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뒤에 '장'자 붙은 자리를 그리 싫어하는 이유다. 그냥 말단일 때는 시키는대로만 하면 된다. 굳이 더 생각할 필요도 없고 판단할 이유도 없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라면 하라는대로 그러지 말라면 또 그러지 않으면 된다. 당연히 책임도 딱 거기까지만이다. 하지만 별 것 아니라도 뒤에 '장'이 붙기 시작하면 때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도 내려야 한다. 책임도 져야만 한다. 무슨 말이냐면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와 책임을 먼저 생각하느라 온전히 자신의 주장과 판단에만 맡길 수 없는 순간이 반드시 거의 매번 찾아오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어지간한 독재자들조차 자기가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며 살지는 못한다. 당장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도움이 될 만한 세력이나 개인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어디까지 어떻게 권력을 나눌 것인가도 결정해야 한다. 북한에서 김정은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김정은 자신의 권력유지에 도움을 주는 다른 주체들에 대해 충분한 대가를 이 순간에도 지불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정작 모든 것을 김정일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 같아도 여기저기 눈치보며 신경써야 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그냥 독재자니까 김정은 혼자 결정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러고 나서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주위도 배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김영철이 한 번 숙청되었다가 다시 복귀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당 안에서만 서로 다른 수많은 주장과 이해들이 공존한다. 서로 다른 이념과 신념과 가치와 지향이 서로 갈등하며 충돌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느 것을 희생시킬 것인가. 대한민국에 더불어민주당과 그 지지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과연 반대정파의 주장과 요구라고 온전히 무시만 할 수 있을 것인가. 중요한 것은 내가 권력을 가져야 최대한 내가 원하는 바를 현실에서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디까지 양보하고 무엇까지 타협할 수 있을 것인가. 매 순간이 선택이며, 그 선택이란 무언가를 얻기보다 포기하고 희생하는 것이기 쉽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그리 원하고 주장하는 당원과 지지자들이 적지 않으므로. 나는 절대 반대인데 다수의 국민들이 그것을 바라며 요구하고 있으므로. 대신 그 대가로 권력을 가지고서 반드시 절대 양보하지 않고 이루어야 할 한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바로 리더십이라 부르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타인을 이끄는 능력이 아니다. 내가 마음대로 타인들을 휘두를 수 있는 그런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양보하는 것이다. 희생하는 것이다. 포기하는 것이다. 선택을 통해 그들로부터 하나씩 받아내어 그것으로 온전히 하나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거부할 수 없도록 조건을 제시하고 충족해주는 능력인 것이다. 거기에 개인이란 없다. 자신이란 없다. 그래서 리더란 오로지 공적인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아도, 혹은 내가 간절히 원하더라도,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만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그런 각오를 가진 이들만이 비로소 리더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리더로서 모두로부터 인정받고 그들을 이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정의당을 두고 사람들은 정당이 아닌 정치동아리라고 비웃고 폄훼하는가. 그래서 정의당이 무엇을 양보해 봤는가. 무엇을 포기해 봤는가. 지지자들마저 짜증날 정도로 민주당은 항상 타협에 익숙하다. 양보와 희생과 절충과 포기에 익숙하다. 분위기 봐서 아니다 싶으면 바로 물러서 빠진다. 상황 봐서 괜찮겠다 싶으면 그때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장차 선거에서 유리할 것 같다 싶으면 반대하던 법안과 정책도 얼마든지 동의하고 추진할 수 있다. 그러니까 모든 언론을 적으로 돌린 상황에서도 항상 보수정당과 경쟁하며 대등한 의석도 얻고 대통령도 당선시켜 정권을 가져오기도 했던 것이었다. 김대중이 좋아서 김종필과 손잡았겠는가. 노무현이 좋아서 정몽준과 연대했겠는가. 문재인이 스스로 바라서 안철수를 설득하고 있었겠는가. 당을 지키기 위해서 김종인이라도 데리고 와야만 했었다.

 

그런 필사적이고 처절한 의지가, 그렇게 간절하고 절박한 권력에 대한 탐욕이 있었기에 지금의 민주당이 있는 것이다. 정의당이 자신들의 선명한 정의와 진보의 이념을 자랑할 때 때로 꺾이고 때로 짓밟히고 때로 부서지면서도 민주당은 보수정당과 몸으로 부딪혀 싸우며 지금의 자리를 지켜왔던 것이었다. 국민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여론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상황만은 피하려 노력하면서. 대세에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지켜야 할 것들인 지켜야 한다. 그래서 김한길이 민주당의 주류가 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세력이 크고 강해도 민주당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오롯이 민주당의 가치와 지향을 정의하는 그들이어야 하는 것이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세종의 대사였을 것이다. 왕인 자신의 마음이 지옥에 있기에 백성들이 극락에 사는 것이다. 스스로 자신을 죽이는 길을 가고 있기에 백성들이 사는 길을 찾게 되는 것이다. 왕이 저 하고 싶은대로 오로지 좋은 길만 찾아가면 오히려 백성이 지옥에 살게 된다. 그런데도 왕의 마음이 보살이 아니라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한 점 티끌없이 맑지 못하다고 그를 욕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왕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인내하고 인내하고 또 인내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예 싫어 죽겠어도, 화가 나고 원망이 들고 미운 마음에 사로잡혔어도, 혹은 좋고 기쁘고 아끼는 마음이 있어도 그러나 자신은 왕이기에 그런 모든 마음을 접어야 하고 눌러야 하고 끝내는 죽여야 한다.

