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넘었구나.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언론은 그리 한 목소리로 비난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생산라인과 자재, 원료들을 지키려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당장 해고되면 갈 곳이 없고, 그런 동료를 내버려 둘 수 없으니 파업은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일이 잘 풀려서 다시 함께 공장을 돌리며 일할 수 있기를 바랐던 때문이었다.

 

쌍용자동차만이 아니었다. 그동안 대부분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일하던 사업장의 시설을 파괴하는 경우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떻게든 대화로 잘 해결되어 파업을 풀게 되면 다시 자기들이 일하게 될 직장이기 때문이었다. 과연 노동자들이 파업하면서 요구를 관철시키겠다고 설비를 인질로 잡고 파괴하겠다 협박했다면 당시 여론이 어떻게 흘러갔을까? 하긴 의사니까 요구도 주장도 다 받아서 기사도 내주는 것이지 다른 직업이었으면 어림도 없었다. 그런데 어떤가? 의사가 기계도 원료도 아닌 사람의 목숨을 볼모로 잡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는 중이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국민의 생명이 위험한 상황이니 이대로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고 그 부담은 정부에게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응급실도 중환자실도 마비되어 사람이 죽어나가면 정부의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테니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도 아예 공장 설비에 인화물질 뿌리고 난 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다 불싸질러 버리겠다 위협했으면 과연 사측이나 정부에서 그리 강경하게만 나설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을 비난만 하던 언론들이 이제는 의사라고 그 요구와 주장을 성심껏 전하며 국민이 인질로 잡혀 있음을 친절하게 정부에 전하기까지 하고 있다.

 

개새끼들이라는 이유인 것이다. 하긴 부모가 그리 가르쳤을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업 가지면 너 마음대로 해도 된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대 들어가고 의사가 되면 돈도 많이 벌고 조건 좋은 배우자도 얻을 수 있고 높은 사회적 지위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가 되었다. 의사가 되고자 의대에 들어갔다. 환자가 무슨 대수인가. 국민의 목숨이 무슨 상관인가. 오히려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지금이 자신들에게 절호의 기회이지 않은가. 최대집이 특별한 게 아니란 것이다. 최대집이 유별나서 의협회장에 당선된 것이 아니라 의사란 새끼들이 죄다 최대집과 같은 부류라 끼리끼리 투표해서 선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단 것이다.

 

진짜 한 번 보고 싶다. 현대중공업이든 현대자동차든 아무곳이든 노동자들이 파업 하면서 한 번 설비며 회사 자산을 인질로 삼아서 정부와 사측을 협박하면 언론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무엇보다 의사들은 그런 때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병원의 부당한 관행과 행사들을 바로잡아 보겠다고 간호사들이 노조 만들고 파업했을 때 의사들이 그에 대해 무어라 말하고 있었는가. 개에게 미안하다. 개 잘못이 아닌데.

 

아무튼 하다하다 파업도 태업도 아닌 인질극으로 자신의 주장과 요구를 관철하려 하고 그를 긍정적으로 전달하는 모습들을 현실로 보게 된다. 노동자가 아니라 그럴 것이다. 정확히 노조가 아니다. 직능단체다. 그러니까 대우도 노동자와 다를 수밖에 없다. 월급 3천만원도 적다니 그럴 만도 하기는 하다. 빌어먹을 것이다.

아마 이상하다 느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서울에 큰 병원만 몇 개인데 어째서 병상이 부족하다 말하는 것인가. 더구나 병상이 부족한데 어째서 대형병원에 병상을 내달라 요청하는 것인가. 당연하지 않은가.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인 위급상황에 정부나 지자체가 가장 먼저 동원하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통제 아래 있는 공공병원들인 것이다. 보건소나, 공공의료원이나, 혹은 군경병원 같은 것들이다. 먼저 정부와 지자체의 통제 아래 있는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부족하면 민간병원에 협조를 요청한다.

 

민간병원이란 자체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병상 하나가 곧 수입이고 진료시간 1분이 곧 이익이 되는 곳이다. 그런데 그런 민간병원더러 전염병 방역을 위해 필요하니 병상 비우고 의사 내달라 하면 바로 그러라고 하겠는가. 듣더라도 결국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구에서 신천지로 인해 코로나19 급속히 확산하던 상황에도 의사며 병상을 강제로 징발하기보다 자발적인 협조를 먼저 요청했던 것이었다. 의료진들더러 대구로 내려가라 강제한 것이 아니라 여유가 있는 의료진이 내려가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요청한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까지 코로나19의 방역에 가장 앞장서서 가장 많은 부분을 책임졌던 것은 어디의 누구겠는가.

 

당연히 공공의료시설들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공공의료인력들이다. 노조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자니 무려 78%를 공공의료기관에서 담당하고 나머지만 민간병원에서 나누어 감당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공치사는 누가 하고 있는가. 그동안 코로나19 사태에서 그 잘난 의협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가. 하나라도 도움이 된 것이 있었는가. 공공의료인력들은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이 다 한 양 공치사하며 오히려 국민의 목숨까지 볼모잡으려 하고 있다. 그러니까 공공병원과 공공의료인력을 더 확충하겠다는 시도를 막아서며 진료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연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늬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공이들은 물론 아직 졸업도 못한 의대생들은 더욱 공치사를 할 자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의대생들이 뭘 했는데? 어디서 뭘 그리 대단한 일들을 했길래 정부에 배신감마저 느끼는 것일까? 공공병원을 늘리려 해도 오겠다는 의사가 없고, 기껏 오겠다는 의사가 있어도 몇 배의 연봉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도 지방에는 안 내려가겠다는 놈들이 지금 파업하는 놈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국민은 그들의 사정을 일일이 다 이해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최대집 같은 놈들이.

 

그러니까 언론이 뉴스를 잘못 내보낸 것이었다. 진짜 코로나19 방역의 최일선에서 노력한 이들이 누구인가 구체적으로 보도했어야 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대부분 진료가 공공병원에서 이루어졌으며 공공의료시설과 인력의 부족으로 인해 민간 자원까지 빌려서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까 뭐다? 공공병원을 늘려야 한다. 공공병원에서 일할 의사를 늘려야 한다. 돈을 더 준다고 해도 지방에는 안 가겠다는 의사놈들이 한가득이다. 그런 놈들이 지금 진료거부중이다. 언론도 공범이다. 기자나 의사나.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역겨울 뿐이다.

