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이란 행위에 따라오는 것이다. 당연하게 무언가를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유권자들 앞에서 수많은 약속을 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당연하게 국회의원이 되고자 유권자 앞에 나선 만큼, 그리고 유권자가 선택하여 당선된 만큼 그에 따른 책임이 지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임지기 싫다? 

 

어이없는 것이다. 국회의원은 되고 싶은데 국회의원이 되어 책임은 지고 싶지 않다. 원내 다수당은 되고 싶은데 다수당으로서 책임을 지는 것은 너무 싫다. 하긴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대표되기 전까지 민주당은 대권도 원내 다수당도 다 싫다고 일부러 선거에서 태업을 일삼고는 했었다. 딱 그 시절 국회의원인 것이다. 기동민이라 했던가?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원내 다수당으로서 무언가를 해내겠다는 의지보다 단지 언론의 비난을 듣는 것만이 두렵다. 그럴 거면 국회의원을 왜 하는 것인가?

 

저따위 소리 하는 놈들은 모두 국회의원으로서 주어진 권한과 의전만 누리려는 버러지라 보면 될 것이다. 굳이 민주당일 필요도 없이 그저 공천만 주면 아무 정당이라도 상관없는 놈들인 것이다. 하고 싶은 게 있고 그 의지가 너무 간절하면 책임 이전에 뭐라도 하나 더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해야 할 텐데 그런 주제가 되지 못한다. 도대체 민주당 안에 저런 버러지 새끼들이 - 아, 그 대빵이 이낙연이었던가. 책임은 지기 싫고, 그러나 대통령은 되어야겠고.

 

다른 건 다 그냥 넘어가도 저따위 개소리만큼은 도저히 이대로 넘어가지 못한다. 내가 사는 지역구였으면 어떻게든 낙선운동이라도 할 텐데. 저런 놈들 잘 걸러내야 민주당이 제대로 정책을 낼 수 있는 정당이 된다.

 

역시 문재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너무 사람이 좋아서 때로 독해야 할 때 독해지지 못한다. 악해야 할 때 악해지지 못한다. 그랬으면 저런 놈들이 과연 민주당에 발을 붙일 수 있었을까.

 

새삼 열받는 개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국민의힘으로 그냥 넘어가기를. 원래 국민의힘에 갔어야 할 인간들이 민주당에는 너무 많다. 버러지들이란 뜻이다. 민주당은 아직 멀었다.

이준석이 국민의힘 당대표에 도전한다라... 재미있어졌다. 과연 여성할당제를 폐지하겠다는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 뒤에도 자칭진보들은 국민의힘의 편에 서려 할 것인가.

 

지난 보궐선거에서 자칭 진보들은 용산참사와 관련한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박주민을 핑계삼아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포기하지 않았었다. 한겨레는 오세훈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 번 자발적으로 오보를 내는 자기희생까지 감수하고 있었다. 철거민은 국민의힘에 대한 지지를 포기할만한 사유가 되지 못한다. 그러면 여성주의는?

 

대부분 2030 남성들에게 비난을 넘어선 적대의 대상으로 여겨질 정도로 여성주의에 우호적이던 민주당이지만 그러나 여성주의자들의 선택은 국민의힘이 여성주의를 더 적극적으로 이용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지 민주당과 손잡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민주당을 공격함으로써 국민의힘이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여지를 열어주려 했었다. 여성주의가 바라는 여성주의 정책이란 국민의힘을 통하는 것이지 민주당에 의한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흥미로운 것이다. 여성주의를 적대하는 이준석이 당대표가 되어 국민의힘에서 여성주의 정책을 모두 후퇴시켰을 때도 자칭진보는, 아니 여성주의는 여전히 국민의힘만을 지지할 것인가.

 

그건 여성주의의 DNA이기도 한 것이다. 친일과 친독재와 친기득권. 지금 자칭 진보가 친기득권으로 흐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재미있어졌다. 이준석을 응원한다. 국회의원은 못돼도 당대표는 해봐야지. 잘 해 보라!

엄밀히 객관적으로 사실만을 적시했을 때 지금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나 권리가 남성의 그것에 필적할 정도로 성장을 이루었는가 묻는다면 회의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30대까지 젊은 남성들이야 느끼지 못할 테지만 30대 중반만 넘어가도 대부분 여성들은 그런 현실의 한계를 느끼게 될 것이다. 괜히 유리천장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천장이 부딪히기까지 얼마든지 남성을 추월해 앞서 달려갈 수 있지만 천장과 마주하는 순간 현실의 절망과 좌절을 몸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현재 권력관계에서 여성은 약자라 할 수 있을 것인가.