 

정의당과 민주당의 차이인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의석수도 적고 정권은 더욱 꿈도 꾸지 못하는 대신 마음은 편한 것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 자신들의 선명한 주장만 마음껏 내지를 수 있으면 그만이니까. 이런 쉬운 걸 민주당은 왜 못하는가. 그렇게 쉬운 일이기에 민주당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런 현실을 감당하지 못한 표창원과 같은 이들은 정치를 더욱 혐오하며 그만두기도 한다. 정치란 사람의 길이 아닌 짐승의 길이다. 그런데 그 짐승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보수정권이 들어서고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와중에도 이 사회는 이나마라도 지켜진 것이었다.

 

새삼 정의당의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 가소로운 이유인 것이다. 진보적 이념과 정책을 두고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더욱 강하게 비판하겠다는 저들의 의도와 선언이 우습게만 여겨지는 이유인 것이다. 그래서 저들은 동아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속편하게 자신들의 주장이 어떻게 이용될지를 알면서도 선의라 여기기에 고용유연제도 주장할 수 있다. 해고도 쉽게 하고 채용도 쉽게 할 수 있게 제도를 바꾸겠다. 유럽의 어디서 같은 제도를 시행중이니 문제는 없다. 한 점 티끌 없이 투명하기만 해서 그냥 웃게 된다. 그래서 정의당인 것이고 민주당인 것이다. 비판도 아까울 정도다.

말해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리 그래도 한겨레가 설마... 아무리 한겨레가 미쳤기로 이명박을 좋다 하겠는가? 박근혜는 인정하더라. 단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박근혜를 지지했고 여전히 지지하고 있는 여성주의자들이 상당하다 보니. 그렇더라도 이명박은 아니지 않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예로 들어 이명박의 환경정책까지 칭찬하네. 이명박이 아파트값 더 올리려던 걸 실패한 것을 부동산정책의 성공이라 감싸고. 내가 말했잖은가? 저놈들은 민주당만 아니면 전두환이라도 찬양했을 놈들이라고.

 

진짜다. 전임 대통령이 전두환이고 박정희인데 지금 대통령이 노무현 문재인이다. 한겨레에서 논조가 어떻게 바뀌었겠는가? 광주학살도 그럴 수 있었다. 국가의 통합과 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10월 유신도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와 그토록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한겨레가 노무현 죽이고 한명숙 잡아넣을 때는 철저히 협조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박근혜 탄핵은 그리 앞장서더니 정작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니 지지자들을 상대로 저주부터 퍼부어댄 것이었고. 그래서 차라리 이명박근혜가 나았다.

 

개소리라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개인의 성공과 실패란 의미가 없다. 정치인이란 철저히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에게 있어 공적인 역할을 다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 개인적으로 뇌물을 받아 쳐먹었든, 부정을 저질러 수 천억을 뒤로 챙겼든 결과적으로 국가가 안정되고 부강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자기 역할을 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라고 정치인에게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위임한 것일 테니까. 개인의 실패라 말하지만 결국 공적인 성공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바로 그 한겨레가. 현정부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와 비교되지 않는가?

 

바로 이런 모습들이야 말로 한겨레가 종이신문으로 돌아가려는 길을 완전히 불사르려는 각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이상 종이신문을 사 줄 민주진보진영의 독자들은 상관없이 포털에서 자신들의 뉴스를 소비해 줄 보수적인 네티즌들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쓴다. 이명박은 잘했다. 박근혜도 못하지 않았다. 노무현과 문재인만 못했다. 저들이 진정 듣고 싶은 이야기일 테니까. 죽은 신해철까지 끄집어내는 서민이나 이명박근혜 재평가에 앞장서는 한겨레나. 진보의 종말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중이다. 엘리트주의의 끝은 그냥 독재일 뿐이다. 

사모펀드 건은 조범동과 공범으로 기소되었다가 다른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났기 때문에 아예 정경심 재판에서는 심리조차 진행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재판관련 기사라고 나오는 것을 보면 죄다 표창장 위조 관련인데, 아무리 표창장 위조로 유죄판결을 받는다고 형량이 구속기간보다 더 나오기란 힘들다. 더 나오면 그 순간 사법부 적폐인증이다. 더구나 윤석열 장모가 사문서위조와 행사로 엮여 있기 때문에 더욱 연관되어 비판받을 소지가 크다. 문제는 그렇다고 형량을 낮게 줄 경우 그동안 검찰이 수사한다고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것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추미애 장관이 조국 전장관 일가족에 대한 검찰의 과잉수사를 묻고자 하는 의지를 밝힌 이유다. 고작해야 표창장 위조다. 실제 위조되었다고 해봐야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를 지방 3류대의 봉사표창장이란 것이다. 오죽하면 지원자도 없어서 교직원들에게 원서를 쓰게 해서까지 겨우 신입생 수를 기준에 맞추고 있었겠는가. 총장이라는 사람이 학력까지 사칭하던 대학의 표창장이 뭐 그리 대수라고 그것 위조한 것 밝히겠다며 그토록 온 나라를 들쑤셔 놓은 것인가. 언론은 고작 표창장 위조 하나 파헤치려 그 난리를 피운 것인가. 