원래 여성주의란 자체가 부르주아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당장 먹고 사는 일로 고민할 필요도 없고, 주위에 항상 보이는 것이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와 권력을 누리던 남자들이었고, 그러니까 아버지와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들만한 사회적인 지위와 영향력을 가져보자. 그래서 여성주의에는 노동자도 소수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백인 여성은 흑인 남성보다 우월하다. 여성 사용자는 남성 노동자보다 우월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인 것이다.

 

바로 얼마전에도 보았을 것이다. 단지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와 다른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계약직인 여성 방송인이 실직하도록 압박하고 있었다. 단지 자신들과 같은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남성권력인 검찰지도부를 움직여서 같은 여성인 일선검찰을 징계하려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하던 여성주의자들 자신은 혹은 변호사거나 혹은 정치인이거나 혹은 대학교수들이었다. 혼자 살더라도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 같은 직업에, 더구나 남편까지 제법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들 입장에서 계약직 여성 하나, 검사장도 못되는 검사 하나 직장을 잃는다고 신경쓸 일도 아닌 것이다.

 

확실히 정의당이 여성주의 정당이 된 것을 알겠다. 그러고보면 한겨레와 경향도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한 이슈였던 이른바 인국공 논란에서 그다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박원순 시장의 경우와 다르다. 그때는 매일같이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정의연의 경우도 뻔히 오보인 것을 알면서도 조선일보를 따라쓰느라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굳이 정의연을 언급한 이유는 정의연 논란이야 말로 여성주의의 아픈 고리라 할 수 있는 박근혜에 부역했던 과거를 가리기 위한 의도된 공작이었기 때문이었다. 여성 대통령인 박근혜를 지지하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도 철저히 박근혜와 입장을 같이 했던 과거를 지우기 위해서라도 당시 대립했던 정의연의 도덕성과 정당성에 크게 흠집을 낼 필요가 있었다. 실제 정의연 논란 당시 박근혜의 위안부협상에 대한 재평가는 물론 이명박 정권 당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들마저 모조리 끄집어내어 위안부문제 해결을 막은 당사자로 정의연을 공격하던 논리가 크게 기성을 부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등장한 것이 화해치유재단 출신의 김재련이고 그가 여성주의의 중심에 선 상황이다. 이해가 되는가?

 

이번 코로나19의 재확산조짐에 대해 정의당이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의 실시를 주장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저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바로 오한부터 느끼고 있었다. 아다시피 나는 지금 실직 상태다. 한 달 정도 충전하고 일자리를 구하겠다 마음먹고 있는 중이란 것이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가 실시되어 보라. 과연 그런 상황에 어느 사업주가 새로 사람을 구하겠으며, 사람을 구하더라도 어떻게 면접을 보러 갈 수 있을 것인가. 가장 만만한 공사장 일용직이야 당연히 공사가 중단되며 사라질 테고, 서비스업도 사람들의 왕래가 끊기면 더이상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당장 영업이 중단되며 폐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린 PC방이나 헬스장 등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런 때 가장 취약한 이들이 굳이 해고도 필요없는 이같은 비정규 시간제 일자리들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쉽게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이유는 아마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어차피 노조도 못만드는 그런 시간제 일자리들이야 자기들 알 바가 아닌 것이고, 또 하나는 설사 그들이 신경쓰인다 하더라도 현정부를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이 사회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다 할 수 있는 진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나 고민 같은 것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주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되는 자신들이니까. 대부분 좋은 대학 나왔을 테고, 생계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진보정당운동도 할 수 있는 것일 게다. 내가 민주당 당적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도 워낙 먹고 사는 일이 바빠서 오프에서 행사 한 번 참석하지 못했었다. 당비도 그리 많이 걷혔다면서? 그러니 그런 말을 해도 된다.

 

코로나로 국민이야 죽든말든 상관없이 일단 정부부터 공격하겠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가짜뉴스로 정부를 공격하는데 보수언론만 앞장섰던 것이 아니었다. 일본이 다시 쳐들어와도, 중국이 다시 대한민국을 식민지로 삼으려 해도, 대기업이 아예 정규직을 모두 해고하고 계약직으로 바꾸려 해도, 그러나 정부만 공격할 수 있으면 자신들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겠다. 그런 필사적인 의지에 여성주의는 명분이 되어 준다. 그래도 자신들은 진보이기에 여성주의를 위해 이렇게 열심이지 않은가. 그런데 언제부터 여성주의가 진보였을까? 김활란과 박마리아가 과연 진보였었는가? YWCA가 진보적인 여성주의 단체였었는가? 여성주의는 미래통합당도 한다. 오히려 이수정 교수가 선택한 정당이 미래통합당이었을 정도다. 하긴 이미 미래통합당과 손잡고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를 포위하려 하는 곳이 정의당이기도 하다.

 

아무튼 듣는 순간 바로 욕부터 튀어나왔다. 다음주부터는 어찌되었거나 면접 보러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달 놀았으면 됐지 두 달 노는 건 무리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오래 놀면 사람이 망가진다. 하다못해 공사장 잡부라도 찾아보려 했더니만 그마저도 하지 말라고 고사를 지내고 있다. 이 똥덩어리 새끼들은 진짜 일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노동자들이 정작 정의당을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 노동자 정당 정의당은 죽었다. 사실을 확인해준다.

이를테면 격투기 경기를 보면서 그리 말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사람이 키가 크고 뼈대가 굵으면 어쩔 수 없이 몸무게도 차이가 나는 것인데 어째서 그런 선천적인 부분을 가지고 차별하여 같이 경기도 치르지 못하게 하는가.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 우월하면 그것으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리한 신체적 조건에도 그를 극복할 수 있다면 승리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격투기 가운데 체중제한이 없는 종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타고난 조건이 다른데 차이를 두지 않겠다고 모두가 함께 경기를 치르게 한다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만 너무 불리하지 않겠는가. 같은 시간을 같은 강도로 노력했어도 여성이 남성을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린이가 30대 장년을 이긴다는 것도 무협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같은 성인 남성이라도 키와 몸무게에서 벌써 크게 차이가 나는데 과연 같은 수준으로 노력해서 대등한 경기가 가능하겠는가. 그러니까 모든 종목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고, 다시 연령대나 혹은 체중별로 나누어 서로 경쟁이 가능한 사람들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든다.