 

강자는 전체 여성 가운데서도 아주 소수의 여성주의자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서 수많은 혜택을 누리며 남들과 다른 기회를 누릴 수 있었던 극히 일부의 여성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과대표되고 말았다.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한 것이 아닌 기득권 남성에 기대어 휘두르는 그 권력으로 인해 정작 여전히 버거운 현실과 맞서 싸워야 하는 더 많은 여성들의 처지가 가려지고 만 것이다. 더 목소리도 크게 낼 수 있는 기득권 남성들과 결탁한 여성주의자들로 인해 정작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처지가 잊혀지고 만다.

 

박원순 전시장 논란 당시 여성주의자들로 인해 정작 일자리를 잃어야 했던 어느 여성 방송인의 사례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자신들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작 남성들인 검찰 수뇌부를 움직여서 같은 여성인 검사들을 징계하려 시도한 예 또한 그런 일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미 앞서서 자신이 겪은 부당한 성폭력을 폭로한 당사자를 자신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의심하며 폄훼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명백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서 같은 여성인 피해자를 억압하는 그 어디에 여성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에 남성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마저도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억압할 수 있는 그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더 안타까운 것이다. 여전한 현실의 차별과 억압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은 배제한 채 그런 여성들마저 억압하는 권력으로써 여성주의는 여성을 대표하게 된다. 대부분 여성들의 처지는 여전히 열악하기만 한데 그들과 상관없이 권력을 앞세운 여성주의자들로 인해 여성이 권력으로 인식되고 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주의를 비판하는 남성이란 약자의 저항을 억압하려는 기득권의 연장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 남성주의라는 여성주의에 대한 저항이 보편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이었다. 같은 남성조차 그런 것은 꼴사나운 것으로 여기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뀌었다. 소수 여성주의자들의 전횡이 여성을 권력으로, 기득권으로 여기게 만들며 여성주의에 대한 비판을 기득권에 대한,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여기게 만들고 말았다. 여성이란 이미 강자이고 기득권이기에 그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 정당하다. 그래서 과연 가장 큰 피해자는 누구일 것인가? 

 

이를테면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내겠다고 동맹인 미국을 등에 업고 점령지에서 횡포를 부리는 상황과 비슷하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열강의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열강을 등에 업고 횡포를 부리다가 정작 열강이 물러나고 나서는 약자로 전락해서 억압과 차별의 대상으로 전락한 소수민족의 예일 것이다. 약자라고 연민을 보이기에는 이미 그들 스스로가 강자로써 보인 모습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저 동정해야 할 선량한 약자일 것인가. 여성주의자들이 저리 강자로써 전횡을 일삼는데 여성이란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사회적 약자인 것일까.

 

전략의 실패다. 여성주의가 아닌 진정 여성을 위하려 했다면 벌써부터 칼을 빼들어서는 안되었었다. 남성들의 위에 군림하며 그들을 억압하려 해서는 안되었었다. 박원순 시장에 대한 공격은 그나마 여성주의에 우호적이던 대부분 남성들을 돌려세운 최악의 한 수였었다. 여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이외의 어떤 주장도, 심지어 침묵마저도 여성주의는 용납하지 않는다. 여성주의는 이미 권력이다. 여성은 이미 권력이다. 이미 기득권이 되어 버린 여성을 위한 여성주의란 것이 보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GS25나 박나래 등을 향한 남성들의 공격이 전과 달리 더 큰 호응을 받으며 힘을 가지게 된 이유인 것이다. 더이상 여성은 약자가 아니다. 오히려 남성보다 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강자들인 것이다. 그런 강자에 대한 저항인 것이다. 박나래는 그저 한 개인에 지나지 않지만 그 배후에 있는 여성은, 여성주의는 동정도 연민도 이해도 동의도 필요없는 그저 강자이고 기득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박나래를 봐주는 것은 그런 기득권에 굴복하는 것이다.

