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시절 그래도 한겨레와 경향은 믿었던 것 같다. 공중파 가운데서도 MBC와 KBS에 대해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였다. 모든 언론들이 하나가 되어 쏟아냈던 당시 참여정부에 대한 증오와 저주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은. 물론 노무현 정부가 모두 잘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못한 것도 많다. 실수한 것도 많았고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잡은 정책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시절 심지어 한겨레와 경향의 보도만 보더라도 비판의 정도나 강도는 참여정부 당시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비난만 들었어야 할 정부인가.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언론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남아 있었기에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은 물론 지식인 사회까지 똘똘 뭉쳐 공격을 퍼부어대면 대부분 대중들은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토록 모든 언론과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비판하는데 뭔가 문제가 있지 않겠는다. 더구나 원래 살아간다는 게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라 현실의 고단함에 대한 책임까지 자연스레 그런 분위기 속에 참여정부에 전가하게 된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다름아닌 민주노동당과 홍세화와 강준만과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그리고 열림우리당이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래서다. 과연 앞으로도 언론이 떠든다고 그대로 믿고 판단해도 괜찮은 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그토록 날카롭던 언론의 비판의 칼들은 이명박근혜 시절에는 무뎌지다 못해 아예 솜방망이로 전락해 있었다. 최순실이란 이름이 드러나기까지 과연 자칭 진보 가운데 당시 정권의 부정이나 비리들에 대해, 실정이나 오판등에 대해 제대로 비판한 이들이 몇이나 있기는 했었는가. 아마 기억 못하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전두환 정권 당시에도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비판은 어느 정도 허용되고 있었다. 대통령만 직접 거론해서 비판하지 않으면 적당히 정부기구나 지자체 등에 대해서 제한적이나마 비판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라도 숨 쉴 틈을 만들어 주어야 국민들이 떨쳐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충분히 욕하고 비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더 이상의 행동까지 않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게 당시 한겨레, 경향 등 자칭 진보언론들의 역할이었다. 자칭 진보정당과 지식인들의 역할이기도 했다. 이런 정도 정부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다. 단, 정부에 진짜 치명적인 것은 절대 보도해서는 안된다. 조선일보가 참전하지 않았으면 한겨레의 국정농단 보도는 처음 몇 번으로 끝났을 거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정권이 바뀌니 언론이 참여정부 시절로 돌아가서는 아예 칼에 독까지 묻혀서 휘두르며 날뛰고 있다. 믿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아무리 모든 언론이 하나가 되어 발광을 해도 40% 밑으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 하한선이 최근에는 40%대 중반까지 올라온 듯하다. 한 마디로 언론이 뭐라 떠들든 듣지 않는 것이다. 아예 나처럼 언론보도 자체를 보지 않거나 - 커뮤니티에 누가 퍼다 나르면 그제서야 조금 보는 정도다. 그래서 정보가 매우 느린 편이다. -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단 의심의 눈으로 몇 번이나 거르고 거른 뒤에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저 새끼들 또 저 지랄들이로구만. 정파적인 언론을 선호한다는 여론조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모든 언론이 현정부와 여당에 반대하는 정파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기왕에 정파적인 언론 가운데 보다 자기에게 유리한 정파성을 찾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아예 대놓고 정치적인 의도를 드러내는 언론을 과연 누가 전적으로 신뢰할 것이며, 그 보도를 믿고 자신의 정치적 판단을 내리려 할 것인가.

 

정확히 문재인 대통령의 불변의 지지율 40%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국민의힘의 최저지지율 15% 남짓 또한 비슷한 성향들일 것이다. 언론이 뭐라 떠들든 다 가짜뉴스일 테니 나는 내가 유리한 것들만 듣고 믿으며 오로지 국민의힘을 지지할 것이다. 대통령 지지율에, 국민의힘 지지율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언론이 뭐라 떠들든 정치인은 다 똑같은 놈들이므로 누구도 지지하지 않겠다는 항구적 중도층들도 존재한다. 언론의 보도 가운데 부정적인 것들만을 믿고 받아들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언론의 의도한 바와 다르게 그들의 선택은 문재인과 민주당이 아니더라도 다른 정당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다 더하고 나니 거의 한 70%는 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보다 더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의 지지율이란 언론의 보도와 상관없이 원래 국민들이 가지고 있던 자기의 지지성향이란 것이다. 언론이 뭐라 지랄해도 전혀 일정 이상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다. 딱 여기까지가 언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이다.

 

격세지감이란 것이다. 그보다는 양치기다. 한계효용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민주당도 깐다는 사실에 진보언론에 신뢰를 보내던 사람들조차 원래 진보언론은 민주당을 까는 것이 원래 성향임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자칭 진보일수록 보수정당과 정치인보다 더 민주당과 민주당 정치인들을 혐오하고 증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한겨레든 경향이든 자칭 진보 지식인이든 조중동이나 마찬가지로 그저 민주당과 민주당 정치인들이 싫어서 저딴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같은 편이란 인식이 없으니 뒤통수맞을 일도 없고, 따라서 그들의 발언에 휘둘릴 일도 더욱 없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같은 경향은 강해진다. 저놈들이야 뭔래 그런 놈들이고 그러니 그다지 귀기울일 필요도 없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드러내보인 저들의 본모습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저들의 본모습에 국민들도 더이상 속지 않고 언론의 보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판단을 지키고자 한다. 아무리 욕해봐라. 아무리 지지율 끌어내리려 발광해 봐라. 어쩌면 어딘가 술집에서 한겨레와 조선의 편집국장들이 모여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검찰청에서는 경향과 중앙의 기자가 어리석은 국민을 한탄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동안 너무 자신들의 솔직한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던 것을. 한 번은 속아도 두 번 속으면 바보인 것이다. 그래도 잠시나마 자신들이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편이라고 연기라도 해 보이는 성의가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지 모르지만.

 

딱 여기까지인 것이다. 그나마도 다시 오르고 있는 것은 언론이 얼마나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뜻인가. 원래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던 15%에, 정치인이라면 다 싫다는 대략 20% 정도를 더하면 고작 지금 언론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전체 여론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조차도 대선으로 넘어가면 언론이 부추길만한 인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한계가 뚜렷하다. 어차피 그래봐야 정권을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국민 입장에서 굳이 지지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 더 있겠는가. 언론만 모를 뿐. 그래서 지지자를 욕하는 것일 게다. 다 너희들 때문이다. 안쓰럽기조차 하다.