 

사실 둘 모두 관점에 따라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조건이 다르다고 타인과의 경쟁을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일 수 있다. 타고난 조건이 다른 만큼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끼리 경쟁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 포기하는 것도 자유다. 차라리 타고난 조건이 불리한 만큼 몇 배 몇 십 배 더 노력한다면 반드시 승리하지 못할 것도 아닌데 스스로 지레 포기했다면 모두 자신의 의지로 그리 선택한 것이다. 자유주의와 자유의지주의가 갈리는 지점이다. 그런데 한국은 자유의지주의조차 아니다. 자유의지주의는 설사 패배하고 포기했다고 그를 징벌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지 않는다. 끝까지 도전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의지이고,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의지다. 그래서 과연 사회는 어떤 공정함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언론과 정치권이 만들어 퍼뜨리는 공정 프레임에 때로 분노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공정함의 반댓말이 불공정이 아니다.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함께 링에서 경기하지 못하게 한다고 그것이 불공정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무한한 자유를 인정할 것이면 프로스포츠에서도 외국인 선수에 대해 그리 많은 제약을 둘 이유가 없다. 국적이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실력만 뛰어나면 얼마든지 프로팀과 계약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야구팀이 모든 선수를 미국 마이너리그 출신으로 채워도 문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프로축구팀이 모든 선수를 남미 출신으로 구성해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왜 그래서는 안되는가. 

 

어차피 보안검색직이 하는 일은 사무직의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시설관리나 미화로 정규직이 되었어도 사무직의 영역까지 넘볼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사무직더러 보안검색이나 시설관리, 혹은 미화를 하라고 지시를 한다면 바로 고용노동부에 제소하면 된다. 서로 직렬이 다르고, 따라서 하는 일도 다르고, 급여와 승진과 복지체계 역시 모두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단지 그런 차이 안에서 비정규직이던 것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것이다. 보안검색의 급여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추가수당이 붙는 야간과 주말근무가 많아서 그런 것일 뿐 사실 대부분 그냥 최저임금이나 겨우 받는 수준이란 것이다. 야간미화원이 300만원 넘게 받아도 야간수당에 주말수당 제하면 역시 최저임금 겨우 넘는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다 뭉뚱그려 그냥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비교하고 경쟁시키려 한다. 어딜 감히 보안검색따위가. 어딜 감히 시설관리나 미화 따위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직군이 따로 있고 정규직이 되어서는 안되는 직군이 따로 있다. 그것이 현실에서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곧 공정이고 정의인 것이다. 정규직이 되어도 되는 직군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온 직군이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다. 의사가 되어 아무데서나 개업해서 돈이나 열심히 벌라는 지역의사가 아니란 것이다. 졸업하고 나서 일정 기간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것을 강제하는 특수한 목적의 의사들이다. 그래서 사관학교와 많이들 비교하는 것이다. 사관학교의 경우도 나라에서 교육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대신해 지불하는 대신 졸업생들은 일정기간 나라를 위해 국방에 종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아무데서나 자유롭게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의사들과 선발과정부터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의사로서의 역량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바로 졸업 이후에도 해당 분야에서 출실하게 의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인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 시험으로 뽑자고? 어차피 졸업하면 그동안 받은 장학금에 위약금 다 물어주고 늘어난 정원 만큼 보다 수월하게 의사가 되어 돈 벌 생각만 머리에 가득한 사람들까지 다 받아들여 그 혜택을 나누자고? 그게 공정인가? 그게 정의인가?

 

어차피 지방은 인구도 적고 그만큼 환자수도 적어 일정이상 수입을 보장받기 어려우니 지방에서 개원하려는 의사가 없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생활이 필요한 최소한의 편의시설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 의사들이 어지간한 차이면 그냥 돈 좀 덜 벌고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어차피 KTX며 저가항공이며 교통편도 많이 좋아졌으니 그냥 큰 수술 필요한 상황이 되면 서울로 와서 진료받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지방의 의료인력을 억지로 늘리기보다 기왕에 있는 의사들 수가나 올려서 처우를 개선해달라. 혹시 아는가, 그러다 보면 기존의 의사들 가운데 자기 발로 지방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나올지? 그래서는 안되겠기에 지방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공공의대와 의대정원증가를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현실을 인정하고 그냥 받아들이자는 이들과 그럼에도 강제로라도 그를 바로잡을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경우, 그래서 사회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없는 경우 쉽게 의사들의 주장에 휩쓸리고는 한다. 강제보다는 자유가 더 나아 보이지 않는가. 세련되고 멋져 보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사실 자유의지주의대로라면 국가란 존재할 이유가 없는 폭력과 강제의 조직인 것이다. 그냥 개인이 알아서 하면 된다. 알아서 돈벌고 알아서 선의를 베풀고 그러면서 알아서 공존할 방법을 찾아간다. 그것만으로는 절대 해결이 안되거나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경우 국가가 강제로 중간에서 균형을 맞추려 한다. 그래서 묻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공정인가고. 현실의 불균형과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강제를 개입하는 자체도 불공정인 것인가. 그마저도 자유의지에 맡겨야 공정한 것인가. 아니면 결과의 공정을 추구할 것인가.

 

말하자면 권투시합을 앞두고 과연 상대로서 적절한가 따져보는 과정인 것이다. 당사자는 불쾌할 수 있을 것이다. 페더급 시합이지만 헤비급인 자신 역시 출전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여성대회이고 아마추어 학생대회지만 남성이고 프로인 자신 역시 자유롭게 출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실력이다. 물론 그렇게 진행하는 시합도 어딘가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투를 즐기는 모두를 위해서도 상대는 조건은 지켜져야 한다. 불공정하다. 정의롭지 못하다.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바로 언론이고 정치인이고 지식인들이다. 멋모르는 네티즌들이다.

 

또다시 공정프레임이다. 시민단체가 운동권 시민단체만 있는가. 진보적인 시민단체만 있을 것인가. 학부모단체도 시민단체고, 교원단체도 시민단체이며, 환자나 의료사고와 관련된 단체들 모두 시민단체인 것이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모인 사람들 역시 모두 시민단체라 불리고 있다. 시민단체와 시민이 별개가 아니란 것이다. 정히 선발과정에 관심이 있으면 자신 역시 아무 시민단체에나 가입해서 감시활동을 하면 된다. 벌레들이 많다. 뇌가 진중권인 것일까. 우동 먹고 싶다.

