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성인지감수성인지 뭔지 없는 채 살란다. 씨발 이게 뭐냐? 이게 다 성추행이라고? 그래서 죽은 사람 무덤 파헤쳐 시신까지 난도질해야 할 일이라고?

 

나 역시 괜히 일도 많고 바쁘기만 한 날에 힘들어하는 여직원을 보면 반 위로 반 농담삼아서 그리 말하고는 한다. 여직원님 있으면 사람들이 일부러 더 일을 많이 가지고 오는가 보네요. 일복 있으시네. 그러면 대개 웃어 넘긴다. 좆까고 이것도 성추행이면 앞으로 여직원들과 말도 섞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네?

 

시장이 마라톤 뛴다고 주말에 새벽같이 출근하게 되면 미안해서라도 그리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비서님이 나와주시면 더 힘이 나서 잘 뛸 수 있을 것 같네요. 여성이라서가 아니라 굳이 주말 새벽에 출근해야 하는 여비서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담아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란 것이다. 성인지감수성 부족? 씨발 그냥 성인지감수성 없이 산다니까.

 

성추행이라며 예로 든 다른 사례들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 직원이었으면 몇 번이고 화도 내고 질책도 했을 일도 여성 비서였기에 최대한 참으며 웃는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면 직원들 입장에서 자기들 편하자고 여성 비서를 앞세우는 것도 얼마든지 상상 가능한 상황이지 않은가 말이다. 다른 곳으로 전출가고 싶었는데 만류했다는 점에서도 박원순 시장이 개인적으로 그 여비서를 상당히 신뢰하고 인간적인 호감까지 느꼈을 가능성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여성 비서인 경우 화도 짜증도 내지 않고 온화하고 친근한 태도를 보였으니 성희롱을 한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도 여성 직원들에게도 남성 직원 대하듯 욕도 하고 야단도 치고 해야 한다는 것일까? 그러면 성희롱이 아닌 것인가?

 

내가 직접 쟀을 때보다 여비서가 혈압을 재 주면 더 낮게 나와서 좋다. 이 역시 첫머리에 내가 동료 여직원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맥락인 것이다. 내가 직접 재야 하는데 비서라는 이유로 굳이 대신해서 혈압까지 재 주고 있는 중이다. 고맙고 미안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비서가 혈압을 재 주니 평소보다 혈압이 더 낮게 나오는 것 같다. 자기가 더 건강해지는 것 같다. 물론 당시 박원순 시장의 표정이나 말투가 어떠했는가에 따라 더 악의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마찬가지로 더 선의의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나도 아재라 그런지 당시의 상황이 그려지는 듯 하는데 씨발 나도 뒈지면 무덤 파헤쳐서 시신까지 난도질하려는 것인지.

 

더 어이없는 것은 비서라고 시장이 운동하고 샤워까지 하고 나면 갈아입을 속옷을 가져다주고 갈아입은 속옷을 포장해서 집으로 보내는 일까지도 성추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면 비서가 하는 일이 무언데? 한 마디로 잠시의 시간도 아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을 위해 업무와 일상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비서라는 직책이란 것이다. 집에서 옷갈아 입는데 속옷 심부름 시킨 것도 아니고 시청에서 업무 도중 운동하고 샤워하는데 갈아입을 옷 좀 가져다 달라는 것이 성추행이라? 갈아입은 옷을 포장해서 집으로 보내는 것이 성추행이라? 이러고도 2차 피해라 주장하지. 그냥 여성 비서는 쓰지 말아야 할까? 뭐 농담도 못하고 사적인 일도 못 맡기고 인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도대체 이런 내용을 뭔 자신감을 가지고 폭로한 것인지 그 머릿속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심지어 이따위 내용을 중대한 범죄사실이라 되는 양 기사로 내보내는 기자것들의 대가리속이 정말 신기할 정도다. 그냥 사회생활 조금만 해 봐도 말이 안되는 상황이란 게 바로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설사 당사자가 불쾌했으니 성희롱이고 성추행이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죽은 사람의 가는 길에까지 똥물을 뿌려야 할 정도로 중대한 범죄였다는 것인가.

 

내일 당장 동료 여직원들에게 고소당하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기부터 하다. 걍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아 버릴까? 걍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잠적해야 하는 것일까? 죽은 사람의 무덤까지 파헤쳐야 할 중대한 범죄라는데 나같은 나부랭이가 과연 살아 남을 수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어째서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한 폭로는 다음으로 미뤘던 것인가. 밝혀지면 정작 별 것 아니게 될 지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고작 이런 걸로 죽은 사람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 더럽히려 들었던 것인가. 한 인간을 재단하고 그 삶마저 정의하려 들었건 것인가. 앞으로 기업들이 여성을 채용하지 않으려 해도 뭐라 말하지 못하겠다. 그냥 제단 하나 만들어두고 아무 일도 시키지 않으면서 받들어만 달라는 것 아닌가 말이다. 그런 정도 말들도 주고받지 못할 것이면 동료도 뭣도 아니지. 아무리 오래 같이 일해도 동료가 아닌 여성일 뿐이다.