돌이켜보면 작년 조국사태 당시 언론의 타겟은 조국 전장관의 도덕성이 아니었다. 당연하다. 박덕흠의 수 천억 이해충돌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리는 것이 지금 언론의 모습인 것이다. 사모펀드 그거 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다른 수많은 의혹들 다 더해봐야 기껏 수 십억 정도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지만 이후 언론이 윤석열 총장의 가족을 대하는 것만 봐도 그렇게까지 기사를 쏟아낼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 조국 전장관에게 가해진 결정타 역시 사모펀드가 아닌 딸의 고등학교시절 인턴활동이었고, 동양대로부터 받았다는 표창이었다. 자격이 되지 않는데 부모의 반칙으로 명문대에 들어갔다.

 

지금 의대생들 다시 의사고시 볼 수 있게 해달라고 한 목소리로 떠드는 언론과 야권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대생들은 엘리트다. 의대생들 자신들이 주장한 것처럼 학교에서 항상 시험만 보면 순위권에 들었던, 수능등급도 높은 우리 사회의 엘리트인 것이다. 그런 우수한 인재들인데 그 정도 특혜는 당연한 배려가 아니겠는가. 의대생들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의대생들의 편에서 정부와 여당을 압박하는 언론과 야권 역시 다르지 않다. 바로 얼마전 대학내 교수들의 부정과 비리가 밝혀진 뒤에도 침묵하는 20대 대학생들의 태도도 그 연장에 있다 봐야 할 것이다. 그토록 공정을 앞세우던 그들이 조국 전장관 때와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는 이유다.

 

실제 20대 청년들이 주장하는 공정은 우리들 세대의 공정와는 상당히 다르다. 이를테면 정시확대를 요구하면서 수시의 불공정성을 비판할 때 예시로 드는 것이 저소득층과 농어촌 학생들을 배려하는 전형들이었다. 집에 돈도 많고, 부모도 자식 교육에 열의를 쏟을 만큼 여유가 있어 더 유리한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다 하더라도 결과는 곧 자신의 실력인 것이다. 반대로 집에 돈도 없고 부모 또한 여유가 없어서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그 또한 자신의 실력이다. 그러니까 실력대로 가자. 굳이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의 격차를 인위로 보정하려 할 때 오히려 불공정이 발생하니 공정하게 자기가 타고난대로 경쟁해서 그 결과에 승복하도록 하자. 부모가 잘난 것도 자기가 노력한 결과이고, 결국 경쟁의 결과 승자가 된다면 누리게 되는 특권 같은 것도 오로지 자격 있는 실력자만이 가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공정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갔으면 정규직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아니라면 비정규직이라는 징벌을 받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래서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 그토록 청년들이 분노했던 것이었다.

 

요체는 자격이다. 그리고 그 자격이 중요한 이유는 그 결과로 누리는 것들이 그만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권을 누리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특혜를 받으려면 그만한 자격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특권과 특혜가 문제가 아니라 자격없는 이들이 그런 것을 누리는 자체가 문제다. 나경원은 그래도 된다. 홍정욱도 그래도 된다. 장제원도 그래도 된다. 심지어 박근혜마저도 그래도 되는 존재였다. 그래서 최순실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었다. 자격도 안되는 최순실의 존재가 아니었다면 과연 언론과 청년들이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그렇게까지 분노를 드러냈을 것인가. 손석희나 한겨레가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까자고 기자를 쏟아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도 최순실을 차라리 욕하지 박근혜는 오히려 희생양이라며 동정하는 인간들이 저리도 많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서울대교수 조국은 자격이 충분하지만 과연 그 자식들까지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나경원 자녀 입시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언론이 물타기한 방식이 바로 아들의 성적이었다. 이만한 성적이면 그정도는 반칙도 아니지 않은가. 특권도 특혜도 아니지 않은가. 실제 그런 언론의 주장에 바로 넘어가는 청년들이 그리 많았었다. 성적이 그만하니 반칙이 아니고, 조국 전장관의 딸 같은 경우는 성적이 그만 못했다 하니 반칙인 것이다. 그래서 집중적으로 언론과 검찰이 하나가 되어 그 입시과정을 낱낱이 파헤치고 공격했던 것이었다. 과연 제대로 자격을 갖추고 외국어고에 입학했고, 고려대에도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인가. 아니라 하니까 분노한다. 반면 일단 정당하게 절차를 밟아 입학했으면 뭔 부정을 저지르든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다. 자기들은 그래도 된다. 정의당 장혜영이 자기도 수시 특별전형으로 입학했으면서 조국 전장관의 딸을 비난하는 이유인 것이다. 나는 그래도 되지만 조국 전장관은 그래서는 안되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에서 최고라는 형법학자를 자식을 이용해서 정당한 특권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었다. 아니 어차피 경희대 출신 대통령의 아래에 있기로 한 순간 그는 더이상 서울대 출신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이 사회의 엘리트라고 불릴 수 없었다. 하지만 유시민의 전례가 있었기에 이번에는 철저하게 그를 추락시키기로 마음을 모은다. 자격이 안되는 자식을 반칙으로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엘리트의 자리에 올렸다. 바로 조국 전장관이 자신의 자식을 반칙을 사용해서 올린 그 자리란 지금 의대생들이 누리는 그 특권과 반칙들이 허락되는 자리인 것이다. 그런 엄중한 자리를 그렇게 임의로 반칙까지 사용해서 편취하는 행위를 과연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대통령의 공부성적을 들먹인 서민의 태도는 그런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박근혜처럼 혈통을 타고나거나, 아니면 의대생들처럼 정당하게 실력으로 특권의 자리에 오르거나. 물론 사법시험이란 엘리트로 올라가는 정석코스였을 것이다. 다만 인권변호사란 그런 엘리트의 길에서 벗어난 이레귤러라는 것이다. 조국 전장관이 사법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며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진정 문재인 대통령이 공부를 잘했다면 고작 인권변호사로 만족했을 것인가. 특권을 누렸어야 했다. 특혜를 받았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어야 했다. 

