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거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조국 이야기를 들고 나온 초선년놈들이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섯 년놈들이 언론에 놀아나 조국을 걸고 넘어지지 않았다면 굳이 신임 당대표가 조국 문제를 들먹일 필요가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바로 다음해 치른 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조국을 앞세워 야당과 언론이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전혀 상관없이 180석이라는 초유의 결과를 이루어냈다. 그러면 끝난 것 아닌가.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선거에서 참패하며 당이 위축된 상황에 초선 년놈들이 조국을 걸고 넘어지는 바람에 선거의 패배와 조국 문제가 이상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언론이 조국을 빌미로 민주당을 공격할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래봐야 표창장이고 그래봐야 인턴증명서인데 국민의힘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에는 철저히 침묵하는 언론에 의해 세상에 다시 없을 죄악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김학의마저 무고한 일반인이라는 언론의 수작에 부화뇌동해서 이익을 챙기려는 놈들까지 하나둘 더해지며 조국 문제는 민주당에게 있어 풀지 않으면 안되는 올가미처럼 되어 버렸다. 이대로 묻고 지나가기에는 선거의 패배가 참 뼈아프고, 당내의 다른 목소리들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래서 적당히 사실관계만을 가지고 국민들이 무엇에 분노했는가에 대해서만 적확하게 사과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범죄여부와 상관없이 그로 인해 국민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불쾌감을 가졌다면 공당으로서 사죄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으로서는 그래도 사과했다는 명분이 필요했으니 그를 사과로 만들고 만다. 하지만 그래봐야 결국 조국 자신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표명한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일 뿐이다.

 

지금 당의 대선주자들은 당원과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으려 조국 이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중이다. 조국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대선에서 당원과 지지자의 결집을 저해할 뿐이고, 그렇다고 언론이 이처럼 기세등등한데 완전히 묻고 지나가려면 여러가지로 걸리는 것이 있다. 그러니까 누가 문제라고?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초선 5인방. 이 놈들이 조국을 이슈로 끌어오느라 젠더문제에 있어서도 이준석에게 이슈를 선점당한 것이다.

 

누구의 사주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나보면 알 것이다. 그 전에 이소영 그 잡것은 내가 의왕으로 다시 이사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다음 총선에 출마도 못하게 만들고 말겠다. 하긴 지역구 관리 개판이라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작지 않더만. 결국은 그 첫단추를 잘못 끼운 결과가 송영길에게 독박으로 돌아온 것이다. 물론 이 역시 결과를 봐야 알 수 있다. 언론개혁과 검찰개혁을 과연 송영길 대표 체제 아래에서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일단은 나쁘지 않다.

송영길을 우습게 봤다. 그러고보면 뭔 이슈가 있을 때마다 토론프로그램에 대표로 출연해서 나름 선전을 벌이던 인물이다. 그래서 초선 나부랭이들이 근본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조국과 거리를 분명히 하던 이낙연조차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는 열심히 조국을 팔아먹고 있는 중이다.

 

지지자 없이는 아무것도 안된다. 수십만 진정당원이 있기에 민주당은 지금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열린우리당과 과거의 민주당을 모두 경험했던 중진이기에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더구나 송영길은 확고한 지역기반을 가진 토호가 아닌 대중적인 인기와 지지에 기대 정치를 하는 대중정치인이다. 당대표가 되었다고 마음대로 하기에는 그 기반이 많이 취약하다. 송영길과 가까운 이른바 86들의 성향을 보더라도 혼자 튀기에 어려움이 있다.

