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느 유튜버가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사건의 가해자들을 추적해서 신상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을 두고 사적제재에 대한 논란이 여기저기서 꽤나 크게 불붙고 있다. 떠올리는 것조차 너무나 끔찍한 범죄이기에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보다 더 안락하게 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범죄자들에게 어떻게든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렇다고 개인이 개인을 상대로 일방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위가 과연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타당한가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당연하게 이 가운데 내가 선택하는 입장을 바로 전자일 것이다.

 

단순하게 사적제재를 용어만 달리해서 표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바로 자력구제다. 사적제재와 자력구제는 사실 매우 비슷한 개념이다. 공적으로 대상에게 정당한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기에 개인이 알아서 자력으로 대상에게 제재를 가하려 한다. 마찬가지로 주위로부터 다른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기에 자기가 알아서 자기 힘으로 자신을 구하려 하는 것이다. 차이라면 자기 이외의 자신을 대신할 다른 주체가 공적인 구조인가, 아니면 단지 자기 이외의 타자인가 하는 정도다. 정확히 자력구제라는 보다 커다란 범위 안에 사적제재라고 하는 것도 포함된다 할 수 있다. 법이 범죄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으므로 따라서 이 사회의 공적인 가치를 지키고 나아가 자신의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대신하여 처벌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 그것을 실천하려 한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그리 말할 것이다. 자력구제라면 결국 자기 일이어야 하는데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따로 있지 않은가. 어찌되었거나 남의 일인데 거기에까지 자력구제를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래서 밀양인 것이다. 당시 사건이 발생하고 밀양의 여론은 여중생이 나쁘다는 것이었다. 실제 어느 언론사가 여론조사를 했을 때 가해자의 잘못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보다 피해자가 잘못했고 피해사실을 알린 것이 잘못이라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었다. 그래서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할 때도 원산지가 밀양이면 절대 피한다. 남의 일이니까, 자기 일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그런 그다지 좋지 못한 사실을 세상에 알려 자신들의 기분을 나쁘게 한 자체가 잘못이다. 법이 있으니까 법이 처벌하지 않았으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고 고작 그 정도밖에 안되는 사건인 것이다. 차라리 조용히 묻히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피해자만 나쁜 것이니 그쪽이 공리적으로도 훨씬 낫다. 그래서 지금 피해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고 가해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의 선택은 과연 그런 현실이 옳다는 것인가.

 

결국 쟁점은 하나인 것이다. 당시 피해자가 겪었을 끔찍한 고통과 이후 피해자에게 가해진 불운과 불행에 대해 그럼에도 크게 책임지지 않고 여전히 피해자를 비웃고 욕하며 자기들끼리 잘 먹고 사는 가해자들에 대해 먼저 분노를 느끼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이 과거 자신이 저지른 일로 대중의 비난을 받고 현실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에 동정심을 느끼는가? 다시 말해 당시 피해자가 겪었던 일들에 대해 먼저 분노하고, 혹은 지금 가해자들이 겪는 일들에 대해 먼저 연민한다. 하긴 그러니까 과거 여성을 상대로 성적인 유린을 일삼았던 김학의의 범죄에 분노하기보다 그를 출국금지시킨 절차에 대해 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기도 할 터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대충 비슷한 부류들이다. 김학의 출국금지시켰다고 문재인 대통령을 사법처리해야 한다 발광하던 한겨레와 정의당, 녹색당 등이 떠올라 무척이나 흥미롭다. 저들의 인권이란, 인간이란, 인간에 대한 연민이란 고작 그런 것이었을까.

 

다시 말해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만의 정의가 있고 그 정의를 추구하고자 하는 동기와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양심이라 부른다. 양심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가지는 존엄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르다고 믿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그리 되어야 하고 그리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하는 것들을 위해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모든 개인에게 주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것이다. 그것이 인권이다. 생명으로서의 인간에 대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도록 해주는 그 근원이자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는, 사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는, 그같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개인들의 양심이 충실히 지켜질 수 있도록 구성되고 운영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의무이기도 하다. 그를 위해 법을 만들고, 제도를 만들고, 그를 강제할 수 있는 힘과 장치들을 구비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나의 양심과 이반되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존엄한 존재로서 어떤 판단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일제강점기 조선인은 조선인의 나라에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던 이들이 일제가 만들어 놓은 법과 제도를 부정하고 폭력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자신의 양심을 실현하려 나섰던 것이었다. 모든 개인은 자유로워야 하고 국가의 모든 것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판단되고 결정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군사독재정권이 만들어 놓은 법과 제도 아래에서 전과자가 되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해가며 싸워야 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웃기는 것이다. 당장 지금 정부가 하는 꼬라지가 좆같아서 그것 좀 바꾸자고 거리로 나와서 시위도 하는 것인데 그것을 꼭 법을 지켜가며 해야 한단다. 하긴 그러니까 그 법을 집행하는 위치에 있는 놈들이 그 법을 이용해서 지금 정권까지 틀어쥐고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일단 법이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복종하며 따르자. 현실이 아무리 부당하고 모순되더라도 개인이 나서서 무엇을 어찌하려는 생각 자체가 불온한 것이므로 절대 삼가야 한다. 개인이 우선인가? 아니면 집단이 우선인가? 대중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같은 사적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결국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분노할 줄 아는 개인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가해자와 그 가족과 주변인들이 겪는 고통에서 더 부당함을 느끼는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그저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그들의 현실에 대해 더 부당하다 느끼는 것인가? 이 또한 서로 판단하고 추구하는 바가 다른 결과일 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자신들만의 정의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그들이 자신의 정의를 위해 사적제재가 부당하다 주장할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그러한 저들의 정의에 대해 가해자들만을 동정하고 있다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사실이기도 하고 말이다. 무엇에 더 분노하고 무엇에 더 연민하며 어느 것을 위해 결국 행동에 나서는가. 그냥 그 차이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의 분노를 위해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사건의 가해자들과 그 주변인들이 이제라도 고통받도록 하는 일에 동참은 못하더라도 지지는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양심을 위해 옳다. 이제라도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면 그것이 옳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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