 

모든 것이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정의당이 이제와서 국민의힘을 위해 입안의 혀처럼 구는 것이나, 자칭 진보들이 조중동을 위해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것이나, 결국 언론이 의대생들을 대신해서 그들의 특권을 지켜주려는 행보와 맞물리는 것은 아닌가. 어느 언론의 솔직한 기사처럼 이들은 엘리트이기에 정부가 낮은 자세로 양보하여 봐주어야 한다. 경희대 출신 아닌가. 고작 저 변두리 부산의 인권변호사 나부랭이 아니었는가. 의사들이 현정부를 무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였다면 감히 그런 행동은 꿈도 꾸지 못했다. 거의 정답에 가깝지 않을까. 학벌사회의 초상같은.

 

저들이 주장하는 공정은 따라서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특권을 누리는 공정이다. 특혜를 누리는 공정이다. 그만한 자격을 가진 자들에게 특권과 특혜를 허락하는 공정이다. 월급을 더 챙겨달라는 것도 아니다. 복지를 다른 정직원 수준으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만 더 자기들이 살 수 있게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계약기간이 끝나도 일자리를 잃을 걱정부터 않아도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규직은 그 자체로 신분이고 지위고 특권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 연장에서 보면 된다. 저들을 절대 이해도 동정도 못하는 이유다. 공정이 공정이 아니다. 

아마 작년 9월 중순이었을 것이다. 한창 조국전장관 이슈로 나라가 뒤집어지던 무렵 느닷없이 안진걸 소장이 뛰쳐나와 나경원을 고발하고 있었다. 이른바 조국사태의 흐름이 바뀐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긴가민가하던 지지자들마저 비로소 검찰의 속내를 알아차릴 수 있었으니. 유시민보다도 빨랐다. 그를 통해 비로소 지지자들은 수세가 아닌 검찰개혁을 앞세운 공세에 나설 수 있었다. 검찰은 지금 정치를 하고 있고 그것은 검찰개혁을 막기 위한 것이다.

 

윤석열이 확실히 정무감각이 많이 떨어지기는 한다. 당시 검찰이 나경원을 수사하는 시늉만 했어도 여권의 지지층이 그렇게까지 강하게 결집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검찰이 편향적으로 수사한다는 인식만 조금만 덜했어도 지지층의 결집으로 인해 이후 모든 검찰의 공작이 무력화되는 상황도 맞지 않았을 것이다. 나경원 하나만 희생시켰다면. 그런데 나경원도 판사출신, 남편도 아마 현직 판사였었지. 법원의 협조가 절대 필요하던 당시 윤석열 입장에서 과연 나경원을 수사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래서 법관출신 여상규도 패스트트랙 수사에서 기소유예처분으로 끝내주었을 것이다.

 

물론 자신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가 제대로만 털면 정권은 끝장날 것이다. 자기가 검찰력과 언론을 총동원해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수사를 밀어붙이면 바로 정권은 교체되고 자기 세상이 열리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불리한 전장에서는 바로 발을 뺐어야지. 정의당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앞세워 열심히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어떻게든 검찰개혁법안들의 입법을 막아보겠다고 수사를 밀어붙였지만 결과는 아는 바대로다. 그래서 나경원 수사는 패착이 되고 만 것이다. 수사결과가 지지부진하니 그렇지 않아도 검찰을 의심하고 있던 여론은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정부와 여당이 여전히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법무부장관이 인사까지 단행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시 남아 있던 정부와 여당의 지지층은 오히려 그런 것을 바라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손발이 잘려나가기 시작했다.

 

안진걸 소장이 당시 진짜 큰 일을 했던 것이었다. 안진걸 소장의 고발이 아니었다면 나경원의 자녀문제는 아예 공론화도 안되었을 것이고, 검찰의 선택적 수사로 인한 진짜 의도도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안진걸 소장을 계기로 지지층이 결집하기 시작했을 때 유시민이 나타났던 것이었다. 김어준이 버티고, 안진걸이 치고 나가고, 유시민이 부순다. 진짜 원수는 안진걸일 텐데. 아마 나경원의 고소도 윤석열의 사주가 아닐까. 안진걸만 아니었다면.

 

어쩌면 확신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털어봐야 크게 나올 것이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법원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경심 교수의 재판결과에 대해 확신을 가지는 이유다. 아마 최소 구속되어 구금되어 있던 시간 만큼의 징역형이 나오고 끝나지 않을까. 추가로 형을 살리거나 법정구속까지 시킬 사안이 아님을 알면서도 검찰의 체면을 세워줄 필요가 있으니. 그러면 언론도 만족하겠지. 아무튼 두고 보자. 과연 법원이 어찌 나올 것인지. 판사놈들이나 검찰놈들이나.

정당이라면 어찌되었거나 정권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내각제라면 다수당이 되어 행정부를 자기네 사람으로 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대통령중심제라면 더욱 당연히 자기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그 의지대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지만 정당이 추구하는 지향과 목표를 현실에서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냥 수많은 소수파 가운데 하나로 남아 그저 밖에서 목소리나 높일 것이면 차라리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쪽이 더 선명할 수 있다.

 

당장 1997년 대선만 하더라도 보수후보의 표가 훨씬 더 많았음에도 정작 보수정당인 신한국당은 이회창과 이인제로 분열한 반면 보다 더 보수적인 김종필을 김대중이 끌어안음으로써 결과는 소수파였을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어 국회에서 끊임없이 발목을 잡았음에도 결국 대부분 정책들은 김대중 정부가 의도한대로 추진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이 가지는 위상인 것이다. 거의 대부분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기에 대통령 하나 바꾸는 것으로도 상상한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 중심국가에서는 누가 다수당이 되었는가보다 누가 대통령이 되었는가로 정치적 시점을 나누게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는가, 이명박이었는가, 박근혜였는가로 구분하지 누가 1당이었는가로 구분하지는 않느다.

