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보면 젊은 시절의 유비를 떠올리게 된다. 유비가 괜히 공손찬과 형아우하며 같이 놀았던 게 아니다. 자기에 대한 확신이 강하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오로지 자기 실력만으로 인정받고 그 위치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 만큼 때로 오만하고 무례하며 완고한 모습을 보이곤 했었다. 안희현 현승으로 있던 시절 독우가 내려와 뇌물을 요구하자 바로 매질하고는 도망쳐 버린 것이 그 한 예다. 내가 옳으니 세상이 뭐라 하든 나는 옳다.

 

자수성가한 사람에게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내가 지금의 위치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의 노력과 실력 때문이다. 나의 판단과 나의 방식이 옳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의 조언도 가려서 듣게 된다. 내가 옳다고 여기면 좋은 조언이고, 아니라 여기면 다 쓸데없는 헛소리들이다. 공손찬이나 원소나 그런 점에서 자기에 대한 확신 때문에 한 시대를 풍미한 만큼 결국 그것이 결점으로 작용하며 몰락한 이들이란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공손찬과 유비가 다른 점이다. 공손찬은 하북을 거의 평정한 상태에서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그런 자신을 밀어붙였지만 유비는 어느새 천하의 대의에 귀를 열고 여론과 명분에 마음을 여는 법을 깨우치고 있었다. 역사가 유비를 기억하고 공손찬을 기억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부패한 관리를 두들겨패고는 관직도 뒤로 하고 도망치는 모습에 환호하더라는 사실만 기억한다. 후련하다. 시원하다. 통쾌하다. 하지만 그 결과 유비는 그나마 얻은 관직도 내던지고 일개 군벌인 공손찬에 자신을 의탁해야만 했었다. 과연 후한의 관리를 폭행하고 관직마저 무책임하게 내던진 채 도망친 자를 후한의 체제는 이후로도 다시 발탁해서 기회를 주려 할 것인가. 그래서 유비가 공손찬 휘하에 있는 동안 자기에 대한 반성과 더불어 변신을 꾀하게 되었던 것이다. 확실히 공융을 도와주려 북해로 간 이후의 유비와 독우를 두들겨패던 유비는 다른 사람이라 봐도 좋을 정도로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었다. 독우를 두들겨패던 당시의 유비와 닮은 것은 관우와 장비의 복수를 하겠다고 이릉으로 쳐들어가던 당시의 유비였을 것이다. 그게 유비의 본질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대부분 생을 유비는 천하의 대덕으로써 인애와 관용의 대명사로써 살아가고 있었다. 이재명에게 가장 기대한 부분이었다. 유시민이 기대한 부분들일 테고.

 

지난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재명이 민주당 안에 강한 비토층을 만든 이유였을 것이다. 자기에 대한 강한 확신은 자기의 적이라 여기는 상대에 대한 강한 적의로 흔히 나타나게 된다. 자기를 절대시하다 보니 자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쉽게 단정하고 적대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경선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역시 성장했구나 싶었는데 역시 본질이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지지자가 자기에게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문자로 쏟아냈다고 바로 그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공개적인 장소에 올리다니. 자기에 대한 강한 확신이 부당하다 여기는 요구나 질책 비판등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이재명을 속좁다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재명이 유비처럼 되러면 진짜 몇 번은 죽었다 살아나는 시련이 필요한 것일까.

 

분명 많이 발전하기는 했다. 정치인으로서 확실히 비약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때때로 보이는 이런 모습들이 불안감을 부추긴다. 공손찬의 최후가 너무나 비참했던 것처럼, 유비가 이릉에서 모든 것을 잃었던 그 순간들처럼 자기에 대한 너무 강한 확신은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쉽게 좌절로 절망으로 바뀌고 만다. 그래서 그릇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재명의 그릇은 그것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아쉬운 부분이다. 지금으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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