 

누구의 잘못이냐면 결국 섣부르게 손에 넣은 권력을 휘두르는데 급급했던 여성주의자들의 책임이 무엇보다 클 것이다. 대부분 여성들과 달리 자신들만 기득권과 결탁하여 편입되었는데 그를 과시하느라 대부분 여성들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면서 정작 여성주의가 공격의 대상이 되었을 때는 그런 일반의 여성들마저 함께 싸잡히고 만다. 정작 대부분 여성주의자들이 누리는 그런 모든 것들과 전혀 상관없는 여성들마저 그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너무 성급했다. 조금 더 오래 최소한 일정 수준 이상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갈 때까지 여성을 약자로써 인식시켰어야 했다. 지금 여성이 사회적으로 약자인가 묻는다면 아마 여성 가운데서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과 언론마저 거의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약자로서 관용을 베풀기에는 이미 그들 스스로가 권력이 되어 있다. 그렇게 여겨지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최소한 남성들의 행동이 불의한 권력에 대항하는 약자의 저항으로 비쳐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이다. 이미 강자는 여성이지 남성이 아니다. 여성주의자들의 공적이다. 대단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게 바로 민주주의다. 당장 미국만 해도 그동안 대통령 지낸 인간들 모두 뒤져보면 의외로 멀쩡한 인간이 몇 되지 않는다. 20세기 이전에는 더 처참했고, 20세기 이후로도 진짜 별 한심한 인간들이 넘쳐났다. 당연한 것이 민주주의란 탁월한 소수가 아닌 평범한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다수의 체제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남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닌 특별한 역정을 거치고 대중의 선택을 받아 특별한 존재가 된 이들이란 것이다. 인간적으로 탁월해서가 아닌 그냥 수많은 구성원 가운데 하필 당시 가장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리 되었을 뿐이다.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공동체 전체가 학습해 간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때로 잠시 멈춰서고, 때로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때로 엉뚱한 길로 갔다가, 어느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게 역사다. 이명박근혜의 존재가 아무 의미가 없지는 않았다는 이유인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학습했고,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 이후로는 국민의힘 정부일 것인가. 국민의힘이 그만한 가치를 보여줄 때만. 어째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동안에도 대선후보로서 이재명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는 것일까. 4년 전 나는 이재명은 절대 대통령감은 아니라 생각하고 있었다.

 

송영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혜숙 백혜련 두 최고위원은 당장 다른 당으로 내쫓고 싶다. 그런데도 어째서 조응천이 민주당에 몸담고 있는가. 어째서 문재인 대통령이 조응천을 찝어 영입했는가 최근 발언으로 알겠다. 다만 성향이 다를 뿐이다. 인간은 신의가 있고 성실하기도 하다. 진심으로 검찰을 생각한다. 검찰이라는 조직을 생각해서 단호하게 윤석열을 비판할 수 있다. 이런저런 개놈쌍놈버러지똥덩어리들이 모여 이루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란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인가. 탁월한 소수가 한 번에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란 기대인 것이다.

 

어찌보면 지금 민주당은 잘하고 있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180석을 가졌다고 자만하지 않고 모든 것을 민주적 절차에 의거 큰 혼란없이,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밀리거나 하지 않으면서 하나씩 차근히 처리해 왔었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까지 완수하면 민주당은 해야 할 모든 걸 다한 것이다. 선거에서 졌으니 이런 원인도 찾아보고 저런 원인도 찾아보고 어찌되었거나 자신을 낮추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사실이라서가 아니라 그렇기 여기는 국민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얼마나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서 원인을 찾고 대처했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지금 민주당은 오만하지 않기에 다시 일어설 힘을 비축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선거 한 번 이겼다고 국민의힘은 오만하기 이를데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낙연이 한때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손꼽히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불편하고 때로 화가 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모든 당원과 지지자의 마음이 나와 같을 수 없다. 그래서 쌍욕하며 싸우는 것이다. 똥파리네 뭐네 서로 모욕하며 부딪히는 것이다. 그래도 당대표가 되었으니 일단 송영길을 믿어보고, 대선후보로 선출된 이가 있다면 기대를 가지고 지지하기도 할 것이다. 그게 바로 동지적 연대다. 민주당의 진정한 승리를 바란다면. 민주당의 이름으로 민주당의 정책을 계속 밀고가려 한다면.

 

그래서 한 편으로 욕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 역시 내가 바라는 민주당의 정체와 지향과 정책들이 있다. 그렇게 욕하며 싸우는 사이 그래도 조금은 내가 원하는 쪽으로 가까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게 또한 민주주의이기도 할 것이니. 내가 자칭진보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민주주의다. 지금은 거의 유일한 진리일 것이다.

