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잘보면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아니 최소한 남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입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화원도, 보안원도, 시설관리원도, 조리사도 모두 시험을 봐서 뽑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이란 실기테스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시험이다. 서울대에서 미화원들에게 강제했던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 시험을 가장 잘 본 서울대 출신에 심지어 사법외무행정 3대고시 합격자라면 가장 우월한 인간들이라 할 수 있다.

 

단지 관심이 없어서 모를 뿐이다. 그다지 노력할 가치가 없어서 못하는 것 뿐이다. 자기들이 하려 하면 누구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실제 그동안 만났던 서울대 출신들에게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공통된 특징들이다. 항상 서울대 출신임을 드러내며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과시하려 하고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얼마나 우월한가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서로가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울대 나왔는데 마음만 먹으면 뭔들 못하겠는가.

 

윤석열과 최재형이 아무 준비도 없이 대뜸 대선에 출마하겠다 결심부터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보수는 몰라도 심지어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과 언론과 지식인들이 그들을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대 출신에 사법고시까지 합격했으니 당장은 몰라도 잘만 주위에서 가르치고 도와주면 최소한 서울대도 못나온 다른 정치인보다야 몇 배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서로 이념도 지향도 성향도 정책도 다름에도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서울대 나왔으면 언젠가 올바른 정답을 스스로 찾아내게 될 것이다. 자기들의 정답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식한 정도를 넘어섰다. 무식한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것이다. 그만큼 그들에게 평소 가치없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저 물류센터에서 몸쓰는 일이나 하는 나조차 경제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기만의 규준을 가지고 있는데 저들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지지한다. 그런데도 한 몸 바쳐 지지한다. 다른 이유를 생각할 수 없다. 더구나 윤석열이라면 문재인을 확실히 죽여 줄 테니까. 너무 뻔해서 말할 기운조차 없는 것이다. 날이 너무 덥다.

누군가 나에게 그리 묻더라. 정의당이 윤석열을 차기 대통령으로 지지한다는데 그 근거가 뭐냐고? 정의당이 윤석열을 차기 대통령감이라고 공식적으로 지지를 선언한 적이 과연 언제 있었느냐고? 그래서 대답해 주었다. 지금까지 당의 이름으로 윤석열을 위해 논평을 낸 곳이 어디였는가.

선거운동이란 기본적으로 내로남불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된다. 내가 하는 건 검증이고 네가 하는 건 네거티브다. 내가 하는 건 너의 자격을 검증하고자 하는 것이고 네가 하는 건 단지 인신공격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만 보더라도 그렇지 않은가. 누구는 검증이라 그러고 누구는 네거티브라 말한다. 그러면 윤석열의 아내와 장모의 사기행각과 윤석열 자신이 그에 관여한 정황을 파헤치기 위한 과거 검증을 두고 네거티브라 주장하는 것은 어디의 누구인가?

재미있는 것은 정의당 대변인 이름으로 윤석열 처가에 대한 검증을 여성에 대한 인신공격이고 네거티브라 공식적으로 주장한 것이 윤석열이 그 유명한 120시간 발언을 한 직후란 것이다. 하긴 120시간 발언 뿐이 아니었다. 늦게 알려졌지만 부정식품을 허용해야 한다는 발언 등 주옥같은 발언이 인터뷰를 통해 터져나온 뒤의 일이었다. 하긴 진중권은 대놓고 윤석열 실드를 치고 있더만. 재미있지 않은가? 민주당은 되도 않은 관용구 하나 가지고도 그 생난리를 치는데 윤석열에 대해서는 어떤 의혹이나 발언들에 대해서도 한 마디 비판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윤석열이 잘못이라 하니 탈원전도 잘못이고 김학의 수사도 잘못이다. 김학의가 출국하도록 내버려두었어야 했다.

무슨 뜻인가? 윤석열이 어떤 이념과 지향과 성향과 정책과 노선을 가지고 있든 정의당은 상관없이 윤석열을 지지하겠다. 이유야 당연히 하나다. 윤석열이라면 문재인을 죽일 수 있다. 노무현이 그랬던 것처럼 오욕속에 죽도록 만들 수 있다. 정의당이 노무현 이름을 들먹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를테면 자기 손으로 죽인 누군가의 이름을 계속 되뇌며 상대를 경고한다면 무슨 의미이겠는가. 무의식인 것이다. 너도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였을 때, 아니 죽이고 난 뒤에도 정의당이 그들에 한 팔을 거든 것을 나는 잊지 않는다. 