 

이래서 사법시험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사법고시 합격할 때까지 죽어라 골방에서 법전만 파다가, 사법고시 합격하고 나면 각각 법원과 검찰이라는 좁은 세상에 갇혀 거기가 전부라 여기며 살아간다. 조금만 머리가 있어도 지금 표창장 가지고 유무죄를 다투는 자체가 크게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온 나라를 뒤집어 엎고 재판만 1년 가까이 끌어서 나온 결론이라는 게 표창장 위조가 사실이라는 것인가. 고작 표창장 따위가 그렇게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이었다는 것인가. 다른 의도가 없었다면 그런 정도 범죄로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수사와 기소를 이어가지도 않는다.

 

당장 주위에 물어보라. 정치적으로 아예 입장이 정해진 경우를 제외하면 고작 표창장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그렇게 시끄럽고 재판만 1년 가까이 끌어 온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조국 전장관이나 그를 임명한 대통령을 비판한다면 그렇게 온 나라를 오랜동안 시끄럽게 만든 자체를 문제삼고 있을 것이다. 비례관계인 것이다. 그래서 표창장을 위조했다 치고 그게 그렇게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인가. 설사 유죄판결이 나왔더라도 고작 그런 정도 사안으로 수사든 기소든 구속이든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그러니까 정부와 여당 내부에서도 전과 달리 조국 전장관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조범동 재판에서 사모펀드 건이 모두 무죄로 판결난 이상 끝난 사안인 것이다. 표창장 위조와 관련해서 유무죄 여부는 정경심 개인이나 가족들에게나 의미가 있지 나같은 제 3자에게는 전혀 아무 상관 없는 그저 남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을 잘 해야 할 텐데. 오히려 섣부르게 유죄판결을 내릴 경우 괜히 후폭풍만 커질 수 있다. 면피로 삼기에도 검찰 스스로가 너무나 크게 일을 벌인 탓에 자위용으로나 겨우 쓰일 뿐이다. 대신 이재용 재판까지 맡아야 하는데 자칫 40% 넘는 지지율의 살아있는 권력과 174석의 거대여당과 사법부 전체가 대립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차라리 사실에 근거하여 법대로만 판결을 내린다면 검찰은 조금 더 곤란해지겠지만 사법부는 책임을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공부만 잘하는 머리 좋은 바보들이 사법부나 검찰이나 너무 많다는 사실인데. 머리 좋다고 다 똑똑한 것은 아니란 것이다.

 

아무튼 오히려 이번 정경심 교수의 재판결과에 더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사법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경심 교수 자신이나 가족, 혹은 주변인들이 아닌 이상 재판결과에 직접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 자신이게 되는 것이다. 검찰은 끝났다. 어떤 결론이 나오든 봉사표창장이란 검찰이 그동안 해 온 수사와 재판에 비하면 너무나 사소한 것이다. 그런 검찰을 위해서 과연 사법부 전체를 끌고 들어갈 수 있는 판결을 내리고 말 것인가. 사소한 일에 너무 큰 것을 거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말 것인가. 김명수가 언제까지고 사법부를 지켜 줄 수는 없다.

 

불안해 할 필요가 없다. 역시 내 일이 아니라 그렇다. 정경심 교수가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지 내가 유죄판결을 받는 것이 아니다. 조국 전장관 아내이지 내 가족인 것도 아니다. 다만 그렇게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어 생난리를 쳤어도 전혀 흔들림없이 정부를 지지하던 국민이 무려 40%를 넘어가고 있었다는 사실만 명심하면 된다. 그들의 앞에 양승태가 아닌 사법부 전체가 청산해야 할 적폐로써 그 정체를 드러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조국 전장관이나 가족들에게 더 큰 빚을 지게 되는 셈일 테지만 역사의 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과연 머리 좋은 바보일 것인가? 흥미롭다.

그냥 유재일 떠올리면 된다. 한때 민주진보를 자처하다가 작년 조국사태를 계기로 완전히 보수로 전향한 자칭 정치평론가다. 개인적으로 정치평론가라 하면 사짜 비슷하에 여기는 편이라 그다지 의미를 두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무튼 당장 유튜브만 보더라도 보수가 숫적으로도 압도하고 돈도 더 많이 벌리기에 그냥 편한 보수유튜버로 전향하기로 한다. 실제 아마 민주진보 평론가연 하던 시절보다 지금이 돈도 더 많이 잘 벌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다음카카오 부사장으로 조선일보 출신이 가면서 대문에 오른 기사들의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네이버야 오래전에 이미 평정되었고, 다음이 그나마 버티고 있었는데 최순실의 마지막 똥으로 카카오가 저쪽에 넘어가면서 대문이 갈수록 네이버스러워지고 있었다. 어차피 그동안 해 놓은 짓거리가 있으므로 민주진영 독자들이 더이상 자신들의 신문을 사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한겨레가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기를 노려봐야겠다. 어떻게 하면 포털 편집자들이 좋아할만한 제목과 기사를 뽑아 1면에 간택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봐야 한다.

 

사실 한겨레라는 언론사의 정체성을 보더라도 그쪽이 맞는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과연 한겨레가 참여정부 이후 단 한 번이라도 진보언론이었던 적이 있었는가. 한겨레의 정체성은 오로지 반민주당 하나였었다. 민주당만 욕할 수 있으면 이명박도 박근혜도 찬양할 수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권과 손잡고 노무현도 죽였었다. 한명숙도 감옥에 보내고 있었다. 그때 한겨레 기자가 외쳤었다지. 사필귀정이라고. 한겨레에게 절대악이란 그 정도로 민주당이었고 친노였고 친문이었던 것이다. 그 밖에 것들은 그냥 나머지다. 그렇다면 어느때보다 민주당과 반민주로 정치권이 양분된 지금에 한겨레의 선택지는 무엇이 남았을 것인가. 정의당마저 반민주를 위해서 진보를 포기하고 고용유연화를 주장하기 시작한 지금 한겨레에게 남은 선택지란 무엇일 것인가.