공공의대란 자체가 졸업 이후 진로선택에 있어 일정한 제약과 강제가 가해지는 특수목적의 교육기관이란 자체다. 아무나 지원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공공의대가 설립된 목적에 동의하고 그를 위한 여러 강제사항들에 대해 복종할 것을 서약한 이들만이 최초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게 된다. 군사관학교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것은 졸업 이후 진로를 제한당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공공의대의 경우는 의사자격증을 가지고 목적 이외의 분야에서 얼마든지 선택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학생들을 선발해야 하겠는가.

 

졸업 이후 10년 간 지역에서 근무할 것을 강제하는 것은 그야말로 최소한이라 할 수 있다. 10년으로는 부족하다. 아예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은퇴할 때까지 지역병원에서 의사로서 근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냥 성적만 좋아서 의사라는 직업 하나만 바라보고 지원하는 학생이 아닌 진정으로 지역에 애착이 강해서 졸업하고 나서도 계속해서 지역에서 의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정성적으로 평가하여 선발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아니라면 일단 졸업부터 하고 난 뒤 장학금에 위약금에 벌금까지 다 내고 그냥 서울로 가겠다는 사람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적지 않은 재정과 인력, 노력이 들어가는데 그런 무의미한 상황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공공의대가 가지는 특수성은 외면한 채 오로지 시험이라는 공정성만 강조한다. 공공의대고 뭐고 다른 의대처럼 아무나 지원해서 시험 치르고 입학해서 교육받은 뒤 졸업하고 나서 돈 토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냥 서울 가서 의사생활 하고, 돈 없으면 지방에 남아 의무를 지키게 하자. 그러니까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설립한 공공의대가 아니라니까. 그런 식으로 운영할 것이면 이미 있는 의대 가운데서도 지방에서 근무할 것을 약속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장학금을 지급하거나 하는 방식을 취해도 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장학금 다 받고 의대를 졸업한 뒤 자기 실력이 된다 싶으면 빚을 내서라도 장학금 갚고는 그냥 서울에서 의사생활해도 상관없다. 가난한 놈들만 지방에 간다. 이 뭔 개소리인가.

 

더구나 정원의 3배까지 추천한다는 자체가 추천한 인원 가운데 경쟁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남원의 유지와 전주의 유지와 목포의 유지가 각각 뒤로 영향력을 발휘해서 추천을 받았더라도 결국 최종 합격여부의 결정은 그 가운데 더 자격을 갖춘 누군가가 될 것이란 의미다. 추천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든 이미 3배수 이상의 추천을 받은 이상 그 안에서 경쟁은 이루어질 것이고, 더욱 보는 눈이 있어서라도 그런 식으로 모든 추천인을 채우기도 불가능하다. 시도지사는 선거 안 치르는가? 그런 식으로 추천해서 과연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런데도 넘어가면 그건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감시하고 심판하지 않은 유권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라고 선거제도가 있는 것이다. 

 

오히려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간과하는 것은 저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이 아닐런지. 원래 입시부정이나 취업비리 같은 것도 여럿 가운데 한둘 끼워넣는 정도이지 아예 대놓고 모두를 그런 식으로 조작해서 집어넣지는 못한다. 그러기도 힘들다. 반드시 탈이 난다. 추천하면 바로 입학하는 것도 아니고, 추천받은 지원자 가운데 경쟁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 결과나 과정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상당하다. 아마 저들이 믿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런 시도지사들을 심판해야 할 지역의 민심이 아닐까. 국민이고 시민이지 않을까. 불법과 비리를 방관하는 그들의 무지와 야만이 아닐까.

 

조국 전장관의 딸 조민씨를 들먹이는데 원래 당시 입시제도 자체가 그래서 조민씨도 그 입시제도에 맞춰서 준비를 했던 것에 지나지 않았었다. 공주대 논문은 아예 입시에 제출되지도 않은 사실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졌고, 동양대 표창장은 입시에서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담당자들이 직접 밝힌 바 있었다. 위조되었든 아니든 허위든 어쨌든 드러난 사실이 그렇다. 나머지는 비슷한 시기 대학 들어가고 의전원 들어간 놈들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 뒤져볼까? 입시과정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그냥 벌레새끼들이란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더러워서 상종하기도 싫다.

역시 내 추측이 맞았다. 하긴 나만 그리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기껏 여러 취재원들로부터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굳이 문제가 될 만한 형식으로 내보내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그리고 당사자가 반발하자 유례없이 바로 꼬리내리고 사과하면서 도리어 반대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그를 근거로 수사심의위에서 수사중단권고까지 나왔으며, 바로 같은 시간대 뉴스를 통해 권고를 무시한 수사를 비판까지 하고 있었다. 과연 이 모든 게 우연이었겠는가?

 

김경록PB의 법정증언에 따르면 이미 작년 9월 KBS 법조기자 한동훈의 이름을 언급하며 협박 겸 회유를 했었다고 한다. 한동훈 당시 반부패부장이 김경록PB의 범죄혐의를 중대하게 보고 있다는 말에 검찰이 요구하는대로 진술하며 협조하게 되었다고. 즉 이미 전부터 KBS 법조팀은 한동훈 지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상당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취재와 보도를 통해 상당히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검찰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김경록PB를 인터뷰하고, 또 검찰의 의도대로 인터뷰를 왜곡해서 내보냈고, 더구나 그 과정에서 직접 실명을 거론하며 협박과 회유를 했다. 그런데 역시 어디서 많이 본 그림 아닌가? 바로 이동재와 한동훈이 했던 바로 그 과정들이다.

 

KBS가 필사적으로 검언유착을 권언유착으로 돌리려 발악한 진짜 이유였던 것이다. 채널A의 검언유착이 드러나는 순간 KBS의 검언유착도 드러나게 된다. 한동훈의 통화내역이 까발려지는 순간 KBS가 그동안 한동훈과 유착해 온 내용들 역시 까발려지고 마는 것이다. 물론 진실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언론이었다면 그럼에도 더욱 진실을 파헤침으로써 자신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KBS가 그런 언론일 리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프레임 전환을 위해 결정적인 오보라는 오명을 스스로 쓰기로 했다. 그리고 알리바이를 위해서 한동훈은 기꺼이 자신을 위해 오보를 내 준 기자들을 위해 민사소송까지 걸었다. 한겨레의 하어영은 무려 검찰총장으로부터 형사고발을 당했는데 수사 한 번 받은 적 없었다. 민사소송도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지, 판결이 났어도 안받겠다 하면 안주고 끝내면 그만인 것이다.