 

아직까지 무난하다. 욕심이 애매하게 크고 애매하게 작다. 자기 정치를 하고 싶은데 그에 대한 확고한 방향성 같은 것은 없다. 그러니까 언론이 좋게 써주고 대중이 좋게 봐주는 정도면 좋지 않겠는가. 그런 애매함이 아직까지 적당한 정도에서 크게 실수하지 않으며 정도를 지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타난다. 소인배의 정치가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역시 잘만 유도하면 송영길 덕분에 숙원인 개혁들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내 입장에서 민주당 지지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기껏 해고가 어려운 무기직이 되었는데 민주당이 힘을 잃으면 그마저 의미를 잃을 수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근로조건도 좋아지고 급여도 올랐으며 기간제들까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정년 맞을 때까지는 지금의 상황이 이어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 이준석이 노동자에 대해 발언한 것을 떠올려 보면 자칭 진보가 노동을 포기했다는 사실만 더 확실해지고 만다. 지금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 그리고 정의당의 가장 큰 차이다. 그래도 노동자를 생각해주는 정당은 지금으로선 민주당밖에 없다. 정의당은 여성 임원들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어쨌거나 일단 지켜보자고 비판을 자제하고 송영길의 발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는 사이 기자회견이 끝난 모양인데 매우 적절한 수준의 발언이었다. 사실 조국의 자녀가 누린 특혜라는 게 별 대수로운 수준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배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 이해시켜주는 것도 방법이다. 바보가 되더라도 미친 놈은 되지 마라. 내가 항상 하던 소리다.

 

생각보다 언론의 보도와 달리 송영길 대표체제에서 민주당이 크게 무리없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역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소인배이기는 한데 그래도 지지자의 눈치는 볼 줄 아는 근본있는 소인배다. 경륜을 무시할 수 없다. 아직까지 잘하고 있다고 본다.

자칭진보 버러지들이 반민주 반문재인에 정신줄 놓아버린 걸 알겠다. 심지어 민주당 지지층에서마저 이준석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정확히 호감도라기보다는 정치적 지지도다. 제발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어 민주당에도 자극을 주었으면 좋겠다. 어떤 자극? 바로 반페미라는 자극이다.

 

이준석 돌풍의 시발점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20대 남성의 감정을 홀로 대변해 왔다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와 배제를 오로지 홀로 거침없이 대신 주장해 왔었다. 그리고 그 대표는 무엇보다 여성주의였을 것이다. 더이상 이대로 여성주의를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무엇보다 여성주의가 민주당을 적대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 심지어 그를 위해 위안부 문제마저 저버릴 수 있는 그 맹목성에 민주당 지지자들도 각성해 버린 것이다. 여성주의를 멀리해야 민주당이 산다.

 

그런데 그런 표면만 보고 자칭진보들은 이준석이야 말로 민주당을 망하게 할 고리라 여기고 띄워주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이다. 이준석이 어떻게 청년 남성들을 대변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해 없이 덕분에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니 덩달아 신나서 평가해주고 있는 중이다. 그 위험성을 이해하고 비판하는 인물은 진중권 정도가 고작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대부분 이준석이라는 개인의 역량이나 품성에 대해 모르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힘이니까 지지하는 것도 있다. 그게 차이다. 단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피해가 갈 것 같으므로 높이 평가해주는 자칭 진보와 다르게 민주당 지지자들, 심지어 중도층에서마저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새끼는 그냥 국민의힘 대표가 되어서 민주당에 자극만 줄 수 있으면 된다.

 

김학의도 무고한 일반인이라는 한겨레다. 검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렸으니 강제재수사나 출국금지는 부당했으며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범죄라는 게 한겨레의 공식적인 입장인 것이다. 정의당도 무려 인사청문회에서 그 사실을 따져묻고 있었다. 저놈들 대가리속이다. 그래서 버러지인 것이고. 그저 웃을 뿐이다.

정말 흥미롭다. 이준석은 그야말로 반페미 이슈를 선점하며 자신의 가치를 높이 인물이다. 현재 주류페미니즘이 주장하는 모순들에 대한 비판을 가장 먼저 흡수하여 대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높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주류정치에서 페미니즘을 완전히 배척한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었을 때도 이준석은 여전히 반페미의 기치를 높이 들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민주당의 페미니즘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주류페미니스트들이 그럼에도 여전히 국민의힘만을 편애할 수 있을 것인가.