이런 게 전쟁이다. 약자를 상대로 집단의 힘을 빌리는 건 단지 린치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인이 밉다고 일본인 여자아이를 건장한 남자들이 납치해서 폭행하면 그것도 항일운동이 되는 것인가. 일본이 패망했다고 일본인들을 잡아다 폭행하고 그 재산까지 빼앗는다면 그마저 독립운동으로 여길 수 있는 것인가. 진짜 적은 여성주의자이며 그들과 결탁한 기득권인 것이다. 바로 GS25와 같은.

 

사실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GS25라는 대기업을 상대로 남성들이 결집해서 굴복시키고 여성주의로부터 이탈시킨다. 그 자체로 남성의 분노와 힘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대부분 남성들이 얼마나 어째서 여성주의에 분노하고 있는가. 여성주의를 용납하지 못하는가. 이미 대부분 남성들에게 여성주의란 메갈이고 워마드이며 일베와 똑같은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내 여성주의 세력이 엉뚱한 짓거리로 그런 분위기를 흐트리려 하는 것이다. 도대체 민주당 초선들이 만났다는 2030은 어디 사는 누구들인 것일까.

 

여성주의자들의 난장을 그냥 두고만 보고 있었던 것은 당시까지 아직 여성주의란 약자의 저항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젊은 남성들의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정확히 박근혜를 지지하며 명분과 정당성을 잃은 여성주의자들이 현정부 들어서 여성주의를 강화함으로써 실추된 권위를 세우려는 의도가 더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진선미나 윤인순이 그 선두에 있었을 것이고. 아무튼 덕분에 이번 정부 들어서 여성주의는 약자의 저항이 아닌 그 자체로 폭력이고 권력이 되었다.

 

하다못해 전두환도 침묵 자체를 처벌하지는 못했었다. 박정희가 자기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고 일일이 색출해서 처벌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었다. 인민재판도 아니고 침묵마저 부정하며 명백한 성추행 피해자조차 침묵을 이유르 그 진실성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보게 된다.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한 여성방송인은 직장을 잃었고, 여성검사를 징계하려는 시도마저 있었다. 자기들과 다른 어떤 주장도, 심지어 침묵조차도 용납하지 못한다. 그리고 실제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런 여성주의를 약자의 저항이라며 언제까지 관용하며 지켜봐야 하는 것인가.

 

그에 비하면 남성들의 주장이야 말로 대변해주는 이 하나 없는 약자들의 외로운 외침일 것이다. 김병기와 김남국이 편들어주는 소리 좀 했다고 당내에서까지 비난을 듣는 중이다. 조금 과격하면 또 어떤가. 조금 지나치면 또 어떠한가. 어쩌면 처음으로 다수의 남성들이 힘을 모아 여성주의에 점령된 대기업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박나래도 그런 일환이다. 여성들이 했던 그대로를 돌려주겠다. 모 유튜버의 경우와 다르다. 박나래는 직접 당사자이며 그를 둘러싼 논쟁은 또 하나 명분을 건 전쟁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침묵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처럼 남성들도 당사자에 대해 직접 책임을 묻겠다. 

 

웃기는 것이다. 그저 침묵했다는 이유만으로 2차가해 운운하던 버러지 새끼들이 직접 당사자임에도 다양성과 관용을 주장한다. 사람새끼 대가리에서 나올 개소리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관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약자의 입장에서 더 관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약자의 관용은 단지 비겁이고 굴복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의 불관용이 가져온 또다른 반대편에서의 불관용이다. 불관용에 관용은 없다. 그래서 남성들의 불관용은 용인된다. 여성에게만 관용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관용이란 존엄에 대한 존중이다.

 

민주당도 생각을 잘해야 한다. 민주당이 자꾸 조국을 걸고 넘어지는 이유를 안다. 여성주의를 포기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한명숙에 대한 재심에도 나는 부정적이다. 한명숙이 민주당을 여성주의 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직 여성이 약자이던 시절에는 그럴 수 있다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과연 아직도 여성은 약자인가. 오로지 폭력과 억압으로만 남성들에 여성주의를 강제할 수 있는 그들이 진정 약자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선을 넘었다. 도가 너무 지나쳤다. 그 반작용이다. 그리고 정당한 권리의 주장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을 이루는 구성원으로써 그들 또한 하나의 주체인 것이다. 교육과 계도와 억압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남성들과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동의를 이끌어내기보다, 더구나 자신들 것도 아닌 남성의 권력에 기대어 폭력과 강제로써만 그 모든 것을 이루려 했다. 반발은 당연하다. 저항은 권리다. 시작은 gs25부터. 전쟁은 시작되었다.