 

실제 당시의 오보 이후 과연 KBS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채널A와 한동훈의 검언유착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는가 살펴보면 그 의도는 너무 명확해지는 것이다. 큰 오보를 내기 위한 밑그림이었던 것이다. 오보를 내고, 사과하며 인정하고, 그를 통해서 검언유착이 권언유착으로 프레임전환되도록 상황을 유도했다. 권경애의 한상혁 저격은 당시부터 계획되어 있었다 보는 것이 옳다. 타이밍이 요상해지며 의미가 퇴색되었을 뿐 상황만 맞아떨어졌으면 확실한 한 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KBS 오보가 근거가 되어 수사중단 권고가 나왔는데 권고를 따르지 않는다며 자사 보도로 비판하고. 심지어 오보를 내고 사과한 당사자는 유튜브 채널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 나와서 참언론인 행세하며 피해자 코스프레까지 한다. 아마 이동재가 지금 이런 표정이겠구나. 정연욱의 모습을 볼 때마다 그래서 이동재가 떠오른다.

 

물론 전적으로 한동훈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첫째는 한동훈과 유착한 자신들의 전력을 감추고 싶었던 것일 테고, 둘째는 어찌되었거나 KBS 노조위원장이 약속한대로 문재인 대통령의 목을 따서 자신들이 파업한 정당성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만 공격할 수 있으면 광화문에서 코로나를 퍼뜨려도 정당하고,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인질로 삼아도 정의롭다. KBS라고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훈을 구하고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언론으로서 오보라는 오명까지 기꺼이 뒤집어 쓸 수 있다. 한겨레가 KBS의 검언유착을 가리기 위해서 역공당할 것이 뻔한 김학의 연루의혹을 터뜨렸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 정황이 김경록PB의 입을 통해서 법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그래서 KBS 법조팀의 반박에 애처롭게 들리는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닌 법정이었다. 그것도 모든 언론이 보도한 그대로 정경심 교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 위해 나온 자리였다. 자신의 항소심을 위해서라도 굳이 검찰과 재판부를 자극할 만한 발언을 할 이유가 없었던 자리였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모든 언론이 정경심 교수에 불리한 증언을 한다는 와중에 하필 KBS 법조기자의 입에서 한동훈의 이름이 나왔다는 내용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김경록PB가 법정증언 중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아니면 작년 일도 기억 못해서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거나? 그러면 당장 위증죄로 처벌부터 받아야 할 상황이다. 그렇게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아무튼 그래서 결국 집에 TV를 들이는 것은 다시 먼 훗날로 미뤄지게 되었다. 처음에는 기대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욕할 일 있으면 찾아갔었는데, 이제는 그냥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에 나와 참기자 행세하는 놈들 역겨워서 클릭하기도 꺼려진다. 그러니까 이런 놈들이 그동안 일베 욕하고 조선일보 욕하며 참언론인 행세하고 있었다는 거겠지? 공영노조가 문제다? KBS 자체가 문제다. KBS의 터가 문제인 걸까? 아니면 사람들의 피가 문제인 것일까?

 

결국 하나의 그림인 것이다. 작년 조국사태부터 올 초 유시민을 타겟으로 한 검언유착 의혹까지, KBS가 김경록PB의 인터뷰를 왜곡하고, 채널A가 한동훈과 손잡고 유시민을 사냥하려다 들통나고, 다시 그것을 가리기 위해 KBS가 자발적인 오보를 내는 이 모든 과정들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KBS는 어째야 한다? 과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아닌 척 해서 더 더러운 벌레새끼들이다. 죄다 격리조치했으면.

그러고보면 사람들이 이토록 필사적으로 자기 집을 가지러 애쓰는 이유는 집없는 설움이란 것이 정서적으로 유전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남의 집에 세들어 살려니 집주인의 횡포가 서럽고, 둘째는 일단 집만 사놓으면 값이 오르니 일찌감치 집 한 채 사 놓지 못해 남들처럼 이익을 보지 못해 그것이 또 서럽고, 무엇보다 그래도 나이 먹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줄 집이라도 한 채 있어야 면이 설 텐데 그마저 없으니 인생이 서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서 자식들 다 자라기 전에 집 한 채는 장만하자.

 

그런데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첫째 집주인들이 횡포 못부리게 하고, 집을 사놔도 값이 오르지 않으면서, 더구나 자식에게 굳이 집을 물려줄 필요가 없어지만 집을 살 이유도 사라지는 것 아닌가. 역시 내 이야기다. 결혼도 않고 자식도 없고 그래서 늙으면 그냥 혼자 살다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예정이기에 일단 집을 물려줄 필요가 없고, 집값 오르는 것에 신경쓸 이유도 없고, 그나마 단 하나 집주인의 횡포가 문제인데 집주인이 느닷없이 나가라 해서 집을 옮긴 경우는 지금까지 딱 한 번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직장 때문에 이사를 해도 했지 집주인 문제로 이사한 경우가 없으니 그냥 그때그때 편한 곳에 월세 얻어 사는 것에 오히려 크게 불만이 없다.

 

세를 살면 가장 안좋은 점이 바로 이사를 자주 다닌다는 점이다. 그래서 내가 어렸을 적 주소만 한 열 번은 넘게 바뀌었던 것 같다. 내가 첫 기억이 구로동 철로변 살 무렵이었는데, 그 이후로 이사한 횟수가 가만 보자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10번, 이후로도 한 10번은 되는 모양이다. 대개는 그나마 가장 오래 살았던 것이 부모님 집에 함께 살 때와 그 전에 마음 좋은 집주인 만나서 한 집에서 6년을 살았을 때였던 것 같다. 나머지는 거의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녀야 했었다. 매번 살던 동네가 달라지고, 그러면서 친구와도 멀어지고, 새로운 동네에서 또래들은 낯설기만 하고, 그런 일을 그렇게 자주 겪고 나면 자연스럽게 어딘가 정착해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된다. 역시 자기 집을 가지고 싶은 첫째 이유일 것이다. 어디 한 곳 마음에 맞는 동네를 찾아 자기 집 가진 친구처럼 몇 년이고 몇 십 년이고 아무 일 없이 살 수 있다면 굳이 내 집을 가져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인가. 집값이 올라서 집을 넓혀 가는 것도 참 허무한 것이다.

