면 내내 관리들은 왕실의 재산을 국가재정에 통합시키려 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랬었다면 대한제국으로 가기도 전에 이미 일찌감치 조선왕조는 망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조선말 양반이 전체 인구의 70%였다는 것은 인용한 자료의 오류와 과장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 정도로 말기 조선의 상황은 비효율의 극치였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역시 비슷한 시기에 존속했던 명왕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더 골때리는 상황이라, 태조 주원장이 자기 후손들을 걱정해서 종친들을 위한 여러 법제들을 마련해 둔 것이 멸망에까지 이르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괜히 이자성의 농민군들이 종친인 왕들을 잡아 삶아 죽인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조선처럼 분가하여 책봉된 당대만 왕이고 이후 계속해서 대군에서 군으로 위로 격하되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한 번 왕으로 책봉되면 계속 왕부까지 후손들이 세습하고 있었다는 것이 결국 말기에 이르면 종친 자체가 비대해져서 국가의 재정과 자원을 뭉텅이로 씹어먹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더구나 종친이라는 이유로 주어진 여러 특권들을 아예 대놓고 휘두르는 과정에서 인근 백성들의 삶까지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으니 그 결과 이자성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반란에 어이없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더 웃기는 것은 명왕실이 망할 위기에 놓이자 숭정제가 얼마간 재원을 마련해보려 심지어 자기 장인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음에도 정작 북경의 기득권들은 단 한 푼도 그를 위해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의 영화에 기대 특권을 누렸음에도 정작 그 위기에 자신도 함께 희생하기를 꺼린 기득권의 태도야 말로 당시 명의 현실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기득권의 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대혁명 직전 프랑스 귀족의 수는 사실 이전보다 크게 늘거나 하지 않았었다. 당연한 것이 중세유럽에서 귀족으로서의 특권은 오로지 장자를 통해서만 계승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큰 아들 이후로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는 예비적인 존재일 뿐 더이상 같은 귀족으로서의 특권을 기대할 수 없는 잉여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속세로부터 떼어 놓아 성직을 살게 하거나, 그도 아니면 스스로 가문을 박차고 나와서 작위와 영지를 바라고 기사단을 꾸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이들은 그냥 조상이 귀족이었던 평민으로 격하되어 가기 일쑤였다. 잘하면 원래 가문에서 봉신으로 직위를 세습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지만. 문제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유럽의 부가 증가하면서 이들 귀족들의 사치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중상주의였다. 더이상 그들의 사치를 전통적인 농업생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영주를 상인들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그를 가능케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귀족들로부터 위임받은 새로운 부르주아들까지 국민들을 대상으로 수취에 나서게 되니 프랑스라는 국가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실제 역사에서도 그같은 비대해진 지배층을 갈아없는 과정들이 중간중간 존재해 온 것이기도 하다. 후한부터 시작해서 남북조시대를 거치며 비대해진 귀족들을 한 번에 갈아엎다시피 했던 주전충의 반란이 그 한 예라 할 것이다. 주천충이 나타난 자체가 도저히 못살겠다고 농민들이 황소를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킨 것에서 비롯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피지배층이 일어나 갈아엎지 않으면 후한이나 남북조시대처럼 지배층 스스로가 경쟁자를 배제하고 도태시키고 있기도 했다. 조선시대 당쟁이 치열했던 이유도 한정된 조선이라는 자원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대해지는 양반의 특권을 스스로 조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라는 것도 결국 그러한 과정 속에서 도태되어가던 여러 번들과 무사집단들, 그리고 기회를 노리던 평민들이 각축을 벌인 결과가 아니던가. 결국 일본도 갈수록 비대해지는 군부의 권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태평양전쟁으로 뛰어들어 패망하고 말았지만.