 

하긴 결론은 벌써 나온 것이나 다름없다. 무려 페미니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겨레에서 이준석을 배워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메갈리즘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겨레가 이준석을 앞세워 민주당을 비판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부터 페미니즘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반페미를 주장하던 놈들마저 자신들이 주장하던 반페미는 여성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주류여성주의 - 즉 민주당의 여성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라며 노선을 변경하는 중이다. 민주당이라서 반대한 것이지 여성주의라서 반대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어 여성주의 주장을 펴더라도 용인할 수 있다. 반대로 주류여성주의 역시 이준석이라면 반페미 주장을 하더라도 혁신의 기수로서 인정해 줄 수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합이란 것인가.

 

그동안 이준석이 여성주의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아니 수많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발언해 온 내용들을 안다면 절대 한겨레 같은 자칭 진보언론이 이토록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야말로 '민주당만 빼고'의 눈물겨운 실천이라 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만 아니면 페미니즘도 반페미니즘도 상관없다. 그러니까 자칭 진보에 자칭 여성주의인 한겨레 입에서 김학의가 무고한 일반인이었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이 죄인 것이지 김학의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은 이유로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이준석을 자신들의 미래가치로 인정해 줄 수 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었을 때 반페미와 메갈리즘이 어떻게 절묘한 공존을 꾀할 수 있을 지 기대하는 바가 큰 것이다. 이준석이 반페미주장을 해도 여성주의자들은 그것을 여성주의주장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이준석이 페미니즘을 받아들여도 반페미들은 그마저 진정한 반페미로 여기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대한민국의 주류인 것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면 그대로 말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내가 자칭 진보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지만. 김학의를 무고하다 말한 순간 그놈들은 쓰레기 확정이다. 버러지 새끼들. 기대가 크다.

원래 노조는 진보정당의 중요 지지기반이었다. 진보정당은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고 노동자는 진보정당에 표를 주어 제도권에서 자신들을 대신할 수 있도록 밀어준다. 그런데 실제 그랬느냐면,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 지역에서 노조원들은 진보정당이 아닌 민주당에 투표를 하고 있었다. 특히 기초단체에서 광역단체, 국회의원, 지자체장, 대통령까지 큰 선거일수록 그런 경향은 강해지고 있었다. 일단 진보정당이 자기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지역을 대대표할 국회의원까지는 의문부호가 찍히는 것이다. 지금 진보정당이라는 정의당이 노동자는 외면한 채 여성에만 매달리는 진짜 이유다. 노동자를 대변해봐야 표가 안 된다.

 

이준석 병신인 것 20대 남성들도 거의 대부분 안다. 이준석이 반페미를 앞세워 20대 청년들을 대변한다고 나섰을 때 반응도 그래서 그래도 자기들 목소리 대변해주는 정치인도 하나 있구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놈이라도 자기들 목소리를 대변해주니 한 번 밀어줘야겠다. 무슨 말인가? 이준석 하나 당대표 된다고 국민의힘이 바뀌지 않을 것도 알고, 이준석 하나 능력으로 지금 정치판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란 점도 안다. 아마 더 크게 망하기 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신들 편에서 말해주는 것은 이준석 뿐이지 않은가. 능력이나 인품 때문이 아닌 오로지 그 사실 하나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뭔가 지켜야 할 대단한 것이 있는 정치인이 현재 국내에서 교회표 다음으로 조직력이 강한 여성표 떨어져나갈 소리를 대놓고 떠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수도 얼마 안되는 직능단체에 대해서도 혹시라도 반감을 사지 않을까 단어 하나까지 신중하게 고르는 것이 바로 정치인이란 존재들이다. 오죽 비빌 데가 없으면 반페미에 올인하고 덤비는가. 그래서 과연 당대표가 되었다고 0선 시절처럼 하고 싶은 말 다 하며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보면 되는 것이다. 20대 남성들이 죄다 이준석 같은 병신은 아니다. 그저 한 번 힘을 보여주고 싶다. 이준석 말고 더 쓸만한 대안이 있으면 바로 그리로 옮겨간다. 그게 현실이다. 딱 정의당이 그 수준인 것이다. 

