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하나의 왕조, 혹은 문명이 쇠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체제의 유지비용 증가에 있었다. 처음 하나의 왕조가 들어서고 문명이 세워졌을 때는 지배층이란 그를 주도한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의 지배층이 후손을 통해 확대되고 새로운 지배층이 일어나 편입되는 사이 지배층 자체가 증가하면서 그것이 집단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전근대의 조선일 터였다.

 

원래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국가로부터 녹봉을 받고 세금과 군역을 면제받는 지배층으로서의 양반은 전체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았었다. 일단 과거에 급제해야 양반이었고, 그 전에는 다른 농민이나 상인들과 다르지 않은 양인으로써 최소한 법적으로는 동등한 법적 의무를 지고 있었다. 그런데 과거를 통해 새로운 양반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급제하여 양반이 되는 지배층이 늘어나는 가운데 기존의 양반들에게 주어진 권리들을 완전히 회수하지 못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어차피 같은 이해를 공유하고 있었기에 유럽의 봉건제가 그랬던 것처럼 관리로 등용된 양반들조차 양반들의 권리를 회수하는데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공범으로써 그들을 위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데 더 협력적이었으니 날이 갈수록 그들이 세습하는 특권, 즉 국가적 자원은 국가 전체에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조선을 건국하고 바로 무리없이 지어냈던 경복궁을 아무리 중간에 전란이 있었다지만 임진왜란 이후 내내 지지부진 재건을 못하다가 아예 조선말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재정이 휘청일 정도가 되어 있었는가. 오히려 인구며 농업생산력에 있어서도 수 백 년 전인 건국초에 비해 후대가 여건적으로도 더 유리했을 텐데 결과는 전혀 달랐다. 더이상 양반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국가가 요구하는 역으로부터도 면제되었다. 퇴계 이황만 하더라도 양반이었음에도 자발적으로 요역에 참여하기도 했었는데 후기에 이르면 양반이 군역을 사는 경우란 아예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도 양반이라고 관직을 차지하고 그를 이용해 재물을 모으는 한 편 이미 땅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농민들로부터 막대한 소작료를 거둬들이고 있으니 국가의 자원을 일방적으로 이들을 향해 흘러들어갈 뿐이었다. 그러니 나라에 돈이 있을 리 없다.

 

오죽하면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면 왕실의 사유재산인 내탕금이 국가의 재정을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다. 정작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한 양반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데다 양반들을 국가를 위해 동원할 수 없게 되다 보니 왕실이 사적으로 운용하고 관리하는 내탕금만도 못한 재정상황을 초래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이르면 내내 관리들은 왕실의 재산을 국가재정에 통합시키려 하고 있었는데 아마 그랬었다면 대한제국으로 가기도 전에 이미 일찌감치 조선왕조는 망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조선말 양반이 전체 인구의 70%였다는 것은 인용한 자료의 오류와 과장으로 인한 것이었지만 그 정도로 말기 조선의 상황은 비효율의 극치였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역시 비슷한 시기에 존속했던 명왕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더 골때리는 상황이라, 태조 주원장이 자기 후손들을 걱정해서 종친들을 위한 여러 법제들을 마련해 둔 것이 멸망에까지 이르는 원인이 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괜히 이자성의 농민군들이 종친인 왕들을 잡아 삶아 죽인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도 조선처럼 분가하여 책봉된 당대만 왕이고 이후 계속해서 대군에서 군으로 위로 격하되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한 번 왕으로 책봉되면 계속 왕부까지 후손들이 세습하고 있었다는 것이 결국 말기에 이르면 종친 자체가 비대해져서 국가의 재정과 자원을 뭉텅이로 씹어먹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더구나 종친이라는 이유로 주어진 여러 특권들을 아예 대놓고 휘두르는 과정에서 인근 백성들의 삶까지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으니 그 결과 이자성을 중심으로 한 농민들의 반란에 어이없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었다. 더 웃기는 것은 명왕실이 망할 위기에 놓이자 숭정제가 얼마간 재원을 마련해보려 심지어 자기 장인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음에도 정작 북경의 기득권들은 단 한 푼도 그를 위해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의 영화에 기대 특권을 누렸음에도 정작 그 위기에 자신도 함께 희생하기를 꺼린 기득권의 태도야 말로 당시 명의 현실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기득권의 수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대혁명 직전 프랑스 귀족의 수는 사실 이전보다 크게 늘거나 하지 않았었다. 당연한 것이 중세유럽에서 귀족으로서의 특권은 오로지 장자를 통해서만 계승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큰 아들 이후로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는 예비적인 존재일 뿐 더이상 같은 귀족으로서의 특권을 기대할 수 없는 잉여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속세로부터 떼어 놓아 성직을 살게 하거나, 그도 아니면 스스로 가문을 박차고 나와서 작위와 영지를 바라고 기사단을 꾸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면 자연스럽게 이들은 그냥 조상이 귀족이었던 평민으로 격하되어 가기 일쑤였다. 잘하면 원래 가문에서 봉신으로 직위를 세습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지만. 문제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유럽의 부가 증가하면서 이들 귀족들의 사치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 것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중상주의였다. 더이상 그들의 사치를 전통적인 농업생산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영주를 상인들에게 제물로 바치고 그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그를 가능케 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귀족들로부터 위임받은 새로운 부르주아들까지 국민들을 대상으로 수취에 나서게 되니 프랑스라는 국가 전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실제 역사에서도 그같은 비대해진 지배층을 갈아없는 과정들이 중간중간 존재해 온 것이기도 하다. 후한부터 시작해서 남북조시대를 거치며 비대해진 귀족들을 한 번에 갈아엎다시피 했던 주전충의 반란이 그 한 예라 할 것이다. 주천충이 나타난 자체가 도저히 못살겠다고 농민들이 황소를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킨 것에서 비롯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피지배층이 일어나 갈아엎지 않으면 후한이나 남북조시대처럼 지배층 스스로가 경쟁자를 배제하고 도태시키고 있기도 했다. 조선시대 당쟁이 치열했던 이유도 한정된 조선이라는 자원 안에서 최대한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비대해지는 양반의 특권을 스스로 조절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메이지유신이라는 것도 결국 그러한 과정 속에서 도태되어가던 여러 번들과 무사집단들, 그리고 기회를 노리던 평민들이 각축을 벌인 결과가 아니던가. 결국 일본도 갈수록 비대해지는 군부의 권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태평양전쟁으로 뛰어들어 패망하고 말았지만.