 

그러면 국가만 그러한가? 원래 보잉을 일구어낸 것은 자본이 아닌 비행기를 만드는 기술이었을 것이다. 보잉만이 아니다. 한때 미제라고 하면 최고를 뜻했을 정도로 미국의 유력기업들은 최고의 기술을 연구하고 실현해내는 기술자,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이 성장하고 그로인해 더욱 커진 이익과 조직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차별되는 경영진들이 새롭게 대두하며 그들이 기업을 장악하게 되었다. 어떻게 얼마나 더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소비자가 구매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경영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운영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 이유다. 단순히 원가경쟁에서 밀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이상 미국의 기술이 다른 나라들과 경쟁할 정도가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대표적으로 문짝이 떨어져나가는 보잉의 비행기와 더이상 성능에 기대가 없는 인텔의 CPU가 그 한 예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장과 떨어져서 자신들이 당장 실현해야 할 이익만을 보는 사이 투자는 지지부진해지고 전략을 모호해지며 결국 기업의 경쟁력은 퇴락한다.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몰락해간 이유였다. 

 

어째서 독일과 같은 유럽의 나라들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에 실패하고 있었는가. 기술자들조차 결국 시간이 지나면 관료화되고 마는 때문인 것이다. 그동안 내연기관차를 만들어오던 기술자들이 지금 자신들이 관성적으로 누리는 지위와 이익을 포기하지 못해 현상유지를 고집하느라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또 현장의 기술자들따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던 한국이나 중국의 특수성이 승리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고, 비대해진 조직은 반드시 정체되고 마는 것이다. 삼성이 지금처럼 어려워진 이유다.

 

결국은 이재용의 리더십이 아버지인 이건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원인인 것이다. 이재용이 확실하게 리더십을 가지고 관료화된 임원진을 제어할 수 있었다면 이전처럼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며 최고수준의 기술진과 연구진을 통해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한때 삼성의 스마트폰과 메모리반도체는 감히 경쟁할 상대가 없는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파운드리 역시 TSMC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한 때 이른 적 있었다. 문제는 의사결정에서 그러한 최고의 기술력을 일구어낸 일선 기술자 연구진들의 의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 과연 그같은 투자와 연구개발의 과정에서 의사결정은 얼마나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인가. 비효율적인 낭비는 없었을 것인가. 그러니까 삼성전자 막내가 40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전보다 더 비대해진 임원의 비율에서 그들의 놓인 현실이 극명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구조조정에는 그렇게 비대해진 임원진은 대상이 아니다. 전형적으로 망해가는 말기의 모습이다.

 

사실 삼성 이전에 엘지가 정체되어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인정이 너무 많다. 인정에 이끌린 인사가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실제 일선에서 일하는 직원들보다 그들과 동떨어져 사고하는 임원의 비중과 권한이 너무 커졌다. 필요한 때 적절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하긴 삼성이라는 기업이 세워지고, 아니 삼성이 반도체로 두각을 드러내고 30년 정도 흘렀으면 꽤 오래갔다고 할 만할 것이다. 어차피 당장 망할 것도 아니고 상당기간 존속하며 지금 있는 임원들의 자리만 잘 지켜줄 수 있으면 크게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인 것이다. 어째서 세계최고의 기업들은 어이없이 경쟁력을 잃고 망하고 마는가. 기업에도 권력이 있고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특권은 낭비고 곧 비효율이다. 당연한 상식이다. 

예전에는 배달하는 음식점에서는 배달직원을 직접 고용했었다. 당연히 배달직원의 급여도 가게 주인이 직접 지급했었다. 월급으로 주거나, 아니면 배달 건수에 따라 비례해서 지급하거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음식가격은 같았다. 어떻게? 배달하는 경우 홀의 테이블을 이용하지 않으니 그만큼 손님회전에서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가 좁아서 테이블을 적게 놓더라도 배달을 통해 더 많은 주문을 감당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이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아예 테이블 없이 요리만 해서 배달을 통해 파는 음식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주방만 있으면 차라리 임대료도 서빙 인건비도 아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얼마전까지 홀에서 먹든 포장해서 싸가든 배달해서 먹든 가격에 차이가 없었던 이유는 오히려 그래도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포장의 경우는 벌써 몇 년 전부터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서비스를 추가해서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연하게 손님이 직접 가서 포장해 가면 테이블도 차지하지 않고, 배달인력도 쓰지 않으면서, 더구나 포장에 어려움이 있는 일부 품목의 경우는 빠지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할인 금액이 그리 크지 않으니 손님 입장에서 같은 음식 먹으면서 돈을 아낄 수 있었고, 가게 입장에서도 영업의 효율을 높일 수 있으니 서로가 좋은 선택이었던 것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그래도 배달을 위한 인건비가 들더라도 운영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배달가격을 같이 받더라도 손해가 되지 않았으니 가게 주인들도 기꺼이 그 비용을 감수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 번 배달을 할 때마다 음식 가격의 상당부분을 배달비로 지출하게 되었으니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이래서는 배달이 더 손해가 된다.