 

실제 이번 정부 들어서 한겨레는 그동안의 주장을 부정하듯 최저임금인상에도 반대했고, 근로시간단축에도 반대했고, 탈원전 역시 반대한 바 있었다. 위안부문제에 있어서도 정의연이 아닌 박근혜식 위안부협정을 지지하는 스탠스를 취하기도 했었다. 모두 현정부가 추진한 정책들이라 그렇다. 최저임금은 인상되어야 하지만 현정부의 정책에 이런 문제가 있으므로 반대하고, 근로시간도 단축되어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에 이런 단점들이 있기에 반대하고, 탈원전을 주장하지만 정부의 정책과정에 이런 오류가 있으므로 반대한다. 위안부문제는 해결되어야 하는데 다른 언론이 비판하고 있으므로 정의연은 물러나야 한다. 그냥 다 반대다. 아마 현정부에서 차별금지법을 전격적으로 통과시킨다 하면 차별금지법도 반대하고 나서지 않을까.

 

그냥 반정부로 가겠다. 반민주로 가겠다. 돈 되는 쪽으로 쫓아서 가겠다. 한겨레가 삼성을 까는 이유는 하나다. 삼성을 까다 보면 적당히 까라고 삼성에서 얼마간 쥐어주기도 한다. 삼성 열심히 까던 기자를 특채해서 데려가기도 한다. 다 돈벌이라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당시에도 그런 식으로 정부로부터 얼마를 받아 쳐먹었을까? 최소한 현정부에서보다 한겨레가 더 살기 좋았던 시절이라는 한겨레 기자의 토로는 사실일 것으로 여겨진다.

 

한 마디로 그냥 하던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원래 하던 대로 하는데 더 노골적으로 하겠다. 최근 한겨레 유튜브 채널을 보더라도 분명해진다. 윤석열 가족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는다. 검찰의 문제는 최대한 회피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현정부와 여당의 책임으로 돌린다. 부정과 불법의 의혹으로 돌리려 노력한다. 윤석열 검찰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청와대의 절대악을 파헤칠 수 있다. 역시 한겨레 기자가 직접 라디오에 나와 한 말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똥걸레는 똥걸레다.

보수정당이나 검찰, 혹은 기업들이 언론이나 기자들에 대해 고소고발을 일삼아도 조용한 이유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그래왔기 때문이었다. 원래 평소 힘으로 언론과 기자들을 찍어누르던 존재이기에 새삼 채이고 밟히고 굴려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그렇게 길들여져 온 것이다.

 

그러면 민주당은 어째서 안되는 것인가? 역시 그래왔기 때문인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어지간해서는 언론이나 기자들에 대해 직접적인 대응을 삼가해 왔었다. 기껏해야 말 몇 마디 험하게 하는 정도였지 고소고발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말 몇 마디 한 것도 여론이 뭐라 하기라도 하면 바로 철회하고 사과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니까 민주당은 언론이 뭐라 보도를 하든 반응않는 것이 정상이고 아무리 억울하고 화가 나도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이기에 참는 것이 상식인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민주당은 언론과 기자를 상대로 고소고발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자칭 진보언론들조차 보수정당과 보수정권을 상대로 비판할 때는 표현 하나까지 세심하게 주의해 쓰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 최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혹시라도 사실과 다른 것이 있으면 바로 무릎꿇고 사과한다. 아예 머리를 조아리고 바닥을 찧으며 용서를 구하는 경우마저 있다. 보수정당보다도 이 사회의 실세 중의 실세라는 검찰총장이라면 벌거벗고 누워서 배가르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다. 아니면 다치니까.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가는 크게 곤란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되는 상대에게는 그래도 되고 그래야 하는 상대에게는 그래야 한다. 언론의 속성이기 이전에 소인배들의 속성이다. 양심도 신념도 지조도 절개도 없는 놈들에게는 그런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지난 1월 아예 대놓고 선거법을 위반하는 칼럼을 임미리가 쓰고 경향이 게재한 것도 그런 연장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과연 보수정당을 향한 것이었으면 가능하기는 했을까. 이명박근혜 정부에서였다면 감히 엄두라도 낼 수 있었을까. 그러나 민주당이니까. 그래도 되는 정당일 테니까. 그래서 나경원이며 홍준표가 기자를 고소하고 아예 회견장에서 내쫓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민주당에서 기자 고소하고 혹은 비판적인 논평을 내니 온 언론이 들썩인다. 오히려 검언유착의 의혹을 묻기 위해 알릴레오 패널 하나의 성희롱성 발언을 크게 키우는 경우마저 생긴다. 유시민이 사과할 것을 알았으니까. 가세연이나 홍카콜라라면 사과할 일 같은 것 없다. 그러니까 조국 전장관의 고소고발에는 반발하면서 윤석열의 기자고발과 송치에는 침묵하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대로 두고만 봐야 하는가.

