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임대차 3법이었었다. 압도적인 의석을 바탕으로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접안을 민주당의 의지만으로 관철시켰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여론의 비난과 지지율의 추락 뿐이었다. 의회의 모든 권한을 독점하고 있으니 그 책임 또한 집중된다. 선의에 의한 것이고 결과가 나쁘지 않은데도 언론의 사실왜곡에 얼마든지 여론이 돌아설 수 있다. 그렇더라도 밀어붙여서 결과로써 보여주었으면 상관없었을 테지만 거기서 너무 우물거리며 힘을 빼고 말았다. 압도적인 의석과 모든 상임위를 독점한 상황과 그럼에도 주저하며 많은 것을 하지 못한 과정들이 중첩된다. 지금 상황에서 민주당의 의지만으로 밀어붙이면 반드시 여론의 역풍을 맞는다.

 

어차피 민주당이 주류정당으로 거듭나려면 당연하게 감수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선명함만을 바란다면 정의당으로 족하다. 모두가 한 가지 개혁만을 추구하려 한다면 정의당 정도가 충분하다. 이 사회의 주류 기득권이 자신들의 신념과 지향, 목적을 위해 다른 정당이 아닌 민주당을 선택한다. 성공한 기업가, 법률가, 사회활동가들이 민주당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들의 성향은 과연 진보에 가까울까? 보수에 가까울까?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어도 다른 부분에서는 - 특히 자신의 이해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보수에 가깝기 쉽다. 그렇더라도 차마 국민의힘에 공천을 신청하기란 꺼려지는 것이 많다. 지난 총선에서 여러가지 불리한 조건들이 많았음에도 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한 주류기득권에 속하는 인사들이 상당했음을 떠올려 보라. 

 

가진 것이 많고 지킬 것이 많으면 당연히 겁이 많아지고 행동은 굼떠진다. 좋은 뜻으로 정치하면서 욕까지 들어먹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어떤 욕을 듣더라도 굽히지 않을 순수함이란 현실정치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질적 존재인 것이다. 크게 되면 아주 크게 되겠지만 대개 그 전에 싹부터 꺾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이낙연의 리더십이 중요했는데 이낙연 또한 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경우이니. 따라서 이미 힘이 빠질대로 빠진 지금 민주당이 개혁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의회독점이라는, 덕분에 책임이 집중되는 지금 상황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 일단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개짓거리를 좀 해 주어야 민주당의 지지율에 도움이 된다. 워낙 국회에서 힘을 쓰지 못하니 평소 당연하게 싸지르던 개짓거리도 못해서 지지율만 오히려 오르고 있는 중이다. 원외에서 자기들끼리 보이는 개짓거리를 보면 기회만 조금만 주어도 당장 예전의 비호감도를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국민의힘이다.

 

적이 있어야 한다. 그보다 자기 손에 들린 너무나 과도한 힘을 줄일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느닷없이 로또에 맞아 버린 일용직 노동자의 상황과 비슷한 것이다. 겨우 한 달 100만원도 쓰지 못하던 구차한 삶에 한 번에 무려 수 십억이라는 돈이 들어오고 말았다. 오히려 무섭다. 오히려 불안하다. 더구나 그로 인한 언론과 여론의 공격도 너무 치열하다. 리미트도 되어 준다. 이제 다시 위원장 자리가 국민의힘에 넘어가면 그나마 추진하던 개혁법안도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는 아무것도 안되니 서두를 것은 서두르자. 소인배들이라 그렇다. 그런 수준을 벗어나 오롯이 자기길을 갈 수 있어야 큰 정치를 할 수 있다. 언론에 중요하게 이름이 오르내리는 정치인이란 대개 그런 이들이다. 어쩔 수 없다. 현실이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으면 미국 민주당을 보면 된다. 어째서 샌더스가 민주당 지지층 안에서 크게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는가. 그리고 또 어째서 그럼에도 민주당 지지층에서 그를 비토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 결집하게 되었을까. 미국 민주당은 한국 민주당보다 오히려 더 보수적이다. 그들 자신이 또 하나의 기득권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다른 기득권을 대변하며 그로 인해 서로 다른 성향과 지향, 목적을 가지게 되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벗어나 있던 것이 샌더스였던 것이었고. 버락 오바마의 일부 진보적인 정책은 다수 보수적인 정책들과 균형을 이룬다. 

 

어차피 지금도 그리 나쁘지 않으니 더 나빠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아진 것이다. 유시민이 한나라당 집권을 바라보던 시각도 이와 유사했다. 민주당 주류 입장에서 지금도 크게 문제가 되는 것들이 없기에 그저 적절히 더 큰 문제만 일어나지 않게 조율하고 관리하는 정도만으로 더 크게 나빠지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름대로 좋은 결과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럴 위치에 있는 인간들이기도 한 것이다. 변호사에, 기업가에, 성공한 전문직들이 얼마나 사회적 약자의 시각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인가. 이입하며 공감할 수 있을 것인가. 당하는 놈만 당하고 억울한 놈만 억울하다. 나와는 상관없다. 그게 보수란 것이다. 그런 놈들끼리 서로 합의하며 가능한 것들을 바꿔나가는 게 사실상 현실정치란 것일 테고.

 

마음에 들지는 않는데 아주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요즘 내가 많이 피곤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가치의 폭이 좁아졌다. 사실 더 거대한 더 미래의 정의란 것은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연금이나 받으며 살아가게 될 나에게 크게 해당사항이 없다. 그런 건 아직 남은 세월이 길고, 혹은 남겨주어야 할 후손이 있는 이들의 몫인 것이다. 한 걸음만 나가도 좋다. 아니 그 한 걸음을 물러서지만 않아도 크게 상관하지 않겠다. 다만 이명박근혜의 사면은 아니다. 그게 내가 이낙연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건 후퇴도 너무 큰 후퇴다.

 

아무튼 의원총회의 결과만 보더라도 민주당 정치인들의 속내나 사정 성향등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더구나 상임위원장 자리의 양보라는 것도 원래 작년 원구성하면서 민주당이 제안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법사위의 운영에 대해서는 국회법에 명시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크게 걸리기는 하지만 뭐 어차피 중요한 법안 다 통과시키고 나면 크게 문제도 아니다. 남은 기간 동안 무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역시 너무 더워서 힘이 빠져 버린 것일까? 아니면 송영길이 당대표가 되고 기대치를 크게 낮춰 버린 탓일까? 그보다 이낙연 체제의 민주당에 너무 실망해서 이나마라도 의지를 보이는 것이 반가운 것일까? 민주당은 이제 주류정당이다.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운동가의 시대는 끝나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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