 

사람을 쓰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당연하게 배달을 하려면 비용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그동안은 그 비용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배달이란 것이 음식점주들 입장에서도 이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익보다는 손해가 크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가면서 그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더구나 그렇다고 배달로 인한 비용까지 감안해서 음식가격을 올리면 오히려 홀에서 먹는 살마들에게 손해가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일정부분 배달로 인한 비용상승을 배달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수밖에.

 

그래서 과연 배달음식값을 올리는 것이 소비자에게 손해이기만 한가. 얼마전 선물로 받은 프랜차이즈 음식점 상품권을 아직도 쓰지 못하고 가지고만 있는 내 경우를 본다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그리 가맹점이 많은 프랜차이즈가 아니기에 한 번 상품권을 써서 포장해 오려면 15분 이상 이동해야만 한다. 그것도 딱 근처의 가맹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서 일부러 나가서 사 들고 와야 하는 것이다. 가서 먹는 건 더 번거롭다. 그런데 배달로 시키면 그냥 내가 편한 시간에 문 여는 시간 맞춰서 전화 한 통만 하면 된다. 그 편리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것이 싫으면 가게에 가서 먹거나 아니면 포장해 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싫다면 지금 배달을 위해 추가로 지불하는 가격이 바로 내가 이용하는 비용인 것이다.

 

하여튼 사람을 공짜라 여기는 사람들이 이리 많다는 것이다. 가게 주인이 직접 배달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가게를 비워야 하는 것이다. 어째서 철물점이나 전파상에서 사람을 부르려면 추가로 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그 동안 그 사람들도 가게 문을 닫고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하게 되는 때문이다. 출장을 나가느라 가게 문을 닫은 탓에 정작 간단하게 필요한 물건만 사려 해도 그것이 곤란했던 경험이 한 번 씩은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음식 팔아서 버는 돈 가운데 상당부분을 배달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데 그냥 온전히 가게 주인 혼자서 이익도 없이 그 비용을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그러고서도 가게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다. 혹시라도 그 가게가 진짜 내 입맛에 맞는 가게라면 그로 인해 결국 내가 단골로 주문할 수 있는 가게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유지가 가능할 정도의 이익은 있어야 가게 주인들도 기꺼이 소비자를 위해 계속해서 음식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과연 내가 직접 내 수고를 들여서 나가서 사먹는 것과 다른 사람의 수고를 이용해서 집안에서 배달해서 먹는 것이 같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내가 직접 나가는 수고와 다른 사람의 수고를 이용하는 것이 같다면 또한 내가 직접 나가는 수고의 가치가 그만큼 하찮아지는 것이다. 내가 직접 나가야 하는 수고가 번거로운 만큼 다른 사람이 배달해주는 수고는 내게 또한 편리한 것이다. 그 편리에 대한 비용이 과연 부당한 것인가. 기자새끼들이 개새끼들이라는 이유다. 그것이 과연 소비자에게 피해이기만 한가.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정당한 대가의 지불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중소자영업자들의 생계를 걱정하던 새끼들이 이런 부분에서는 지들 배달해 시켜먹을 일만 걱정한다.