 

조국 전장관이 따박따박 하나하나 언론에 대해 악의적 오보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 그래서 민주당과 지지자들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이유인 것이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언론이 자칫 선을 넘거나 하면 보수정당이 그랬던 것처럼 얼마든지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사실 명분도 좋았다. 너무 봐주기만 했더나 언론이 넘어서는 안되는 선까지 넘고 말았다. 가족을 걸고 넘어졌다. 공직자 개인에 대해서는 공인이니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사인에 지나지 않는 공직자 가족들을 대상으로도 온간 악의적인 비방과 모욕과 조롱이 일상으로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직자 개인에 대해서는 무어라 주장해도 용인하겠지만 가족에 대해서만은 아니다.

 

그래서 윤미향 의원의 경우도 남편이 나서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고 있는 것이다. 윤미향 의원 자신은 시민단체의 대표로서 공인이기도 하기에 검증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그냥 개인사업을 하는 남편의 경우는 그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추미애 장관도 그래서 아들이 나서서 언론을 상대로 고소를 진행하는 중이다. 김용민 의원은 한 발 더 나가 아예 진중권을 대상으로 모욕죄로 고발을 이어나가는 중이다. 결국 뭐냐면 빌미를 준 것은 어디까지나 언론이며, 공직자의 검증에 가족까지 끌어들인 보수정당이란 것이다. 그것이 왜 문제인지도 모르고 비판의식없이 받아쓴 것도 언론의 너무나 큰 잘못일 수 있다. 그러니까 민주당도 더 이상 참지는 않겠다. 그래서 그 첫발을 조국이 여전히 수많은 언론의 비난 속에 내딛고 있는 것이다. 더이상 또다른 조국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은 외쳤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온라인에서만 사람들이 열사가 되고 투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런다고 누군가에게 실제로 쳐맞을 위험이 없기 때문인 것이다. 온라인에서 대단히 열정적이고 정의로운 사람일수록 그래서 자신을 향한 작은 비판조차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누군가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으로 고소고발당하면 그때부터는 오만 우는 소리를 쏟아내기도 한다. 쳐맞아보면 안다. 제대로 아파보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를 몸으로 깨닫고 그때부터 조심하게 된다. 민주당도 잘못 건드리면 좆되는 수가 있다. 민주정부도 괜히 잘못 선을 넘었더가는 진짜 인생 조지는 수가 있다. 이동재가 그 대표적인 예 아니던가.

 

그러니까 더 반발하는 것일 게다. 아니면 진짜 제대로 취재해서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대충 걸리는대로 비틀고 키워서 정부와 여당만 욕할 수 있으면 권력과 싸우는 기사행세도 제대로 할 수 있었는데 그마저도 일일이 취재해서 확인하고 기사를 써야 하는 것이다. 어디 감히 민주당따위가. 마치 하루종일 술쳐먹고 놀다가 공사가 아직 안 끝났냐는 집주인의 말에 화부터 내는 인부들 꼬라지인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가족까지 걸고 넘어지는 기자들을 더이상 봐줄 생각이 민주당은 없을 텐데. 더이상 그래도 되는 민주당은 없다. 그래야 되는 민주당도 없다. 존중없이는 존중도 없다. 언론의 자유를 먼저 짓밟은 것은 선을 너무 넘어버린 언론 자신이다.

 

이제부터 기자들도 몸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민주정부에 대해 기사를 쓸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발로 뛰어 취재한 뒤 표현을 조심해가며 써야만 한다. 보수정당에 그러는 것처럼. 검찰에 대해 그러는 것처럼. 그토록 현정부와 여당에 날을 세우는 자칭 진보들이 검찰을 향해 조심하는 것을 보면 어찌나 안쓰러운지. 정의도 신념도 진실도 용기도 무엇도 없는 그 비루함이란. 댓가를 치러야겠지.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이려 했다면 대가는 엄중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언론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 언론이 그동안 해 온 일들의 결과다.

 

조국 전장관을 지지하는 이유다. 하나하나 따박따박. 조국 전장관 하나로는 부족하니 윤미향 의원의 가족들도 한 번 나서봐도 좋을 것이다. 추미애 장관 가족들도 절대 언론을 그대로 두고 봐서는 안된다. 징벌적손해배상제는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 이낙연에 거는 기대다. 이마저 못하면 대통령은 포기하는 게 옳다.

오래전 공사장에서 일하면 새참 때 막걸리도 한 잔 씩 돌리고 했었다. 당연히 안 될 일이다. 하도 안전사고가 일어나니까 아예 법으로 절대 그러지 못하도록 막아 버렸다. 현장에서 반응은 어땠을까?

 

안전모, 안전화, 안전장갑 꼭 하라. 그렇게 싫어한다. 근데 안전모는 솔직히 나도 별로다. 여름에 하루 쓰고 나면 온통 뭐가 나는 것 같은게 따갑고 가려워서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장에서 반발한다고 안전장비착용을 철회한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개혁이라는 게 그렇다. 하다못해 군대에서도 그래도 뭐 하나 좋게 만들겠다고 지침이 내려오면 일단 병들부터 대놓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혹행위 하지 말라 해도 꼭 하고, 구타 하지 말라 그리 강조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구타한다. 그래야 군대가 돌아간다.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 하라는 자체가 스트레스인 것이다. 더구나 그것을 권한으로 여기고 있다면 더욱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공무원들 돈 못받게 하고 기강을 바로세우겠다며 개혁에 나섰을 때 공무원들의 반응은 어땠겠는가. 택시들 규제하고 단속할 때는 어땠을까? 당연히 개혁을 시작할 때는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기득권의 저항이 없으면 그것은 개혁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런 저항을 당연하게 받아 옮기며 개혁은 잘못되었다 주장한다. 무슨 의미이겠는가.