 

오늘로 나도 반페미로 돌아섰다. 할당제 찬성했었다. 더 많은 여성들에게 채용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함께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꿨다. 고용해서 쓰는 입장에서 이 얼마나 부담이겠는가 말이다. 저런 정도로도 죽은 이의 무덤을 파헤쳐 시신까지 난도질하는 여성들이라니. 나라도 저런 여자들은 데려다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났다. 오늘 밝힌 내용이 전부라면 최대 해봐야 그냥 주책맞은 아저씨였을 뿐이다. 자기 딴에는 선의로 친하다고 여겨서 했던 말이 단지 당사자에게는 불편하게 불쾌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다고 그런 아저씨의 주책맞음을 마냥 비난하고 단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은가. 나 역시 아저씨인데. 고소인으로서는 분명 수치심도 분노도 억울함도 있었으니 고소까지 한 것이겠지만 법적인 판단과 별개로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런 정도로 그 난리를 피웠던 언론이며 여성주의자며 네티즌들은 어디의 누구인 것인가.

 

도대체 이런 정도 이유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오히려 그 죽음이 상황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고소와 죽음 사이에 아무 상관도 없다면? 언론이 발악하는 이유일 것이다.

 

새삼 확인한다. 여성주의는 적이다. 여성은 같이 일할 수 있는 동료가 아니다. 최소한 여성주의의 기준에 있어서는. 내가 피곤해서라도 더이상 같이 일은 못 하겠다. 씨발 욕나오는 상황이란 것이다. 빌어먹을 것들이다.

성추행은 범죄다. 섹스는 그냥 성관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섹스 스캔들이란 바로 그 섹스를 둘러쌀 일련의 구설들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의 매력으로 유혹했든, 아니면 돈과 권력으로 유인했든 어찌되었거나 상호합의 아래 이루어진 성관계가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이슈로 불거졌을 때 흔히 섹스 스캔들이라 부르는 것이다. 피하자라면서? 그런데 스캔들이라?

 

재미있는 것은 별 사소한 말들을 가지고도 2차 피해네 뭐네 입을 틀어막으려는 자칭 진보 자칭 여성주의 자칭 언론들이 이런 문제에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주의자들이 이런 경우에 대해 민주당에게 그러는 것처럼 공격적으로 논평을 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반페미 늬들이 전혀 - 하긴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고소인을 피해자라 부르는 지금 상황에 만족하며 호응하는 것이겠지.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는가. 여성주의자들은 지금 정치적은 의도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다고.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성주의자들과 결탁한 정의당과 자칭 진보언론의 속내는 물론. 똥걸레의 오보에는 청와대의 논평처럼 확실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더러운 벌레들. 차라리 집안에 날아다니는 날파리는 가엾기라도 하다.

예를 들어 재판정에서 누군가 재판장에게 이렇게 주장한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피해자입니다. 저 사람을 처벌해 주세요."

 

그러면 재판장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상식으로 모두가 알지 않은가. 자기가 어디 사는 누구고,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일들을 당했고, 구체적으로 그에 대해서는 어떤 구체적인 증거나 진술을 가지고 있고, 그러므로 가해자로 지목된 피고의 반론에 대해 자신의 주장에 더 타당성이 있으므로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치밀하게 근거를 대고 주장해도 상대가 제시한 근거와 논리에 의해 얼마든지 탄핵당할 수 있고 무죄로 판단될 수 있다. 그것이 재판이다.

 

공론이란 공공의 판단이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 주어진 근거와 논리들에 대해 각자 개인이 판단하여 집단의 이름으로 취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론에 맡기기 위해서도 다중이 판단할 수 있는 근거와 논리는 충분히 제시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미투라고 자기의 이름과 얼굴부터 드러내고 자신을 가해한 상대를 다중에게 고발하는 경우가 생겨난 것이다. 여러 이유로 사실을 드러내기도, 처벌해달라고 고소하거나 고발하기도 어려웠는데 이제 와서 여러 다중들의 지지에 기대서 한 번 모두의 앞에서 그동안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을 한 번 풀어 보겠다. 그러자면 최소한 다중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와 논리를 충분히 제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서지현 검사도 그런 경우였었다. 김지은씨도 그래서 방송에서 직접 나와 밝힌 구체적인 사실들을 듣고 바로 판단을 내리고 안희정을 용서못할 쓰레기로 규정지었던 것이었다. 그냥 김지은씨가 여성이고 미투라며 피해자라고 주장하니까 그리 믿어 버린 것이 아니란 것이다. 배우 오달수씨를 미투로 고발한 당사자 가운데 한 명은 아무리 주장하는 걸 들어도 그냥 오해하고 관계를 맺으려던 것이 당사자의 거부로 인해 미수로 그친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황이었다. 충분히 서로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은밀한 공간을 찾아갔는데 또 따라오기도 해서 성급한 행동을 했더니 사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왜 미투지? 차라리 몇 십 년 전 성폭행을 당했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폭로한 경우는 미투라 볼 만한 부분이 있었다. 당시는 사회 분위기가 또 그런 피해를 공공연히 밝히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었으니. 그래서 이번 박원순 시장의 경우는 피해자라 주장하는 고소인이 구체적으로 밝힌 사실이 뭐가 있었지?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른다. 이름이 뭐고 어떻게 생겼고 어디서 뭘 하며 사는 사람인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구구한 억측들이 쏟아져 나온다. 뭐가 맞고 뭐가 틀리는지 모르는 가운데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그 사람의 말에 신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인가. 단지 여성이고 피해를 고발하고 있었으니까? 반여성주의 어쩌고 떠드는 놈들이 진짜 좆같다는 게, 이런 식으로 고소만 하면 바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구조가 고착되면 진짜 피해를 입는 것은 박원순 시장처럼 편들어 줄 사람도 없는 그냥 다수의 평범한 남성들이란 것이다. 여성주의자들이 이번 한 번만 써먹고 끝낼까? 이번 한 번 만 크게 써먹고 앞으로 그냥 고소인이며 피고소인이라고 평범하게 쓰려 할까? 그래서 언제 어디서 뭘 어떻게 구체적으로 당했느냐고? 최소한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사실관계는 드러내야 하지 않겠는가.