 

그래서 문제다. 대선후보 같지도 않았던 정동영 이후 아무리 민주당이 지리멸렬해 있어도 민주당에서 내세울만한 대선후보는 반드시 한 둘 정도는 있어 왔었다. 민주당이 자기들끼리 싸우며 한심한 꼬라지를 보이고 있어도 그래도 대선이 시작되면 저 가운데 한 명 정도는 보수정당 후보와 맞서서 차기 대권을 노려 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보면 민주당의 지지율은 민주당의 차기 대선주자의 지지율과 연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혹은 거꾸로 정당지지율에 비례해서 차기 대선주자의 지지율이 연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었다. 결국에 이 정당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정당인가. 지금 이 정당에서 대권을 잡을 만한 후보인가. 정의당이 저리 존재감없는 이유인 것이다. 권영길이나 심상정이 대선후보로 거론되던 동안에는 그래도 이름이라도 언급될 수 있었지만 심상정마저 뒷방늙은이가 된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진다. 도대체 정의당 가지고 뭘 할 수 있는데?

 

지금 국민의힘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일 것이다. 대선후보가 없다. 민주당이 아무리 삽질을 하고, 언론이 총동원되어 그 작은 흠까지 있는대로 후벼파더라도 도저히 국민의힘이 그 대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 총선의 결과가 그것을 말해준다. 황교안이 이낙연을 상대로 대선에서 그래도 경쟁이라도 해 볼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과연 당시 미래통합당이 민주당을 상대로 대선에서 승리를 거두고 정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당이고 야당이고는 당장 예산이나 정책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배현진이나 태영호가 종부세 인상을 반대하는 것과 최재성이나 김성곤이 반대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에게 있어서도 받아들여지는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런데 미래통합당에는 황교안 말고 아무리 살펴봐도 홍준표나 김종인 말고는 사람이 보이지 않은다. 홍정욱도 김무성도 유승민도 안철수도 다 한심한 꼬라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윤석열은 박근혜 잡아 쳐넣은 한 가지만으로도 절대 보수정당의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 그러면 누가 있는가. 그래서 선택한 것이다. 여당의 지역구가 되어야겠다.

 

아무리 언론이 지랄 염병을 해도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인 것이다. 오히려 민주당 지지율은 열린민주당까지 포함하면 거의 과반에 가깝게 유지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차라리 민주당의 지지율이 빠지는 것은 더 선명한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가 열린민주당으로 향한 결과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여겨질 정도다. 왜이겠는가? 지금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 2위가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그리고 1, 2위의 지지율을 모두 합하면 무려 44%라는 과반에 육박한 숫자가 나오게 된다. 그렇다고 나머지 지지율을 보수정당이 다 가져가느냐면, 조무래기들 다 모아봐야 저 절반이나 될까 싶은 상황인 것이다. 그런 국민의힘에 희망이 있을 것인가.

 

레임덕은 커녕 이낙연이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공무원이든 검찰이든 판사든 죄다 납죽 엎드려야 할 상황이 오게 될 것이란 이유인 것이다. 이낙연이든 이재명이든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 대통령에 게기는 너희들을 절대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검찰의 인사권은 법무부장관에게 전적으로 귀속됨을 추미애 장관이 확인시켜주었다. 더이상 검찰총장의 말을 들어봐야 돌아올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의힘에 줄을 설 것인가? 홍남기를 따르는 재경부 관료들 역시 당장은 이낙연이 만만해 보이지만 그만큼 재경부의 내부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전직 국무총리 이낙연이란 후보인 것이다. 자 어쩔 것인가. 이번에도 정권교체를 기대하고 말기에 한 번 대통령에게 덤벼 볼 것인가. 아니면 아예 납죽 엎드려 차기에 기회를 노려 볼 것인가. 그러면 국민의힘은?

 

그런 점에서 정의당의 선택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의당 없어도 된다. 오히려 정의당은 방해만 될 뿐이다. 존재감이 사라진다. 고작 6석짜리, 대선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정당 나부랭이가 과연 이 판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재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다. 이재명 지지자들도 이낙연 고마운 줄 알아야 한다. 그래봐야 모두 민주당 소속 대선 예비후보들인 것이다. 그 사실을 망각할 때 오히려 두 사람의 경쟁은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 해악이 될 수 있다.

 

지금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누가 되든 민주당 정권이다. 누가 당선되든 민주당 대통령이다. 결국 민주당이 승리하는 것이다. 민주당의 승리는 곧 문재인 정부의 승리다. 물론 대부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해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좋은 것이다. 민주당 후보로 정권을 지킨다면 그보다 좋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닌 놈들이 있는 것 같아 걱정일 뿐이다. 민주당이 먼저다. 민주당이 문재인이다. 어감도 좋다. 잊으면 안된다.

굳이 수구언론과 정치권을 욕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원래 저들의 스탠스가 저랬었기 때문이다. 한결같았다. 심지어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진실을 알리기 전까지 아예 없는 일인양 철저히 묻어두고 있었다.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은 그같은 수구정권이 지향해 온 연장선상에서 내려진 결론 같은 것이다. 차라리 그런 것 다 알면서 지지한 놈들을 욕하지 지들 그러겠다고 처음부터 떠들던 놈들 욕해 무엇하는가.

 

다만 그럼에도 평소 정의로운 척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던 자칭 진보들이 좋아라 그런 수구의 농간에 가세한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동안 몇 번이나 말해 온 것처럼 사실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은 예정된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여성주의의 뿌리가 무엇인가. 한국 여성주의의 시작에 어떤 이들이 있었는가? 친일파들이었고, 해방 이후에는 친독재세력들이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여성주의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돌이켜 보라. 그런데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여성주의가 진보적 지향의 하나로 여겨지면서 여성주의 또한 어느새 진보로 편입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질은 역시 친일, 친독재, 친재벌, 친기득권의 있는 자들의 놀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기회가 되었으니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을 정당화하고 친일과 친독재에 부담이 되는 위안부의 역사를 지워야 한다.

 

설마 한겨레가 몰랐을까? 아무리 정의당이 몰랐었을까? 자칭 진보쪽 인사들이면 어떻게든 시민단체들과 거의 연결되어 있고, 알음알음으로 내부사정 정도는 어느 정도 전해듣는 것이 있는 것이다. 몰라서 수구언론의 공세에 부화뇌동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었고 취재까지 했음에도 의도적으로 수구언론과 보조를 맞췄던 것이었다. 왜이겠는가? 바로 베를린에서 소녀상 철거하는 과정에서 정의연 논란이 중요한 근거로 쓰인 정황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끝장내자. 아예 역사로 파묻고 더이상 언급되지 않게끔 만들자. 지금도 대부분 사람들이 정의연 뿐만 아니라 위안부라 하면 정의연의 회계부정부터 떠올리며 부정적인 감정을 내보이는 중이다. 뭔가 불편하고 귀찮다. 그러니까 아무렇게든 시끄럽지 않게 원만히 끝내자. 박근혜 위안부협상 그런 점에서 잘했네. 정의연이 나섰으니 뭔가 문제가 있었겠네.