 

물론 기자와 검찰은 이해공동체다. 아예 대부분 기자들이 자신들은 검찰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기사를 쓴다. 검찰이 옳다면 옳고, 검찰이 그르다면 그르다. 검찰이 검다면 흰 것도 검은 것이고, 검찰이 노랗다면 파란 색도 노란 것이다. 그래도 되었던 이유는 검찰이야 말로 옳고 그르고 검고 노란 것을 결정할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찰만 따라서 기사를 쓰면 전혀 문제될 일이 없었다. 그러니 검찰을 지켜야 한다. 검찰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기자인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검찰이 그동안 누리던 기득권과 편의로 해오던 관행등을 바로잡으려 한다. 귀찮고 성가시다. 피해가 막심하다. 그래서 검찰이 반발하고, 그런 검찰과 한 몸이 된 기자가 반발한다. 그래봐야 법무부는 검찰청의 상급기관이고 법무부장관은 검찰의 상관이다. 다만 이런 경우만 기자들은 쏙 빠진다. 양아치들이다.

 

아무튼 제발 집단으로 사표 좀 내주었으면 바라고 있을 지 모르겠다. 좋은 변호사들 많다. 오히려 검사들보다 더 현실에 밝고 양심적인 변호사들이 검찰 밖에 채이는 상황이다. 과연... 그러거나 말거나 개똥이 뒹굴어도 기차는 달려간다.

 

어이없으면서도 한 편으로 이해가 가는 이유다. 검찰과 언론은 한 몸이다. 검사와 기자는 자웅동체다. 진보와 보수가 따로 없다. 공중파와 종편과 종이신문의 구분조차 없다. 현실이 그렇다. 똥같은 것이다.

사실 집권자로서 여론조사를 하게 되면 겪는 장점이자 단점일 텐데, 뭐냐면 바로 판단과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권한을 가지고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판단과 평가 역시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집권자에 대한 여론조사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체적이다. 이런 정책은 잘한다, 이런 정책은 못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이 하는 일이니 완벽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아쉬움과 불만도 있고,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래도 뭔가 해낸 것은 정부와 여당 밖에 없다. 그러면 야당은 무얼 했는가? 야당이 내놓은 제안들조차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게 정권을 가진 정부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처럼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어 아주 사소한 흠이라도 찾으려고 지랄하는 상황에서는 정부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기가 상당히 꺼려진다는 것이다. 그냥 정부만 욕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자까지 싸잡아서 욕하는데 누가 나 문빠요 하고 당당히 밝히려 들겠는가. 그것을 노리고 진보와 보수 할 것 없이 모두가 지지자를 싸잡아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지지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을 억누를 수 있다. 그 결과가 리얼미터에서 유독 낮게 나오고 있는 정부와 여당에 대한 지지율인 것이다. 반면 갤럽은 ARS에서는 억누르고 드러내지 않았던 자신의 지지성향을 실제 설문을 통해 드러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보수에 샤이가 많다는 것은 그동안 정권을 잡아 온 것이 보수정당이기 때문인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보수정당이 정권을 잡고서 보여 온 모습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야당 역시 지리멸렬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평소 지지율은 항상 보수정당의 절반 조금 넘는 정도가 고작이었었다. 그래도 야당 입장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못하기만 해도 지지할 이유가 된다. 반면 정부와 여당이 잘한다 싶으면 야당을 굳이 지지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막상 선거 때가 되면 그래도 정권을 잡은 입장에서 이것저것 해놓은 것도 많으니 그런 것들을 고려해 현재의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주려 한다. 과연 정부와 여당에 대한 반감으로 야당을 지지하기는 하는데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온전히 대신할 수 있을 것인가.

 

최악은 아무것도 않는 것이다. 차선은 그나마 실패하는 것이다. 실패라도 한다면 다음에는 더 잘하려는 노력이라도 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지게 된다. 지금 보수정당이 하고 있는 짓거리다. 정의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뭘 하고 있을까? 고작 조선일보의 눈에 들어 기사 몇 줄 나오는 것 말고 지금 정의당이 실제 하고 있는 의미있는 행동들이란 무엇이 있을까? 주장은 주장이다. 비판은 비판이다. 행동은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을 먹는 만큼 기대도 신뢰도 받게 되는 것이다.

 

갤럽과 리얼미터의 전혀 다른 여론조사 결과를 대하는 나의 이해와 입장이다. 갤럽은 굳이 현정부와 여당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싶지 않은 여론을, 리얼미터는 그럼에도 직접적으로 그런 것을 드러내고 싶은 적극성을 각각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뭐가 다른가? 그래봐야 둘 다 대통령 지지율은 40% 중반을 넘어가고 정당지지율에서도 열린민주당 포함 10% 이상의 차이가 난다. 리얼미터에서는 열린민주당이 많이 잡히고 갤럽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더 많이 잡힌다. 그냥아무리 그래도 지지율 격차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는 일이 다른데. 이나마도 언론의 힘일 것이다. 한심하게도.