물론 오세훈 때도 그랬던 것처럼 정의당이 대놓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미친 짓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상 한겨레나 경향일보는 몰라도 정의당까지 대놓고 지지하는 것은 명분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오세훈 때도 정의당은 노골적으로 오세훈을 지지하면서 정작 겉으로는 여성주의 후보를 지지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아니 여성후보 자신이 당선되기 위한 선거운동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었다. 단지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오세훈의 잘못에는 침묵하며 민주당을 공격하는데만 모든 힘을 집중했을 뿐이었다. 한겨레 역시 그래서 의도적으로 오보를 내고 오세훈의 의혹을 똥통에 빠뜨린 것 아니던가.

120시간 노동도, 최저임금제 철폐도, 부정식품 허용과 환자에 대한 임의임상시험 허용 등의 주장들도 더이상 정의당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주장이란 것이다. 완전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불완전한 지금의 제도따위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다. 그를 위해서라면 불완전의 원인이 된 민주당을 파멸시켜야 한다. 무엇보다 문재인과 그 지지자들을 이 사회로부터 배제해야 한다.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이 죽어야 진짜 진보가 살 수 있다. 2007년 내가 어느 진보주의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노무현 때문에 진보가 망하고 있다.

당장 논평들을 보라는 것이다. 민주당을 향한 모든 네거티브는 검증이고 사실이며, 민주당이 시도하는 모든 검증은 네거티브고 악의적 공격이다. 다만 한겨레의 경우는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가능성을 재느라 때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준석을 배우라 민주당에 조언하던 한겨레였으니. 벌레새끼들이란 것이다.

이래서 내가 민주당 지지를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정권이 바뀌고 국민의힘이 의회까지 장악하면 어떻게 될 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기만 하다. 겨우 무기직 되었는데 해고가 쉬워질 테고, 차라리 일하는 시간을 줄여 일상의 여유를 챙겨볼까 하는 계산도 무모한 것이 되어 버리기 쉽다. 그게 국민의힘이다. 아니 정확히 이 사회 엘리트란 것들의 사고다.

 

아마 최재형이나 윤석열이나 어려서 부모에게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것이다.

 

"너 공부 열심히 안하면 저렇게 된다."

 

도시미화원이나, 혹은 공장노동자, 공사장 잡부들을 보면서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고통스러운지 계속해서 들으며 그를 동기삼아 공부해서 서울대 법대에도 진학하고 사법고시도 합격했을 것이다. 즉 저들은 그만한 삶을 사는 게 당연하다. 아니 오히려 저런 삶을 살지 않으면 안되는 이들이다. 저렇게 되지 마라.

 

명문대 출신 자칭 진보들이 더이상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진보의 가치에 천착하지 못하는 이유인 것이다. 아니 심지어 처음부터 노조집행부라는 꽃길을 걸었던 자칭 노동자총연맹들도 이제는 이해못하는 남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냥 노동자는 이렇다. 노동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그런 전형성 위에서 노동자 정책을 주장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노동자의 현실을 직접 몸으로 겪어 본 적이 없었다.

 

당장 할 수 있는 만큼이라도 최저임금을 올리고, 근로시간도 단축하고, 법정공휴일도 챙겨주고, 산업재해에 대한 대처도 하고, 필요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다. 자기들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냥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중대재해법도 정의당과 민주노총은 반대했었다. 참고로 중대재해법을 누더기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 국민의힘은 그 결과 노동존중의 정당까지 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것이 이 사회 엘리트란 것들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생각인 것이다. 더 적은 돈을 받더라도 더 많은 시간 일해서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도무지 사람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저질 식품이라도 값싸게 배부르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다. 우습게도 상당수 2030 청년세대가 그런 주장에 크게 동조하고 있기도 하다.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였어도 경쟁만 공정하다면 패배자나 낙오자는 그런 삶을 사는 것이 결과적으로 정의롭다. 괜히 20대 남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높은 것이 아니다.

 

비교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조응천 금태섭 박용진이라고 민주당에서 대놓고 이따위 소리 지껄이는 인간은 없었다. 하다못해 이상직조차도 대놓고 노동자의 삶과 지위 권리에 대해 주장하지는 못했었다. 같은 엘리트고 같은 기득권이지만 국민의힘은 물론 정의당과도 민주당이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때로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아무리 그런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을 지지한다는 게 노동자인 내게 가능한 일인가.