언론이 보도를 제대로 않으니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인데, 지금 우리 정부가 확보한 백신 물량이 7천만 명 분을 훌쩍 넘어간다. 새삼 새롭게 백신을 확보할 필요 없이 이미 확보한 물량만 제대로 들어와도 연말까지 집단면역을 만드는데 전혀 아무런 지장이 없다. 더구나 이미 확보한 백신 가운데 화이자를 제외한 대부분이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거나 생산될 예정에 있다. 여차하면 그냥 나라문 걸어잠그고 물량 모두 국내로만 돌려도 차고 넘치는 게 백신이다. 그러면 어째서 정상회담 의제로 백신공급이 올라가게 되었는가. 하도 언론이 지랄들 해대니까.

 

이미 SK가 아스트라제네카를 생산중이고, 삼성 바이오로직스가 모더나와 생산계약을 맺었다. 얀센은 아예 기술이전까지 해주겠다 나서는 중이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백신을 의제로 올리는 것은 백신을 얼마나 한국에 공급하겠느냐는 차원이 아닌 장차 백신을 어디에서 주도적으로 생산할 것인가 하는 보다 글로벌적인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이 세계 백신생산의 허브가 된다면 그 이익이야 말할 것 없이 막대할 것이다. 장차 미국의 국제전략에서 한국의 위상이 어떻게 될 것인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하도 언론이 지랄하니 문재인 정부를 위해 명목상 넘겨준 것이 바로 군인들 몫의 55만 명 분이다.

 

누가 보면 아직 한국 정부가 백신도 제대로 확보 못했는 줄 알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접종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27일 부터는 하루 100명씩 접종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고 있는 중이다. 아스트라제네카에 이어 모더나와 얀센에 스푸트니크까지 생산하는 백신 종류만 여럿에 이 모두가 세계 각국으로 공급되고 있는 와중에 55만 명이 마치 정부가 확보한 백신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떠드는 국민의힘이나 마찬가지로 그렇게 보도하는 언론이나 그것을 믿어버리는 국민은 도대체 뭐하는 버러지들인 것인지.

 

이미 7천만 명 분 확보한 위에 군인들 몫으로 미국으로부터 55만 명 분의 지원을 받아낸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고 이후 코로나19 백신공급에 있어 한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 것이 더 큰 성과일 수 있는 것이다. 역시나 보도하면 국민들이 현정부를 더 지지할 테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더 웃기는 건 백신이 안전하지 못해 맞지 않겠다는 놈들이 저따위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화이자 맞고 사망한 사례들도 열심히 보도하는 중이더만. 뇌가 구더기일 수 있음을 새삼 확인케 한다.

그러고보니 여성주의자와 민주당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약자도 아니면서 약자인 척 한다. 아니 오히려 강자이면서 약자인 척만 죽어라 한다. 가증스럽지 않은가. 나는 돈도 직장도 아무것도 없는데 저 새끼들은 다 가지고서도 약자인 척 아무것도 않으며 더 가지려고만 한다. 벤츠 타고 다니며 구걸하는 거지새끼 보는 느낌이다.

