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격투기 경기를 보면서 그리 말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르겠다. 사람이 키가 크고 뼈대가 굵으면 어쩔 수 없이 몸무게도 차이가 나는 것인데 어째서 그런 선천적인 부분을 가지고 차별하여 같이 경기도 치르지 못하게 하는가.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 우월하면 그것으로 더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리한 신체적 조건에도 그를 극복할 수 있다면 승리도 거둘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격투기 가운데 체중제한이 없는 종목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 그대로 타고난 조건이 다른데 차이를 두지 않겠다고 모두가 함께 경기를 치르게 한다면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않은 사람들만 너무 불리하지 않겠는가. 같은 시간을 같은 강도로 노력했어도 여성이 남성을 이기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린이가 30대 장년을 이긴다는 것도 무협소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같은 성인 남성이라도 키와 몸무게에서 벌써 크게 차이가 나는데 과연 같은 수준으로 노력해서 대등한 경기가 가능하겠는가. 그러니까 모든 종목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고, 다시 연령대나 혹은 체중별로 나누어 서로 경쟁이 가능한 사람들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규칙을 만든다.

 

사실 둘 모두 관점에 따라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조건이 다르다고 타인과의 경쟁을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일 수 있다. 타고난 조건이 다른 만큼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끼리 경쟁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지 않고 경쟁에 참여할 수 있다. 포기하는 것도 자유다. 차라리 타고난 조건이 불리한 만큼 몇 배 몇 십 배 더 노력한다면 반드시 승리하지 못할 것도 아닌데 스스로 지레 포기했다면 모두 자신의 의지로 그리 선택한 것이다. 자유주의와 자유의지주의가 갈리는 지점이다. 그런데 한국은 자유의지주의조차 아니다. 자유의지주의는 설사 패배하고 포기했다고 그를 징벌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하지 않는다. 끝까지 도전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의지이고,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의지다. 그래서 과연 사회는 어떤 공정함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언론과 정치권이 만들어 퍼뜨리는 공정 프레임에 때로 분노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공정함의 반댓말이 불공정이 아니다. 헤비급과 플라이급이 함께 링에서 경기하지 못하게 한다고 그것이 불공정한 것이 아니란 뜻이다. 무한한 자유를 인정할 것이면 프로스포츠에서도 외국인 선수에 대해 그리 많은 제약을 둘 이유가 없다. 국적이 다르고 인종이 달라도 실력만 뛰어나면 얼마든지 프로팀과 계약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프로야구팀이 모든 선수를 미국 마이너리그 출신으로 채워도 문제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고, 프로축구팀이 모든 선수를 남미 출신으로 구성해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왜 그래서는 안되는가. 

 

어차피 보안검색직이 하는 일은 사무직의 그것과 전혀 다른 것이다. 시설관리나 미화로 정규직이 되었어도 사무직의 영역까지 넘볼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사무직더러 보안검색이나 시설관리, 혹은 미화를 하라고 지시를 한다면 바로 고용노동부에 제소하면 된다. 서로 직렬이 다르고, 따라서 하는 일도 다르고, 급여와 승진과 복지체계 역시 모두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단지 그런 차이 안에서 비정규직이던 것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는 것이다. 보안검색의 급여가 많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추가수당이 붙는 야간과 주말근무가 많아서 그런 것일 뿐 사실 대부분 그냥 최저임금이나 겨우 받는 수준이란 것이다. 야간미화원이 300만원 넘게 받아도 야간수당에 주말수당 제하면 역시 최저임금 겨우 넘는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 다 뭉뚱그려 그냥 정규직과 비정규직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비교하고 경쟁시키려 한다. 어딜 감히 보안검색따위가. 어딜 감히 시설관리나 미화 따위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직군이 따로 있고 정규직이 되어서는 안되는 직군이 따로 있다. 그것이 현실에서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곧 공정이고 정의인 것이다. 정규직이 되어도 되는 직군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온 직군이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다. 의사가 되어 아무데서나 개업해서 돈이나 열심히 벌라는 지역의사가 아니란 것이다. 졸업하고 나서 일정 기간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할 것을 강제하는 특수한 목적의 의사들이다. 그래서 사관학교와 많이들 비교하는 것이다. 사관학교의 경우도 나라에서 교육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대신해 지불하는 대신 졸업생들은 일정기간 나라를 위해 국방에 종사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아무데서나 자유롭게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의사들과 선발과정부터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의사로서의 역량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바로 졸업 이후에도 해당 분야에서 출실하게 의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인가의 여부인 것이다. 그런데 그마저 시험으로 뽑자고? 어차피 졸업하면 그동안 받은 장학금에 위약금 다 물어주고 늘어난 정원 만큼 보다 수월하게 의사가 되어 돈 벌 생각만 머리에 가득한 사람들까지 다 받아들여 그 혜택을 나누자고? 그게 공정인가? 그게 정의인가?