 

노동자를 진정으로 위하는 정당은 이제 하나 뿐이다. 민주당. 혹은 열린민주당. 정의당은 아니다. 정의당은 기득권 여성들을 위한 정당이다. 자칭 진보란 기득권 여성들을 위한 이념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가르쳐준다. 윤석열과 최재형을 지지하는 정의당이 주류들이 그 사실을 명확히 해 준다. 윤석열이 120시간 노동을 주장했음에도 정의당은 나서서 김건희를 변호하고 있었다. 영부인이 되려는 사람이지만 여성이니 검증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끝으로 지방으로 가면 생활비가 적게 들 테니 임금을 적게 받아도 괜찮을 것이란 주장 역시 그냥 관념에 의한 스테레오에 지나지 않는다. 거주비는 적게 드는데 문화생활을 좀 하려 해도 인프라가 열악해서 몇 배의 수고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도시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도 어렵게 품을 팔아야 겨우 구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래서 어떤 것들은 오히려 지방이 더 비싸기도 하다. 노동자는 이런 존재다. 지방은 이런 곳이다. 한 번 제대로 살아보기를 했는가.

 

어째서 2030은 국민의힘을 더 지지하는가. 특히 그토록 공정을 강조하는 2030들이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이고 있는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그 대다수는 대학생들일 것이다. 명문대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대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라. 그래서 민주당이 더이상 2030 남성들의 여론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윤석열과 최재형이, 그리고 정의당의 청년당원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엘리트의 현주소다. 서글픈 현실이다.

원래 여성주의에서는 집안에서 살림만 해도 배우자의 사회적 성과를 공유해야 한다 주장한다. 배우자가 밖에서 사회활동에만 오로지 집중할 수 있도록 모든 집안일을 책임지며 '내조'한 공을 인정해야 한다 여기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반 시민이어도 그런데 하물며 국정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이다. 심지어 국가수반의 배우자는 반드시 국가수반과 동행하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격식과 예우를 받게 된다. 그런데 대통령 배우자 되겠다는 사람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검증하지 말아야 하는가?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씨의 과거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이유는 하나다. 김건희 자신은 물론 그 친정어머니까지 윤석열이 검사시절 수많은 범죄에 연루된 의혹들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이 검사로서 자기 직분을 이용해서 이들 사건들을 강제로 덮었거나 오히려 피해자를 수사해서 처벌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그런데 당사자는 아니라 하니 이런저런 근거들을 찾는 와중에 과거 이야기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여성을 대상으로 그런 식의 검증을 한다는 것은 가혹하다. 여성은 내버려두라.

 

윤석열이 얼마전 주 120시간 근로 발언을 한 사실을 잊은 모양이다. 정확히 상관없을 것이다. 말하지 않았는가. 전 검찰총장 부인이자 대선후보의 배우자가 아니었다면 정의당도 저런 식으로 변호하고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여성주의에서 여성은 전문직 여성이다.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여성이다. 자신이 전문직이거나, 혹은 배우자가 전문직이거나,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여길만한 위치에 있는 이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윤석열이 노동에 대해 무어라 발언하든 여성주의자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보다는 정당한 집권자에게 권력을 넘겨주어 불의한 찬탈자를 응징해야 한다는 '정의'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윤석열을 지지한다.

 

그냥 남자문제가 아니다. 그냥 과거 직업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모든 행적들이 자신이 저지른 범죄들과 연관되기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 되겠다는 이의 배우자 아닌가. 장차 대한민국을 대표해서 세계의 정상들과 만나야 할 사람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대통령을 대신해서 얼굴을 비추게 될 사람이다. 무엇이 정의고 무엇이 진보인가. 그 전에 상식이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여전히 윤석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정의당과 경향일보를 보면서 새삼 떠올리게 된다. 여성주의는 진보가 아니다. 진보적 가치가 아니다. 저들의 여성주의는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후에도 그 지지를 포기하지 못하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그런 가치인 것이다. 그래서 여성후보인 박영선이 아닌 보수후보 오세훈을 지지했던 것이었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부동산 문제에 그리 민감하던 자칭 진보가 김현아를 대하는 것을 보라. 이제는 자칭 진보라는 말조차 너무 저들을 인정해주는 것은 아닌가 자괴감마저 든다. 벌레는 벌레다. 예외없다.