 

6년 동안 한 동네 살면서 그리 이웃들끼리 친해지고 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후 이사도 가까운 곳으로 간 탓에 한 3, 4년은 여전히 서로 왕래하며 지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더 사는 곳도 멀어지고 그러면서 서로 한 번 얼굴을 보기에도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게 되었다. 거의 10년 넘게 만에 동생 결혼식 때 한 번 얼굴을 보고 지금껏 소식도 모르는 이도 있다. 10년, 20년, 30년, 그래서 이웃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독립하는 모습까지 모두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 행운인가. 이웃이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그만큼 이웃으로 지낼 기회가 사라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자기 집 가진 것처럼 한 곳에서 원하는 만큼 오래 살 수 있도록 한다면 과연 어떨까?

 

장기적으로 주택임대를 자기 소유의 주택에 대한 임대인의 재산권 이외에 실거주하며 자연스럽게 생겨난 임차인의 생활권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여기는 이유다. 4년도 사실 적다. 하긴 그래도 그동안은 2년 동안 별 걱정없이 그동안 내던 월세 내며 살 수 있었고, 다시 2년 계약을 연장할 때도 따로 계약서를 쓰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많이 나아진 것이었는데 이제 앞으로 4년은 기본으로 보장된다. 4년이 8년이 되고 16년이 되고 평생이 된다면, 즉 일정한 월세만 계속해서 낼 수 있다면 굳이 이사갈 일도 없는 현실이 되어 버리면 그때는 굳이 집을 사거나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죽어서 집 한 채 못 물려주는 미안함도 그냥 자식들도 그렇게 살면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없는 것이다. 주택임대를 임대인의 재산권만이 아닌 임차인의 주거권과 생활권으로 이해한다면 절대 문제가 될 정책이 아니다.

 

그래서 얼마나 마음대로 전세든 월세든 올릴 수 있는데? 전세는 기본적으로 집값보다 일정 이상 싸야 수요가 생긴다. 전세와 집값의 차이가 거의 없으면 차라리 돈을 얼마간 더 빌려 집을 사면 샀지 굳이 그렇게 비싸게 주고 전세를 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집값이 이후 오를 것이란 보장이 있다면. 월세 역시 그래서 내가 서울에서 밀려나 경기도민이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월세가 싸다. 그런데 경기도라고 다 나처럼 경기도에서 일자리를 찾느냐면 거의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같은 경기도라도 서울과의 접근성에 따라 월세도 크게 차이가 난다. 어차피 비싼 동네는 더 비싸게, 싸게 살 수 있는 곳은 싸게, 그것이 시장주의 아니겠는가. 그래도 아마 전세금 모으는 것보다 한 달에 들어가는 비용은 더 쌀 것이다. 결국 자기 것도 아니고 나중에 자식에게나 물려주게 될 전세금에 한 달에 쏟아 붓는 돈이 그렇게 많다. 아니면 누군가에게 받거나.

 

즉 지금 정부의 주택정책이란 집을 살 능력이 안되는 사람들이 무리하게 집을 사려 발버둥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드는 정책이란 것이다. 조국 전장관이 말한 미꾸라지 붕어들이 살기 좋은 개천을 만드는 정책이다. 굳이 자기 집을 가지려고 일상까지 포기해가며 자신을 희생시키지 말고 그냥 안정적으로 임대하며 살면서 자신의 삶을 더 많이 즐기라.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정부가 정한 임대료만으로 주거비를 해결하며 더 많은 부분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게 된다. 내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집이 필요한가? 그런데 있다. 대출금이 월세보다 더 많다. 빌어먹을 일이다.

어려서 어른들은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고등학교 시절 물리선생님은 어설프게 머리 좋은 놈들이 세상에 가장 큰 해악이라 말씀하셨다. 그리고 맹자는 말했다. 무릇 사람은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고, 항산이 없어도 항심을 지킬 수 있어야 비로소 선비라 할 수 있다고. 뭔 말이냐면 사람이 마음을 지키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심지어 방문자수며 리플도 신경쓰지 않으면서 내 하고 싶은 말만 할 수 있는 이유인 것이다. 내 직업은 블로거가 아니다. 블로그에 글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여기 와서 내 글 읽고 리플 달아주는 누구도 내 삶에 아주 작은 도움조차 되지 못한다. 내가 지금 고민해야 하는 것도 앞으로 뭔 일을 해서 먹고 사느냐지 여기서 어떤 글을 써서 방문자 끌어모으는가가 아닌 것이다. 바로 첫번째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당연하게 땅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직접 농사를 짓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농사를 짓지 않으려면 노비를 거느려야 하고, 노비를 거느리려 하면 재물과 권세가 있어야 한다. 아예 농사 자체를 짓지 않으려면 대신 먹을 식량과 생필품을 살 돈이 어디선가는 나와야 한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도 처가며 형의 가족까지 먹여 살리겠다고 장인을 따라 무예를 배워 무관의 길로 나선 것 아니던가. 그나마 이순신 장군은 무관으로서 길을 이끌어 줄 장인이라도 있었지 그마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한명회가 괜히 능참봉이나 하다가 수양대군 밑으로 들어가 정난같은 걸 일으킨 게 아니란 것이다.

 