 

어차피 지방은 인구도 적고 그만큼 환자수도 적어 일정이상 수입을 보장받기 어려우니 지방에서 개원하려는 의사가 없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생활이 필요한 최소한의 편의시설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 의사들이 어지간한 차이면 그냥 돈 좀 덜 벌고 서울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것이다. 어차피 KTX며 저가항공이며 교통편도 많이 좋아졌으니 그냥 큰 수술 필요한 상황이 되면 서울로 와서 진료받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니까 지방의 의료인력을 억지로 늘리기보다 기왕에 있는 의사들 수가나 올려서 처우를 개선해달라. 혹시 아는가, 그러다 보면 기존의 의사들 가운데 자기 발로 지방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나올지? 그래서는 안되겠기에 지방의료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공공의대와 의대정원증가를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현실을 인정하고 그냥 받아들이자는 이들과 그럼에도 강제로라도 그를 바로잡을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경우, 그래서 사회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없는 경우 쉽게 의사들의 주장에 휩쓸리고는 한다. 강제보다는 자유가 더 나아 보이지 않는가. 세련되고 멋져 보이고.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사실 자유의지주의대로라면 국가란 존재할 이유가 없는 폭력과 강제의 조직인 것이다. 그냥 개인이 알아서 하면 된다. 알아서 돈벌고 알아서 선의를 베풀고 그러면서 알아서 공존할 방법을 찾아간다. 그것만으로는 절대 해결이 안되거나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경우 국가가 강제로 중간에서 균형을 맞추려 한다. 그래서 묻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공정인가고. 현실의 불균형과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 강제를 개입하는 자체도 불공정인 것인가. 그마저도 자유의지에 맡겨야 공정한 것인가. 아니면 결과의 공정을 추구할 것인가.

 

말하자면 권투시합을 앞두고 과연 상대로서 적절한가 따져보는 과정인 것이다. 당사자는 불쾌할 수 있을 것이다. 페더급 시합이지만 헤비급인 자신 역시 출전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여성대회이고 아마추어 학생대회지만 남성이고 프로인 자신 역시 자유롭게 출전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실력이다. 물론 그렇게 진행하는 시합도 어딘가는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권투를 즐기는 모두를 위해서도 상대는 조건은 지켜져야 한다. 불공정하다. 정의롭지 못하다. 말이 된다 생각하는가. 그따위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 바로 언론이고 정치인이고 지식인들이다. 멋모르는 네티즌들이다.

 

또다시 공정프레임이다. 시민단체가 운동권 시민단체만 있는가. 진보적인 시민단체만 있을 것인가. 학부모단체도 시민단체고, 교원단체도 시민단체이며, 환자나 의료사고와 관련된 단체들 모두 시민단체인 것이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모인 사람들 역시 모두 시민단체라 불리고 있다. 시민단체와 시민이 별개가 아니란 것이다. 정히 선발과정에 관심이 있으면 자신 역시 아무 시민단체에나 가입해서 감시활동을 하면 된다. 벌레들이 많다. 뇌가 진중권인 것일까. 우동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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