 

다행히 인터넷의 여론은 기자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듯해서 마음이 놓이는 중이다. 그렇게 배달시켜먹는게 비싸면 직접 가서 사먹으면 되는 것이다. 홀에서 먹거나, 아니면 직접 포장해서 오거나, 그도 비싸면 집에서 자기가 만들어 먹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기는 싫다. 너무 힘들고 귀찮고 번거롭다. 그러면 추가로 그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상식이다. 기레기가 기레기인 이유가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 사람새끼가 아니다. 새삼 역겹다는 이유다. 그 새끼들은 이 사회의 그냥 해악이다. 오염물질들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한경오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 것 같다. 한때는 주류보수언론인 조중동에 대한 대항마로써 그래도 진보언론이라고 한겨레와 경향, 오마이뉴스를 하나로 묶어 부르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지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당연하게 그 진실을 대부분 사람들이 알아 버린 때문이다.

 

한겨레일보는 엄밀히 진보언론이라기보다 반민주당언론이다. 일단 민주당부터 반대하고 그 다음에 보수정당이나 언론도 비판할 수 있으면 비판한다. 당장 보라. 현정부의 반진보적인 여러 정책과 행보들에도 한겨레일보가 누구를 가장 우선해서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가. 한겨레일보의 기사만 보고 있으면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불거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의 대부분 원인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로 인한 것들이다. 일단 민주당과 이재명이 잘못했고, 당연하게 책임을 져야 하며, 그 다음에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에도 비판할 부분이 없지 않으니 그를 비판한다. 실제 윤석열 정부나 국민의힘에 대한 비판 논조를 보면 차라리 조중동 쪽이 더 날서있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jtbc도 한겨레보다는 더 가차없이 현정부와 여당을 공격한다. 그에 비해 한겨레의 주적은 언제나 민주당과 이재명 뿐, 민주당과 이재명만 사라지면 현정부와 여당의 문제도 모두 바로잡힌다.

 

경향일보야 당연하 검찰기관지다. 원래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동안 보수정부에 불만이 많았던 검찰을 대변하다 보니 어느 순간 진보언론이라 사람들이 착각하게 되었을 뿐 원래 태생부터 경향일보는 친권력적인 어용언론이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원래 자리를 다시 찾아가는 것인데, 그래서인가 경향일보 역시 어지간한 보수지지자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는 현정부에 대해 유독 우호적이다. 가끔 비판도 하는 모양인다 그 정도 비판은 조중동에서 더 거세게 잘하니 의미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진보언론이라면 오마이뉴스 하나만 남았는데... 그런데 오마이뉴스는 그냥 시민기자의 연합이라 개별 기자의 성향을 제외한 언론 전체의 방향성 자체가 아예 의미가 없다. 개별 기자의 성향이 진보적일 수는 있어도 오마이뉴스 자체의 성향을 진보라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이상 주류보수언론 조중동에 맞서는 대안진보언론 한경오가 아닌 그냥 조중동 따까리 한경만 남게 된 것이다. 자기들이 취재해 놓고서도 조선일보가 그리 썼다며 결론을 내던 놈들이 한겨레일보 경향일보인데 그 대항마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은 아예 한경오라는 진보언론들마저 포기한 채 유튜브로 몰려가고 있는 것이다. 굿모닝충청이라고 지방지 하나가 대안언론으로 떠오르고는 있는데 아는 사람도 거의 없는 듣보잡이라 아직은 의미가 없다. 바로 대한민국 언론지형의 현실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진보언론이란 없다. 진보지식인도 없다. 윤석열을 그리 적극 지지하던 놈들이 무슨 진보? 이재명보다 윤석열이라던 놈들을 진보라 부르면 진보가 억울하다. 그나마 헷갈릴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한때 경향일보를 무척 신뢰하며 구독까지 했던 입장에서 더이상 오해할 일은 없으니 그것 하나는 좋다.

 

한 마디로 착각이었던 것이다. 한경오라는 것은. 보수언론에 맞서는 대안진보언론이라는 너무나 큰 실례가 되는 오해였던 것이다. 다들 제자리를 찾아가니 그런 점에서 더이상 착각도 오해도 사라진다. 다행스런 일이다.