아주 오래전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였다. 베스트극장이었는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지금은 고인이 된 김무생씨가 주인공을 맡아 우연한 선행이 알려지며 세상의 주목을 받고 파멸해가는 어느 식당주인을 맡아 연기한 바 있었다. 갑작스런 세상의 관심에 더 큰 관심을 받고자 선행을 베풀다가 재산을 다 날리고, 자식들까지 주워다 기른 아이들로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데 마지막 장면이 정말 인상적이라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내 아내는 밤거리의 여자였다!"

 

아마 이 또한 자신의 선행으로 미담으로 세상에 받아들여지리라 믿고 그리 홀로 외쳤던 것이리라. 그러고보면 오래전 김대중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던 사람 가운데 아내가 다방 종업원이었던 이가 있었을 것이다. 법무부장관이었던가?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 합격해서, 사방에서 한 지위 한 재산 하는 집안이 열쇠까지 몇 개 씩 챙겨들고 달려드는 상황에 오로지 사랑 하나만 보고 과거를 묻지 않고 지금의 배우자를 선택했다. 오히려 불우하기에, 비참하고 참혹했기에, 사람들의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그 용기와 그 결단은 칭찬받을 만하다. 

 

정의당이 김건희를 두둔하고 나선 것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었다. 김건희의 과거와 상관없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윤석열이란 사람은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다.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비난하는 과거를 가진 여성을 아내로 맞아 지금까지 해로하고 있으니까. 정의당의 윤석열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과연 국민의힘에 입당한 지금도 - 하긴 상관없다. 이미 지난 보궐선거에서 정의당은 오세훈과 박형준을 공공연히 지지한 바 있었다. 주호영과 김현아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박주민을 비난했었고, 김학의 사건을 수사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이성윤을 비판하는 공식논평까지 냈었다. 아무튼 그런 여성까지 아내로 맞이할 수 있는 윤석열을 비판해서는 안된다.

 

사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었다. 그래서 굳이 김건희의 과거를 공개적으로 문제삼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니 그 전에 김건희 자신이나 윤석열이나 일부 인터넷매체에서 문제삼는 줄리는 자신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한 바 있었다. 사실을 알 수 없으니 인터넷 매체의 주장만 믿고 그를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설사 사실이더라도 그것이 오로지 사랑이란 감정에 의한 것이었다면 남자로서 윤석열을 칭찬해 줄 만하다 여겼었다. 나라도 그런 과거를 가진 여성이라면 어지간히 사랑하지 않고서는 몇 년이나 같이 살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문제는 한 쪽에서는 부정하면서 한쪽에서는 애써 문제가 아니라 주장하는 모순된 태도일 것이다. 부끄럽지 않다면 어째서 부정하는 것이며, 애써 부정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어째서 문제가 아니라 주장하는 것인가.

 

당당하면 까면 된다. 그러면 지지해 줄 용의도 있다. 최소한 사랑해서 그런 과거 따위 아랑곳하지 않았다면 그 하나만은 분명 인정할만한 부분인 것이다. 다만 그렇다면 자신과 상관없는 특정 여성에 대한 관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긴 정의당이며 김경진이며 장제원이며 당사자는 아니라는데 왜 자꾸 사실로 못을 박으려 드는 것인지. 그리고 단지 줄리를 조롱했을 뿐인 그림에 어째서 윤석열 자신이 직접 나서야 했던 것인지.

 

아무튼 이낙연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아주 제대로 먹인 느낌이기는 했었다. 조선시대 남녀의 성기를 표현하는 단어가 '더러운 아래'였었다. 역모로 국문이 열리면 죄인들의 말 가운데 차마 옮겨적지 못할 내용들을 '참담하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었다. 벽화의 내용이 사실이든 허구든 사실 썩 보기에 좋은 내용은 아닌 것이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중요하다. 사실이든 아니든. 사실일 경우에 오히려 더욱. 절묘하긴 했다.

한국 여성주의는 이 셋만 기억하면 된다. 이화여대, 개신교, 그리고 김활란. 참고로 이 씨발년들은 여성주의의 시작을 개신교의 포교로 잡고, 그 개신교의 자유로운 포교가 이루어진 일제강점기를 근대화의 기점으로 여긴다. 한 마디로 식민지근대화론자이며 친일옹호자들인 셈이다. 그러니 김활란에 대한 추앙으로 이어진다.