 

바로 여성주의가 지배하는 자칭 진보의 미래인 것이다. 벌써 정의당만 봐도 차마 국민의힘도 눈치보여서 대놓고 하지 못하는 말들을 대신해서 열심히 떠들어주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유력 여성주의 지식인인 이수정이 당당히 국민의힘에 몸담는 것을 보라. 여성주의의 아이돌 김재련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중인게. 김재련 비판하면 모든 자칭 진보가 들고 일어나 공격해댄다.

 

한 편으로 여성주의가 제자리를 찾아가듯 진보 역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원래 록이란 무산자들의 음악이었다. 힙합 역시 가진 것 없는 할렘가 부랑아들의 음악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땠는가? 돈 많아 해외에 유학을 갔거나, 혹은 외국에서 살다가 돌아왔거나, 한국인이더라도 비싼 오디오 들여놓고 악기도 살 정도 여유있는 놈들이 유희로 즐겼다. 진보는 다를까? 그놈들의 가난에 대한 경멸과 혐오를 보면 참... 

 

베를린 소녀상 철거에 대해 들으며 그저 저들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는구나 싶었다. 그런데도 위안부운동의 역사 자체를 부정하던 놈들이 위안부문제로 다시 떠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오히려 환멸만 더 깊어진다. 저따위 놈들이 마음대로 떠들 수 있는 것이 위안부문제였던 것인가. 이용수씨의 목적 하나는 확실하기 이루어졌다. 정의연이 주도한 위안부운동은 철저히 부정되기 시작했다. 축하드린다. 이건 저들이 이긴 것이다. 

박노자는 참여정부 때도 한결같았었다. 이전 김대중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지식인이었기에 당시 자유주의 정부의 정책 모두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많이 비판했다. 이건 이래서 문제고 저런 저래서 안좋고 그러니까 당시 정부들에게는 어떤 한계가 있었고, 그러나 자칭 진보들과 차이라면 그러면서도 그런 가운데 이 나라와 이 사회가 어떻게 얼마나 좋아지고 달라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적절히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차라리 당시 자유주의 정부들이 권위주의 정부보다는 낫다.

 

자칭 진보와 진짜 진보의 차이일 것이다. 가짜 지식인과 진짜 지식인의 차이다. 진짜 지식인이라면 절대 어용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당연하다. 내가 얼마나 옳고 바른 주장을 하든 그것을 실제 현실로 이루어내는 것은 결국 정치이고 권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권력의 결단 없이 어떤 선명한 이념도 대단한 정책도 현실에서 실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정치권력이 자신이 바라는 바와 일치하는, 혹은 그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면 어찌해야겠는가. 지지해야겠지. 아쉬운 부분은 지적하더라도 결국 그 방향성에 대해서만큼은, 더구나 이전까지 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것들을 실현해내는 그 자체에 대해서만큼 인정하고 지지해야 하는 것이다. 설사 그 과정에서 어용이라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박노자 교수가 서민을 비판한 글을 보면 그런 맥락이 그대로 드러난다. 역시 문재인 정부의 아쉬움을 지적한다. 어설픔과 모자름도 비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으로 한 발 더 나아가는 진전된 정부임을 인정한다.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인정할 부분은 인정해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를 부정해야지만 참지식인인 양 떠들어대는 한국의 자칭 진보들과 확실히 구분되는 모습이다. 혹시라도 정부 편든다 할까봐 최저임금인상도 근로시간단축도 심지어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마저도 저들은 비판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겨레 스스로 자신들의 지면에 올린 기사다. 피살된 공무원을 구하기 위해 정부가 더 강경하고 적극적이었어야 한다. 뭘 어쩌라고? 전쟁이라도 할까? 실제 전쟁하자는 소리다. 감청사실 다 까발리고, 북한 영해 내에서 일어난 일에 무력까지 사용해서 개입하려 한다는 건 그냥 선전포고하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지만 현정부를 공격하면서 진보인 연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결국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이던가. 참여정부 시절 경험했다. 하긴 저들이 진정 바라는 것일 게다. 수구세력이 집권하고 그 아래서 자기들이 진보놀음 하는 것. 거리로 나가 시위하고,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도 몇 죽거나 다치고, 그러면 더 비장미넘치게 자신을 희생하며 국민을 위하는 척 연기한다. 실제 희생한 건 아무것도 없다. 자칭 진보 가운데 진짜 이명박근혜 시절 시민들을 대신해서 희생한 이가 누가 있었는가. 오히려 그런 과정에서 더 큰 명성과 영향력을 얻는다. 수구정부에서 한 자리 얻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좋은가.

 

내가 이래서 박노자 만큼은 진짜 좌파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친정부니 반정부니 하는 의식 자체가 없다. 친민주니 반민주니 하는 구분 자체도 없다. 민족의 구분조차 모호하게 오로지 자기가 지향하는 방향에만 충실하며 그를 기준으로 엄정하게 세상을 보려 노력한다.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일부 일치하는 바에 대해서는 공감하며 지지한다. 그것이 바로 연대란 것일 게다. 공동체라는 것을 터고. 박노자라는 이름 그대로 이제는 한국인일 테니까. 태생이 어디이든. 때라도 긁어 끓여 먹이고 싶은 심정이다. 비교가 안된다.

예전 헐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특히 특수효과가 많이 사용된 블록버스터의 경우 밤을 배경으로 촬영된 액션장면들이 매우 흔했었다. 당연한 것이 당시 기술수준으로 밝은 대낮에 자연광 아래에서 촬영한 장면에 특수효과를 넣었다가는 바로 티가 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당부분 디테일을 가려 줄 수 있는 어둠과 조명의 도움을 받기 위해 낮에 촬영한 장면마저 밤에 촬영한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이다.