전근대사회에서는 비천해도 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못먹고 못입고 못배우고 홀대반고 천대받아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이들이었다. 그러는 것이 오히려 당연했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열악한 현실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많은 후손을 생산해야 했었다. 가진 이들은 이미 풍족하게 누리고 있었기에 더 많은 아이를 낳아도 너끈히 길러낼 수 있었고, 가지지 못한 이들은 그렇게라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아니다.

 

2030 남성들이 패배한 이들에게 더 가혹한 벌을 주어야 한다 주장하는 이유일 것이다. 패배자는 비천해야 한다. 도태된 자는 더 비천해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당당하게 여성의 인권신장이 출산률저하의 원인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여성의 인권을 이전으로 되돌려야 출산률이 다시 오를 수 있다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대상은 비단 여성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역시 더 가혹하게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억압하고 착취하고 탄압해야지만 그들이 체념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다. 당장 인국공논란마 하더리도 그렇지 않던가. 어디 감히 실력도 안되어서 비정규직이 된 보안원 따위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가. 한 번 비정규직이면 비정규직이다. 한 번 계약직이면 계약직이다. 더불어 비정규직 나부랭이가 연봉 5천을 받는다는 건 말도 안된다. 그 이하로만 받아야 한다.

 

그래서 2030 남성들은 한 편으로 최저임금인하 혹은 폐지와 근로시간연장, 주휴수당폐지, 중대재해법 폐지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2030 남성들이 주로 모이는 커뮤니티에서 최저임금인상에 반대하고 중대재해법에 반대하는 여론을 수도 없이 접해 왔고, 심지어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20대 남성 가운데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음을 이미 알고 있는 터다. 자기도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으면서 어차피 최저임금이나 받는 주제들인데 더 적은 임금 받고 더 많은 시간 일하며 재해가 일어나도 그저 감수하는 것이 패배자들을 위해 옳은 것이다. 문제는 이미 현대사회인데 그런 주장들이 얼마나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주장하는 놈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 대상들은?

 

이번에 또 19살 노동자가 일하던 도중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최소 두 명이 작업했어야 했는데 혼자서 작업하다가 쓰러진 것을 조기에 발견하고 조치하지 못한 결과 죽음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물론 2030 남성들의 공정에 의하면 그러는 것이 옳다. 이미 패배한 낙오자들을 위해 자원을 쓰는 것은 낭비다. 실제 일하면서 알바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는데 이미 패배한 낙오자들을 위해 예산을 쓰느니 더 가치있는 곳에 써야 한다 열변을 토하더라. 하지만 그럼에도 이미 대부분 사람들은 공감하고 있을 터다. 같은 2030이더라도 일부 2찍 남성들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동의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해야 하고 그 존엄을 부당하게 침해당해서는 안된다. 가난하다고 못배웠다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남들과 같은 기회를 누리지 못했다고 더 열악하게 비천하게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서는 안된다. 

 

2030 남성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국에 여전히 모든 사람들이 존엄하려 하는 결과 기록적일 정도로 낮은 출산률로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비정규직도 사람이고, 일용직 노동자도 사람이고, 여성도 사람이고, 장애인도 사람이다. 못배우고 못가졌어도 모두는 사람이고 사람답게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이른바 2030 남성들이 끔찍히도 싫어하는 가붕게론이다. 개천에 사는 가재, 붕어, 게들도 개천 안에서 자기들 나름대로 잘 살 수 있도록 장치가 만들어져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이 주장하는 그대로를 실천하려는 정부와 여당에 의해 대부분 법과 정책들이 집행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얼마나 기쁠까? 윤석열 당선되고 저놈들 기고만장하게 떠들던 것을 지금도 기억한다. 4050 좆됐다. 우리만 좆됐을까?