 

이화여대의 선민의식은 서울대의 그것을 아득히 넘어설 정도다. 급은 당연히 서울대와는 거리가 먼데 자신들은 그 정도 급은 된다 여기는 것들이다. 하긴 이화여대는 전통적으로 있는 집 자식들이 지원해 다니는 학교였었다. 중산층만 되어도 위화감 느껴서 다니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 것이 8,90년대였다. 민주화운동 시기에도 가장 소극적이던 부류였었고. 그 선민의식이 여성주의와 만난 것이 지금의 한국 여성주의다. 여성주의이기는 한데 힘없고 돈없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은 대상이 아니다. 여성주의자들이 청소노동자나 주방노동자 여성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걸 본 사람.

 

같은 여성인 비정규직노동자, 일용직노동자, 저임금노동자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도 역시 여성주의에 포함될 터였다. 하지만 노동운동은 여성운동과 전혀 다른 것이다. 여성주의를 표방한 이후 정의당은 노동자를 버렸다. 최저임금인상도 반대, 근로시간 단축도 반대, 대체공휴일도 반대, 다 반대다. 과연 여성주의가 진보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튼 또 이화여대란 이름이 나오네. 개신교란 종교가 나오고. 꽃길만 걸었을 여성이다. 한 번도 가장 어려운 곳에서 평범한 여성들이 겪었을 현실의 문제들을 경험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대개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그렇다. 정의당에도 이제 그런 경험을 한 이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현실이 그렇다. 좆같지만.

올초 뜬금없었던 사면발언 이후 이낙연도 아마 깨달았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 없이 자기 힘으로 대통령은 어림도 없다. 민주당 경선도 통과하기 어렵다. 사실 지금 이낙연이 이나마 지지를 받는 것도 문재인 대통령이 알게모르게 이낙연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아예 대놓고 이낙연과 선을 그었으면 지금 지지율은 추미애와 같이 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게 이낙연의 한계다. 자기 힘만으로는 국회의원 배지 한 번 달기도 쉽지 않다.

 

언론이 만든 의회독재 프레임에 누가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가 굳이 살펴볼 필요조차 없다. 문제는 그런 놈들이 민주당 안에 적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그런 놈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국민의힘과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가 민주당에 - 심지어 개혁파로 여겨지는 이들 가운데서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의원총회에서 의결되었다. 그렇다는 것은 대선후보 가운데서도 그들과 입장을 같이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언론의 의회독재 프레임부터 풀고 나서 당당하게 국민의힘과 경쟁하고 협상하며 개혁을 이뤄 나가자. 이미 기득권인 정치인들의 사고방식은 별 것 없는 시민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낙연이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처음부터 지지하며 나섰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당원과 지지자들의 반대가 워낙 뜨거우니 - 더구나 자신의 핵심지지층인 똥파리들조차 송영길과 윤호중을 욕하면서 반대하고 나서고 있으니 이대로 자기 신념대로 지지하고 나서기에 곤란한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먼저 추미애가 치고 나가면서 정세균까지 한 마디 거든 바 있었다. 일단 합의는 지지하는데 법사위의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는 조치는 필요하다. 그냥 넘기는 게 아니라 법사위가 더이상 개혁입법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존재하지 않도록 아예 그 기능 자체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법사위의 특권을 축소하지 않으면 양보는 없다.

 

솔직히 포기했었다. 의원총회 결과를 보고 이건 그냥 특정한 누군가의 분탕질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 다수 국회의원들의 합의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합의에는 청와대도 예외가 아니었었다. 소수 국회의원들이 자기 신념을 걸고 반대하고 나섰지만 결국 민주당의 핵심 가운데 다수는 이번 합의에 동의하고 있었다. 설마 바뀌겠는가. 그런데 참 극성스런 지지자들 덕분에 꽤나 기대해도 좋을 만한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면 이해해 줄 필요가 없지. 이해라기보다 포기다. 원래 그런 새끼들이니까. 그런데 바뀔 수 있으면 바꾸는 것이 옳다.

 

자구체계심사 이외의 다른 심사를 못하게 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도록 하는 정도로도 부족하다. 자구체계심사 자체를 폐지하고 대통령의 거부권과 마찬가지로 설사 수정할 부분이 있어도 해당 상임위에서 직접 하고 다시 올릴 경우 무조건 표결로 부쳐 상정하도록 체계를 바꿔야 한다. 그러면 법사위를 양보해도 크게 문제삼지 않겠다. 그런 정도라면 법사위 양보하든 말든 그보다 야당과 협치하는 이미지에 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욕심을 부려 보련다. 민주당에 대한 마지막 기대다. 기대할 것이 없는데도 혹시나 싶은, 지지자들에 걸고 믿어보는 기대인 것이다. 민주당의 딜레마다. 민주당처럼 당과 지지자가 따로 노는 정당도 드물 것이다. 민주당을 가장 싫어하고 의심하고 미덥지 못해 하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민주당 지지자 자신들이다. 그래서 항상 긴장관계다. 그 지지자 버리고 싶어 민주당은 또 항상 국민을 팔고 다니는 것이고. 이번은 어떨까. 하여튼 개새끼들이다.