 

젊은 층들이 민주당을 싫어하는 어쩌면 진짜 이유일 것이다. 젊을수록 직관적인 걸 좋아한다. 간결하고 분명하고 확실한 걸 더 추구하게 된다. 복잡하고 어려운 건 싫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하는 것 보라.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려 했으면 그렇게 했어야 했다. 허구헌날 국민의힘이 발목 잡는다고 우는 소리 하길래 혼자서 모든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180석까지 만들어 줬다. 그런데도 여전히 야당탓 언론 탓이다. 그 야당과 언론을 밟아버릴 힘을 가지고서도 그저 우는 소리만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LH사태가 벌어졌을 때 민주당이 저지른 가장 큰 실책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 재고 따졌다. 180석이면 일단 지르고 봐야 하는 것이다. 결과부터 보이고 봐야 하는 것이다. 위헌인가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따지면 된다. 그래서 뭘 하고 싶다고? 뭘 해야 한다고? 왜 안하는데? 조국사태 당시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렇게 검찰개혁이 중요하면 왜 일찌감치 검찰개혁에 착수하지 않았는가.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그 문재인 정부와 그 여당의 초대 총리이고 당대표였던 인간이 국가에 책임을 묻고 있더란 것이다. 코인에 희망을 거는 청년들의 문제를 정부에 묻겠다. 넌 뭘 했는데?

 

항상 이따위다. 하는 건 없고 책임만 묻는다. 오죽하면 책임지기 싫다고 기껏 되찾아 놓은 법사위원장 자리마저 내주자는 놈들이 있겠는가. 깨달은 것이다. 그동안 민주당이 얼마나 편하게 정치해 왔었는지. 그런 점에서 그동안 어렵게 정치해 온 우상호, 우원식, 홍영표, 이인영 등은 다시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 강자면 강자답게 자기들에 대한 책임 역시 분명하게 져 달라. 당장 이슈가 되고 있는 군 급식문제에서도 정작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다. 여성만 신경쓰지 말고 나라를 위해 희생중인 남성들에 대해서도 좀 신경써 달라.

 

한 마디로 20대 젊은 남성을 위해 아무것도 않는다는 인식은 무엇보다 민주당이 여성주의 정책을 제외하고 그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인식의 연장에 있는 것이다. 그깟 윤석열 따위에게. 그깟 조중동한경오따위에게. 그깟. 그깟. 그깟. 그에 비해 정부든 여당이든 얼마나 크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도 정작 한 것이 무엇인가.

 

이낙연에 대한 실망은 이제 더 커질 것도 없다. 그러고서도 자기 일이 아닌 양 정부에 책임을 묻겠다는데 이건 진짜 노망의 전조증상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총리며 당대표 지내는 동안 그런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으면 멍청한 것이고, 인지했음에도 이따위면 무능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럼에도 그따위 소리를 내뱉는 건 인간이 덜 된 것이다. 어이가 없다.

예를 들어 뼛속까지 귀족인 사람이 비천한 노예의 언어로 누군가를 비난한다면 과연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하겠는가? 흑인이라면 혐오와 경멸을 감추지 않는 인물이 굳이 어떤 대상을 향해 흑인의 언어를 사용해 조롱하려 한다.

 

원래 한겨레는 일베를 무척 싫어했을 터였다. 한겨레 뿐만 아니라 자칭진보 대부분이 혐오와 증오의 총본산일 일베에 대한 경계와 적대감을 훨씬 전부터 드러내 왔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이라기에는 너무나 공교롭게도 딱 노무현 전대통령의 12주기에 맞춰서 한겨레 지면에 일베가 노무현 전대통령을 조롱하는 어휘들이 제목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하긴 대놓고 '놈현 관장사'라는 제목을 크게 붙여 기사로 내기도 했던 언론이었으니.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설마 싶었었다. 그러다가 조국 전장관에 대한 한겨레의 적의를 보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불행한 선택을 하던 그날 한겨레 편집국에서는 환호성이 들렸다더라. 그리고 다시 문재인 대통령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수구세력과 손을 잡았다. 그러니까 평소 김어준과 가까운 듯 보이던 김완이 그를 계기로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던 것이었다. 문재인만 죽일 수 있으면 가짜뉴스도 의도된 오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튼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죄인이 되어 실형까지 선고받은 이명박과 단지 의혹 뿐이던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한겨레의 기사만 보더라도 확인 가능한 부분이다. 이명박은 안타깝고 노무현은 당장 죽어 사라져야만 한다. 한겨레의 진정한 속내일 것이다. 그보다는 한겨레가 대변하는 자칭진보의 너무나 노골적인 속내다.