박근혜는 어찌되었거나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하다. 여성주의가 다른 어떤 진보적 가치보다도 우선하는 현재의 자칭 진보라면 여성인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남성인 대통령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상황 자체가 마음에 안 들 수 있다. 실제 메갈이나 워마드 등을 보면 그런 주장들이 거의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은 그나마 접점도 없지 않은가. 추진한 정책들마다 하나같이 진보의 가치와는 배치되는 것들이었는데 어째서 한겨레는 그 이명박조차도 현정부보다 낫다고 하는 것일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한겨레 기자 스스로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이명박근혜 시절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이명박근혜 시절이 지금보다 더 낫다. 그래서 생각했다. 과연 이명박 정부 시절 한겨레에게 좋았던 일이 무엇이 있었는지. 두 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노무현 죽인 것이고, 하나는 한명숙 감옥에 보낸 것이다. 아직 조국은 감옥은 커녕 자유롭게 세상을 활보하고 다니지 않는다. 윤미향이든 추미애든 멀쩡히 살아서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당장에라도 문재인을 끌어내려 노무현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 말고는 없다. 한겨레가 지금보다 더 나았다고 할 만한 부분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한 가지 뿐이다. 그것 말고 한겨레가 그 시절을 그리워할만한 무언가가 있기는 한 것인가. 그래서 납득하게 되는 것이다. 한겨레가 스스로 취재한 내용이 있음에도 조선일보와 함께 사람을 죽이기 위한 기사를 그토록 쏟아냈던 이유인 것이다. 한 번 피맛을 보면 더이상 펜은 펜으로서 기능을 하지 못한다. 피에 도취되면 그때부터는 망나니가 되어 버린다. 더구나 세상에 자기 잘난 줄만 아는 놈들이면 더욱. 아닐까? 아니길 바라지만. 똥걸레니까.

베스트는 당연히 조국 전장관부터 시작해서 청와대의 부정과 비리를 파헤쳐서 정권을 무너뜨리고 바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만한 자신감이 있었다. 언론이 자기들 손안에 있다. 과거에도 그런 방식으로 노무현을 죽이고 한명숙을 감옥에 보내고 그러면서 검찰의 범죄는 철저히 감출 수 있었다.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없는 것으로 만든다. 삶과 죽음까지 좌지우지한다. 그런데 어쩌나? 언론이 뭔 소리를 하든 믿지 않는 국민이 40%를 넘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수사를 통해 무언가 결과라 할 만한 것을 내놓았는가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악랄하게 집요하게 수사하는 것에 열받은 정권이나 여당에서 자신을 해임하는 것이었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대가로 해임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불의하고 부정한 권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보수층이야 당연히 자신들과 반대편에 있는 - 그보다는 아예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민주당 정권을 공격하는 자체만으로도 윤석열을 지지하게 될 테지만 중도층까지 끌어오려면 그런 서사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불의한 권력과 맞서는 정의로운 검사와 그 권력에 의해 희생된 희생양의 이미지는 중도층에게도 동정심과 더불어 그를 내친 정권에 대한 분노까지 불러일으키며 감정적으로 이입하기 쉽게 만든다. 윤석열을 내쫓은 자체만으로 정권은 치부를 감추려는 불의한 정권이 된다. 당사자인 윤석열을 통해 그런 정권을 타도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윤석열이 스스로 먼저 자신의 정치적 야심이나 지향을 드러내기 전에 이 모든 것이 이루어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그동안 검찰이 조국 전장관이나 정부를 상대로 벌였던 수사들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어야 한다. 최소한 지금과 같은 지리멸렬에 가까운 결과가 나오기 전에 행동에 들어갔어야 했다. 분명 법원은 검찰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유죄판결을 내리게 될 테지만 그럼에도 형량이 집행유예 이하, 아니 구속기간으로 퉁치는 정도의 징역형으로는 그동안 검찰이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 결과로써 부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아무리 유죄판결이 나오더라도 표창장 하나로는 오히려 법원이 욕먹기 딱 좋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거라도 없으면 지금 검찰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언론이 검찰에 유리한 정보만 필사적으로 받아서 한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것 아니던가.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어야만 자기들도 살 길이 열린다. 그러나 어쩌는가. 그래봐야 나온 게 이 따위인 것을. 이런 결과 보자고 1년 넘게 그토록 검찰과 언론은 온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었던 것인가.

 

그렇게 조국 전장관에 대한 수사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추미애 장관에 대한 공격도 흐지부지, 거기에 더해 자기에 대한 불리한 이슈들이 계속해서 불거지는 가운데 정부도 아닌 여당의 공격을 받으며 정치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야당 소속이다. 보수야당 소속 대선후보다. 참고로 국민의힘 소속 대선후보로 나서려는 윤석열은 지금 정의당, 경향일보, 한겨레, 홍세화 무리들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좌우합작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아무튼 그렇게 노골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방향을 드러냈을 경우 과연 유권자들의 - 보수가 아닌 중도층의 선택은 어떠할 것인가. 차라리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던 당시 때려치고 나왔다면 이미지는 달라졌을지 모르겠다. 그래봐야 바로 윤석열 자신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면 결국 모든 건 끝나고 만다.

 

아마 윤석열에게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소수의 특수부에게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그의 리더십 자체였을 것이다. 소수의 측근들에게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충성을 받지만 그 밖의 다른 검찰들로부터는 아예 적으로까지 인식된다. 같은 검찰인데 검찰 내 인사들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믿었다면 이미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순간 바로 총장직을 때려치고 다른 검사들에게 뒤를 맡기고 물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차선책인데 그것을 하지 못했었다. 그런 놈이 대통령감이라니. 한겨레랑 경향, 정의당은 대가리를 너구리에 쳐박아 익혀야 하는 게 아닌가.