 

당장 텔레그램으로 보냈다는 속옷사진만 해도 그냥 사진 한 장 골라서 까발리면 되는 일이다. 냄새를 맡았고 어쩌고 하는 행동들도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했는지 판단할 수 있게끔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행동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자기 몸에 나는 냄새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식으로 신체접촉을 했고, 자기에게 말을 걸었고, 그 가운데 죽은 사람이기에 반론할 수 없는 부분까지 포함해서 과연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가 추론하고 개인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당시 이런 일들이 일어났구나. 그런데 없다. 그냥 성추행이 있었다. 그것도 죽은 이를 곱게 보내서는 안 될 정도로 끔찍하고 추악한 성추행이 당시 박원순 시장에 의해 저질러졌다. 뭔지 밝히지는 못하겠지만 극악무도한 범죄가 자신에게 저질러진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는 그냥 피해자고 박원순 시장은 가해자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다. 실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라고 고소고발된 사건들 가운데 또한 상당수가 상호간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이라는 것을. 당사자는 그저 선의로 무심결에 한 행동인데 고소고발인들에 의해 자신들에 피해를 입힌 가해로 규정되어졌었다. 설사 실제 그런 행동들이 성희롱이나 성추행으로 결론내어진다 하더라도 또한 각자의 판단 속에 얼마든지 다른 결론이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박원순 시장을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인상짓기 위해서. 과연 마지막까지 언론이 박원순 시장에 대한 진실을 사실이 아닐 경우에도 그대로 보도하며 자신들의 억측을 사과하는 모습이라도 보일 것인가. 정의연에 대한 수많은 오보들에 대해 윤석열에게 오체투지까지 했던 한겨레조차 전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중이다.

 

아무튼 웃기는 상황이란 것이다. 뭔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흉악한 범죄였다. 어디 사는 누구고 언제 어디서 뭔 일을 당했는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주장하니 피해자이고 상대는 가해자라는 것이다. 여성주의에 반대한다면서 그런 논리에는 충실히 지지를 보내는 얼간이들도 있다. 그러니까 극단적인 대립도 생겨나는 것이다. 김지은씨 경우도 사람에 따라 당시 김지은씨의 행동이 전형적인 위계강간 피해자의 행동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관련지식이 없는 경우는 불륜이 아니라는 사람도 없지는 않았었다. 그래도 워낙 고발내용이 구체적이고 자신의 얼굴과 이름까지 내건 당당함과 절박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김지은 씨의 손을 들어주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믿음 뿐이다. 고소인을 믿는가. 고소인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 것인가.

 

그래서 언론이 굳이 피해호소인이라는 말까지 만들었다가 다시 피해자라는 표현으로 돌아가려 하는 것이다. 하필 그러한 선택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 중앙일보와 정의당이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는 것이다. 정확히 정의당내 여성주의자 그룹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커넥션을 의심했던 것이다. 지난 박근혜 탄핵 당시 여성주의자들이 보인 행보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러니까 고소당한 순간 가해자고 고소한 순간 피해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장난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2차 가해라고? 그러니까 뭐가 가해인지 구체적으로 밝혀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가해였고 피해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이 가정법이다. 고소인을 피해자로 가정하고 이런저런 상상을 더하거나, 고소인이 오해했거나 아니면 다른 의도를 가졌을 경우를 가정하고 이런저런 상상을 끌어다 붙이거나. 그런데 재판이란 원래 고소고발한 원고 자신도 무고의 심증을 의심받으며 치러지는 것이다. 자기는 아무 피해없이 다른 사람만 일방적으로 피해주겠다? 여성이란 얼마나 특권화되어 있는가를 알 것 같다. 여성이 무슨 대단한 신분이고 벼슬인가? 엿같은 상황이다.

문득 지금 상황이 아주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라는 존재 자체를 역사속에 묻어버리고자 했었던 화해치유재단 출신 변호사가 여성의 대변자이자 수호자가 되어 전면에 나서고 자칭 진보언론과 정당이 그를 충실히 따라간다. 화해치유재단이 만들어진 원인인 위안부협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수구세력이 정의연을 공격할 때 역시 자칭 진보언론과 정당 또한 여기에 충실히 힘을 보태고 있었다. 박근혜의 재평가를 위한 수구세력의 의도에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단순히 위안부운동의 주도권을 노리는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참여정부 시절 한겨레 경향이 제대로 미쳐서 날뛰기 시작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기자실이 폐쇄되고 난 뒤부터였다는 것이다. 그 전부터 제정신이 아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로부터 보인 모습은 그야 말로 미쳐서 발광하는 모습 그대로였었다. 언론의 기득권을 건드렸다. 진보든 보수든 결국 다 같은 언론인데 감히 대통령 나부랭이가 자신들 언론을 건드리려 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에서 매번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입법을 시도할 때마다 맨 앞에서 그 시도를 가로막아 온 것이 바로 이들 한겨레 경향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자칭 진보언론들이 다시금 민주당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입법예고하고 있는데 그냥 두고보고만 있을 것인가.

