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배달하는 음식점에서는 배달직원을 직접 고용했었다. 당연히 배달직원의 급여도 가게 주인이 직접 지급했었다. 월급으로 주거나, 아니면 배달 건수에 따라 비례해서 지급하거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음식가격은 같았다. 어떻게? 배달하는 경우 홀의 테이블을 이용하지 않으니 그만큼 손님회전에서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가 좁아서 테이블을 적게 놓더라도 배달을 통해 더 많은 주문을 감당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이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아예 테이블 없이 요리만 해서 배달을 통해 파는 음식점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주방만 있으면 차라리 임대료도 서빙 인건비도 아낄 수 있다.

 

다시 말해 얼마전까지 홀에서 먹든 포장해서 싸가든 배달해서 먹든 가격에 차이가 없었던 이유는 오히려 그래도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포장의 경우는 벌써 몇 년 전부터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서비스를 추가해서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당연하게 손님이 직접 가서 포장해 가면 테이블도 차지하지 않고, 배달인력도 쓰지 않으면서, 더구나 포장에 어려움이 있는 일부 품목의 경우는 빠지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할인 금액이 그리 크지 않으니 손님 입장에서 같은 음식 먹으면서 돈을 아낄 수 있었고, 가게 입장에서도 영업의 효율을 높일 수 있으니 서로가 좋은 선택이었던 것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그래도 배달을 위한 인건비가 들더라도 운영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배달가격을 같이 받더라도 손해가 되지 않았으니 가게 주인들도 기꺼이 그 비용을 감수한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한 번 배달을 할 때마다 음식 가격의 상당부분을 배달비로 지출하게 되었으니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이래서는 배달이 더 손해가 된다.

 

사람을 쓰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당연하게 배달을 하려면 비용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그동안은 그 비용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배달이란 것이 음식점주들 입장에서도 이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익보다는 손해가 크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익을 포기해가면서 그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더구나 그렇다고 배달로 인한 비용까지 감안해서 음식가격을 올리면 오히려 홀에서 먹는 살마들에게 손해가 돌아가게 된다. 그러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일정부분 배달로 인한 비용상승을 배달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에게 부담하도록 하는 수밖에.

 

그래서 과연 배달음식값을 올리는 것이 소비자에게 손해이기만 한가. 얼마전 선물로 받은 프랜차이즈 음식점 상품권을 아직도 쓰지 못하고 가지고만 있는 내 경우를 본다면 딱히 그렇지만도 않다. 그리 가맹점이 많은 프랜차이즈가 아니기에 한 번 상품권을 써서 포장해 오려면 15분 이상 이동해야만 한다. 그것도 딱 근처의 가맹점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서 일부러 나가서 사 들고 와야 하는 것이다. 가서 먹는 건 더 번거롭다. 그런데 배달로 시키면 그냥 내가 편한 시간에 문 여는 시간 맞춰서 전화 한 통만 하면 된다. 그 편리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그것이 싫으면 가게에 가서 먹거나 아니면 포장해 오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싫다면 지금 배달을 위해 추가로 지불하는 가격이 바로 내가 이용하는 비용인 것이다.

 

하여튼 사람을 공짜라 여기는 사람들이 이리 많다는 것이다. 가게 주인이 직접 배달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가게를 비워야 하는 것이다. 어째서 철물점이나 전파상에서 사람을 부르려면 추가로 더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가. 그 동안 그 사람들도 가게 문을 닫고 다른 손님을 받지 못하게 되는 때문이다. 출장을 나가느라 가게 문을 닫은 탓에 정작 간단하게 필요한 물건만 사려 해도 그것이 곤란했던 경험이 한 번 씩은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음식 팔아서 버는 돈 가운데 상당부분을 배달비용으로 지출해야 하는데 그냥 온전히 가게 주인 혼자서 이익도 없이 그 비용을 다 감당해야 하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그러고서도 가게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절대 무리다. 혹시라도 그 가게가 진짜 내 입맛에 맞는 가게라면 그로 인해 결국 내가 단골로 주문할 수 있는 가게가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의 유지가 가능할 정도의 이익은 있어야 가게 주인들도 기꺼이 소비자를 위해 계속해서 음식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과연 내가 직접 내 수고를 들여서 나가서 사먹는 것과 다른 사람의 수고를 이용해서 집안에서 배달해서 먹는 것이 같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내가 직접 나가는 수고와 다른 사람의 수고를 이용하는 것이 같다면 또한 내가 직접 나가는 수고의 가치가 그만큼 하찮아지는 것이다. 내가 직접 나가야 하는 수고가 번거로운 만큼 다른 사람이 배달해주는 수고는 내게 또한 편리한 것이다. 그 편리에 대한 비용이 과연 부당한 것인가. 기자새끼들이 개새끼들이라는 이유다. 그것이 과연 소비자에게 피해이기만 한가.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정당한 대가의 지불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중소자영업자들의 생계를 걱정하던 새끼들이 이런 부분에서는 지들 배달해 시켜먹을 일만 걱정한다.

 

다행히 인터넷의 여론은 기자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듯해서 마음이 놓이는 중이다. 그렇게 배달시켜먹는게 비싸면 직접 가서 사먹으면 되는 것이다. 홀에서 먹거나, 아니면 직접 포장해서 오거나, 그도 비싸면 집에서 자기가 만들어 먹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기는 싫다. 너무 힘들고 귀찮고 번거롭다. 그러면 추가로 그를 위한 비용을 지불하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상식이다. 기레기가 기레기인 이유가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으니 사람새끼가 아니다. 새삼 역겹다는 이유다. 그 새끼들은 이 사회의 그냥 해악이다. 오염물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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