작년 박원순 전시장의 부고 당시 정의당을 비롯한 자칭진보와 여성주의자들은 그에 대한 침묵조차 용납하지 않았었다.표현과 양심의 자유의 마지막 보루는 침묵할 자유다. 심지어 수사받는 피의자조차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은 거부할 수 있는 묵비의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자칭 진보와 여성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침묵하는 것도 2차가해라며 실제 현실의 불이익으로 협박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은 여성 방송인도 있었다. 그런데 그 입으로 표현의 자유를 떠든다?

말 잘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독재다. 침묵의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는 독재는 가장 악랄한 압재다. 어째서 남성들은 지금의 여성주의에 분노하는가. 정의당은 그 입을 닥쳐야 한다는 이유다.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세대를 부정한 그 주둥이로 독재를 말한다? 역겨운 것이다. 용산참사보다 월세 올려받은 게 더 분노할 일이라던 정의당인 것이다. 말하는 것만으로 입이 썩는 것 같다. 똥버러지는 전두환 똥이나 파먹으라.

원래 중국문화권에서 정치란 명망가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유비가 공융으로부터 인정받고 기뻐한 이유였었다. 공자의 후손으로 명성이 높은 공융의 평가라면 자신 역시 천하에 이름을 알릴 수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조조가 굳이 허소를 찾아가 자신에 대한 평가를 들었던 이유이기도 했었다. 당대의 명사로부터 평가를 받아야지만 천하에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인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는 것을 두고 입신양명한다 표현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몸을 바로 세우고 이름을 널리 알린다. 이름을 알린다는 의미다.

 

중종대 조광조가 추진한 현량과는 그런 전통적인 명망가정치로의 회귀였었다. 후한대에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 또한 그런 식으로 역내의 인재들을 선발해서 천거하면 등용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 그런 인재들은 어떻게 찾아내서 천거하는가. 전국시대에는 그런 인재들이 스스로 천하를 떠돌며 자신을 알리려 했으니 세객이라 불렸고, 후한대에는 인근의 명사들 사이에서 명성이 있으면 인재라 여겨 천거하던 것이었다. 딱 사마휘가 유비에게 제갈량과 방통을 천거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될 것이다. 순욱 역시 같은 방식으로 조조에게 곽가와 유엽 등을 천거한 바 있었다. 그래서 명불허전이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으니, 그 정도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수준이라면 명성이 아주 이유없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이름이 알려졌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정치인에게 부고란만 빼고 언론보도는 부정적인 것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진짜 이유인 것이다. 언론에 자주 보도되면 그만큼 거물이라 여기게 된다. 언론이 제아무리 쌍욕을 해도 일단 자주 이름이 오르내리면 전국적인 인사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그 내용이 상대편 거물을 상대로 한 것이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괜히 초선 가운데 저격수를 자처하는 정신나간 놈들이 나오는 게 아니란 뜻이다. 상대편 거물을 상대로 물어뜯는 가운데 자신 또한 자연스레 그와 동격의 인물로 여겨지게 된다. 정치적으로 입지가 위태로운 인물 가운데 그렇게 저격수로 나섬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명성을 얻으려는 놈들이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다. 바로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국민의힘에서 거물이 되려면 민주당 고위인사를 물어뜯어야 하고, 민주당에서 거물이 되려면 민주당 유력인사를 물어뜯어야 한다.

 

당대표선거에서 송영길이 당선된 이유인 것이다. 일단 다선의원이다. 개판치기는 했지만 지자체장도 한 번 했었다. 무엇보다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분위기 봐서 닥치고 물어뜯는 기회적인 행보에 언론지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은 변변치않지만 토론프로그램 나와서 제법 목소리도 좋게 조리있는 언변을 선보이기도 했었다. 그에 비하면 홍영표나 우원식이나 원내대표가 되기 전이나 그만두고 난 뒤나 제대로 언론에 이름이 노출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래도 민주당이 개혁을 밀고 나가려면 의심스럽기는 해도 홍영표나 우원식같은 잔챙이가 아닌 송영길 정도의 거물이 대표가 되는 게 낫지 않은가. 일단 국민의힘을 상대하려 해도 중량감에서 송영길에 비해 이들 두 사람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민주당 안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이들이 반드시 참고해야 할 부분인 것이다. 김한규의 행보가 그래서 아주 괜찮다. 여기저기 토론프로그램에 얼굴을 비치며 원외의 인사 가운데 민주당을 대표하는 얼굴로 거의 낙점받고 있는 중이다. 김용민이나 박주민, 김남국 등 역시 원내에서 여러 이슈를 주도적으로 끌고가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잘하는 것으로 부족하다. 잘하는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 김종민이 어떻게 전국구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잊혀진 인물이 되었는가.