 

현정부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은 일정연령 이상을 제외한 대부분의 여성유권자들일 것이다. 만일 그들 여성유권자들을 현정부로부터 이탈시키면 바로 현정부에 위기가 찾아올지 모른다. 지금은 지리멸렬한 미래통합당에도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열릴지 모른다. 미래통합당이 약속한다. 박근혜와 이명박을 복권시키는 대가로 언론에 대한 징벌적손해배상제를 절대 거부하고 폐기할 것이다. 이전처럼 언론과 권력이 유착해서 서로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 참고로 오히려 이명박근혜 시절에 한겨레나 경향 같은 자칭 진보언론들이 정부로부터 광고도 많이 받고 재정적으로도 더 풍족했었다. 그냥 보수정권을 입으로만 욕하면 응원하며 지지해주는 시민도 많았다. 차라리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유리하겠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해야겠는가. 그래서 화해치유재단 소속 변호사가 앞장서고 자칭 진보언론과 정당들이 그 뒤를 따라 수구세력과 입장을 같이하는 것이다.

 

어차피 여성주의자들이야 2012년 대선을 물론이고 2017년 탄핵 당시에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끝까지 박근혜를 지지하면서 그의 억울함을 주장해 왔을 것이다. 그런 박근혜 탄핵의 주범 가운데 하나가 바로 광화문광장을 열어주었던 박원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성이 아닌 남성대통령은 인정할 수 없다. 오로지 자신들은 여성인 대통령만을 진짜 대통령으로 인정할 뿐이다. 그래서 박원순 시장의 죽음에 축배를 들며 그 죽음을 청와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려 한다. 과연 민주당 소속 여성주의 정치인들은 예외일 것인가.

 

그래서 타당성은? 어째서 하필 박원순 시장과 관련한 이슈로 인해 정부와 여당에 불리한 논란이 크게 불거지는 상황에서 탁현민에 대한 오보가 한겨레의 이름으로 나왔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겨레 기자들이 몰라서 그런 터무니없는 오보를 냈었을까? 좋은 대학 나온 것이 최대 자랑인 나름 엘리트들이? 기회였던 것이다. 지금 기회에 몰아쳐서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떨어뜨리고 언론을 개혁하겠다고 도입하려는 징벌적손해배상제의 입법을 막아야 한다. 그를 위해서는 박근혜의 복권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아니면 말고. 원래 이런 게 자칭 진보들 주장하는 방식 아니던가.

 

구체적인 증거같은 건 없다. 하지만 고소하면 피해자이니 이런 식으로 고발해도 굳이 명예훼손이네 뭐네 떠드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언제부터 증거 같은 것 따졌다고. 그냥 정황 비슷하면 통하는 것이다. 고작 언론인데. 그까짓 기자것들인데. 그런데 또 아주 터무니없기만 하냐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는 게 더 열받는 점일 것이다. 과연 지금의 상황이 우연일 것인가. 우연이 우연히 겹치고 겹쳐서 이런 공교로운 상황을 만든 것이다. 언론이라는 기득권 앞에서 진보도 보수도 없는 것이 바로 한겨레 경향인 것이다. 차라리 조선일보는 이념을 위해 저들도 기꺼이 던져버릴 수 있다.

 

아무튼 덕분에 정의당만 죽어나간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을 통해서 언론과의 관계를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은 것이 바로 정의당 대표 심상정일 것이다. 정의당은 언론의 가축과도 같다. 철저히 언론의 보호 아래 사육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지지자들은 물론 모른다. 당원들은 자기들이 정의당을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류호정이나 장혜영은 당원들이 나간다는데도 당당하기만 하다. 독자가 떨어져나가도 의연한 한겨레, 경향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누가 정의당의 주인인가. 지켜 볼 일이다. 내 억측대로 될 지. 아니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뭐가 되든 상관없을 것 같다.

처음 민주당 국회의원들조차 고소인을 피해자라 부르며 박원순 시장을 가해자로 확정하는 듯한 말과 행동을 보였을 때 뭐 이런 씨발년들이라는 욕이 바로 튀어 나왔었다. 이 쌍년들이 결국 그 알량한 여성주의를 위해서 정의당과 같은 길을 가려 하고 있구나.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것도 참 많이 참아 준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박원순 시장 영결식 동안 아무말 않고 그냥 보고만 있었대?