 

물론 그렇다고 문재인과 민주당이 잘했느냐면 그건 또 아니라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생각은 분명 선했는데 그러나 그것을 현실로 이루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미숙했다. 미숙했다기보다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실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뭐라도 이루어놓은 것이 있는가 묻는다면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나마 해 놓은 것이 있었어도 정권을 내놓으면서 모두 원래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면 정권을 내놓지 않기 위해 뭐라도 했어야 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뭔가 노력하는 모습을 단 하나라도 본 적이 있는 사람 있는가. 아무튼 그런 이유에서다. 정부에서 아무리 지랄을 해도 사람들이 결혼도 않고 아이도 낳지 않는 것은. 지금처럼 패배한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벌을 주고 더 가혹하게 벌을 주려는 사회에서는 어차피 승자가 되지 못할 자신들이 아이를 낳는 것은 자식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하긴 그러고보니 과거 노빠 가운데도 능력이 안되면 자식 낳지 말라고 지랄해대던 새끼들이 적지 않았구나. 혹시라도 노무현에게 책임 돌아갈까봐 아이가 굶어죽었다니까 그따위 소리 지껄여대고 거기에 추천까지 달고 있었다. 당장 내 생떼같은 자식이 공장에 다닌다는 이유로 어이없이 죽어나가는 사회에서 대학 좋은 데 보내서 판검사나 의사 못시켜 줄 부모가 자식을 낳을 생각이 들겠는가 하는 것이다. 벌받을 위치로 갈 것이면 그냥 낳지 말자.

 

다시 말해 윤석열이 국민 과반의 지지로 대통령이 되고, 대통령으로서 보인 수많은 실정들에도 총선에서 과반 가까운 득표를 하고 있는 현실 자체가 출산률저하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냥 한국사회 자체가 능력 안되며 안 낳는 것이 옳은 사회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 이제는 지향점이 되어 있기까지 하다. 능력 안되는 패배자들은 더 가혹하게 벌을 주어 감히 패배자로 살 생각을 못하게 해야 한다. 덕분에 2030 남성들에게도 청년이라고 주어지던 많은 혜택들이 줄어들었으니 그들 스스로도 얼마나 기쁘게 여기고 있을까. 실제 과학예산 줄였다니까 이재명만 막으면 되었다며 좋아하던 이공계 인사들의 댓글도 꽤 떠돈 바 있다. 민주당 지지자였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은 그런 게 가능하다. 내가 능력있으면 승자로써 누릴 수 있을 테고 패자로써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테니까.

 

 

한 마디로 2030 남성들의 저같은 대가리속이 대한민국을 이 꼬라지로 만들었다는 뜻인 것이다. 물론 그 출발은 그 부모세대들이 잘못 가르친 책임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서 아이를 낳으라는 건 벌받을 대상을 더 만들라는 뜻에 다름 아니다. 그러기를 대한민국 사회가 선택했고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아이만 낳으라는 것은 얼마나 부당하고 어이없는 주장일 것인가. 2030 남성들이 다니는 커뮤니티를 자주 드나들기에 더욱 깨닫게 되는 것이다. 웃기는 건 저 새끼들 부모세대가 딱 나랑 또래 세대들이라는 것이다. 병신새끼들, 진짜 자식교육 한 번 잘 시켰다.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다는 이유다. 나라나 팔아먹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저 새끼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진짜 좆같다.

문재인 정부 당시 정부가 가진 인사권에 의해 임명된 사장 아래에서도 친국민의힘 성향의 KBS 직원들은 뉴스의 보도방향을 바꾸기 위해 내부에서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었다. 바로 그들의 투쟁에 의해 '저널리즘 토크쇼J'가 어이없이 폐지되고 있기도 했었다. 아, 물론 친국민의힘 성향의 직원들 뿐만 아니라 친정의당, 친녹색당 성향의 직원들도 가세했을 터다. 그렇게 사장이 바뀌었어도 KBS 직원들은 내부에서 적극적으로 투쟁해서 KBS의 논조를 최대한 지켜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KBS 내부에서 그나마 개혁적이라는 놈들은 어디서 무얼하고 있는가?