 

송영길 나부랭이도 이렇게 당당히 당원들의 선택을 받아 당대표에 당선될 정도로 명성이란 중요한 것이다. 어떤 명성을 얻는가도 중요하다. 송영길이 개짓거리도 많이 했지만 그래도 중요한 고비마다 민주당을 대변하는 입으로써 여러 토론프로그램에서 진흙탕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내용이 변변치 않아 그렇지 대중들에게 그 이름을 알리는 정도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하나마나 한 소리나 하느라 존재감도 희미했던 홍영표나 우원식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예상한 결과였기에 충격은 없지만 그래도 여전하구나 하는 아쉬운 감정만은 어쩔 수 없다. 고작 이런 꼴 보자고 문재인 정부 지지하고 민주당을 지지해 왔었는가.

 

다만 그래도 한 가지 기대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송영길은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개혁에 대한 요구가 득세할 때는 개혁을 쫓고, 안정에 대한 요구가 득세하면 안정을 쫓는다. 노무현에 대한 인기가 높으면 친노가 되고, 노무현에 대한 인기가 떨어지면 반노가 된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을 때는 친문이 되었다가 지지율이 떨어진다 싶어지니 비문을 자처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때 상황에 따라 어중간한 스탠스가 아닌 가장 강경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개혁이 자기에게 유리하다 여긴다면 아마 역대 어느 당대표보다 무리할 정도로 개혁을 밀어붙일수도 있는 인물이다.

 

당원의 이탈은 송영길에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후 거물로써 민주당 안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는데 어떤 선택을 하는 쪽이 나을까에 대한 판단이 송경길의 선택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중요한 이유다. 무엇을 대세로 만들 것인가. 이재명의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지면 송영길은 당연히 이재명 편에 선다. 의리가 없기에 이낙연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 여겨지면 바로 거리를 두고 멀리한다. 어떤 점에서 지지자가 하기에 따라 가장 편리한 유형의 정치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백혜련이 최고위원이 된 것은 역시나 명성이 제법 있으니 그럴 수 있다 봐야 할 것이다. 역시나 정치은 이름이 절반이다. 그럼에도 김용민이 1위 득표로 당선된 것은 주목해 볼 만하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 정치인들이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경선제도는 신인정치인에게 최대한 유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바로 경선단계에서 본선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떨어지고 만다. 결국은 지지자 하기 나름이란 것이다. 복당완료했다. 가만 놔두지 않는다. 나름의 각오다. 송영길 두고보자!

정의당이 입만 열면 하는 소리가 기득권 양당이다. 물론 아무때나 쓰지는 않는다. 민주당 잘못은 민주당 잘못, 국민의힘 잘못은 거대양당의 잘못이다. 아무튼 그렇게 거대양당을 싸잡는데, 그러면 검찰은 기득권일까? 아닐까?

 

원래 자칭 진보는 검찰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 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보수정부 아래에서, 심지어 민주정부에서도 온갖 공작수사로 자칭 진보 인사들을 옭아매려 했던 것이 검찰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노회찬마저 검찰의 억지기소에 짜맞추기 판결로 의원직을 잃지 않았는가.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기소로 곤경을 겪었던 진보인사가 몇 명이고, 검찰이 무리하게 덮으면서 묻혀 버린 진실들이 도대체 얼마이던가.

 

촛불시민들을 대상으로 친위쿠데타를 기획했던 당사자들에 대한 수사마저 묻고 있는 게 지금 검찰이란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당시 정권의 사찰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린 것이 지금의 검찰이다. 하긴 김학의를 무혐의 결론내렸다고 무고한 일반인이라며 대통령의 재조사지시를 범죄로 단정짓는 것이 지금의 자칭 진보이기는 하지만. 검찰이 무혐의로 결론내렸으니 이후 재수사를 통해 어떤 결론이 내려졌든 무고한 일반인으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사찰도, 촛불정국에서의 친위쿠데타 기획도 정의당 차원에서 단 한 마디라도 비판하는 논평이 나온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칭 진보언론들도 자칭 진보 지식인들도 그에 대해 한 마디 비평조차 않고 있다.