사실 이게 정상인 것이다. 뭔가 의심스럽고 그래서 진실을 밝히고 싶어도 최소한 사람이 마지막 가는 길에 재도 아닌 똥물을 뿌려서는 도리가 아닌 것이다. 아무리 성추행이 중한 죄라고 사람의 목숨보다 중할 것이며, 한 사람의 평생보다 중할 것이며,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보다 중할 것인가. 일단 보낼 사람은 보내고 나서 그 다음에 찬찬히 사실 여부를 따져보자. 그런데 또 정의당이나 여성주의자 그 벌레년들이 이런 스탠스였다면 내가 이렇게 열받을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와인잔 들고 축배를 드는 사진이나 올려대는 말종들이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드러난 사실이란 것이 아무것도 없다시피 하다는 것이다. 말만 있지, 더구나 그 말이라는 것도 구체적인 정황이나 행위들을 묘사하지 않고 그냥 개인의 주관적 감정만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철저히 개인의 영역인 주관적 경험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뭘 가지고 고소인이 피해자이고 피고소인이 가해자일 것이라 단정하는 것인가. 단지 고소인이 여성이라서?

안티페미라는 개새끼들도 결국 그 민낯을 드러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상황이야 말로 미투의 모순과 여성주의의 실체를 철저히 까발리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도 피해자라 주장하는 고소인의 객관적인 사실이 배제된 주관적 감정만으로 사실을 단정짓고 조롱하고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단지 피해자가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하던 페미들과 함께 손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여성주의에 비판적이던 민주당 지지자들은 오히려 여성주의에 대한 반감을 높이고 여론을 돌리는 계기로 삼으려 하고 있는데. 단지 피해자가 평소 여성주의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성주의에 힘을 실어준다면 결국 앞으로도 같은 상황은 반복되는 것이다. 여성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주의를 지지해 왔음에도 여성주의자들은 단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런 불합리한 공격에 힘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안티페미가 아니라 그냥 반민주였던 것이다. 하긴 처음부터 반여성주의에 대해 지식인들이 냉소적이었던 이유도 이것이기는 했었다. 그냥 당시 지지율도 높던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다른 수단이 없으니 남녀간의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며 이용했던 것 뿐이다. 그리고 박근혜를 여전히 지지하며 남성대통령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여성주의자들이 암묵적으로 그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연대가 실체를 드러낸 것이었다. 박원순 시장이 죽기를 바라며 축배를 들던 반여성주의와 여성주의의 연대는 정말 절묘하기 이를 데 없다. 바로 지금 저들이 하는 짓거리가 여성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패악질의 모습 그대로일 텐데도 전혀 어떤 문제도 반감도 느끼지 못한다. 어차피 마지막 목적은 박근혜의 복권이라는 점에서 이해를 공유한다고나 할까?

아무튼 박용진도 열심히 참아주었구나 이해해주려 한다. 그야말로 여성주의는 신앙이다. 모든 남성은 성범죄라는 원죄를 가지고 있고 절대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항상 신앙을 고백하고 자신의 순결함을 입증해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 박원순을 희생양삼아 박용진도 더욱 고고한 여성주의자로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동물이다. 여성을 위한 이타가 아닌 자신의 신앙간증을 위한 이기다. 그런데도 영결식 끝날 때까지는 기다려 주었으니.

봐도봐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다. 이전의 다른 미투들과도 다르다. 이전의 다른 고발들과도 다르다. 사실이 없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단지 주장과 그로부터 비롯된 인상 뿐이다. 여성주의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그들과 연대하는 반여성주의의 실체까지 깨달으면서. 병신들이 너무 많다. 쌍년잡놈들이 너무 많다. 참 병신같은 요즘이다. 한겨레 경향은 정신건강에 안 좋아 요즘 그냥 건너뛴다. 벌레들.

지금 언론이 박원순 시장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마저 난도질하면서도 오히려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다. 아직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혐의만 있을 뿐 구체적으로 밝혀진 사실이 아무것도 없다. 성추행이라는 것도 정도가 있다. 그냥 단순히 위로하고 격려한다고 손을 만지고 등을 두드리는 것조차 당사자가 그렇다면 성추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높은 수위의 차마 글로 쓰는 것조차 꺼려지는 그런 수준의 성추행도 있기는 하다. 그러면 과연 박원순 시장이 저질렀다는 성추행이란 어느 정도 수위이고, 그래서 이렇게까지 죽은 사람을 난도질해도 좋은 정도인가.

 

속옷사진이라는데 그냥 런닝셔츠에 반바지 입은 사진이 보기에 불쾌했다 한다면 오히려 동정여론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그냥 친근한 표현으로 했던 행동들이 성추행으로 여겨져 고소까지 당한 것이라면 그동안 박원순 시장을 비난했던 사람들에게 거꾸로 비난이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진짜 인면수심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수위가 높은 성추행이라면 그동안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추모했던 이들마저 돌아서게 될 것이다. 그런데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모든 것이 자신들의 머릿속에만 있는 것이다. 자기들 머릿속에서 누군가는 박원순 시장이 무고하고, 누군가에게는 성폭행보다도 살인보다도 민간인에 대한 고문과 학살보다도 더 끔찍한 범죄가 되고 마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행위들을 했었길래 당사자는 자기가 성추행의 피해를 입었다 고소까지 한 것일까.

 

그래서 언론은 그런 상상에 기대서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마음껏 죽은 이를 유린할 수 있는 것이다. 가능한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고 유가족의 가슴에도 대못을 박아 넣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도 된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조차도 정당하게 여겨질 만큼 박원순 시장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언론의 농간에 어느새 대중들조차 박원순 시장이 저질렀다는 성추행에 대한 상상을 키우게 된다. 어째서 박원순 시장을 고소한 고소인과 변호인은 성추행 사실에 대해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도대체 뭔 짓을 저질렀는지 한 번에 시원하게 밝히란 것이다.