그동안 내각제 노래를 부르던 인간들이 어떤 놈들이었는가 떠올려 보자. 한 마디로 토호들이다. 자기 이름이나 혹은 당의 이름을 앞세워 출마하면 거의 무리없이 당선될 수 있는 지역구를 최소 하나 이상 가지고 있는 놈들이다. 대통령 선거까지는 무리더라도 지역구 선거에서라면 거의 필승을 자신하고, 그렇기 때문에 지역구 선거만으로 한 번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자리에도 한 번 앉아보자. 대체로 어떤 놈들이냐면 민주당에서는 주로 호남 지역구인 놈들이, 국민의힘에서는 영남이 지역구인 놈들이 그따위 소리를 지껄인다.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자기 이름만으로 몇 선이나 내리 당선된 이른바 중진들이 헛된 꿈을 꾸며 내뱉는 소리다. 그러면 나머지는 무엇인가?

 

물론 이낙연이라도 다수 계파를 거느리고 민주당의 공천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호남에서 충분히 토호 노릇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호남에 기반이 미약하기는 하지만 민주당이 가진 기반에 기대 계파를 배경으로 민주당의 이름을 앞세울 수 있으면 다수  계파의 수장으로서 보다 수월하게 더 주도적인 위치에 오를 수도 있다. 문제는 호남 바깥이다. 충청이 민주당의 텃밭인가? 서울과 경기가 민주당의 안마당인가? 전국 어디에 호남을 제외하고 민주당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지역구가 몇 개나 있기는 한가? 이번 보궐선거에서 드러났을 것이다. 서울에서도 민주당이 전패하는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을. 민주당의 이름을 앞세운다고 당연하게 표를 주는 유권자따위 호남에도 이제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지자 다수가 반대하는 내각제를 관철해서 과연 금배지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박병석의 자가발전일 가능성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멍청하기로 이제 갓 국회의원 배지를 단 초선 나부랭이들이 지역구만 잘 받는다고 재선하고 삼선하고 그래서 중진이 되어 내각제에서 한 자리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가지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당장 경선에서 승리하기만 하면 대통령 자리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데 이낙연이 그런 괜한 수작에 넘어갈 머저리는 아닌 것이다. 차라리 경선에서 이길 새로운 전략을 고민하면 고민했지 내각제는 지금 이낙연에게 해당사항이 없다. 대통령을 꿈꾸는 자가 대통령의 권한을 나눈다? 이낙연의 지능이 박근혜 이하라면 가능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 내각제라는 것인가?

 

지난 총선에서 공천이 그렇게 이루어졌었다. 다수 중진들이 경선에서 탈락하며 내각제가 되더라도 한 자리 노릴만한 인물들이 상당수 국회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기 영향력만으로 이후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 현실을 모른다는 자체부터 지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 방에 역전이 가능한 대선을 포기하고 이길지 질지도 불확실한 총선에 모든 것을 걸면서 지지자를 등지는 멍청한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모른다면 더 큰 문제다. 사악한 것보다 더 사악한 것이 책임있는 자가 무능하면서 그 무능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그런데 저 새끼들 대가리는 똥통이라. 구더기가 괜히 들끓는 게 아니다. 더런 새끼들.

시작은 임대차 3법이었었다. 압도적인 의석을 바탕으로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접안을 민주당의 의지만으로 관철시켰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여론의 비난과 지지율의 추락 뿐이었다. 의회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으니 그 책임 또한 집중된다. 선의에 의한 것이고 결과가 나쁘지 않은데도 언론의 사실왜곡에 얼마든지 여론이 돌아설 수 있다. 그렇더라도 밀어붙여서 결과로써 보여주었으면 상관없었을 테지만 거기서 너무 우물거리며 힘을 빼고 말았다. 압도적인 의석과 모든 상임위를 독점한 상황과 그럼에도 주저하며 많은 것을 하지 못한 과정들이 중첩된다. 지금 상황에서 민주당의 의지만으로 밀어붙이면 반드시 여론의 역풍을 맞는다.