 

아무튼 그로 인해 중도층까지 소구할 수 있었을 정의로운 검찰 윤석열은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이 주저앉는 보수진영에 처음부터 갇히게 된 것이다. 윤석열 지지율 15%라고 온통 언론이 도배를 해 놨더만 위에 두 사람이 모두 그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 하는 것이다. 둘 다 지금 지지율 그대로 나와도 윤석열을 이기고, 경선을 통해 지지율이 하나로 모이면 야권이 모두 모여 덤벼도 어림도 없다. 그런데 지금 15%가 미니멈일까? 맥시멈일까? 진짜는 이제부터다. 과연 윤석열이 지금의 지지율이나마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전부터 자칭 진보놈들 대가리가 우동사리인 건 알았지만 갈수록 가관이라는 이유인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윤석열이 뭔가? 심상정 하는 말이나 박원석 하는 짓거리 보니 그 속내는 뻔하다. 홍세화가 자칫 검찰에 불리할 수 있는 기사에 분노하던 것을 봐서도 너무 명확하다. 지금 류호정에 대해 쏟아지는 심지어 보수언론의 호의적 보도가 거저일 것인가. 그럼에도 차기 대통령은 윤석열 말고는 없다. 윤석열이 절대 진보정당의 후보로 출마하지는 않을 것을 알면서도 저들은 저리 일편단심이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여전히 동아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버러지들이다.

검찰에 있을 때야 알아서 검찰이 수사든 기소든 묻어 줄 수 있다. 검찰을 나와서도 자연인으로 있는 동안에는 역시 아예 재판도 받지 않고 없었던 일처럼 지내는 것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욕하든 뭘하든 굳이 상관하지 않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긴 국회의원만 돼도 출마한 후보자가 천 단위에, 당선된 사람만 300명이다. 검찰의 도움만 있으면 그 가운데 하나로 묻어가는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대통령이라...

 

이명박과 박근혜가 경선을 치르던 모습을 보지 못한 모양이다. 대선경선만 해도 그런 정도다. 하물며 아예 적대하는 거대정파가 서로 명운을 걸고 맞붙는 대선이면 말할 것도 없다. 유죄도 필요없다. 그냥 유권자들에게 심증만 줄 수 있어도 표심은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회창 아들도 병역비리라고 확정판결받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병역비리일 것이라 막연하게 믿고 있고 당시도 투표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수사하지 않아도, 기소까지 하지 않아도 관련한 증인들이 나와서 인터뷰만 해도 일파만파 당락에 영향을 줄 정도로 퍼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만에 하나 진짜 후보자 개인에게 원한이 있거나, 혹은 대통령이 되었을 경우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당연히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일일이 다 막을 것인가.

 

물론 윤석열이 그같은 무모한 꿈을 꾸는 이유를 알고 있다. 역사상 최초의 보수와 진보 단일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의당의 차기 대선후보도 아마 윤석열이 아닐까. 한겨레 경향이 벌써부터 윤석열을 대선후보로 밀고 있는 중이다. 진중권과 서민은, 특히 서민의 경우 아예 그 년이라고 추미애 장관을 욕하며 윤석열의 전위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임미리, 홍세화 기타등등등, 아마 손석희도 그때 쯤 되면 선거운동에 나서지 않을까. 지지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 여성주의자들은 그 아내와 장모의 범죄를 여성의 권리 차원에서 옹호하고 나설 것이다. 여성이 범죄 좀 저지를 수 있지. 사기 좀 칠 수 있지. 주가조작 좀 할 수 있지. 박근혜 탄핵이 여성차별의 결과인 것처럼 윤석열 아내와 장모 역시 생물학적 여성이기에 옹호되어야 한다. 웅장해지지 않는가. 지금 윤석열 화장실에서 입벌리고 똥받아먹기만 기다리고 있는 자칭 진보인사들이 얼마인가. 자칭보수는 검찰의 전진기지가 된 지 오래다.

 

과연 언론이 윤석열의 부정이나 비리가 있어도 보도하려 할 것인가. 아마 광화문 광장에서 모두가 보는 가운데 저질러도 어느 언론도 기사 한 줄 쓰지 않으려 할 것이다. 보도하는 순간 친민주당 성향의 비주류언론으로 낙인찍힌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람들의 귀와 입을 막기에는 대선이란 너무나 중요한 행사라는 것이다. 언론을 믿고, 지식인사회를 믿고, 장차 자신을 지지하게 될 정당들을 믿는다. 민주당 안에도 윤석열을 쫓으려는 놈들이 몇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 믿고 선거 치르다 망한 인간이 바로 이회창이었었다. 언론이 뭐라 지랄하든 믿지 않는 국민의 수가 45%를 넘어간다.

 

나오라 그래라. 검찰이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윤석열의 민낯을 한 번 보고 싶다. 그런 윤석열을 에워싸고 옹호하려 드는 자칭 진보 자칭 보수들의 알몸을 한 번 보고 싶다. 칼잡이네 뭐네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대선이란 그런 기회라는 것이다. 한 후보자를 과거부터 현재까지 주위를 포함해서 아주 낱낱이 까발리게 된다. 언론이 아무리 감싸주려 해도 한계라는 게 있다. 버틸 수 있을까? 그리 멘탈이 강해 보이지 않는다. 정치란 꽃길이 아니다. 너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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