 

차라리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진상규명 요구에 대해 잘되었다 여기는 이유일 것이다. 차라리 뭔 짓을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면 추모를 하든 비난을 하든 대중들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의 삶까지 모두 부정될 정도로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가. 아니면 아직은 동정해도 좋을 만큼 단순한 실수에 지나지 않았는가. 그도 아니면 단지 오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인가. 속옷사진이라니까 바로 사람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진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짜 적나라한 어떤 모습일 것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박원순 시장이라면 떠오르는 그런 이미지일 수 있다. 그래서 그 가운데 어떤 것인가. 그리고 어떤 행위들이 성추행이라 여겨진 것이고 실제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만일 다른 의도로 고소사실을 이용하려는 것으로 그 정도가 경미한 수준이라면 사실을 밝히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진짜 정도가 심해서 부관참시로도 부족한 수준이라면 의외로 빨리 사실이 밝혀질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경고하지 않았는가. 계속해서 2차, 3차 가해가 이루어지면 더 적나라한 사실도 공개할 수 있다. 마치 2차, 3차 가해를 계속해서 사실을 공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그래서 진짜 사실이 밝혀지고 그 정도가 참혹해서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정도라면 나 역시 박원순 시장을 비난할 것이다. 비난하는 정도 역시 지금껏 내가 해 온 그대로 인간이 아닌 대상에 대한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표현들이 대거 동원될 것이다. 나는 사람이 죽었다고 지은 죄까지 용서하고 하는 타입이 아니다. 다만 비례성만은 지킨다. 그래서 죽음으로 대신할 정도의 죄인가, 그 정도까지는 아닌가. 그러니까 제발 사실을 공개해 달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상상에만 맡기게 하지 말고.

 

과연 언론이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랄 것인가. 아니면 정의당이나 자칭 진보, 여성주의자들이 모든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고 있을 것인가. 벌써부터 박원순 시장을 가해자로 단정짓고 비난부터 퍼붓는 민주당내 자칭 여성주의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만일 사실이 아니었다면? 혹은 오해였고, 혹은 정도가 미미한 수준이었다면. 당장 들리는 이야기만도 그렇게 높은 수위까지는 아닌 듯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동안 자신들이 했던 말과 행동들은 어찌해야 하는 것인가. 고소인이야 당당하다. 어떤 경우이든 자신이 성추행으로 여겼고 피해자라 생각했기에 고소까지 했던 것이다. 다만 주위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도덕적 윤리적 법리적 판단은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는가에 대한 판단은 다른 것이다. 그것을 과연 지금 비난하는 모두가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영결식장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차라리 모든 진실을 밝혔어야 했다 말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을 위해서도, 죽은 이를 추모하려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도, 아직 판단을 내리지 못했거나, 혹은 비난하는 입장에 선 이들을 위해서라도 사실관계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서 추모해도 좋은 것인가, 아니면 비난해야 마땅한 것인가. 죽은 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오물을 뿌리고, 무덤까지 파헤쳐 시신을 난도질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물론 언론이나 정치권, 여성주의자들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더 더럽히고 더 난도질하며 마음껏 자신들의 위력을 과시하고 싶을 테니. 혹시라도 진실이 밝혀져서 자신들이 책임질 일따위 만들고 싶지 않다.

 

물론 진실이 밝혀져도 그들은 주장할 것이다. 그조차도 끔찍한 범죄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속옷사진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만으로 고문이나 학살보다 더 끔찍한 범죄인 것이다. 그저 친근한 표현이 지나친 것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사건을 조작하고 무고한 이를 죄인으로 만든 것보다 더 참혹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집단으로 성폭행하고, 협박하여 성매매를 강요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편취하려 한 범죄보다 더 파렴치해야 한다. 믿음은 항상 진실보다 우선한다. 나도 편하게 비난하는 편에 서고 싶지만 글쎄... 안희정은 사람으로 취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익명의 미투란 진보정당 정의당 진보언론 한겨레 같은 형용모순에 가까운 표현일 것이다. 미투란 원래 누군가를 고발하기보다 그동안 침묵해야만 했던 피해자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행동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차피 시효도 지난 경우가 많아서 법적 처벌은 어려운 경우라도 모두가 사실을 알고 자신을 지지하며 가해자를 비난하는 상황을 통해 자기 잘못이 아니고 자신은 오로지 피해자일 뿐이란 사실을 사회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구호도 나오는 것이고, 당신의 편에 서겠다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고발을 익명으로 한다?

 

더구나 그같은 미투의 고발 과정에서 반드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나오면서 사회적 단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 의해, 설사 그 고발이 거짓이었다 할지라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고발에 얼마나 의미를 두어야 한다는 것인가. 내 얼굴과 이름을 밝히고 사실이 아닐 경우에 대한 책임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럼에도 가해자를 용서할 수 없었기에 대중의 앞에 서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밝힌 만큼 구체적인 사실들에 대해서도 함께 폭로가 이루어졌어야 했을 텐데 그런 것은 없이 그냥 일방적인 주장만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도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죽어서 어떤 반론도 할 수 없는 상황에.