 

과연 나경원이니 박덕흠이니 김기현이니 국민의힘 관련 인사들에 대해 일방적으로 봐주기 결론을 내리고 아예 수사조차 않고 있는 지금 검찰이 그만큼 잘하고 있다는 것인가. 말했지. 진중권이 변절한 것이 아니라고. 이를테면 복심이란 것이다. 최성해 때문이 아니라 정의당 핵심과 이미 입을 맞추고서 그동안 먼저 주장을 해 온 것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진중권과 정의당과 한겨레와 경향의 사이에 어떤 차이점을 찾을 수 있는가. 홍세화니 김규항이니 강준만이니 하는 인간들이 떠드는 소리와 어떤 차별성을 느낄 수 있는가.

 

결국은 줄을 선 것이다. 어차피 정의당 이름으로 대선후보를 내봐야 당선은 어림도 없다. 괜히 돈만 쓰고 힘만 뺄 뿐이다. 그래서 욕심을 버린다. 하나만 들어주면 된다. 노동자였다면 검찰이 아니었겠지. 농민이었어도 검찰일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를 위하려 했다면 검찰의 편에 설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메갈리아의 뿌리는 일베다. 일베랑 다르지 않은 것들이 단지 성별만 다르게 모여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던 것이었다. 여성주의의 뿌리는 친일과 친독재, 친기득권이었다. 노동자와 농민을, 소상공인들을 단지 민주당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정의당을 보라. 차라리 중대재해법을 위해 국민의힘과 손잡지 민주당과 손잡지는 않는다. 

 

공수처법에 반대한 이유도 결국 국민의힘의 주장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국민의힘이 하자는대로 해주지 않아서였다. 중대재해법을 두고 민주당을 비판하는 이유도 같다. 국민의힘이 하자는대로 법안이 나왔어야 했다. 박주민 안대로 통과되었다면 과연 정의당은 민주당을 비판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처음부터 국민의힘 소속이 아니었으니까. 윤석열을 중심으로 제 3지대에서의 야권연대라는 명분도 챙길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래서 벌써부터 동지의식을 불태우는 것이다. 검찰을 칭찬하는 자칭 진보라니 이 얼마나 신기한 광경인가. 그것도 공작수사나 일삼던 특수부 검사들을 진심으로 열렬히 찬양하고 있다.

 

자칭 진보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정의당의 현재이며 미래다. 과거도 같았는지 모른다. 과연 패스트트랙 당시 사소한 문제로 민주당의 발목을 잡던 정의당의 모습이 진짜 절박한 어떤 목적에 의한 것이었는가. 그렇게 소수정당의 원내진입이 중요한 명분이었다면 비례정당에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었다. 이상을 위해 현실과 타협할 수 없다면서 지금 검찰과 국민의힘과 타협하는 모습은 분명 모순된다. 민주당을 거부한 원칙대로라면 국민의힘을 두고 노동존중의 정당이라 떠받드는 것은 자신들의 정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을 대상으로는 그래도 된다. 어째서?

 

지지하는 놈들도 똑같은 놈들이다. 위안부문제에 있어 박근혜의 위안부협정을 받아들였어야 한다며 정의연을 공격하던 것들이니. 여성주의자들에게 박근혜가 가지는 의미이며 위상인 것이다.

 

아무튼 정의당이 요즘 너무 솔직해진 것 같다. 보좌관은 노동자도 아니라며 마음대로 갑질하고 해고까지 한 류호정이 소상공인을 위하는 척 쇼까지 하는 모습이라니. 벌레만도 못하다. 자칭조차 앞으로 붙이지 못하겠다.

약을 사면 가장 먼저 부작용 항목부터 읽어본다. 별의 별 부작용들이 다 있다. 감기약으로 흔히 쓰이는 항히스타민제나 코로나 백신과 관련해서 관심이 높아진 진통소염제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부작용에 대한 설명 끝에 항상 따라오는 문장이 이상반응 있으면 바로 의사에게 상담하라.