 

내가 처음부터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류의 KBS 내부의 행동들에 비웃음부터 보낸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명박근혜 정권 내내 나팔수노릇만 하다가 겨우 정권이 바뀌니 한 번 뭐라도 해보겠다고 나서서 결국 그놈들이 한 짓거리가 뭐였는가 하는 것이다. 기껏 파업 지지해줬더니 하는 소리가 문재인 정권 때려잡아서 자기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겠다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권력 비판해야 한다며 검찰과 붙어먹던 당시 사회부장새끼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는가 궁금하다. 참기자 어쩌고 지랄하다가 검찰 지키겠다고 가짜뉴스 앞장서서 보도했던 정연욱은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당장 그때 참기자 어쩌고 하던 인간들이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진짜 궁금해진다. 그렇게 입다물고 사장 하라는대로 하다가 정권 바뀌면 또 나서서 어쩌고 파업하고 민주당 때려잡아 자기들 증명하려고?

 

그런 점에서 윤석열이 임명한 박민 사장은 KBS에 최적화된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기자들더러 광고영업까지 뛰라 하는 모양이다. 광고 따오면 인센티브 줄 테니 열심히 광고 물어와라. 원래 그런 것 바라고 기자질하는 것 아니던가. KBS 기자들이 가장 믿고 존경하고 따르는 언론이 바로 조선일보다. '저널리즘 토크쇼J'가 폐지된 것도 감히 조선일보를 비판해서 그런 것이었으니. 심지어 당시 출연중이던 아나운서는 아예 회사를 돌아다니면 힐난하는 눈으로 보는 직원들이 그리 많았었다지? 그렇게 광고 열심히 따오며 정권과 기업을 물고빨다 보면 더이상 공영방송으로서 KBS를 유지할 이유 역시 사라질 것이다. 과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존재할 이유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기는 한가.

 

방송으로는  KBS, 신문으로는 한겨레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우선해서 폐지되어야 할 언론일 것이다. 일단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KBS는 공영방송이니 중립적이고 객관적일 것이다. 한겨레는 진보언론이니 진보진영에 우호적일 것이다. 요즘 경향은 한겨레와 묶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무시. 진보언론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보니 경향일보는 어디서 뭘 하는지 대부분 사람들이 아예 관심조차 없다. 경향일보 아직 언론질하기는 하던가? KBS를 아예 폐지하던가, 아니면 민영화를 하던가. 그러면 차라리 헷갈리지는 않을 것이다. 좋은 기자는 죽은 기자 뿐이다. 좋은 KBS 기자는 폐국된 KBS 기자일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아무런 기대도 않는다. 그 새끼들 어디 가서 뒈지든 말든. 내가 TV를 사지 않는 이유다. 저 새끼들 월급에 단 한 푼도 보태줄 수 없다. 망해라. 

최근 어느 유튜버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사건의 가해자들을 추적해서 신상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사적제재에 대한 논란이 여기저기서 꽤나 크게 불붙고 있다. 떠올리는 것조차 너무나 끔찍한 범죄이기에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보다 더 안락하게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범죄자들에게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다고 개인이 개인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과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 이 가운데 내가 선택하는 입장을 바로 전자일 것이다.

 

단순하게 사적제재를 용어만 달리해서 표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바로 자력구제다. 사적제재와 자력구제는 사실 매우 비슷한 개념이다. 공적으로 대상에게 정당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기에 개인이 알아서 자력으로 대상에게 제재를 가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주위로부터 다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기에 자기가 알아서 자기 힘으로 자신을 구하려 하는 것이다. 차이라면 자기 이외의 자신을 대신할 다른 주체가 공적인 구조인가, 아니면 단지 자기 이외의 타자인가 하는 정도다. 정확히 자력구제라는 보다 커다란 범위 안에 사적제재라고 하는 것도 포함된다 할 수 있다. 법이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이 사회의 공적인 가치를 지키고 나아가 자신의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대신하여 처벌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 그것을 실천하려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그리 말할 것이다. 자력구제라면 결국 자기 일이어야 하는데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따로 있지 않은가. 어찌되었거나 남의 일인데 거기에까지 자력구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래서 밀양인 것이다. 당시 사건이 발생하고 밀양의 여론은 여중생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실제 어느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했을 때 가해자의 잘못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보다 피해자가 잘못했고 피해사실을 알린 것이 잘못이라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었다. 그래서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할 때도 원산지가 밀양이면 절대 피한다. 남의 일이니까, 자기 일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런 그다지 좋지 못한 사실을 세상에 알려 자신들의 기분을 나쁘게 한 자체가 잘못이다. 법이 있으니까 법이 처벌하지 않았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고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건인 것이다. 차라리 조용히 묻히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자만 나쁜 것이니 그쪽이 공리적으로도 훨씬 낫다. 그래서 지금 피해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고 가해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의 선택은 과연 그런 현실이 옳다는 것인가.