 

과연 박원순 시장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성추행 고소 때문이었는가. 하지만 의도적으로 언론의 보도는 그런 식으로 사실관계를 몰아간다. 성추행 고소를 알았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로 박원순 시장은 분명한 가해자다. 박원순 시장 자신이 어떤 반박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사실을 이용하려는 듯 일방적인 주장만 사실처럼 퍼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명백한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고인의 명예를 짓밟는 행위를 하는 만큼 자신 역시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상식인 것이다. 그만한 구체적인 근거라도 제시하던가. 텔레그램 비밀방 초대사진 같은 건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고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도 모르겠는데 내 주장만 믿어달라.

 

미투의 취지를 오히려 스스로 훼손하고 있는 것이 한국 여성계란 주장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고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내가 피해자라고 주장하니 그 주장을 들어달라. 믿고 지지해 달라. 남대문에 불질렀던 사람도 자기 나름의 억울함이 있어서 그리했던 것이었다. 세상에 억울한 일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매번 그런 억울한 이들의 이야기를 마냥 믿고 지지하기만 해야겠는가. 그런데 그러라고 강요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을 타겟으로 삼은 덕분에 언론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중이다. 원래 한국 여성주의자들이 바라는 바일 것이다. 처음부터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박근혜를 자신들의 진정한 대통령으로 지지하던 것이 바로 그들이었었고.

 

그러니까 과연 지금 상황을 미투라 부를 수 있는가 묻는 것이다. 당사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그저 주장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고소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는 오해와 추측들에 대해서마저 2차가해라며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그래서 그런 오해와 추측들을 불식하기 위해서라도 미투에서는 자기 얼굴과 이름을 공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누구인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일단 고소를 했으니 피해자일 것이고 고소당했으니 가해자일 것이란 믿음은 그냥 맹목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튼 이로써 분명해지는 것은 여성주의자들은 단지 여성주의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자신들을 정의하는 전부다. 박원석 같은 남성 여성주의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보편의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오로지 여성 그 자체만을 고집하며 관철하려 한다. 왜이겠는가. 다 들어주고 받아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그 박근혜를 탄핵당하고 나서까지 지지했던 것이 그런 여성주의자 부류들이란 것이다. 하긴 그 원한도 적잖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광장을 개방했던 박원순의 죽음까지 부관참시해야 한다. 참 명료하다.

언론 때문에 잠도 못자고 출근하는 중이다. 지난 주에는 복권도 꽝됐다. 왜 언론때문이냐고 묻지 마라. 그냥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피해호소인 아닌가.

 

그래서 피해호소인으로서 요구한다. 언론들 다 뒈져줬으면 좋겠다. 아니 앞으로 언론인들 부고 볼 때마 쫓아다니며 악플이나 달아볼까? 피해를 호소했으면 그래도 된다면서?

 

딱 이 정도 수준의 논리다. 증거도 없고 증인도 없고 그냥 주장만 있다. 고소장만 접수된 상태다. 그러나 피해호소인이라는 어디 근본도 없는 단어를 갖다가 지 좆대로들 놀고 있다.

 

확신하건데 기자것들은 사람새끼들이 아니다. 여성주의자 년들도 사람년들이 아니다. 아직도 정의당에 남아 있다면 사람이 아니란 뜻이다. 그냥 내가 그렇게 정했다. 왜? 피해호소인이니까. 참 편하다. 썩을 것들.

첫째 미투는 익명이 아닌 자기 얼굴과 이름을 걸고서 하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밝히고 자기 주장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고자 하는 각오로써 세상에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사실과 진실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과연 그 사람의 주장이 사실인지, 얼마나 그 주장의 근거들이 타당한지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그 주장에 신뢰성을 더해야 하는 것이다.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주장한다고 믿어주는 것은 다른 의도를 가진 얼치기들 밖에 없다. 나경원 비서출신이라는 말이 왜 나오겠는가. 누군지 모르니까.

 

둘째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 했다면 영결식날 그런 기자회견 같은 걸 해서는 안됐었다. 아니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그렇게라도 진실을 밝혀야겠다 마음먹었다면 차라리 다음을 기약하지 말고 기자회견장에서 모든 것을 까발렸어야 했었다. 그래야 역시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던 시민들도 마음을 정리할 것이 아니던가. 고인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돌릴 정도도 안되는 증거를 내보이면서 그렇다고 온전히 고인을 떠나보내지도 못하게 하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악의에서 나온 행동인가. 철저히 고인을 욕보이겠다는 의도 말고 다른 어떤 의도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과연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기자회견을 통해 제시되고 있었는가.

 

셋째 고소인도, 경찰도, 청와대도, 어느 누구도 박원순 시장에게 고소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데 박원순 시장이 고소사실을 반드시 알았을 것이란 판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반드시 알았어야만 했던 이유가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확신을 가질만한 다른 근거가 있는가? 그렇다면 성추행 고소와 박원순 시장의 선택 사이에 아무 연관성도 없다는 추정도 가능하지 않은가? 그런데 어째서 그런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언론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인가? 오히려 청와대마저 의심하며 정치적인 쟁점으로 만들려는 시도마저 보인다.