 

어차피 민주당이 주류정당으로 거듭나려면 당연하게 감수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선명함만을 바란다면 정의당으로 족하다. 모두가 한 가지 개혁만을 추구하려 한다면 정의당 정도가 충분하다. 이 사회의 주류 기득권이 자신들의 신념과 지향, 목적을 위해 다른 정당이 아닌 민주당을 선택한다. 성공한 기업가, 법률가, 사회활동가들이 민주당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들의 성향은 과연 진보에 가까울까? 보수에 가까울까?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부분에서는 - 특히 자신의 이해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보수에 가깝기 쉽다. 그렇더라도 차마 국민의힘에 공천을 신청하기란 꺼려지는 것이 많다. 지난 총선에서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들이 많았음에도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한 주류기득권에 속하는 인사들이 상당했음을 떠올려 보라. 

 

가진 것이 많고 지킬 것이 많으면 당연히 겁이 많아지고 행동은 굼떠진다. 좋은 뜻으로 정치하면서 욕까지 들어먹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어떤 욕을 듣더라도 굽히지 않을 순수함이란 현실정치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질적 존재인 것이다. 크게 되면 아주 크게 되겠지만 대개 그 전에 싹부터 꺾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이낙연의 리더십이 중요했는데 이낙연 또한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이니. 따라서 이미 힘이 빠질대로 빠진 지금 민주당이 개혁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의회독점이라는, 덕분에 책임이 집중되는 지금 상황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일단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개짓거리를 좀 해 주어야 민주당의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 워낙 국회에서 힘을 쓰지 못하니 평소 당연하게 싸지르던 개짓거리도 못해서 지지율만 오히려 오르고 있는 중이다. 원외에서 자기들끼리 보이는 개짓거리를 보면 기회만 조금만 주어도 당장 예전의 비호감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국민의힘이다.

 

적이 있어야 한다. 그보다 자기 손에 들린 너무나 과도한 힘을 줄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느닷없이 로또에 맞아 버린 일용직 노동자의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겨우 한 달 100만원도 쓰지 못하던 구차한 삶에 한 번에 무려 수 십억이라는 돈이 들어오고 말았다. 오히려 무섭다. 오히려 불안하다. 더구나 그로 인한 언론과 여론의 공격도 너무 치열하다. 리미트도 되어 준다. 이제 다시 위원장 자리가 국민의힘에 넘어가면 그나마 추진하던 개혁법안도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안되니 서두를 것은 서두르자. 소인배들이라 그렇다. 그런 수준을 벗어나 오롯이 자기길을 갈 수 있어야 큰 정치를 할 수 있다. 언론에 중요하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인이란 대개 그런 이들이다. 어쩔 수 없다. 현실이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으면 미국 민주당을 보면 된다. 어째서 샌더스가 민주당 지지층 안에서 크게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는가. 그리고 또 어째서 그럼에도 민주당 지지층에서 그를 비토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 결집하게 되었을까. 미국 민주당은 한국 민주당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다. 그들 자신이 또 하나의 기득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다른 기득권을 대변하며 그로 인해 서로 다른 성향과 지향, 목적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벗어나 있던 것이 샌더스였던 것이었고. 버락 오바마의 일부 진보적인 정책은 다수 보수적인 정책들과 균형을 이룬다. 

 

어차피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으니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진 것이다. 유시민이 한나라당 집권을 바라보던 시각도 이와 유사했다. 민주당 주류 입장에서 지금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들이 없기에 그저 적절히 더 큰 문제만 일어나지 않게 조율하고 관리하는 정도만으로 더 크게 나빠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름대로 좋은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럴 위치에 있는 인간들이기도 한 것이다. 변호사에, 기업가에, 성공한 전문직들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의 시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인가. 이입하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당하는 놈만 당하고 억울한 놈만 억울하다. 나와는 상관없다. 그게 보수란 것이다. 그런 놈들끼리 서로 합의하며 가능한 것들을 바꿔나가는 게 사실상 현실정치란 것일 테고.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요즘 내가 많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의 폭이 좁아졌다. 사실 더 거대한 더 미래의 정의란 것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연금이나 받으며 살아가게 될 나에게 크게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 건 아직 남은 세월이 길고, 혹은 남겨주어야 할 후손이 있는 이들의 몫인 것이다. 한 걸음만 나가도 좋다. 아니 그 한 걸음을 물러서지만 않아도 크게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이명박근혜의 사면은 아니다. 그게 내가 이낙연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건 후퇴도 너무 큰 후퇴다.