 

결국 쟁점은 하나인 것이다. 당시 피해자가 겪었을 끔찍한 고통과 이후 피해자에게 가해진 불운과 불행에 대해 그럼에도 크게 책임지지 않고 여전히 피해자를 비웃고 욕하며 자기들끼리 잘 먹고 사는 가해자들에 대해 먼저 분노를 느끼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이 과거 자신이 저지른 일로 대중의 비난을 받고 현실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에 동정심을 느끼는가? 다시 말해 당시 피해자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먼저 분노하고, 혹은 지금 가해자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 먼저 연민한다. 하긴 그러니까 과거 여성을 상대로 성적인 유린을 일삼았던 김학의의 범죄에 분노하기보다 그를 출국금지시킨 절차에 대해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할 터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대충 비슷한 부류들이다.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문재인 대통령을 사법처리해야 한다 발광하던 한겨레와 정의당, 녹색당 등이 떠올라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들의 인권이란, 인간이란, 인간에 대한 연민이란 고작 그런 것이었을까.

 

다시 말해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정의가 있고 그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와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양심이라 부른다. 양심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르다고 믿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리 되어야 하고 그리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모든 개인에게 주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것이다. 그것이 인권이다. 생명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그 근원이자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사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그같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개인들의 양심이 충실히 지켜질 수 있도록 구성되고 운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의무이기도 하다. 그를 위해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고, 그를 강제할 수 있는 힘과 장치들을 구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의 양심과 이반되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존엄한 존재로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조선인의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이 일제가 만들어 놓은 법과 제도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양심을 실현하려 나섰던 것이었다. 모든 개인은 자유로워야 하고 국가의 모든 것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판단되고 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군사독재정권이 만들어 놓은 법과 제도 아래에서 전과자가 되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해가며 싸워야 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웃기는 것이다. 당장 지금 정부가 하는 꼬라지가 좆같아서 그것 좀 바꾸자고 거리로 나와서 시위도 하는 것인데 그것을 꼭 법을 지켜가며 해야 한단다. 하긴 그러니까 그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는 놈들이 그 법을 이용해서 지금 정권까지 틀어쥐고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단 법이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복종하며 따르자. 현실이 아무리 부당하고 모순되더라도 개인이 나서서 무엇을 어찌하려는 생각 자체가 불온한 것이므로 절대 삼가야 한다. 개인이 우선인가? 아니면 집단이 우선인가? 대중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같은 사적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결국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분노할 줄 아는 개인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가해자와 그 가족과 주변인들이 겪는 고통에서 더 부당함을 느끼는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그저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그들의 현실에 대해 더 부당하다 느끼는 것인가? 이 또한 서로 판단하고 추구하는 바가 다른 결과일 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자신들만의 정의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그들이 자신의 정의를 위해 사적제재가 부당하다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러한 저들의 정의에 대해 가해자들만을 동정하고 있다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무엇에 더 분노하고 무엇에 더 연민하며 어느 것을 위해 결국 행동에 나서는가. 그냥 그 차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분노를 위해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사건의 가해자들과 그 주변인들이 이제라도 고통받도록 하는 일에 동참은 못하더라도 지지는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양심을 위해 옳다. 이제라도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면 그것이 옳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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