 

넷째 아무튼 기껏 고인의 영결식을 훼손해가며 기자회견을 열고 제시한 증거라는 게 아무나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프로필사진과 대화명이 적힌 텔레그램 비밀방 접속화면이다. 사실 인터넷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조작이란 메신저 대화창을 이용하는 것일 게다. 대화명과 프로필사진을 이용해서 마치 진짜 당사자들이 대화한 양 화면을 꾸미고 그를 통해 사람들을 낚는다. 그러니까 도대체 뭘로 어떻게 성추행을 했다는 것인가. 속옷사진이라도 보여주던가. 성희롱한 발언이라도 보여주던가. 그것이 고인의 것이라는 증거를 제시하던가. 그냥 변죽만 울린다. 결국 목적은 하나였던 것이다. 고인의 영결식에 똥물을 끼얹자.

 

어떤 사람들은 그리 말하기도 했다. 박원순 시장의 선택으로 인해 고소인만 더 곤란해지고 고통스러워졌다. 그래서 이러는 것인가. 너무 곤란하고 고통스러워서 고인이 가는 길에라도 똥물을 끼얹자. 이건 정치적인 행위다. 더구나 기자회견의 결과 청와대까지 자칫 휘말릴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정의당과 여성주의자들이 바라는 바도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저들이 미래통합당과 수구세력과 연대하는 진짜 이유일 테니. 그런데도 그냥 단지 성추행으로 고통받은 피해자일 뿐이라? 그러면 얼굴부터 까던가. 서지현 검사도 김지은씨도 모두 자기 얼굴과 이름을 걸고서 진실을 밝혔으니.

 

미투도 아니다. 그냥 고소다. 자기 얼굴도 이름도 숨기고 변호사를 대신해서 여론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바라고? 진정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풀고 싶어서? 자기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그저 고인에게만 오물을 끼얹고 싶어서? 그런 고소인에게 동조하는 놈들도 똑같은 의도라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과연 아무리 실제 성추행이 있었어도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정당한가. 인간적인 감정으로 이해할 만한 정도인가. 지금 그래서 언론도 장난질치고 있는 것이다. 성추행이 무슨 대학살급 되는 범죄인 줄 착각하게 만든다. 대단한 여성주의자들이다. 벌레년들.

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자칭 진보들은 민주당 2중대라 불리면 그리 끔찍히 싫어하면서 보수정당 2중대라 하면 전혀 아무렇지 않게 여긴다. 그래서 말하는 것이다. 저들에게 이 사회의 정당한 지배자는 보수정당이며, 보수정당의 허락 아래 진보도 용인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아닌가고. 아니나 다를까 지금 여성주의자들과 정의당이 연대하는 대상을 보고 있으니 바로 견적이 나오는 것 같다.

 

첫째 그나마 조문정국에서 역풍을 맞을까 조심하던 미래통합당을 위해 조문 자체를 정쟁화함으로써 정치공세에 나설 빌미를 주고 있었다. 둘째 가세연과 같은 극우유튜버들이 여성을 앞세워 고인을 모욕하고 민주당을 공격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사실상 가세연과 여성주의자들이 보이는 행보를 보면 전혀 그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치유와평화재단 출신의 변호사가 고소인의 변호사로 나서고 있는 중이다. 이 사실을 과연 정의당이 몰랐을까? 그리고 결국 이어지는 것이 청와대에 대한 공격, 심상정이 대통령 탄핵을 언급한 사실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래서 심상정이 민주당 2중대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참여정부 시절로 돌아간다. 야권연대라는 이름으로 당시 민주노동당은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하고 있었다. 미래통합당 2중대가 되겠다. 2중대를 넘어서 선봉대가 되겠다. 그래서 가세연과 평화와치유재단 출신들과도 연대한다. 박원순을 모욕하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들과 입장을 달리하던 수구세력과 손을 잡고 그들의 목소리를 빌린다. 진선미나 남인순 같은 민주당 내 여성주의자들도 조심해서 살펴 볼 일이다. 어떤 식으로 - 더구나 행정부에 몸담은 적이 있었으니 진선미 같은 경우 어떻게 문재인 정부의 뒤통수를 칠 지도 모른다.

 

모든 여성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국 여성주의의 특수성이다. 여성주의란 이데올로기며 신앙이다. 그 어느 것보다 우선하는 절대의 가치다. 신앙을 위해서라면 살인도 약탈도 강간도 방화도 파괴도 모두 용서된다. 신앙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까지 모두 용인된다. 그렇게 믿는다. 그것이 바로 신앙이란 것이다. 역사상 모든 끔찍한 학살과 파괴는 바로 이런 신앙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때로 신이었고, 이념이었으며, 민족이었고, 국가였다는 차이만 있을 뿐.

 

저들이 저쪽과 연대하겠다고 선언했으니 나는 반대편에 서야겠지. 한 번 적이라 생각하면 뭐라 떠들든 소음이나 잡음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적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은 오히려 기쁜 일이다. 적으로부터 모욕당하고 조롱당하는 것은 오히려 내가 잘하고 있다는 증거다. 여성주의는 그래서 단지 적이다. 자칭 진보야 이미 오래전부터 적이었다. 속이 시원하다. 그동안 여성주의 하는 짓거리가 꼴같잖기는 했었다. 여성주의는 수구와 함께 박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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