 

그러면 국가만 그러한가? 원래 보잉을 일구어낸 것은 자본이 아닌 비행기를 만드는 기술이었을 것이다. 보잉만이 아니다. 한때 미제라고 하면 최고를 뜻했을 정도로 미국의 유력기업들은 최고의 기술을 연구하고 실현해내는 기술자, 엔지니어들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이 성장하고 그로인해 더욱 커진 이익과 조직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차별되는 경영진들이 새롭게 대두하며 그들이 기업을 장악하게 되었다. 어떻게 얼마나 더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소비자가 구매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경영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단순히 눈에 보이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운영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한 이유다. 단순히 원가경쟁에서 밀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더이상 미국의 기술이 다른 나라들과 경쟁할 정도가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 대표적으로 문짝이 떨어져나가는 보잉의 비행기와 더이상 성능에 기대가 없는 인텔의 CPU가 그 한 예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장과 떨어져서 자신들이 당장 실현해야 할 이익만을 보는 사이 투자는 지지부진해지고 전략을 모호해지며 결국 기업의 경쟁력은 퇴락한다. 미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몰락해간 이유였다. 

 

어째서 독일과 같은 유럽의 나라들은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의 전환에 실패하고 있었는가. 기술자들조차 결국 시간이 지나면 관료화되고 마는 때문인 것이다. 그동안 내연기관차를 만들어오던 기술자들이 지금 자신들이 관성적으로 누리는 지위와 이익을 포기하지 못해 현상유지를 고집하느라 기회를 놓치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또 현장의 기술자들따위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던 한국이나 중국의 특수성이 승리한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고, 비대해진 조직은 반드시 정체되고 마는 것이다. 삼성이 지금처럼 어려워진 이유다.

 

결국은 이재용의 리더십이 아버지인 이건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원인인 것이다. 이재용이 확실하게 리더십을 가지고 관료화된 임원진을 제어할 수 있었다면 이전처럼 과감한 투자를 이어가며 최고수준의 기술진과 연구진을 통해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 한때 삼성의 스마트폰과 메모리반도체는 감히 경쟁할 상대가 없는 세계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니. 파운드리 역시 TSMC와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까지 한 때 이른 적 있었다. 문제는 의사결정에서 그러한 최고의 기술력을 일구어낸 일선 기술자 연구진들의 의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아니 과연 그같은 투자와 연구개발의 과정에서 의사결정은 얼마나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을 것인가. 비효율적인 낭비는 없었을 것인가. 그러니까 삼성전자 막내가 40대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이전보다 더 비대해진 임원의 비율에서 그들의 놓인 현실이 극명하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작 구조조정에는 그렇게 비대해진 임원진은 대상이 아니다. 전형적으로 망해가는 말기의 모습이다.

 

사실 삼성 이전에 엘지가 정체되어 있던 이유이기도 했다. 인정이 너무 많다. 인정에 이끌린 인사가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실제 일선에서 일하는 직원들보다 그들과 동떨어져 사고하는 임원의 비중과 권한이 너무 커졌다. 필요한 때 적절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하긴 삼성이라는 기업이 세워지고, 아니 삼성이 반도체로 두각을 드러내고 30년 정도 흘렀으면 꽤 오래갔다고 할 만할 것이다. 어차피 당장 망할 것도 아니고 상당기간 존속하며 지금 있는 임원들의 자리만 잘 지켜줄 수 있으면 크게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인 것이다. 어째서 세계최고의 기업들은 어이없이 경쟁력을 잃고 망하고 마는가. 기업에도 권력이 있고 기득권이 있기 때문이다. 특권은 낭비고 곧 비효율이다. 당연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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