 

삼국지에서 동탁이 소제와 진류왕을 보호하며 낙양으로 입성할 당시 거느리고 있던 세력은 사실 그리 대단한 수준이 못되었다. 최소한 하진의 부름을 받아 모인 군웅들을 힘으로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여기서 이유가 꾀를 내서 동탁의 병사들로 하여금 일단 낙양으로 들어갔다가 다른 문으로 몰래 나와 다시 들어가는 식으로 세력을 과장함으로써 순식간에 천하의 군웅들과 낙양의 중앙군을 장악하는데 성공했던 것이었다. 나중에 호로관에서 십칠로제후군과 싸운 것도 바로 이때 손에 넣은 중앙군이 주력이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거의 천 수백 년 쯤 지나서 나치독일의 히틀러가 체코를 합병하던 당시 아직 준비가 부족했던 독일의 군사력을 과장하여 체코 국민과 영국 프랑스 등을 속여넘김으로써 수월하게 병탄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역시 밤이란 시간을 이용한 공작이었다.

 

어제 열렸던 북한의 열병식에서 소개된 신형무기들을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원래부터 소련은 미국의 지랄같은 정찰전력을 의식해서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를 만들어 속여넘기기 위한 기술이 발달해 있었다. 북한 역시 아마 그 기술을 배우지 않았을까. 사실 그렇게 어렵지도 않다. 전쟁영화 등에서 이제는 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오래된 무기들을 그것도 구동까지 해가며 등장시킬 수 있는 비결도 바로 이것이다. 철판 몇 개 덧대 모양을 만들고, 여기에 이것저것 디테일을 추가해서 사실감을 부여하고, 무엇보다 정교한 색칠로 가짜임을 의심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론 밝은 대낮이라면 바로 티가 나겠지만 어둠 속에서 제한된 조명만 받는 상황이면 속아넘어가기 딱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래서 예전 헐리우드 영화에서 특수효과가 많이 쓰인 장면은 거의 밤을 배경으로 했던 것이었다.

 

과연 진짜일까? 진짜 북한이 개발에서 양산까지 마친 신형 무기들일까? 아니면 단지 미국과 한국에 얕보이기 싫어서 거짓으로 꾸며 만든 더미들인 것일까? 그러나 그렇게 북한이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지 않으면 미국이 굳이 북한과의 협상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트럼프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필요에 따라 북한과의 협상을 파토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협상을 끝낸다고 트럼프나 미국에 손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쉬운 건 북한이다. 그런데 북한이 ICBM이며 여전히 막강한 군사력으로 미국을 위협할 수 있음이 드러나면 어떻게 될까? 둘 중 하나다. 군사력으로 북한을 제압하던가, 아니면 협상을 통해 북한 스스로 무장해제하도록 유도하던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기개발이라는 게 그렇게 말처럼 한두 푼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원한다고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K2흑표전차도 기초연구부터 포함하면 무려 수 십 년에 걸친 개발기간 동안 수 천 억에 이르는 돈을 쏟아부어 겨우 양산을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전차도 있고, 장갑차도 있고, 또 뭐가 더 있더라? ICBM은 어떨까? 북한에 그만한 돈이나 그런 개발을 시작한 정황 같은 것이 포착된 적 있었는가? 아, 이건 국정원 영역이지. 국정원은 알지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다만 기회는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만한 전력을 갖추고 있다면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또한 더 강력한 군사력으로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군지휘부가 신났을 것 같다. 흑표도 추가배치하고, K1전차의 주포도 교체하고, K9의 개량에, 아파치의 추가도입도 생각 볼 만하다. 항공모함도 어떻게든 연결지으면 확실히 명분이 생긴다. 누가 뭐라겠는가? 북한과 우리는 아직 전쟁중인데. 아무튼 그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다. 북한의 신무기라. 김정은이 살뺀다면 믿겠다.

그래봐야 독재자지만 전제군주에도 급이 있는 것이다. 그저 군주로서 자신의 신분과 지위, 권력에만 관심이 있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한 편으로 군주로서 자신에게 지워진 책임을 자각하는 이들도 있다. 전자를 흔히 폭군, 암군, 혼군이라 부르고, 후자를 현군, 명군, 성군 등으로 부를 것이다. 그리고 계몽군주란 흔히 후자에 속하는 경우를 가리킬 것이다. 즉 백성들의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군주로서 자신이 책임을 다해야 하고, 모범을 보이며, 헌신해야만 한다. 메뚜기로 인해 흉년이 들 것 같으니 차라리 내 속을 갉아먹으라며 메뚜기를 집어먹었던 조선조 태종의 고사처럼.

 

김일성과 김정일은 확실히 무오류의 존재였었다. 절대 실패따위는 하지 않았다. 실수 같은 것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영명하고 지혜로운 그들의 판단에 의해 인민들의 생활을 더욱 나아지기만 했을 뿐이다. 설사 결과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들이 잘못해서가 아니라 다른 외부의 요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르다. 내 잘못이다. 내 책임이다. 인민들은 잘 해 주었다. 군인들도 열심히 성실히 제 역할을 다 해 주었다. 내가 부족했다. 내가 역할을 못했다. 눈물로 사죄하며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앞으로 더 잘할 테니 자신을 믿고 따라달라.

 

유시민의 도발이 먹혔다. 열받아서 깽판이나 치지 않을까 싶었더니 그래도 왕조국가라 계몽군주라는 말이 진짜 칭찬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하긴 박정희도 전두환도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무오류의 존재들이었다. 박정희 살아생전에 박정희 정권에서 부정이나 비리가 발각된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전두환 정권의 실정이 사람들에게 알려진 적이 있었기는 한가. 그래서 이명박과 박근혜가 문재인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표창장이며 휴가연장도 대단한 부정으로 모든 언론이 떠들어대지만 박근혜 정권에서는 최순실 급 아니면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그러니까 계몽군주라 하니 이명박도 박근혜도 못 들어본 소리라 그리 부럽고 화까지 났던 것일 게다. 원래 계몽군주란 그저 전제군주의 한 변형에 불과했을 뿐인데.