 

어쨌거나 정말 더러운 새끼들이란 것이다. 12년이나 지나서도 죽은 이를 이렇게까지 모욕하는가. 그것도 딱 눈치채기 좋은 정도로 위장하고 있었다. 제발 알아달라는 듯. 버러지 새끼들. 아직도 보고 있는 놈들이 역겨울 정도다.

같은 본다는 뜻이지만 관은 시나 견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주체가 있고 대상이 있으며 목적과 의도가 있다.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다. 그래서 볼 관이지만 살필 관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경제관, 외교관, 복지관, 여성관, 세계관, 정치관 등등등이다. 이런 단어들이 어떤 의도로 쓰였는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냥 벼락치기로 공부만 해서는 이런 관이 생겨나지 않는다. 관은 지혜지 지식이 아니다. 경제에 어떤 이론이 있더라. 어떤 사례들에 어떤 설명들이 있더라. 그런 모든 지식들을 아우르고 체계화한 뒤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를 통해 다시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말하자면 세계와 자신을 통하는 창구인 셈이다. 그런데 그런 걸 단 몇 달 전문가에게 벼락치기로 배운다고 만들 수 있을까? 그러면 그것은 과연 자신의 관일 것인가?

 

아직 정치인으로서 역사와 경제와 외교와 행정과 통치행위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래서 자기만의 관이 없다. 그러면 이미 정치인으로서 실격인 것이다. 그것을 배운다고 바로 얻을 수 있다면 관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질 리 없다. 무엇보다 그 관이 과연 자신이 가진 관과 일치하는가도 살펴야 하지 않겠는가. 웃기는 게 그래도 진보를 자처한다는 한겨레가 수구언론과 같은 입장에서 그런 윤석열의 학습에 대해 찬양 일변도라는 것이다. 수구언론이 바라는 경제관, 노동관과 한겨레가 바라는 그것이 과연 같을 것인가.

 

아니지. 신민이란 군주의 관을 판단하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윤석열이 광주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 폭동이라 규정지으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빨갱이들이 남파되어 일으킨 반란이었다면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노조는 악이다. 최저임금은 3천원이면 충분하다. 그렇게 믿고 따르면 된다. 그런 의미인 것이다. 윤석열이 지금 누구에게서 어떤 내용을 배우고 있는가는 전혀 관심조차 없이 그저 배우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환호하며 희열마저 느끼고 있다. 그를 찬양하기에 바쁘기만 하다. 달리 이해할 논리가 있을까?

 

역대 민주정부들이 관료들에 개혁의 발목을 잡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나름대로 개혁을 위한 관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지만 관료들의 전문성을 넘어설 정도로 치밀하지도 강고하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타협하며 주저했던 것인데 그를 비판하던 자칭 진보가 윤석열의 학습을 칭찬하는 것은 어떤 의도일 것인가.

 

하루아침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평소 관심도 없다가 몇 달 공부한다고 바로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토론하면 드러난다. 지식이 부족해도 관이 확실하면 그 방향성만큼은 제대로 제시할 수 있다. 나머지는 따로 그 내용을 채워주는 존재가 있을 것이다. 그게 리더란 것일 테지만. 자칭 진보의 바닥이야 모르지 않으니. 똥걸레는 똥걸레다. 답이 없다.

예를 들어 전근대 유럽의 남성들이 여성을 배려한 것은 여성을 동등한 인격이 아닌 보호가 필요한 약자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편에서는 살부비고 살 던 마누라를 목줄 묶어 내다 팔면서도 한 편에서는 기사도네 신사도네 여성을 마치 귀중품마냥 아끼고 떠받드는 모순이 일상으로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모순도 아니었다. 여성은 단지 남성을 위한 자궁이며 트로피였다. 그게 바로 남페미라 불리는 놈들의 정체이기도 한 것이다.