 

하긴 그러니까 많은 의약품들이 의사의 처방을 받아야만 구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어디 아프고 염증생기면 가장 확실하게 효과를 발휘하는 스테로이드제의 경우 부작용 또한 커서 처방전 없이 사거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병원에서 중환자를 대상으로 쓰는 마약성 진통제들은 말할 것도 없다. 더구나 아예 의사의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 가운데도 상당한 부작용을 보이는 경우들이 없지 않다. 그러면 어째서 그런 부작용도 심각한 의약품들이 환자치료에 쓰일 수 있는 것인가? 그러면 자동차 사고로 한 해 죽는 사람이 몇 명인데 사람들은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일까? 부작용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써야 할 필요가 있을 만큼 이득도 크기 때문이다. 비례성이고 효용성이다.

 

백신 역시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라서 필연적으로 항체를 형성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면역반응으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년 독감백신 가지고 그 난리를 피운 것 아니었던가. 그동안 아무일없이 일상적으로 맞아 온 독감백신이 갑자기 부작용을 두려워해야 하는 위험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면 그동안 독감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사례가 전혀 없었던 것일까? 그럼에도 독감백신을 맞지 않으면 이명박 정부에서처럼 신종플루로 수십만이 감염되고 심지어 목을 잃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중증환자와 사망자, 그리고 회복되었더라도 후유증을 겪게 될 경우와 비교해서 지금의 백신이 얼마나 위험하다는 것인가. 무엇보다 바로 같은 백신을 접종하고 상황이 호전된 영국의 사례를 극찬하는 기사가 바로 같은 언론을 통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를 개발한 주체가 바로 영국이었고, 미국과 달리 영국에서는 바로 이 아스트라제네카를 주로 수 천만 명의 자국민들에 접종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그동안 화지아와 모더나 백신의 부작용으로 사망한 사례가 수 천 건 보고되고 있었다. 그런 사정은 설명하지 않고서도 부작용으로 인한 것인지도 모르는 사례만 부각시켜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것은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언론이 더이상 언론이 아니라는 이유인 것이다. 민주당이 언론개혁을 주저한다는 것은 코로나19의 공범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코로나19 방역에 힘쓰는 정부를 돕지는 못할 망정 그를 훼방놓는 언론을 방치하고 심지어 부추기기까지 하고 있다. 지금 상황이 얼마나 위중한지 모르는 것인가.

 

그렇게 언론에게 당했으면서 언론을 바로잡으려 하기보다 그저 무서워서 도망치기에 급급하다. 그저 만만한 게 문재인 정부고 지지자지 언론을 상대로는 찍소리도 못하는 버러지들만 한 무더기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국가에 끼치는 해악이 도대체 얼마인 것인가. 언론보다는 이래도 가만 두고 보자는 민주당이 더 미울 지경이다. 

검찰이 한동훈 명예훼손했다고 유시민을 기소하겠다고 한다. 결국 목표가 명확해진다. 퇴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도 노무현 전대통령처럼 만들겠다. 그러면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겠는가.

 

방법은 간단하다. 검찰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한다. 준비는 다 끝났다. 그런데 안한다. 왜? 그거 말리는 놈들이 있다. 필사적으로 막아서는 년놈들이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윤석열의 대선후보 지지율도 높고 하니 대선정국 시작되면 바로 갈아타자. 조응천 백혜련 박용진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아마 초선들에게도 제안이 갔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끝났다. 민주당도 미래가 없다. 그러니 검찰로 갈아타자. 어떻게 아느냐? 원래 민주당이 그런 정당이었거든.

 

세계에서 유일하다. 지지자를 거추장스럽게 여긴다. 당원이 떠난다면 오히려 기뻐한다. 정권을 잡으려는 의지조차 없다. 다수당이 되겠다는 욕심마저 없다. 그냥저냥 내 배지나 지키며 아무것도 않고 살자.

 

그러면 어째야 하는가? 개혁할 수 있는 당대표를 밀어주어야 한다. 우원식이 나아 보이지만 차선으로 홍영표도 썩 나쁘지는 않다. 중요한 건 송영길만 아니면 된다는 것.

 

아주 골때리는 상황이란 것이다. 아무리 의리도 근본도 없는 정당이라지만 대통령 지지율 조금 떨어졌다고 갈아탈 생각부터 하다니. 그래봐야 이재명이 윤석열보다 지지율도 더 높다. 버러지 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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