 

하지만 확실히 어제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한 발언들은 역사상 현군이라 불릴만한 계몽군주의 그것에 가까웠었다. 국민들의 희생과 헌신을 위로하고, 자신의 무능과 무기력을 한탄하고,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 자신들에게 적의가 없음을 천명하며 화해와 협력을 촉구한다. 물론 그 뒤에서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국민을 감시하고 억압하고 탄압하며 수많은 인권유린을 저지르고 있을 테지만 말이다. 그런데 원래 비밀경찰이란 계몽주의 시대에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 편에서는 자신의 권력에 도전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자신의 권력을 지탱해 줄 백성들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어찌되었거나 결과적으로 과거보다는 나은 전제군주의 모습일 테니까.

 

유시민의 영향인지는 모르지만 아예 작정하고 오래 고심해서 준비한 연설문이란 느낌이었다. 북한의 주민들과 남한의 국민들과 세계의 시민들을 향한 선언이었다. 지금의 북한은 과거의 북한과 다르다. 자신 역시 과거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다른 존재일 것이다. 그러니 제발 도와달라. 살려달라. 진짜 울면서 손내밀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원래 독재자란 자체가 체면이 곧 권력이기도 하기에 표현에 있어 오만과 자만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표현들 다 제하면 남는 것은 이 한 마디다. 도와주세요. 도와줄까? 봐서.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북한이 신기하다.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로 출마하면서 미래의 아젠다로 제시했던 것이 바로 소득주도성장이었다. 지금도 현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할 때 언론들이 앞세우는 이름도 역시 소득주도성장을 줄여쓴 소주성일 것이다. 소주성 때문에 현정부의 경제정책이 실패했다. 그런데 정작 문재인 정부에서도 민주당에서도 더이상 소득주도성장과 관련한 어떤 이야기도 나오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어째서?

 

소득주도성장이 정책으로써 성공을 거두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그나마 정책을 통해 가계소득을 높여 줄 수 있는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이고 다른 하나는 그로 인한 경제효과가 더 많은 대상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확장적인 재정투입이다. 한 마디로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용자의 경제적 충격을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투입을 통해 완화하고 선순환으로 바꾸는 구조인 것이다. 그래서 문제다. 임금인상은 최저임금의 인상을 통해 어떻게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이루어졌다. 그런데 정부의 재정투입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국무회의 도중 장하성 실장과 김동연 부총리가 목소리까지 높여가며 싸우더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었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 사이에 김동연 부총리의 경제관료로서의 이미지는 매우 좋은 편이다. 당연하다. 언론이 좋게 써 줬으니까. 가계소득증가를 위해 근로소득을 높이고자 다양한 정책을 제안했던 장하성 실장에게는 모든 경제정책의 책임이 지워지고,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에게는 그를 막은 모든 공로가 주어졌다. 경제지표 가운데 안좋은 것은 모두 장하성 때문이고, 그나마 좋은 것들은 김동연이 장하성을 잘 막았기에 그렇게라도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경제정책은 김동연 하자는대로 그냥 지금까지 하던대로 하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그조차도 못한 현정부의 경제정책이 문제인 것이다.

 

자칭 진보들조차도 그같은 논리에 동조하고 있었다. 최저임금인상으로 인한 중소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정부의 책임으로 돌리는데 함께하는 한 편, 그를 완화하기 위한 재정확대에 대해서도 부작용을 같이 보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최저임금을 더 많이 올리지 않았으니 반대한다는 그 논리를 보고 있으면 이 새끼들이 왜 자칭인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당시 보도들을 보라. 최저임금인상과 근로시간단축에 대해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는 기사가 단 하나라도 있었는가. 그리고 그같은 분위기를 주도한 것이 바로 김동연이었기에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김동연은 보수정당의 대안으로서 끊임없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가 어째서 민주당이 아닌 보수정당에서 차기 인물로 중요하게 오르내리고 있는 것인지. 누구를 위해 일했기에 그렇게까지 되었던 것일까?

 

물론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래도 유능한 관료였던 김동연을 통해 소득주도성장의 연착륙을 의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대로 추진하기에는 너무 충격이 크기에 조금씩 완만하게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소득주도성장을 우리 사회에 정착시키자. 윤석열과 비슷한 경우다. 감사원장과도 유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와 다르게 김동연은 재경부 관료출신으로서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 오던 방식을 지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어차피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특히 국가의 재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란 것이다. 그렇게 김대중 정부에서도 노무현 정부에서도 심지어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도 관료들은 태연히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을 속이고 이용해 왔었다. 김현미도 현정부 초반 부동산정책을 세우는데 있어 국토부 관료들에게 놀아난 경우이지 않던가. 그래서 그만두게 못하는 것이다. 김현미가 물러나면 새로운 인물이 다시 국토부 관료들에 적응해야만 한다. 지금은 그래도 국토부 관료들을 장악할 수 있게 되었을까?

 

아무튼 그런 이유로 언론까지 이용해가며 공공연히 항명했던 것이었다. 언론을 통해 공격한 것은 장하성 실장이었지만 실제로는 장하성 실장을 등용한 문재인 대통령의 소득주도성장 자체를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결과 김동연의 활약과 언론의 협력으로 소득주도성장은 현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관료들의 저항에 실패한 것을 인정하고 경제부 관료들과의 타협을 시도한 결과가 홍남기 부총리인 것이다. 선거도 앞두고 있으니 무리하게 경제정책을 펴지 않는 대신 안정화시키는데만 부디 협력해 달라. 일단 더 시급한 국정과제들이 있기에 확실하지도 않은 경제정책을, 더구나 경제환경이 좋지 못한 현상황에서 밀어붙이느라 불필요한 갈등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선거에서 이기고 다시 민주당 정권이 세워지면 그때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 말하자면 선택과 집중이다.

 

그래서 이낙연이 한 발 늦었다는 것이다. 이낙연이라고 관료사회를 개혁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참여정부와는 큰 인연이 없어도 김대중 정부 당시 관료들에 놀아나며 수렁에 빠져들었던 당시 정부의 모습을 바로 가까이서 지켜보고 있었다. 일시적인 타협을 시도한 것일 뿐 관료조직 자체도 개혁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이낙연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직 총리였다는 위치가 안정감있게 경제관료들과도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며 머뭇거리는 사이 이재명이 먼저 박차고 나가기 시작했다. 아예 대통령 머리 꼭데기서 놀려 드는 경제관료들을 때려잡자. 지지자들에게 진짜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는 이재명과 홍남기, 아니 이낙연의 정책적 지향 또한 그 가운데 어느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가. 소득주도성장과 홍남기의 재정정책을 한 번 놓고 비교해 보라.