실제 조선후기에 들어가면 대부분 선비들은 그저 양반 신분이나 유지하려고 향시 정도나 보았을 뿐 대과에는 아예 응시조차 않는 경우가 더 많았을 정도였었다. 굳이 벼슬살이 하지 않아도 농사 지으면 자기 먹을 정도는 충분히 나오고, 땅도 좀 있고 노비도 좀 있으면 권세는 없어도 유지행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농사지어 충분히 먹고 살며 인근에서 제법 기침도 할 수 있는데 굳이 벼슬 살겠다고 구차한 꼴을 볼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긴 이 무렵 되면 대부분 관직은 한양에 모여사는 이른바 벌열들이 독점하고 있기도 했다. 남산골에서 하는 일 없이 글이나 읽는 허름한 선비들이 늘어난 이유도 그나마 한양을 떠나기라도 하면 다시는 권력의 주변에조차 다가갈 기회가 없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역사책에 나오는 것처럼 선비가 수틀린다고 관직 내던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고향에 따로 먹고 살 방도가 마련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봐야 직접 농사지을 땅조차 없는 형편이라면 어찌 감히 그나마 녹봉이라도 나오는 관직을 아무렇지 않게 내던질 수 있을 것인가. 권력의 단 맛을 봤다면 그래서 더욱 정약용처럼 자식들이 아예 권력으로부터 멀어지게 한양을 벗어나지 말라고 유언을 남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고향으로 돌아가 더러운 꼴 안 보고 그냥 내 땅에서 내가 벌어 먹으며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다. 그게 또 사대부다. 물러나면 물러난 대로 먹고 살 길이 있고, 관직에 나가면 나가는대로 권세가 따른다. 관직이 없다고 지역사회에 영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관직에 나가면 권력을 가지고 국가단위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원래 그나마도 없었거나 있더라도 만족할 수 없는 경우들일 것이다. 어떻게든 스스로 권력을 가지거나 권력을 가진 누군가의 주변에 머물며 그 찌꺼기라도 받아먹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생활도 되고 자기 욕심도 채울 수 있다. 역사상 간신이라 불리는 부류들인 것이다. 탐관오리라 불리는 놈들이 대개 여기에 속한다. 권력을 위해 글을 팔고, 지식을 팔고, 나중에는 양심까지 판다. 하긴 최근에도 연구비를 대는 스폰서의 입맛에 맞게 데이터까지 조작해가며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경우가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을 것이다. 그나마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연구결과를 도출하는 자연과학의 논문에서조차 그렇다. 인문학은 말할 것도 없다. 특정 문중의 영향력에 사료가 왜곡되어 잘못된 사실이 진실처럼 통용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했으니 박사학위도 땄을 텐데 환경학자로서 4대강이 환경에 더 도움이 된다며 앞장서 주장하던 학자들을 떠올려 보라.

 

어쩌면 현대민주주의가 가지는 또 하나 모순일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이란 다른 이들과 같은 그저 한 사람의 시민일 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 가운데 선출되어 국회의원이 되고,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나면 다시 시민으로 돌아간다. 원래 자기 일을 하다가 선출직인 대통령이 임명하면 장관도 되고 청장도 되었다가 역시 임기를 마치면 다시 원래의 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러기에는 현대가 너무 고도화되고 전문화되었다. 계속 그 일만을 맡아 해야 하는 사회적 필요가 생겼다. 권력이 직업이 된다. 사회적 직위가 곧 자신의 생업이 되고 만다. 그런데도 과연 사심없이 오롯이 국가와 시민만을 위해 공공에 봉사하는 공직자라는 것이 얼마나 가능하겠는가.

 

아무튼 이렇게 별 되도 않는 소리를 길게 지껄이는 이유는 어느 석사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강연도 열심히 다니시는 것 같다. 여기저기 칼럼도 꽤 연재하는 것 같다. 역시 돈이 된다. 어쩌면 어렵게 얻은 대학교수 자리도 박차고 나온 것이 온전히 자의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었는지. 사실 보수는 돈이 된다. 진보는 돈이 되지 않는다. 당장 유튜브만 봐도 보수채널은 슈퍼챗만 한 번 방송할 때마다 천 만 단위로 쏘아지고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 돈 바라보고 보수유튜버로 전향하신 분도 계신다. 자기 생업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생업이 없으면 K값 같은 것이나 떠들면서 후원금 장사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정의당도 그래서 걱정이네. 정의당이 애매하다는 것이 정치를 직업으로 계속 하기에는 정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입이란 것이 없고, 그렇다고 어차피 당선도 못될 것 취미로만 하기에는 따로 대단한 본업을 가진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진보활동가 진보운동가라는 게 사실 그리 돈이 되지 않는다. 홍세화도 돈을 벌려면 강연회에도 가고 책이나 글도 팔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뭔가 그럴싸한 것이 필요하다. 작년의 정의당과 올해의 정의당이 사뭇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작년의 정의당은 뭔가 여유라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 정의당 비례대표들은 국회의원 그만두면 어디서 뭘 하며 살아야 할까?

 

결론은 자기 하고 싶은 말 마음껏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려면 그만한 물적 기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산이 있어야 항심이 있다. 먹고 살 무언가가 있어야 한결같은 마음을 지킬 수 있다. 먹고 사는 게 불안하면 마음도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리 추워했던 것일까. 그래서 역시 글은 취미로나 쓰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아마 이전 다른 블로그도 봤으면 알겠지만, 아니 특정 매체에 기고할 때조차 양식은 지켜주되 내용은 항상 내 마음대로였었다. 거기서 주는 돈으로 먹고 산 적이 없다. 심지어 어차피 최저임금 일자리 아무데나 가도 그 정도는 받는다는 마음에 전직장에 대해서도 그다지 애정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생쥐스트도 혁명의 끝자락에 모든 프랑스 시민을 위해 땅을 나누어주려 했던 것일 테고.

 

먹고 사는 게 불안해지면 그리 글도 불안해진다는 것이다. 혹은 다른 욕심이 마음 한 구석에 깃들기 시작하면 생각에도 그늘이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변절이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미혹의 순간에 자신의 한결같은 마음이 흔들리면 새롭게 찾은 믿음을 흔히 변절이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오로지 의지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은 매우 드물다. 사람이 현실을 딛고 사는데 어찌 의지만을 가지고 살 수 있겠는가.

 

아무튼 그런 이유로 돈 많은 보수진영에서 이들을 좀 잘 챙겨주기 바란다. 덕분에 김지하 시인도 제법 먹고 사는 것 같지 않은가. 진보진영에 계속 붙어 있었으면 그다지 좋은 꼴 보기가 힘들었다. 더불어민주당조차 의석만 많았지 돈은 미래통합당보다 없다. 잘 먹고 잘 살기를. 현실보다 더 큰 명분은 없다. 아닌 척 하는 게 문제일 뿐. 너무 당연하다.

예를 들어 전쟁중이다. 나라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 전장에서 주력군을 이끌고 싸우던 지휘관이 정부에게 협상을 제안한다.

 

"전쟁이 끝나도 종신 군사령관직을 보장하고, 국무회의 참석과 국가가 투자한 대기업의 지분 일정량을 달라."

 

한신이 그러다 뒈졌다. 한고조가 항우에게 열심히 깨지는 것을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며 자기 이익만 챙기려다 오히려 전쟁 도중 군권마저 빼앗기고 그나마 항우까지 죽고 난 뒤에는 여후에게 처참히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이런 짓거리 내버려두면 버릇만 나빠진다는 것이다. 항상 왕이 군을 이끌고 전장에 나설 수도 없는 것인데 주력군을 이끄는 지휘관이 군과 왕조의 명운을 볼모삼아 협박할 때마다 다 들어주면 왕이고 뭐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원숭환이 모문룡따위를 죽였다고 숭정제에게 능지처사를 당한 것을 보라. 