 

남자들이 서로에게 상당히 무례하게 폭력도 휘두르고 쌍욕도 할 수 있는 이유는, 그런데도 또 때로 서로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서로를 대등한 인격으로 여기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당해도 상관없는 만큼 상대에게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거리낌이 있다면 남자들 사이에서도 말이며 행동들은 무척 조심스러워지게 된다. 아마 남자들끼리 서로 내뱉는 농담이며 장난을 그대로 여자들에게 했다가는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네 바로 수갑부터 차게 되지 않을까. 바로 남자들이 여성주의에 진심으로 분노를 넘어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가지는 이유일 것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이야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당위에 가까운 것이다. 문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남성과 대등하게 높이는 건 좋은데 이전까지 약자로서 받던 배려까지 같이 누리려 한다는 것이다. 군대도 가지 않고, 그렇다고 군대에 준하는 사회적 의무를 행하는 것도 아니고, 결혼하거나 할 때도 경제적 책임은 온전히 남성에게만 부담지우려 한다. 하다못해 데이트할 때도 비용을 남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려 하면 이게 뭔가 싶어질 것이다. 대등한 인격으로 동등하게 지내고 싶다면서?

 

비유하자면 돈도 벌 만큼 버는 인간이 무료급식소에서 밥 얻어먹고, 경제적 취약층을 위한 복지혜택까지 챙겨먹으려는 상황과 비슷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처지가 어려운 것 같아서 박스며 캔이며 모아서 챙겨줬는데 알고 보니 건물도 여러 채 있는 알부자라더라. 나는 지금 겨우 월세 사는데 건물주님을 동정하여 도와주려 했던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 오만과 독선으로 인해 여성주의 자체가, 심지어 여성 자신마저 권력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상황에 여성을 약자로 간주한 배려들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강화하려는 시도들이 모순되고 불공정한 구조로써 인식되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여성을 약자로서 배려하면서 여성의 권력마저 감당해야 하는 것인데.

 

그래서 초창기 여성주의자 가운데는 여성에 대한 약자로서의 배려와 보호를 거부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신사도네 기사도네 남성들이 허영으로 베푸는 그같은 행동들이 오히려 여성을 약자로서 고착화시킨다. 그러니까 내가 기생이라 부르는 것이다. 기생페미니즘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에 빌붙어서 그들의 배려와 보호에 기대어 권력을 빌리고 약자인 남성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 성인지감수성이란 그런 모순을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인 셈이다. 정확히 인권감수성이어야 한다. 동등한 인격으로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함을 이해한다. 여성과 남성이 대등함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런데 인권감수성이 아닌 성인지감수성인 이유가 무엇인가. 여성을 약자로서 여전히 보호하고 배려하면서도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라. 그것도 여성 스스로 쟁취한 권력이 아닌 여성을 약자로써 배려하려는 남성에 기대서.

 

박원순 논란 당시 여성주의자들이 남성인 검찰 지도부를 움직여서 같은 여성인 검사들을 징계하려 시도한 사례가 그를 보여주고 있을 것이다. 같은 여성이면서 성추행 피해자인 서지현 검사의 피해사실마저 의심하며 부정하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과연 여성의 편인가? 그들 자신에게 여성이란 과연 존중받아 마땅한 대등한 인격인 것인가. 그리고 남성이기에 그런 모순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피부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둘 중 하나만 하면 된다. 약자로서 보호와 배려를 받거나, 아니면 동등한 인격으로서 대등한 권리와 책임을 함께 누리거나. 둘 다는 아니다. 정히 그러고 싶으면 여성 스스로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다음 그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주의자들은 지난 서울시장선거에서도 같은 여성이 아닌 남성에 기대어 여성주의를 실현하려 하고 있었다. 박영선이 아닌 오세훈이 여성주의를 실천해 주기를 바란다. 그게 현실이다. 경멸조차 아깝다. 혐오스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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