 

20세기 최악의 사건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경제대공황은 사실 조기에 진압될 수 있었다. 조짐은 일찍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행정부에서 경제장관으로 있던 인간이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재정투입을 망설이며 구조조정만 외치다가 그 타이밍을 놓치고 결국 최악의 수렁으로 빠지고 말았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당장 경기가 위축되고 있는데 재정투입으로 경기를 부양하기보다 돈 아끼겠다고 구조조정만 하느라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나마 홍남기가 구조조정을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김동연을 대신해 선택한 보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상황을 뻔히 알고 있을 홍남기와 재경부가 재정투입을 오히려 저지하며 경제위기를 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정부와도 심지어 국가경제와도 상관없이 자기들은 자기들만의 방식을 지켜야만 한다. 대통령이야 그래도 자기 행정부의 부총리이니 대놓고 욕하지 못하겠지만 그런 때 나서라고 있는 것이 같은 당의 동지들 아니던가 말이다.

 

하긴 처음부터 이낙연에게는 불가능했던 포지션이다. 전직 국무총리가 대놓고 경제부총리를 공격하는 것도 그다지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 그렇다고 이재명과 경쟁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재경부 관료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도 지지자들 보기에 그리 미덥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이 영리하다는 것이다. 감각이 있다. 두텁지도 단단하지도 못하지만 경쾌하고 예리하다. 필요한 순간에 한 걸음 내딛는 그 수가 정치인으로서 매우 큰 장점으로 여겨진다. 그렇지 않아도 관료사회에 비판적이던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 상당수가 그런 이재명의 움직임에 호응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재명이라면 홍남기를 비롯한 재경부 관료들을 한 번 크게 손봐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이낙연에게 기대가 없다는 건 아니다. 단지 이재명과 이낙연의 포지션이 다를 뿐이다. 서로 위치가 다르고 할 수 있는 일도 다른 것이다. 이재명은 아웃사이더다. 프리롤에 가깝다. 그냥 하고싶은대로 해도 된다. 그러나 이낙연은 아니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면 금태섭이나 김해영 나부랭이가 아닌 이상 결국 하는 행동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게 바로 정당이란 것이니까. 다만 지금 단계에서는 그 한 걸음을 빼앗기고 시작한 것이 된다. 여기서부터가 진짜 승부다. 과연 이낙연은 이재명에게 빼앗긴 그 한 걸음을 만회하고 역전까지 할 수 있을 것인가.

 

웃기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라는 것들이 아무리 이재명 밉다고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시킨 재경부 관료들의 편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홍남기가 무조건 옳고 그를 비판하는 모두는 틀린 것이다. 홍남기의 말이 곧 대통령의 말씀이다. 대통령이기에 차마 하지 못하는 말도 있는 것이다. 인내해야 하는 것도 있고 감수해야 하는 것도 있다. 이낙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재명이 부럽기도 한 것이다. 아무때나 아무렇게나 저 하고 싶은 대로 떠들어도 된다. 이재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 더 먹을 욕도 없다.

 

검찰개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그 다음은 재경부와의 싸움이 될 것이다. 재경부와의 싸움은 곧 국토부와의 싸움으로도 이어진다. 행정부 관료들 전체를 상대로 더 큰 전쟁을 치러야 할 지 모른다. 감사원은 벌써 움직였다. 국토부는 아예 장관과 정부를 가지고 놀려 했었다. 재경부야 대통령 머리 꼭데기에 앉아 있다. 윤석열보다도 오히려 더 위험한 것이 이들의 존재인 것이다. 지지자들이 그런 놈들을 싸고 돌고 있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당시 서해의 해류방향이 자력으로 북한으로 넘어가기에 어려운 조건이었다. 뭔 말인가? 자력이라는 것은 스스로 방향과 속도를 바꾸기 위한 어떤 인위를 가한다는 뜻이다. 팔다리로 노를 젓든, 옷을 벗어 돛을 대신하든 아무튼 뭐라도 해서 자신의 속도와 방향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으로 넘어가지 못하면 자력으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표류상태에서라면 과연 어떨까? 자력으로도 안되는데 표류로는 넘어갈 수 있겠는가?

 

저들이 주장하고 싶은 것은 하나다. 납치다. 북한군이 우리 해역을 넘어와 공무원을 납치한 뒤 자기네 해역에서 사살한 것이다. 아니라면 월북이 아니라는 저들의 주장은 정작 표류의 가능성만 부정하고 마는 것이다. 월북도 아니고 표류도 아니면 남는 가능성은 하나다. 누군가 피해 공무원을 타력으로 북한으로 넘어가게 만들었다. 주위에 있던 동료 공무원들이 아니면 결국 북한군인 것이다. 북한군이 넘어와서 그것도 공무원을 납치한 뒤 살해했으면 상황은 심각하다. 이래서 김종대가 북한 선박을 격파했어야 했다 주장하는 것일까?

 

어째 대책도 없이 즉각적으로 강경한 대응을 했어야 했다 주장한다 싶었다. 그렇게 교전상황까지 감수할 정도면 결국 납치 말고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국 국민이 납치되어 살해됐다면 더이상 평화란 불가능하다. 사실이 확정되는 순간 전쟁을 일으켜도 명분은 우리에게 있다. 어째 자칭 진보 새끼들이 그동안 가면 벗어던지고 호전적으로 나오더라. 문재인 정부만 망할 수 있으면 전쟁도 상관없다. 물론 여기까지 생각할 지능이 없었을 수도 있다.

 

진짜 너무 간단한 것이다. 자기 힘으로 북한으로 넘어갈 수 없는 환경이면 자기 힘 없이는 더욱 북한으로 넘어갈 수 없다. 월북이 아니면 표류도 더욱 아니다. 남은 가능성은 그래서 하나다. 다만 아직 거기까지는 이야기가 진행이 되지 않아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 하태경과 태영호는 진짜 북한의 간첩인 것일까? 지금 상황에 전쟁 주장해서 좋을 것이 북한 군부 말고 누가 있을까? 똥같은 것이다. 개에게 미안해서 차마 평소 쓰던 욕도 못하겠다. 더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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