 

아무튼 의원총회의 결과만 보더라도 민주당 정치인들의 속내나 사정 성향등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더구나 상임위원장 자리의 양보라는 것도 원래 작년 원구성하면서 민주당이 제안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법사위의 운영에 대해서는 국회법에 명시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크게 걸리기는 하지만 뭐 어차피 중요한 법안 다 통과시키고 나면 크게 문제도 아니다. 남은 기간 동안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시 너무 더워서 힘이 빠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송영길이 당대표가 되고 기대치를 크게 낮춰 버린 탓일까? 그보다 이낙연 체제의 민주당에 너무 실망해서 이나마라도 의지를 보이는 것이 반가운 것일까? 민주당은 이제 주류정당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운동가의 시대는 끝나가는 듯하다.

이재명을 보면 젊은 시절의 유비를 떠올리게 된다. 유비가 괜히 공손찬과 형아우하며 같이 놀았던 게 아니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오로지 자기 실력만으로 인정받고 그 위치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 만큼 때로 오만하고 무례하며 완고한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안희현 현승으로 있던 시절 독우가 내려와 뇌물을 요구하자 바로 매질하고는 도망쳐 버린 것이 그 한 예다. 내가 옳으니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옳다.

 

자수성가한 사람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내가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의 노력과 실력 때문이다. 나의 판단과 나의 방식이 옳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의 조언도 가려서 듣게 된다. 내가 옳다고 여기면 좋은 조언이고, 아니라 여기면 다 쓸데없는 헛소리들이다. 공손찬이나 원소나 그런 점에서 자기에 대한 확신 때문에 한 시대를 풍미한 만큼 결국 그것이 결점으로 작용하며 몰락한 이들이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공손찬과 유비가 다른 점이다. 공손찬은 하북을 거의 평정한 상태에서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런 자신을 밀어붙였지만 유비는 어느새 천하의 대의에 귀를 열고 여론과 명분에 마음을 여는 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역사가 유비를 기억하고 공손찬을 기억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부패한 관리를 두들겨패고는 관직도 뒤로 하고 도망치는 모습에 환호하더라는 사실만 기억한다. 후련하다. 시원하다. 통쾌하다. 하지만 그 결과 유비는 그나마 얻은 관직도 내던지고 일개 군벌인 공손찬에 자신을 의탁해야만 했었다. 과연 후한의 관리를 폭행하고 관직마저 무책임하게 내던진 채 도망친 자를 후한의 체제는 이후로도 다시 발탁해서 기회를 주려 할 것인가. 그래서 유비가 공손찬 휘하에 있는 동안 자기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변신을 꾀하게 되었던 것이다. 확실히 공융을 도와주려 북해로 간 이후의 유비와 독우를 두들겨패던 유비는 다른 사람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독우를 두들겨패던 당시의 유비와 닮은 것은 관우와 장비의 복수를 하겠다고 이릉으로 쳐들어가던 당시의 유비였을 것이다. 그게 유비의 본질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대부분 생을 유비는 천하의 대덕으로써 인애와 관용의 대명사로써 살아가고 있었다. 이재명에게 가장 기대한 부분이었다. 유시민이 기대한 부분들일 테고.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재명이 민주당 안에 강한 비토층을 만든 이유였을 것이다. 자기에 대한 강한 확신은 자기의 적이라 여기는 상대에 대한 강한 적의로 흔히 나타나게 된다. 자기를 절대시하다 보니 자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쉽게 단정하고 적대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경선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역시 성장했구나 싶었는데 역시 본질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지지자가 자기에게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문자로 쏟아냈다고 바로 그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공개적인 장소에 올리다니. 자기에 대한 강한 확신이 부당하다 여기는 요구나 질책 비판등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재명을 속좁다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명이 유비처럼 되러면 진짜 몇 번은 죽었다 살아나는 시련이 필요한 것일까.

 

분명 많이 발전하기는 했다. 정치인으로서 확실히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때때로 보이는 이런 모습들이 불안감을 부추긴다. 공손찬의 최후가 너무나 비참했던 것처럼, 유비가 이릉에서 모든 것을 잃었던 그 순간들처럼 자기에 대한 너무 강한 확신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쉽게 좌절로 절망으로 바뀌고 만다. 그래서 그릇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그릇은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으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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