 

그래서 하마트면 이순신 장군도 선조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것이었다. 게긴다고 여긴 것이었다. 조정이 어렵게 가토 기요마사가 일본에서 돌아온다는 정보를 얻어서 요격해 죽이라 지시했는데 이순신이 함정이라며 꿈쩍도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실제 이순신은 조정의 명에 따라 부산까지 함대를 이끌고 출정한 바 있었다. 그러나 어찌되었거나 조선에서 가장 정예라 할 수 있는 이순신의 수군을 지휘하는 통제사가 조성의 명을 함부로 거역한다는 것은 조정 입장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순신을 파직하고 한양으로 압송할 때 조정 내부에서 반발이 없었던 것이었다. 류성룡조차 감히 이순신을 감싸고 나설 수 없었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그렇지 않아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험한 상황이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의료진이 코로나19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방역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위급한 상황을 기회삼아 의료인력들이 - 정확히 의사들이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여기서 정부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완전히 굴복하지 않으면 국민들이야 죽든말든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국민들이 코로나19로 인해 얼마나 고통받고 죽어가든 자신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 정부에서 코로나19 재확산이 수습될 때까지 유보하겠다며 한 발 양보한 상태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가자며 먼저 손을 내민 상황에서도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무조건적인 항복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국가적 위기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부를 위협하겠지.

 

웃기는 건 그동안 철도파업이나 운수노조파업이나 금속노조파업 등 수많은 파업들에 대해 그들 의사들이 보였던 태도라는 것이다. 아니 같은 병원 안에서 간호사며 병원직원들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파업했을 때 그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을까? 간호사를 포함한 병원직원들이 노조를 만들어 파업할 때 의사들이 그를 비웃으며 내세운 논리가 바로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었다. 의사 새끼들이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내가 말을 않겠다. 천룡인들이라 그렇다. 사람의 목숨 따위 내 손아귀에 들어 있으니 내 말 만은 죽어도 들어야 한다. 그래야 할까?

 

설사 이번 코로나19 재확산이란 국가적 위기로 인해 일시적으로 정부가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 더 엄격해지고 더 강경해질 것이다. 다시는 의사들이 국가적인 위기를 틈타서 국민을 볼모삼아 국가에 덤비지 못하도록. 물론 지금도 가능한한 강경하게 의사들의 부당하고 불순한 의도가 관철되지 못하도록 대응하려 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의사들과 달리 정부 입장에서 가장 최우선으로 지켜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의사들 역시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지금을 기회라 여기는 것이다. 의사들 자신에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란 단지 돈벌이를 위한 수단이지만 정부에게는 목적 그 자체다. 그러니 정부가 양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의사집단을 박살낼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의사의 수입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의대정원을 늘리고, 외국인의 의대 편입을 통한 의사고시 응시를 허락하는 것이다. 더 다급하면 일정 이상의 의료수준을 갖춘 국가들과 협정을 맺고 의료진의 교류를 추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시는 의사놈들이 단합해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짓거리를 감히 하지 못하도록. 지금 의사들은 국가의 위급상황에 국민을 볼모삼아 정부를 상대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 중이니.

 

방법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명분은 정부가 먼저 대화를 제안하고 유보를 표명한 이상 어디까지나 정부에게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재확산이 기회라는 의사들의 오만을 너무 솔직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의사파업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자신들이 직접 그리 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정부를 이길 수 없다. 국민을 인질삼아야 의사도 정부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 그런 놈들을 내버려두어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때려잡으라.

 

얼마나 강경하게 의사들의 반란을 진압하는가 똑똑히 지켜보겠다. 이건 테러 수준이 아니라 그냥 반란이다. 국가도 국민도 안중에 없는 이익집단이 국가의 위기를 빌미삼아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반드시.

여기저기 커뮤니티마다 의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열심히 의사 입장에서 주장을 펴는 것이 보인다. 역시 일반인과는 사는 세계가 다른 것일까? 공공의료 인력과 시설의 확충이 어제오늘 나온 이야기도 아니고, 당연히 의대정원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역시 오래전부터 나온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말 한 마디 없이 밀어붙인다? 그동안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듣지도 않고 반대부터 한 것은 어디의 누구였던가?

 

아무튼 가장 흥미로운 것은 어째서 코로나가 재확산하는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파업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지금이어야 하니까'라는 대답이었다. 즉 코로나의 재확산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지금이어야만 파업의 효과가 극대화되어 정부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란 논리였다. 당장 국민이 죽게 생겼는데 정부가 끝까지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겠는가. 당장 코로나19로 죽는 국민이 생긴다면 책임은 모두 정부에게 돌아갈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가. 코로나19의 재확산은 정부의 공공의료확충 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매우 요긴한 기회가 되어 주고 있다는 뜻이다.

 

어째서 광화문집회에 경기도 의사협회장이 직접 참석하고 있었는가. 어째서 의사란 인간이 야외에서는 감염이 되지 않는다며 확진자가 쏟아지는 상황에 사람들이 집회에 참여하도록 독려하며 안심시키고 있었는가. 광화문에 참석했던 인원 가운데 일부가 의사 집회에도 연루되어 있었다. 과연 무관한 일인가? 처음부터 의사협회와 교회와 미래통합당이 결탁하여 코로나 재확산을 기회삼아 정부와 여당을 공격하려던 것이었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무튼 더욱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할 수 없게 된 이유인 것이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상황을 오히려 기회라 여긴다. 국민이 죽게 생긴 상황에 오히려 기회라 여기고 자기들 이익만 챙기려 하고 있다. 국민이 죽으면 전부 정부의 책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보를 하든 보류를 하든 완전철회하지 않으면, 정부가 완전히 굴복하지 않으면 국민을 인질삼아 계속 파업을 하겠다. 사람새끼들인 것인가? 요즘 대학 가면 다 이따위가 되는 것인지.

 

전혀 아무 거리낌이나 어색함 없이 떠들 수 있다는 점이 더 신기했을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기에 몰린 지금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기회다. 지금이라면 정부를 완전히 굴복시킬 수 있다. 국민에게는 재난인데 저들에게는 그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킬 기회란 것이다. 그런 말을 너무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래도 의사면허는 박탈할 수 없으니까. 죄다 쫓아내고 의사나 좀 수입해 왔으면 좋겠다. 한국 의사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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